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피곤함이 짙게 몸을 눌러 일찍부터 잠에 들었다가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간에서야 잠에서 깨었다. 어렴풋이 깨어가는 의식에 영이 그리고 지애의 목소리가 들려, 나는 조금 놀래켜 줄 생각으로 일부러 자는척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평화로운 하루가 또 지나갈 줄 알았다. 그랬는데.
"......"
둘의 이야기는 그런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미행을 당하고 있었다, 나는 거기서 머리가 식는 기분이었다. 분명 엄마는 지난번에 맹세 의식때 영이 같은 규모있는 가문 주변엔 얼마든지 우리 아빠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마음 단단히 먹으랬는데, 막상 들은 것이 내용과 같았을 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어떡하지. 엄마가 내게 말은 했지만, 일을 크게 만드는 것이 잘 하는 일일까? 이불 속에서 나는 기나긴 고민을 했고,
그 고민의 해답이 고개를 들 때, 나는 이불속에서 나와 둘의 사이로 들어갔다. 새장을 부술 수 없을 땐 단 한가지...
"영아, 지애야. "새장을 부수고 나갈 방법이 있는데. 들어보지 않을래? "...사실 나 인도자의 맹세때 단순히 맹세만 하고 돌아온게 아냐. 영이의 집안이 규모가 있는걸 아신 집안 어른분들이 우리 아빠처럼 이런일이 있을거라고 예상하시고 혹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언제든 도움을 청하라고, 원군이 되어주겠다 하셨어. 단순히 가문원 하나하나가 아니라, 하동 정씨 전체가, 우리 아군이 되어준다고 하셨어. "넌, 아니 이 비밀을 공유하는 우리 셋은 둘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이야. 하나, 당장 알린다. 둘, 당장 알리지 않고 더 큰 것을 위해 조용히 칼을 간다. 어느쪽이던, 우리집 어른들이 도와줄거야. 몸숨길 곳이 필요하면 기꺼이 내어주고, 권력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원군이 되어주실거야."
"그런가? 키울건가 해서 말하는 건데, 파리지옥은 건드리지 말아야 오래 살아. 입 다무는 데 쓰는 힘이 걔들한테는 엄청 벅차대."
식물에게 재미를 느끼려면 진득하게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하였던가. 그것도 성정이 맞는 사람에게나 가능한 일이었기에 애시당초 시작조차 하지 않은 일이 원예였다. 아니, 사실은 그것에도 재간은 있었다지만 할 이유가 없었단 것이 더 옳았다.
"그럼 다음에 만나면 꼭 닦달해서라도 들을게. 준비 열심히 해 둬."
사실은 그럴 마음까지는 없었다만. 편히 이야기하다 보면 속없는 소리가 튀어나오는 일이 과히 잦았다. 고치지 않는 것은 그 줏대 없는 행동이 그나마 학원에서의 몇 없는 친교를 유지해주는 수단이었기 때문이었다. 돈 달라며 내놓은 손을 물끄러미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크게 돈이 궁하지는 않았지만-오히려 많다면 과할 정도로 넘쳤다.- 왠지 하라는 대로 다 해주는 것 같잖아. 하지만 별하게 싫은 마음이 드는 것까지는 아니라 주머니를 뒤져 지갑을 열었다. 어차피 학교에서는 돈을 쓸 일이 적었으니 준다 하여도 손해가 되지는 않을 터였다.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는 잘 모르겠는데, 여기."
적당히 지갑을 털어 나온 개수만큼을 꺼내어 내밀었다. 그런데 내가 평소에도 이렇게 무겁게 들고 다녔었나? 금화는 휴대성이 떨어지는 것이 좋지 않았다. 언젠가 머글 연구에서 듣기로는 그들은 특수하게 가공한 종이를 화폐로 사용한다 하던데, 그에 비하면 금속 화폐는 지니기에 번거로움이 지나쳤다. 마법사들도 그 방식을 참조하면 편하지 않을까, 그러니 돈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어오는 것은 자연한 일이었다.
.dice 10 100. = 88
"아니. 그게 아니라... 머리에 초콜릿 안 흘렸지?"
그런데 방금은 왜 그렇게 웃은 거야? 다시금 고개를 갸웃했다. 말하고는 머리를 툭툭 털었다. 방도 없이 빠진 털 몇 개가 하늘하늘 떨어져내렸다. 와, 역시 뱀 키우길 잘한 것 같아.
그 말에 이내 호기심 넘치는 눈빛으로 되물었다.할,나 그런거 완전 모르고 있었지 뭐야.어쩐지,어렸을 때 사온 파리지옥을 매일매일 심심할때마다 건드렸더니 너무 일찍 죽어버린거 있지? 뭐 어짜피 아직까지는 키울 생각은 없었지만..그래도 나중에 기회가 생긴다면 한번 키워보기는 할 테니까 미리 들어두는게 낫겠지.
"엄,기대하셔도 좋습니다!저는 완벽하니까요!"
자신만만하게 웃었지만 속으로는 이런저런 걱정이 따라오지 않을 수 없었다.아까도 말했듯이 프랑스어는 난생 처음 접해보는 것이었으니까.뭐,그래도 이런걸로 걱정하고 그런다면 최도윤이 아니지!파이팅 해서 외워보는거다!그러면 어떻게든 될 테고 그걸로 만족하면 그만인 셈이지! 그리고 이어서 제 손에 쏟아지는 금화를 빤히 바라보았다.음,정확히 88개!이 정도면 용돈으로는 충분하지!
"감~사합니다!유용하게 잘 쓸게요!!"
뭐,자신이 유용하게 쓴다고 해 봐야 초콜릿을 사는데 전부 써버릴게 뻔하기는 했지만 일단 그런 인사를 남기는 건 예의였으니까.가볍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서 이내 금화를 주머니에 다시 가득가득 채워 넣었다.전에 세연이 형한테 무려 천 갈레온씩이나 받았는데,이 정도 들고가는건 껌이지 껌!
"앗,네!당-연-히 안 흘렀죠!"
먹고 있었던 중이 아니었으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하고 방긋 웃어보인 도윤은 이내 들려오는 말에 당연하다는듯 입을 열었다.
"음,뭔가 어색한듯한 미소를 지으셨으니까요!어중간한 웃음은 보는 사람한테는 빅 재미를 안겨준답니다!"
그렇다고 해서 비웃거나 한건 절대 아니니까 오해하지는 말아주세요!하며 이내 오해의 여지가 있을만한 건 미리 해명해두었다.괜히 그거 가지고 오해하고 일 커지면 이래저래 귀찮아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