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 중에는 말을 아끼는 게 좋다는 것마냥, 아나이스의 말에 짧게 대답한 늑대는 입가에 묻은 피를 손으로 닦은 뒤, 그 손을 입가에 가져다 대며 피 한방울도 아깝다는 것마냥 핥는다. 묘하게 취한 듯한 눈빛을 보이며 입맛을 다시던 늑대의 꼬리가 살짝 말렸고 입 밖으로 희미하게 그르릉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글세, 묘하게 경계하고 있는 듯한 태도인데요 그대는."
아닌가요. 이어 물으며 늑대는 고개를 갸웃였고, 한 번에 삼키는게 어떠냐는 말에는 대답 대신 꿩의 머리를 손으로 붙잡고, 아래쪽 부분을 이빨로 물어 반절 가량을 한번에 물어뜯어 삼키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늑대 모습으로 먹으면 먹은 것 같지가 않으니까요."
한입에 삼키면 끝이니까. 중얼거리던 늑대는 꿩의 내용물이 바닥으로 주륵 흘러내리자, 몸을 낮추며 엎드리더니 그것을 입으로 물어올려 삼킨다.
저택의 내부로 향하는 그녀의 걸음걸이를 뒷따르며 나지막하게 대꾸했다. 알리시아는 내게는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앞에선 나도 평소와 다른 유한 태도를 취하게 된다. 위와같은 태도는 친밀한 사람을 위한 내 나름대로의 배려에 가까웠다. 내 기준에선 많이 유해진 표현이긴 하나, 타인이 봤을때 어떻게 느낄지는 잘 모르겠다. 원채 내가 부드러움과 거리가 먼 사람이기도 하고, 내 성격 때문에 트러블이 일어난다 한들, 그것을 바꿀 생각은 절대 없다. 알리시아를 뒤따르며 저택 내부를 스윽 훑어 지나갔다. 알리시아의 저택은 전혀 낯설지 않았다. 친해진 이후로 원채 자주 방문하기도 했고. 이젠 거의 내 저택마냥 익숙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래도 이번엔 꽤나 간만에 만났으니 간단한 안부라도 물어볼까.
"시아, 그간 별 일 없었어? 찾아와서 귀찮게 하는 사람은 없었고? 그런 사람이 있다면 말해. 내가 죽여줄테니까."
사실 그녀는 귀족정이란 위치에 앉아있는 환상종치곤 카리스마나 위압감이 느껴지는 외모는 아니었다. 그냥 귀여운 소녀의 느낌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 또한 그리 위압감 넘치는 외모는 아니지만 날서있는 성격 덕분에 내게 먼저 다가와 시비를 거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알리시아의 성격 또한 꽤나 유한 편이었고, 그런 성격과 외모가 맞물린 탓에 혹여나 그녀를 만만하게 생각하고 덤벼오는 사람이 있을까 조금 신경쓰였다. 그렇게 알리시아의 안내를 따라 접대용 방에 도착한 나는, 대충 의자를 하나 끌어와 그녀의 곁에 자리하고 앉았다.
"오늘따라 달달한게 끌리는데. 자, 어서빨리 나를 위한 홍차와 다과를 내오도록 해."
대부분의 식사는 '먹이'들의 피를 흡혈하는 것으로 대처하는 편이었지만 나 역시 먹이들이 먹는 것과 같은 평범한 음식을 싫어하지 않는다. 가끔 기분이 내킬때면 저택 안에서 평범한 식사를 하기도 하고. 달달한 디저트나 차종류는 굉장히 좋아해 즐겨 먹는 편이었다.
빛이 세어들어오지 않는 거리, 총성과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는 공허하게 거리를 맴돌 뿐 이다. 거리에 퍼져있는 스모그를 타고 멀리 퍼지듯 혈향은 서서히 거리의 바닥을 방황한다. 아리아는 에일린이 달려들자 깜짝 놀라 꼭 감고있던 눈을 천천히 떴다. 자신의 앞에서 라이플로 밀어내듯 에일린을 막고 있는 알폰스, 그러나 살짝이지만 어깨에 상처를 입었는지 그의 흰색 셔츠가 조금씩 붉게 물든다.
"크흠-"
고통이 들어찬 헛기침을 입으로 내뱉지만 고작 그정도의 격통으로 끝날 정도가 아니다. 알폰스는 이를 악물고 라이플을 그대로 밀어 에일린을 떨쳐내려다가 소드케인을 역수로 잡는다.
"들개따위가, 품위없는 공격이군요."
그 품위없는 공격이 조금 많이 들어왔지만.. 하지만 그 상태에서 회피를 했다면 아리아가 다쳤을테니 이 정도는 감수해야한다.
알폰스는 자세를 고쳐잡고는 그대로 역수로 잡은 검을 위로 쳐올리듯이 휘두르며, 왼손으로는 라이플을 회수하며 장전을 준비했다.
코 끝으로 진한 피냄새가 밀려들어오고, 늑대는 자신의 이빨에 묻은 피를 혀로 핥으며 입꼬리를 올린다.
"미천한 짐승 따위에게 품위를 바라시는 것 자체가 무리인 것 아닙니까. 고귀한 인간이시여"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입을 연 늑대는 물어뜯어 버리는 것을 막기라도 하는 듯이 자신의 눈 앞에 나타난 라이플을 힘으로 밀어버리기 위해 체중을 실으려 했고, 늑대의 눈에 역수로 잡히는 소드케인과, 자신을 밀치려는 듯이 움직이는 라이플이 동시에 들어오자 빠르게 바닥을 박차며 뒤로 빠진다.
"하하, 말은 그렇게 했으면서 저 여성을 보호하려고 애를 쓰시네요."
놀리는 것마냥 늑대의 꼬리가 살랑이고, 위로 쳐올린 검에 머리카락이 살짝 잘려나가 떨어지자 시선을 그것으로 돌렸다가 알폰스로 향한 늑대는 빙긋 웃는다.
오른쪽 팔을 축 늘어트리며 그는 인상을 구겼다. 피는 멈출 생각을 안하는지 셔츠 안에서 그의 팔을 타고 흘러내려 그의 장갑을 적시기 시작했다.
위험수준이다. 이대로 라면 과다출혈로 오래 못 버틸지도 모르겠다.
"고귀한 인간-. 아 그 어감 매우 훌륭하네요. 고귀한 인간 맞습니다. 인간이야 말로 만물의 영장, 헬리오스 신의 축복을 받는 지성체."
다른 생각을 하는 건지 알폰스는 왼팔을 휘적이며 에일린의 말을 상대해주었지만 이내 빙글 웃으며 라이플과 검을 들어올렸다.
"아리아를 지키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이들이 병정놀이를 하면 다치겠죠? 나름 리얼리티를 추구한다고 전사자도 만들고.. 하지만 병정놀이에 자신은 신관이라면서 중상자로 분류 된, 전사자로 분류 된 아이들을 만지더니 '넌 회복됐어 돌격해!' 라고 외치면 어떨까요?"
알폰스는 아리아의 회색 머리칼 위에 힘겹게 오른손을 올렸다. 그러자 그 기계는 조금 안심이 되면서도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하다는 표정을 보이다가 그의 어깨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잠시후 반짝거리는 가루 같은 것 들이 알폰스의 어깨위에 올려지더니 피가 멎은 듯, 셔츠 위의 핏자국이 산소를 만나 점점 검붉은 색으로 변해갔다.
"자주는 사용 못 합니다. 많이 사용해봤자 4회. 단순히 지혈이나 골절은 치료할 수 있으나, 팔이 날아갔다. 머리가 날아갔다. 같은 치명상은 힘들죠. 이게 제가 이 아이를 보호하는 이유입니다. 짐승 당신은 인간들의 군상극을 보는 듯 한 느낌이였겠지만 다- 이게 전부 전술이거든요. 병력배치."
소드케인을 바닥에 꽂아두고는 라이플을 두손으로 장전한다. 탄피가 튕겨져 나와 바닥을 나뒹굴고 그는 다시 늑대와 대치한다.
"이단심문회의 다른 이들이 오기전에 도망치거나 저에게 죽어주십쇼 짐승. 다른 이단심문회가 와서 당신이 죽어버린다면 저는 굉-장히 허탈할 것 같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