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0 결국 어쩔 수 없이 안전과, 서로간의 감정이 상할 수 있는 일인만큼 대련은 서로가 정해두지 않는 이상 랜덤매칭을 찾는 짓 같은 것은 하지 않습니다.
동아리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392 생각이 여전히 꼬여갑니다. 머리가 아파옵니다. 그저 그런 생각들, 경험들, 그런 것들을 녹여내며 지훈은 기억을 더듬습니다. 그것들은 미련입니다. 그것들은 추억입니다. 그것들은 생각입니다. 그것들은 경험입니다. 그 모든 것들이 모이고 모여 지훈을 만들었고, 지훈을 이루었고, 지훈을 빚어가고 있습니다. 지훈은 강한 사람이 아닙니다. 가디언 후보생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급격한 성장을 겪었지만, 여전히 기술의 성장은 더디고, 나아가는 길은 무겁기만 합니다. 결국 그 과정에서 나는 가치가 없지 않은가? 나는 필요 없는 사람이 아닐까? 나는, 나는, 나는,
수많은 '나'에 집어삼켜진 지훈의 결과는 스스로를 과하게 신뢰하는 결과를 낳았고, 흔들리는 정신 상태를 경험했습니다. 개중에는 친구들을 베어버리고, 그 사이에서 웃는 환상을 보기도 했습니다.
문득 손을 뻗어봅니다. 닿는 바람이 이제는 점점 미지근해지고 있습니다. 차갑던 이월의 바람은, 봄이 다가오는 삼월의 바람으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지훈은 기억을 떠올립니다. 그들과의 추억을, 이야기를, 생각을.
...
무작정 달렸다. 너무나도 먼 거리였다. 닿을 수 없을 만큼 먼 곳에서 네 목소리가, 네 숨소리가 들려왔다. 참으로 기구한 목소리였다. 아무런 미련도 남기지 않고, 대신 웃음을 짓고 있었다. 하하, 하고 내뱉는 웃음 소리는 이제는 내 귓가에 남아 나를 괴롭혔다.
" 후회하냐고? "
그만. 그렇게 소리를 질렀지만 닿지 않았다. 그는 웃고 있었다. 그 너털웃음이 바람을 타고 흘러와 나에게까지 전해졌다. 그 녀석은 발길질에 내장이 터지고, 피를 토해내면서도 웃었다. 고통보다도, 단지 나 하나를 보냈다는 것이면 충분하다는 듯 말이다. 나는 목청이 터지도록 소리를 질렀다. 이깟 충만감, 이깟 힘, 이깟 것들. 이깟 것들을 버려서라도 널 구할 수 있더라면 능히 그렇게 해낼 것을. 너는 그리도 간단히 포기한단 말이 나왔는지.
" 후회할 만한 것이었을까? "
너는 그 상황에서도 나에게 하듯 장난을 내뱉었다. 목을 내려베기 전, 그 목소리들이 야속했지만 나는 더 바보같게도 네 그 말들이 이어지길 기다렸다. 조금 더 이어져 내가 그곳에 닿는다면. 적어도 나는 살아남고 너만은 죽어 사라지진 않을테니까.
" 어차피 후회할 것이라면 그 후회. 이만 놓으련다. 몇 번이고, 되뇌여봤는데 그걸 후회라고 한다면 애초에 후회란 것은 그만큼 부질없는 것이겠지. 난 이걸 후회라고 하지 않아. 의무라고 생각한다. "
너는 그 바보같은 웃음을 지으며 말할 것이다.
" 그 녀석의 후회도, 내 후회마저도 짊은 채로 난 내 의무를 다할 뿐이야. 사람이니까. 적어도 영웅을 꿈꿨던 사람이니까. 영웅답게 떠날 뿐이다. "
그리고 다시금 말하겠지.
" 비굴해지지 마라. 이 찰나를 소중히 여기되, 잠식되면 안 되니까. 오늘의 너에게. 내일의 내가 없다 하더라도. 내일의 너를 이어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
모레에 만나자.
...
기억. 그 기억. 피로, 시체로, 죽음으로 얼룩진 그 기억과 검. 베어내고자 하는 욕망. 그런 것들을 묻어두고 지훈은 잠시 생각을 가다듬습니다.
모레는 언제일까요. 그 순간은 언제쯤 와서, 내가 알 수 있게 할까요. 여전히 지훈은, 그가 없는 내일과 내가 살아가는 내일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웃습니다. 이제야 떠오른 것이 야속하고, 이렇게 안 것이 야속하고, 어째서 내가 친구를 지키고자 했는지 떠올렸고, 이제야 안 것이니까요.
당황하면서 부정하려다가 문득 억울함을 느꼈다. 애초에 내가 언제 시켰다고........ 그렇게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자니, 끝에서 부드러운 감촉이 스치고, 코에선 달콤한 향기가 풍겼다.
"........"
놀란눈으로 그녀를 마주 바라보고 있자니, 그녀는 마치 부끄러운듯 내게서 시선을 떨어트렸다. 다른 의미로 머리를 망치로 맞은 기분이다. 아. 그런거구나. 별로 복잡하게 생각할게 없었다. 그래, 어쩌면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았던 걸지도 모른다.
나는 떨어트린 네 턱을 부드럽게 손으로 짚어, 살짝이지만 위로 들어 올렸다. 그리곤 그 입술이 열려 무언가 말하기전에, 그대로 내 것을 겹쳤다. 무언가 특별히 능숙한 기술 같은 것은 없고, 그렇게 끈적하거나 색이 가득한 입맞춤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입술은 분명히 연결되어, 그걸 통로로 무언가의 따뜻한 감정을 전달했다.
"잘 알았어."
아주 잘 알았다. '이제부턴 내가 할게' 같은 말은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그런건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이는게 낫다. 따라서 나는 그저 미소짓는 것이다. 다행히도 이번 미소는, 그리 어색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