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치만. 반짝이 아가씨도 좋아하잖아?" 조금 심한 짓이라던가. 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조금 불량한 편에 속하는 이였습니다. 학교 내에서는 크게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래도 헌팅인 만큼 조금 과장된 게 있습니다. 사실 술의 힘이 매우×nn 컸겠지만요. 쟤네들 깨고 나면 이불을 차야 하는 게 늘어났겠지.
"응? 손목 잡아채인다거나." "보니까 옅긴 한데. 목에 자국도 있구.. 어? 우리랑 좀 놀자구.. 어차피 결혼 가능 나이 넘었을 거 아냐." 손목을 꽉 잡으면 의념을 쓴 모양인지 옅은 신음소리가 날 정도로 상당히 셉니다. 의념을 사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확 잡아채여서 멍 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도부 신고를 할까 했는데. 하필 잡아채인 손이 가디언칩이 있는 손입니다.
"..." 일단 디버프는 해두려고 의념을 발휘하려 합니다만. 사실 조금 두렵습니다. 그냥 따라가주면 될지도.. 같은 고민이 떠오른 얼굴로 다림은 유흥가의 어지러운 뒷골목에 있었습니다. 그걸 선우가 발견한다면..?
세상을 주홍빛으로 물들이던 태양의 노을빛도 서쪽으로 넘어가고. 새침하게 은은한 빛을 뿌리는 달이 기지개를 피고. 숨어있던 별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저마다의 아름다운 별빛을 뽐내고. 달빛별빛보다도 빛나는 네온사인들과 과장된 웃음소리, 사람들의 귀를 아프게 만드는 근본없는 스피커 소리와 너무 많이 뒤섞여 어떤 음식인지 음료인지 냄새를 구분할 수 없는 연기들이 밤거리를 채울 때. 술취한 사람들과 지친 얼굴로 집에 돌아가는 가방을 멘 학생들과 어깨가 축 쳐진 직장인 사이를 거니는.
한 소년이 있었다.
"눈누누누눈! 눈누누누누눈눈!"
정체를 알 수 없는 멜로디를 흥얼거리면서 사탕을 쪽쪽 빨며 걸어가던 차선우의 눈에 우연치 않게 한 가게 앞이 눈에 띄였다. 싸구려 파라솔과 싸구려 플라스틱 의자들이 즐비하고, 싼 계란말이와 싸구려 웃음을 안주로 한 술자리들.
그 곳에서 홀로 은은히 빛나는 물빛 머리카락. 저번에 봤던 기다림이라는 사람이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어떤 남자에게 손목을 잡힌 채였다.
다림은 선우를 보고는(물론 삐딱해도 잘생기면 괜찮은 것입니다. 라는 감상은 있군요) 고민하다가. 그래도 폐를 끼치기엔 좀 그렇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쩔 수 없네요." 그렇게 쓰고 싶지는 않았지만요. 우리 아군님. 이라고 혀로 입술을 한 번 핥고 눈빛이 죽음과 동시에 간드러지는 목소리와 함께 의념기에서 빌어먹을 확률의 1을 뽑아서 아군의 상태 최악화를 시전해주는 다림입니다. 거기에 바로 적으로 설정해서 디버프도 아낌없이 꼼꼼히 끼얹어주다니.
그리고서야 총총걸음으로 손을 빼낸 뒤 선우에게 걸어오고는 그들을 돌아봅니아.
"못생긴 친구들이라 하기엔 그렇지만." 잘생기신 분을 보는 게 제 정신건강에 더 좋은 건 어쩔 수 없는걸요? 라고 웃습니다. 언젠간 풀리니까 그동안 잡혀가거나. 그로기 상태에 놓이겠지.
"반가워요 선우 씨." 묘하게 홍조가 도는 얼굴로 부드럽게 웃으며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오셨을까요? 라고 물어봅니다. 손을 내미려 하다가 멈칫하는 건 약간 멍들은 것 때문이겠죠.
"기분이 나쁠 때가 있나요?" "저는 언제나 비슷한걸요." 라고 말하는 표정이 의문을 담은 표정입니다. 헌팅도 곤란하다였지 기분이 나쁜 건 아니었을지도. 사과맛 사탕이 쥐어지자 누군가에게 사탕을 받는 건 드문 일이었는데... 라고 생각하면서 받아들지만 금방 다른 쪽 손으로 넘기려 합니다. 쿡쿡 찌르듯 아픈 걸 무시하면 되지만. 그냥 놔두는 것도 좋잖아요?
"좋아요." 온갖 디버프 때문에 급발진하고 싶어도 못하겠지만. 미는 것에 호응해서 벗어나려 합니다. 참고로 오늘 오프숄더 입고 있긴 하지만 뭐 어때요. 어색하게 웃는 것에 그럼 가요. 라면서 조금 벗어나나요? 근데 여기는.. 어디지. 영화관 쪽인가.
차선우는 기다림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기분은...원래 아침에 나쁘고, 아침 먹고 좋아지고, 수업 듣고 나빠지고, 점심 먹고 좋아지고, 수업 듣고 나빠지고, 끝날 때 좋아지는...약간 분 단위로 변화하는 탄력적인 무언가가 아니었던가? 기분이 항상 비슷할 수가 있다니. 매우 놀라운 일이다.
차선우와 기다림은 그렇게 시끄럽고 불결하고, 그래도 웃음만은 넘치던 유흥가의 뒷골목에서 벗어났다. 앞에는 큰 빌딩들이 수문장처럼 서있었고, 유명한 영화관 브랜드의 네온사인 간판이 보인다.
그 옆에 펼쳐져있는 깔끔한 인조공원. 약간의 잔디와 벤치, 그리고 그렇게 썩 밝아보이지는 않는 가로등. 흙이 아닌 돌로 만들어진 타일 인도와 바닥들이 터줏대감인 공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