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강찬혁입니다. 오랜만입니다. 제가 요새 안 보였다고 느끼신다면 착각이 아닙니다. 실제로 요즘 일이 바빠서 못 들어왔고, 다른 분들의 턴손실까지 걸린 진행에도 늦게 참가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오랜만에 뵙는 여러분들이 정말로 반갑지만, 동시에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해드리게 되어 정말로 죄송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면, 당분간 영웅서가 어장에는 발을 들이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곳에 상세히 밝히기는 힘든 일신상의 사유로 다른 일에 전념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개인행동을 하고 있다면 캡틴의 양해를 구하고 동결하면 되겠지만, 아시다시피 저는 다른 분들과 함께 게이트를 뛰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제가 일방적으로 동결을 선언하면 다른 두 분께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상황이 되니만큼, 현재 진행중인 게이트 의뢰가 끝날 때까지는 텀이 조금 늦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진행에 참가하겠다고 약속하겠습니다.
매체에서 보여주는 것과 반대로 검이라는 물건은 쉽게 들 수 없는 무거운 물건이었다. 우연히 중학교, 그것도 검도부에 몰린 후안은 딱히 의욕을 가질 수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고아로 몰려, 쫓기듯이 단칸방에서 살기 시작했는데 그 좁은 공간에서 꿈을 꿀 수나 있었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어린 후안은 똑똑했다. 그 사실이 유안의 자랑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동생에게 꿈을 빼앗았다는 생각에 유안을 짓누르기도 했었다. 후안은 벽에 앉아 지긋이 앞을 바라봤다. 호구를 끼고 서로 대련을 나누는 학생들의 모습을 후안은 지겨운 시선으로 지켜봤다. 똑같았다. 서로 머리를 노리거나 몸을 노리지만 정작 조금의 변화도 없다. 그렇기에 서로 같은 검로를 공유하고, 서로 같은 길을 가지기 때문에 서로를 너무나도 잘 알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거기서 조금 다른 검로를 가지더라도 좋으면 천재, 나쁘면 바보 취급을 받아 어깨가 든든히 올라가는 것이다.
" 좋아! 다시 한 번! "
좋기는. 후안은 마음속으로 그리 뇌까렸다. 어디서 은퇴하여 중학교에 교사로 채용된 헌터 선생은 참 의욕적으로도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 있는 사람 중, 단 하나라도 가디언이 된다면 그걸 명목으로 더 좋은 학원이나, 운 좋게는 사립 학교에 들어갈 수 있을지 기대하는 거다. 그런 모습이니 애들에겐 작은 부분에선 칭찬을 하고, 큰 단점을 억지로 숨기려고 하거나 교묘히 숨기니 애들 수준에선 알아차리고 싶어도 알아차릴 수가 없는 셈이었다. 지루하다. 그냥 어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작은 안식처, 후안이 집에 대해 가지는 생각이었다. 최소한 집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티비를 보고, 누나와 밥을 먹고, 학교의 숙제나 발로 끼적거리면서 끝내면 됐으니까. 그 당연한 행동에서 후안은 안도감을 느꼈었다. 성적은 상위권이었고 거기서 조금 더 노력을 하여 일등을 한 적도 있었다. 그 날, 유난히 누나는 슬프게 울었다. 그 모습에 후안은 더 이상 공부에 진심을 가지지 않았다. 차라리 그렇게 망가진 후안에게도, 누나는 진심이었다.
" 후안. "
호구를 벗어던지며 자연스럽게 옆자리에 앉는 이 녀석은 재찬인가 하는 이름이 있었다. 저 선생의 눈빛이 내게 닿아서 날카로워지다가 이 녀석에게 닿으면 유난히 반짝거리는 것에서 볼 수 있듯, 이 녀석은 의념각성자였다. 그것도 조기 각성자. 꾸준히 성장 곡선을 그리고 성장하고 있는 녀석은 은퇴 헌터의 보험이었다. 그것도 터질 수밖에 없는 보험 말이다.
" 후안은 안 해도 괜찮아? "
그리고 후안은 이 녀석을 별로 맘에 들어하지 않았다. 의념 각성자로의 질투와, 시기야 후안 역시 겪어본 적 있었다. 물론 의념을 각성했으니까가 아니라, 후안의 머리에 질투를 느낀 녀석들이었다. 녀석은 옆구리에 차두었던 물병을 들고 마셨다.
" 안 해. " " 왜? " " 재미가 없으니까. "
그 말에 재찬은 웃기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10분 가까운 시간이 지나고 다시 선생은 애들을 불러 일으켰다. 후안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툭 말을 내뱉었다.
" 발을 뒤로 20센티미터 정도 당기고 어깨를 조금 더 넓게 펴. 검을 쥐는 자세를 고치고. "
그 말을 듣고 재찬은 방긋 미소를 지었다. 꽤 순수한 미소였다.
" 그래! "
후안은 호구를 차고 나가는 녀석을 보며 생각했다. 머리가 좋은 자신과는 다르게, 저 쪽은 말 그대로 재능을 타고난 경우였다. 이 작은 학교가 검도부를 유지하게 만드는 이유. 전국대회에서 꾸준히 입상하는 소년은 이 작은 시골 학교의 트로피 보관대에 이따금 새 트로피를 수급해주는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후안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선생을 바라보았다. 저 두 눈에선 후안을 쓸모없는 놈으로 보는 시선들로 가득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눈치를 보내자 후안은 그대로 가방을 들고 일어났다. 그대로 부실을 벗어나 학교를 벗어나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옮겼다. 검. 검을 보고 있으면 다양한 생각들이 스쳤다. 아쉽게도 후안은 머리의 재능만큼 몸의 재능을 받지는 못 했다. 상대적으로 작은 키와, 그에 따르는 짧은 팔. 약한 근력과 굼뜬 몸. 그런 것들이 소년의 꿈을 천천히 짓밟아갔다. 그래서 후안은 자신의 지능에 대고 그렇게 평가했다. 차라리 골고루 수재였더라면 나았을지도 몰랐을 것을, 어중간한 천재를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
" 축하드립니다. 의념 각성자입니다. "
환한 빛을 보았던 날, 소년은 그 이야기를 들었다. 열 여섯살 생일 때의 일이었다. 후안은 눈 앞의 검사관을 바라보았다. 별 감정은 없었다. 다만, 그 말을 들은 누나가 눈물을 터트리는 것만 빼면 말이다. 후안은 천천히 누나의 손을 잡고 물어봤다. 자신은 어떻게 해야 좋은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만 할지.
" 보통 의념 각성자라 하더라도 가디언이나 헌터 지망생이 아닌 이상은 의념 봉인 약물을 꾸준히 주입하고 일반인으로 살아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별로 추천하진 않아요. 의념을 봉인한단 거, 자신이 가지고 있던 무언가를 순식간에 잃는 느낌이 들곤 하거든요. " " 후안아.. 후안아.. 누나가 미안해.. "
지금까지 자신이 했던 행동들이 자기 동생의 재능을 억압하는 계기라도 됐다는 것 처럼, 누나는 펑펑 울었다. 얼마나 우는지 검사관이 주었던 휴지 하나가 통째로 사라질 때까지 울었다. 후안은 잠시 누나를 두고 바깥으로 나왔다. 텅 비어버린 건물 속 자연 공원. 나무 의자에 앉아 후안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참 푸르기만 했다. 날씨는 좋았다. 누구나 오늘이 최고의 날이 되어야만 했을 것이다. 이 일이 후안에게만 없었더라면 말이다. 후안은 자신의 각성 사실을 알았을 때, 깊은 분노를 토해냈다. 의념 각성자는 많은 이익이 있을 것 같지만, 또 단점도 많았다. 먼저 대학의 진학에서 일반 학생과는 다른 시험을 쳐야만 한다. 그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봉인 시술을 받지 않은 학생들은 게이트와 관련된 학과만 선택할 수 있었다. 후안의 꿈은 판사였다. 의념이 생기고, 각성자가 나타나고, 헌터와 가디언이 생기고, 빌런이 나타나고. 이런 세상에서도 결국 이들을 제약한 것은 강력한 힘과, 힘이 만들어낸 법의 힘이었다. 결국 후안은 최고가 되진 못하더라도, 자신의 아래에 수많은 사람을 두고자 했었다. 이젠 그 꿈도, 바람에 날리듯 사라졌지만 말이다. 긴 한숨을 내뱉으며 후안이 생각을 정리하던 중에 진한 담배 냄새가 지나갔다. 연기가 늘여 지나는 모습을 보며 후안은 그 쪽을 바라봤다. 그 자리에는 한 남자가 있었다. 명석한 것으론 뒤지지 않는 후안이었지만 이 남자에겐 부족할 것 같은, 그런 분위기의 브라운 코트를 보았다.
" 하나 물어볼까. "
그는 후안에게 질문을 꺼내었다.
" 가지던 꿈을 송두리채 버려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그리고 그 상황에 몰린 누군가는 소중한 가족을 위해 자신의 꿈이나 희망 같은 것을 포기했어. 그렇게 그 가족은 성장하여 소년이 되었지. 그런데 그 소년이 각성하여 그 소년의 꿈마저 잃었다고 했지. 그 상황이라면.. 너는 그 소녀에게 무어라 말할 생각이지? "
후안은 천천히 눈빛을 빛냈다. 천천히 웃음을 지었다. 그 흘러가는 웃음소리에 후안의 감정이 지나갔다. 미안함, 죽을 것 같은, 그 미안한 감정을 여실 없이 토해내는 후안을 바라보며 남자는 피워내던 담배를 비벼 끄고 말했다.
" 아마 네 머리면 대충은 이해했으리라고 생각한다. 인후안. " " 당신은 누구시죠? " " 너에게 새로운 기회를 줄 사람. "
그는 품을 뒤져 명함 하나를 꺼내어 집어 던졌다. 후안은 손을 뻗어 명함을 받았다. 명함에 적힌 이름과, 직책을 보고 후안은 웃었다.
" 글쌔요. "
후안은 다시 하늘로 눈을 돌렸다.
" 누나는 말하더라고요. 뻔뻔하고 이기적이여야 한다고요. 그런데 누나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나에게 투자하고 있었어요. 자신의 삶을 태우면서 내가 해달라는 것은 다 해주려고 했어요. 심지어 생일날, 붉게 물든 뺨으로 나에게 케이크 조각을 내밀며 생일을 축하한단 말을 들은 적도 있었어요. "
소년은 저 하늘이 미웠다.
" 그런 누나에게 미안하지만 난 솔직히 누나랑 있는 것만 해도 좋았어요. 누나랑 같이 시간을 보내고, 같이 티비나 보며 수다를 떨고, 시험 성적이 떨어졌다 걱정하는 누나에게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는 그 시시콜콜한 일상이요. "
소년은 누나를 아꼈다. 소중한 가족이니까. 그 말을 가만히 듣던 남자는 손가락을 들어올리고, 손가락으로 후안의 이마를 툭 쳤다. 따끔한 고통에 후안이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 거짓말 마. "
남자는 말했다.
" 네가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더라면 네 누나가 그리 울 일도 없었겠지. 당연해. 진흙더미 사이에 진주가 있으면 눈에 띄기 마련이거든. 그것도 커다란 진주가 있으면 말야. "
후안은 천천히 상대에게 눈을 맞췄다.
" 그럼. 당신은 해답을 알고 있겠죠? "
그 미야모토니까요. 하는 소년의 말에 미야모토 준은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 해답? 해답이라. 이봐 꼬맹아. 탐정은 비밀을 찾는 사람이지, 답을 찾아주는 사람이 아냐. "
명함이 환하게 빛났다. 미야모토 준은 후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 답을 원하면 직접 찾아봐. 네 누나를 그렇게 만든 세상을, 네 누나와 너를 그 작은 방에 가두었던 세상을 네 손으로 바꿔보는 것도 방법이겠지. "
그는 재밌단 눈빛이었다.
" 동북아시아 가디언 아카데미. 수석 스카우터 미야모토 준. 너를 동북아시아 가디언 아카데미로 초대하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