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에는 막강한 파괴력의 재앙이 항상 빈번하게 발생하는 까닭에 인류는 정기적으로 거처를 옮기며 안위를 유지해왔다. 훗날 오리지늄 엔진의 발명과 함께 인류는 이제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정도로 거대한 탑승물을 만들어냈다. 그 결정체가 바로 움직이는 도시, 이동도시인 것이다. 말 그대로 이동하는 플랫폼 위에 건설된 도시로, 갖가지 재앙을 예측하는 시스템이 탑재되어있으며 이동시에는 여러개의 플랫폼으로 모듈처럼 나뉘고, 하나로 합쳐져 한 도시를 이룬다. 하지만 모든 도시가 이동도시인건 아니며, 작은 마을이나 위치가 중요한 몇몇 도시는 정착한채로 살고있다.」
별볼일 없는 하루였어. 나쁜 뜻은 아니야. 어제와 같은 오늘이란 건 평온한 거기도 하고. 멈춰있는 기분이 들어서 참 나답거든.어, 나쁘네. 이렇게 말하니까 정말 나쁘네... 그러고보니까 멍이 좀 늘었어. 치료해도 금방 늘어나고 귀찮으니까 내버려둘 생각이야. 다행히 밖에 잘 안 보이는 곳이었거든. 무릎이었는데..나는 좀, 긴 옷을 입으니까. 머리도 길고 옷도 길어. 나는 짧은데. 생각도 짧고 마음도 짧아. 몸도 짧고. 어 근데 내버려뒀다 네로 선생님한테 들키면 혼나려나? 밴드라도 붙여둬야겠다. 내일은 좀, 밖에도 나가고 그래야겠어. 나를 장난감 취급하는 것 같은 좀 싫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지만, 어, 여긴 좋은 사람들이 더 많으니까. 나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좋은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좀..좋은 사람이 되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고. 어 그래도, 나가고 싶진 않아 사실.. 방구석에 박혀서 그림만 끄적이다 늙어죽고 싶다.... 자고 일어나서 좀 더 자세히 생각해야겠어.. 만약 내가 방을 나서는 크나큰 결심을 하게 된다면, 내일 곰을 만나지 않도록 기도해주라. 죽은 척도 소용 없단 말이야... 해보진 않았지만.
(이하의 내용은 페이지 맨 아래 빈칸에 자그마하게 적혀있다) 다 쓰고 나서 생각했는데, 일기가 기도해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지금은 아츠도 멈춘 상황이니 스카가 리아의 표정을 읽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목소리에서 무언가를 읽어내기라도 한 것인지, 잔잔했던 미소가 조금 더 환해졌다.
"리아, 리아, 조금 변한 것 같아요."
자신이 노래할 때처럼 재잘거리던 스카는 황급히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러니까, 좋은 쪽으로요!"라며 말이다. 응, 그런 쪽의 변화는 환영이다. 휴식을 제때 취하지 않으면 사람은 무너질 수도 있다. 스카는 적어도 그런것을 바라진 않았다.
"노력은, 해볼게요..."
지킬 수 있나? 스카는 지레 찔린 것처럼 어깨를 조금 움츠렸다. 고의가 아니라는 것은 적어도 80% 가량 진실이었다. 때때로 과거의 조각에 휩쓸리는 건 전혀 제 의지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일이었다. 스카, 자신의 의지로 조절할 수 있었다면 옛적에 그만두었을 것이다.
"에이, 지금도 컨디션은 좋은 편인데요 뭘. 웃고 있기도 하고요."
리아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라면 십중팔구 알기에 저렇게 행동하는 것일 터이다- 스카는 쾌활한 목소리로 답했다. 가면 가는대로, 오면 오는대로. 물론 스카는 지금 삶을 좋아했고 죽는 것을 최대한 미루고 싶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녀가 무서운 것은 차라리...죽음보다는 이성을 잃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것조차 못하게 되는 날. 차라리 몸 상태를 완벽히 알 수 있다면, 그렇다면 좋을 텐데.
"무리는 아니에요. 그냥, 음, 아까 전 노래가 선금이라고 하고 도착하면 나머지를 주는 걸로 할까요?"
스카는 리아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사실대로 '과거가 생각나서요'같은 말을 이야기할 생각도 없었거니와, 이야기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해 장난같은 말을 던졌을 뿐이었다. 말하고 나서야 너무 무리수였나 잠시 고민하긴 했지만 말이다.
"지금처럼 시간 났을 때 이따끔씩 들러서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족해요. 물론 리아와 자주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것도 기쁘겠지만요."
오지 않는다고 해서 도망갈 자신이 아니었다. 찾아온다면 언제고 똑같이 환영해줄 테고, 아니라면 아닌 것으로 끝일 뿐. 지금처럼 종종 가볍게 안부를 묻는 것으로도 좋았다. 지금처럼 신경 써주는 것도 충분히 많다고 느끼고 있기도 하였고. 본 세월이 있으니 어쩔 수 없나, 스카는 가볍게 생각했다. 리아가 몸을 낮춰주자 스카는 땅에 발을 디뎠다. 몇번 발로 콩콩 확인해보고 나서야 내리는 모습이 퍽 조심스러웠다. 오니 택시, 라는 말에 나뭇가지를 장난스레 흔들고 가는 바람같은 웃음소리를 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