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황극판은 익명제입니다. 본인이나 타인의 익명성을 훼손하는 행위는 삼가주세요. 하지만, 자신의 위치(스레주/레스주) 등을 밝혀야 할 상황(잡담스레 등에서 자신을 향한 저격/비난성 레스에 대응할 시 등)에서는 망설이지 말고 이야기해도 좋습니다. ☞ 서로를 존중하고, 자신이 먼저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집시다. 모니터 너머의 이용자도 당신처럼 '즐겁고 싶기에' 상황극판을 찾았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모두 두루두루 친하게, 잘 지냅시다. 말도 예쁘게해요, 우리 잘생쁜 참치들☆ :> ☞ 상황극판은 성적인/고어스러운 장면에 대해 지나치게 노골적인 묘사를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약물과 범죄를 미화하는 설정 또한 삼가해주세요. 각 스레마다 이를 위반하지 않는 수위 관련 규범을 정하고 명시할 것을 권장합니다. ☞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행동이 결코 아닙니다. 바람직한 상판을 가꾸기 위해서라도 서로에게 관심을 가져주세요. 다만 잡담스레에서의 저격이나, 다른 스레에서의 비난성 및 저격성 레스는 삼갑시다. 비난/비꼬기와 비판/지적은 다릅니다. ☞ 상황극판의 각 스레는 독립되어 있습니다. 특정 스레에서의 인연과 이야기는 해당 스레 내에서만 즐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잡담스레에서 타 스레를 언급하는 일도 삼가도록 합시다. 또한 각 스레마다 규칙 및 특징이 다르기 마련입니다. 해당 스레의 이용자들에게 문의해주시고, 그 규범에 따라 행동해주세요. ☞타 스레와의 교류 및 타 스레 인원의 난입 허용 여부(이건 허용한다면 0레스에 어디까지 괜찮은지 명시해둡시다)와, 스레에 작성된 어그로성 및 저격성 레스의 삭제 여부, 분쟁 조절 스레의 이용 여부에 대한 결정권은 각 스레의 스레주에게 있습니다.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서 "분쟁 조절 스레"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 처음 오신분은 어려워말고 잡담 주제글에 도움을 청해주세요! 각양각색의 스레들을 가볍게 둘러보는 것도 적응에 효과적입니다.
떠들썩한 거리의 불빛이 하나, 둘 꺼져 갈 무렵. 인적이 드문 산 어딘가의 큰 바위에 앉아서 오월은 가부좌를 틀고서 두 손을 한군데 모아 눈을 감고 숨을 내쉬는 것을 반복했다. 오족은 본디 속세와 투쟁을 천히 여기는 현학적인 자들이다. 농사의 신 신농을 모시는 목가적인 삶 속에서, 자연과 교감하며, 대지를 느끼며, 그 안에서 조화를 이루는 것이 그들의 생활방식. 월은 오족 답지 않게 혈기가 넘치는 편이긴 했으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오족의 기준 내에서의 이야기였다. 중원의 기준 하에서 본다면 그는 꽤나 차분한 쪽에 속했다.
자신의 과거.그것을 아영이라는 이름의 여자는 어렴풋이 기억나는것은 있어도 어느하나것도 확실하게는 떠올리지 못하고있었다. 자신의 이름이나 자신이 사용하는 무공. 그리고 빈번하게 꾸는 하나의 꿈.
황야 너머의 초목이 드문드문 자라있는 곳. 그곳에 있던 마을은 멀리서 보기에도 불타고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항상 절망적이면서도 슬프고 아련한 감정을 아영은 느끼고있었다. 거기에 무엇이 있었기에. 지금의 아영은 기억을 잃고 이 대업이라는 기로까지 가게되었는가. 아영은 하늘의 운명이라는 것을 믿지아니하였지만 이런 자신의 처지를 생각한다면 운명이라는 것은 정말이지 기이하고도 예측할 수없는 수많은 연으로 얽혀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할수밖에 없었다.
"복잡한 생각은 깊게 하고싶지는 않지만."
대업까지는 앞으로 하루나 이틀정도가 남았으리라. 그전에 딴생각을 머금는것도 일에 있어서 지장을 주기에 그러한 의문점에 대해서는 생각을 접고. 인적이 드문 주변의 산 아래 언저리에서 산보를 한다. 가끔 야생의 이리같은 것을 목격이라고 한다면, 피가 끓는 원초적인 감각이라도 젖을수있다. 그 감각속에서는 그나마 모든것을 잃고 사냥감을 노리는 하나의 맹수가 되는 희열을 느끼고는 하니까.
"어디 야생 짐승없나. 아-"
그런 혼잣말을 내려하는 순간. 주변에 기이한 기운을 순식간에 포착했다. 아영이 느끼기로는 짐승의 기운은 아닐터. 분명 사람이 어느경지에 이르렀을때의 묘한 감각같은것이다.
"남방염제이면 신농인가. 농사의 신을 기리는거보면 꽤나 유서있는 신앙을 믿는구만."
이내 인기척을 따라 걸어간 아영은 그곳에서 이국적인 분위기의 남자를 만날수가 있었다. 아영 자신도 그나마 얻은 정도를 따라가자면 남방 어딘가의 이국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분위기의 여성이었지만.
분명, 파천의 일행에 저런사람을 얼핏본적이 있었던거같기도하고 가물가물하게 느껴졌기에 아영은 머리를 긁적이고는 그런 이야기를 건냈다. 얼핏 엿들었던것이다.
명상의 경지가 깊어지면 자연스래 자아를 잊고 자연가 하나가 된다는 장로들의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다. 오월은 자신은 죽었다 깨어나도 그런 경지에 다다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그럴 생각도 없었지만, 그 편린만큼은 몸으로 체험하고 있었다. 숲의 냄새, 흙의 온도, 불어오는 바람의 촉감을 느끼고 있자면 자신이라는 존재가 마치 녹아내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
오월은 자신을 둘러싼 자연 속에 침입해온 이물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가 근처에 있었다. 자신을 둘러싼 자연의 존재감을 압도할 정도로 거대한 무언가를 가진 누군가가. 그것을 혈향이라 해야 할까. 아니면 철냄새라 해야 할까. 실재로 냄새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와 유사한, 자신이 평생동안 전장에서 살아온다 하더라도 쌓을 수 없는 업을 가진 뭔가가 느껴졌다. 그는 저도 모르게 삿갓을 내리쓰고 경계태세를 취했다. 생각 이전에 이루어진, 야생 짐승의 보호 본능과도 같은 행위였다.
"...아 귀공은..."
그러나 월은 수풀 사이를 해치고 나타난 여인의 모습을 보고 그 경계를 어느 정도 수그려뜨렸다. 분명 명운 곁에서 본 기억이 있는 인물이었다. 흑색의 고급스러운 복색. 입에서 나오는 고풍스러운 어투와는 달리 소녀와 같은 생김새. 잊으려 해도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깊은 산속에 저 말고 다른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군요. 말씀하신대로 신농을 모시는 오족의 월이라고 합니다. "
월은 삿갓을 벗고 두 손을 겹치고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물론 자신도 모르게 드는 경계심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었다.
"...예. 그렇게 불러주시면 될 것 같군요. 그럼 제쪽에서는 아영님이라 부르도록 하지요. 솔직히 말해 중원의 사람들은 높고 낮음을 따지는 것이 복잡하여 이렇게 존대하는 쪽이 마음이 놓이더군요. 예의를 잘 모르는 이라 부끄러울 다름입니다."
오월은 아영의 털털한...아니 그보다 더 나아가서 거칠기까지 한 태도에 살짝 웃으며 이야기했다. 그나저나 중원에도 신농을 믿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오래된 신인데다가 부귀영화를 비는 온갖 잡신들에게 밀려 그 세가 줄어들었다 알고 있었는데, 농민들 사이에서는 다른 모양이었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로군. 그러나 그것만으로 그녀에 대한 경계심을 풀기에는 부족했다. 노루 앞의 호랑이가 적의를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긴장을 풀지 않는 법은 아닐테니.
"...제가 아영님을 그렇게 여기는 것 처럼 보였다면 오해하신 것 같습니다. 목적없는 사람베기를 하는 망나니쪽이라면 오히려 대하기가 쉬울 겁니다. 도리가 없는 자는 도리로써 제압하면 될 뿐이니까요."
월은 그렇게 말을 얼버무렸다. 월은 귀족으로서 태어났고, 어릴 적부터 사람을 다루는 예의작법을 배워왔다. 그렇기에 평범한 이들보다는 사람을 보는 눈이 있는 편이었고, 그런 그가 보기에 아영은 행인을 베고 다니는 망나니는 아니었다. 그랬다면 두렵지는 않았겠지. 오히려...아니 여기까지만 해두자.
"그런데 이 늦은 시간에 산에는 왠일이십니까? 저는 녹지에서 자라 이런 산중이 편하기에 들렀습니다만.."
월은 아영의 신분의 고하를 두지 않는 태도와, 합당한 이유 하에서의 살인을 공언하는 언행, 그리고 향로의 향기를 피우듯 풍겨오는 살의에 살짝 움츠려들며 그녀를 그리 평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오월은 그녀가 거북했다. 그는 젊은 귀족 특유의 이상주의에 젖어 있었고, 순수한 열정과 도리를 간직한 남자였다. 그합리성으로 살인, 어쩌면 그 이상도 불사할지도 모르는 그녀의 모습은 자신이 가진 도리와는 상충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쩌면 이것이 현실인지도 모른다. 줄곧 남방의 낙토에서 운둔해온 오족과 달리 중원은 수시로 전쟁에 시달려오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기회가 있을 법 하군요. 고삐풀린 짐승이 숲에 있다는 이야길 들은 참이거든요"
기분나쁜 입이 귀에걸릴듯한 웃음기를 머금고 아영은, 오월이 자신이 보는 어떻게보면 경멸에 가까운 시선을 아무렇지도 않다는듯이 맞받아들였다. 아영은 이성없는 살인자는 아니지만 그것보다도 한층더 악질인 이성있고 신중하면서도 바라는 것은 탐욕적이기 그지없는 선인이라고 부르기는 힘든 부류에 속해있었으니까. 의도 협도 그녀에게 있어서는 그저 하찮은 부류였다. 그렇기에 독단적이 오만해보이기 까지했다.
어찌하여 그녀가 그러한 성격을 가졌을지 태생이 궁금할정도로.
"그건 호외네. 당신의 경지도 한번 엿보고싶기도하고."
킥킥거리며 아영은 검붉은 도신의 칼날을 검집에서 빼들었다. 피안개화도라는 이름의 검은 그 이름 그대로 피안(저승)의 빛깔을 띄고있었다.
".....실례라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굳이 입을 열겠습니다. 그런 것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월은 단호히 이야기했다. 위정자로서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었기에. 그는 타인의 위에 서는 자는 사사로운 욕망이 아닌 대의를 위해 움직여야 한대 배워왔다. 위정자가 개인의 욕망에 좌우된다면 그를 따르는 민초는 그 욕망에 불을 지피는 장작이 되어 버린다. 개인의 쾌락과 야심이라면 이러한 책임은 지지 않아도 되겠지. 허나 정복욕과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백, 수천의 민초의 피가 흘러야만 한다.
"당신이 추구하시는 바는 위험합니다. 종국에는 당신 자신조차 태울지도 모르지요."
오월은 그렇게 말하며 봉우리 몇개를 순식간에 넘어가며 아영을 안내했다. 사람이라기보다 마치 짐승이 초목을 누비는 것과 같은 발놀림. 중원에서는 보기 어려운 움직임이었다. 그렇게 얼마가 지나고 나자 나무 곁에 맷돼지 무리의 시체가 피를 흘리며 낭자되어있는 광경이 보인다. 상처는 짐승의 것이지만 고기를 먹은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이 근처에서 미친 호랑이가 나타났다는군요. 무언가를 먹지도 않으면서 짐승을 해치고 다닌다고 합니다."
"천하를 재패하고 만민평등. 누구하나라도 고통을 더는 세계를 연다. 태평천하라고 하던가. 썩고 부패하기 그지없는 이 하명의 나라들을 무너뜨리는 것은 수많은 피가 흘러야만 이룰수가있다. 중원은 결국은 피비린내나는 싸움을 겪지아니하면 쟁패하는것은 불가능하다. 라는 거지. 평화롭고 협상적으로 천하를 쟁패하겠다라. 그런 샌님같은 소리를 혹시나도 하는거라면 돌아가라. 그건 파천조차도 알고있는 진실이니까."
아영은 단순히 피비린내를 온몸에 적시고 천하를 쟁패한다는 그런 욕망으로 끝나는 것이아니라, 그와는 대조적으로 민심태평이라는 어려운주제를 목표로 삼고있었다. 개인의 욕망과 대의가 뒤섞여 있는 회색빛깔의 편린을 그녀는 펼쳐보임으로서, 이성있는 광기를 가진 인간이라고 보일수밖에 없었다.
"뭐어 파천이라면 민초가 무기를 들고 대적해온다면 그무기를 부수지 생을 빼앗지는 않는다라 대답했지만. 그게 그리 쉽게 되는일일까? 도의가 아닌 실질적인 현실을 말하고싶은거야 나는. 이상론만으로는 대의를 이루는것은 불가능하다. 라는거지. 윽.. 내가 그런경험을 가졌으니까..?"
아영은 머리의 지끈거리는 감각을 느끼면서 의미심장한 말을 그리 내뱉었다. 자신은 도대체가 과거에 무슨일을 하려고했던것인가. 그것을 찾는다는 잡념이 또한번 떠올랐다.
"이야기는 이쯤에서. 잃은 기억이 떠오르면 머리에 대못을 쑤셔박는듯한 두통이 오거든. 그렇지만 나정도 축이라면 그래도 파국에 이를만큼에는 가지않는 선은 지킬생각이거든. 선을 넘어선 인간역시 파천의 군세에 있기때문에, 나 역시 그 부류들하고는 충돌할수밖에 없어. 당신이 올곧은 사상을 가진 이라면 당신과도 충돌하려나. 나참.. 정말이지 적을 만드는 성격이라니깐."
농담하듯 아영은 화제를 주변에 널부러진 맷돼지의 피비린내로 가득찬 역한 광경아래서 돌려버린다.
"광호인가. 마에 물들었을지도 모르겠군."
보검의 베는 맛을 봐야할 수준은 될듯하다고 아영은 판단하고는 외투에 있던 소모품과도 같은 잡검들 역시 유사시에는 펼쳐보이기위해 미리 기혈을 방출시켜 기를 집어넣는다. 어검술. 그것이 그녀의 주무기였으니까.
오월은 아영이 말을 하는 동안 조용히 침묵을 지키며 산을 오르다가 그녀가 말을 마치고 나서 한 참이 있다가야 입을 열었다. 그녀는 오만했다. 그것이 오월이 아영에 대해 내린 결론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상을 논하면서 그 방법으로 현실을 말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 있는 끔찍한 괴리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도. 그녀가 단순히 피와 야망에 미친 정복자가 아니라는 것은 그것으로 분명해졌다. 허나 월은 여전히 그녀가 오만하다고 느꼈다. 그녀는 인간으로서 버텨내기 어려운 지독한 참상과 악업을 그녀 혼자서 지탱해나가려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시금 알았다. 그녀는 위정자가 아니다. 그 어떤 땅에도 홀로 존재하는 왕은 없으니. 허나 이를 입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그녀의 존재방식에 대한 모독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오월은 말을 아꼈다. ....실재로 입으로 꺼내면 도륙나는 쪽은 자기일것 같았고. 암.
오월은 그렇게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 농담을 던졌다. 나뭇가지 하나 꺾어 뒤통수에 던져버려도 괜찮지 않을까. 노인공경하지 않는 것들은 맞아도 싸다. 그러고서 그녀가 전투태세를 준비하는 것을 본 오월. 그 또한 삿갓을 쓰고 범의 흔적을 찾는다. 놈은 가까이에 있다. 생각보다 가까이. 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수풀사이에서 짐채만한 범이 달려들었다. 눈자위가 하얗고 입에는 침이 폭포처럼 흐르고 있었다. 이런!
아영은 분명 자신과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대업의 길에 오른 이라고 판단할수밖에 없었다. 성훈과는 다른의미로는 그와 사상적으로 충돌할만한 일이 있지않을까하고 아영은 그의 속내를 떠보려는듯 그러한 질문을 해보인다.
"호랑이랑 같이 배에 시원한 칼구멍을 내주면 좋으려나. 수년전에 주화입마에 고생하면서 깨어났을때 옛날일을 기억하려고하면 머리속에 자물쇠가 걸린것처럼 막연하고 접근하기가 힘들단 말이야... 에이씨 좀 사람이 이야기하려는데 눈치가 없네 짐승이라 그런가."
농담같지도않은 농담을 던진 오월의 말을 반박하려던 아영은 칼자루를 역수로 잡고는 그대로 달려드는 범의 턱을 후려치고 칼을 날카로운 치아사이로 집어넣으려고 했다. 마치 그것은 한마리의 이리가 사냥감의 몸뚱아리에 어금니를 박아넣는듯한 검의 형세였으며, 격식없다는 느낌보다는 노련하고도 본능적인 사냥꾼의 모습이었다.
"아영님에 비하면 자그마한 이유지요. 그리고 엄밀히 말하자면 동참하고 있기 보다는 이익관계로 묶여있다고 말하는 편이 솔직할 것 같습니다. 저희 고향의 사람들을 위해서지요. 저희 동족...오족은 중원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수백년간 운둔하며 살아온 이들이, 닫힌 문을 열고, 다른 이들을 돕고, 또 다른 이들에게 배우기 위해서."
시원스러울 정도로 솔직하게 답하고, 월은 대지를 박차 달려갔다. 흙이 있는 곳은 곧 신농의 정원이요 영역이었다. 땅을 향해 흘러들어오는 막대한 양의 기는 말이 이끄는 마차의 바퀴마냥 월의 몸 속을 재빠른 속도로 달려나간다. 제트엔진마냥 빠른 속도로 달려나가는 칠흑의 갑주. 그러나 그보다 빠른 속도로 아영은 범의 턱을 후려치고 치아 사이로 칼을 쑤셔넣는다. 이런 정신나간! 칠갑도 없는 맨몸인데 호랑이 이빨에 찢겨나가는 것은 무섭지도 않은 건가? 라고 걱정하는 것도 잠시. 아영의 칼날은 범의 입언애 송곳니와 같은 상처를 남긴채 유유히 빠져나와 있었다. 놀라운 절기, 만약 실재로 붙었을 경우, 저 검을 막아낼 수 있을까?
"여하튼, 그렇기 위해서는 배울 상대가 필요합니다."
월은 범의 측면으로 달려가 갈비뼈에 손을 얹고서 대지의 기를 발산한다. 퍼엉-하는 소리와 함께 범은 공중으로 날아가고, 그와 동시에 월은 몸을 날려 공중제비를 돈 뒤 다리를 뻗어 하늘에서 땅으로 가해지는 충격! 패유오야산(悖類烏夜山)의 1권과 3권의 연계였다.
"그리고 오족의 속담 중에는 적이야말로 최고의 스승이라는 이야기가 있지요."
즉슨 이 나라를 무너뜨리는 과정의 시련에서 자신의 나라를 일으키기 위한 방법을 찾겠다는 것이었다.
"중원의 놈들은 또 그런식으로.. 민족을 탄압하는가.. 어째서 다른 민족을 이해하지못하고.. 윽 두통이 너무 강한데."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쩌면 또라고 아영은 스스로 내뱉었기에, 묶여진 기억속에 그렇게말할만한 자신의 경험이 있지않았나하고 원망스러운 말투로 이야기했다.
호랑이의 혈흔이 묻은 검붉은 검신을 바닥에 휙하고 아영은 피를 뿌려쳐 내고는 오월의 움직임을 보고는 첫째 분석하기로 그것은 권의 무공이고, 움직임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나기에 예사롭지 않으며, 흑색의 갑주는 무언가 비범하기 그지없는 물건이라고 판단하였다.
"배울상대는, 이 여로에 있어서 수없이 깔려있을테지. 꼭 적만이 배움의 길은 아니야. 아군이 하는것도 도움은 되거든. 당신의 움직임도."
범의 측면으로 발경하는 광경을 아영은 목격하고는 역시 일반적인 수준의 무공은 아니라고, 하기야 한민족의 부흥을 바라는 듯한 인물인데 그정도야 당연한게 아닌가하고 생각했다. 공중에서의 전투는 딱히 아영으로서는 그럴이유를 느끼지못해 많은 기술을 가지고 있지아니하여서, 저것으로 파고든다면 자신에게도 불리한점은 분명있을거라고. 또한 주먹과 다리에 실린 기의 흐름은 자신이라도 맞는다면 치명타를 피하기는 어렵지않겠나하는 그런 경지를 보았다.
"물론 전장에서 모든것이 힘으로 지배된다고는 생각하지않아서 말이야. 이런걸 보여줄까하는데."
기를 머금은 검 세자루가, 외투를 벗어나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것은 무공의 경지에 이른사람은 이리 말할것이다. 비연검(飛演劍, 날아서 흐르는 검). 유유자적하게 하늘을 헤엄치는듯한 칼날은 땅으로 고꾸라져 괴로운 숨을 토해내는 맹수가 일어나기를 기다리다 두자루는 달려드는 맹수의 시선을 끌듯 유린하며 어금니와 그 손톱으로 할퀴어 오는것을 유인하며 피하고는 아영의 정면으로 맹수를 유인했다. 마치 공격해볼테면 해보라는듯 도발하는 모습 그자체였다.
"사상비낭검법(思想飛狼劍法)-."
이윽고 맹수는 뒷다리를 차올려 강습하듯 아영을 덮치려 하였고, 아영은 그러한 맹수의 움직임을 웃으며 허공의 춤추는 칼날들을 회수해 세자루의 검날이 교차하며 마치 방패가 된듯 맹수의 포효하는 움직임을 그대로 막아쳐 튕겨내 맹수를 뒷걸음치게 한다.
"<ruby 2권>2초식<ruby> 도검방순(刀劍防盾)."
어느새 그녀의 손에는 검붉은 도신이 보이지않았다. 그것은 마치 걸려들었다는 듯이, 먹잇감을 거미줄에 걸어버린 거미처럼, 노련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사악한 웃음기를 머금은 아영은 그대로 손짓하여 맹수의 뒤쪽으로 나타난 검붉은 도신, 피안개화도를 그대로 맹수의 몸통에 쑤셔박으려 했다-.
"쳇."
하지만 맹수역시 그걸 쉽게넘어갈 존재는 아니였는지 몸통을 스쳐 자상을 입기는했지만, 기이한 동작으로 옆으로 스탭을 밟아 회피했다. 아영은 분하다는 듯이 맹수를 노려보고는 한편으로 요즘은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나지않아서 칼이 많이 무뎌진게 아닌가하고 자책하는 마음도 가진다.
오월은 아영이 부리는 것처럼 보이는 세자루의 검이 마치 날아다니는 새마냥 맹수를 압도하며 희롱하는 모습을 보았다. 어디가 힘으로 지배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겁니까! 고수의 절기로 압도하고 계시면서 그런 말하는거 좀 치사하지 않습니까! 라는 말이 나오려는 것을 참고 다시금 태세를 갖추었다. 정말이지 중원은 신기한 것으로 가득차있군. 오족의 아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도 믿어주려나. 분명 거짓이라 비웃겠지. 그리고 범의 배후에 검붉은 검이 나타나는 것을 신호로 다시금 달려들었다. 아까 전부터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있었다. 저런 고수의 움직임 조차 피할 줄 아는 영물이 어찌하여 이런 도살을 저지른 것일까. 또 왜 수세인 승부에서 싸우면서도 짐승의 생존욕구보다 싸우는 것을 고수하는 걸까.
"이쪽이다!"
오월은 범을 도발하듯이 바로 정면에서 일체의 자세조차 잡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그 빈틈을 놓치 않고 오월의 팔에 달려드는 범의 아가리. 아까 전 송곳니와 같은 검에 찢어발겨지면서도 그 힘은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다. 만약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이미 팔이 곤죽이 되고도 남았겠지. 어디까지나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러나 월이 전신에 두르고 있는 칠갑은 이 정도의 힘은 버텨내고도 남았다. 월은 몸을 돌려 한 팔이 범의 입에 물린채 나머지 팔로 범의 머리를 감싸듯 쥐고 조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용히 범의 상태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미친듯이 뛰는 맥박과 상기된 숨소리, 뭣보다 혈관에 흐르는 탁한 무언가....신농을 섬기며 여러 의술을 발전시켜온 오족인 오월의 눈에는 그 비밀이 보였다.
"....이 녀석. 사냥꾼이 뿌린 오검초 독에 중독된 모양입니다. 시력을 빼았고 정신을 흐리게 만들어, 이성을 잃고 날뛰게 만드는 물건이죠. 즉사시키기 보다는 고통을 오래 주기 위한 고문용인데..."
간단한 이야기였다. 이 범에게 사냥을 훼방당한 사냥꾼이 놈에게 앙갚음을 하기 위해 독을 뿌린 먹이를 뿌린 것이겠지. 원한을 갚기 위해 이런 치졸한 수를 쓰는건 인간 밖에는 없다.
아영은 소비한 기가 그 몇합으로도 꽤 소모가 컸기에, 겸손떠는 모양새로 주변에 흐른 혈흔들을 마공으로 흡수해갔다. 혈자의휘공(血資意輝功). 이라고 불리는 그 기이한 기술은 혈흔들을 흡수해나가 하나의 붉은 덩어리로 아영의 몸으로 흡수해 들어갔다. 피비린내가 아닌, 다과향을 연상시키는 달짝한 향기를 품어내면서. 다만 그 혈액의 사이에 기이한 기운을 감지해 술의 취기를 날리듯 날려보인다. 무언가 혈자리에 이상이 있는 모양이다. 저 호랑이는.
"이정도로까지 버티는걸 보면 단순한 범은 아니고, 영수인가."
혈도를 그대로 기로 전환해 흡수하면서 아영은 오월이 싸우는 장면을 바라본다. 칠흑색의 갑주가 맹수의 예리하고 날카로운 공격을 분명 범인이었다면 뭉개버릴듯한 파괴력을 가졌음에도 튕겨내는것을 보며, 정도면 주인 자체도 기강이 대단한것이 아닌가하고 이윽고 목을 조르는 기술 하나하나를 파악해간다.
"의술에도 일가견이 있는 모양이군. 난 그쪽으론 까막눈이라, 잘모르긴 하지만 혈자리에 독액을 맞으면 저리 미치는 광인을 본적은 있었군. 쓴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였나 혈을 기로 전환하는데 있어서 위화감이 있던것을 날리려고 했었는데, 그게 독초의 기운이었나."
그렇다면 혈도를 바꿔놓을 필요가 있었다.
"혈자리가 이상한모양인데, 혈관을 절제할줄은 알아? 내 검은 베고 찌르는데 특화되있어서 베어버리면 문제가 있을테고, 그쪽이 의학이 있다면 부탁하고싶은데. 나머지는 내가 방도를 찾을수는 있을거같네."
매일같이 술만 마시는 것도 슬슬 질려가기 시작한다. 정말, 시간이 왜 이렇게 안가는 건지 모를정도로 길게 느껴지니까 문제다. 좋게 말하자면 이 마을이 평온한 곳이라는 증거지만, 그만큼 정신이 몽롱해지는 느낌인지라. 원래부터 반쯤 정신이 나가있는 그로써는 신기하면서도 무서운 일이었다. 방에서 굴러다니다 보면 나가고 싶지 않고, 뭔가 먹고 싶지도 않고... 아무튼 위험한 상태다. 그래서인지 밖으로 나와, 아무 풀숲에나 털썩 앉고는 가만히 주변을 구경하고 있었다. 이대로 방 안에만 있다가는 평생 날계란처럼 늘어져 있을지도 모르니까.
" 고향으로 돌아온 느낌이구만. "
문득 든 생각은 그러했다. 고향과 똑 닮았구나. 하는 느낌말이다. 정작 고향이 평화롭다고 느낀 적은 평생에 딱 3번 뿐이었지만, 아무 일도 없을때의 분위기만 본다면 얼추 비슷해보였다. 넓게 펼쳐져있는 논밭이라던가. 유난히 하늘이 맑다던가.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주문했을 때, 음식이 있을까에 대한 생각부터 시작했다. 그 남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아직 많았고, 파천의 곁에 있으면 충분히 오랫동안 즐길 수 있을거라는 확신을 받은 만큼 그는 의외로 얌전했다.
소태도로 겉 면이 까칠한 소나무에 칼자국을 내고 있을 즈음, 풀숲에 누군가 앉아있는 모습을 발견하자 그 남자는 소태도를 집어넣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남자의 기억에 따르면 저 자는 이전 달이 둥글게 뜬 호수에서 마주친 사람이였다. 요괴 같은 것은 아니였다. 기억상에는 분명...
"음.. 당신은 이전에 봤던 사람이군요?"
남자의 몸에 비릿하게 남아있는 혈향을 사람들은 싫어했다. 그래서 웃는 모습을 연구해서 항상 지어보였는데 오히려 역반응을 불러 일으키는 경우가 많았다.
'이 사람은 어떨까?'
살수치곤 효율적이지 못하다, 검객치곤 피를 너무 좋아한다, 검이 미쳐살며, 강자와의 결투를 고대하는 그를 사람들은 괴물취급 하였다.
시원한 바람이 시골길을 스쳐지나가 두 사람을 훑고 지나간다. 남자는 눈웃음을 지어보이며 고개를 갸웃거리며 적의 없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 와중에도 상대방을 살피는 건, 투귀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기본적인 것 이외에는 할 줄 모르니 큰 기대는 안 하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월은 천옷사이의 주머니를 꺼내더니 작은 검은색의 상자를 꺼내 여는 오월. 안쪽에는 칠흑빛깔의 작은 목도를 비롯한 정체모를 목기들이 들어있었다. 오족의 주민들이 쓰는 간단한 의료도구의 모음으로 월이 쓰는 칠갑과 같은 과정을 통해 만든 것이었다. 어쩌면 신농께서는 이러한 용도로 쓰는 것을 더욱 환영하셨을지 모르지. 월은 조용히 범의 목을 더듬어가며 절제하기 좋을 만한 자리를 찾는다.
"그나저나 아까 전에는 피를 기마냥 흡수하시던거 같은데....저 서쪽 땅에는 피를 마시고 영생을 누리는 흡혈귀라는 요괴가 있다는데 혹시 아영님이 그 부류 아니십니까?"
월은 급박한 상황에서의 긴장을 덜려는 듯이 호랑이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힘을 주는 동시에, 목덜비 근처의 혈관에 단도를 대어 픽-하고 그어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쏟아져 나오는 피. 이야이야 이거 위험한데.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그리 무겁지는 않은 것이 짐승은 아니고, 그럼 사람이구나. 하며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면 마침 저번에 봤던 남자가 서있다. 그때는 강가였고 이번에는 풀숲인가? 생각하면서 천천히 일어나려고 하는데, 너무 오랫동안 가부좌를 틀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몸이 말을 잘 안듣는다. 다리 힘만으로는 버거운지 손을 짚고 겨우 일어난뒤에 당신을 향해 손을 휙휙 흔든다.
" 또여.. 암튼 반가워잉. "
늘어지는 말투는 심히 나른해보여 마치 방금 전에 일어난 사람같다. 말이 끝난 뒤에는 당신의 웃음짓는 모습을 슬쩍 보더니, 팔짱을 끼면서 마주 입꼬리를 올려보인다. 웃는건지 웃는 척 하는건지. 감이 안 잡히는 느낌이다.
아영의 예측이 맞다면 피에서 독기를 걸러내기만 하면되는 부분이었기에, 혈관을 자르는것 자체가 필요했던것이다. 자신의 검으로는 파상풍을 일으키던 숨통을 끊어놓건 둘중하나기에 그것보다는 오월이 무언가 계책이나 도구가 있다면 하는 편이 나았다라고 말하고싶은 것이리라.
"좋아 그정도면. 그리고 흡혈귀라니 너무한거아닌가. 요괴는 아니라고. 그리고 남쪽에 산다는 비연마도 아니니까 이상한소리는 하지말아줄래. 내가 기억은 못해도 확실한건 마공의 영역에 걸친기술이라 잘못하면 피에 취해버린다고."
목기로 절제되는 광경을 보고는 안도했으나, 이윽고 들어온 오월의 농담같은 소리에 아영은 반쯤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본다.
"그럼 혈도의 길에서 독기를 제해보자고."
영수를 해하는건 마을에도 화를 불러올수도 있는 일이기에 응급처치를 하는것이 좋은 선택지라고 아영은 판단했다. 그렇기에 혈을 흡수하고 기로 바꾸는 이 마공에 있어 간단한 응용이라면 그것은 가능할 터이다. 자신의 무공의 경지를 확실히 아는것은 아니지만 간단한독이라면 기로 그것을 정화하는것은 가능했다.
"생각보다는 깊은것같지만.. 이정도라면."
아영의 오른손이 진홍빛으로 빛나며 흐르는 피를 멈추어내고는 정지된 피속에서 독기를 걸러내갔다. 그나마 아까전에 기로 전환한 양이 어느정도있고 영수의 피였던 모양인지 일에는 그 지장이 없어 이내, 호랑이의 거친 숨소리가 편하고 진정되어가는 것을 볼수있었다.
청조검을 잡고있는 상태로 느긋하게 팔짱을 낀다. 여전히 외모와 상당한 괴리감을 자랑하는 말투에 실소가 흘러나올뻔 했으나 고개를 살짝 숙여 올라가는 입꼬리를 진정시켰다. 남자는 손을 휙휙 흔드는 그에게 가볍게 고개를 대각으로 기울여 목례로 답하였고 이내 유수의 질문에 답변해주었다.
"파천이 말한 사산혈왕, 그리고 장군들을 습격하는 시기가 다가오는 만큼 진정하기 힘들더군요. 그래서 조금 기분전환을 위해서 나왔습니다."
남자는 되도록이면 파천의 무리들 대부분과 싸우고 싶었다. 그러나 멋대로 검을 뽑는다면 파천의 무리들에게 미움받을 것 같았기에 최대한 자제하기로 마음먹었다.
'조급해하지 말자. 어차피 싸울 기회는 많이 남아있으니까'
사산혈왕과 싸우는 생각만하고 기다렸다. 어떤 무공을 쓰는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아무것도 몰랐으나 그의 머릿속에는 싸움만이 들어차있었다. 과연, 얼마나 자신을 즐겁게 해줄까.
" 이 상황에서 긴장할 일이 뭐가 있겄어. 앞으로야 그럴지도 모르지마는, 지금은 하는 일이 밥 먹고 자고 술 들이붓고 자고. 반복이여. "
실제로, 최근 4일간의 행적이다. 다른 무인들이 홀로 수련한다던지, 서로 칼을 맞대어 본다던지 하는건 먼나라 이야기같은 말이다. 전투라는걸 도통 안해봤으니 그럴만도 하지. 진짜 전장에 나가봐도 칼 들고 싸울 일은 하나도 없을테고. 칼집에서 칼 꺼내는 날이 아마 저승길로 가는 날일거라 생각하고 있는 마당에, 긴장감이 있을래야 있을수 없는 것이다.
" 겁 집어먹은건 아닌거 같은디.. 아, 당장이라도 싸우고 싶은거구만. 대단허네잉. "
당신의 당당한 모습을 보아하니, 진정이 되지 않는다는 말은 싸우고 싶다. 의 준말으로 이해했다. 또한 실제로 비슷할지도 모르는 일이고. 겁이 없다는건 나쁘지 않은 일이다. 많은 것보다는 백배 낫지.
남자는 유수의 말에 과연 눈 앞의 사람이 전투에 적합한지 훑어보기로 하였다. 어쩌면 파천은 장군이 아니라 군주이기 때문에 이전의 소협이 말했던 것과 같이 머리를 쓰는 사람을 구했을지도 모른다. 눈 앞의 태평한 사람이 백으로 천을 능히 죽일 수 있는 자로 보이는가?
'...'
남자는 섣부른 판단을 보류하기로 하였다. 약한자여도, 강하자여도. 파천의 무리는 그를 즐겁게 만들어주었다. 직접 싸우지 않는다고 하여도 분명 그들이 보여주는 강자와의 대립은 그에게 흥겨운 여흥이 될 것 이다. 이리 생각하면 그간 기다림이 달콤하게 느껴진다. 마치 당과 같이.
"당신은 다른 이들과 다르게 여유롭네요. 봐왔던 것이 달라서 일까요?"
남자는 빙글 웃으며 한 발자국 다가섰다. 그리고 친절하게 물었다.
"상에서 강하다고 쏜 꼽히는 사산혈왕과 싸운다는데 보통 이런반응을 보이지 않나요? 심장이 쿵쿵 거리는게.."
오월이 아영의 말에 따라 호랑이를 놓아주자 놈은 그래도 겁이 났는지 순식간에 뒤로 물러난다. 허나 금새 자신의 몸에 기운이 돌아왔는지를 아는 것인가, 아까와 같은 맹렬한 적의를 드러내지는 않은채 조용히 자신들을 바라보았다. 뒤이어 주변에 낭자한 맷돼지들의 참상을 보더니 무언가 슬픈 눈으로 침묵을 지키는 범. 이내 놈은 아영과 오월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조용히 숲으로 걸어들어간다. 아직 후유증이 남긴했지만, 영물이니 잘 추스리겠지.
"....이거 참 큰일이었군요."
월은 그렇게 말하며 아영을 바라보았다. 말은 거칠게 하고 합리주의를 표방하며 야먕을 부르짖는 이 욕쟁이 할머니 같은 어투의 사람은, 어쩌면 스스로가 말하는 것 만큼 가열찬 사람은 아니지 않을까. 이러쿵 저러쿵 말해도 그 안에 있는 것은 생명을 중히 여기고, 짐승이라도 곤란을 해결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소녀의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어떤 의미에선 안타깝기도 했다. 이런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길래 지금과 같은 태도를 고수하는 것일까.
"그나저나 말입니다. 아영님께서는 제 생각보다는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네요."
라며 칭찬인지 험담인지 모를 이야기를 뻔뻔하게 말하는 오월. OH! 나 외지인이라서 예의에 어긋나는 말인지 몰랐어YO! 스러운 태도로 넘기려는 것 같다. ...역시 한대 정도 때려도 괜찮지 않을까.
" 그럼 좋지도 않은거구먼. 대부분 무인들도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허는진 몰러도, 별로 좋아하지 않지. "
말 그대로 단점을 노린다기 보다는, 뒤에서 비겁하게 푹 찔러버린다거나. 그런 야바위에 가까운 말이었으니. 좋은 반응을 기대하기는 애초부터 힘들었다. 그러나 당신의 반응은 조금이지만 다른 느낌을 주었다. 야바위를 싫어하는게 아니라, 애써 단점을 노린다는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 것 처럼.
" 당연히 이길수 있겠제잉? "
입꼬리를 올려 씨익 웃으면서 말을 던졌다. 죽죽 늘어지는 말투는 그 자체만으로 오묘한 기분이 들게 했다. 물론 그가 당신에게 나쁜 감정을 가진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사실상 농담조에 가까운 말이었으니까.
" 그려. 나도 이걸 어찌쓰는지 감이 안오지만.. 시험이나 해보지. " " 여기 내 힘을 바치어 태산보다 높은 토벽을 세우나니, 모든 칼날을 가로막으리라. "
가능은 한건가? 그리 생각하며 대충 생각난것을 읊조렸다. 몸에서 뭔가 빠져나오는 기분과 함께, 눈앞에 그보다 머리 하나정도 커보이는 흙으로 된 벽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만 말이다.
가을의 밤에는 저만의 특별한 분위기도 있습니다. 명운은 눈을 감고 연공법을 시행하며 자신의 기를 가다듬습니다. 오행의 기들이 그의 코로 스며들고 양기가 입으로 새어나옵니다.
"역시 여기 있었구나."
명운이 무거운 눈꺼풀을 올려 바라본 곳에는 갓 서른에 든 것으로 보이는 청년이 명운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전 무림맹주. 명천(明天) 유진하. 그는 명운을 마치 자식을 바라보는 듯한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정말 여기서 나갈 생각이냐. 여기라면 누구도 너를 욕할 사람이 없다."
명운은 그 말을 듣고도 빤히 하늘을 바라봅니다. 유진하는 그런 명운을 가만히 두고 곰방대에 불을 피워올릴 뿐입니다. 새하얀 연기가 하늘을 향해 날아갑니다. 그 자취를 눈으로 흩으며 명운은 작은 목소리로 말합니다.
"이루기 위해서는 싸우는 법을 알 필요가 있다고 스승님이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제 몸을 지킬 정도의 몸이 있으면 남은 것은 지혜로서 이룰 수 있지 않겠느냐." "허나 혼란한 세상에서 지혜로는 이룰 수 없는 것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힘으로서 이룰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느냐."
명운은 입을 열지 못 합니다. 유진하는 그런 명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곰방대에 남은 재를 버립니다.
"네 힘에 취하지 말거라. 너의 의지를 돕기 위해 모인 그들을 믿거라."
명운은 고개를 숙입니다.
"모르겠습니다."
유진하의 눈은 명운을 꿰뚫습니다. 무림도, 속세도 버리고 들어온 산에서 처음으로 얻은 자식같은 제자입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유진하는 명운을 놓아주는 것이 명운이 바라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키우니 멀어지는 것이 자식과 꼭 닮았다고 유진하는 어물쩡 말하고는 하늘을 바라봅니다.
아그리고 화폐 교환방식 지금 오자가 있어서 그런데 금화 - 은화 - 동화 의 형태로 나뉘며 1은화는 10 은화, 1금화는 100은화의 교환가치를 가집니다. 각 화폐 뒤에 갑(甲)이 붙는 경우 화폐의 가치를 30배 높게 봅니다. 30동화(갑)의 경우 900동화로 9은화로 보실 수 있습니다.
“아이고, 날이 좋다 못해 어째 덥기까지 느껴지게 하는구나. 저 태양 아래 있다가는 타서 죽겠네.”
제 검은 옷을 갈아입거나 목을 두르고 있는 천을 벗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로 헤이화는 그렇게 중얼거린다. 날씨 한 번 더럽게 좋구먼. 놀기 딱 좋아. 하늘을 바라보다 그렇게 흥얼거린 여성은 적당히 자리를 옮길 곳을 두리번거리며 찾더니 큰 나무 아래가 좋겠다고 생각한 듯 성큼성큼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거기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는다.
“이런 날에는 그냥 시원한 곳에 누워서 뒹굴뒹굴하며 무료하게 시간이나 보내야 딱 맞는데. 쯧.”
혁명이라는 것은- 사람에 따라 느끼는 바는 다르겠지만 적어도 그 엄중함만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헤이화라는 여성은 그것에 끼이기에는 너무나 가벼워 보인다. 그 생김새도, 그 성격도. 그것은 그녀 자신조차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세상 한 번 더럽지, 더러워. 세상만 멀쩡히 돌아갔어도 이 헤이화, 흥청망청 시간이나 멋없이 쓰면서 생을 보내는 것인데 왕국을 갈아엎으러 가고. 신도 참, 사람 귀찮게 하는 걸 어찌 이리 좋아한단 말이냐.”
헤이화가 느낀대로 너무 맑다 못해 덥기까지 느껴지는 날씨는 월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는 열대우림이 우거진 남쪽의 땅에서 왔기에 이 정도의 더위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그것과는 별개로 작렬하는 태양빛에는 익숙해질 수 없었다. 수풀속, 나뭇잎 밑에 숨어 태양을 피하는 것이 오족의 사냥방법이었으니. 어쨌든 결과적으로 월은 평소보다 기운이 빠진채로 태양을 피할 곳을 찾던 와중, 헤이화가 기대어 있는 나무를 찾을 수 있었다. 다행이군! 신농님께서 도우셨다.
"이거 귀찮은 일이 하나 더 늘게되어 유감입니다만, 동석해도 되겠습니까? 이 뙤약볕이 너무나 거슬려서 견딜수가 없어서 말이지요."
월은 눈을 감은 헤이화가 눈치채주길 바라듯이 소리를 내며 나무그늘 아래 들어오고는 머리에 쓴 삿갓을 들어올리는 것으로 인사를 하였다. 분명히 예전에 본 얼굴이었다. 이름은 듣지 못했으나 어른 옷을 입은 아이같은 모습을 쉽사리 잊을 수는 없겠지.
"월이라고 합니다. 칠림산에서 왔지요. 귀공께서는...?"
월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눈앞에 있는 사람이 빈민가에서 자란 뒷세셰의 암월주라는 사실을 알아챌 정도로 눈치가 좋지 않았다. 귀공이라는 깍듯한 존칭이 서민들에게는 소위 '손발이 오그라드는 표현'이라는 것도 몰랐고. 귀족과 빈민이라 이 세상에서 이렇게 안 어울리는 조합이 있을까.
왜일까. 마지막에 던진 적-당-히라는 말에 뼈가 섞인 듯한 기분은 그저 착각일까.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빈민가와 벽지 사람이라는 주류 세력에서 벗어났다는 공통점이 있어도 지금까지 탄탄대로를 걸어온 순진한 도련님인 월과 산전수전 공중전 해전....아니 공중전과 해전은 뺀다 하더라도 여하튼 집에서 쫒겨나 아득바득 살아온 헤이화 사이에는 장성과 같은 인식의 차이가 있으리라.
"하하 그렇게 귀한 집은 아닙니다. 솔직히 중원의 표준어도 아직 완벽하지는 않구요."
월은 그렇게 말하며 등의 봇짐에서 꽤 넉넉한 크기의 돗자리를 펴내 땅에 깔고는 앉고는 헤이화에게 손짓한다. 맨땅에 앉지말고 여기에 앉는건 어떠냐는 것이겠지. 음, 재수없다. 거기다가 차가 든 호리병과 찻잔을 꺼내 차를 따르고 권하기까지 한다. 아~재수 없다~!
"그러고보니 조금전 이야기를 들어보니 헤이화님께서도 명운이라는 소년의 아래에 계신 모양인데..."
월은 그렇게 본론을 꺼내기 시작한다. 앞으로 함께할 동료다. 서로 알아두어서 나쁠건 없겠지.
돌아오는 월의 대답에 헤이화는 양 눈을 뜬 다음 이리저리 또르륵 굴린다. 칠림산이라는 곳은 그녀의 생각보다 먼 곳에 있는 곳인 것은 확실하고, 귀한 집은 아니라고 해도 계속 사용하는 말투를 봐서는 좋은 집인 건 사실인 모양이라고 판단한 그녀는 눈을 잠깐 감았다 떴다. 이게 다 뭐람. 맥빠진 소리가 입에서 흘러나온다.
"봇짐에 그런 것 까지 챙겨 다닌다니 대단한데.... 오, 차다."
신기하기도 하면서도 어째 기분이 나쁜 것은 왜일지. 헤이화는 그녀답지 않은 엉거주춤한 걸음으로 월이 펼친 돗자리에 다가가 앉는다. 찻잔을 이리저리 살펴보다 그 안에 든 것을 잠시 머금어 넘긴 다음 헤이화는 월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정답.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너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지. 아, 근데 나한테 그 '님' 자는 좀 치우고."
결전의 날은 언제나 갑작스럽게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지내고 있었던, 아니면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그 시간이 깨지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하늘에 나타난 흐트러진 천(天)자 구름을 보고 모두는 약속한 듯 마을의 입구에 서게 됩니다. 그 자리에는 검은 도포를 입은 소년, 명운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명운에게서 풍기는 진한 기운에 여러분의 등에 서늘한 느낌마저 가져옵니다.
" 다들 준비는 마치셨습니까. "
명운은 여러분을 눈으로 훝어보고는 손끝을 움직여 두 갈래의 길을 만듭니다.
" 먼저 물어보겠습니다. 저는 강압성으로 갈 것입니다. 하지만 소문에는 제가 태화로 간다고 되었죠. 그렇기에 태화로 가시는 분들은 전투를 각오하시고 가는 것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
태화의 적은 사산혈왕 박주영. 정파칠두의 일좌이자 권사들의 영웅과도 같은 자입니다. 그런 자 이외에도 수많은, 파천을 노리는 적들과 싸워야만 할 것입니다. 파천이란 그런 명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을 부수는 자를 죽인다. 그 칭호는 무섭습니다.
헤이화는 눈을 찌푸린 채 하늘을 바라보았다. 허, 이거 습관이 되겠구먼. 그렇게 투덜거리며 평소보다 재빨리 발걸음을 놀린다. 목적지는 우선 마을 입구. 하지만 앞으로 가야 할 길은 더욱 멀고,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를 것이다. 그녀는 어찌 스산함을 느끼면서 자신이 따르게 될 소년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준비할 것 뭐 있나. 늘 단검이야 그 날을 벼른 뒤 들고 다니고 있는데."
몸뚱어리만 움직이면 끝. 헤이화는 명운의 말에 팔짱을 끼며 그리 이야기 한 뒤 고개를 삐뚜름하게 기울였다.
월은 별 다른 고민 없이 태화로 가는 길을 선택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과 세상의 격차. 중원과 오족의 격차. 고향과 이국의 격차를 알아야 했다. 우물안 개구리임을 깨달았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우물의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하면 그곳을 기어올라갈 수 없는 법이다.
"저는 태화로 가겠습니다 명운님."
그러나 이러한 선택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월의 혈기는 끓어오르고 있었다. 중원의 강자들과 힘을 겨뤄볼 수 있다는 희열에. 1. 태화 *
팔짱을 끼고 가만히 상황을 지켜본다. 인원 수가 적은 쪽으로 맞추어 갈까. 아니면 많은 쪽으로 가서 적당히 편하게 있어볼까. 어느 쪽이든 적과의 충돌은 있겠지만, 조금 더 어려운 곳은 명운이 말했듯이 태화 쪽일테지. 그러나 그 사산혈왕이라는 자가 대체 어떤 모양으로 생겼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 그러면 이쪽으로 가볼까. "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태화 쪽으로 가기로 했다.
이쪽으로 가면 '지식이 늘었다!' 라는 문구와 함께 안 좋은 일이 닥칠지도. 하지만 사람의 호기심이라는게 어쩔수가 없으니 말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사람 수도 적다는걸 깜빡해버렸다. 난관이야, 난관이구나. 설마 죽지는 않겠지?
바로 오늘이다. 그.. 거창하게 말하자면 혁명의 첫번째 날. 5일이라는 시간이 길면서도 짧은 것같이 애매하기는 했으나, 아무튼 그 날이 오고나니 긴장 정도는 해두어야 겠지. 평소엔 들고 다니지도 않던 칼 자루를 허리에 차고는 바위에 앉아 명운의 호출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일이 벌어질런지. 어디로 가야할지. 그런 고민을 하던 찰나에 당신을 발견했다.
" 호오. 그쪽도 명운을 기다리는 중이여? "
저번 객잔에서는.. 재미있는 일을 겪었었지. 이대로 모른 척 하기에는 애매하여 말을 걸어본다. 거사날이니 어떤 무구를 챙겨왔을지 궁금하기도 했고. 많이 겪어보지는 않았어도 싸움에 아예 관심 없는건 아니니.
" 그 갑옷.. 신기하게 생겼구먼. "
당신을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발견한 것은 뭔가 신기하게 생긴 갑옷이었고, 처음보는 것에 호기심이 든 것인지 몰라도. 나름대로 눈을 크게 뜨고는 갑옷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이 지금까지 묶은 객잔에서 짐을 전부 챙겨들고 나온 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날이었지만 나름 정이 든 곳인데 이렇데 떠나야한다니 조금 아쉬운 노릇이다. 앞으로 갈 곳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게 거리를 나오자 예전에 같이 술판을 벌였던 유수가 보인다. 그 날 위장에 구멍....아니, 구멍 같이 귀여운 것이 아닌 위장에 폭탄이 터질 정도로 마셔대었던 예인. 오늘은 왠일로 칼까지 허리에 차고 있다. 과연, 저 사람도 나름대로 무력을 갖춘 이일까.
기다리고 있다기 보다는 시간을 죽이고 있는 것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네요. 그나저나 위장은 괜찮으십니까?"
저는 사실 그 날 죽는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월은 유수가 가리키는 갑옷을 보고 말을 이어갔다.
"...사실은 적당히 얼버무리려고 했는데, 계속해서 숨겨두어봤자 별로 의미 없을 것 같으니 밝혀두겠습니다. 장로들이 알면 불벼락을 뿜겠지만..."
갑옷의 비밀을 오족 외의 사람에게 이야기할 경우, 그자는 혈족을 포함해 추방당하는 것이 오족의 관습. 그렇게 수백년간 숨겨온 전통인 것이다. 그러나 자신은 그 고립을 깨고자 고향을 벗어난 것이 아닌가. 앞으로 함께 싸울 동료. 언제까지고 숨겨둘 수도 없으니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제일일 것이다. 별 것 아닌 일이었지만, 월의 내면에서는 꽤나 크나큰 결심이었다. 월은 두 손을 겹쳐 실례한다 표현한 뒤로 유수의 품에 묶인 칼을 꺼내 손에 들어본다. 음 꽤나 좋은 검인데.
"백문이 불여일견...은 중원의 속담이었지요? 설명하는 것에는 익숙치 않으니 이걸로 대신하겠습니다."
라며 할복하는 것 마냥 검을 두 손으로 잡아 자신의 배에 찌르는 월. 그 속도를 보아 무언가 속임수가 있거나 적당히 휘두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직후 울려퍼지는 지잉-하는 기묘한 충격음. 월은 조용히 다시 검을 돌려주고 소매를 접어 팔에 쓴 갑옷을 제대로 보여준다. 마치 밤하늘 처럼 새까마면서도, 투명한 수면처럼 주변의 풍경을 비치는 기묘한 빛깔.
"오족칠갑. 오족의 비전 중 하나입니다. 보다시피 온갖 쇠붙이를 튕겨내면서도 천만큼이나 가벼운 영물이죠."
딱히 정보를 캐내기 위해 말한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알아두어서 나쁠 것은 없으니, 일단 당신이 설명하는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왠지 중요한 비밀인것도 같은데 괜찮을까? 하면서. 일단 허리춤에서 칼을 꺼내가려 하자 팔을 들어 쉽게 꺼낼수 있게 했다. 무슨 일을 하려는거지.
" 어이구야. "
그 다음의 행동이 잘 예상되지 않았던건지 고개를 갸웃거리다, 당신이 별 망설임없이 갑옷에 칼을 꽃아넣자 놀란 모습으로 당신을 살펴본다. 꽤나 오묘한 느낌의 충격음과 함께, 전혀 타격이 없어보이자 일단 다시 건네준 검을 받아들기는 했으나. 갑옷이 발하는 색이 또 호기심을 불러 일으켜서는 연신 끄덕끄덕하며 반짝대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 대단허네잉. 정말 영물이라고 할 만한 물건이여. "
아무리 갑옷이라도 칼을 충격 하나없이 막아낸다는건 쉽지 않은 일이다. 적어도 살짝 망가진다거나 하던데, 이건 그렇지도 않으니..
"가치를 알만한 암매장에 내다 팔면 꽤 돈을 벌 수 있을 겁니다. 제조법을 알아내면 평생 굶어 죽을 일은 없을테고....일단은 비전은 비전이니까요."
월은 그렇게 말아며 어깨를 으쓱했다. 말하고 나니 오히려 후련하기까지 한걸. 앗, 그런데 잘 보니 아까 전에 쇼 한 것 탓에 검 앞에 조금 이가 빠졌다. ....눈치 챘으려나? 눈치 못 챘나? 여하튼 월은 뭔가 조금 캥기는 표정으로 검을 돌려주고는 말을 이었다. 수리비 내라고 하면 어쩌지. 사실 고향에서 돈 들고 왔는데 그거 아껴써야 하는데!
"뭐, 이런 물건이라도 가지고 있었기에 명운님이 눈길이라도 준 것이겠지요. 그럼 이제 제 쪽이 질문. 유수님께서도 그냥 예인은 아니시지요? 무언가 가진 재주라던가가 있어 여기에 오신것이 아닙니까?"
물론 정당한 방법으로 가지려 하지는 않겠지.. 당연히 그런 나쁜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래야겠으나. 턱을 괴면서 그렇게 말한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난 것이 있었다. 어라, 그러고보니 칼날에 이가 나간 것 같은데. 받아든 검을 무심코 바라보고 난 뒤에 바로 느낌이 왔다고나 할까. 어차피 전투 중에는 진짜 급할때가 아니면 사용할 일은 없지만서도. 눈을 살짝 굴려대다가, 그렇게 눈치채지 못한 것처럼 가만히 칼집에 집어넣었다.
" 잔재주는 있제. 바람을 불러온다거나 하는거.. 솔직히 많이 써보지는 않아서리. "
무엇보다도, 말을 해야 발동된다는건 좋기도 하지만 안 좋은 점도 있다. 말하는 자신이 오글거려 참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분명 쓸만한 능력인데도 말이지..
"네? 바람을 불러요? 그건 어떤 주술입니까? 혹시 신선들이나 쓴다는 선술이나 뭐 그런 종류입니까?"
월은 눈을 깜빡여대며 유수를 재촉해댔다. 다 큰 어른이 이러는건 좀 아니지만, 여하튼 궁금한건 궁금한건데 어떻게 하나. 그러나 칼도 살짝 망가뜨려놓고 계속 칭얼대는게 미안하긴 하다. 이쯤 해두자. 칼 수리야 나중에 돈이 생기면 술이나 거하게 사두고 고쳐주도록 하자. 라고 빛을 갚지 않는 빛쟁이들이 하는 생각을 하는 월이었다.
"뭐, 말해주시기 곤란하다면 나중에 직접 보게 될테니 그때로 미뤄두죠. 그나저나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지만, 실력울 겨룰 강적들이 많았으면 좋겠네요. 유수님은 어떻습니까? 만약 안전한 길이 있다면 거길 고르실 겁니까?"
손뼉을 짝 하고 친다. 아마 그 전까지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도 감을 못 잡았던게 틀림없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만의 무공이 정확히 무엇이고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알고 있을터인데, 자신이 가진 힘도 제대로 모르고 있다라? 아, 스스로 반성해야할 거리가 하나 더 생겨났다. 진짜 정직하게 반성할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렇게 되니 당신에게는 무슨 힘이 있을지 궁금해진다. 곧 보게 될터이니 재촉은 하지 않았지만.
" 흐흐, 그렇지? 나중에 보여주자고, 나중에. "
씨익 웃으며 작은 주머니에서 꺼낸 피리를 돌린다. 어디선가 얻었던 신기한 피리.. 라고는 해도, 작고 긴 것이 돌리기 편하기도 하다.
" 머릿수를 맞춰서 갈지, 아니면 편하게 갈지 고민 중이여. 어느 쪽이든 별로 상관없으니. "
기왕이면 안전한 곳이 더 좋겠지만. 이라고 말을 끝맺는다. 느긋한 말투가 정말 어디로 가든 괜찮을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아마 자신도 몰랐을거다. 이후에 전혀 안전하지 않은 태화 쪽으로 가리라는걸.
찬란이 아니면 다 그만이다 죽음 앞에서 모든 목숨은 찬란의 끝에서 걸쇠를 건져 올려 마음에 걸 것이니, *
먹을 칠한 듯 어두컴컴한 하늘에 하나 둘씩 별이 빛난다. 시간을 가늠하긴 어려우나 아마 해시이라 짐작한다. 들이쉬고 내쉬는 동안에도 시간은 쉴 새 없이 흘러간다. 밤이 깊었다. 내일은 그래, 그 귀여운 도련님의 입을 빌리자면 '혁명' 의 첫날이다. 잘 수가 없지. 잠들리 없다. 두려울 리도 없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후우우우우……"
곰방대를 내려놓고 천천히 하늘을 올려다본다. 과연 난 대로 할 수 있을 것인가, 망칠 일은 없다. 되려 즐거워서 도를 넘길 까가 걱정인게다. 가라앉혀야 한다. 가라앉혀야 한다. 결국엔 절제해야만 이루어 낼 수 있는 것들이다. 절제해야만 한다. 자잘한 욕망은 잠시 내려두고 눈 앞의 업에 집중해야한다.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건 즐거운 일이다, 아니, 즐기면 곤란하지. 이건 일이니까.
늦은 밤의 아래에서 거행의 날을 기다리는것은 생각보다 잠이오지 않는 일이라고 아영은 생각했다. 첫째는 가능성의 영역에서. 거행의 성공성을 생각하는 것에 있어서의 불안에 의한 불면이다. 둘째는 강자를 만나는것에 대한 걱정과 동시에 그 강자를 뛰어넘고싶다는 두근거림에 있었다. 셋째로는 이 혁명의 발판이 세워짐으로서 일어나는 정복이라는 달콤한 갈증에 체울만한 상황들이 온다는 점은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를 따라 여행을 갈때와도 같은 설레임과 같은 감정이었다.
"Түн терең.(밤이 깊군.)"
별자리가 수놓아진 밤하늘의 아래에서 나는 아련한 기억속의 다른 언어를 읆어본다. 짧은 어구정도는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쪽의 얼굴은 나하고도 비슷한거같네. 킥킥. 비슷한 동류라도 있는것인가."
그 밤하늘 아래에 또 다른이가 한명더 있었으니, 검은 양갈래 머리의 요염한 분위기를 가진 여성이었다. 아영은 그녀에게서 깊고도 달콤한 혈향을 은연중에 느낄수가 있었다. 저쪽 역시 손에 피를 묻히지않은 인간은 아닌것인가 보다.
단순히 즐겁다기엔 이 樂은 여행의 즐거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순수히 여행을 목적으로 딛는 발걸음도 아니었으며, 무구 없이 가는 길도 아니었으니. 결국엔 피웅덩이 위를 밟을 길이다. 그러니 어찌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적막을 가르고 들려온 것은 소수의 언어다. 누구? 돌아보니 보이는 건 묘령의 소녀. 하오리 비슷한 것을 걸치고 있다. 그저 어린애로 보기엔 하명은 별별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곳이다. 무엇보다, 저건 절대 어린애가 입을 법한 옷은 아니지. 가볍게 부채로 입을 가리며 웃고 나른히,
"소첩을 부르셨나이까? "
천천히 정자에서 일어나선 고개를 까딱였다. 그래, 비슷하긴 비슷하구나.
"동류를 뵐 줄은 몰랐는데 그게 이런 어여쁜 아가씨이실 줄이야, 이 신첩 감탄했사옵니다. "
이건 빈말이 아닌 진심. 강자에 대한 예의. 나른히 눈꼬릴 휘며 살짝 물러서 허릴 굽히고 인사를 올렸다.
아영은 여성을 보면서 정말이지 저자는 욕망으로 가득찬 눈동자를 가졌다라고 그러한 평가를 마음속으로 내리고는 그녀와 마주본다. 아영의 기분나쁘게 입꼬리가 올라간 웃음은 말그대로 뱀을 보는듯한 사기가 서려있었다.
"그래. 하지만 속을 끄집어내본다면 근본적으로는 차이가 있을수도 있겠네."
아영 본인은 어떠할까한다면 필요하다면 피를 묻히고 정복이라는 야망을 체운다. 라는 필요와 득실조건에 이르는 살육에는 가차가 없는 인간이었다. 그렇기에 아영은 죄책감이라는 감정은 크게 느끼지는 않았지만 필요하지않은 살육은 금기라고는 생각했다. 물론 욕망을 체운다는 입장에선 범인에 입장에서는 그게 그것일거라고 아영은 웃으면서 의미없는 차이점이라고 결론짓는다.
"소설을 하나 써볼까. 당신 고향쪽말은 엿듣는 수준이지만 히토기리(人斬り, 사람을 베는자) 아닌가? 당신은."
아영은 단순히 사람을 베는자 이상으로 사람을 베어서 먹고사는 자라는 의미에서 그녀의 분위기를 추측해본다.
"나는 <ruby 상아영>嫦娥朠<ruby>. 달빛의 여신이 내리는 달빛이라는 어울리지도 않는 이름을 쓰는 왈패. 소저니 대저니 하는 저자 돌림으로만 부르지않으면 어떤호칭이든 상관없어. 높은 표현은 거북하지만."
호오, 나직한 감탄사가 고요를 갈랐다. 저 사기는 군사로써의 士氣인가 아니면 저와 같은 詐旗인가? 어느 쪽이든 좋다. 조용히 한동안 웃음을 흘리다 답변하였다.
"단숨에 꿰뜷으셨습니다. 역시 비슷한 분이시군요. "
하지만…… 그렇죠. 본질적으로는 차이가 있는 법. 여전히 부채로 입을 가린 채로 눈꼬리를 휜다. 적금빛이 영롱히 소녀를 내려보았다. 다만 고갤 살며시 숙인 채로,
"맞춰볼까요? 小娘께서는 장수 혹은 그와 비슷한 사람입니다. 소첩의 생각이 맞을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
피를 흩뿌려 먹고 사는게 業인 이와 그렇지 않은 이는 다르다. 여자의 시선으로 볼 때 그녀는 저와 같은 위치에서 시작한 것 같진 않아보였다. 되려 그 이상의 목적이 있는 듯 보였으니. 의뢰에 따라 움직이느냐 아니냐는 큰 차이가 있다. 상관하지 않는다. 오히려 끌렸다. 이 어린 소녀는 속에 어떤 眞意를 품고 있을지, 시간은 충분하다. 알아내는 덴 늦지 않다.
"예쁠 娥에 달빛 朠이라……어여쁜 이름이시네요. 잘 어울리십니다. 그럼 신첩의 편한 대로 부르겠나이다. 소첩 역시 편하게 불러주시어요. 카즈하로 좋습니다. "
"이상할정도로 비슷한 부류의 냄새나 눈동자를 보면 읽기가 쉽거든. 이것도 과거적의 경험이려나. 사실을 말하면-."
아영은 자신의 머리를 검지손가락으로 콕콕 두드리고는 카즈하의 추측을 물거품으로 만들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수년전에 기억을 잃어서 왈패들 앞잡이나 하고있었지. 내가 어떤사람인지는 글쎄다? 킥킥."
아영은 카즈하의 추측에 대해서는 가능성을 열어두고있었다. 생각하는 방식은 확실히 군사나 장수로서의 생각을 가지고있다. 그럼에도 자신이 쥐고있는 이 검붉은 도신의 칼이나, 자신이 사용하는 마공을 보건데는 꼭 녹봉을 먹는 인간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무언가 다른게 있지않나 하고 고개를 젓는다.
"다만 소랑이라고하는건 제법 어리게 얕잡혀 보였구나 하는건 느꼈네. 어쩌면 내가 오만하게 깔보는거라고 그렇게 느끼고있는건가? 킥킥."
누구앞에서도 아영은 이러한 태도였다. 건방지고, 약간은 하대하는 투의 적을 만들기 쉬운 그러한 유형의.
상아로 깎아만든 주사위를 아영은 탁자위에 던져서 계속해서 6을 이루는 기지를 펼친다. 사실을 말하자면 야바위지만.
"어떤 조건으로 굴려도 6으로 수렴하게 만드는건 사기든 기예든 아무래도 좋아. 6이면 그만이거든. 기억은 잃었지만 이것은 하나 확실해. 태평천대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수단방법 가리지않는다. 어차피 삶은 고통이기에 고통받는 사람 하나 죽는다고 해서 상관없거든. 그러니까 고통을 더는 세계를 손안에 쥘수있다면 아무래도 상관없어. 그게 내 오만이지."
킥킥거리며 아영은 호칭에 대해서는 심드렁하게 마음대로 하라는 모양새였다. 별로 마음에들어하는 분위기는 아니였다.
굳이 따지자면 특별히 좋아하는 호칭은 있지만 제 안에 속하지 않은 이에게 내 호칭을 강요할 이유는 없다. 어떠히 불리던 눈앞의 이에겐 아무 상관 없는 별개의 일이다. 지금은 힘을 잃은 집단의 名을 특별한 이유 없이 자랑스레 부를 이유는 없다. 따라서, 그런 이유로 여자는 별말하지 않기로 했다. 호칭에 대해 말싸움할 나이는 지났다.
"맘에 드네요. "
주사위를 계속 던져 6이 나오는 象을 보며 笑言하였다. 방식은 아무래도 좋으니 결과가 6이면 좋다. 맘에 든다. 여러모로 말이 잘 통할 사람이다. 지긋이 실눈을 뜬 채 눈꼬릴 휘었다.
이거 참 흥미로운 이야기다. 수단은 어찌되든 좋으니 최상의 결과가 나오면 그만, 단 그를 위해선 적을 알아보는 게 중요하다라, 재밌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이 잘 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슬며시 입꼬릴 올려 媚笑지었다.
"신첩이야 명에 따라 움직이는 한낱 수단인 입장이라, 뭐라 말하긴 어렵습니다만…… " 정말 그렇게 여길까? 잠시 말을 뜸들이다 천천히 계속하였다. 하고 싶은 말이 많다.
"공녀께서 하신 말씀엔 동의합니다. 틈이 있어선 곤란하니까요. 틈 사이에 비집어 들어가는 게 아닌 이상…… 판은 철저히 차근차근 깔아 최상의 결과를 노리는 게 좋습니다. 그를 위해선 우선 상대를 잘 알아두는 게 중요하지요. "
물론, 난 그게 더 편하다. 판의 틈에 비집어 들어가 중요한 부분부터 헤쳐나가는 게 살수로서의 방식이었다. 피는 많이 흘려도 독이니 가능한 적게 흘리도록 움직이는 게 낫다. 무엇보다 시간을 질질 끌 생각은 없다. 아래에서부터 차근차근 밟거나 위에서부터 먹어나가냐, 어느 쪽인가 따지면 난 후자의 손을 들었다. 다만 그를 위해선 철저히 판을 깔아두는 게 중요하겠다.
007 매운 것을 잘 먹나요? 카즈하: 삼삼한 걸 좋아하나 가리지는 않사옵니다. 265 약에 대한 생각은? 카즈하: 필요하면 써야죠. 288 발톱 길이 카즈하: 물들여야 하기에 언제나 짧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https://kr.shindanmaker.com/646172
언령은 예를 들어 시와 가장 유사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문장 마법이 단어의 조합과 모호한 시조, 은근한 뜻의 표현이라면 언령은 확실하면서도 비유적인 표현, 강력한 선언, 기를 통해 세계에 구현하는 권능. 이 세 키워드를 이해하시면 언령의 개념이 조금 더 쉬워질겁니다.
<clr ADD8E6 C0C0C0>왕의 코소즈. 오직 왕만이 거거하며 왕의 영혼들이 머물다 가는 곳.</clr>
왕의 영혼들은 일반적인 영혼들과는 달리 지배의 신인 코소즈라 불리는 작은 보석에 의해 태어납니다. 코소즈의 파편 일부가 툭 떨어져 태어난 왕의 영혼들은 각자가 가장 어울리는 세계와 운명을 찾아 태어나게 되는데, 그때 영혼은 이 코소즈 계에서 정해지게 됩니다. 코소즈의 수호자들은 다른 계와는 다르게 태어남을 포기하고 왕의 운명을 버린 이들로 다른 세계의 수호자들과는 차원을 달리 한다고 합니다. 또, 가끔 세계에 왕의 코소즈가 떨어지는 때가 있다고 하는데 이 코소즈를 주운 이들은 왕의 운명을 부여받음과 동시에 코스즈의 힘을 얻는다고 합니다.
<clr #ADD8E6 #C0C0C0>왕의 코소즈. 오직 왕만이 거거하며 왕의 영혼들이 머물다 가는 곳.</clr>
왕의 영혼들은 일반적인 영혼들과는 달리 지배의 신인 코소즈라 불리는 작은 보석에 의해 태어납니다. 코소즈의 파편 일부가 툭 떨어져 태어난 왕의 영혼들은 각자가 가장 어울리는 세계와 운명을 찾아 태어나게 되는데, 그때 영혼은 이 코소즈 계에서 정해지게 됩니다. 코소즈의 수호자들은 다른 계와는 다르게 태어남을 포기하고 왕의 운명을 버린 이들로 다른 세계의 수호자들과는 차원을 달리 한다고 합니다. 또, 가끔 세계에 왕의 코소즈가 떨어지는 때가 있다고 하는데 이 코소즈를 주운 이들은 왕의 운명을 부여받음과 동시에 코스즈의 힘을 얻는다고 합니다.
장수는 아닌데, 복장은 그와 비슷하고, 명을 내리는 입장이라, 이 자는 과거에 누군가를 이끌던 사람이구나. 한 눈에 알 것 같다. 그런데 지금 보이는 이 이상한 상황은……? 소녀는 갑자기 어느 한 곳을 바라보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 방향에 나는 없다. 환영? 아니, 환청일지도 모르지. 소리가 들리는 걸로 보아 환청이 확실하다. 방향이 제 쪽으로 돌아가자 그제서야 여자는 입을 열었다.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은 걸 제하면 표정의 변화는 없었다. 침착하였다. 비정상적으로.
"실례되는 말이옵니다만, 혹여 방금 공녀께서 보신 건 환영이온지요? "
손수건이 있나 주머니를 살피다 제 상징이 새겨진 붉은 손수건을 찾아 소녀 앞으로 건네었다. 땀을 심하게 흘리고 있는 걸로 보아 좋은 걸 본 건 결코 아니리라 짐작한다.
사념이라면 역시 잃어버린 기억의 方인가? 단어에 의해 작동한 거라면 명의 쪽인가. 내리는 입장이라 하고 나서부터 머릴 잡으셨으니.
"지금은 괜찮으시다니 다행이옵니다. "
그녀의 일은 그녀의 일이고 내 일은 내 일이다. 내 사람의 일이 아닌 이상 신경쓸 이유는 없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계속 소녀의 말을 경청했다. 피안개화도, 마교에서 현상금이 걸린 물건이라 들었다. 꽤 상당한 금액이 걸려있었는데 마교의 그런 중요한 물건을 제 것처럼 들고 다니는 걸 보면 역시 소녀는 마교의 소속이거나 이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상사화 장식이 달린 마교의 보검을 들고 다니는 어린 소녀라, 흥미롭다. 아주 흥미롭다. 이 자는 상상 이상의 것을 감추고 있을지도 모른다.
"소첩의 소속에선 들어본 적 없는 검이옵니다만 놀랍습니다. 피안개화도라……피안을 열어 비추는 검이라. 멋진 이름이옵니다. " 예나 지금이나 거짓을 고하는 덴 변함이 없구나. 희미히 입꼬릴 올리며 상냥히 눈을 밝혔다. 같은 무늬에 다른 소속이라. 우연이긴 하나 재밌는 점이 아닐 수 없다.
'칼잡이가. 백을 베어버리면 사람들이 영웅이라고 칭해주더이다? 천을 베면 용장이라고 칭해주고, 그 이상을 베어버리면 천자가 친히 마중와서 등용해준다고 하였는데. 스승님. 사람들은 저를 피에 미친 살인귀라고 부릅니다. 이유가 무엇 입니까?'
'아 그렇구나. 내가 아직 백 너머를 베지 못해서 그렇구나.'
태평해 보이는 웃음, 하늘하늘한 평범한 옷. 멍하니 팔짱을 낀 상태로 다리 위에 올라서서 호수를 들여다보던 남자는 연신 좌수의 손가락을 움찔 거리며 청조검의 검자루로 갈려는 손을 붙잡 듯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럴 때 마다 검자루 끝에 있는 작은 장신구가 흔들렸으나 남자는 이게 자신의 환상이라고 생각한다. 검이 피에 맛들리면 주인의 정신을 홀린다는 설화가 짠 하고 떠올랐으나 남자는 방긋 웃으며 검자루를 강하게 쥐었다.
"사산혈왕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는데. 왜 이렇게 말을 안듣는지."
검자루를 단단히 감싼 가죽과 그의 손이 맞물리면서 나는 힘의 소리가, 호수바람을 타고 사그라진다. 남자는 기다림의 미학을 알고있다. 맛있는 찬은 꼭 마지막에 올라온다. 최고의 음식은 조리시간이 길다. 그러니 기다린다. 사산혈왕은 최고는 아닐지언정 맛있는 요리일 것 이다. 그렇기에 기다린다. 주린 배를 부여잡으면서도 식당의 손님은 웃는다. 기대어린 미소를 담고. 굶주린 검을 부여잡으면서도 다리 위의 수라는 웃었다. 다리 건너편에 다가오는 처음보는 누군가를 마주보며.
병든 것들은 늘 그랬다. 쉽게 칼날 같았고 쉽게 울었고 쉽게 무너졌다. 이미 병들었는데 무엇이 또 아팠을까. *
마지막으로 벴었던 게 누구였지? 그러고보니 이 자리에 앉고 나서부턴 거의 다 제 손으로 베지 않고 다 아래들을 활용해 벴었다. 되도록이면 직접적으로 나서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나설 이유가 없었으니까. 스스로 피를 묻혀본 건 대부분 앉기 이전의 것일 것이다. 최대한 필요할 때에만 피를 흘리고자 했다. 죽여야만 이룰 수 있는 의뢰가 아닌 이상 스스로를 억눌렀다. 술맛이 없다. 병을 내려놓았다. 고작 한 병 마신다고 취할 일은 결코 없다. 정신은 충분히 맑다. 그렇다면 왜 맛이 나지 않는 겔까, 그래 기분이 나지 않은 게지. 단지 나서기 싫었던 뿐 실은 넌 피를 원했던게 아니던가? 아니, 예상치 못할 일이 생길 게 두려웠을 뿐. 내 선택은 옳다. 그렇게 스스로를 속여봤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아. 빈 병을 그대로 든 채 다리를 올랐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끝이다. 그렇게 무심히 길을 걷다 다리 위에서 他者를 마주하였다. '그'를 따르는 일행인가? 저와 똑같은?
"그래요. 우린 초면이죠. "
은은히 입꼬릴 올리며 고개를 끄덕이곤 가볍게 흘러내린 옷자락을 잡고 고개를 숙여 인사하였다. 아, 그러고보니 이름을 듣지 않았다.
상대방에게는 남자와 같은 향이 얼핏 느껴졌다. 코 끝을 스쳐지나가는 벚나무 비슷한향도 향이였지만 남자의 구미를 당기게 하는 것은 조금 더 달면서도 쓰게 느껴지는 쇠의 향이였다. 마치 피와 같은.
남자는 고개숙여 인사하는 낭자를 향해 비슷하게 가볍게 목례를 하여 받아주곤 비슷하게 미소를 지어보이며 답했다.
"무슨 뜻 인가요 낭자? 벚나무 와 작은길의 나뭇잎이라는 뜻 인가요? 아니면 다른 뜻이 있나요? 하지만 분명 벚나무가 잘 어울리는 미인이십니다."
눈웃음을 지으며 방실거리는게 참으로 가볍고 허영심 넘치는 사내였다. 이런 자가 왜 파천의 대의를 따라왔을까 라고 의심할 정도의 가벼움. 그럼에도 남자는 조심히 이야기를 꺼냈다. 상대방의 이름을 들었으니 자신의 이름을 말할 차례다.
"저는 백성훈 입니다. 성은 양친이 없는 천애고아였기에 의미가 없지만 이름을 지어준 사람은 밝을 성에 불길 훈을 적당히 붙이면 있어보이니까 그걸 쓰라고 하였습니다. 이름조차 근본이 없는 자 이니. 낭자는 너무 저에게 격식을 차릴 필요가 없습니다. 부디 편하게 대해주시길....."
그리고 다시 목례. 공손하면서도 마치 광대마냥 익살을 떠는 인사가 사내의 깊이를 짐작하게 만든다. 그러나 언제나 생각하건데. 첫인상은 중요하다. 남자는 지금 자신을 얕보이게 하기 위해 이런 인사를 던졌다. 목례를 끝내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릴 때 살풋이 뜬 검은 눈은 카즈하의 검을 보고 있었다.
눈썹 아래를 넘어 자란 앞머리에 푸석거리는 검은 머리. 방실거리며 말을 건네는 건 눈에 띄게 가벼워보이는 투다. 얼핏 보기엔 남자는 허점이 많아보였다. 의도한 건지 아니면 일부러 흐트려 놓은건진 당장은 알 수 없다. 그에게서 씁쓸한 피냄새가 났다. 상냥히 눈꼬릴 휘며 뜻에 대해 답하였다. 흐트러진 樣은 이쪽 역시 동일하다.
"벚나무와 작은 길에 고운 잎, 이라는 뜻이죠. 하지만 실은 별다른 뜻은 없답니다. "
특별히 의미를 둘 정도로 특이한 이름은 아니다. 대륙에 카즈하란 이름을 가진 사람은 흔하다. 단지 이 성을 가진 이가 드물 뿐이다. 마지막 대는 아니오나 남은 이는 손에 꼽았다. 거르고 걸러진 끝에 남은 이들이니 삶에 대한 열망은 강렬하겠다. 요컨대 이 성씨에서 저와 같은 사람은 상당히 많단 얘기다. 여전히 미소지은 채 경청하다 다시금 목례를 건네는 남자에게 아니라는 듯 손을 저었다. 저보다 위일 사람을 못 알아볼 정도로 눈치가 없진 않다.
"천만에요. 공께선 충분히 근본을 갖추신 분이십니다. 너무 소첩 앞에서 스스로를 굽히실 필요는 없으십니다. 되려 근본이 없을 사람은 이 쪽이 아닐까 싶사옵니다만, "
진심어린 낮춤인지 연기인지, 마치 광대와 같이 늘어놓던 방금은 확실히 연기에 가깝다. 생각으로만 남겨두고 드러내진 않았다. 가볍게 제 한팔을 부여잡곤 입을 가리고 웃었다.
은은히 미소로 화답할 뿐 그 이상 입을 놀리는 일은 없다. 시골에서 피를 볼 일이 몇이나 있겠는가? 그저 아무 뜻 없는 이름일 뿐이다. 과장된 칭찬엔 반드시 뒤가 있다. 경계를 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단지 뒤에서 뽑을 준비를 갖출 뿐이다. 앞에선 여전히 미소를 띈 채 조용히 경청하였다.
"공께선 너무 자신을 낮추는 느낌이 있으십니다. 자신을 너무 낮게 보지 말아주시길, 사람의 기준은 저마다 다른데 어찌 제가 타인을 낮게 평하고 하대하겠나이까? 하물며 소첩은……, "
말을 다 하기도 전에 공기가 변했다. 옳거니, 이 자는 鬪鬼로구나. 피를 밝히는 투귀인겐가? 벌써부터 검을 뽑으련지 검자루에 계속 손이 가는 듯 보인다. 눈꼬린 휘어가나 입은 웃지 않았다. 너무 관심을 가져선 안 될텐데. 숫자를 세며 기억하기엔 너무 많이 죽여버렸다.
"모두가 살생을 업으로 삼진 않지요. 죽이기 위해 사느냐 살기 위해 죽이냐는 차이가 큽니다. 마찬가지로 목적이 있는 살생과 목적이 없는 살생 역시 명백히 다르지요. 소첩은 그저 살생을 업으로 삼은 천한 이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오해는 말아주시길. "
개인적인 감정은 없으니까요. 키링, 검을 뽑는 소리가 맑게 울린다. 달빛 아래 은빛 장검이 밝게 빛났다.
"시작하기 앞서……소첩은 피를 보는 걸 좋아하지 않사옵니다. 정말 武로 알아보길 원하시는지요? "
의뢰에 없는 자에게 함부로 殺手를 쓸 이유는 없다. 요컨대 제 검은 오로지 살인을 위한 검이란 게다.
"이 일에 임하면서 부터 무언가 기억을 찾을거같다는 그런 희망을 쓸데없이 가지게 되는군. 어쩌면 과거적에도 이런 일에 가까운 행위를 했던건 아닐까. 머리에도 피가 끓기는 하는지 요사이에 아련한 회상이 잦군. 칼을 써야할 상황에만 일어나지 않는다면야 나한테는 필요한 일이긴 하다고 생각한다."
이윽고 검신을 보여주자 아영은 카즈하가 하는 말에서 뜸들이는 타이밍이나 흥미롭게 보는 눈동자를 읽고서는 카즈하가 모른다는 듯이 말한 그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눈치챈다. 어느정도는 알고있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아영은 이렇게 생각해본다. 관련키워드를 넌지시 던진다면 금방 거짓말위에 떠보듯 들춰낼만한 구석이 있겠다고.
"도산무희라는 이름은 빛이 바랬는가."
누군가는 그렇게 불렀다는 것을 아영은 잊어버린 기억속에서도 파편처럼 간직하고있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넌지시 검과 짝이 되는 주인은 아영이라는 것을 강력하게 어필한다. 적어도 이 검은 아영이 훔친게 아니라 아영의 소유라고. 그것을 확신하고 확실하게 하고싶었던 것이었다.
"회상에 잠기는 건 나쁘지 않지요. " 정말 그렇게 생각할지, "꼭 찾으실 수 있으실 겁니다. "
상대는 비록 기억을 잃었다 해도 어느정도 눈치가 빠른 사람이다. 제가 거짓을 고하는지 아닌지는 금방 알수 있을 터. 이 상태에서 계속 한 발 물러서 있어봤자 알아채는덴 시간 문제다. 그나저나 어디서 많이 본 이름인데……생각났다. 도산무희刀山舞姬, 이제는 역사 속에서밖에 볼 수 없는 이름. 책에서 읽어 기억하고있다. 수십 년 전에 죽은 것으로 적혀있었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과연 그게 눈 앞에 있는 그녀일지는 글쎄, 기술을 보고 알아야겠지만. 검은 현상금이 걸렸으니 확실히 기억하고있다. 고개를 두어번 좌우로 저은 뒤 입을 열었다.
"바래긴 커녕 지금도 찬란하게 빛나고 계시옵니다. "
그나저나 과거의 사람이라기엔 너무나도 어려보이는데. 이 小娘께선 대체 어떻게 다니시는건지. 비법에 대해 굳이 궁금해 하진 않는 게 좋겠다.
>>925 - 검 그림자라는 의미로 기로 이루어진 검으로 취급됩니다. - 여섯 자루 검은 소비템으로 기 소모를 줄여 사용하거나 기를 소모하는 방식인데 이때 소모하는 검은 진행중 구입하셔야합니다. - 검영은 스톡으로 취급 가능하나 과반수 이상의 소비가 필요합니다. 3:3 비율의 소모는 불가능하나 4:2나 2:4는 가능하겠죠
맞는 말이다. 칼을 쓸 때엔 잡념은 필요없다. 칼을 쓰기 위해 접근할 때에도 잡념은 독이 된다. 그 빈틈을 노리는 것이 우리같은 사람의 일이지만 말이다. 흘러넘기는 소녀의 투에 '그렇습니까, '하고 저 역시 적당히 흘려넘겼다. 선인이 아닌 점은 이쪽 역시 같은 관계로 지나치게 자신을 드러내진 않고자 한다. 정의로운 암살자라니,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 않은가. 제 시작을 잘 아므로 난 전혀 정의롭지 않은 사람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니 이곳에선 스스로를 감출 수밖에 없다. 비슷한 이에게도 모든 걸 털어놓을 마음은 없다. 제 사람이 아닌 한.
"질 싸움을 시작할 생각은 없습니다. 충분히 방금 소랑께서 하신 말씀으로 믿게 되었으니까요, "
기술을 쓰기엔 준비에 필요한 시간이 너무나 길다. 제 힘을 보여줄 수는 있으나 여기서 쓰기엔 너무나 중요한 비기이다. 여전히 은은히 입꼬리를 올린 채 유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일종의 직업병이라 해야 할까요. 기분이 언짢으셨으면 면목이 없나이다. 소첩은 아직 모든 걸 털어놓는 덴 익숙하지 않답니다. 물론 파천께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옵니다만……. 아무튼, "
평생 호감 가지실 일은 없겠네요. 조금은 경쾌한 어조로 살짝 눈을 휘어 웃곤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도 전 소랑이 맘에 듭니다.
"굳이 힘뺄이유는 없기는 하지. 그저 증명이었어. 하지만 내가 이긴다는 확신은 안드는군. 밑바닥 그릇의 수준을 읽을 경지는 없거든."
흐름을 다시 끊어버린 아영은 그저 과시하는 느낌에 지나지않았다고 경계는 할필요없었다 그리 말한다.
"하지만 직언직설은 결국 사람 목잘리기 딱좋거든. 좋아하는건 별개로, 마음가짐 하나는 마음에드네. 일에 종사하는데서 그정도의 마음가짐이 없다면 오히려 절하평가했을거야. 음.. 이런말하기는 그렇지만 카즈하, 당신하고는 그래도 이야기할맛은 나는거같네. 마음에 안들진않아. 오히려 담소를 나누는 입장이라면 양면이 있어서 편한편이야."
그러니, 이번 거사의 첫번째 단계를 밟는다면 다음번에도 이런 만남을 가지자고 아영은 권해본다.
"소랑께오선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하시는군요. 조금은 확신을 가져주시지 않으시련지요. 신첩은 그저 약관을 넘긴 애송이일 뿐입니다. 어찌 소첩이 감히 소랑을 이기려 들겠나이까? "
어림도 없는 소리다. 초면인 이에게 감히 직언직설을 하려 들 패기는 없다. 칼은 언제나 뒤로 감춘 채 때를 기다려야지 함부로 제 뜻을 밝혀 스스로 수렁에 빠지는 짓은 곤란하다. 마음에 안 들진 않다는 말에 잠깐 입을 가리고 웃다 그녀의 다음에도 한번 더 이야기하자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뭘 마다하겠나이까. 답은 이미 나와있습니다.
"자아, 날이 늦었습니다. 이젠 소랑께서도 주무시러 가실 시간입니다. "
편히 쉬시길. 꿈에서는 나쁜 거 보는 일 없으시기를. 가볍게 작별인사를 건네곤 천천히 물러났다. 내일을 위해 준비할 것이 있다.
- 명운의 스테이더스는 동레벨대 인간보다 높은 편이다. - 유명한 요괴 중 하나인 대호왕은 여성형 요괴다. - 요괴는 세 가지 형태를 타고난다. 혼돈형, 인간형, 혼합형. 보통 혼돈형이 우리가 말하는 괴물의 형상에 가깝다. - 도께비는 요괴가 아니다. - 종족중에는 무기에서 태어나는 아키니스라는 종족이 있다. - 캡틴이 이러는 이유는 퇴근하고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