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의 삶을 파탄내고 감히 시민들의 재산까지 강탈하려하던 왕은 결국 청년장교단의 혁명으로 폐위되었고 그의 삶은 시민들앞에서 공개처형당하는 비극적인 결말로 끝이났습니다. 청년장교들은 무능했던 왕정이 파탄낸 경제를 복구하고 마땅히 중앙정부에 의해 관리되어야 할 땅들(과거에 왕이 그들에게 진 빚에 대한 대가로 불하한)을 무단으로 점거한 구시대의 잔재인 군벌들을 싸그리 몰아내고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자본가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그들또한 무능한 집단이었습니다. 바야흐로 군사적 실력을 가진 자라면 누구라도 쿠데타를 생각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며 바슈아의 천년역사에서 유래가 없을 정도로 국가는 전면적으로 약해졌습니다. 무수히 많은 시민과 정치집단들이 각자도생을 외치며 무장했고 정부는 수도와 일부도시들을 통제할 뿐 대부분의 지역에서 반란군의 존재조차 눈치채지 못할 지경이 되었으니 영웅이 등장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역사는 머지않아 종말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젊은 엘리트들은 무너져가는 제국을 바로잡고 출신과 재산에 관계없이 모두가 존중받는 세계를 만들겠다는 부푼 꿈을 가지고 있으나 그들에겐 아직 돈도 힘도 부족합니다. 이런 어두운 시간속에서 오로지 국가를 파괴하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한 사악한 집단들이 순진한 사람들을 끌어들여 거대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으며 우리의 이웃국가인 도이메이양, 엘링, 코코엘름은 지금이 우리를 무너뜨리고 자신들이 대륙의 패자가 될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유아레그는 다양한 부족들이 사는 넓은 구릉지입니다. 본래 유아레그 총독부가 설치되어있었으나 혼란기를 거쳐 현재는 유아레그군벌과 하랑군벌이 양분해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유아레그라는 말의 어원을 알 수 없으나 지명이란게 으레 그렇듯이 고대의 선주민들이 붙여둔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을겁니다. 각 부족들은 자연경계를 두고 서로 떨어져 살기때문에 사용하는 언어에는 다소 차이를 보이나 그들의 문화와 언어는 주변의 다른 지역 부족들과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멀지 않은 과거의 어느 시점에 이들은 한차례 대초원의 패권을 차지했던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으나 어떤 이유에서 이들의 세력이 무너져 내렸는지에 관해서는 여러 추측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바슈아 제4왕조의 1730년 대북방 정벌 당시에도 유아레그인들은 고립된 환경과 구릉지라는 환경을 이용해 마지막까지 저항했고 제 5왕조 시기인 1758년에 가서야 가까스로 굴복한 이들은 이후로도 중앙정부를 향해 상당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 5왕조 말기인 1808년 경에 이들은 어떤 이유로 반란을 일으켰고 잔혹하게 진압당했는데 당시는 국가가 혼란스러운 시기였고 진압군사령부가 이렇다할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길이 없습니다. 다만 이들은 여전히 공포에 질려있고 바슈아인들에 의해 자행된 대규모 학살의 악몽을 잊을 수 없다고 합니다. 유아레그는 척박한 환경이긴하나 대륙 북단으로 통하는 비교적 평탄한 교통로로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지역이며 철도가 건설되고 석탄광산이 발견되며 그 가치가 더해지고 있습니다.
유아레그의 면적인 160만 제곱 킬로미터는 신장위구르자치구의 면적인 166만5천 제곱킬로미터를 참조했습니다. 비슷한 면적에 환경도 비슷하지만 중간에 사막이 끼어있는 신장위구르에 비해 사막대신 숲이 있는 약간은 살만한 환경입니다. 이 지역에 대한 설정을 짜는데 도움을 주실 수 있는 분들은 위구르인들의 문화를 참고해서 작성해주시면 될것 같습니다
한편 바슈아본토에서부터 북쪽 끝까지 이어지는 바슈아 남북횡단철도 1790년대 부터 1810년대 사이에 건설되었고 유아레그 구간은 1798년에 착공해 1805년에 완성되었습니다. 철도가 건설되기 이전에 바슈아에서 유아레그로 이동하려면 좁고 험한 산길을 힘겹게 지나거나 비마와 워블을 지나 북쪽 해안선을 따라 이동하다가 허륵에서부터 계곡을 따라 이동하는 비효율적인 경로를 이용해야했습니다. 이로인해 당시 중앙정부는 북방의 대부분 지역들을 직접통제하지 못했고 명목상 토후들과 총독들에게 통치권을 위임했으나 이들의 통치는 상당히 개판이었고 얼마안가 군벌천하가 되었습니다.
1790년대 중반부터 1820년대 초반까지는 가장 혹독한 시기였습니다 1797년 왕립연구소의 과학자들은 5년전에 비해 최근의 겨울이 약 15일 더 길어졌고 최저기온이 2도가량 더 낮아졌다는 의미심장한 보고를 올렸으나 더 심각한 여러문제들에 둘러싸여있는 왕실은 이 사실에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이어 1800년 재무부는 최근 10년사이 농업생산량이 큰폭으로 감소했으니 일시적으로 세율을 낮추는 방안을 건의했으나 군사개혁과 철도산업에 투자하던 지출을 줄일 생각이 없었던 왕실은 애써 이 요구를 무시했습니다. 마침내 1803년 왕은 소빙하기가 진행되고 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사랑하는 신민들을 위해 도움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나 민중들의 분노는 통제되지 않았고 각지에서 농민봉기가 일어났습니다. 제대로 봉급을 받지 못하던 경찰들은 반란에 동참했고 반란소식조차 늦게 알아차린 중앙정부는 1805년 1월 다급하게 진압군을 편성했으나 병역기피와 불량무기로 가득한 중앙군은 별다른 활약을 할 수 없었습니다. 농민봉기군은 점차 향우회라는 거대조직으로 발전했고 그와 동시에 농민봉기를 가장한 무법자 집단들이 공장과 철도를 습격하자 왕실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한 자본가들은 용병을 사들여 군사조직을 갖추며 철도관리위원회라는 별도의 정부를 구성해 중앙정부의 통제에서 이탈했으며 석탄공장주들도 무법자들로 부터 공장을 지키기 위해 석탄협회를 창설했습니다. 농촌에서는 공화당이라 불리는 출신을 알 수 없는 나부랭이들이 모여 농민들을 이끌며 국가질서를 위협했습니다. 1807년 왕실은 향우회와 5년간의 면세와 앞으로 세율을 대폭 낮추겠다는 조건으로 강화를 맺었으나 일부지역에서 이 약속이 잘 지켜지지 않아 산발적인 반란은 계속되었습니다. 1810년까지 공화당은 국가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귀족들과도 협약을 맺어 바슈아 안에 바슈아공화국이라는 나라가 하나 더 존재하는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1806년 석탄광산의 노동자들이 반란을 일으켜 공장주들을 추방하고 일부 용병단이 노동자들과 결탁하자 공장주들은 공화당에 도움을 청했고 노동자들은 식민지 노동자세력들을 끌어들여 대항했습니다. 산지에서의 전투에 능했던 산악지대 원주민 노동자들의 활약으로 공화당세력은 밀려났고 도심에서까지 전쟁이 이어지자 비마와 워블을 비롯한 여러 식민지들이 독립군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으나 그들은 해변의 모래알처럼 너무 많고 작은 세력들이어서 쉽게 진압되었습니다. 유아레그 반란을 마지막으로 식민지들의 반란은 일단락되었으나 국가경제가 파탄나고 민심이 들끓는 와중에 중앙정부는 군벌들의 힘을 빌려 민심을 잠재우고 국내의 무장집단들과 맞서려고 했습니다. 1812년 공화당이 수도를 점령하자 왕은 도심으로 나와 변명을 늘여놓기 시작했고 분노한 민중에게 잡혀 처형당했습니다. 곧 군부들이 수도를 탈환하고 왕위 계승자를 찾으려 했으나 이내 그럴듯한 왕가의 혈통이 없다는데 동의하고 자기들끼리 군부연합정권을 결성했으나 국가는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더 심각한 무정부상태에 빠졌습니다. 왕실이 무너지자 중앙군에 소속된 장교들조차 이 나라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고 그들 중 일부는 바슈아 청년장교단이라는 조직을 창설했습니다. 이 무렵 공화당이 세력을 잃고 군부와 노동자 세력이 결탁하자 자본가들은 이권을 되찾아달라며 청년장교단과 손을 잡았고 장교단은 어렵지않게 무능하고 욕심만 가득한 자들을 밀어내고 무정부 상태를 종식시켰습니다. 1815년 바슈아 혁명정부는 시민들과 자본가들의 축복속에서 바슈아정부의 정상화를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능력이 부족했던 탓인지 바슈아 민족의 운이 다한 것인지 자연은 더 혹독한 겨울을 보여줬고 설상가상으로 전염병이 창궐하며 거대한 나라의 미래에 먹구름을 드리웠습니다.
동북부 일부 지역에선 여전히 왕의 힘은 확고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조차도 왕이 직접 통치하는 영역이 아니라 지지자들의 영역에 불과합니다 남부의 파벌은 왕에게 대립각을 세웠으나 이들또한 왕을 협박해서 이익을 챙기려는 자들일 뿐 내란을 일으키는데는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나라의 동쪽과 서쪽 변방의 여러 지역들은 중립을 표방하고 있으나 행정체계가 무너진 현재로선 이들의 생각을 도저히 읽어낼 수가 없습니다. 서쪽에선 상당히 오래전 농민들이 대규모 봉기를 일으켰고 도저히 그들을 제압할 수 없어 그들의 자치정부수립을 허가하고 말았습니다. 자치정부가 수립된 이래로 이들은 왕에게 칼날을 들이밀지는 않고 있지만 세금은 거의 내지 않으니 있으니 중앙정부의 암덩어리입니다. 이 나라의 나머지 영역들은 무정부상태나 마찬가지여서 온갖 무법자들이 활개치고 있습니다. 해군 사령부가 장악한 도서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들은 하루도 총성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각각 공화당과 사회당이라 불리는 이 무법자들은 지금은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정신이 없는듯 하지만 확실하게 왕에게 칼을 겨누고 있습니다. 그 밖의 지역들은 제국에서 이탈하지 않았을 지언정 왕의 통제에서는 확실히 벗어난지 오래입니다. 이 나라의 미래가 어디로 향할지 모르겠으나 언제나 그래왔듯 수많은 시민들이 억울하게 희생당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