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또한 하나의 어린 양일 뿐이오나, 이 말을 듣고 계신 분들에게 이 말이 깊이 마음 속에 남기만을 간절히 비옵니다.
인간은 스스로 앞에는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하였는지도 그 사후에도 존재할 세계가 있는지 모르옵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 세계가 영원했으면, 우리가 이 영원한 세계에 영원히 참여했으면 하는 것을 바라옵니다. 한번 이 인생에 불러내어 지면 우리 인간은 자기를 둘러싼 자기를 각성케 하고, 자기를 비웃고, 자기를 파멸시킴에도 영원히 떠나보내기 싫다는 감정을 느끼게 하는 이 인생에서 자기의 몫을 요구하옵니다. 우리 인간은 자기의 생활이 시작되었음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리고 그것이 끝나기를 바라지 않사옵니다. 우리는 자기 존재의 확실성에 대해서 큰소리로 외치고 또 조그만 목소리로 비옵니다. 그런데 그 확실성은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우리에게서 미끄러져 나가게 되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에너지를 가장 강하게 움직이는 것은 불명한 미지의 것이므로 우리에게 확실한 지식은 죽음과 부동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지요. 인간은 확실성 속에 안주할 수 없습니다. 완전무결을 향한 불확실한 정신 속에 줄곧 떠 있사옵니다. 그리고 그는 아무리 멀리 회의주의 속에 길을 잃고 들어가더라도, 오만과 호기와 증오와 유행의 결과 아무리 깊이 부정 속에 빠져들어 가도 언제나 희망으로 되돌아오게 되옵니다. 희망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옵니다.
따라서 때때로 몽롱해지는 수는 있지만, 완전무결을 향한 인간의 정진이 소멸하는 일은 절대로 없사옵니다. 철학적인 여러 의혹의 안개가 달 앞의 구름처럼 그의 가슴속을 지나가지만, 그 정진은 여전히 그 존재를 지속하며 홀연히 다시 그러한 안개 뒤에서 조금도 다치지 않은 휘황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지요. 인간의 내부에서 이 억누를 수 없는 완성에 대한 욕구는 인간이 지극한 신뢰와 지극한 환희로 아무런 이성에 의한 통제 없이 가지가지의 종교적 가르침을 향해서 돌진한 사실을 설명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옵니다. 그러한 가르침들은 그들에게 무한한 것을 약속하여 그들의 본성에 적합한 것을 그들에게 권장하고 완성을 위해서는 언제나 필요 불가결한 일정한 틀 속에 그들을 넣은 것이옵니다.
이 세계는, 그리고 있을지 모를 그 이상의 무언가도 우리가 본 바로는 우리를 그 재료로 하여 자기가 자기를 창조할 수 없었으므로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이 세계를 창조한 셈인데, 그 힘은 설사 그것이 어떠한 힘이었든 자기 자신에게 알 권리를, 무엇 때문에 우리를 창조했으며 어디로 우리를 데리고 가는가 하는 의문에 대해서 알 권리를 보유하고 있사옵니다. 이 힘은 자기에 대해서 강구된 온갖 기도에도, 또 자기에 대해서 제시된 온갖 욕구에도 이 힘은 우리가 본 바로는 자기의 그 비밀을 간직하기를 바라옵니다. 인류는 여러 종교에 물었사옵니다. 그러나 그 종교들은 가지각색이어서 인류에게 보인 것들이 전부 뿌옇게 흐려지고 말았사옵니다. 인류는 또 철학에 얼굴을 돌렸사옵니다. 그런데 이것 또한 서로 모순을 가져와 그들에게 전자 이상의 것을 설명하지 못했던 것이옵니다. 그래서 인류는 본능과 상식에 의해서도 자기를 다스리려고 애쓰고 있사옵니다. 그리고 인류는 방법을 모른 채 이 지상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이 지구가 제시하는 온갖 방법에 따라 될 수 있는 대로 행복해지려고 애쓰옵니다.
인생에서의 온갖 어려움에 대한 선약으로 근로를 권하는 사람들이 있사옵니다. 이 약은 널리 알려진 데다 또 그 효험도 그리 나쁘지는 않사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결점이 있었고 또 지금도 결점이 있사옵니다. 인간이 근육과 지능을 써서 활동하게 하라. 그러나 하여간 먹을 것을 얻는다든가 재산을 모은다든가 영예를 얻는다든가 하는 것이 절대로 그의 유일한 관심거리일 수는 없는 법이겠지요. 이러한 목적으로 자기 자신을 한정한 모든 사람은 그 목적으로 달성한 찰나에서까지도 아직 자기에게 무엇인지가 부족함을 느끼옵니다. 요컨대 문제는 인간이 제아무리 무엇을 만들어 내고 또 무슨 말을 하고 혹은 또 남에게서 무슨 말을 듣고 하더라도 아무튼 우리 인간은 길러야 할 육체와 교육하고 발전시켜야 할 지능으로 이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밖에 또 우리에게는 확실히 넋이라는 것이 존재하여 이 넋이라는 것이 또 자기의 요구를 제시하고 있다는 데 있는 것이옵니다. 이 넋이라는 것은 모든 빛을 얻고 모든 진리를 얻기 전에는 인간을 괴롭히옵니다.
넋은 이 세계가 숨 쉬고 있는 공기 전체에 가득 넘치고 있사옵니다. 사회적 개조를 개별적으로 바라는 몇몇 개개인의 넋은 조금씩 서로서로 찾고 부르고 접근하고 한 데 뭉치고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집단, 즉 인력의 중심을 만들었는데, 이 집단, 즉 인력의 중심을 향해서 지금은 다른 넋들이 세계의 사방에서 종달새가 거울을 보고 날아들 듯이 돌진해 옵니다. 이 넋들은 그렇게 하여 세상 사람들이 서로 교제케 함으로써 의식적이고 불가피하게 최근까지 서로 적과 적이었던 여러 국민의 융합, 일치, 그리고 올바른 진보를 내일 실현하게 하려고 공통된 넋을 만들었사옵니다. 하지만 이 공통된 넋은 결국 언제나 모든 넋을 품을 수 없었고, 그렇게 넋들은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을 반복할 뿐이었사옵니다. 그 넋들은 언제나 겉으로만 남들을 품을 뿐, 결국엔 스스로만을 품을 뿐이었기 때문이었사옵니다.
개개의 개성은 여타의 모든 것에서 완전히 구분된 존재이다. 참된 존재는 오직 나 자신 속에 있을 뿐이고 여타의 모든 것은 내가 아니며 나와는 무관하다. 바로 이러한 인식이야말로 살과 뼈가 그 실제성을 확증하고 있고, 온갖 이기주의의 기초를 이루고 있으며, 모든 적대적이고 부정하고 사악한 행위가 그 현실적인 표현의 구실을 하는 것이옵니다.
내 참된 내적 존재는 목숨이 있는 모든 것 속에 그것이 내 이성 속에서 나 자신에게만 드러나고 있는 것과 같은 정도로 직접 살고 있다. 모든 것은 너이다. 이러한 인식은 동정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으므로 온갖 참된 것, 즉 몰아적인 덕성이 그 위에 근거하고 있고 또한 하나하나의 선행이 그 현실적인 표현의 구실을 하고 있사옵니다. 결국, 친절, 인류애, 자비로운 온갖 손짓은 바로 이러한 인식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손짓들이야말로 모두 하나의 존재라는 관점에 대한 회상이기 때문이지요. 이와 반대로 이기주의, 질투, 증오, 폭압, 완고, 복수, 원한, 잔인은 전자의 인식 속에 기초가 이루어져 있고 또한 그것을 밑받침하고 있사옵니다. 우리가 선행을 듣고 혹은 그 이상으로 그것을 보고 다시 더 그 이상으로 그것을 행하면서 느끼는 감동과 희열은 그 가장 깊은 기초를 선행이 우리에게 많은, 그리고 갖가지의 개성 밑에 그 일체성이 실제로 나타나기 때문에 실지로 존재하고 있고 우리에게 달성될 수 있는 그 일체성이 감추어져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을 불어넣어 주고 있는 데에 있는 것이옵니다.
이러한 두 인식 가운데 어느 쪽인가의 표명은 개개의 행위에서뿐만 아니라 인간의 모든 의식과 상태의 특성 가운데도 나타나 있사옵니다. 선한 성격의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의식은 악한 성격의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것이옵니다. 악한 성격의 인간은 언제 어디서나 자기 자신과 자기 자신 밖에 있는 모든 것과의 사이에 견고한 장벽을 느끼고 말아버리옵니다. 그에게 있어서 이 세계는 내가 아니며 이 세계에 대한 그의 관계는 최초부터 적대적이게 되고 마옵니다. 그러므로 그의 근본적인 기분은 언제나 적의이고 의혹이고 질투이며 원한으로 이루어지게 되옵니다. 선한 성격의 인간은 자기 자신 속에만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동질의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외부 세계 속에도 사는 것이옵니다. 그에게 있어서 남은 나 이외의 사람이 아니라 모든 것은 나이고 나는 모든 것이옵니다. 그러므로 그의 개개인에 대한 관계는 언제나 친화적이게 변하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이 다른 모든 존재와 혈연적인 관계에 있음을 느끼고 그들의 행복과 불행에 직접 참여하며 그들 속에도 의심 없이 그와 똑같은 기분이 있음을 예상할 수 있사옵니다. 그래서 그의 내부에는 평화와 어떤 사람이나 그와 가까이에 있으면 좋아지는 믿음직하고 가라앉은 만족스러운 정신상태가 굳게 다져지는 것이지요.
저의 목표는 우리가 모두 서로에의 장벽을 부수고 유일하게 모두가 함께 지배할 수 있는 시간인 현재라는 시간 아래 모든 사람이 모두를 위해 묶이기를 원하며, 그를 위해 스스로를 끊임없이 갈고 있을 뿐이옵니다. 모든 불완전한 것들은 불완전하다는 점에서 길을 잃은 미아로써 동등하옵니다. 그렇기에 세계에 대해 무지한 어린 양으로서, 또 하나의 부분이신 여러분께 묻겠나이다. 어찌 이 세상이란 하나의 거대한 넋과 전체에 대한 사랑보다도 스스로만을 품는 단 한 조각의 이성의 판단과 거대한 세계의 광휘 중의 일부만이 중요할 수 있을는지요? 만약 그렇다고 해도, 그것이 이제껏 이어진 수많은 시도들과 다르게 밝은 빛을 보일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사옵니까?
[이번 설득은 양만 많은 게 아니야! 정성을 들여서 한 달 동안 쌓아온 결과물이야! 그러니까 힘들어도 자세히 읽어줘! 너무 길다고 그냥 뇌정지하고 넘어가지 말아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