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1 살에 온기가 닿습니다. 지독하리만치 뜨거운 온도입니다. 진화는 방패를 쥔 채로 춘심을 끌어안고, 자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따금 공격의 파편이 흩어져 닿을 때마다, 폭발하고 찢어지는 번개에 맞서 진화의 팔은 수없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념기를 사용하기 위해선 방패를 내려야만 합니다. 영웅의 등장은 언제나 극적이여야 하기에, 당당히 일어나야만 하기에. 부동일태세를 사용한 중에 의념기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진화는 방패를 더 꾹 쥐여잡습니다.
춘심은, 고개를 살짝 들어올립니다.
이게 싸움이라는 걸까요? 지금까지 자신이 해왔던, 경험했던 의뢰들에는 이런 것이 없었습니다.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되었고, 위험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솔직한 마음으로 얕보았던 것이 맞습니다. 지금 이 상황에도 춘심은 스스로 저울질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확실한 승리를 위해선 윤을 강화해주는 것이 맞았고, 살기 위해선 진화를 강화하는 것이 맞았습니다.
망설임. 그 짧은 순간의 망설임이 스치기 시작하자, 춘심의 마음은 무거워만 갑니다. 만약 자신의 선택이 전투의 명운을 가른다면? 만약에라도 윤이 버티지 못하고 무너진다면? 그럼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혼란이 드러나는 표정. 진화는 춘심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표정 하나하나를 살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두려운 것은 너도, 나도 같았던 것입니다. 강대한 힘에 겁먹은 채 움츠러들어.. 가만히 지켜보는 것만이.. 지켜보는 것만이.. 우리가 해야하는 일일까요?
유성우 둘.
강윤은 일벌백계를 강하게 끌어당깁니다. 순식간에 별을 붙들은 검은 다섯 갈래로 흩어져 대사제를 향합니다. 노구의 몸에 부딪혀 별들이 녹아내리고, 그 틈을 노려 윤은 대사제의 몸에 검을 찔러넣습니다. 그러나 대사제는 자신을 찌른 검에 손을 올린 채. 웃음을 짓습니다.
쿠르릉.......
먹구름이 몰려듭니다.
콰광! 콰과광! 콰르르릉...
수 많은 번개가 지상에 쇄도하고 그 고통에도 윤은 검을 놓지 않고 버팁니다. 한 걸음. 발걸음을 내민 상태에서, 몸을 밀어넣어 검을 젖혀올리고 그대로 힘을 줘, 상대를 밀쳐버립니다. 가볍게 밀쳐진 상대는 허공에 뜬 채로 천천히, 멈춰섭니다. 여전히 지독할 만큼 상대는 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 이방인이여.
대사제는 그 눈으로 윤을 바라보며 말합니다.
- 충분히 용감했다.
그 말에도 윤은 다시금 자세를 잡습니다.
" .. 알아요. "
속삭이듯. 웅얼이는 목소리.
" 안다고요. 어르신. "
윤은 다시금 유성우의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 약자를 두고 물러나는 것은, 군자에 어울리지 않는다. "
웃고 있습니다.
" 그 말. 아직 안 잊었다고 했잖아요. "
일벌백계는, 선명한 녹빛의 강기를 뿜어냅니다. 윤은 그 상태에서 검기를 털어내고, 몸으로 검을 끌어당깁니다. 의념이 요동치기 시작하고, 거대한 의념의 흐름이 윤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두근,
진화는 자신의 심장에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자극을 느낍니다.
두근, 두근, 두근,
꼭 끌어안고 있던 팔을 놓은 채. 진화는 부동일태세를 풉니다. 춘심은 진화를 바라봅니다. 어째서? 라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진화는 어느 순간보다 확신에 찬 얼굴로 앞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춘심은 말 대신 뒤에서, 진화를 끌어안습니다.
미안해.
부족해서 미안해. 도움이 되지 못해서 미안해. 지킴만 받아서 미안해. 널 희생하게 해서 미안해. 그, 수많은,
'미안함'을 담아.
의념기
춘심은 진화의 방패를 벼려냅니다.
벼림.
뜨거운 불길이 무기에 깃들고 진화는 앞을 바라봅니다. 미쳐버린 걸까요? 아니면 맛이 가버리기라도 한걸까요? 왜 저 곳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까요? 그런 것은 상관 없습니다. 단지 그래야 한다고 느꼈을 뿐입니다. 지킴받는 것은, 뒤에 물러나는 것은 지겹습니다. 단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만큼은 강한 척. 해보고 싶으니까요.
의념기
그렇기에 진화는 어울리지 않는 영웅의 모습을 입습니다. 찬란한 갑옷이, 의념이, 그 자체가 증거가 되어 진화의 몸을 끌어안습니다. 온 몸이 무겁습니다. 짓누르는 것은, 영웅이 응당 쥐여야만 하는 무게일 것입니다. 고개를 돌린 채. 진화는 춘심을 바라봅니다.
그래도 나는 영웅을 꿈꾼다.
다녀올게.
진화는 뜁니다. 그 무게를 감당한 채. 강윤을 바라봅니다. 솔직히.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외모도, 실력도, 강함도, 저 먼 곳에서 자신을 바라보고만 있는 것 같으니까요. 영웅이라는 이름은 이 소년에게 어울리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까지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러면 어떻습니까. 지금 진화의 뒤에는, 진화의 승리를 바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보다 진화를 사랑하는, 어느 소녀가 바라보고 있습니다.
대사제의 몸에서부터 수 갈래의 번개가 날아옵니다. 갑옷을 두드리고, 방패를 두드리고, 수 많은 번개 줄기가 진화의 온 몸을 두드립니다. 그 거대한 갑옷에도 곧, 균열이 생겨나 진화의 몸을 꿰뚫기까지 합니다. 어깨에 커다란 관통상이 생겼음에도 진화는 물러나지 않습니다.
콰릉!
그 번개가, 진화의 심장을 꿰뚫습니다. 하지만, 진화는 그 자리에 굳건히 선 채 대사제를 바라봅니다.
더 해봐라.
진화는 그리 말하고 있습니다.
날 짓밟고, 녹여내고, 완전히 소멸시키지 않는 한!!!
진화의 두 눈은, 흉흉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 .. 허.
대사제는 웃습니다.
- 그렇군. 그런 것이었군.
그 웃음에는 참으로 많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 하하.. 하하하!!! 신도 무심하시군. 이 벨토가테우스가.. 이 곳에서 죽어야 한다던 이유가..
그리고, 수많은 낙뢰를 견딘 뒤. 조금의 발걸음만 내딛는다면 곧 쓰러질 것 같은 몸을 견딘 채. 진화는 여전히, 방패를 쥐고 있습니다.
윤은 천천히 걸어나옵니다. 진화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꽤 거칠게 진화를 밀어 던집니다. 그 몸은 가볍게 날아가, 춘심에게 향합니다.
의념기
" 고맙다. "
윤은 흉흉한 얼굴로 말합니다.
" 덕분에 시간을 벌 수 있었다. "
거대한 빛. 그 빛이 깜빡인 직후.
베레트라그나의 바람
거대한 광풍이 몰아칩니다. 대사제의 온 몸을 찢어버리고, 낙뢰마저도 흩어버린 바람은. 곧.. 모든 바람이 지난 직후에나 멈추어버립니다.
윤은 땅에 검을 박습니다. 곧, 입에서 선명한 토혈이 토해져나옵니다. 그 피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진화를 바라봅니다.
그 눈은, 혹시라도 자신의 전투에 끼어들었다 욕하려 한 것일까요? 눈빛을 받아낸 진화와 춘심이 움찔이지만, 윤은 검집에 검을 집어넣고 둘을 바라봅니다.
" 뭐야. 다들 잘 하잖아? "
그렇게 웃어버리며 진화를 바라보고 엄지를 추켜세워줍니다.
" 잘 했어. 덕분에 쉽게 이겼다. "
파티장의 선언으로 정산하실 수 있습니다! 정산이 완료되는 즉시 파티는 게이트에서 이탈합니다!
>>226 제일 먼저 든 생각: 회전 회오리…… 두 번째로 든 생각: 타다끼…… 육회…… 세 번째로 든 생각: ‘돌아가는’ 것만으로는 치유할 수 없는 것을 생성해내는 生 정도가 아닐까? 퇴행에서 창조로 나아간다는 면에서 영웅각성 정도의 뽕맛을 들이붓는다면 가능성이 존재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