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작와작.

편지를 우체통에 넣으면 받는 사람에게 배달할 거야.
근데 얼마 전부터 이상한 편지 넣는 사람 누구야? 어이가 없어서...
그런 편지는 내가 뜯어먹을 거야.
맛있는 우표 붙여놔라.

꿀꺽.
📭

날로 몸이 스러지고 있기에 네게 글 한 줄이나마 전하려 서툴게 펜을 든다. 재주없는 사내라 이리 끄적이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것이 없다. 그러한 것이 부끄러워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던 일을 지금 마치려 한다.

희서야, 너는 고목古木의 여름을 기억하느냐. 제 살덩이를 파먹는 벌레까지도 너그러이 감싸던 풍요로움을 기억하느냐. 나는 내 그릇도 모르고 그러한 사내가 되고자 했다. 분수에 맞지 않는 일을 꿈꾸어 자연히 쇠잔해졌다. 부끄럽다. 내가 진작에 그만뒀더라면 너와 함께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적어도 네게 이리 서글픈 편지를 쓰지 않아도 되었을 일이다. 부끄럽다. 너를 지키겠노라 단언했으나 결국 주는 것은 상처뿐이다.

희서야, 너는 여름을 기억하느냐... 나는 생생히 기억한다. 여름날 계곡에서 희게 웃던 너를 기억한다. 희게 웃는다는 것의 본의도 모르는 주제에 그저 홀려 마주 서툴고 투박히 웃었다. 계곡 소리에 네 목소리는 묻혔으나 내 귀에만은 생생히 네 음성이 울렸다. 매미 소리도, 이어진 장대비 소리도 그 울림을 가히 뚫을 수 없었다. 고백하건대, 나는 이 기억으로 살아가고 있다. 네게는 과거에 연연하지 말라 가르쳤지만 정작 나는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우습게도 반성조차 하지 않고 있다. 부끄러워야 하거늘, 부끄럽지도 않다. 지금도 네 음성이 울린다.

연모를 쉽게 입에 담는 사내를 마음에 두지 마라. 나처럼 연모라는 말을 편지에 수십번, 수백번 담는 사내는 더더욱 가슴에서 멀리해라. 재주가 없는 사내 또한 마음에 두지 마라. 나처럼 펜 놀리는 재주밖에 없는, 같잖은 사내는 더더욱 두지 말아라...

희서야, 내 몸은 쇠락하고 있다. 봄날 묵은 눈이 녹듯 사라져가고 있다. 내 글 스승이 누누히 말씀하신 것이 있다. 글은 글의 내용뿐만이 아니라, 글씨에도 힘이 있노라 가르치셨거늘, 내 손에는 지금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글씨가 흐리멍텅해져가니 그 의미도 흩어지고 있다. 희서야, 나는 네 이름을 이제 더 이상 많이 부르지 못하니 이 편지에서라도 이 원을 다 풀고 가려 했다. 그러나 불러도 불러도 풀리지가 않는다. 희서야, 내 무덤은 그늘께에 놓아 주어라. 죽어서도 햇볕 보기가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