머리카락이 샛노란 청년은 즐거운 기분으로 상점가를 걷고 있었다. 특별 상품 이벤트가 어느새 끝났더니, 상점가는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대로의 인파만 보였다. 그놈의 커플 게임 이벤트. 사실 은후는 다림 덕분에 실보다 득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만, 그 이벤트 하나 때문에 신상 필기구를 첫날에 사지 못했다는 것이 필기구 동맹의 회원으로선 슬프기 짝이 없었다.
이걸 같은 동맹인 사비아 선배에겐 들키면 안 되는데.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코너를 돌자, 늘 들리던 필기구 전문점이 그의 눈앞에 있었다. 그리고 지나치게 익숙한, 키가 큰 여성 또한.
"어…."
망했다! 힝, 하는 표정을 감출 생각도 하지 않은 채로, 막 문을 열고 가게에 들어가려고 하는 사비아의 어깨를 그는 툭툭 치려 했다.
믿음이란 것은 참으로도 사치적인 물건입니다. 얼마나 사치적이면, 누군가는 믿음이란 것을 맹목적으로 모으곤 합니다. 남들의 시선 따윈 아랑곳 않고 믿음을 모아서는 제 주머니 속에 집어넣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인 믿음을 보며 자신은 이만큼 신실하고, 올바른 사람이다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서도 얼마나 사치적인가 하니. 자신이 믿음이 이만큼 있으니 당연히 믿음만큼 돌려받아야 한다 생각한다지 않습니까? 우스운 것은 이 믿음이라는 것은 실체가 없습니다. 그저 공을 들이고, 정성을 들인다 하여 믿음信이라 한답니다. 그런데 이 것은 참 웃기게도 믿으나信 남에겐 강요를 하고 남이 싫어한들 그걸 주저하지 않는단 겁니다.愼 그러면서도 믿음의 대가는 받고자 하니 우연히 굴러들어온다 하여 그것을 복福이라 한다지 뭡니까? 그러니 이들은 실체도 없는 믿음이란 것을 바쳐 복을 바라니 이 복을 누가 줘야 한다는지 아십니까? 바로 그들이 그리 모으는 믿음에서 만들어졌으니. 믿는다 하여 신神이라 부른다지 뭡니까? 그러나 이 신이라는 것이 것마다 다른 것이 어떤 신은 믿기만 해도 복이라는 것을 우수수수수수 준다던데, 어떤 신은 염불을 외고 폭포를 맞아도 복은 커녕 호통만 친다는 겁니다. 그러니 남은 복받고, 나는 염厭받으니. 자기가 믿음을 실컷 모았는데 주는 것은 없으니 인간이란 족속이 얼마나 화를 냈겠습니까? 그러니 이것들이 한 생각이 그렇지 뭡니까? 믿음信을 끙끙거리며呻 모으느니 차라리 그 신神이란 것을 우리가 만들면 되지 않느냐? 하는 생각을 한겁니다. 자 그런데 이 신이란 것이 참으로 만들기 까다롭다 이겁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늙은이 신 만들어 놨더니 좋은 말이라느니, 가르침이라느니 시끄럽게 떽떽거리면 쓸모가 없을 것 아닙니까? 그렇다고 건장한 남자 모셔다가 신 만들어봐야, 제들이 힘에 쓸려가면 어쩝니까? 여자 모셔다가 신 만들어봐야 제들 가로챌 여자 하나 없어진다면 누가 좋다고 신 만들겁니까? 그러니 이것들이 한 생각이 그겁니다. 제들 말 자알 듣고, 복은 많이 불어줄. 옳다구나! 아이를 데려다가 신으로 만들자! 그 생각을 했지 뭡니까? 그러니 어쨌겠습니까?
길거리 돌아다니는 고아 하나 잡아다가 긴 머리를 뭉텅뭉텅 자르고 꼬질꼬질한 몸을 깨끗히 씻기고 도망 못 가게 팔다리 다 끊어놓고 아이에게 사흘 꼬박 믿음을 바친거지 뭡니까? 애는 굶어 죽으려 해서 벽 긁고 바닥 긁고 난리가 났는데, 이들은 저마다 믿음 자랑 하며 아이에게 물 한 모금, 밥 한 숟갈 안 주고 믿음이란 것만 가득 모아다가 아이에게 주니. 어찌어찌 하여 아이가 신이 됐다 이겁니다. 그럼 아이가 어쩌겠습니까? 아이고 신 만들어주니 감사하다. 옛다 복받거라~ 하겠습니까? 아니면 예끼 이것들아! 내가 너들 덕분에 죽었으니 복은 커녕 염이나 한 가득 욀테니 어디 죽어가라! 하겠습니까? 그러지 말라고 자른 애 머리 모아다가 부적에 감고 신이 된 혼이 빠진 손을 잘라다가 애가 헛된 짓 못하게 하고 혀 잘라다 신이 되어도 말 못하게 하고 오직 믿음만 받고 복만 주게 했지 뭡니까. 그런 일이 아주 오래 지나봐야, 결국 사람들 소문 흉흉해지고 신이란 것도 신통함이 좀 빠지고 나니 다들 입 싹 닫고 저들은 믿음 같은 것은 모으지도 않았다 하니. 어쩌겠습니까.
애는 신이 되어서 평생 살아갈 것인데, 제 혀는 잘려 말도 못 하건데. 손 없어 뭐 하나 제대로 쥐지도 못하는데. 팔다리 다 끊어 어디 가지도 못하고 도망도 못 가는데. 그렇게 신 하나 만들었으니 이걸 병신이라 하지 뭐라 합디까?
달이 가득 찬 밤이었다. 마을의 불은 여전히 쉬이 꺼지지 않았다. 특별한 무언가도 없었지만 마을의 등불이 유독 길게도 켜져 있었다. 그러나 등불 길게 킨 마을에도 여행자 쉬어 갈 곳이 없었다. 다림은 오래 걸어 아픈 다리를 주무르며 계단 난간에 앉아 쉬고 있었다. 참 조용한 마을이었다. 뛰어 노는 아이들도 없고 이따금 지나는 노인들도 기침 큼큼 하면서, 사람을 못 본 것마냥 지나가긴 했지만 말이다.
일행들은 어디로 갔을지. 칩이 조용하다. 울리지도 않고 그저 원래 그랬으려니 하며 말이 없는 것이다. 그러던 차에 애 하나가 다림에게 토도독 다가왔다. 다림의 옷깃을 당기며 계속 어으, 어어 하며 마을 밖을 가르켰다. 마치 무언가 하고 싶어도 답답하여 말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단칼에 거절했다. 벚꽃놀이는 나도 찬성했고, 자리를 잡는 것도 좋긴 하지만. 그래도 야밤에 혼자 있는건 외로운걸. 나는 말동무가 필요했다. 그를 묶어둔게 좀 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풀어주지 않는 이유는 별로 혼자 있고 싶지 않다는 응석이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도망치면 연인분한테 이를거야. 안그래도 다들 언제 한번 말하려고 벼르고 있는데."
나는 다시금 방패에 등을 기대곤 그의 옆에 편안하게 앉아 시선을 마주하면서 대답했다. 특히 최근 네가 당당하게 제시한 에미야 아가씨 납치 작전도 말할거라고 덧붙여 주었다.
"자신만만한거 보니까 뭔가 믿고 있는 꿍꿍이가 있는 것 같은데....네가 믿는 그 사람이 성실한 성격이라면 어느정도는 우리를 지지해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