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득 하늘을 보았을 때 그 생각을 했었지. " " 언제고 저 하늘을 볼 수 있을까. 그 전에 누군가를 잃진 않을까. 아니면, 나는 그만큼 부족한 사람이니까. 그들에게 방해가 되진 않을까. " " 웃기게도 난 두려워하고 있더군. 나라는 인간은 사실 별 것 없는 껍데기란 사실을 들키진 않을까 해서 말야. " " 그런데 그런 껍데기마저 사랑해줄 사람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어. " " 내 이름은 이진석. 적룡제의 정당한 후계자이자 신 한국의 국방차관보이다. 지금부터 변명도, 대답도 허락하지 않겠다. 오직 내가 허락한 것만이 이 자리에 남을 것이다. " - 폭룡왕 이진석, 게이트 '재앙악면'에서 각성하며
>>116 "플러팅..." 그러니까, 대충 유혹하는 행위라던가? 동성 간에는 어떻게 해야할지. 지훈에게 다가가서 망설이던 나이젤은 이내 지훈을 끌어안았다. 뜨거운 뺨에 술을 안 마셔서 정상체온인 지훈의 살이 닿도록. ...어라? "...지훈 씨, 체온이 차갑네요. 계속 안고 있어도 될까요." 일부로 건강을 강화하지 않은 채 한 병 이상 술을 비워 어질어질함이 올라오는 머리로 떠올린 생각, 필터링을 거치지 않은 말이 새어나왔다. "...아니지, 플러팅을 해야 하던가요." 나이젤은 열이 옮겨간 살을 피해 시원한 쪽에 붙으려고 부비적대며 눈을 반쯤 떴다. 아까전의 애교와 비슷한 느낌? 그걸 다시 하는 건 좀... 생각은 길게 이어졌다. 생각하던 걸로 왕게임 끝나고 짤막하게쓴것. 플러팅해보란 거 걸렸으면 이런게 나왔을것... 물론 본인한텐 플러팅이 아니엇기 때문에 잘 몰라서 억지애교 부리고 수치심에 떠는 내용이 뒤에 있었겠지만 더 애교가 생각나지 않아서 그만뒀어요...
자연스럽게 치대기는 어떻게 하면 좋은거지? (대충 유치원생들이 하는 애정표현같은 쑥맥의 얕은 신체접촉들이 머리를 스쳤다 사라지는 자료화면) 난 글렀어... 만약 지훈이랑 손을 잡을 수 있다면 다음은 과감하게 포옹을 시도해볼거야... 물론 난 손을 잡는것조차 불가능 할거같지만...
눈을 감아 이 온기를 생각하면, 그냥 평범하게 행복한 꿈을 꾸고 있다고, 잠시 동안 자기자신을 속이는 게 가능했다.
원래부터 악몽이었는데.
...
..........
익숙한 붉은 색의 세상이 무너진다.
"........................................아."
그리고 함께 무너져내리는 하루의 몸에, 카사는 작은 탄식 밖에 내뱉지 못했다. 그 차가워지는 몸을 끌어안지도, 다독이지도 못한채 굳어버린다. 차가운 물에 적신 듯한 느낌이다. 무의식이 만들어낸 허상이 의미없는 말을 속삭인다.
아.
카사는 잊고 있었다.
카사가 사는 세상이 어떤 식의 세상인지.
무거워지는 온기. 사라지는 온기. 뺨에 부드럽게 닿는 온기.
순간적으로 밀쳐버린다.
온 힘을 다해 밀쳐버려 몸에서 떨어트린 하루. 하루인 것. 하루였던 것. 그 둘을 나누는 경계선의 하루를 내려다 본다. 과거의 편린을 재조립하는 뿐인 꿈이니까, 이거 모두 자신의 무의식에서 나온 것이 틀림없다. 심장의 두근거림에 따라 울컥 울컥 흘러나오는 피라던지, 굳어가는 자국 위에 퍼지는 붉은 색이라던지. 미소를 지으면서 죽는 괴상한 생물체는 듣도 본적도 없지만, 어떻게든 보고 기억했던 적이 있는 모양이다. 이렇게 생생하게 재현하는 것을 보면.
카사는 체념에 대해 생각한다.
"....안녕. 고마웠어."
차갑게 느껴질수도 있는 굳은 얼굴. 그것이 아마 하루가 보았던 마지막일까? 카사는 그렇게 거짓 하루에게 작별인사를 고했다. 감사인사는 마땅했다. 이 환상 덕분에 현실을 기억했다.
현실이란 이런 것이다. 카사의 품이 피에 젖어, 죽어가는 피투성이의 '였던 것'의 시체를 지켜보는.
평화로운 듯한 삶에 취해 버려, 잠시 그 달콤함에 치뤄야 할 대가를 잊고 있었다. 원래 카사가 사는 세상이란 이런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는 몰라도,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그 모든 사람과 카사의 치명적인 차이점 중 하나. 카사는 생각했다. 아, 역시 나는 오만했던게 아닐까. 겨우 모았던 용기가 흔들린다.
카사는 무너지는 '하루'에게서 미련없이 등을 돌린다.
삐빅, 손목에서 들려오는 메세지. 질끈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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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뜬다.
서늘한 밤 공기에 귀뚜라미 소리가 울려퍼진다. 흐암, 하고 기지개를 펴며 지뿌뚱한 관절을 푸는 카사. ..어쩌다가 쓰레기더미위에서 자게 되었는 지는 기억 안나는 데....
포기한 얼굴로 다시 힘을 빼 하늘을 바라보는 카사. 멍, 하니 별 아래로 지나가는 구름을 구경한다. 피로 절여진 희미한 미소. 자신의 무의식이 만들어 낸 광경이라 하지만, 이것은 너무 했다. 도를 넘었다. 드는 불쾌한 감각에 까득, 이를 간다. 손으로 마른 얼굴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리게 된다. 손바닥 하나에 시야가 완벽히 가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