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정적만이 멤도는 어두컴컴한 복도에서 신경질적인 발소리가 울려퍼졌다. 발소리의 주인, 사기노미야 츠카사는 짜증스럽게 걸음을 내딛으며 제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현재 츠카사는 방금 전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때문에 크게 분개한 상태였다. 몰래 숨어든 레지스탕스 두명을 가지고 노는 것으로 상황은 마무리 되었지만 도무지 분이 풀리지 않았다. 생각하면 할 수록 짜증나네 정말. 방금 전, 같은 추종자 소속인 세연과의 짧막한 전투는 츠카사의 정신을 흐트러놓기에 충분했다. 자신보다 그녀가 더 다쳤다는 결과로 스스로를 위안해봤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작은 욕짓거리가 정적 속에서 울려퍼졌다.
"아..짜증나 짜증나 짜증나 짜증나."
라비포르스 마법을 맞았으면 안 됐다. 승패의 여부를 떠나서 누군가의 앞에서 그런 추태를 보였다는건 스스로도 용납이 불가능했다. 츠카사는 자신의 왼 손을 들어 있는 힘껏 벽을 내리쳤다. 분노에 사로잡힌탓에 통증같은건 느껴지지 않았다. 방금 전, 위 아래를 가려내려던 승부는 무로 돌아갔지만 언젠간 반드시 토끼로 변했을때의 그 충격을 되갚아 줄 것이다. 복도를 지나 정원으로 나온 츠카사는 몸을 감싸는 서늘한 공기에 길게 탄식을 내뱉었다. 미세한 바람소리마저 거슬렸다. 그것도 잠시, 인기척이라도 느꼈는지 재빨리 뒤를 돌아본 츠카사 그 장소를 향해 재빨리 지팡이를 겨누었다.
"뭐야?"
차가운 물음이 스쳐지나갔다. 평소의 츠카사였다면 능글맞게 인기척의 주인을 맞이했겠지만 오늘의 그는 너무나도 예민했다.
이건 있을수가 없다.고작 레지스탕스 따위에게,그것도 여자 둘에게 이 내가.데스이터의 엘리트인 나 최도윤이 완벽히 농락당한 것도 모자라서 유효타를 하나도 내지 못하고 완벽히 패배했다. 꿈일거야,꿈이야.꿈이여만 해.의미 없는 중얼임이 이어지고서 이내 한숨을 폭 내쉬었다.누구에게도 패배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이렇게 패배의 쓴맛을 보게 된건 참 신선한 기분이었다. 복수.복수.오로지 찾아내서 복수한다.그때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철저하게 박살낼거야.레지스탕스들,절대 가만두지 않을거라고. 지금 당장이라도 핀드파이어로 건물을 집어삼키고 싶었다.파이어 스톰으로 모든걸 태워버리고 싶었다.하지만,그랬다가는 아군에게마저 피해가 가는걸. ....뭐 애초에 그런건 상관 없지만서도.
그나저나 그 지령은 대체 뭐였을까.대체 뭐가 그렇게 중요한 내용이 담겼길래,그런 곳에서 은밀하게 전달받으려 했던 것일까. 생각하면 할수록 분하고도 의문스러웠다.착잡한 심정이 되어서는 정원을 거닐던 도중 익숙한 인영을 발견했다.
"아."
잠깐 누군가 했지만,역시 츠카사형이구나!여기서 만나다니,우연도 이런 우연이 다 있나. 그래,표정 풀고.적어도 같은 편 앞에서는 기죽지 말자.져버린 건 분하기는 했지만.. 아무틈 이내 곧 방긋 웃으면서 형 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그러고는 이내 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엣,저예요 저.최도윤이요.츠카사 형."
평소와는 다르게 차가운 물음과 예민한 모습에 살짝 놀라고는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섰다.어라,평소의 형과는 조금 분위기가 다른데.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지팡이까지 겨누는 걸 봐서는 아무래도 뭔가 있었던 모양이다. 눈을 몇번 깜빡이던 도윤은 이내 입을 열었다.
"그..혹시 무슨 안좋은 일이라도 있으셨던..건가요?"
뭔가,없다고 하는게 더 이상할것 같은데. 아까 전 자신이 패배한 것에 대해서 분함을 느꼈던 것보다도 더 심하게 안좋아 보이는 모습에,살짝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인기척의 주인이 자신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자 츠카사는 그제서야 지팡이를 내렸다. 최 도윤. 츠카사는 이전부터 그가 썩 마음에 들었다. 그와 자신은 성격적으로 잘 맞는 구석이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자신이 누군갈 괴롭힐때면 도윤은 그 상황을 말리긴 커녕 자신의 행동에 동참해주었다. 성가신 구석도 없고. 제 말도 잘 따랐으니 도무지 싫어할 구석이 없는 후배였다. 츠카사는 작게 숨을 들이키며 도윤의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했다. 아직 분노가 가라앉지 않은 것인지 츠카사의 눈빛은 날카롭기 그지없었으나 확실히 방금 전 보다는 유순한 빛을 띄고 있었다.
"너였어? 이 시간까진 무슨 일로?"
평소와 같은 나긋나긋한 말투 사이엔 미세하게 날이 서 있었다. 츠카사와 가까이 지냈던 사람이라면 충분히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들이켰던 숨을 크게 내쉬었다. 이제서야 분노가 조금은 가라앉은 느낌이 들었다. 마음이 진정되자 갑작스런 도윤의 등장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평소 자신이 알던 그는 이런 늦은 시간까지 밖에 나와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천천히 위 아래로 그를 훑어보았다. 그다지 좋아보이는 행색은 아니었다. 군데 군데 옷이 더러워진 꼴을 보니 방금 전 까지 전투라도 치른 것 같았다. 츠카사는 무슨 일 있었냐는 그의 물음을 가볍게 묵살시킨채 천천히 입술을 달싹였다.
"싸웠어? 누구랑?"
레지스탕스? 추종자? 문뜩 방금전 일어났던 자신과 세연의 전투가 떠올랐다. 츠카사에겐 동료애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비슷한 목적을 가지고 잠깐 뭉쳤을 뿐. 그들과 자신이 같은 편이라고 생각해본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눈에 거슬린다면 망설임 없이 지팡이를 뽑아들 수 있었다. 도윤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제멋대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긴 했지만 같은 소속의 사람들에게 지팡이를 겨눌만큼 막 나가는 사람이라 생각되진 않았다. 도윤의 전투상대가 레지스탕스였다고 멋대로 단정지어버린 츠카사는 특유의 나긋나긋한 미소를 얼굴에 내걸었다.
평소와는 조금 다른 모습에 긴장했는지 지팡이를 살짝 꼬옥 쥐었다가 이내 힘을 살짝 풀고 느슨하게 잡았다.방금 전의 날카로웠던 눈빛이 조금 누그러든것을 확인하고는 이내 배싯 웃었다.
"네,저였답니다!레지스탕스 놈들인줄 아셨나보네요!"
아무래도 자신을 레지스탕스 쪽 누군가라고 착각했던 모양이라고 생각하고는 가볍게 손으로 브이를 만들었다.아직은 미세하게 날이 서 있는 말투였지만,그래도 아까 싸늘한 말투보다는 확실히 나긋해졌어.이제야 내가 알던 츠카사형으로 돌아왔구나! 그보다,증오하는 레지스탕스 녀석들과 동격시된것만 같아 약간 불만이라는 기분이 안 들지는 않았지만,그래도 일단 츠카사 형은 자신에게 기분 나쁘라고 그런 말을 하는 형이 아니었기에 그냥 기분 탓이라고 생각하고 넘겼다.당연하지,저 형이랑 나랑 얼마나 친한데! 이 시간까지 무슨 일로 나왔냐는 물음에는,적당히 바람이나 쐬러 나왔다고 얼버무렸다가 싸웠냐는 말에 당황한듯 눈을 깜빡였다.
"..에,어떻게 아셨어요?혹시 직접 보신건 아니죠?"
아,누구랑 싸웠냐는 질문을 하는 걸 봐서는 직접 본것은 아닐지도. 하여튼 꽤나 쪽팔리는 이야기라서,괜히 으음.하고 뜸을 들였다.나처럽 완벽한 사람이 실컷 농락당하고 왔다는 건 아직까지도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었다.은근히 승부욕과 자존심이 센 도윤에게 패배라는 건 있을 수 없었으니까. ..그래도 형에게라면 털어놔도 괜찮겠지.쌩판 모르는 남이 아니니까.
"뭐어,아무튼 놀랍게도 정답!입니다!레지스탕스 놈들이랑 잠깐 맞붙었어요."
물론 그 끝은 좋지 않았지만요.하며 분하다는 듯 이를 살짝 악물었다.직접적으로 졌다고 말하기에는 자신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물론 아까 전에 무의식적으로 입 밖으로 내긴 했지만,그때는 졌다는 걸 인정하지 않았더라면 나도 스투페파이 맞고 뻗어있을지도 몰랐거든.일단 재미로써 시작한 일이니,내 몸 다치지 않는게 최우선이었거든. 그건 그렇고,츠카사 형은 무슨 일 있었냐는 물음에 딱히 답을 하지 않았다.뭐어 말씀하기 힘드신것 같으니,그냥 넘어가도록 할까.궂이 캐묻지 않아도 아까 전 날선 모습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무슨 일이 있었다 정도까지만 알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그제서야 제 옷이 더럽혀졌다는 걸 깨닫고는 아 했다.쳇,하얀 옷이라 더럽혀지면 곤란한데.
"핫,제가 미처 못 봤던 모양이네요!..솔직히 엄청 정신없이 싸워서 옷 더러워지는 건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네요."
그리고..결정적으로 분하기도 했으니까요.하고는 지팡이를 쥔 손에 살짝 힘을 주었다. 이렇다저렇다 했지만 도윤이 그것을 신경쓰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분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앞서 서술했듯,자신이 졌다는 걸 아직까지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으니까.
"....눈 앞에서 지령까지 확인했는데도 놓치다니.이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저처럼 완벽한 사람이 고작 그런 레지스탕스 따위에게 철저히 졌다는 게 가장 분하네요."
얍 갱신. 자기 전에 넘모 심심했습니다... https://s17.postimg.org/r9dpsao8v/image.png https://s17.postimg.org/tdy2ted0v/image.png https://s17.postimg.org/e585fnlxb/image.png https://s17.postimg.org/o2j68qgof/image.png
>>487 설마 -아.. 정말로. 죽고 싶었어요. 아니요. 차라리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저를 일부러 붙잡지 않은 게 아니란 걸 알고도 저는 좋아하는 것을 한순간에 잃었고, 좋아하던 것에 처절히 배신당했어요. 저는 이제 좋아하는 걸 다시는 만들 수 없을지도 몰라요. 전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좋아하는 걸 증오하게 되어버린 전 완전히 삶이 부서져버렸는걸요.
이게 그거였나요ㅋㅋㅋㅋㅋ 갑자기 의미심장해보이는걸요ㅋㅋㅋㅋㅋ 음 근데 아직도 가끔씩 옆동네가 열리는 꿈을 꾸는 제가 할 말은 아니네요... 어짜피 정나미 떨어져서 열려봤자 돌아가진 않겠지만, 스레딕 때마냥 갑자기 다시 열려서 필요한 스레들 다 백업하는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