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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렐 님의 물음에는 자신도 모르게 곧바로 대답이 튀어나왔다. 아마 그만큼 정말로 좋았다는 뜻이겠지. 그렇기에 진심 어린 칭찬 섞인 감상이 대답으로써 섞여나왔다. 하지만 거기서 문제가 생겨버렸다. 그렇게 열심히 감상을 얘기하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또다시 '에이렐 님'이라고 무의식적으로 말해버린 것. 물론 몇 박자 늦게 황급히 말을 정정하긴 했지만, 이미 에이렐 님께는 들켜버린 듯 싶었다. 그렇기에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는 에이렐 님의 모습에, 괜히 입가까지 올린 두 손의 손가락들을 꼼지락거렸다. 시선은 여전히 옆으로 떨구듯이 내린 채.
"......그, 그게..."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가 희미하게 새어나왔다. 벌칙이라는 에이렐 님의 말씀에는 한 박자 늦게 몸을 움찔, 했지만. 그리고 정말로 추가로 덧붙여지는 에이렐 님의 벌칙에, 순간 드물게 반응이 곧바로 튀어나와 고개를 들어 에이렐 님을 바라보았다. 멍한 두 눈동자는 약하게 동공지진을 일으키면서.
"......그, 그건...!"
......큰일났어요. 저 이제 에이렐 님께 말을 걸지도 못 하게 생겼어요... 저의 '신' 님. 전 이제 어쩌면 좋죠...? 드물게 겉으로도 희미하게 울상인 표정이 되어버렸다. 물론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다만, 앞으로는 에이렐 님께 어떻게 소통해야할 지를 고민할 뿐.
"......"
그렇기에 에이렐 님께서 건네주시는 메론맛 사탕도 그저 입을 다문 채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허리를 꾸벅, 숙여서 '감사합니다.'라는 높임말을 대신하여 표현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에이렐 님의 말씀에는 다시 약하게 동공지진을 일으켜버렸다. 그리고 결국엔 다시 입을 열어버렸다.
"...하, 하지만 감히 '신' 님께 말을 놓을 수는 없는 걸요... 저는 '신' 님이 아니니까요. 에이레에엘... 으으은... 말 놓ㅇ... 아도 괜찮아요...! 저는 이게 더 편해서..."
그리고 이것이 맞는 것일테니까. 어쩐지 혼자 왕게임 때처럼 벌칙 수행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지금만 해도 목소리가 계속 늘어졌지만 그럼에도 어떻게든 에이렐 님의 말씀을 지키려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두 손을 작게 주먹 쥐고, 고개까지 작게 연신 끄덕끄덕여가면서.
언제나 멍하거나 웃는 표정 정도만이 가득했던 자신이었지만, 적어도 지금은 새로운 표정이 지어져버렸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울상인 표정. 물론 그것조차도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 희미하기만 했지만. 하지만 이어서 들려오는 에이렐 님의 진지한 목소리에는 자신 역시도 희미했던 울상의 표정이 자연스럽게 흩어져 사라져버렸다. 마치 진짜가 아니었던 것처럼.
"......인간 씨..."
조용히 중얼거렸다. ...에이렐 님께서는 예전에 인간 씨랑 말을 놓으신 적이 있으셨군요. ...역시 에이렐 님께서도 대단하시고 멋진 신 님이세요. 스스로를 겸허히 낮추시어 인간 씨와 동등하게 대화를 나누셨다니... ...하지만... 하지만, 저는...
...'인간' 씨가 아닌 걸요. 분홍빛의 두 날개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분홍색, 분홍색. 흩어져 바닥으로 떨어지는 분홍색들. 솟구쳐 위로 올라가는 분홍색들. 괜히 꼼지락꼼지락, 손가락들을 작게 움직이면서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 ......신 님께 말을 놓는다는 것 역시, '저에게는' 존재할 수 없는 말이예요. 제가 어떻게 감히...
하지만 그 말은 그저 바닥을 향한 멍한 두 눈동자 속으로 삼켜버렸다. 보이지 않는 곳으로. 하지만 이어서 들려오는 에이렐 님의 말씀에, 꼼지락거리던 손가락들의 움직임이 그대로 멈춰졌다.
......'외톨이'. 그 단어가 자신의 마음 속을 깊숙히 찔러왔다. 피는 나오지 않았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저는 지금... 그렇기에, 그저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제서야 에이렐 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네. 전 이것으로도 괜찮아요. 이것이 저의 삶. 저의 운명. ...저는 지금 무척이나 행복해요, 에이렐 님. 에이렐 님께서 저의 이름을 직접 불러주시고, 저를 이렇게 걱정해주고 계시니까요. 그러니까... 저는 '행복'해요, 에이렐 님."
신기루와도 같은 미소였다. 금방 눈 앞에서 사라져버린다고 하더라도 믿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분홍색. 그런 분홍색에게 에이렐 님께서는 이내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이어진 '권유'. 친구, 그리고 별 것.
......'친구'. '친구'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론. 당신은 알고 있나요? 저의 '신' 님. 당신께서는 알고 계신가요? ...저는... 모르겠어요.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자신은 '텔레파시' 능력을 사용하지 못 했으니. 그렇기에, 그저 에이렐 님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저는... 이내 살며시 두 손을 들었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내밀어진 에이렐 님의 손을 부드럽게, 살며시 감싸듯이 두 손으로 잡았다.
"......에이렐 님. 저는 '인간' 씨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동물인 홍학일 뿐이예요. 그리고 '친구'라는 것을 알지 못 해요. ...그래도... 그 말씀 만큼은 정말로 감사해요. 에이렐 님께 그런 말씀을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정말로 기뻐요. ...하지만... 에이렐 님께서 원하신다면, 알아낼게요. 배워나갈게요. '친구'라는 게 무엇인지. 그러니... ...천천히, 느릿하게라도 괜찮으시다면..."
끄덕, 고개가 작게 끄덕여졌다. 그리고 두 눈동자가 부드럽게 접혀져 웃음을 지었다. 물론, 어쩌면 아직까지는 기나긴 시간이 필요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어쩌면...
"...정말로 고마워요, 에이렐."
속삭이는 듯이 희미한 목소리가 조용히 중얼거려졌다. 신기루. 환상, 그리고 환각. 어쩌면 그것들처럼 이것 역시도 그저 사라져버릴지도 몰랐지만... 그래도 '행복'했기에. ...리스. 부디 두려움마저도 '행복'으로써 잠재울 수 있기를. ......리스.
/ ㅋㅋㅋㅋㅋㅋ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니...! 세상에...!(동공대지진) 그리고 분량이 폭발해 버렸습니다...(흐릿)(시선회피) 답레는 길이에 부담갖지 마시고 편하게 써주셔도 된답니다, 에이렐주! :)
그런 말로 시작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띄워져 있다. 그거면 된 것이다. 누구나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 어려울뿐. 한 걸음을 내딛은 후에는 알게된다. 그 앞에 광활한, 자신이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가 많다는 것을. 인간이 아닌 평범한 홍학이라 자조하는 리스에게 이야기한다.
"아, 그리고 넌 이제 평범한 홍학이 아니야."
잡초의 신이기에, 오히려 재앙신이었기에 '알 수 있었던 것'. 그것은 평범한 이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속세에서는 누구도 환각을 부릴 줄 아는 홍학을 평범하다고 부르지 않는다고?"
누구나 '특별'하며 개성이 있는 존재라는 것. 그렇기에 모든 생명은 균등하게 가치있으며, 평등하게 살아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녀는 리스의 손을 꽉 붙잡는다. 사라지는 신기루라는 것을 부정하려는 것처럼. 그러면서 리스에게 다시 입을 연다.
"고마워할 필요없어. 나도 너에게 고마우니까."
그녀에게 있어서도 첫 친구인 것이다. 그녀는 '한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외톨이였다. 다른 이들이 주변에 있어도 마음 속 어딘가에는 비어있었다. 그런 그녀가 '처음으로' 친구로 삼고싶다고 생각했다. 그 것의 의미는 스스로도 리스도 모를 것이다.
"내 '첫 친구'로서 나를 잘 부탁한다?"
메귀리 신은 마침내, 영원한 외톨이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무수한 메귀리가 전세계에 꽃을 피우는 것처럼. 씨익-하는 미소가 그녀에게 지어진다. 그러고는 이어서 이야기한다.
에이렐 님께는 미소를 지으셨다. '그거면 됐다.' ......그럴까요? 정말로 이것으로 된 것일까요? 저의 '신' 님. 저에게 알려주세요. 저에게 가르쳐주세요. ...정말로, 이것으로 된 것일까요...?
알 수 없었다. 자신의 '신' 님께는 여전히 자신의 목소리는 닿지 않았고, 그렇기에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하지만, 에이렐 님의 목소리는 돌아왔다. 에이렐 님의 대답은 돌아왔다. '그거면 됐다.' ...그래, 느릿한 한 발자국을 떼어. 그렇다면...
절벽의 끝에서 떨어지게 된다면, 하늘을 날 수 있게 되는 것일까요.
두 날개가 순간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아주 순간의 찰나. 그리고 이내 들려오는 에이렐 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평범한 홍학이 아니다. 환각을 부릴 줄 아는 홍학. 자신을 표현해주시는 에이렐 님의 말씀에, 순간 희미하게 미소가 스쳐지나갔다.
"...그런가요? ......말씀 정말 고마워요, 에이렐."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신은 '평범한 홍학'이 되지 않겠지. 에이렐 님의 말씀이 환각의 마법이 되어 자신에게 걸려졌다. 그렇다면 자신은...
에이렐 님께서 자신의 손을 꽉 붙잡는 것이 느껴졌다. 희미해지던 존재가 붙잡힌 손에서부터 점차, 점차 선명해져오기 시작했다. 붙잡힌 분홍빛의 신기루는 흩어지지 않았다. 그저, 이어진 손에 부드러이 닿을 뿐.
"......하지만, 역시 제가 훨씬 더 고마워요, 에이렐. 너무 고맙고 감사해서... 어찌해야할지 잘 모르겠을 정도예요."
진심이었다. 자신은 에이렐 님에게 해드린 것이 없었으나, 에이렐 님은 무려 자신의 '첫 번째 친구'가 되어 주셨으니. ...믿기지 않아요. 정말로, 정말로 믿기지 않아요. ...저는 지금 신통술을 사용하고 있지 않는데도... 그런데도, 지금...
꼼지락, 꼼지락, 에이렐 님의 손을 맞잡을 듯, 말 듯, 손가락이 작게 굽혀졌다 펴졌다를 반복했다. 다른 한 손으로는 그저 입가를 가리면서. 하지만, 이내 이어지는 에이렐 님의 활기찬 말에, 잠시 에이렐 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것도 잠시, 이내 덩달아 환하게 웃어보였다. 그리고 고개를 세게 위아래로 느릿하게 끄덕여보였다.
"...네! '첫 번째 친구'... 저도 잘 부탁할게요. ...네, 추천하고픈 장소가 있어요. 언젠가, 언젠가 한 번 쯤은 다른 신 님과 함께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예요. ...비나리의 명소. 언제나 무지개가 뜨는 폭포. 그 곳에는 '서약의 제단'이라는 것이 있어요. 그 곳에 먹을 것을 제물로 바쳐 올려 서약을 나누면, 은호 님께서 축복을 내려주신다고 해요. ...나중에, 혹시 같이 가주실 수 있을까요? ......첫 번째 친구... 에이렐과 함께 언젠간 가보고 싶어요."
낯선 행복감에 부드럽게 양볼에 홍조가 띄워졌다. "지금은 어느 곳이든지 다 좋아요. 모든 곳이 다 행복해요." 하고 대답하는 목소리는 마치 에이렐 님처럼 즐겁게만 느껴졌지만.
천천히, 느릿하게 손가락이 굽혀졌다. 그리고 마침내 살며시 에이렐 님과 손을 마주잡았다. 처음 느껴보는 기분 좋은 따스한 온도. 배시시 웃는 얼굴은 두려움을 뒤로 한 채 행복에 젖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