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바라 본 창문을 통해 밤이 내려앉았단 사실을 알았다. 무거운 눈이 곧, 감길락 말락 깜빡거렸다. 눈 위를 꾹 누르며 어떻게든 잠을 깨기 위해 수마와 싸우면서 시계를 바라보았다. 곧 해가 뜰 것 같은, 그러나 밤이라 보기에는 애매할 듯한 시간이었다. 손목을 움직여 가디언 칩을 조작하자, 길게 늘여진 부재중들이 드러났다. 대게는, 별로 필요하지 않은 연락들이었다. 그러나 길게 늘여진 연락처 중 하나만큼은 꼭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는 연락이었다.
[ 아내님 ]
가디언 칩을 보고, 시간을 확인하고, 진화는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집에 돌아가면 물어 뜯길 것 같았다. 이 시간까지 뭘 했냐고, 아마도 그녀도 알겠지만서도 서운한 마음과 더해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신혼까지 섞여 서운함을 토로할 것이다. 받아줄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리 육체적으로 튼튼한 가디언이라지만, 정신적으로까지 완벽한 가디언은 아니었다. 진화는 여전히 물렀고, 약했다. 방금도 동료 가디언의 부탁으로 레포트를 작성하다 늦었으니. 마음 속으로는 그래선 안 된다 싶으면서도 쉽게 되지 않았다. 어쩌지.. 집에 들어가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던 도중 전화가 걸려왔다. 익숙한 이름이었다. 진화는 가볍게 손을 움직였다. 곧, 통화가 연결됐다.
" 여보세요. " [ 어- 여보세요- 신혼 생활도 못 즐기고 있는 가디언 유진화씨 번호가 맞나요? ]
여전히 장난스런 목소리로, 오렐리는 말을 걸어왔다. 다분히 심심하단 목소리가 가득 담긴 것은, 지루함과 피곤함의 편린으로도 느껴졌다.
" 편한가보네? " [ 응? 뭐가 말이지? ] " 그렇지 않고서야 대학자님 아래서 그리 편하게 놀리가 없으니까 말야? " [ 쯔쯧. 친우여. 그대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군. 사람의 뇌는 충분한 휴식과 채찍질이 더해져야만 하는 법.. 흐꺅! 셀린 님! 그만! 그만그만!! ]
시끄러운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으로 보니, 아무래도 도망쳐 쉬는 김에 심심함을 참지 못하고 전화를 건 모양이었다. 진화는 숨을 내쉬면서도 끊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곧 모기만한 작은 목소리로 말해왔다.
[ 미안해. 하지만 말야.. 역시 이미 모든 걸 아는 사람이란 평가답게.. 나 역시도 후계로 만들겠답시고 건들여서 말야. ] " 어쩔 수 없지. 진리를 찾기 위한 방법으로 모든 것을 통한 하나를 원한다고 한 건 너였잖아? " [ 그래도...... ] " 그것도 이겨낼 수 없다면 진리에 도달할 수 없지 않을까? " [ ... 그건. ]
이걸로 1대1. 어쩐지 기분이 상쾌해졌다.
[ 아무튼. 그보다도. 저번에 부탁한 것. 찾았어. ]
그러나 그 키워드가 나왔을 때 진화는 움직이던 것을 멈추고 천천히 자신의 소파를 향해 다가갔다. 자리에 앉아선, 마지막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도 이 이후부턴 한숨을 쉬기도 어려울테니까 말이다.
" 어디야. " [ 마지막으로 발견된 것은 라틴아메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비전 집단인 '제국'을 무너트렸어. 그게 마지막. ] " 라틴아메리카라.. "
곧, 거대한 스크린이 떠올랐다. 중국, 베트남, 독일, 러시아, 이번에는 라틴아메리카 쪽. 그것을 모두 체크했다. 난잡한 모양이 만들어졌지만, 그 것에 규칙 따윈 없을 것이다. 그렇게 간단하게 머릴 쓸 사람은 아니니 말이다.
" 역시.. 귀신같이 빠져나가네. " [ 디재스터의 운은 쉽게 보기 어려우니까. 그 막대한 행운은 솔직히 말해서, 진리의 영역 밖. 그러니 우연의 영역에 있을 정도니까. ] " 조금만 더 수고해줘. " [ 별 말씀을. 대신 부탁한 거 꼭 구해주길 바라. ]
연락을 끊고, 소파에 기대듯 누운 채 진화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나무의 재질을 살린 건물에는 나무 특유의 결이 남아 있었고, 가디언의 시야는 그것을 간단하게 눈에 담았다. 그 결을 따라, 진화는 수많은 추억을 떠올려갔다. 자신의 친구들, 동료들, 지금의 아내. 다양한 기억들이 몰려든 직후에야 진화는 자신의 손이 떨리고 있단 것을 알았다. 할 수 있을까? 여전히, 자신이 참견하는 것은 아닐까? 그 생각이 드는 것을 참으며 온전치 못한 휴식을 취했다. 곧 신경이 잠들기 직전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잠에서 깬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똑, 똑, 똑똑똑, 똑.
어울리지 않는 노크 소리가 지나가고 나서, 문 밖에서는 목을 가다듬는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진화는 잠에서 깨었지만 대신 웃었다.
" 누구세요? " - 힌트는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 " 어라. 난 사랑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누군지 잘 모르겠는걸? " - 어.. 뭐?! 뭐라고!
콱 문이 열리며 춘심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살짝 붉어진 얼굴과 치솟은 열기는 부끄러움과 화를 참은 채 진화를 바라보는 듯 했다.
" 농담이야. "
곧 춘심의 분노를 담은 스트레이트 펀치를 맞아내며 진화는 자신의 소파 한 켠을 내어주었다. 춘심은 조금 꼼지락거리다가, 진화의 옆에 딱 달라붙게 앉았다. 그대로 진화에게 머리를 기댄 채 가만히 기다렸다.
" 흐으으.. 너무 오랫동안 집에 안 오는 거 아냐? "
춘심의 이유 있는 투정에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진화는 눈길로 거대하게 쌓여 있는 서류더미를 바라보았다. 힉, 하는 짧은 말을 하면서 춘심은 진화의 팔을 끌어안고 말했다.
" .. 역시 타국으로 망명해야하나..? 중국? 아냐.. 그럼.. 러시아? 아냐 러시아는 현장이 더 바쁜.. " " 그만. "
진화는 그 말에 장난스럽게 웃음을 지었다.
" 최근에 게이트 발생이 좀 많아서 그랬을 뿐이야. 걱정하지 않아도 돼. "
그 말에 춘심은 의심 반, 믿음 반인 얼굴로 고갤 끄덕이고 가만히 진화의 어깨에 기대어 있었다. 말해야 하는데, 여전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진화는 말 없이 춘심을 끌어안고 잠깐의 휴식을 취했다. 깊지 않은, 그리고 마음마저 불편한 휴식이었다.
*
" 참절공 미나즈키 하쿠야는 활동 불가. 로빈후드 신정훈은 현재 초대형 게이트에 의해 실종.. 그럼.. 지금 상황에 동원할 수 있는 최고 전력은 셋밖에 없군요. "
거대한 원탁의자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하나하나가 한 국가의 유명 가디언부터, 준영웅의 이름을 가진 사람들까지. 모두가 국제 계급으로 준장 정돈 우습게 단 인물들이었다. 그 틈에서 은후는 말 없이 서류를 붙잡고 있었다. 상황이 어지럽게 돌아가고 있었다. 결국 빌런의 위험도는 강함이 아니라, 얼마만큼의 피해를 입혔는가로 결정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과 단절된 채 자신의 영역을 지닌 흑룡용왕 연바다의 위험도는 낮은 반면, 수많은 사상자를 발생시킨 디재스터 기다림의 위험도는 천정부지로 치솟는 것이다.
" 협회에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
조심스럽게 은후의 입이 떨어졌다.
" 우리 입장은 여전하네. 완전 사살을 목표로 그와 친분이 있는 가디언을 동원할 것. 그러면서도 전력은 강한 가디언으로만 구성할 것. " " 정녕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방법을 찾고자 한다면 많은 것 압니다. 정말 수가 없다면 1세대나 2세대 분들도 여전히 남아있지 않습니까. " " 그들은 전력이나 가치로 볼 수 없네 신은후 소장. 자네도 알지 않나. 사실상 그녀는 망념화하지 않았을 뿐.. " " 압니다. 알기 때문에 말하는 거죠. "
어떻게 그리 잔인한 짓을 합니까? 하고, 떨어지려던 입은 곧 멈췄다.
" 그럼 내가 나서도록 하지. "
천동고력天動高力 이성현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 참 재밌지 않아? 난 가디언이라고 하면 정의를 위해 나서고, 언제나 정의를 위할 줄만 알았는데 여기도 낡았는지 정치 싸움질로 가득하네. 왜. 이번에는 신 한국 목줄 쥐기인가? 신 한국 출신이니 차라리 신 한국 소속 가디언들로만 토벌하라고 하지 그래? " " 이성현 소장! 자네!! " " 내가 힘 조절 잘 안 되는 거. 너희들도 알지 않냐? "
성현은 목을 돌렸다. 곧 우득거리는 소리가 회의실 안에 시끄럽게 울렸다. 입을 떼려던 상대는 그 기합에 눌려 곧 입을 닫았다. 성현은 웃으면서 은후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 내가 맡지. 그러니까 내 친구들 좀 데려가도 되겠지? " " 하지만, 그는.. " " 야. "
성현은 발걸음을 내딛었다.
" 친구랑 관련된 일이라서 좋게 말하고 있는 거니까 적당히 하지? " " 성현 씨. " " 어. 넌 갈거지? 알아. " " 아니 그게.. " " 걱정 마. "
성현은 씨익 웃었다.
" 원래 친구가 훼까닥 했을 때는 친구가 나서서 막아주고 해야 하는거야. 그러니까 친구인거지. "
옛날에는 한 명 잡고 이런 거 써주고 했는데 솔직히 시간 지날수록 누구 편애처럼 보여서 연성권으로만 해주고 있었거든. 그게 마음이 좀 걸리더라고. 일찍 왔으면 나도 연성 대상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레스주도 있지 않을까. 걱정이 들었었어. 그래서 이건 선물. 다들 즐겁게 봐주면 좋겠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