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침이 묻은 장갑을 벗어 주머니에 넣는 것을 보고 아리나가 실망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후에 이어지는 헨리의 행동-손으로 얼굴 가리기-에 납득했는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아리나라도 남의 침 묻은 장갑으로 얼굴은 못 만진다.
“아니야, 생각해보니까 좀 더러울지도.”
아리나는 빠르게 자신의 주장을 철폐했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그 뒤에 이어진 헨리의 말까지는 납득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헨리의 말에 반박하듯이 메롱을 내민 아리나가 새초롬하게 말했다.
“흥, 장갑을 핥는 게 자랑스러운 게 아니라 자유를 향한 한 인간의 노력, 그리고 성공까지의 과정이 자랑스러운 거야. 언제나 행위는 중요하지 않아, 그 행위에 담긴 의의가 중요한거지.”
설마 그것도 모르냐는 투였다. 하지만 헨리라면 그것이 진담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 새침한 표정이 지어진 얼굴의 입꼬리가 미세하지만 아주 약하게 올라가있다는 사실을. 그렇다, 아리나는 지금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 장난도 오래가지 않을 터, 헨리가 토마토 주스를 마시자 아리나는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자신이 사준 것을 헨리가 마신다, 라는 일종의 자과심이었다.
나는 아주 잠깐 아리나의 말을 듣고 시선을 슬그머니 돌리고 말았다. 저게 진담이라도 믿는 사람이 있으면 내 손에 대고 내 산탄총을 기꺼이 쏘겠다. 아리나는 언제나 농담을 진담처럼 하는 버릇이 있으니까. 아주 잠시, 반박하면서 혀를 빼꼼 내밀고는 말하는 아리나의 말에 설득당할 뻔했다는 사실은 저 아이가 절대로 알면 안된다.
'자유를 향한 인간이 노력 두번했다가는 장갑을 먹어버릴 기세였어 아리나'
나는 수화를 하고, 토마토 주스를 쪼로록 하고 마셨다. 상큼하고 상큼하다. 아무것도 가미되지 않은 이 참맛. 이게 바로 생과일 주스의 본연의 맛이지. 나름 그렇게 감탄하면서 아리나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가있는 걸 발견한 나는 아리나의 말이 장난이라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그리고는 무언가 기대하는 듯한 기분. 고맙다고 해야하나, 라는 생각을 하다가 나는 장갑을 벗은 - 방금 전 아리나의 핥음에 피해를 입은 장갑에게 애도를 하며 - 손으로 아리나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고마워'
요령도 좋게 빨대를 입에 문 채, 토마토 주스가 떨어지지 않는 기행을 펼치며 나는 수화를 했다.
“장갑이 뭐가 어때서? 장갑은 훌륭한 식량이 될 수도 있어! 어떤 사람은 조난당했을 때 자신의 가죽 부츠를 먹어서 살아남았다고. 장갑에 대해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지마.”
아리나는 자신이 불리해지자 얼굴을 돌려 다른 주제로 황급히 넘어갔다. 이런 이야기를 오래 해봤자 자신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 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리나는 눈을 힐끗 돌려 헨리를 바라보았다. 헨리가 만족스러워한다. 아리나는 씩 웃고 헨리가 하는 감사의 인사에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당연히 고마워해야지! 누가 사준 주스인데.”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걸까 아리나는 손을 쭉 내밀었다. 과일 봉지를 받기 위한 행동이었다.
“내가 특별히 들어줄게. 힘들어 보이니까 특별히 숙소까지 들어줄게. 내 성의를 거절했다가는 가만히 안있을거니까 괜찮다는 둥 그런 이야기는 하지마.”
좋아한다는 말을 듣는 건 행복한 일임과 동시에 쑥스러움을 유발시켰다. 게다가 한두번도 아니고, 몇 번 씩이나 듣다보니 아무렇지 않은 척을 유지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고. 그래서인지 아나이스의 양 뺨에는 옅은 홍조가 띄워져 있었다.
“좋아한다는 말은, 듣기 좋네. 말을 안 하더라도 알 수 있지만 역시 이 편이 직접적으로 와닿아.”
혹시나 쓰다듬는 걸 싫어하지 않을까 생각한 것도 있었지만 그런 것은 아니였다는 듯 모자를 벗는 행동에 방긋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손가락 틈 새로 머리카락이 지나가는 감각이 아까 보다 확실히 느껴진다. 말 잘 듣는 토끼같아. 속으로 생각한다는 게 그만, 입으로 떠들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곤 그 사실을 자각하자마자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며, 뭐가 문제냐는 듯이 시이를 빤히 본다.
“뭐라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내게 말하면 되지. 설마 당사자가, 그것도 내가 좋다고 하는데 눈치를 준다면 일 폭탄을 안겨 줘야지.”
어딘가, 웃고 있음에도 섬뜩한 느낌이였다. 악랄해 보이기도 했고. 금새, 원래대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그게 네 솔직한 기분이야? 그런 것 치곤-”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을 보라며 볼을 아프지 않게 꼬집었다. 그러면서도 안겨드는 시이를 반대편 손으로 붙잡는 것도 잊지 않는다.
“주위 시선을 신경 쓸 게 뭐 있나. 편한대로 하면 되지.”
아나이스도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엄청나게 이미지관리를 하고 있는 중이였지만 그것과 이것은 별개라고 생각했다. 자꾸 그렇게 말하면 실망할 거라는 듯이 짐짓 시무룩한 척을 해 보인다.
“꼬맹이라고 부를까 했지만, 그냥 이름이 좋아.”
성으로 부르는 건 정신나간 짓이고, 애칭을 붙여줄까 했지만 이런 쪽의 센스도 없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서로 이름으로 부른다는 것이면 차고 넘치는 듯 했다.
장갑이 훌륭한 식량이 될수도 있다니. 아니 일단 내 장갑은 가죽으로 만들어지진 않았는데 아리나? 라는 뜻이 내포된 표정으로 애매하게 아리나를 응시하다가 나는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가볍게 끄덕끄덕해보이며 빙긋 웃었다. 알았다는 뜻이였고 다른 주제로 빠르게 넘어가는 아리나를 향한 조용한 배려였다. 토마토 주스가 쪼로록 하고 목을 타고 넘어간다. 맛있다.
'그렇지 아리나가 사준 주스니까 '
그 기분을 맞춰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며, 나는 수화를 하다가 손을 내미는 행동에 고개를 살짝 한쪽으로 갸웃거렸다. 아, 그 뜻이야? 나는 잠시 곤란한 듯 뺨을 긁적여보였다. 이단 심문관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지킬은 나 외의 방문자를 환영하지 않는 타입이니까. 아무래도 그 사건 이후에 일어난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이라고 생각하지만 지킬은 타인과의 관계를 극도로 꺼렸다.
아리나의 머리에 손을 얹고 가볍게 쓰다듬으며 나는 가볍게 곤란한 미소를 띄워보였다. 그리고는 손을 움직인다.
'미안해 같이 있는 아이가 남을 별로 안좋아해 너도 몇번 봤잖아 지킬 말이야 이해해줘'
성의를 거절하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는 아리나의 반협박에도 불구하고 나는 곤란한 표정으로 쓴웃음을 지으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미안해? 라고 눈짓으로 말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장갑이 훌륭한 식량이 될수도 있다니. 아니 일단 내 장갑은 가죽으로 만들어지진 않았는데 아리나? 라는 뜻이 내포된 표정으로 애매하게 아리나를 응시하다가 나는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가볍게 끄덕끄덕해보이며 빙긋 웃었다. 알았다는 뜻이였고 다른 주제로 빠르게 넘어가는 아리나를 향한 조용한 배려였다. 토마토 주스가 쪼로록 하고 목을 타고 넘어간다. 맛있다.
'그렇지 아리나가 사준 주스니까 '
그 기분을 맞춰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며, 나는 수화를 하다가 손을 내미는 행동에 고개를 살짝 한쪽으로 갸웃거렸다. 아, 그 뜻이야? 나는 잠시 곤란한 듯 뺨을 긁적여보였다. 이단 심문관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지킬은 나 외의 방문자를 환영하지 않는 타입이니까. 아무래도 그 사건 이후에 일어난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이라고 생각하지만 지킬은 타인과의 관계를 극도로 꺼렸다.
아리나의 머리에 손을 얹고 가볍게 쓰다듬으며 나는 가볍게 곤란한 미소를 띄워보였다. 그리고는 손을 움직인다.
'미안해 같이 있는 아이가 남을 별로 안좋아해 너도 몇번 봤잖아 지킬 말이야 이해해줘'
성의를 거절하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는 아리나의 반협박에도 불구하고 나는 곤란한 표정으로 쓴웃음을 지으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미안해? 라고 눈짓으로 말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