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인간과 담소를 나누었던 그 일 때문에 지난 한 주간 기분이 참 무엇같았다. 빨리 나아져야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될 텐데, 기분이란 건 마음 먹는대로 쉽게 나아지는 게 아니었다. 덕분에 지난 며칠 동안은 내내 비관하기, 우울하기, '옛 일'을 추억하기, 잠자기, 기타 등등의 전혀 하고싶지 않은 것들로 일정을 가득 채웠으니 말이다. 원하는대로 기분을 바꿀 수 있다면 지금 내가 이러고 있지는 않았을 터였다. 그래, 다시 돌아온 개 신의 술을 고의적으로 들이키길 반복하는 이 행동을 하지는 않았을 테지.
제 기숙사 학생들은 자진해서 술을 들이키는 저의 옆에서 뭐가 그리도 좋은지 내기를 하기도 했고, 개로 변한 저를 또다시 고문하려 달려들기에 간신히 달아나 도착한 곳이 복도였다. 술의 효능은 좀 전에 떨어져버렸고, 새로 마신 술은 아무런 일도 일으키지 않는 평범한 음료였을 뿐이었다. 빈 잔을 신경질적으로 집어던지려다 행동을 멈추었다. 감정에 의해 물건을 집어던지는 것은 폭력적인 행동이다. 그러니 그래서는 안 된다. 나는 그런 행위를 절대로 해선 안 된다. 이마를 짚고, 숨을 가라앉히니 짜증스런 감정은 곧 제게서 떨어져나갔다. 지금의 저는 단순히 재미를 보기 위한 장난이 아닌 다른 것을 원했다. 끝없는 행복감. 그것이 절실히 필요했다. 감정이 자연히 나아지지 않는다면 약물을 사용해서라도 돌려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활할 수 없다. 더는 무기력하게 잠에 빠져 있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니 조금 후에, 다시 술을 마셔보아야겠다.
"아."
그러며 걸으려니 들려오는 인사말이 있었다. 만념. 듣기만 해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감이 오는 상황이었다. 술이라도 마셨나 보지. 눈앞에 선 사람은 지난 사건 이후에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던 여학생이었다. 안면이 있으니 마땅히 인사를 해야 한다. 안녕. 그리 말하려 했으나 며칠 내도록 입을 열지 않았던 탓인지 말은 쉽게 떨어지지가 않았다. 아니, 그래도 말은 해야 했다. 그나마 대화 쯤은 조금만 하더라도 빨리 돌아오는 것 중에 하나였으니. 그러니 저는 할 수 있을 것이고, 그래야 했다.
"...그거 마셨어?"
보아라. 잘 되지 않는가. 오랜 침묵 끝에 꺼낸 말이 그것이었다. 입을 열고는 한참을 가만히 서 있다, 뒤늦게 손을 올려 흔들었다. 하마타면 인사를 빼먹을 뻔했다.
저번에 봤을 때보다 가라앉은 모습이었다. 순간의 怒氣에 불타올랐다면 지금은 서서히 가라앉고 있는 듯했다. 필시 지난 주간에 무슨 일이 있었을터. 허나 나는 묻고 싶지 않다. 물을 필요도 없다. 먼저 밝혀오지 않는 이상 나는 묻지 않는다. 기억하기 싫은 걸 굳이 떠올리게 할 필요는 없다. 누구 한 사람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마셨냐는 말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 그게 아니면 하지도 않을 말투를 쓸 필요도 없다.
"부럽네. 마무 묘과 멊는거같마서. "
이미 다 나아 더이상 아프지않은 왼팔이 다시금 아려오는 이유는, 굳이 따지자면 일종의 후유증이다. 손이 근지럽다고 해두자. 별 시덥잖은 이유로 일렁일 필요는 없다. 시덥잖은 꿈 얘기를 여기서 꺼낼 필요는 없다. 눈 앞의 너는 감정선 외에 아무런 변화점을 찾을 수 없어, 마셨다면 아마 저와 달리 아무 효과도 없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해 질문했다. 그래 그뿐, 단지 그뿐.
>>795 엗 쿨하시군여 체-엣(실망(?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좋슴다 시간나면 일상 조져버리져!아참 그러고보니 요즘 너무 잡담으로만 시간을 떼운 기분이에여 가끔 일상도 돌려주고 해야 하는데.. ''* 암튼 머가 이상해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옳은 말 아님까!
제발 죽어버렸으면. 싸늘한 다용도실 바닥에 쭈그려 앉은 소녀는 갈라지는 목소리로 저주에 가까운 말을 내뱉었다. 악의로 가득찬 목소리가 섬뜩하기 그지없다. 입술이 터져서 질질 흐르던 피는 어느 새 바짝 말라붙어서 턱을 스치는 손가락 끝에 그저 까쓸한 촉감만을 남길 뿐이다. 허나 차마 가시지 못한 불쾌한 혈향은 여전히 역겹다. 마치 쥐가 파먹은 듯 들쭉날쭉한 길이의 손톱이 몹시도 흉했다. 보기도 싫어서, 주먹을 꽉 말아쥐곤 손톱을 숨겨버렸다. 유독 뾰족하게 부러진 손톱들은 여린 손바닥을 파고든다.
죽어버렸으면, 죽어버렸으면, 제발 좀 죽어버렸으면. 마른 몸에 맞지 않는 커다란 상의와 헐렁한 반바지는 초겨울의 다용도실에 감도는 한기를 막아주기에는 역부족이었기에, 어린 소녀는 날것 그대로의 추위를 몸으로 받아내며 덜덜 떨 수밖에는 없었다. 단언컨대, 소녀에게 있어서 가장 괴로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 죽어버리고 싶어. "
죽어버리고 싶다고 중얼거리는 목소리에서는 억눌린 분노와 고통이 절절하게 묻어났다. 정돈되지 않은 긴 곱슬머리가 얼굴로 주르륵 흘러내려왔다. 죽어버리고 싶어. 다시금 되뇌인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죽여버리는 게 아닌 죽어버리고 싶다. 섬찟한 말이지만, 고작 모음 한 자 차이일 뿐인데도 그 뜻 자체가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죽어, 와 죽여. 죽여버리자, 죽어버리자.
" ....진작 죽었어야 했는데. "
맞아. 죽었어야지, 같이 죽어버렸어야지. 너 때문에, 너 같은 것 때문에 내가- . 이따금씩 불규칙적으로, 마구잡이로 쏟아지던 폭언은 딱히 귀에 거슬리거나 하진 않았다. 뭐, 그럴 수밖에는 없겠다만. 익숙해진 것 이전에, 그 말들은 전부 사실이었으니까. 망할 계집년. 아, 그래. 전부 사실이다.
" 왜.. 나 혼자.. 역시, 그냥 어릴 때 죽었어야.. "
아. 너무 미워. 증오에 찬 소녀는 빠드득, 하고 이를 갈았다. 밉다. 미워서, 끔찍하게 미워서 괴로울 따름이다.
아아. 그래. 어머니, 아버지.
나를 삼촌에게 맡기지 말고 죽을 때까지 함께 있어줬어야지. 죽더라도 가족이서 다 함께 죽었어야지. 나만 살리지는 말았어야지. 그러지는 말았어야지. 그 때 죽었다면 이렇게 괴로울 일이 없었을텐데. 원망을 받는 상황에 처할 일도 없었을텐데. 고통을 알게 될 일이 없었을텐데. 정말이지 밉고 싫다. 머릿속에서만 배회하던 먼지같은 원망들이 뭉치고 뭉쳐, 두통을 유발하기에 이른다. 멈췄던 코피가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