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웅이 되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박수와 환호 소리, 나에 대한 칭찬을 늘여놓는 매스컴, 모두가 영웅이라 추켜세우는 박수. 나를 사랑하는 사람까지. 분명 행복해야 마땅할 삶이었다. 그런데 웃기게도 나는 영웅으로의 삶보다 과거의 그 삶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소시민다운 생각이었다. 소년은 나를 보며 말헀다. 이제 행복하지 않아? 모든 것을 다 가졌잖아. 나는 답했다. 모든 것을 가지긴 했지. 나 스스로를 빼고 말야. 소년은 그때서야 꺄르르 웃으며 날 바라봤다. 바-보. 그걸 이제 아셨어?
짐승은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 야수 역시,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 그러나 두 존재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짐승의 영역은 오직 자신만을 위한 왕국과 같은 것이라면 야수의 영역은 자신이 지켜야만 하는 영역이라는 차이점 정도다. 그러니 카사는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었다. 한때는 수많은 늑대무리를 이끈 적도 있었고, 어느 때에는 친구들을 지키기 위해 싸운 적도 있었다. 물론 지금은 완전히 반대가 되었다. 자신의 영역에 기어 들어오는 잡놈들을 처잡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식삿거리들이 자신을 방해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조잡한 동물 뼈로 이루어진 의자에 앉아 카사는 자신의 식사를 바라봤다. 식삿거리들은 꽤 신중한 준비를 하고 왔다. 맨 앞에 질긴 고깃동이를 내세우고, 발톱이 날카로운 고기가 때를 준비하고 있었다. 먹기는 어렵지 않지만, 껄끄러운 것들을 준비한 고기가 자신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찾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타닥거리는 모닥불 위에 오늘의 하루 음식이 노릇히 익어가고 있었다. 카사는 의자에 앉은 채 고기들에 시선을 돌리다가, 자신의 음식으로 다시금 눈길을 돌렸다. 질긴 고기가 당장이라도 달려들려 하기 전에 카사의 말이 먼저 이어졌다.
" 가만히 있어. 식사 시간은 아직이야. "
목소리는 어린 미성의 느낌이 있었다. 물론 외모는 앳된 티를 벗어 어엿한 숙녀에 어울리는 외모였다. 그러나 외모와, 목소리를 넘어내는 감각이 있었다. 그것들이 세 고기들을 위협한단 것을 알고 있었다. 카사는 이것을 투기라고 불렀다. 오직 짐승만이 깨달을 수 있는, 싸움의 본능. 이 것을 견딜 수 있는 것들은 두가지밖에 없었다. 같은 투쟁의 본능을 깨달은 짐승이던지, 아니면 지킬 것이 많은 야수이던지. 그렇기에 카사의 분류는 세 개로 이루어졌다. 첫째. 같은 짐승. 둘째. 야수. 셋째. 둘 다 아닌 고깃덩이. 그런 카사의 분류에서 이 앞의 셋은 고깃덩이었다. 무시당한 것이 여간 서러웠는지 울그락 불그락 얼굴을 구긴 질긴 고깃덩이가 무언가를 던져냈다. 노릇하게 익어가던 음식이 불길과 흙에 더럽혀 먹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면서 저들끼리 무어라 지껄이는 것이다. 뭐 짐승새끼에게 명분을 지킬 수 없다던지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카사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 짐승은 영역을 중요하게 생각해. 자신의 영역은 자신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과시의 목적으로도 이용되거든. 그리고 이 산은 내 지배 하에 있어.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니? "
카사는 천천히 손을 뻗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무언가를 준비하기도 전에 날카로운 고깃덩이의 목에는 붉은 선이 선명하게 피어났다. 곧, 붉은 꽃을 피워냈다.
" 너희 같은 야수도, 짐승도 되먹지 못한 것들은 이 산에서 나에게 대적조차 못 한다는 이야기야. 얌전히 고깃덩이로 떨어져. "
손에 묻은 피를 햝짝이며 소녀는 미소를 지었다. 지독히도 어울리지 않는 상황의 호선이었다.
지금부터 그 기묘한 운명의 흐름을 이야기 해 보자. 그는 그런대로 명망있는 가디언 부부의 자녀였으나 아이를 원치않았던 부부에 의해 고아원에 맡겨졌다. 그러나 곧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어서 입양하고자 하는 어느 부호 여성에게 입양되어 편모가정에서 자란 소년은 4세 가량에 자신의 하나뿐인 어머니가 죽을 뻔 한 큰 사건을 겪고는 그대로 자신의 의념을 각성했다.
영원히 자라지 않을 왼쪽 다리를 잘린채로.
그즈음부터일까, 소년에게 말을 거는 묘한 목소리가 있었다. 병원을 갔더니 "잘렸지만 잘린게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마치 원래부터 왼쪽다리가 없던 사람이 될 운명인 것 처럼요." 같은 소리를 하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나오는 내내 '널 살리려면 운명과 거래를 할 수 밖에 없었단다.'라던가 '그래도 나는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거란다.' 같은 말로 줄곧 자신에게 연거푸 사과를 해대는 목소리에게 어째서인지 소년은 원망보다는 이해를 느꼈다. 이것이 첫 번째 운명의 파도였다.
두 번째 파도는 소년이 목발을 벗어던지고 의족을 맞추려고 마음먹은 열 셋 즈음의 일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의족을 맞추러 하루를 통째로 소진할 계획이었던 소년은 통채로 운명에게 거부당했다. 의족을 차는 족족 가루가 되어 흩어지질 않나, 오기가 생긴 마이스터가 절대로 부러지지 않는 게이트산 신소재로 만든 의족마저도 다리에 결합하자마자 박살나는 꼴을 보더니 다리가 의족을 거부하는 꼴은 처음본다며 팔 안으로 접혀들어가는 목발지팡이를 만드는 것으로 타협을 볼 수 밖에 없었던 기묘한 하루를 겪으며 소년은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운명이란 놈에게 한방 먹여주겠다며 결의를 다지는 계기가 될 뿐이었다.
그리고 제노시아 고등학교에 입학을 앞둔 테페리 앞에... 세 번째 파도가 몰려오려 하고 있었다. 그 어떤 파도보다 거칠고 난폭하지만, 그 끝에는 미지의 신대륙에 도달할 그런 파도가.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테페리 멜콘이 훗날 "외다리 마이스터"라던가 "운명을 개척한 자"로 불리게 될 이야기의 시작점이다.
//영웅서가에 단점이 있었다면 IF로 외다리 단점+시선 특성 캐릭터 테페리 멜콘으로 한번 장기적으로 연성 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