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어놓은 신발을 의자 밑에 넣어 놓고는 책 무더기에서 책을 하나 꺼내 책상에 올려두었다. 세계 시해법의 기록은 아니었다. 그 흉물스러운 책은 나중에 기숙사로 돌아가 안전이 보장된 상태에서 읽을 생각이다. 책을 펼쳤다. 책장에는 안전한 가공을 위한 순서나 채집 방법 등등, 재료에 대한 설명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복잡한 내용들은 설렁설렁 넘어가면서, 메모장에는 자주 나오는 약재들의 이름들을 써내려갔다.
"아, 그렇긴 한데. 그래도 현대 문물에 찌든 사람한테는 세상이 이렇게 삭막해서 이떻게 살겠어."
잘 쓰다 말고 펜을 놓치고 말았다. 게임을 할 수 없다는 말을 하기만 해도 힘이 빠진다는 듯, 사이카의 표정이 죽상이 되었다. 하, 인생. 매일매일 어떻게 사냐고 히면서도 살아지기는 하는 게 삶이라더라. 그렇게 말하면서도 점점 학기 중의 생활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이대로 몇 달 정도만 더 기다리면 컴퓨터와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다. 그래, 그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교장과 교수, 다른 학생들이 전자기기 금지 규칙의 부당함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물론 그들이 마법 사회에 속한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사는 세계가 다른걸.
"그런데 너도 한 번에 알아듣네?"
별 반응을 기대하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것도 조금, 저 학생의 출신이 짐작가는 형태로. 직접적으로 묻지 않았지만 사이카의 말에는 물음의 뜻이 있었다. 너도 순혈은 아닌가 보구나. 사이카는 자신의 출신을 숨기고 다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남이 제 태생에 대해 묻는 것에는 경계심을 가지고 있는 편이었다. 태생에 대한 문제로, 결코 엮이고 싶지 않은 누군가에게 얽혀 버렸으니까. 이제는 많이 유해진 척하는 가식적인 웃음이 떠올랐다. 자신이 두려워하는 누군가의 모습이 생각나자 기분이 나빠졌다. 쯧, 메모장 구석에 그의 이름 초성을 쓰고, 그 옆에 ㅗ자를 다섯 개쯤 그리니 불쾌감이 조금 옅어졌다. 짜증스런 표정을 조금 지우고, 사이카가 덧붙였다.
"아. 별 뜻은 없어."
// 특별출현 츸사 나왔슴다~~~~~~ 아직 이렇게밖에 못 나오게 해서 미안하다 츠카사쟝~~~!!!!!!! 혐관킹 가즈아!!!!!!!
혐관킹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실은 제가 오늘 진단메이커 찾으면서 돌아다녔었거든요? 그 중에 '신상에게 소원을 빈다면'이 있었어요. 솔직히 지애 결과는 노잼이라 이 스레엔 안올렸었는데, 그래도 아이디어가 맘에 들어서 동화학원 아이들 다 넣어 봤었는데. 츠카사 소원이 '모두에게 미움 받지 않도록'이 나왔더라고요. 되게 절묘하게. 지금은 날짜가 바뀌어서 변했겠지만요.
'잘 들으렴. 지금 만나는 이가 너와 결혼할 아가씨란다.'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어차피 자신은 데릴사위로 들어가거나, 방계가 되는 수 밖에 없었으니까요. 어른의 말에 고개를 숙이고 퍽이나 순종적인 면을 강조하였습니다. 남자는 고풍스러워 보이는 식당에 예약된 방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여자와 마주보았고.. 크게 놀랐습니다.
"난..네가 이런 자리에 나올 줄은 몰랐어." 입술을 짓씹으며 한마디 한마디 내뱉었습니다. 당연하지요. 저 사람은.. 얼음같은 사람인걸요. 내가 정말로 존경했던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람인데.
"나도 마찬가지야. 네가 이 자리에 나온 건 나도 처음 알았어." "아마도 네가 나온 걸 보면, 내 아버지가 꽤나 신경써서 고른 모양이네." 네 뛰어난 외모나, 혈연으로의 관계가 좀 멀기도 하고, 네가 지닌 힘이라던가, 명문가인 것도 한몫하지. 그녀는 눈 하나도 깜작이지 않고 여기에 온 것을 대접하는 건 당연하다는 듯 우아하게 찻잔에 차를 따라 그에게 건넸다. 차를 받았지만 눈길 하나도 주지 않은 채 눈을 치켜들어 그녀를 노려봤다.
"내가 네게 살의를 품고 있다는 걸 아는데도 아무렇지 읺게 앉아있을 수 있는 거야?" 입술을 깨물며 말한 것에 그녀는 차를 홀짝이며 마신 뒤 가볍게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더 이상 들으면 참을 수 없을 것 같아.
"그 일은 유감이야. 하지만 난 마땅히 해야 할 말과 행동을 했을 ㅃ..." "닥쳐!" 비명같은 소리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눈하나 깜작이지 않고 말을 이었습니다.
"그는 너는 잘 모르겠지만, 분파에서의 맹약을 어긴 합당한 대가를 받았지. 그렇지만 그는 그나마 납골당에라도 들어갔는걸?" "아 이건 비유가 좀 다른가? 애초에 보통 사람은 대부분 잘만 들어가는 곳이니." 나와 너는 별 일이 없다면 몸을 남길 수 없을 테니까. 라고 말하는 표정은 약간의 쓸쓸함을 담고 있었지만, 언제나처럼 화사했다. 그리고 그녀의 말은 하나도 정말 하나도 틀린 것이 없어서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널 증오해." 그녀는 잠깐 멈춰섰고, 화사하게 웃었습니다.
"할 수 있을 때 마음껏 해." 네가 본 대로라면, 잃을 걸 알고 있잖아? 라고 말하고는 별 일 없다면 우리는 이어질 거야. 라고 덧붙이고는 날 돌아보지도 않은 채 나갔다.
별 뜻 없다는 말에 그만 웃어버렸다. 그리고 아차 하고 바로 표정을 굳혔지만, 나쁜 의도로 말한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다만 과거의 일이 떠올라 웃어버린 거다. 앞에 있는 여자아이에게 너무 미안해졌다. 아, 왜 웃은 거야. 티는 안 내려고 했지만 흔들리는 동공부터 표정까지 안절부절 난리도 아니라는 게 바로 느껴졌다. 어쩌지, 사과할까. 사과도 기분 나빠하면? 또 실수했어. 난 바보야. 누가 보면 그 정도는 지나치게 부정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승하는 항상 조심스러웠다. 그럴 수 밖에 없었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자괴감에 빠져있다가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벌떡 들었다. 말은 또박또박, 변명 없이 간단하게. 속으로 되뇌며 말했다.
"방금 제 행동이 조금 무례할 수 있었는데 죄송합니다. 기분을 상하게 할 의도는 전혀 없었지만 혹시 기분이 나빴다면 말해주세요. 제대로 사과하겠습니다."
경직 된 표정으로 여자아이를 바라보는 승하는 긴장으로 평소에는 따뜻하기만 한 손이 차가워졌다. 이래서 인간관계는 힘들다. 작은 행동이 오해를 일으킬 수 있고, 상대가 오해하지 않았더라도 오해 했으면 어쩌지라고 걱정하게 되니. 승하는 벌써부터 가슴이 답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