얌전히 카사의 눈가를 톡톡 두드리듯 닦아주고 있자니, 더 많이 눈물이 나오기 시작해서 짐짓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어, 어라. 뭔가 잘못 말하기라도 했나. 아닌데. 방금 말한 건 왜 우냐는게 다였는데. 어라라. 무표정의 가면 뒤로 소용돌이치는 의문과 당황을 억지로 눌러놓고는, 카사가 말하는 것을 이해하려고 시도한다.
...솔직히 전부 알아들을 수 있었던 건 아니지만, 간신히 대충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정도는 알 수 있었을까.
" 그러니까 한마디로 일이 마음대로 안 되어서 속상하다는 뜻이지? "
뭔가... 이해는 되는 것 같다고 생각했던가. 그야 자신도 실패한 적은 많았고, 울고 싶을 때도 많았다. 실제로 운 적은 손에 꼽긴 해도 요컨데 카사의 마음을 모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어떻게 위로해줘야 할지 고민하며 카사를 빤히 내려다본다.
이럴 땐 어떡하더라. 잠시동안 고민하던 지훈은 카사를 향해 살짝 팔을 벌리고는, "안길래?" 라며 고개를 약간 갸웃거리며 물었다.
"사람마다 다른 것이니까요." "그렇지만 두 명의 서포터에 한 명의 랜스면.. 음 아닌가. 제가 랜스로 변경해서 화살로 찍으면 서포터 한 명에 랜스 둘인가요~" 워리어로 가는 것인지. 서포터로 가는 것인지에 대해선 말을 얹기 힘들기에 그저 미소로만 일관합니다. 다림이 말하는 포지션 변경은 농담인 모양입니다. 진지하진 않네요. 오프숄더인 만큼 쭉 뻗은 목선에서 이어지는 어깨선이 눈에 띄는 건 다림이 등을 기댄 탓이었을까요.
"일단은 수련을 좀 더 해보고.. 그럴 생각이에요. 누가 저보고서포터로써 필요하다면 의뢰를 갈 지도 모르지만요" 제노시아의 전력질주-도 해본다거나요? 라는 말을 하는 표정은 유쾌한 농담을 하는 것 같았을까요?
"재능이 있다니 좋은 말이네요." 눈이 좋지는 않아서, 에릭 씨가 어떤 재능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끝을 낸 것은 대단했는걸요. 눈을 깜박입니다. 갈팡질팡 하다고 해서 그게 길이 아닌 건 아니지요. 라는 생각을 말로 내뱉을지는 조금 고민해볼 문제입니다.
자신이 애써 상황을 최대한 이해가 쉽게 설명하려는 데 한지훈의 눈이 몇미리 정도 더 커진 거 같다! 이것은 필시 자신이 최근 겪은 고통과 번뇌를 듣고 놀란 게 틀림없다! 역시 자신이 점 찍은 사냥감, 한지훈은 이해심이 깊었다!
하지만 인간은 욕심이 끝이 없고, 호의가 계속되면 둘리인 줄 아는 카사의 마음은 지훈의 요약에 와르르 무너진다.
그렇긴 한데.... 그렇긴 한데....!!! 이렇게 서럽고 복잡하게 느껴지는 일이 한 문장으로 단축되니까 왠지 더 서럽다. 그게 아닌데!! 아니 그게 틀린 것은 아닌데, 아니라고!!
카사의 아랫입술이 팝핀댄스를 췄다. 이 서러움과 감정을 서술하라면 책 한권으로는 부족한 느낌이었다! 적어도 7권은 되야한다!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파생게임도 막 만들어지고! 작가가 트위터에서 자꾸 말 그대로의 TMI만 말하면서 점점 팬에서 멀어지다 결국 차별주의 발언을 하면서 자폭하고!! 딴길로 새어버렸지만 하여튼 자신의 고민은 그 만큼 심오하고 복잡하닫는 말이다!! 일이 마음대로 안 되어서 속상한 건 맞긴 맞는데! 맞긴 한데!! 고민하는 지 그냥 바라보는 지훈의 모습에 억울함은 쌓여만 간다. 카사는 침착하고 어른스럽게 이 어리석은 한지훈의 잘못된 지식을 정정해야 했다!
생각대로 '침착하고 어른스럽게' 입을 연 순간, 굳건히 다잡은 마음이 지훈의 최선책에 다시 와르르르르 무너진다.
"...끄흡.... 안길래...."
훌쩍이면서 주섬주섬 바닥에서 일어나는 카사. 혹시라도 한지훈이 마음을 바꿀까봐 서둘러 펼핀 품안에 폭 안겨온다. 안그래도 인간사회에선 스킨쉽이 적어서 얼마나 서글펐는지 모른다! 자기 무리는 그냥 조금이라도 심심하면 막 부대끼는데! 또르륵 흘리는 눈물콧물 지훈의 셔츠에 다 묻쳐가며 서럽게 잡고 운다. 여담이지만, 지훈의 깨끗한 옷에게 이만 안녕을 해야겠다.
수술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큰 능력이지요. 그러니 생각해보면 힘들기론 저보다 하루 선배님이 더 힘드시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응급처치와 수술에는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큰 차이가 있답니다. 근데 진짜 이 열쇠를 어디다 둔 것일까요? 분명히 가방에 집어넣었을텐데 왜 이렇게 보이지 않는 것인지… 갸우뚱하던 찰나 하루 선배님께서 복도에 떨어져 있던 걸 찾아주셔서, 다행스럽게도 저는 한 숨 놓을 수 있었습니다.
“어라🎵 열쇠가 이런 데에 떨어져있을 줄이야~! 몰랐으면 들어가지도 못했을거여요… 찾아주셔서 정말정말 감사드리와요 하루 선배님! “
열쇠를 간신히 찾을 수 있었음에 감사드리면서도, 한편으론 “이거이거, 제가 본의아니게 폐를 끼쳐드렸사와요… 이걸 죄송해서 어떡해야 할지… “ 하고 죄송해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열쇠를 가방 밖으로 떨어트려서 선배님께서 찾게 되시는 민폐를 끼친 것이니까요. 본의가 아니었다고 해도 민폐는 민폐입니다. 죄송해해야 하는 겁니다.
“후후🎵 많이 기다리셨지요~? 일단 들어갈까요 그럼? “
아무튼간에 간신히 열쇠를 건네받아 저는 문을 열 수 있었습니다! 벌컥 열고 들어간 방 안은 정말…. 새하얬습니다. 무채색의 방이었습니다. 잘 정돈된 침구도 새하얬고, 가구들도 새하앴고, 그나마 교과서들이나 화장품들, 사과 로고 달린 노트북과 패드 정도가 색깔이 있는 정도였지요?
“조금 정돈이 안되긴 했지만 괜찮으시다면🎵 자아, 들어오셔도 되어요! “
먼저 들어서선 저는 방 안의 불을 키고 선배님을 안내해드리려 하였습니다. 사람이 사는 방이냐 싶냐면 글쎄요, 저는 정말 여기서 잘 지내고 있답니다!
// (한번 날리고 노트북으로 돌아온 사람) 역시 레스는....노트북으로 써야 해요....이젠 윈도우 단축키도 낯설다....🤦♀️
카사가 자신의 품에 폭 안겨오자 팔로 카사를 감싸안고는 느릿한 손길로 카사를 천천히 쓰다듬어준다. 카사가 옷을 더럽히며 울고 있었지만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듯 카사가 만족할 때까지 안아주려고 했을까.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느긋한 손길이, 카사가 어렸을 적 느꼈던 늑대의 감촉과 비슷했을지도? 그것은 카사가 느끼는 바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무튼.
" 대장. 난 대장이 좋아. "
지훈은 카사를 품에 안고선 나직히 말하기 시작했다. 위로의 말을 건네려고 했던 것이지만, 어느정도 진심을 담아 얘기하려고도 했을까. 그는 카사가 우는 이유를 완벽히는 아니어도, 대충은 짐작할 수 있었기에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한다.
" 뭔가에 막혀도 계속 도전하는 모습이 좋고, 항상 쾌활한 모습도 좋고, 언제나 솔직하게 자기 감정을 표하는 모습도 좋아. 그리고, 믿음직스러운 대장이 되고 싶어하고, 실패했어도 자기가 원하는 모습에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모습도 좋아. "
자신이 아는 카사의 장점들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은 안다기보단 카사의 지금 모습을 보고 알 수 있었다에 가깝기는 했지만. 거짓없이 카사의 장점들을 말하더니 카사를 내려다보고는
" 이번에는 비록 실패했지만 그래도 카사는 아직 나에겐 믿음직스러운 대장이니까. "
"다음번엔 보란듯이 성공해보이면 되는 거 아닐까. 그렇게 모두에게도 자랑스러운 대장이 되면 되는게 아닐까." 라며 카사를 위로해주려고 했다. 변변찮은 말실력이었지만... 나름 최선을 다한 것이었겠지. 위로를 말하는 것도, 진심을 섞는 것도.
나 따위보다는 재능이 있다는 생각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다림은 그런가요. 라는 말에 대해서는 그렇네요. 정도의 짤막한 대답을 돌려주었습니다.
메리에 대해서 궁금해하지 않는 것은 어째서였을까...는 다림주도 잘 모르겠네요. 다림이의 그 속에 내재된 것이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건 나올 일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니 넘어가도록 하고, 보상을 포기했다는 말에 얌전한 웃음을 지어보입니다.
"가지고 싶다-라는 마음은 있긴 했지만, 상세한 걸 보면 제가 가져서 쓸모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그것도 있고.. 기여한 게 그렇게 높다고 생각하진 않았거든요. 라고 말하려 합니다. 그래도 gp도 벌었고.. 적당히나마 장비같은 걸 구매할 수도 있게 되었으니 남은 게 아닐까요? 라고 말하네요.
>>765 거기 나오는 늑대가... 빨간모자랑 할머니 잡아먹고 자는 중 지나가던 사냥꾼이 배를 갈라서 구출하고, 돌로 속을 메꾼 뒤 다시 꿰메잖아요. 늑대는 목이 말라 우물에서 물 마시려하다 돌 때매 빠져 죽는 엔딩이고. 어린 카사는 마지막 페이지에 해맑게 웃는 빨간모자의 그림에 트라우마 걸렸슴다. >>770 ㅠㅠㅠㅠㅠㅠㅠ우리 착한 지훈이 음료 많이많이 사줘야지...
" 혼자선 이것저것 할 수 없는 노릇이니까요. 분명 둘이 같이 해서 할 수 있었던 거에요. "
하루는 겸손한 에미리의 말에 살며시 고개를 저어보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을 돌려준다. 물론 기술적으로 자신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것도 에미리의 기술이 뒷받침을 해줬기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생각하는 하루였다. 아마도 그녀가 자만할 일은 없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겸손한 모습이었다.
" 감사하긴요, 앞으로 제가 잠시 신세를 질텐데, 이정도야.. "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에미리 양이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하루는 진정하라는 듯 차분한 목소리로 말해주곤 맑은 웃음소리를 흘린다. 완벽한 아가씨처럼 보이는 에미리지만, 이런 부분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분명 이득을 본 느낌이었으니까, 에미리가 죄송하게 생각할 부분도 없지 않았을까.
" ... 이게 정돈이 되지 않은 방이라니, 다른 학생들이 울면서 지나갈지도 몰라요. 후후. "
조심스럽게 새하얀 방안으로 들어선 하루는 고개를 살짝 움직여 둘러보곤 에미리의 말에 한손으로 입가를 가린체 웃어보였다. 분명,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것보다 훨씬 어지럽혀 있을거라 확신하는 하루였다. 자신처럼 지닌 것이 얼마 없어서 어질러질 것도 적은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 그러면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에미리양. "
좀 더 안으로 걸어들어온 하루는 방을 구경하듯 눈으로 몇번 더 훑어보다 조심스럽게 침대에 걸터 앉는다.
" 자, 그러면 에미리 양이 어려워 하는 부분이 있었다면 말해주시겠어요? 선배로서 먼저 에미리 양을 도와드릴까 해서요. "
눈을 반짝이며, 도움이 될 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에미리를 바라보며 조금은 들뜬 목소리로 말하는 하루였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사실에 기쁜 것이 분명했다.
꼬옥. 지훈의 말에 대답하듯 양손이 조심스레 지훈의 몸을 둘러간다. 힘을 줘도 뭐 하나 으스러지지 않게 조심하게 애쓰는 와중에도, 카사의 머리가 지훈의 가슴팍에 안착해 안정감있는 자세를 만들어낸다. 지훈의 품에서 오는 열기와 느리게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 카사가 눈을 꾸욱 감으면, 그 상냥한 온기가 가족에 둘러쌓여 겨울을 보내던 때가 저절로 떠올려진다. 기억의 단편에 반응하듯, 킁, 콧소리를 내면서 머리를 부비적거린다.
"..."
위에서 들려오는 지훈의 나직한 말. 침묵을 고수하는 카사는 이따금씩 흘러나오는 콧물을 훌쩍이는 소리만 낸다.
슬픈 마음. 화난 마음. 약한 마음. 두려운 마음, 원망스런 마음.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된 자신이 밉고, 후에 다시 같은 일이 반복될 까봐 무섭다. 처음 맛보는 감정에 당황스럽고, 이렇게 격하게 반응하게 된 자신의 모습에도 놀랐다. 그런 감정들이 하나 둘 섞여 엉망스런 심장을 찐득하게 얽혀왔는데, 지훈의 솔직한 속삭임에 그런 감정들도 하나씩 떨어져 나간다. 완전히 받아들여 없앨수는 없어도 적어도 마주 볼수는 있을 정도로.
무섭다. 두렵다. 결국 뼈에서부터 새어나오는 분노는 공포에서 유래했다. 내가 너무 약하면 어쩌지? 지키지 못하면 어쩌지? 다시 목이 졸려 쓰러져 버리면 어쩌지? 이런 느낌은 처음이야! 처음인건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그래도 감싸오는 지훈이가 이런 대장도 좋아한다고 하니까. 지켜본 것을 증명하는 거 처럼, 이것 저것 말해주고 그런 나도 좋아한다고 해주니깐. 지금은 괜찮은거 같아. 조금은 괜찮아 진거 같아.
동물은 사람의 진심같은 것을 판별해내는 것에 능숙하다고 한다. 그런 의념을 이어받은 카사에게도 비슷한 감이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지훈의 느린 심장소리가 들려온다. 완전히 감싸안아, 등의 옷자락을 쥔 손이 꼼지락거린다. 완전히 품에 묻혀 보이지 않던 얼굴을 조금 들어올린다. 고개를 완전히 들지는 않아, 옷에 조금 묻혀졌지만, 그래도 지훈의 귀에 들릴 정도로 나지막히, 퉁명스레 중얼거린다.
"...나 더 믿음직한 대장이 되고 말테니까. 진짜야."
킁, 바로 콧소리를 낸다. 눈물이 멈추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무슨 말을 하는 지 판별될 정도는 된다. 잇따라 이은 말에도 물기보다는 굳건한 결심이 가득 차 있다고 느낀다면, 결코 착각이 아닐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