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여기저기가 찣겨나갈 듯이 아프다. 심장이 미칠듯이 뛰고 있다. 혈액이 끓어오르는 기분이다.
스스로가 무엇을 했는지. 스스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그 것조차도 잘 모르겠다.
다만 그가 미소짓고 엄지 손가락을 올렸을 때. 적어도 나는, 똑같이 되돌려주고 싶었다. 따라서 얼굴엔 활짝 미소를 걸치고, 떨리는 손으로 엄지를 치켜 올렸다.
"강윤씨도요. 고마워요. 덕분에 좋은 경험 했어요."
정말이지 말이야.
#기대되는 정산시간!!!
별들이 스러지고 먹구름이 몰려듭니다. 춘심이는 확신에 찬 진화의 옆얼굴을 보고, 그의 등 뒤에서 느리게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가지 마. 하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이대로 손을 놓으면 소중한 것을 영영 잃어버릴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그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습니다. 만약 그가 죽거나 크게 다치기라도 한다면 평생을 후회하고 스스로를 원망할지 모릅니다. 춘심이는 진화의 어깨너머로 고전하고 있는 강윤이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그의 강함의 깊이를 알지도 못하면서 과신했던 자신이었기에, 힘이 다해가는 제 친구의 모습은 더더욱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면서도 누구에게 힘을 보탤지를 끝끝내 고민하고 망설입니다. 일벌백계를 수리한 것도 자신이고, 그 보답으로 게이트에 데려와 달라고 한 것도 자신입니다. 그리고 저 문을 열고 이리 들어오자고 한 것도 자신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자신이 선택해온 길의 막바지에 들어서서야 선택을 고민합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강윤이에게 힘을 보탰더라면, 모두가 다치지 않고 이 싸움을 빨리 끝낼 수 있었을까요.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후회라는 것을 잘 알지만 끈적하게 들러붙는 미련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등 뒤에서 끌어안은 손에 진화의 박동이 느껴집니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어렴풋이 알아갔던 것처럼, 그의 신념이 전해집니다. 그래. 네가 꼭 가야만 하겠다면 너를 놓아줄게. 대신, 꼭 살아서 돌아와야 해. 내가 부족해서 미안해. 도움이 되지 못해서, 지킴 받기만 해서 미안해. 바보처럼 망설여서, 널 믿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지금이라도 가서 강윤이를 도와줘. 내 친구를 구해줘. 방패야, 방패야 내 사람을 지켜줘. 부탁이야.
마음을 굳게 다잡은 것이 무색하게도, 춘심이는 곧 바닥에 털썩 주저앉습니다. 그만. 그만. 제발 그만둬요. 할아버지,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강윤이를, 진화를 만난 이후로 한 번도 울어본 적 없는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집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지나치게 현실감이 없습니다. 세상이 느리고 느리고 느리게 보입니다. 만신창이가 된 진화가 여전히 서있고, 무수히 쇄도하던 번개가 멈추었고, 그리고... 진화가 제 품에 들어옵니다. 곧 세상이 점멸했고, 거대한 광풍이 한차례 휘몰아칩니다. 이곳에 강윤이와 진화와 저만을 남겨두고 다른 모든 것을 흔적도 없이 지워버립니다. 제 친구가 지팡이처럼 검을 짚고서 새빨간 피를 토해내는 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보던 춘심이는, 그의 미소를 눈에 담고 나서야 정신을 붙잡습니다. 그리고 제 품에 안긴 진화를 끌어안고 맥부터 짚어봅니다. 콩, 콩. 죽지 않았니. 살아있어. 그리고 다시는 놓지 않을 것처럼 진화를 품에 끌어안으며 저 앞에 선 강윤이를 올려다봅니다. "이 바보들아..." 고맙다는 말보다, 미안하다는 말보다 원망하는 말이 가장 먼저 튀어나옵니다. 정작 바보는 저 자신뿐이었지만요. 춘심이는 울면서 웃었습니다. 기쁘게 울었습니다. 그들 앞에서는 처음으로 환하게 웃었고,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너네 죽는 줄 알았잖아..." 비 갠 뒤의 하늘처럼 맑고 서늘하고 촉촉한 목소리였습니다.
" ..... 저런 모습으로 혼자 내버려두지 않기 위해 뛰어든거니까요. " " 흔들리지 않아요. 저런 모습에. " " 그리고 아직 제가 있으니까, 에릭은 죽지 않아요. "
하루는 몸을 추스리며 두손을 가슴팍에 모읍니다. 하늘에 있을 신을 향해, 자신을 바치려는 것처럼 하루는 새하얀 빛을 뿜어냅니다.
자신이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 오오, 주여. 제게 적의 날카로운 창을 막아내는 위대한 전사에게 대지를 굳건히 디딜 수 있는 힘을 주도록 당신의 은혜를 내려주소서. " " 부족한 당신의 종이, 이렇게나마 당신께 제 마음을 담아 청하노니. " " 부디 같은 하늘 아래 당신의 종들이 구원을 찾을 수 있도록 당신의 빛을 내려주소서. "
하루는 천천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기도를 올렸고, 그 기도가 만들어낸 빛이 에릭을 향해 비춰질 수 있도록 했습니다.
# 의념기 " 신의 축복 "을 사용해 에릭의 부상을 치료합니다.
- 지훈
그는 파괴되는 엘로앙의 부위를 보았다.
그것은 자신이 한 일이었으며, 에릭과 하루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잠시동안 단 한번의 '베기'에 몰입하던 그는 에릭과 하루를 살짝 바라보았다.
나는 너희들이 있기에 온전히 칼을 휘두르는 것에 집중할 수 있었다. 즉, 함께였기에 할 수 있었다. 그는 순간이지만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고는, 엘로앙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엘로앙이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는지, 그는 모른다. 엘로앙이 어떤 한을 가지고 있기에 그가 계속해서 창을 휘두르는지, 그는 모른다. 엘로앙이 대체 어떤 이였는지, 어떤 영웅이였는지, 어떤, 어떤, 어떤.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
하물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검 하나에 대한 것조차 모르는 그가 그것들을 어찌 알 수 있었을까.
단지 지훈은, 온갖 잡념을 버리고, 그가 해야 할 일을 하고있었다.
영웅의 등 뒤를 지켜보고 그를 보조해주는 일을.
#의념발화 - 검을 사용해서 검을 강화하고, 하루와 에릭이 행동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것에 전념합니다
- 에릭
엘로앙이 휘두른 화염이 잠잠해지지만, 그는 여전히 서 있었다. 자신에게 덧없이 소중하고, 반드시 지키겠노라 맹세한 단 한 사람만을 위한 의념기가 발동되면서, 몰락한 왕국의 긍지를 머금은 마지막 화염을 버텨냈다.
입에서 하얀 연기를 뿜어내며, 폐에 들어찬 열기탓에 고통스러움에도 그는 애병, 부러졌었던 의지를 다시 한번 고쳐잡았다.
더 이상 사상이니 대의니 하는 것의 속박에서 벗어난 그는 한 발자국 앞으로 내밀었다.
[Project]
" 당신은 강해. 당신이 지켰던 왕국도 강했을거야. "
또 다시 한걸음. 서서히 들어올린 프룬에서 검붉은 빛이 번쩍거린다
[Destroyer]
" 당신은 의무를 다했어, 그러니 당신과 비슷한 의무를 지닌 우리가 당신을 해방시켜줄게. "
그리고 마지막 한걸음을 내밀며, 그는 천천히 검을 내려찍었다.
" 당신과 당신이 지켰던 모든 것에 경의를 표한다. 이제 의무를 내려놓고 편히 눈을 감아라...엘로앙...!! "
[Install]
에릭은 엘로앙에서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다. 어쩌면 흐트러져서, 계속 헛된 망상에 사로잡혀서, 계속 질투하게 되어서 망가졌을 자신. 하지만 그런 자신 보다도 엘로앙은 긍지높았다. 죽었음에도 그의 눈과 창술에는 의지가 담겨져있었다. 그렇기에 당신에게 경의를 표한다.
부원들이 찾는다는데, 계속해서 연락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은후는 대신 가디언 칩에서 아버지의 연락처를 찾아 메시지를 보내었다.
[아버지, 며칠 전에는 집에 잘 들어가셨나요? 교무실에서 뵙게 될 줄은 몰라서 놀란 마음에 제대로 된 인사도 드리지 못하고 나온 아들을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아무런 언질 없이 학교에 찾아오셨다니, 필시 학생인 저에겐 말할 수 없는 긴급한 용무가 있으셨겠죠. 다음번에는 부자끼리 따로 오붓한 시간을 가질 수 있길 빕니다.]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혹시 어릴 적에 왜 제가 사격을 배우지 않겠다고 말했는지 기억나시나요? 저는 기억난답니다. '아빠보다 누나가 더 멋지니까 사격은 안 배워!' 하고… 누나에 대한 걸 저에게 알려주지 않으신 건, 새로운 곳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절 걱정하셔서겠죠? 배려에 감사드려요. 앞으로는 아버지의 사랑에 보답하는 아들이 될게요. -사랑하는 은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