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극판 규칙 ☞ 상황극판은 익명제입니다. 본인이나 타인의 익명성을 훼손하는 행위는 삼가주세요. 하지만, 자신의 위치(스레주/레스주) 등을 밝혀야 할 상황(잡담스레 등에서 자신을 향한 저격/비난성 레스에 대응할 시 등)에서는 망설이지 말고 이야기해도 좋습니다. ☞ 서로를 존중하고, 자신이 먼저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집시다. 모니터 너머의 이용자도 당신처럼 '즐겁고 싶기에' 상황극판을 찾았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모두 두루두루 친하게, 잘 지냅시다. 말도 예쁘게해요, 우리 잘생쁜 참치타치☆★☆★☆:> ☞ 상황극판은 성적인/고어스러운 장면에 대해 지나치게 노골적인 묘사를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약물과 범죄를 미화하는 설정 또한 삼가해주세요. 각 스레마다 이를 위반하지 않는 수위 관련 규범을 정하고 명시할 것을 권장합니다. ☞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행동이 결코 아닙니다. 바람직한 상판을 가꾸기 위해서라도 서로에게 관심을 가져주세요. 다만 잡담스레에서의 저격이나, 다른 스레에서의 비난성 및 저격성 레스는 삼갑시다. 비난/비꼬기와 비판/지적은 다릅니다. ☞ 상황극판의 각 스레는 독립되어 있습니다. 특정 스레에서의 인연과 이야기는 해당 스레 내에서만 즐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잡담스레에서 타 스레를 언급하는 일도 삼가도록 합시다. 또한 각 스레마다 규칙 및 특징이 다르기 마련입니다. 해당 스레의 이용자들에게 문의해주시고, 그 규범에 따라 행동해주세요. ☞타 스레와의 교류 및 타 스레 인원의 난입 허용 여부(이건 허용한다면 0레스에 어디까지 괜찮은지 명시해둡시다)와, 스레에 작성된 어그로성 및 저격성 레스의 삭제 여부, 분쟁 조절 스레의 이용 여부에 대한 결정권은 각 스레의 스레주에게 있습니다.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서 "분쟁 조절 스레"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 처음 오신분은 어려워말고 잡담 주제글에 도움을 청해주세요! 각양각색의 스레들을 가볍게 둘러보는 것도 적응에 효과적입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
주의! 데플은 없지만 부상 등으로 구를 수는 있습니다. 어두운 분위기도 존재하고요. 개인설정, 개인 이벤트, 환영합니다. 완전 초보라 미숙한 스레주입니다.. 잘 봐주세요..(덜덜덜) 모두들 서로를 배려하고 활발한 어장생활! 캡이 응원합니다! 인사도 바로바로 하고, 잡담에서 끼이지 못하는 분이 없도록 잘 살펴보자고요!
전투 시스템에서 다이스를 사용합니다!! 라고 공지하지 않는다면 그냥 공격하시면 됩니다. 다만 공지할 경우에는 명중빗나감 다이스를 굴립니다. 다른 다이스가 필요하신 분은 자신이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눈 뜬 순간 시야가 시커매서 으어아으아아ㅏ (퍼덕퍼덕);;;;; 그랬더니 강아지도 놀래서 완전 억울한 눈으로 저 쳐다보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력이 나빠서 갓 깼을 땐 진짜 뭉그러진 색 밖에 안 보이거든요... 거기에 시커먼게 보이니 ㅋㅋㅋㅋㅋㅋ
유현의 격정의 화살은 로라시아에게 닿는다 하여도 큰 효과를 볼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유현에게 흘러들어온 감정을 제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실책에 가까웠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현재 에버노트의 아이템 설명이 싹 날아가서 위키에 없으면 뭐였는지도 까먹어서... 오늘 참가 못하신다니..일단은 애매하게 처리하였습니다!) 로라시아는 세하의 탄환을 보고는 그냥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적거렸고, 두 발의 탄환은 사라졌습니다. 다만 하나의 탄환은 그의 뺨을 살짝 스치었군요. 비릿한 웃음을 희미하게 띄우며, 그는 앨리를 남겨두고
"이 몸은 먼저 사라지겠노라." 라면서 발끝부터 천천히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이아나의 힐이 앨리에게도 통하여 그는 15만 하고도 1250의 체력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다만..
날개가 달리고 한층 거대해진 앨리가 캐릭터들을 향해 어째서인지 고통스러운.이라는 듯한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울음소리를 내며 불을 내뿜지만 진이 이전에 친 방어막 때문에 무위로 돌아가는군요.
그러고보니. 아직 진의 순간이동 인챈트와 전기 인챈트가 아직 붙어있기는 하네요. 진에게 성운의 유리병과 로브가 속삭이는 목소리그 희미하고 띄엄띄엄 들립니다. -...를 주어서.. -그녀가 ..할거야.. -대답.. 잘 해야..
앨리를 공격할 시간이로군요. 달을 배경으로 거대한 앨리가 ㅇ떠올라 공격을 했답니다.
르투아르는 창을 세 개소환하여 공격을 시작했어요. .dice 0 10. = 3 명중 개수 .dice 1 3. = 2
앨리(강화)
HP 151250 MA수치 900/16000(공격력 8천) 강화로 인해 모든 공격 데미지 450 경감.(M수치 절반)
//기본 다이스 .dice 0 10. = 9 6이상 성공 0은 크리티컬 그 외 특수 다이스.(인챈트 등)
-화살에 찔린(살짝 찔려도 됨) 상대방은 강렬한 감정에 휩싸입니다!(현재 감정-발견한 자의 감정들) -사용자와 피험자는 감정의 공유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강렬한 감정은 공유되지 않습니다. -화살통에 든 화살은 12개이며 한 개는 한 명에게 쓸 수 있습니다. 쓰고 충전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립니다. -특정 조건 해금시..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화살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격정의 특성상 상대가 차분한 이이거나. 화를 눌러놓는 상대일 때 효과가 큽니다.
더 개빡치고 더 짜증나는 모습으로 돌아온 우리의 앨리씨! 날개가 왜 달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니가 쪼끄만 모습이 더 보기 좋다고 생각한다! 마침 너한테 비 장 의 무 기가 있으니 오늘 한번 제대로 결판을 내자! 무엇보다 난 빨리 숙소에 가고 싶다! 냅다 허공에 펜으로 글씨를 씀과 동시에 또박또박 문장을 외쳐나가기 시작했다.
"천 개의 회살이 대견(大犬)을 꿰뜷지어니, 하나는 피할지언정 모두를 피할 순 없으리라!"
어라. 웬일로 잘 발음이 됐다!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뜰 것 같다! 근데 설마 징쨔 천 개 나오는거 아니지???? 에이 설마! 이거 아바돈한텐 잘 안먹힌다며???? 믿습니다 징쨔????
로라시아라고 불린 이의 등장에, 누군가는 화를 냈고 누군가는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비류는, 신발 끝으로 근처에 떨어진 자신의 장도의 손잡이를 툭 하고 차올려서 삭취검을 들지 않은 빈 손에 쥐고는 천천히 한쪽 어깨에는 일반적인 장도를, 다른 손에는 삭취검을 든 채로 로라시아가 앨리를 치료하고 사라지는 것을 바라본다.
웃기지. 죄과를 쌓을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저리 행동하는 것이 말이야. 비류는 비스듬히 입가를 끌어올려 여유롭게 큭큭, 웃음을 흘렸다. 보물찾기로 얻은 스크롤로 만든 일회용 인챈트는 이미 사용했다. 그럼에도 그녀가 두려워하지 않고 웃는 것은, 하나였다. 자신은 왕의 변견. 목줄과 입마개가 채워져 있다면. 다른 걸 사용하면 된다.
삭취검은 잠시 보류.
"떨어져라."
하늘로 떠오르는 앨리를 향해 작게 중얼거린 그녀는 다리를 살짝 들어올린 뒤 바닥을 향해 쾅하고 내리찍으면서 거대하고 촘촘한 얼음으로 이루어진 가시들이 박힌 송곳 여러개가 솟아오르게 한다.
>>96 가능하군! 저는 사용할때 반대의 위치에 있으면 불가능할까 생각한거 였어요! 그러니까 1과 2를 순간이동 스크롤을 붙여 놨을때 1을 이용해서 2를 소환하는것만 가능하다 같은것으로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2에 붙어 있어도 이동이 가능하군요! 흠 지식이 늘었다! 감사합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는 이미 지금 허공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앨리라는 녀석을 처음 조우했을 때에 줄곧 노래를 부르던 목소리여서 익숙했다. 비류는 그쪽으로 슬금 시선을 옮겨서 이아나를 바라봤다. 삭취검을 역수로 쥐고 있는 터라, 그녀는 제 머리를 쓸어올렸고 이내 큭큭, 하고 여유롭고 느긋한 웃음을 흘린다.
광역적인 얼음의 참격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것을 막을 생각이 없어보였다.
"누구든지 실책은 저지르는 법이지. 그대, 인간이라면 말이다."
혼잣말처럼 말을 중얼거리면서 어깨에 걸치고 있던 장도를 그대로 횡으로 베어내자 주먹보다 조금 더 작은 얼음 알갱이들이 촘촘한 가시가 잔뜩 달린 조그마한 화살촉 모양으로 바뀌더니 앨리의 날개를 향해 쏘아졌다. 조금 헝크러진 새하얀 머리카락 사이의 눈동자에 살기등등한 이채가 감돌았다.
그녀는 자비로우면서도 잔인한... 그러니까 당하는 사람에게는 위선적으로 보이는 눈동자를 실눈에 숨기며 노래를 하였다.
"To wait is a blasphemy (지체함은 신성모독이라) Therefore, achieve perfection through the holy water of our sacred ritual (그러니 너희는 거룩한 의식을 거룩한 물로 깨끗케하라) The mistery, beset by water of life, is not complete (의문들이란 생명수로 완성되지 않은 것들이니) To fear what has been unravelled (피를 통해 풀려난 것을 두려워하라) Discerned the fear (너희가 알고있는 두려움은) What has been unravelled through the blood (피를 통하여 전염된 것이니)"
하늘로 끝없이 솟구친 그림자의 사슬은 제대로 날개가 뚫은 듯 했다. 저쪽에서 누가 뭘 한 거 같은데, 그 효과인 듯 했다.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팽팽하게 당겨진 사슬이 날 선 쇳소리를 내며 철컹였다. 다음으로 공격을 이어가려다 문득, 제자리에 멈춘 채 하늘을 보았다. 새카만 밤하늘을.
"......"
길지 않았다. 실제로 몇 초에 지나지 않았지만 왠지 길게 느껴졌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건만. 그 사이 앨리가 반격을 해왔다. 전체를 아우르는 얼음이 지면을 향해 번뜩이고 있었다.
"....하."
나는 피할 생각 없이 다시금 그림자를 일으켜 거대한, 가히 앨리의 몸집에 견줄만한 거대한 낫을 만들었다. 만듬과 동시에 그것을 앨리에게 휘둘렀다.
사아아아아-
낫의 날이 허공을 가르고, 그로 인해 몰아치는 바람에 의해 주변 나무들의 나뭇잎이 한가득 흩날렸다.
커다란 날개가 불어 내는 바람에 눈살을 찌푸렸다. 앞머리가 휘날려 이마가 서늘해졌다. 크리드와 상대하고 있던 자는 어느샌가 가고 없었고, 전에 보았던 침입자도 아바돈을 강화시키고 사라졌다. 덕분에 저 아바돈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은 다행이지만, 이대로라면 나는 손끝 하나 댈 수 없다. 아바돈이 무서운 냉기를 벼려 내어 우리를 베어 버리려고 했지만, 이제 뜸을 들일 수는 없다.
꽤나 높은 곳에 있어서 반죽을 최대한 뻗어도 닿기 어려워 보였다. 성공할 확률을 높이기 위해, 흙에서 기둥을 세우고 옆면에 계단을 녹여 내어 그리로 뛰어 올라갔다. 내 능력의 범위는 4미터에서 5미터 정도. 최소한의 사정거리에만 닿으면, 허공에 뜬 아바돈을 반죽을 늘려 잡아챌 수 있다. 홀로그램과 실습할 때도 시도한 적 있었던 기술이다. 사실 반죽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끌어당기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발목을 붙잡은 반죽에 이어진 기둥을 쓰러뜨린다거나 해서 끌어내리는 힘이 추가로 필요하다만.
“낙하시킵니다!” 나는 외쳤다. “떨어질 수도 있으니까 조심해요!”
흙 기둥에서 반죽을 뻗어 아바돈의 발목을 감싸고, 잽싸게 계단을 내려가며 기둥의 중간 부분을 녹였다.
공국의 일을 막고 오자마자 곧바로 학원으로 달려와 실습장까지 최고속도로 비행해서 찾아와봤더니, 이정도일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대로 착륙하면 보나마나 팀원들 자리에 들이 밭을테고, 나는 하는 수 없이 여기 올때 빌려온 슬루프라도 갖다 박는 수 밖에. 나는 핸들을 꺾어 저 이상한 얼음쟁이의 얼굴에 최대출력 엔진으로 갖다 박도록 내버려두고, 곧바로 조타실에서 빠져나와 날아서 팀원들 쪽으로 합류했다.
아마 참격을 피하고 싶었겠지만, 인챈트를 적용하려 하는 바람에 잘 되지 않은 모양이다. 그는 참격을 맞고 뒤로 크게 날아갔다. 상처는 작지 않았으나 그는 비틀대면서도 일어났다. 다행히도 검기는 무사히 아바돈에게 명중했고, 그 덕분에 아바돈의 공격은 성공하지 못한 듯 했다.
조그마한 가방에서 포션을 꺼낸뒤, 일단 아무렇게나 마시며 달려나갔다. 한 손에는 두개의 검을 합쳐 다시 하나로 만든 검이 들려있다. 그는 불 인챈트를 적용한 쪽의 칼날을 아바돈에게 휘둘렀다.
M : 930 A : 3350(공격력 : 1675+인챈트 100) 체력 : 2930/10000
난 내가 아라서 하께!!!! 왜 팔이 한 쪽밖에 없냐 했더니 아까 그 비러머글 얼음때문에 팔이 얼어 쥬거따! 타임 리밋을 넘기면 진짜 끝장이기때문에 최대한 자가재생에 집중하기로 했다. 팔이 회복되는대로 다시 그 펜을 써보자. 아무튼 이걸 쓰면 다른 사람들 팔은 치료하긴 글른거다. 어쩔 수가 없다 지금 내 팔이 짤린거같거든!!!!!!!!
“카악….” 입에서 피가 터져나왔다. 기침하듯 조금만 뱉을 줄 알았는데, 이윽고 토를 하는 것처럼 피가 목구멍을 역류했다. 조금 신기한걸.
얼음 베기는 생각보다 덜 차가웠다. 가슴에 정통으로 일격을 맞았다. 고드름이 박히는 것처럼 ― 실제로 고드름이 와서 박힌 것일 수도 있었겠으나 ― 싸늘해서 환부에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적어도 그렇게 느끼는 편이 나았다. 점점 감각이 돌아올 수록 냉기와 격통이 생생해졌기 때문이다. 머리를 맞았을 때처럼 정신이 혼미해서 잠깐은 무엇도 볼 수 없었지만, 어느새 내가 기둥에서 추락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죽겠구만.’ 나는 생각했다. ‘이아나 양의 노래로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을까?’
추락하는 시간은 꽤 길게 느껴졌다. 위험하니까 그만큼 사고가 빠릿빠릿하게 돌아가는 것이었다. 뇌가 활발해진 만큼 흉부의 통증도 더 활발하게 느껴졌고. 나는 지면에 떨어졌을 때 얼마나 충격이 클지 생각하고 있었다. 침대나 맨땅에 철푸덕 눕는 것 이상의 고통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분명 아주 큰 충격일 것이다. 등허리를 으스러뜨리는 중력의 감각. 내 무기였던 흙은 이제 나를 들이받으려 했다. 땅에 부딪친 내 몸뚱아리는 약간 튀어오르고 다시 나동그라졌다.
허공에 라야 선배의 배리어가 펼쳐졌다. 고맙다고 말해야 하는데 그럴 기력이 없었다. 다만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여유가 생겼으니, 잽싸게 달려온 치유사에게, 죽어가는 모기 같은 목소리로 농담을 건넬 수는 있었다. 입 안에서 시큼한 피 맛이 느껴졌다.
“하하, 실패했어요.” 나는 말했다. 반절은 목소리가 작아 들리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이아나 양, 노래로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나요…?”
거대한 얼음이 눈 앞에 날아온다 싶더니, 순간적으로 옆구리가 화끈해짐이 느껴졌다. 그 다음은 차갑고 싸한 감각이 전신에 번졌다.
"!!"
비명도 없이 뒤로 나가떨어졌다. 굴렀는지 날아갔는지 모르겠다. 머리는 멍하고 옆구리는 뜨겁고 차가웠다.
"차가운 건 싫다...니까..."
비틀거리며 일어서자 바닥에 무언가 후두둑 떨어졌다. 피였을까, 난자된 살점이었을까. 알 길은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나는 거의 끌다시피 발을 떼어 앞으로 걸어갔다. 공격을 받은 탓에 형성했던 낫은 형태를 잃었다.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은 채 엿가락 늘어지듯 늘어진 낫의 잔해 위로 올라갔다. 그러자 잔해가 서서히 일어나 점점 위로 올라갔다.
"......"
잔해로부터 다시 생성된 거대한 낫이 다시 한번 앨리를 노렸다. 비틀거리는 몸으로 힘 빠진 팔을 드는 모습은 금방이라도 스러질 것 같았으리라.
앨리의 광역 공격을 고스란히 맞은 상태에서, 그녀는 잠시 꺽이려는 무릎에 힘을 줘서 버텼다. 무언가가 흘렀다. 목과 어깨로 떨어지는 부분을 향해 시선을 떨어트리니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죽을 것 같기는 하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다. 판단은 끝났기에 비류는 얼음을 이용했다.
무언가를 준비하는 앨리의 모습에 자신의 발 밑에 거대한 얼음 기둥을 솟아오르게 하여, 그녀는 조금 고도가 낮아진 앨리의 바로 머리 위로 뛰어올라 낙하하면서 역수로 쥔 삭취검과 장도 모두 앨리의 날개를 향해 휘두른다.
베어내고, 얼어붙게 하고 손짓.
// 폭발하는 얼음-아라부타(장도) .dice 0 10. = 9 일반 공격 (삭취검) .dice 0 10. = 8 회피 성공 여부(1일시 성공) .dice 1 2. = 1
언제나처럼 앞머리가 가리고 있어 눈이 보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내 눈은 감겨 있었다. 눈을 감은 채 언제 떨어질 지 모르는 위태로운 자세로 앨리를 향해 낫을 다시 치켜들었다.
"......"
살짝 벌어진 입술에서 붉은 것이 한줄기 흘러내린다. 그 탓인지 잠깐 달싹이지만 말은 없다. 그저 다시 공격하고자 하는 의지만이 휘청이는 몸에 남아있었다. 낫이 채 휘둘러지기 전에 앨리의 공격으로 번개가 번쩍이며 내려치기 시작하자 몸이 움찔 멈춘다. 위협적으로 사방에 번쩍이는 번개를 둘러보듯 고개가 한번 저어지더니 소매에서 무언가 꺼내들었다.
"돌려...줄게..."
힘 빠진 낮은 목소리가 중얼거리며 작은 열쇠를 들었다. 내려치는 번개와 앨리를 향해 들고 꿈의 열쇠를 사용했다.
얼음이 터지면서 피가 섞인 얼음조각들이 튀어오르는 것에 비류가 입가를 비틀어 올리며 살기가 서린 웃음을 흘렸다. 평소 느긋하고 여유로운 미소를 짓기 때문에 특유의 배부른 맹수가 먹잇감을 노리는 것 같은 특유의 분위기를 많이 죽이고 다녔기에 웃음을 띄운 그녀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반전된다.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 그녀는 앞으로 한바퀴 굴러서 떨어지는 속도와 충격을 전신으로 분산시켰지만 얼음에 의해 피가 흐르던 어깨에서 홧홧한 통증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어깨뿐만이 아니였다. 뜨끔한 감각에 시선을 조금 더 내리니 옆구리에서도 울컥거리며 피가 새어나온다. 뺨을 타고 스친 얼음 공격으로 인한 생채기를 손등으로 대강 닦아낸 뒤 비류는 바닥을 쾅 하고 내리찍어서 자신을 중심으로 얼음으로 만들어진 벽을 세웠다.
충격은 분산하고.
그녀는 입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삭취검을 쥔 손을 까딱여서 앨리의 너덜너덜해진 날개를 향해 내리찍는 거대한 얼음창을 만들어서 낙하시킨다. 찢어지고 너덜거리는 상처들이 지끈거리면서 아파왔다.
이 상황에도 어이가 없었다. 저 아바돈에 대한 기이한 혐오감이 자신을 집어삼켰고, 전기가 내려치는 이 상황조차 공포스러웠다. 무너진 건물에서, 언니의 시체를 보았을 때. 그 때가 지금과 비슷했나? 아냐, 그 때가 훨씬......
뇌가 녹아내리는듯한 기이한 생각에 사로잡힌 채, 푸욱 푹 인형의 눈을 찌른다. 아니, 눈만 찌른 게 아닌가? 가위가 너무 날카로운 탓인지 빗맞춰서 손을 조금 찔러버렸어. 피가 나네. ......그런데, 저게 뭐야. 피하기엔 늦어져버렸다. 그래도 어떻게든 가능한대로 피하려 하지만 과연 피할 수나 있을까 모르겠다. 이미 조금 타이밍이 늦어진 것 같아.
아마도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것 같다. 시엔 걱정 시킬 일은 없으니 다행이었다. 싸움이 끝나면 안아 줘야지.
죽음을 모면했다는 것은 스스로 알아챘지만 여전히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손을 꼼지락거렸다. 포션을 어디에 챙겨 뒀는지 까먹었다. 분명 허리춤이었던 것 같은데…. 더듬으려 했지만 팔이 맛이 간 모양이었다.
“어떻게 해야 저 녀석한테 공격을 먹일 수 있을까….” 나는 누운 채로 중얼거렸다. “다시 한 번 시도해 볼까요? 콜록! 콜록! 아, 몸이 따라 줄지는 모르겠는데….”
누워 있자니 심심했다. 실은 아픔을 느끼기에도 바빴지만 말이다. 다만 중력과 함께 몸을 짓누르는 무력감은 기분나빴다. 당장이라도 몸을 세워 벗어나고 싶었다. 이빨을 뒤로 숨기는 이리란 있을 수 없다. 주둥이와 맹렬한 시선은 언제나 그 적수를 향해야 한다. 그러니 당장이라도 다시 뛰어나갈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럴 수 없었을 뿐이지.
뒤에 숨어서는 동료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이미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 과감하게 선봉에 서고자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
이번에는 번개라니, 아주 그냥 다 써라 다 써. 곧바로 펜던트를 회수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펜던트를 다시 팀원들 위로 던지고, 이번에는 분신이 생체 보호막을 시전하게 한다. 그리고 나는 판넬을 육각별의 형태로 등 뒤러 전개해 자력 필드로 강한 추진력을 걸어 그대로 돌진한다.
삭취검이 종알거리는 소리에, 비류는 키득거리면서 낮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 이럴때에 가면을 가지고 올걸 그랬다.
"나또한 알고 있다. 그녀, 크리드가 정죄자라는 사실을 말이지."
허나, 그녀가 내게 호의를 베풀었고 그 한방에 죽여버릴 수 있는 조건도 아직 달성하지 못하지 않았나. 내가 말이야. 비류가 가볍게 삭취검의 손잡이를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처럼 손끝으로 쓰다듬고는 앨리의 공격을 튕겨내고 질문을 던져오는 크리드를 짐승처럼 빛나는 노을색 눈동자로 응시했다.
"질문에 답하지 않겠다. 크리드."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억울한 자인지는 모른다. 대화를 하지 않았다.
빠득, 얼어붙은 거대한 창들을 여러개 자신의 주변에 만들어내면서 비류는 짤막하게 대꾸했다.
물약을 마셨더니 상처가 말끔하게 가셨다. 갈라진 살점이 엉겨붙어 말끔해지는 광경은 조금 놀라웠다. 가슴에 박힌 상처는 조금 얼얼했지만 그래도 나는 한 번 더 기회를 얻었다. ‘난 살아 있어, 시엔. 죽지 않았어.’ 나는 속으로 뇌었다. 크리드가 나타나 전투는 잠깐 소강 상태가 되었다. 다리에 힘을 넣는 것이 이상하게도 낯설어 일어나다가 벌러덩 자빠졌지만, 가까스로 비틀대며 일어섰다. 처음 두 발을 딛고 일어서는 아기 같은 기분이었다.
“크리드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죠?” 나는 물었다. “끙, 아무튼 치료 고마워요.”
크리드가 묻는 말을 확연히 듣기는 했기 때문에 대답을 하라면 할 순 있었으나, 맥락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우선 속으로 생각해 놓은 대답이라면 ‘아바돈에게 자비를 베푼 적은 없다, 세상에 억울한 아바돈은 없다, 아바돈과 대화를 할 이유는 없다’였다. 하지만 주제넘게 나서기에는 나는 조금 소심했다.
저번 첫 실습 때에 싸늘한 야옹이에게 욕지거리를 한 적은 있지만, 그걸 대화라고 한다면야 조금 껄끄러운 처사가 아닌가. 녹아 버리는 기분을 물어 본 것도 엄연히 말하자면 대화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그러나 결코 입 밖에 말을 내지는 않았다.
‘셴은 무사할까.’ 다만 든 생각은 그것이었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부상당한 이들 가운데 혹시 시엔이 있지는 않은지 불안하게 살폈다. 분명 아주 강하니까 느닷없이 쓰러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다치는 것만으로도 나는 견디기 힘들 터였다. 떨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총이 생겼다! 한번도 안 쏴봤긴 했는데 파파가 쏘는 건 어렴풋이 봐서 안다! 쏴보려 했는데 크리크리가 와서 뭘 묻길래 그만뒀다.
> 조용히 크리크리의 말에 답하도록 하자
"모오래 징쨔??? 어느 쬭인지 확시리해애!!!!!! 몰라아 난. 쟤한테 자비룰 베풀묜 우리가 사라????? 우리가 사냐구 응??? " "약한 애는 약한애고 우리 공격하려 한 건 잘못해써. 죽는 줄 알았단 마랴. " "대화? 얘가 우리랑 대화하려 해써??? 내 파리 한번 짤렸눈데 모가 대화야????? 아 몸의 대화??????? 설마 팔 짜른게 대화라거???? 전혀 안구래!!!!!! "
"......망덕이었습니다. 앨리는 괴로워하다가도 자비를 베풀어 공격을 멈췄고 그에 대해 돌아온 것은 망덕이었습니다. 제가 베풀은 수많은 온정은 무시받고 결국 제게도 돌아온 것은 망덕이었습니다. 신께서 저희들에게 베푸신 것은 따뜻한 온정과 자비의 손길이었으나 저희는 그걸 잊고 망덕을 돌려주었습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앨리는 이제 고통에서 빠져나와, 괴로움 없이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네, 저는 대화에 응했습니다."
무덤덤하게 그렇게 중얼거리듯 답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어떻게 해야 맞는 걸까. 모르겠다.
아. 이제 쫌 쏠 수 있겠다! 얼마 안남아보이기도 하니까 지금 쏘면 진짜로 끝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냉큼 총을 들고 달려가 근접한 거리에서 멍멍이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려 시도했다. 한발, 두발, 세발.....아마 장전된 총알이 다 떨어질 때까지 계속 당겼을 것이다. 아마도!
시간을 더 지체할 수는 없다. 크리드가 어떤 인간인지는 오리무중이지만 일단 싸움을 끝내야 한다. 내 앞을 벽으로 감싸며 천천히 아바돈을 향해 걸어갔다.
“허튼 수작 부리면 죽어, 너.” 언제라도 벽을 세워 공격을 막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어느샌가 아바돈 근처에서도 구역질을 하지 않게 됐다는 것을 깨닫자 조금 복잡한 기분이 되었다. 아바돈은, 사람마다 다르다고들 하지만, 내게는 피나 썩은 시체 같은 냄새가 난다. 전반적인 향기는 녹슨 쇠의 풍취고, 거기에서 적혈구의 철분 냄새와 오래된 생선에서 나는 비린내가 뻗어 나온다. 하지만 인간의 코가 악취에 쉬이 익숙해지듯, 아바돈을 대할 때 드는 본능적인 역겨움도 마땅히 참아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나는 질문에 제대로 답한걸까? 이게 잘한걸까... 생각할때쯤 크리드는 날 쳐다봤다. 이윽고 대답한 다른 사람도 쳐다봤지만. “나는 정당한건가..?” 그런가. 공격을 받은 거니까. 대화가 이루어지지 못한건 어쩔수 없던거지.
엄청난 공격이 앨리에게 내리쳐 진다. 그 공격에 앨리는 너덜해진다. “끝내야지. 원치 않게 시작했어도 끝은 나야 하니까.” 두손으로 꾸욱 검을 쥐었다. 다시금 검에 전기 인첸트를 작동시켜보려 한다. 아까 맨처음에 둘렀던 전기 인첸트. 한번도 공격을 성공 못했으니 사용 가능할까? 일단 앨리에게 검을 겨눈다. 거대한 이 녀석의 뒷다리. 아킬레스건을 찢어내려 해 본다.
모호한 대답이었음에도 크리드는 그 대답에 정당을 내려주었다. 그리고 앨리에게 가하는 공격을 고개 들어 향하였다. 눈을 감고 있었으니 보지는 않았으리라. 보이지 않았음이 맞겠지. 보지 않고, 그저 고개를 쳐들었을 뿐.
"...끝..."
크리드가 고하는 말에 두 팔을 쳐들었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어떠한 말이 나오나 그것은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말이었다. 소리가 없었으니. 하지만 그 무언을 따르듯 그림자들이 서서히 올라오며 하나의 형상을 이루어갔다. 이윽고 거대하며 강대한 한 자루 낫의 형태를 띈 그림자. 지금껏 만들었던 다른 어떤 낫보다 정교하고 심플하게 낫 그 자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끝을..."
소리가 나온 말은 그것이 다였다. 이후 치켜든 팔을 한번 휘두르자 그 움직임을 따라 낫도 흔들렸다. 흔들려 크게 휘둘러져, 앨리를 향해 참격을 내렸다.
폭발. 흩뿌려지는 얼음 조각들을 피하지 않는다. 홧홧한 통증들보다 숨이 턱턱 막혀오는 특유의 감각이 정신을 흐릿하게 만들었지만 억지로 다잡는다. 물어뜯을 수 없다면 할퀴어낸다. 어떻게든 죽인다.
장도를 던지기 전에 날이 서있지 않은 면으로 꾹 - 하고 비류는 제 상처를 헤집었다. 억지로 정신을 들게 만들며 입안에 감도는 핏덩이를 바닥에 뱉어냈다. 삭취검을 양손으로 움켜쥐고는 마치 광선이라도 쏘아낼 기세인 앨리의 옆으로 돌아서 움직이며 바닥을 삭취검으로 툭툭 두드린다.
본디 자신이 휘두르던 장도와 똑같은 크기의 얼음으로 만들어진 검들을 만들어냈다. 숫자는 꽤 많았다. 삭취검을 휘두르자 얼음으로 이뤄진 검들은 그대로 쏘아졌다.
크리드의 무지막지한 공격을 받아내고 낮게 내려온 아바돈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포션을 먹고 몸은 회복했지만 정신은 아물지 않아, 아직도 떨어졌을 때의 그 감각이 등에 맴돌았다. 뻣뻣하게 굳은 뼈를 억지로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 정도의 환상통은 버틸 수 있었다. 스스로가 많이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바돈의 턱 아래를 붙들고 멱살을 잡아 올리듯 쥐어짰다. 손에 힘을 주어 아바돈의 머리통을 통째로 녹일 생각이었다.
“이번에도 개 꼴으로 돌아갈 테냐?” 나는 물었다. “그것도 아니면, 또 그 계집을 부를 생각이야?”
‘바보’나 ‘해삼’ 같은 욕을 또 하려다가, 좀 자중하라는 룸메이트의 충고를 떠올리곤 가까스로 참았다. 하물며 저것보다 훨씬 심한 뱃사람들의 욕을 어떻게 입에 담겠는가. 항구에서 나고 자라면서 어른들에게서 많은 것들을 엿들었지만, 그 때면 항상 동네 친구들과 귀를 싸매곤 했다. 아니…. 지금은 전투로 돌아올 때다. 아바돈의 턱을 붙잡은 손등에 힘이 들어가 푸른 핏줄이 곤두섰다. 1학년 때까지는 핏줄이 잡히지 않았었는데.
“난 아바돈이 싫어. 나한테 소중한 사람을 괴롭히는 족속은 전부 싫으니까.” 나는 조용히 말했다.
아바돈의 눈을 올려다봤다. 눈에 비친 내 얼굴은 조금 무서워져 있었다. 특히, 그 눈빛은 불 꺼진 재였다. 가장 뜨거운 불을 담고 있었으나, 이미 그 자체로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못 알아보게 무뚝뚝하게 변한 내 얼굴이 적응되지 않았다. 이것도 아바돈의 악취처럼 익숙해지리라.
“너, 시엔한테 해코지했지?” 나는 조금 화가 나서 캐물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으나, 결국 보고야 말았다. 그 애가 다친 것을 말이다.
수고했다는 크리드의 말에 비류는 쿨럭거리며 기침을 해대면서 구역질을 억지로 눌러참았다. 장도와 삭취검을 모두 검집에 집어넣자마자 그녀는 치료를 할 생각이 단한톨도 없어보인다. 단지 지금 여기를 벗어나서 토하던가. 그것도 아니면. 그녀는 헤일리를 향해 걸어가서 등을 가볍게 툭 쳐서 크리드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기게 하려하고는 이아나를 바라봤다.
그녀는 문신 근처의 살갗을 헤집듯이 긁어내린 부분을 손바닥으로 가리고는 이아나를 향해 가볍게 목례를 해보였다.
아바돈은 동시에 여러 공격을 맞고, 그대로 쓰러졌다. 그 모습이 녹아내린 뒤에 남은 것은 작은 개의 시체였다. 그는 그것을 보며 가만히 서있었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야 그는 일의 전후 사정을 잘 알지도 못할뿐더러, 또한 이 아바돈, 그러니까 개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 음. "
뭐, 그렇다면 그걸로 된건가. 그는 질문을 해도 좋다는 크리드의 표시에 그쪽을 바라본뒤 입을 열어 말했다.
####인디고서 NO. 3#### 앨리 격퇴 완료 평가: LAMB가 늑대 쪽으로 상당히 많이 기울어 대담하나 무모한 전투를 펼침. 빈사 상태에 빠지기도 하였음. 아바돈에게 가차 없는 모습을 보였음. 공중전에 무력함. 무기 숙련도 낮음. ######################
“어, 크리드 선생님…!” 나는 외쳤다. “그럼, 인챈트를 해 주실 수 있나요? 그, 셰… 아니, 부상자들도, 빨리 치료해 주시고요.”
외투 안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어 놓은 인챈트 주문서를 꺼냈다. 보물찾기 때 챙겨 놓은 것이었다. 들고 다닐 생각은 없었으나, 기숙사에 놓고 오는 것을 깜빡해 때마침 들고 있었을 뿐이다. 쓰는 방법을 몰라 여태껏 들고만 있었다.
“제 무기에 ‘인력’을 인챈트하고 싶어요.” 나는 침착하게 말했다. “유체를 끌어당기는 정도만 되면 좋겠는데…. 수수께끼를… 풀어야 하나요, 설마?”
그러고 보니 솜사탕 막대가 어디 갔는지 보이질 않았다. 설마 아까 토굴에 놔두고 온 건가. 눈을 흘끔거리며 솜사탕 막대를 찾았다. 저기 먼발치 땅에 반쯤 파묻힌 채 꽂혀 있었다. 후다닥 달려가 막대를 뽑아 왔다.
아바돈이 작은 개 형태가 되고, 그 개는 싸늘한 시체가 되었다. ......뭔가를 죽인다는 건 정말 슬픈 일이야.
"......이아나! 다행이다... 많이 다치진 않았지? 그리고 너 없었으면 정말로, 모두 심하게 다쳤을거야. 다 너 덕분이야! 고마워!"
시엔은 이아나를 보고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다가 인디를 보곤 다시 그 쪽으로 쪼르르 가서는, 가만히 인디에게 물었다.
"......인디, 괜찮았어? ...많이 힘들진 않았고? ...너 많이 다치고 그랬잖아."
그러곤 웃는다. 제 스스로가 휘두른 가위에 찔리고 찍혀 생긴 수많은 상처들과 그 상처로 인해 피투성이가 된 손은 등 뒤로 숨기곤 생글 웃으며 말한다. 그 다음엔 이내 손을 숨기기 위해, 그 전투동안 사용했던 저주로 인한 부메랑이, 그 격통이 몰려오는 지금 이 순간의 고통을 숨기기 위해 도망치듯 모두에게서 조금씩 멀어졌다. 어지럽다. 손에서 피를 많이 흘려서 그런가 약간 빈혈기도 있는 것 같다. 코피 많이 흘렸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기도. 아아, 힘들다. 지친다. 누가 날 추에 묶어서 어딘가 깊은 물 속으로 심해로 가라앉히는 것 같아. 이 아픔은 물리적인 게 아니라서 방어할 수도 저항할 수도 없어. 그저... 용암 속에 가라앉아 녹아내리는 것처럼 고통을 견뎌내야만 할 뿐.
이아나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편해지겠지. 정죄를 받을 것이니. 그리고 유현의 질문에는
"반은 맞다고 해야할까." 타락자를 아바돈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아바돈이라는 존재는 하급과 중급을 말하는 말일 뿐이었으니까. 라고 말하고는 변질이라는 것에
"그것은 타락자가 시스템을 변질시킨 것이기에 된 것이지." 이건 신탁이 있었어서.. 라고 느릿하게 말했습니다.
"이야기가 길어질지도 모르겠네." 태초에 인간과 신이 공존하였는데. 인간이 삼주신을 배신하고 추방하여 신을 죽이고, 세상을 제멋대로 개편하다가 칼라미티를 깨워 삼주신이 다시 돌아오고 인간은 신벌을 받았지.
"그리고 세 신의 시스템 중. 텐게르가 죄악을 결정했지. 배신, 살해, 그 외의 도덕." "제일 증오스러운 것은 맹약을 깨고 배신한 것이니. 나라던 국가던 무엇이던 자기의 이득만을 위해.. 배신하는 자는 크나큰 죄과를 달게 되지. 어쩌면 광신도 같은 이도 배신으로 취급할지도 모르지?" 그래서 인간의 영혼에 죄과이자.. 능력을 달았지. 그로 인해 칼라미티의 시스템으로 윤회하도록..
그리고 프란츠의 질문에 아마 그렇겠지? 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합니다. 그래도 아르테미스가 달을 여기에 꼴아박진 않을 거니까 안심해. 라고 하지만..
그리고 헤일리와 여러 사람들을 치유해 주기 위해 모래시계를 한 번 뒤집었습니다. 그러자 마치 시간이 돌아간 것 처럼 여러분은 멀쩡해질 수 있답니다. 그리고 인디고의 질문에
"인력? 지금 여기에서는 자연환경을 회복시켜야 해서.." 일단 임시로 인챈트를 해줄 테니. 나중에 와. 라고 밀하고는 솜사탕 막대에 잠깐 인챈트를 해줍니다.
그리고 르투아르는...
"크리드님은 어째서 그렇게나 강한가요? 로머 중에서도 그런 사람은 한 번도 본 적 없어요..이사장님은..이사장님도 당신만큼 강한가요?" 라고 망설이며 물으려 합니다. 그 질문에 뭐가 문제냐는 듯 크리드는
수수께끼 이야기는 전혀 없다. 내가 없는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저 사람에겐. 솜사탕 막대는 조금 신비로운 힘을 받은 것 같았다. 언젠가는 훌륭한 무기가 될 것이다. 그런데 결국 인챈트 스크롤의 사용 방법은 알려 주지 않은 걸까.
나는 오른손으로 막대를 붙들고 왼손으로 뒤통수를 긁었다. 피가 굳어 머리카락이 엉키는 바람에 조금 아파서 가느다란 신음을 냈다. 앨리를 녹여 버릴까도 생각했지만 알아서 처분하도록 놔 두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갑작스레 피로가 몰려 왔다. 방금 크리드에게 멀쩡한 목소리로 질문한 스스로가 신기할 정도로. 아마 기숙사로 들어가자마자 잠들고 말겠지. 포션을 마셔서 걷다가 쓰러지는 일은 없었다. 곧장 게이트를 타고 기숙사로 돌아갔다. 시엔도 왠지 불편한 듯 자리를 떴고, 이제 실습장에 볼 일은 없을 것이다. 이런 사고가 있었다는 걸 알면 학생들의 부모님들이 들고 일어나지는 않을까 걱정이지만.
###
기숙사로 돌아와 욕실에서 윗옷을 벗자 온몸이 피칠갑이었다. 포션이 상처는 회복시켜도 흘린 피를 닦아 줄 수는 없었나 보다. 나는 대야에 물을 받아 몸에 끼얹었다.
비류는 돌아갔고 나머지는 잘 추스리고 있는듯하다. 시야에 헤일리. 가 보인다. 헤일리가 맞겠지? “상처가 나아서 다행이야. 다들 심각하게 다쳐서 위험하다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그렇게 말하며 헤일리 에게 다가갔다. “괜찮은거지? 당연한가 싶지만 얼굴빛이 많이 안 좋아 보여서.”
목이 쉬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 공격을 받는 와중에도 비명까지 지르지 않으며 노래를 했던 결과일까? 상처는 나았지만 목이 따끔하고 소리가 잠기는 느낌이다. 하지만... 역시 직접 전투를 하면서 다친 사람들을 생각하면 자신의 아픔은 별것 아니라는 생각에 고민하며 걸어가던 차, 하마터면 먼저 가고 있던 비류와 부딛칠 뻔 하자 그대로 피하려다가 넘어진 뒤에 재빨리 일어나며 비류에게 말하였다.
"죄송합니다. 어디 부딛치진 않으셨나요?"
그러고보니 전투중에서도 넘어가주겟다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나서 그녀는 실눈을 뜨며 슬그마니 물어봅니다.
음.. 네. 완전히 정주행은 무리라도 대략적으로 한번도 안 오신 분 정도는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정리를 해도 될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며칠 뒤면 연 지 딱 한 달이 되거든요. 그동안 오시다가 한번도 안 오신 분은.. 2주 정도..지만요. 그정도면 정리를 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파들파들 떨면서 고개를 돌렸다. 치욕을 떠나서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지금까지 이리 휘둘린 적이 있던가? 아마 없을 것이다. 이것이 어머니가 말하면 '상성'의 일종일 것이다. 어머니는 연기를 하는 사람은 진짜에게 쉬이 먹힌다 라고 말해주셨다. 그러니 '연기'를 하는 나로써는 최선을 다해 나를 놀려먹는 이 여자를 이길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을 살피는 모습에 천천히 그녀는 무던하고 담백한 태도로 자신이 흘린 피와 아바돈에게서 튄 피, 얼음 조각이 튀어오르면서 찢겨져나간 흐트러진 셔츠 자락을 잠시 당기고는 가볍게 발소리 없이 걸음을 옮겨서 이아나의 손을 무례하지 않게 피해냈다. 내이름은 비류가 맞다, 여유롭고 느긋한 미소와 그런 억양으로 그녀는 대답했다.
"나는 괜찮다. 안색은 네가 더 안좋아보이는군. 이아나."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이라면, 동행이라도 할까? 싱긋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는 이아나의 말을 본의 아니게 만들어낸 얼음조각으로 막아버린 것에 대해 미안하다는 듯 슬금 눈썹을 치켜올려보인 뒤 손을 내밀었다. 한쪽 허리에 찬 두자루의 검들이 부딪히며 소리를 냈다.
"그거 다행이로군. 물 대신이라고하기에는 뭐하지만 적당히 물고 있도록 해. 스스로를 너무 낮추는 건 좋지 않다." "오늘 그대 덕분에 죽을 고비를 여러번 넘겼어. 감사를 표하지."
박하사탕을 건네는 것에 비류는 그것을 받아들고는 입안에 던져넣곤 여유로운 억양으로 대답을 끝맺는다.
흐트러진 셔츠깃 안쪽으로 보이는 목의 문신을 따라 피가 조금 맺혀있는 게 그녀가 어떤 상태인지 익히 알려주고 있었다.
라연: 저는 느와르에서 어떤 역할인가요? 캡: 로라시아 지역에 포함되는 은 구역, 운투 구역, 베리아트 구역 중 베리아트 구역의 한 조직의 보스인 네 아버지의 사생아이자 정부..이자 약에 의존하는 테러리스트...? 라연: 아니 그게 무슨 개소ㄹ... 르투아르: 저는요? 캡: 무기상. 평범하지만 대단한. 라연:(홧병날지도)
달밤에서도 감출 수 없는 피덕분에 정신이 아찔해질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당장에라도 비류의 손을 잡고 양호실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지난 2년동안 그녀도 이곳에 여러 사정을 갖고있는 사람이 모인다는 것을 알았기에 더이상 말하지 않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야 좋죠. 이런 날은 쓸쓸하니까요."
앨리를 잠시 생각하다가도 안색이 나쁘다는 말에 재빨리 고개를 저으며 웃는 모습을 보면 거짓말을 영 못하는 아가씨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쨋든 그녀는 당신의 말에 겸손히 웃으며 얼음이 녹아서 나오는 물을 천천히 삼켰다.
"저도, 덕분에 살아있을 수 있었어요. 지켜주셔서 고마워요."
비류가 싸우는 모습을 뒤에서 열심히 보았으니 당신의 활약을 기억하는듯 실눈을 뜬채로 당신을 마주보며 끄덕인다. 심하게 다쳤던 다른 사람의 피, 본인이 채 피하지 못해서 다쳤던-크로울리덕분에 나았다-것들이 그녀 역시도 보였지만 아마 목이 쉰 것 빼고는 다 괜찮았으리라. ...아니. 이런것보단 사실 앨리가 아직도 생각나서 괜히 마음이 아프지만 그것을 내색하지 않으려고 명랑히 말한다.
"다음번 실습에도 같이 싸울 수 있다면 그때도 잘 부탁드려요! 저도 열심히 도울게요."
서로간에 사정으로 막힌 말이 많기에 그저 표면적인 말들이 나왓지만 그녀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밝은 척을 한다.
손끝이 스칠때마다 목덜미가 따끔거리면서 아파왔지만 딱 그정도의 느낌이였다. 그 어떤 것에도 무던하고 담백한 태도를 고수하기에 상처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였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어깨의 상처를 부러 검 뒷면으로 헤집듯이 누르기도 했다. 상처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이아나의 모습에 비류가 노을색 눈동자를 깜빡이다가 한쪽 눈을 찡긋해보였다. 괜찮다는 무언의 이야기였다.
"딱히. 감사인사를 받을 정도로 활약했다고는 못하겠군. A수치가 비참할만큼 낮거든. 다른 이들이 더 고생했지."
그녀는 이아나의 감사인사에 여유롭고 느긋하게 큭큭 숨죽여 웃음을 흘리고는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면서 시선을 가벼이 돌렸다. 차라리, 여기서 죽는게 낫다는 일념으로 싸웠다는 말을 했다가는 이 거짓말은 커녕 얼굴에 생각이 다드러나는 이아나가 큰일나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비류는 잠시 열심히 도우겠다는 이아나의 말에 걸음을 멈추고 소리없이 몸을 돌려 시선을 곧게 맞췄다.
"이아나. 그대는 이미 충분히 해주었다. 목이 쉬었고 노랫소리는 한번도 끊어지지 않았지. 여기서 뭘 더 열심히 하려는건가."
비류는 가볍게 이아나의 이마에 아프지 않은 딱밤을 놓으려고 하며 여유롭게 미소를 띄웠다. 이기적으로 굴어봐라. 모호한 농담을 덧붙히곤 그녀는 이아나를 바라보던 몸을 빙글 돌려서 다시 걷는다.
그 난리통을 생각하며 비오늨 날 비를 맞은 개가 집으로 오자마자 현관에서 몸을 부르르르 떠는 것처럼 잠시 몸을 털어내었다. 당신의 괜찮다는 싸인을 받았지만 조금 올망거리는 표정을 짓다가 더이상 무언가 말을 하진 않았다. 때로는 멋대로 다가오는게 무례를 넘어 상처가 되기도 하고, 자신은 머리가 좋질 않아 최선의 일을 하지 않기도 하니까.
"음... 부상자 나르기?"
라고 하다가 딱콩을 맞자 가볍게 고개를 뒤로 한 채로 가볍게 맞을 때 저도 모르게 눈을 크게 뜨고 똘망거리며 깜박거렸다. 보통이라면 바로 정정하고 비류에게 무어라 말할텐데 피곤해서 그런지 그쪽으로 생각도 가지 않고 그대로 이기적인 짓을 해보라는 농담에 정말로 고민해버린다. 이기적인거 이기적인거 이기적인... 생각나지 않았다! 라는 매세지를 표정에 띄웟다가 조금 쳐진 목소리로 말한다.
"저는 아마 다른 때에도 로머답지 않은 짓을 할것같아요."
이기적인 짓을 하라고 했더니 불쑥 뜬금없는 소리를 하며 한숨을 지었다가 기운내려는듯 자기 뺨을 가볍게 두들긴다.
나름 진지하게 말한건데! 라고 생각하면서도 익숙한 느낌이 든다. 가끔 이럴때가 있다. 뭔가 되게 심각했다거나 상대방이 무척 화가나있었는데 계속 자신을 바라보거나/시선을 피하더니 갑자기 한 결 분위기나 기분이 누그러지거나 아예 비류처럼 폭소를 터뜨려버리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거기서 아예 한 걸음 더 가서 꿀밤을 먹이거나 볼을 꼬집으면서 귀여워 죽겟다고 하는데 이아나는 그것이 도대체 왜 그런것인지를 이해하지 못 해서 좀 답답한 것이다!
-넌... 넌 모를거야. 넌 진짜 바보니까!
예전에 이것을 이안에게 물어보았을 때 이안은 그렇게 말하며 웃음을 참기만 하고 다른 말을 하지 않아 약이 올랐었다! 하여튼 오빠는 심술궂은 면이 있어서 탈이다.
"알아차리셨을때 혼내실줄 알았어요... 다른 분처럼요. 아! 그래도 그렇게 말씀해주신게 전혀 기쁘지 않다거나 그런건 아니에요! 정말로 기뻐요."
서둘러서 그녀가 기분상할까봐 말하자 머리가 쓰다듬겨서 다시금 눈을 깜박이다가 그제서야 자신이 눈을 그냥 보여버렸다는 사실에 황급히 얼굴을 가리....지만 사랑을 하라는 말에 정곡이 찔린듯 얼굴이 달아오른다. ...이 소녀, 사기꾼 소굴이나 도박마들 사이에 가면 홀라당 벗겨질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사람도 로머니까 틀렸는걸요.... 아니. 그것보다 가망없는 분이기도 하고... 음...."
크흠. 비류는 간신히 웃음을 멈출 수 있었다. 그러니까 요컨데 그녀가 웃음을 터트린 것은 표정관리가 잘 안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진짜로 눈앞에서 볼수 있었기 때문이였다. 잘 웃는다고는 하더라도 자신은 실질 표정 변화가 거의 없으니까.
"그다지? 그럴 생각은 없었다. 처음부터 말이다. 그도 그럴게, 그대도 나도, 인간이지 않은가. 다를 때도 있는것이야."
기쁘다니 그거 다행이로군. 비류는 이아나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떼어내고는 제 제복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가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무던하고 담백한 태도와 여유롭고 느긋한 미소는 흐트러짐이 없었지만 누군가 본다면 명백히 선을 긋는다. 딱 그만큼만 할 뿐이다. 아예 눈을 못보았나고 묻는다면 글쎄올시다?
"표정에서 다 드러나는군. 이아나가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모호하게 농담조로 그녀는 이아나의 새빨갛게 변한 얼굴을 바라보고는 큭큭 웃음을 터트렸다. 고개를 돌린 뒤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고는 툭 하고 이아나의 머리 위에 손을 다시 올렸다.
"부럽군."
짧게 중얼거린 그녀의 말끝이 몹시 쓰게 느껴졌다. 비류는 입안의 연한 살을 슬그머니 깨문다.
왠지 이럴땐 혼자 어린애가 된 기분에 시샘을 부리고 싶지만 그거야말로 괜한 짓이라 그녀는 얼굴을 가린 손을 슬쩍 떼어내며 입술을 움찔거렸다. 내가 정말로 표정을 다 읽히는 편인가? 라고 생각하면서도 경망스럽게 다 불어버린 자신을 속으로 마구 매도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차라리 저렇게 멋있을 수 있으면 좋을텐데... 그러면 좀 더 당당하고 좋잖아? 라고 생각하다가 비류의 말에 식어가려던 얼굴이 다시금 달빛속에서 새빨개진다.
"비밀...! 비밀이에요! 아직 단짝친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는걸요."
고백하고 나서 시엔에게 알려주기로 했던게 생각나 재빨리 입을 가리다가 그녀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씁쓸히 말하자 고개를 잠깐 갸웃거리다가도 어느세 그녀의 손을 자기 손으로 잡으며 말한다.
"...제가 보기에 선배는 늘 멋지세요. 어딘가 다가가는건 어렵지만, 굉장히 어른스러우시고... 존경스러워요. 전 잘 모르니까 주제넘을수도 있지만... 선배의 주변엔 언젠가 선배의 그런 매력에 사람들이 많이 모일 것 같다고 생각해요."
어쩐지 아이같은 면모가 강하다. 그것도, 떼를 쓰는 아이가 아니라 어른들을 바라보며 발돋움을 깡총거리는 그런 아이가 갑자기 몸만 훌쩍 자란게 아닐까 할만큼 소녀의 손은 따뜻했고... 잠긴 목소리와 슬쩍슬쩍 보였던 그 눈이 너무 맑았다. 당신은 비록 하나의 비밀은 놓쳤지만 다른 비밀은 오늘 알아버렸다. 사금이 재와 함께 들어있는 것 같은 그 두 눈의 비밀을 말이다.
"후후... 이제 좀 나아보이시네요."
저한테 좀 더 이기적이게 굴라고 하실만해졌어요! 라고 건방을 떨다가 키득이는 표정이 들꽃같았다. 들꽃같이 아름답다기보단, 들꽃처럼 자연스럽다는게 어울리는 미소가 피어났다. 그리고 이내 좋은 별이 떳다며 응원한다는 말에 사과같이는 아니더라도 여린 꽃잎색처럼 물들었다.
"정말로, 정말로 고마워요! 왠지 용기가 나네요..."
본인이 자각 못할 뿐 천성부터 자란 과정까지가 그녀에게 사랑스러움을 부각시켰다.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나 날이 선 사람에게서도 가끔 하는 바보짓을 제외하면 그렇저럭 제 몸을 사릴 수 있게 만들었고 자신을 좋게 생각하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들고 약간이라도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어 그 사람들에게 마음에 들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얻기 힘들면서 잃기도 쉬운지 모르는 그녀는 어쩌면 자신과 다른 당신을 동경하게 되어버린다. 인간의 본성이란 없는 것을 향한 열망을 만드니까...
"벙말로 그럴 수 있다면....음... 그 때 엄청 떨지도 모르는데 그땐 선배랑 시엔을 생각하면 용기를 얻을 수 있겟다는 생각이 드네요."
"난 뭐든지 알아. 무엇이든 알아. 전부 알아. 그러니 네가 뭘 원해서 왔는지도 알고 있어." "말하지 않아도 말이지."
정보상 HayMe 헤임
베리아트 출신이라는 것과 여성이라는 것, 닉네임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는 정보상. 모든 종류의 정보를 판다. 사지는 않는다. 누군가 아는 시점에서 그녀가 모를 리가 없기 때문에. 만약 정말로 그녀가 모르던 정보를 들고 온다면 원하는만큼 값을 쳐줄 것이다. 정보의 값이 일개 정보상들과 비할 수 없이 비싸지만 그만큼 정확하고 명확하며 에프터서비스도 해주니 값어치는 한다고. 거래를 할 때에는 스피커와 모니터 한대만이 있는 방으로 고객을 불러들여 진행한다.
천성적으로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있다. 손을 마주잡은 채 같이 걷고 있는 이아나라는 이 여자아이가 그러하다. 그런 사람은 사랑받아 마땅했다. 진득한 피가 언뜻 보이는 것 같아서 비류는 눈을 한번 질끈 감았다가 비어있는 손으로 목의 문신에 새겨진 손톱자국을 쓸어내렸다. 잊고 있던 홧홧한 통증과 목에서 올라오는 철맛. 여유로운 미소를 띄우고 그녀는 자신이 가지고만 있을 뿐 사용하지 않았던 포션을 이아나에게 건넸다.
"그래. 열심히 하면 되는거다. 너무 모호하게 말한 것도 있지만 결론은 그거지."
포션을 쥐어주곤 선물이다, 라고 덧붙히다가 이아나의 웃음에 슬금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서도 비류는 슬그머니 미소를 띄우고 말았다. 참 보기 드문 상냥한 기색이 느껴지는 미소였다. 너도 이러면 좋을텐데. 헤일리. 비류는 자신의 유일한 친구를 떠올리고 있었다.
무리하지 말아달라는 이아나의 말에 그녀는 눈가를 슬금 찌푸린다. 든든한 사람이라는 말을 곱씹어보던 그녀는 그저 고개를 숙이는 사랑에 빠진 천성적인 사랑스러움을 지닌 아이의 머리위에 손을 올린다.
"참견도 실례도 아니었다. 사과하는 버릇은 조금 고치는게 어떤가. 그래.. 그렇게 봐준다면 고마울따름이야. 영광이다."
도착했으니 조심해서 들어가라. 이아나. 비류는 이아나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빼내고는 제복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넣은 뒤 발소리 없이 조용히 뒷걸음을 쳤다.
그이는 참 알다기도 모를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이아나는 현관 신발장 위에 올려진 신용카드랑 쪽지를 발견하였다.
-이아나. 오늘은 늦어. 카드 둘테니까 만들어먹지 말고 사먹어.
'이런건 그냥 문자로 해도 될텐데 말이지. 뭐야, 벌써 장도 다 봣왔는데. 내가 뭐 맨날 집에서 자길 기다리는 사람인줄 아나?'
꼭 자신이랑 있을때는 아주 가끔 다른 사람들이랑 만날 때 데려가는게 아니라면 음식을 같이 만들어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어쩌다가 귀찮다는 이유로 사먹자고 하면? 그날은 진짜 집 안에서 비명이 끊이질 않는 것이다. 돈이 썩어나는 줄 아냐면서 머리끄댕이를 잡고 발길질을 하기 일쑤라 예전에 그렇게 한 번 얻어터져보고는 절대 밥문제러 대들지를 않았다. 그렇다면 방금 그건 또 뭐냐고? 하 참. 진짜... 이아나야말로 그게 뭔지 알고싶었다. 그이는 늘 아침이든 저녁이든 점심이든 따로 먹는 날엔 카드나 현금을 두고 나간다. 자신이 혼자 있을때 밖으로 나가기가 귀찮아서 집에 있는 것을 먹으면 그때도 난리이다.
왜 자기가 둔걸 그대로 쓰지 않고 모아둿냐, 그거 다 가족한테 모았다가 줄거냐, 그새 딴놈이 생겼냐, 이렇게 사람 성의를 무시하는 태도는 어디서 막 배워먹은 것이냐 라고 하면서 손으로 뺨을 후려갈기는 것 덕분에 질려버린 이아나로서는 무겁게 장을 봐온 것들을 냉장고에 정리하고 쇼파에 앉아 앓는 소리를 내었다.
"아..." '귀찮아 죽겟네...'
하지만 시간은 벌써 6시를 가리키고 있옸고, 그녀는 배가 허기진 기분을 참을 수 없어서 물먹은 솜같은 자신의 몸을 흐느적거리며 일으켰다. 벌써 공연도 12시에 하나 있으니 재빨리 먹고 의상도 다시 짜고 무대도 봐둬야 후환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사실 이안만 아니였더라면 고백을 받은 남자애라던가 고백을 할 사람이 진즉 있었을 이아나였지만 늘 이안이 철벽이였다는게 그녀가 고향에서 살던 때부터 이어져온 사실이였다. -어디까지나 이안의 기준으로-여자를 좋아하는 껄렁껄렁한 놈이 이아나한테 치근덕거리려고 한다? 눈이라도 마주친다? 그럼 그 양반은 이안때문에 질려서라도 이아나랑 거리를 두기 전 까지 이안한테 집요하게 쿠사리... 아니.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식으로 정말 친구관계 아니면 남은게 없는데 그것도 모르는 이아나는 따지고 보면 이안 덕분에 자신의 매력을 자신이 모르는 채로 발산하며 사는 셈이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비류가 포션을 주자 깜작 놀라서 비류를 보며 손사례를 치는 것이다. 방금 전에도 지금도 자신보다는 비류에게 이 포션이 더 필요할텐데 이렇게 좋은 포션을 준다니...
"으아! 잠시만요, 선배님? 선배님! 기다려주세요! 이건 선배님이 지금 쓰셔야 할 것 같은데..."
그리고는 자신을 쓰다듬으면서 뒤로 돌아 가버리는 비류의 모습을 곤란하게 바라보며 종종걸음으로 몇 걸음 따라가다가 그대로 사라져가는 비류를 약간 안쓰럽게 바라보며 고개를 꾸벅였다.
낮에는 공화국 국립 발레단 소속 차석 발레리나, 밤에는 라이프 패밀리 보스의 외동딸. 조직원명은 베리타. 개인정보가 철저히 감춰져있어 보스의 외동딸이란 정보는 극소수의 조직원을 제외하곤 알려져있지 않다. 조직에선 조직원명만을 쓰고 극단에서만 본명을 쓴다. 극단 내에서의 평가는 성격 등으로 인해 극과 극으로 갈리나 실력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모종의 이유로 인해 수석에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후원을 받는다는 소문이 도는데 진실여부는 불명. 공연이나 연습을 안할 땐 머릴 풀고 다닌다.
어젯밤도 늦게까지 '고객 접대'를 하느라 밤을 새버려서, 아침 즈음 잠들었다 깨니 벌써 저녁이었다. 해가 지평선을 향해 저물어가며 온세상을 새빨갛게 물들이는 시간이었다.
"...흐아아암..."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며 앉은 자리에서 늘어지게 하품을 한다. 생각 없는 손놀림에 층이 들쑥날쑥한 푸른 머리가 제멋대로 살랑거린다. 그대로 반바지 하나만 달랑 걸치고 구부정하게 앉아 꾸벅꾸벅 조는 모습이 영락없는 백수한량이지만, 그 모습 뒤에 명성 높은 정보상이라는 직업이 있다는게 아이러니하다. 세치 혀와 열 손가락 만으로 조직간 분쟁을 일으킬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게.
"므으.."
비척비척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건 넷에 접속해 새로운 정보의 탐색. 탐색이 진행되는 동안 대강 씻고 밥을 먹거나 하는데. 오늘은 조금 다를 것 같았다.
"...오려나아?"
뭔가 한참 지나가는 화면을 보며 중얼거린다. 뭐가 온다는 걸까. 의문을 가질 새도 없이 스윽 일어나 몸을 돌리더니 출입구 쪽으로 향했다. 여전히 반바지 차림인 채로.
"......"
출입구 근처에 간이 의자를 하나 갖다놓고 앉아서 물끄러미 문을 바라본다. 그러다 인기척이 들리고 누군가 들어오자, 히죽 웃으며 반겼더란다.
"정보상을 만나러 간다고 하여도. 어느 정도 이상은 안 되는 법이니.." 이 거리에는 얼굴을 그냥 내보내는 이보다 안 내보내는 이가 많은 법이다. 간혹 약에 쩔어있을 때에는 가면을 쓰고 테러를 벌이기도 하는 일이었으니까요. 밤은 엉망진창이었다. 저물어가는 해를 슬쩍 바라보고는 문 앞에서 망설였습니다.
"...갈 때 연락할 테니까." 조직원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돌려보냈습니다. 문을 열고는 왔냐는 말에 희미하게 웃어보이고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아무래도 목에 걸려있는 탓에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것 같네요.
"오랜만이야..." 오늘도 약을 조금 하긴 한 모양인지 가까이 다가가면 약 특유의 향이 살짝 날지도 모릅니다.
변함없이 약쟁이의 모습을 한 연인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 두 팔로 그를 끌어안았다. 밀착할수록 약 특유의 오묘한 향이 느껴지지만, 그런 것 쯤은 개의치 않고 꼬옥 끌어안고 목덜미에 입술을 문질렀다. 보드라운 살결 위로 간지럽히듯이.
"정말이지,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이제 오는거야~ 자주 좀 오라니까."
앙탈을 부리듯 그렇게 말하지만 이렇게 오는 것도 그에게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도 마음 한켠으론 서운하달까 그렇기도 하니까. 말로나마 투정 한번 부려보는 것이었다. 잠시 끌어안고 있다가 팔을 풀었다. 팔을 풀고 그의 손을 잡고서 안쪽으로 이끌었다. 먹고 자는 생활공간 쪽으로. 좀 지저분하겠지만...뭐 어때.
방문을 앞에 두고 어쩔줄 몰라하던 조직원들이 부른것은 자신이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조그마한 자선 파티 - 라고하고 거래 장소라고 한다- 에 갈 시간이 촉박한데 보스께서 방문을 열지 못하게 한다는 말이였다. 장갑을 낀 손으로 머리를 한번 쓸어넘기고는 조직원들을 되돌아가게 한 뒤, 문을 두드렸다. 보스, 들어가겠습니다. 안에서 앓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이미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직후였다.
등 뒤로 문을 닫고 잠금장치를 걸어놓은 뒤에 마주한 얼굴에 퍼지는 울먹임을 보고 나는 양손의 장갑을 당겨서 벗은 뒤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보스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정리가 되지 않은 머리의 보스를 화장대 앞으로 이끌었다. 보스는 울상인 표정으로 천천히 말을 꺼냈다. 유약하고 상냥한 보스의 성격은 장점이기도 했지만 큰 단점이 되기도 했다. 걱정이 가득 담긴 그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길이가 긴 새하얀 머리카락을 빗질하여 정리해준다.
"괜찮습니다. 보스. 당당해지십시오." "이럴때에는 언니라고 불러도 되잖아? 나 지금 엄청 떨려."
단호한 목소리로 옷장에 있는 정장을 꺼내는 내게 질책하는 말에 나는 여유롭게 미소를 띄우곤 깔끔하게 드라이를 거친 정장 한벌을 건넨다.
"너무 걱정하지마. 언니. 괜찮을거야." "패밀리를 이끄는건 힘들어. 류야. 네가 없었으면 벌써 큰일났을걸." "큰일나지 않아. 언니는 지금도 잘하고 있잖아? 그러니까 괜찮아."
넥타이를 받아들고 나는 천천히 넥타이의 매듭을 지어주며 입을 열었다.
"상냥하고 다정하고 유약하고 단호하지 못한 언니의 성품은 포용력있는 모습으로 다가갈거야. 잔혹하고 냉정한 다른 패밀리와는 다른 성격을 가졌기에 모두들 흥미를 가지겠지. 그거면 돼. 자신감을 가져." "그래도 풋내기 보스로 보일거아냐." "그런 사람은 내가 알아서 할게. 나는 언니의 검이야. 언니만을 위해 움직이니까 명령만 내려. 온갖 더럽고 지저분한 것은 내가 할테니."
턱을 들고 등을 곧게 펴. 당당하고 상냥하게 웃는거야. 잡아올린 넥타이를 바로 잡아준 뒤 나는 그녀의 뒤로 걸어가서 셔츠의 색과 똑같은 재킷을 잡아서 입혀주곤 여유롭게 미소를 지었다.
"모시겠습니다. 보스."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테이블에 올렸던 검은색 장갑을 양손에 끼고 깍듯이 허리를 숙이는 내 모습에 가볍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미안할 건 뭐가 있담. 자기가 일부러 그러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가끔 만날 때마다 속에서 한 생각이 크기를 키워갔다. 어서 그 망할 조직과 보스를 없애버려야지 라는 생각. 거기만 없애면 사랑스러운 연인이 더이상 이런 모습이지 않아도 될 테니까.
맞잡은 손을 꼬옥 쥐고, 총총히 걸음을 옮겨 안으로 들어갔다. 그냥 벽처럼 보이는 곳에서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가면 약간 어지럽혀진 집안이 보인다. 흐트러진 침대나 사방에 널린 옷가지들, 바닥을 굴러다니는 과자봉지 따위가 여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나태한지 보여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발로 슥슥 과자 봉지를 밀어놓고 시트가 구겨진 침대에 라연을 앉혔다. 의자는 이미 옷이 점령한 후라서 말이지.
"뭐 마실래? 빈 속이면 따끈한 수프라도 해줄게."
겸사겸사 나도 같이 먹으면 되니까. 라연은 앉혀놓은 채 옷더미를 뒤져서 후줄근한 후드티 하나를 꺼내었다. 그 때까지 벗고 있던 상체에 그제서야 후드티를 꿰어 입고는 라연을 돌아보았다.
"약만 하지 말고 잘 챙겨먹으래도 말도 안 듣고 말야. 저번보다 살 빠졌어. 알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곤 조물조물 만지며 짧게 타박했다. 그러곤 이마에 가볍게 입 맞추고 싱긋 웃었다.
시트가 구겨진 침대에 앉으니 그제서야 약발이 좀 듣는지 약간 몽롱합니다. 라고 생각하는 것도 잠시. 뭐 마실래? 라는 물음에 고개를 힘없이 기울이면서 빈 속에 약만 먹었더니... 수프 괜찮을 것 같네. 라고 대답합니다.. 저번보다 살 빠졌다는 것에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아닌데...?
"응.... 뭐 잘 안 먹는 것 같아.." 그래도 조금씩은 먹는걸.. 이라고 말하면서 그치만 하는 일이라곤 밤에 들이닥치는 사람을 상대하는 것 뿐이니까... 라고 중얼거립니다.. 이마에 가볍게 닿은 입맞춤에 팔을 뻗어 헤일리를 껴안으려고 생각한 대로 몸이 잘 따라주지는 않는군요. 그렇지만 그래도 최대한 끌어안으려 노력합니다.
애도 아니고 정말. 끌어안으려는 듯한 그의 팔을 받치듯 잡아 내게 두르고 천천히 그의 뺨을 쓰다듬었다. 몽롱하게 풀린 눈을 마주보며, 그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속으로 이를 갈았다. 어떻게, 어떻게 해야 그 망할 조직을 산산조각 낼 수 있을까. 잔해가 아니라 아주 흔적도 없이 사라지도록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생각을 하며 한순간 눈빛이 서늘해졌다. 그가 눈치채지 못 하게 고개를 돌리긴 했지만.
"...자, 수프 끓여올테니까. 잠들지 말고 있어?"
천천히 그에게서 떨어져 두어번 토닥이며 말했다. 멀리 가는 것도 아니고 바로 몇발짝 떨어진 가스렌지로 가는 것 뿐이지만 왠지 눈 돌리면 사라져버릴 것 같은 사람이라. 잠들지 말라고 짧게 당부한 뒤 렌지 앞으로 갔다.
조금 구식인 렌지에 불을 켜고 물을 담은 작은 냄비를 올린다. 스프가 뭉치지 않게 잘 풀어 끓이고, 조금 식힌 뒤 오목한 그릇에 담아 스푼 하나와 함께 침대로 가져갔다. 테이블을 쓰는 대신 그의 옆에 앉아서 쟁반째 내 무릎에 놓고 스푼을 들고 그를 보았다. 먹여줄 테니까 얌전히 있어?
"그래도 며칠에 한번씩은 먹는걸.." 조금일 뿐이지만.. 이라고 말해도 잘 안 챙겨먹는 게 사라지진 않으니까요. 헤일리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모르는 라연이었지만. 끌어안고는(끌어안게 한 것이었지만) 정말로 좋다.. 라고 중얼거립니다. 이런 시간마저 없었으면 그는 결국엔 그 목숨을 언제 놓아버려도 이상하지 않았겠지요.
"안 잘 거야..?" 잠깐 눈을 감는다면 바로 잠들어버릴 것만 같긴 하지만.. 기묘한 각성적인 걸 먹은 건지. 몽롱하지만 잠은 아닌 상태로 가스렌지에서의 헤일리를 기다려 봅니다. 스푼을 보고 고개를 기울이다가 먹여준다는 말에 혼자서도 할 수 있다라고 말해보지만 다 흘릴 게 뻔할 뻔자라.. 아마 얌전히 있겠지요.
며칠에 한번 먹는게 먹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 역시 불규칙적인 생활을 하니 그렇게 뭐라 할 처지는 못 되었다. 그래도 난 하루에 한 끼 정도는 먹는데 말이지. ...과자 뿐이지만.
"지금 네 손에 스푼 쥐어줬다간 침대가 엉망이 되고 말 거야. 그럼 시트를 빨아야 하고, 그게 다 마를 때까지 난 매트리스 위에서만 자야 한다구."
시트 대신이 되어줄게 아니면 가만히 있어. 혼자서 할 수 있다는 말에 딱딱 잘라 얘기하곤 수프를 떴다. 한스푼 떠서 호 불어 식히고, 라연의 입가로 가져가 먹여주었다. 그걸 천천히 반복해가며 한 그릇이 빌 때까지 했다. 시간이 좀 걸렸지만, 그런 시간 마저도 함께라 좋았는 걸.
"좀 더 먹을래?"
그릇이 비자 스푼을 든 손을 내리고 물었다. 그러다 그의 입가에 스프 방울이 묻은 걸 보고, 칠칠치 못 하다면서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묻은 걸 혀로 날름 핥아버렸다.
"시트 대신.. 꼭 안아주면 따뜻하지 않을까..?" 헤일리의 논리적인 말에 약쟁이는 무어라 논리적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그 논리적인 말에 말문이 막혔는지 살짝 풀린 눈으로 헤일리를 바라보면서 아기새가 받아먹듯 냠냠 받아먹습니다. 그리고 좀 더 먹을래? 라는 말에 으응.. 이라며 고개를 젓습니다. 그러다가 입가에 묻은 방울을 혀로 핥자 조금은 놀란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뜹니다.
"어..으..?" 아이 아니거든.. 이라고 투정부리듯 말하기는 하지만. 입맛이나. 하는 짓이나 애 맞아서 뭐라 더 말하기도 그렇고.
"같이 있으니까 좋다.." 라고 헤일리에게 고양이스럽게 머리를 손에 부비려 합니다. 긴 머리카락이 헤일리의 손을 간지럽힐지도요.
약 기운 때문에 잘 돌아가지도 않을 머리로 저런 생각을 했다는게 재밌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피식피식 웃었다. 더 먹지 않겠다길래 빈 그릇을 얹은 쟁반을 옆으로 치워놓았다. 이래야 걸리적 거릴 것 없이 뭐라도 하지. 그새 놀란 얼굴을 한 라연을 보고 혀를 쏙 빼물어보였다.
"하는 짓이 천상 애면서 뭐래. 그리고 그거 알아? 남자는 평생 애래."
그러니까 애처럼 굴어도 다 받아줄게. 라고 말하면서 부벼오는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손가락 사이사이를 스치는 긴 머리칼을 빗어내리듯 쓸어내리며 그를 내 쪽으로 살짝 끌어당겼다.
// 유명한 피아니스트. 겉으로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알려져있다. 하지만 그가 믿는 종파는 교주가 곧 신의 현현과도 같다는 교리를 따르기에 흔히 사이비라고 불리운다. 또한 청부 살인, 감금등의 불법 행위도 저지르기 때문에 사실상 종교 집단이 아닌 범죄 조직에 가깝다. 그는 이를 알면서도 교주인 갈색 머리의 소녀(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를 따라 행동한다. 조직(성당)안의 보스(교주)인 소녀의 측근으로, 그는 조직원(신도)의 위치에 서있으나 다른 간부(신부)들보다 그 위상이 낮지 않다.
드디어 먹고싶고 또 먹고싶었던 양꼬치 무료이용권을 쓰러 왔다!!!!!!!!! 이런 좋은 기회를 그냥 지나칠 순 없기 때문에 큰 맘 먹고 양꼬치 가게에 오자마자 전 메뉴(!!!!)를 주문하기로 했다! 이모가 진심으로 기겁하고 '정말 다 먹을 수 있니? '라고 물으셨는데 물론 난 '녜!'라고 했다! 다 먹어보고 맘에 드는 메뉴가 생기면 좀 더 주문해가지고 들고 갈꺼다!!!!!! 라야한테 자랑해야징 예에에에!!!!!!!! 헤실헤실 웃으며 메뉴가 하나씩 나올 때마다 기쁜 마음으로 냠냠하였다! 우왕 이거 뫄이쪙! 우왕 이건 맵네! 이야 ■■ 이건 아니댜 접쟈!
"우왕 뫄이ㄸ...... 아안뇨오오오오옹~~~~~~~! ! "
경건한(?) 마음으로 다섯번째 양꼬치를 우물거리던 도중 익숙한 사람이 보여 크게 팔을 휘저으며 인사했다. 요기 안쟈 요기 안쟈! 너두 양꼬치 머그러 온거지이??? 일로왕 일로와아!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시니, 겁낼 필요는 전혀 없도다. 비록 소녀의 몸은 인간이기에 연약하나 영은 거룩하고도 신성하니 곧 모두를 구원해가리라. ..그것은 불경한 자에게 총구를 겨누어 심판하는 것이라.
며칠 뒤에는 또다시 연주회가 열렸다. 재빠르게 준비하더라도 시간이 촉박했으나 그는 전혀 개의치 않으며 늘 그렇듯이 바깥으로 나왔다. 이따금 손가락을 허공에 대고 움직이며 피아노를 치는 시늉정도는 내었지만 곧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느릿느릿하게 걸어갈 뿐이었다. 그렇게 걸어가던 도중에 낯이 익은 여성이 보였다. 그녀가 자신을 먼저 알아보고 인사하자, 그도 마주 웃으며 대답했다.
" 정말 오랜만이네요. 이런 곳에서 마주치게 될줄은 몰랐는데. "
참, 연주회라면 며칠 뒤에도 있을 예정이에요. 그런 말을 덧붙이며 그는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검은 정장에 손에 낀 흰 장갑은 주변의 분위기와는 상당히 동떨어져 보였다. 그는 적당히 옷을 정리한 뒤에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양꼬치 가게의 5짐을 설명하자면 메뉴가 무려 32가지나 된다!!!!!!! 그냥 데리야키 소스 바른거부터 와사비(?????)를 바른거까지 별 해괴한 메뉴가 다 있다 그말이다! 지금 내가 먹고 있는건 무려 양치킨꼬치(???)로 양꼬치와 닭꼬치를 짬뽕시켜 두 가지 맛을 한번에(????) 느낄 수 있는 맛이다! 결정을 못할 때 고르면 좋은 맛이다! 이번 달 최고의 메뉴로 강추 또 강추다!
"그을쎄에 너가아 머글 때 만냐서 구런 게 아니까아????? 내가마랴 맨날 먹구 있눈고 아이거드은?? 요렇게 먹구마랴 또 연습하러간댜 구마리야아~~~~~~! 아 요거 마이따! "
우물우물거리면서 대답해줬다! 평소보다 더 발음이 더 눈물나는건 넘어가도록 하자! 왜냐하면 난 지금 먹는 중이니까!
"너어 요게 뭔줄아라아아~~~~~~??? 쨔쟌! 무료 이영궈니다아!! 요게 이쓰니 난 무져기란 말씀!!!! "
텅 빈 꼬치를 내려놓고 반바지 주머니에서 웬 이용권을 꺼내 보여준 뒤 새로 온 대파꼬치를 집어들었다. 싸랑해요 꼬치아줌마!
"그런 의미에서 션배니미 쏜댜! 머 먹구시퍼 말만 해! "
너(가 주문한)꺼 내꺼 내꺼 내꺼 다 내꺼다 이말이다. 이런 좋은 기회를 그냥 쓸 순 없으니 이용권을 맛깔나게 써주고 갈테다. 크크킄크크크크킄 그러게 왜 이런 좋은걸 떨어트리구 가래!!
비류는 먹는것에 대해 욕심이 없었다. 절대로 못먹고 자란건 아니지만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게 주를 이룰 뿐이다. 눈앞에서 저렇게 양꼬치를 맛있게, 그것도 엄청난 양으로 먹고 있는 리타의 모습은 비류에게는 가히 신세계나 마찬가지였다. 눈을 끔뻑이며 신기하게 바라보던 것도 잠시 자신이 주문한 양꼬치가 오자 그걸 집어들었다.
와시비를 바른 양꼬치로 비류는 그걸 맛있게 먹으며, 리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먹을때마다 보는 것 같기는 하지만. 일단 다 먹고 말하라고 하고 싶지만 양이 줄어들 생각을 안하는군. 먹고 연습인가? 활동량이 많은 것치고는 꽤 대식가 같다만."
농담조로 중얼거리고는 비류는 여유롭고 느긋하게 와사비를 바른 양꼬치를 먹어치우다가 리타가 내민 이용권을 봤다. 보물찾기에서 얻은 건가? 라는 생각도 잠시.
"그럼 선배님의 결정에 따르도록 하지. 난 여기가 처음이라 맛있는걸 추천해줬으면 좋겠어. 아, 그리고."
혹시 레스토랑에서 분위기 있게 먹는 걸 좋아하나? 하며 그녀는 주머니에서 레스토랑 코스 이용권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악기를 다루는 사람들은 늘 손을 소중히 한다는 것일까? 정장과 하얀 장갑을 보던 그녀는 매끈하게 웃어보이며 그런가요? 라고 하면서 으쓱입니다.
"오라버니는 늘 그렇듯이 바쁘시군요. 얼굴뵙기가 이렇게 어렵다니... 뭐. 그게 좋은거지만요! 아. 저는... 뭐 여전하답니다."
30대의 마피아가 본처를 내쫒고 들인 17살의 어린 애인은 가만히 숨만 쉬고 살아도 구설수를 달고 살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런가? 어차피 겉치례에 지나지 않기야 해도 예의를 차려주는 사람을 보는것만 해도 숨통이 좀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동료들이라던가 가까운 사이라는 것은 있다. 하지만 그녀의 입장에서는 가까운 사이라는 것의 정의가 늘 그이의 입김이 닿는 사람들이라는 것 때문에 마냥 편하게 대할수도 없는 노릇이라 이렇게 자신이랑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이 더 반갑다는 울고싶은 처지였다.
"그래도 이렇게 마주쳐서 정말로 좋네요... 아. 공연이 금방이라고 했는데 그럼 지금도 한참 준비중이셨던가요?"
이름 : 체르니( černý), 인 유샹(銀 幽玄 ,Yín yōuxuán) 직업 : 전문살인청부업자
외모 : 본디는 은 일가의 유전형질은 백금발과 푸른빛이 감도는 은색의 눈을 가지고 있으나, 은 일가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다는듯 염색하여 검은 머리에 보라빛의 브릿지를 넣은 긴 생머리와 붉은색 렌즈를 선호하고 있으며, 주로 입는 옷은 18세기 유럽풍의 드레스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타입이다. 의뢰 때문인지는 몰라도 옷을 붉게 더럽히는 일이 잦다. 본인도 성가시다고 생각하는 듯.
등에는 銀이라는 글자가 인상적인 복잡한 동양풍의 문신이 그려져있지만 그것을 드러내는 것을 무척이나 꺼려한다. 은 일가와는 손땠다면서.
무기 : VSS Vintorez 특수 목적소총. 애칭은 올 해저드. (All hazard.) 러시아의 스페츠나츠가 사용하는 총기를 밀수하여 나름대로 커스텀 한다음 사용하고있다. 9X39mm 아음속 탄환과 소음기를 활용하여, 소리를 최대한 나지않고 목표를 처리하는 것을 즐기며,
그외에는 다수의 암기를 사용하고있다. 양산을 가장한 SPAS-12 샷건이라던지. 그중에서 유별난건 네일아트를 가장한 손톱칼날은 은 일가에서 전수받은 은 일가 전용의 암살무기. 의뢰주가 원하는 방향에 따라 암살을 해주고 있지만, 선호하는건 역시 올 해저드로 타겟의 머리에 바람구멍이 시원하게 뚫리는 것.
설정 : 트라이어드 은협방(三合會 銀協幇)의 보스인 산주(山主)의 친딸이자, 한때는 그 아래에서 조직을 정리하기 위한 히트맨이자 백지선(白紙扇,중간관리직)이었지만 청부업쪽이 자기 취향이라면서 의절한 관계다. 현재는 체르니라는 가명으로 악명을 떨치는 통칭 걸어다니는 흑사병이라고 불리는 암흑계의 거물. 돈도 무척이나 밝히지만 재미유무와 위험리스크등을 따지고 고객으로 온 사람의 질역시 따지는 사람가리는 전문킬러로 유명하다.
이곳은 확실히 믿을 만한 친구가 생길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그녀와는 사적으로도 조금 친분이 있는 관계였으니, 지금 무슨 상황에 처해있는지 정도는 알수 있었다. 그랬기에 그는 별 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은채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말로는 꺼내지 않고 있지만, 아마 가벼운 마음은 아닐 것이라 예상하며 다시 대답했다.
" 준비는.. 해야겠죠. 하지만 방 안에 몇 시간이나 틀어박혀 있는건 너무나 지루한 일이라서, 잠깐 밖에 나왔답니다. "
차라리 그 시간에 총을 들고 누군가를 쏘러가는 편이 낫겠어. 라고 생각하면서, 그는 문득 정장 안 주머니에 있는 작은 권총 한자루를 만지작거렸다. 이곳에서라면 딱히 이상하게 보일 일도 아닐테니.. 뭐 괜찮지 않을까.
아마 여전히 시궁창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프란츠가 알아챈 것 같지만 그녀는 내색하지 않는다. 뭐 어떻게든 되겟지 하는 밝은 마음은 아니다. 거기다가 이젠 아므렇지도 않다는 강철같은 마음은 더더욱 아니지만 그녀는 거의 2년이 넘어가는 이 생활 덕분에 거지같은 기분은 들었을 지언정 철판을 얼굴에 깔고 살만큼의 뻔뻔함은 생긴 것이다.
"하긴... 공연준비는 늘 정신없고 피곤하긴 하지만 많이 피곤하죠... 매일 일만 하고 살면 사람이 어떻게 살겟나요?! 그렇게 살다간 아무도 못 견뎌요!
언제나 유쾌한 척 깔깔거리는 연기는 잘 하기에 그녀는 아주 예전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하듯이 팔짱을 끼거나 하진 않았지만 그 좋은 목소리를 유쾌하게 울려 웃음소리를 내며 그와 보폭을 맞추어 걷기 시작하였다.
"아. 그렇다면 오늘은 제가 쏴도 될까요? 무르기 없어요! 저번에도 한 턱 낸다고 약속하고는 먼저 연락하시지도 않았잖아요! 뭐 드시고 싶은거 없어요? 빗싸지만 않으면 제가 대접하고 싶어요!"
문득 위가 자신을 심각하게 조이는 것 같아 그녀는 밝은 척 하는 연기를 계속 하며 물어본다.
후배님이 말하는 걸 듣는동안 나는 대파꼬치를 해치우고(!!) 양새우꼬치를 먹을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이 섬은 정말정말 맛있는 식당들 뿐이라서 15년동안 공화국 요리만 먹고 산 나에겐 천국과 같다!!! 사랑해요 양새우꼬치!!!!!!!! 이걸 먹고 공화국 요리에 학을 뗐습니다!!!!!! 찬양하라 양새우꼬치!!!!!!!!!
대파꼬치를 해치우는 리타의 모습을 바라보는 비류의 눈썹이 슬금 치켜올라간다. 그러니까, 지금 자신이 테이블에 합석하고 난 뒤에 저게 몇개째지? 하고 잠시 세어보려다가 고개를 설레 젖고 말았다. 런닝 10km가 가볍게 라는 뉘앙스로 나오는 걸 보니 리타는 아마도 진이랑 같이 붙혀놓으면 좋을 것 같다.
"런닝 10km가 가볍게라니."
결국 입밖에 내고 만 뒤에 비류는 와사비를 듬뿍 바른 양꼬치를 착실하게 비워나갔다. 무례하지 않게 예의바른 모습이다보니 전혀 맛있게 먹는것 같지는 않았지만 비류는 나름 만족스러워하는 중이였다.
그는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사람은 언제나 일탈이 필요한 법이 아닌가. 그런 일탈이라는게 청부업자 노릇을 한다던가. 성당 안의 대리석 바닥에서, 소녀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간절히 기도하는 일. 이 두개 정도라는 것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일단은 그 다음 말에 답해야 할 것 같았다.
이아나의 일탈은.....의외로 없었다. 뭐 물론 그와 단 둘이서만 사는 아파트에서 티비를 멍하니 본다던가 다른 사람들과 마구 떠드는 짓은 자주 하였지만 어쩐지 그 집은 그의 혈관들로 이루어진 소굴에 있는 것 같아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 하고 막혔다.
"뭐 지금 지킬 수 있으니까 봐드릴게요!"
라고 살짝 건방지게 말하는 것도 사실은 프란츠가 그것을 봐주는 사람이라서 하는 짓이였다. 그이한테 이런 짓? 하하. 할 수 는 있는데 하는동안 언제 또 시끄럽게 소리부터 지를지 몰라서 하고싶지 않았다. 그에게 부리는 것은 약갼의 교태랑 애교정도를 하는 것도 이아나로서는 최선이였다.
"아. 여긴 짜장면이 맛있어요."
곧 프란츠랑 들어간 곳이 아는 곳인듯 말을 하는 이아나는 익숙하게 직원이랑 인사를 나누며 적당히 둘이 앉아 메뉴판을 보여준다. 중국집 메뉴야 뭐 거기서 거기고 요리부를 단 둘이 있을 때 시키는 일도 적으니 그녀는 메뉴판을 보는 시늉만 하다가 말한다.
이번 꼬치는 양후라이드순살꼬치와 양베리베리칠리꼬치다. 물론 둘다 진짜 메뉴명이 그런게 아니고 내 임의로(!!!!) 부르는 맛이다. 매운 게 먹고 싶을때 샀는데 오늘은 마음껏 먹을 수 있어서 좋다! 예에에에에! 양손에 들고 한 입씩 물며 행복에 미소지었다. 이게 징쨔 낙원이다....꼬치의 낙원......사랑해요 양꼬치......
정말 당연한 일이라 당연하게 답해주고 다시 우물거렸다. 체력이 있어야 연습을 하는거야!!!! 공화국에 있을 땐 입맛 드릅게 없어서 언제는 세끼 다(그것도 거의 하루에 한끼였다) 오트밀만 먹겠다구 뻐긴 적도 있었는데 요기선 오또케 이렇게 입맛이 폭발하는지 모르겠다 징쨔. 이게 다 맛있는 음식이 있냐 읎냐의 차이인가보다. 로라시아 만세! 양꼬치 만세!
"그로쿠나.......알게써........"
난 또 혀가 감각이 읎는줄 아라찌..... 소리가 무슨 뒤로 갈수록 개미소리마냥 작게 말려갔다. 씨이 이게 다 디트리히짜식(ㅡㅡ) 때문이다. 고로케 와사비를 잘 머글게 모오냐구 징쨔!!!! "나중에 꼭 먹기다아! " 라고 덧붙여주고 빈 꼬치 두개를 곱게 접시에 내려놓았다. 아 마이써따. 다음은 모지? 아 카레양꼬치! 까먹을 뻔했네 레스토랑 때문에.
"모야아 징쨔아아~~~~~완젼 죠앙!!!!! 언제 갈래애?? "
제일 비싼 코스 아니어도 좋다! 중요한 건 코스요리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후배님이 쏘신다니 맴 편히 놓고 가면 되겠다! 그래서 시간이 언제라구우???? 생각하면 할수록 저절로 눈이 반짝거렸다. 신난다 레스토랑이다!
그는 장난치듯이 한쪽 눈을 살짝 감았다 떴다. 방금 전의 가벼운 분위기와는 다르게 특유의 느끼한 말투를 더 강조해서 그런지, 상당히 격식을 차리는 말로 보였다. 물론 말투에서 또 다르게 느껴지는 익살스러운 느낌에서 그게 농담이나 다름 없다는 것 쯤은 눈치챌 수 있었겠지만 말이다. 그녀의 말투가 마치 귀족같은 느낌을 주었으니까, 이쪽도 그리 답해주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하면 되려나.
그렇게 들어간 중국집 안은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나름 정겨운 분위기를 풍겼다. 어딜가나 비슷한 자리 배치라던가, 약간의 너덜너덜한 면이 더욱 그 분위기를 증폭시키기도 했다.
" 저야 뭐, 짜장면으로 할까요. "
어디까지나 간단하게 때워야 하니까. 매운 음식은 쉽사리 입에 못 대기도 하고.
" 짜장면이 제일 맛있다고 하셨으니까요. "
겉으로는 그렇게 변명해본다. 절대 매운걸 못 먹는게 아니란 말이다! 라고 말하고 싶은 것처럼 보이는건 착각이 아니었다.
비류는 제 몫의 양꼬치를 다 먹고 난 뒤에 잠시 입안에 감도는 와시비 맛을 물로 희석시키고는 양손에 꼬치를 쥐고 맛있게 먹고 있는 리타를 본의 아니게 관찰하고 있었다. 보고 있는것 만으로도 충분히 배가 부를 정도였다. 그녀는 턱을 괴고 여유롭고 느긋하게 리타를 바라보며 입을 연다.
"당연한건가."
당연한 말을 왜 물어보냐는 듯한 뉘앙스였기에 그녀는 그저 큭큭 여유롭게 웃음을 지으며 가볍게 넘겨버린다.
"혀에 감각이 없다니. 일단 미각은 확실하게 살아있지만. 와사비에 안좋은 기억이라도 있나. 선배님?"
비류는 익숙한 카레향이 느껴지는 것에, 눈을 가늘게 뜨고 리타를 바라보며 대답한 뒤 자신의 디바이스를 꺼냈다. 완전 좋다면서 언제갈건지 물어오는 것에.
"일단 연락처를 교환하고 추후에 일정을 조정하도록 하지. 리타 선배님."
어때? 덧붙히며 눈이 반짝거리는 듯한 리타의 모습에 푸핫,하고 웃고 말았다. 참 먹을 걸 주면서 누가 같이 가자고하면 따라갈 선배님이지 않은가.
이것은 애교일까 아니면 약을 올리는 것일까? 그녀는 일부러 구분을 짖지 않는다. 누군가 그랬다. 애교라는 것의 정의는 성적인 것이 배제된 애정을 약속하는 것이라고. 그녀는 정말이지 누군가의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무것도 모르던 그 시절 타인과의 애정어린 시선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그리워서 내장이 꼬이는 기분이였다. 그래서 오히려 더 밝게 행동한다. 웃어라! 어차피 세상은 날 구하지 않으니까!
"간편하네요. 그럼 주문할게요?"
그렇게 말한 그녀는 곧 종업원을 불러서 짜장면이랑 짬뽕 하나를 시키며 살짝 음흉하게 웃는 채로 짜장면에 고춧가루가 맛있는데... 라고 하고 싶은 욕구가 간질거렸으나 참아내고는 차가 든 물통을 따라주고는 자신의 잔에도 따라 곧바로 원샷하며 손부채질을 한다.
"후... 오늘은 좀 덥네요. ...그러고보니 오라버닌 참 부러워요. 더울때도 추울때도 거의 변하지 않는 것 처럼 보이는데... 비법이라도 있나요?"
이러다가 천벌 받겠네요!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일부러 과장되게 웃어보인다. 본래부터 신부들은 결혼을 떠나 연애 행위까지도 일체 금지되지만, 그가 믿고있는 종파는 그런 것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었다. 사이비라고 불리는게 정상인것이지. 그러나 그는, 물론 천주님을 믿고야 있지만. 소녀도 함께 믿으며 따르고 있으니 그런걸 크게 신경쓰지는 않았다. 방금 것은 단순한 장난이었다.
" 거창한걸 먹어도 배탈이 날테니.. "
그는 조용히 혼잣말하며 그녀의 표정을 살핀다. 뭔가 웃음이 음흉해 보이는 것은 눈의 착각일까? 아무튼 그 다음에는 찻잔에 따뜻한 차가 따라지는 모습을 느긋이 지켜보고 있었다.
" 어디까지나 참고 있을 뿐이죠.. 더울때는 자주 씻고, 추울때는 옷을 껴입고. 그게 끝이에요. "
구석에서 선풍기가 돌아가고는 있지만, 더운 것은 그도 매한가지였다. 정장의 재질이 꽤나 시원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낫기는 했다. 날씨가 더운 탓인지, 입맛도 잘 돌지않아 그는 젓가락을 들어 음식을 조금씩 집어 먹고 있었다.
카레양꼬치까지 오물거리고 나니 남은 것들은 포장해도 될 것 같단 생각이 든다! 농담 아니라 여기서 한 두개 정도만 더 먹으면 충분할거 같다. 더 먹을 수 있는데 가볍게(^^) 연습하기 위해선 한 두개 더 먹는걸로 끝내도록 하자. 카레양꼬치와 파인애플(???)양꼬치를 천천히 한입씩 베어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고 말고!!!!
"어떤 빠가사리 후배님께서 고로케 와사비를 잘 머거서 말야. 걔 징쨔 혀에 감각이 업나바! 완전 마시께 머거따니까???? 세상에 와사비 아이슈크림 고로케 잘먹는 애 첨봐써!!! "
여기서 빠가사리는 디트리히 아넨에르벨을 뜻한다. 물론 후배님께선 모를 수도 있기 때문에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한번 급식판을 엎은 시키는 영원한 철천지웬수니 빠가사리로 칭하도록 하겠다. 아무튼 걘 내개 있어 요태까지 그래와코 아패로도 계쏙 빠가사리다. 아무튼 그렇다.
"완~~~~젼 죠앙!!! 요기 내 디바이스야아! "
초롱초롱한 눈으로 고갤 끄덕이며 후배님께 디바이스를 내밀었다. 요기다 찍어! 아 이름은 마음대로 저쟝하구!
어느 지저분하게 어질러진 사무실에서. 콧수염을 길렀으며 세월의 주름살이 자글자글한 남자가 손님을 부른다. 손님은 옛적의 옷을 하늘하늘하게 입은 검은머리의 소녀. 누가 본다면 딸과 아버지라고 착각을 하겠지만, 둘은 그저 비즈니스적인 눈동자로만 서로를 응시할뿐, 거기에는 애(愛)라고 할만한 감정은 전혀 없었다.
단지 두 사람이 이끌릴 일이 있다면 그것은 두가지. 하나는 서류가방을 위장한 초상화가 잔뜩그려진 녹색의 지폐일것이며, 하나는 소녀는 생전 처음보았다는 듯 글쎄다 라고 말할것이며, 남자는 이를 갈며 언젠가는 죽일것이라고 말할듯한 누군가의 화상(畵狀).
이것은 비즈니스다. 단지 그 내용이 사람을 죽이려 돈을 내는 자와 사람을 죽이고 돈을 받는 자의 거래였다는게 문제지만.
남자는 그러한 의뢰를 내리는 입장에서 진중하면서도 신중하게 어쩐지 식은땀을 흘리는 기색은 있었지만 기본적으로는 상대를 알기에 윗사람에 입장에서. 소녀는 의뢰를 받아 들이는 입장에서 남자따위는 사실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돈냄새가 얼마나 나는가랑, 타겟을 어떻게 죽여버리면 재미좀 볼까하는 쾌락을 가지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아랫사람의 입장에서 웃으며, 돈 가방을 열어보인다.
액수를 확인한 소녀는 웃던 얼굴을 일그러 뜨리고는 욕지거리를 내뱉는걸 애써참으며 남자에게 따졌다. 그러자 남자는 시거렛을 푹푹 피우고 소녀앞에서 연기를 내뱉고는 이야기한다.
"두배. 의뢰를 목표시간보다 빨리처리하면 두배를 주지." "흠.. 조금 곤란한데. 좀 더 올리죠?"
소녀가 액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 남자는 손가락 3개를 올리면서 재차 협상한다.
"좋아. 3배주지. 그 이상은 의뢰를 파기하겠어." "역시 날 잘아는 영감님이네. 정말로 OKay. 의뢰를 받아들이죠. 시간이 조건이었으니 10분정도 빠르게 처리해주도록 해드리죠. 당신이 배신하지 않는 한은 말이죠."
소녀는 그 말을 끝으로 사무실을 나섰다. 그렇지만 그녀는 기본적으로 돈 말고는 아무것도 믿지않았다. 몇번인가 거래해왔던 인간조차 신뢰같은 감정은 전혀 가지고 있지않았다.
오전 10시 30분.
회색빛깔로 물든 흐린날의 도시는 어느때와도 같이, 길가는 사람으로 붐비었고 공기는 언제나 가솔린이 연소되어 나오는 지독한 냄새와 길가에 아무렇게나 푹푹피워대는 역시나 역겨운 냄새따위로 가득했다. 그저 이곳은 콘크리트로 채워진 사각형 건축물이 숲처럼 쌓혀있으며 그 색은 본디는 빛깔좋은 색을 했겠으나 세월이 지나서 칠은 금이가서 뚝떨어지기 일수고 칙칙한 매연이나 누군가 예술이랍시고 싸질러놓은 스프레이 그라피티나 깨진 창문을 수리도 하지않고 내버려두는 둥 정크라는 색이 있다면 딱 빛깔이 어울리는 도시리라.
"Ring around the rosie, A pocket full of posies,Ashes! ashes! We all fall down!"
그러한 무채색의 공간에서 정적을 깨뜨린것은 붉은 빛의 체크 케이프를 두른 소녀였다. 한손에는 가방을 들고 한손에는 햇볓이 쌔지도 않고, 비도 오지않는 이 공간에서 빨간색의 우산을 들고는 카페 뒷 골목으로 소녀는 사라졌다.
오전 10시 45분.
검은색 차량이 카페에 내리고 양복을 입은 신사들이 모임을 가진다. 모임은 항상 이곳에서 비밀리의 이야기를 은어를 섞어가며, 추잡하고도 탐욕스럽고, 유혹을 떨쳐내기힘든 검은 돈과 검은 물건이 오가는 모임이다.
오늘도 어딘가의 높은 패밀리가 마시면 요정을 보는 빌어먹을 약을 팔아버릴 생각을 할테고 오늘도 어딘가의 높은 패밀리가 최근 흥한다는 전자화폐로 돈세탁을 한다는 이야기를 할테고 오늘도 어딘가의 높은 패밀리가 주변의 보호세에 대한 이야기를 할터이다.
그러한 검은 이야기로 가득찬 곳에서 소녀가 또다시 분위기를 깨듯 등장해 한쪽에는 거대한 인형과 한쪽에는 아까와 같은 빨간양산을 손에 쥐고는 테이블이 있는곳을 깡총걸음을 걸으며 다가오다가, 이내 넘어지고 만다.
"아이쿠야 아파!"
연기 같지도 않은 소리를 내는 소녀에게 검은 신사들은 시선을 돌렸고, 그 상황에서 소녀는 모두를 비웃으며 사악한 미소를 드러낸다.
"까꿍."
딸-깍.
카메라의 스위치가 눌리는것같은 소리가 딸깍 소리를 내며 울려퍼졌다. 그리고 한 사람의 정수리에는 저편 하늘을 볼수있는 바람구멍이 생기고 붉은 색채로 가득찬 혈흔이 땅바닥과 테이블을 적셔갔다.
신사들은 그제서야 상황을 눈치채고 저 마다의 무기를 소녀에게 겨누고 격발을 시도하지만, 때는 늦었으니.
케이프에서 사과마냥 굴러나온 녹색의 수류탄이 마치 소녀가 지휘한다는듯 하나하나 핀이 풀린채 땅바닥에 리듬을 타고 굴러가 귀를 울리는 소리를 내며 순차적으로 폭발해갔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학살의 현장이었지만, 남은 자가 있었으니 소녀는 우산을 활짝펴내고, 날아오는 총탄을 막아낸다.
"역시 총성만큼 즐거운 악기는 없고, 폭발소리만큼 아름다운 오케스트라도 없지."
반대손에 있던 곰인형의 가죽과 솜털을 벗겨내고 드러내는 것은 그녀의 동반자요, 소리없는 암살자일지어니.
딸깍.딸깍.딸깍.딸깍.딸깍.
수없는 카메라 찍는듯한 소리가 나고 검은 신사들은 맥없이 쓰러져 나갔고 서있는건 소녀뿐. 그것은 소녀가 일으킨 의뢰라는 이름의 지휘였다.
"네놈은.."
발밑 언저리에 아직까지도 숨통이 붙은 남자가 고통섞인 단말마를 내뱉어 내자 소녀는 웃으며 우산끝을 신사의 머리에 가져다댄다.
"어라 마지막 타겟이구나. 미안하지만 입다물어.." "흑사..!"
철커덕 퍼억 탕.
신사가 그 이름을 부르기가 무섭게 소녀는 매섭게 신사를 노려보고는 우산 손잡이에 달린 방아쇠를 당겨 남자의 말을 끊어버렸다. 사방에 분홍색과 붉은색에 색채가 튄것을 소녀는 불쾌하다는 듯 닦아내고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닥치라고 했잖아. 빌어먹을."
더 이상 소녀를 공격하는 이는 없었다. 이것이 당연하다는 듯. 의뢰는 그것으로 끝이났다. 그때가 10시 50분. 소녀가 남자에게 말했던 시간이었다.
오전 11시.
걸어다니는 흑사병은 모습을 그렇게 감춘다.
오후 8시.
"미스터. 지금 장난하자는건가요?"
소녀는 기분이 좋지않았다. 약속했던 3배의 보수를 지급하지않은 것이다. 가뜩이나 그의 의뢰는 폭발물과 대량학살을 요구했기에 지출이 많이 들어가는 요소였고, 위험수당도 그만큼 많이 받았어야 했다. 3배는 적당하고 차고 넘치는 금액이지만 선금으로 받은 가방으론 풀칠하는게 고작.
카레 양꼬치에 이어 리타가 든것은 파인애플 양꼬치였다. 파인애플이 들어가있는 음식은 많이 알지만 아무래도 저 고기와 파인애플이 함께있는 걸 보며 비류는 미묘하게 한쪽 눈썹을 슬금 치켜올렸다. 와사비 아이스크림? 일반 와사비라면 좋아해서 먹을 수는 있지만 그건 또 처음듣는 종류였다. 살짝 노을색 눈동자에 이채가 감돌았다.
"그 와사비 아이스크림을 잘먹는 후배님과 와시비의 훌륭한 점에 대해서 토론이라도 하고 싶군."
농담이라는 걸 완연히 알려주듯, 그녀는 그렇게 대꾸하면서 시선을 가볍게 다른쪽으로 돌린 뒤 목의 문신을 쓸어내리다가 리타의 디바이스를 받아들어 자신의 디바이스를 가져다대고 연락처를 교환했다.
"내 이름은 알고 있나? 통성명을 했는지 몰라서. 적당히 비류라고 저장해놓으면 되고."
리타 선배님, 연락처에 이름을 저장한 뒤에 비류는 레스토랑 이용권과 함께 자신의 디바이스를 주머니에 넣고 몸을 일으켰다.
"코스요리가 엄청 먹고 싶을 때 연락하면 돼. 선배님. 난 귀여운 선배님에게는 없던 시간도 생기는 쉬운 후배라서 말이다."
먼저 가보도록 하지. 비류는 그렇게 말을 맺고는 적당히 상냥한 느낌이 들도록 미소를 지은 뒤 걸음을 옮겼다.
외형 : 본래와 같음. 입고 다니는 옷이 갈색자켓과 청바지. 갈색 자킷 안에는 고정된 수직손잡이가 달린 기관권총이 있고 주머니에는 너클이 한쌍 들어있다.
특기 : 격투. 너클 하나끼고 칼들고 온 셋을 쓰러트림. 연사. 기관권총을 잡고 연사하여 제대로 잘 쏜다.
과거사 :
진은 먼 외지에서 왔습니다. 원래 살던 고향은 전쟁에 휩싸였습니다.진은 부족한 병력때문에 소년병으로도 징집이 됬었습니다. 다행히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왔으나 진의 고향은 처참해졌고 반겨줄 가족을 전부 죽었습니다. 진의 고향에는 희망이 없었습니다. 통조림 하나를 위해 서로를 시기하여 죽이고 밀거래와 인신매매가 우글거리는 도시가 됬습니다. 진도 그런 범죄에서 멀짐 않았습니다. 하루하루 썩어들어가던 생활을 하던 진은 어느날 자신의 전우였던 친구, 한에게 편지를 받게 됩니다. 로라시아에서 자신은 멋지고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다는. 그 편지에 진은 로라시아의 환상을 갖게 됩니다. 드높은 빌딩과 안전하고 아름다운 광경. 넘쳐나는 음식. 진은 자신의 새로운 희망을 찾기위해 자신의 고향에서 도망쳐 로라시아로 향합니다.
그러나 알고보니 친구인 한도 그리좋은 삶을 사는것은 아니었습니다. 한은 작은 배달사업으로 작고 소박하게 살고있었으며 빚도 달린채 살아가는 사람이었을뿐이었습니다. 그래도 진에게 나빠보이는 삶을 아니었기에 진도 한을 도와 일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진은 빚을 받으러 온 사람 셋이 한에게 돈을 받기위해 너무 심한 폭력을 가하자 진은 그 빚징수자들을 흠친 두들겨 버렸습니다. 그 빚징수자들은 조직에 관련된 자였고 진과 한은 조직에게 끌려 갑니다. 하지만 진의 깡을 알아본 조직은 진에게 자신의 조직에서 일하지 않으면 진도 죽이고 한도 죽일것이라 합니다. 진에게는 딱히 선택권이 없었습니다. 진은 조직에게 돈을 받으며 사람을 살해하는 남자가 되었습니다.
거기에서 말을 끊었다. 천주님이 좋아하실지는 의문이고, 다만 소녀가 거느리고 있는 사람이 자신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은 가끔씩 들었다. 확률이 얼마나 될지는 알수 없는 일이지만, 언제 독실한 신자로 위장한 음흉한 작자가 덤벼들지 모르니까. 그런 타락한 자들은 항상 그가 처리해야 했다.
" 종교인은 남을 함부로 대하지 않죠. 특히 이런 아름다운 여성 분과 함께일때는 더욱 더. 저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같은 의미랍니다. "
그러고는 큭큭대며 웃는다. 젓가락질은 이미 멈춘지 오래였다. 그럼에도 직원이 앞치마를 가져다주자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물론 그녀에게도 고맙다고 말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 그러게요. 후우.. "
그녀가 시켰던 짬뽕을 슬금 쳐다보면서, 뭔가 고민하는 듯한 낌새를 보인다. 아마 바꾸어볼까 생각했던 것 같지만. 이미 입까지 댄 음식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일단 어쩔 수 없이 겉옷을 벗어 의자에 걸어두었다.
가끔 언제, 침대 위에서? 혀 꼬인 소리에 짖궂은 말로 대꾸해주곤 늘어지는 몸을 품에 끌어안았다. 힘 빠진 팔을 받쳐 내 허리를 두르게 하고, 상체는 편히 기댈 수 있게 했다. 내게 안겨 서늘하다 말하는 그는 살짝만 만져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따끈따끈했다. 딱 아기 같다니까. 갓난아기.
"나는 몸이 좀 찬 편이니까. 달링은 따뜻해서 좋아."
꼬옥 안고 있어야지. 그렇게 말하며 그가 답답하지 않을 정도로만 힘주어 안고 긴 머리칼을 쓰다듬어내렸다. 그런 내 귓가로 그의 울적한 중얼거림이 들려온다. 약 먹고 싶지 않은데 먹지 않으면 못 버티겠다고, 목 매어버릴 것 같다고. 그 곳은 싫다고. 안쓰러운 칭얼거림을 나는 그저 토닥이는 걸로밖에 달랠 방법이 없었다.
"괜찮아.. 달링이 못 안아도 내가 안아주면 되니까. 달링은 가만히 있어도 돼. 그냥 달링 자신만 지키고 있어도 괜찮으니까."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줘. 그 말은 목 너머로 삼키고 조금 더 토닥거렸다. 애정이 듬뿍 담기다 못 해 절절하게 넘치는 손길로 보듬었다. 지금 이 때만큼은 편히 있을 수 있게.
아무렇게나 생각하라는 의미였다. 애초에 그 말자체는 욕할려고한거지 큰 의미는 없었다. 아예 사각을 노리면서 동시에, 주무기를 제한한다라. 아쉽지만 늦었다. 언제 생겼을지에 대해선 헤일리는 모르는 일이겠지만, 미리 준비되었다는 가느다란 촉수가 내 다리춤에 걸려있었고 거대한 돔을 닫히기도전에 탈출하여 그대로 다리를 타고 공중에 이른다.
"미안하지만, 아즈라드에게 사각(四角)도 사각(斜角)도 사각(死角)도 존재할거라 생각했다면 오산이야. 오히려 충고하자면, 나란사람을 노리는게 훨씬 틈새가 많을걸."
물론 아즈라드를 떨쳐내는게 우선이겠지만 그럴려면 다시 딜레마로 이어질터이다. 나를 쓰러뜨리려면 아즈라드를 떨쳐내야하고 아즈라드를 떨쳐내려면 나를 쓰러뜨려야만 하니까. 그러니까 순전히 해볼테면 해보라는 도발 그자체의 말로 신경을 긁어보는 것이다.
"방금공격은 좋았어. 하지만 제공권은 아직 너한테 주지않았는걸."
공중으로 올라선 아즈라드가 그 몸의 이질적인 촉수를 활용하여 하강하는 나의 몸을 다시 위로 추진시킴과 동시에, 방향을 뒤틀어 위에있던 헤일리와 마주치고는 그대로 철선의 틈새를 내질러 톱날과도 같은 낫의 날 사이를 비집어 마치 소드브레이커를 쓴마냥 저지하여 옆으로 틀어버려고했다.
여기서부턴 팔씨름같은 힘싸움이다. 공중이지만.
한편, 아즈라드는 돔의 근처에서 나를 받아내려는듯 낙법으로 내려가 쿠션의 역할을 하려는듯 대기하려한다.
느와르 유현인 체르니는 본편과같은 결정적인 사건은 없지만 사춘기 늦게와서 삐뚤어진 애가 된거고, 아무래도 트라이어드인 은협방의 훈련을 받아서 더러운 일밖에 못하니 잔인해질수밖에없는 뭐 그런느낌이야. 본편에서 성격나쁨이랑 이익주의적 성격은 그대로 냅두고 연기하는건 약하게. 말은 더 험하게. 광신적 요소는 아예 그런 사건이 일어날수없으므로 배제. 정도라서 갭이 좀 심하긴하네.
짖궂은 말에 침대 위에서라도 어른 대접이면 좋지 안으려나.. 라고 말하면서 끌어안기고 안아보려고 합니다.
"따뜻한 게 좋아서 다행이다.." 기대어안긴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쓰다듬는 것도 가만히 자신만 지키고 있어도 된다는 말에는 우물거리면서
"폭발하는 걸 보면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가도 답답해지니까.." "그가 죽는다면 나는 전리품일 뿐이겠지.. 완벽히 무너뜨리면 해방될까.." 언젠가는 같이 바깥도 돌아다니고.. 그랬으면 좋겠다.. 라고 중얼거립니다. 그런 날이 오기는 올까. 기약업지 않았으면 돟겠다라고 생각합니다.
비류 월야 일카이. 통칭 월야. (극히 몇명만 비류라는 이름을 안다) 옷차림은 이미지 참고.
규모가 크지는 않으나 다른 패밀리와는 확연히 반대되는 성격을 띄는 비폭력,평화주의를 내세우는 암브리시오 패밀리의 2인자. 현 보스(혜연)이 곁에 두는 유일한 보스의 호위라고 알려져있다. 평화적/비폭력주의를 내세우는 온화한 암브리시오 패밀리의 어두운 일면에서 움직이는 유일한 킬러. 붉은색과 검은색의 도검 두자루를 사용하는 드물기 짝이 없는 소드맨이며 올블랙 투버튼 정장과 검은색 장갑을 끼고 있다.보스의 쌍둥이 동생. 위험한 상황에 대비하여 혜연과 비슷하게 행동하고 말하는걸 훈련받았다. (혜연의 카게무샤) 암브리시오 패밀리 내부의 오래 활동해왔던 이들만이 그 정체를 알고 있다. 대외적으로 얼굴을 비춰야할때엔 가면을 쓰고 있고 월야라고 불리며 입을 열지 않는다.
여러모로 이 로라시아는 마가 낀 땅이 맞다는 생각이 드는 이아나였다. 어떻게 사람들이 나쁜놈이든 착한놈이든 다 착잡하긴 또 마찬가지일까 싶었다. 왜이렇게 사는게 다 힘든 것인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젓가락을 대는 순간 갑자기 식욕이 발휘되어 와구와구까지는 아니라도 게걸스럽게 먹는것이 아닌 선에서 놀랍게 해치워버린다.
"어머나... 듣기 좋은걸요? 후후..."
그러다가 젓가락이 거의 멈춘 프란츠를 보고는 직원에게 부탁해서 찬물을 달라고 청한다.
"이런 날씨는 아이스크림 파는 사람들의 대목이겟네요...아까 보니까 마트에서 이때다 하면서 50% 세일하는 전단지 붙여놓던데. 역시 온난화는 무섭네요... 어떻게 이놈의 여름은 년도가 바뀔수록 더워지니..."
그렇게 말하며 직원이 준 냉수를 들이키는 모습이 순간 여자라기보단 여장부로 느껴지는 포스를 내뿜었지만 그녀는 눈만 깜박거렸다.
아쉽게도 덩어리를 잡는 건 실패했다. 하지만 딱히 실패해도 상관 없는 부분이었으니 넘기고. 나는 허공에서 춤추듯 움직이는 황녀를 보았다.
"뭐, 딱히 성공할 필요는 없었어."
어디까지나 시도였을 뿐이니. 중간중간 오가는 말들은 아마 신경전이겠지만 애석하게도 내 머리는 이미 차가워진지 오래였다.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가 우선순위였다.
"글쎄다. 어떠려나."
아마 이번 합이 마지막이 되겠지.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행동으로 옮겼다. 공중에서 철선으로 내 낫을 비틀어 옆으로 틀어버리려는 시도를 하자 나는 순순히 철선이 낫 사이로 끼어들게 냅뒀다. 그리고 딱 걸린 순간 낫의 형태를 풀어 철선과 황녀의 팔을 통째로 붙들어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동시에-
"그거 아나? 체급은 내가 한급 위라는 거."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몸을 비틀며 두 다리로 황녀의 옆구리를 노렸다. 어느샌가 그림자 아머가 둘러진 다리는 그대로 맞는다면 꽤 아프리라.
시선을 맞추지 않는 걸 보니 저 토론은 진심이 아닌게 분명하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생각이니 무시해도 좋다! 베시시 웃다가 이모님께 "이모오오! 나머지 다 포장 가능하죠! "라고 여쭤보았다. 더이상 접시가 오지 않았다. 조만간 커다란 봉투가 올 예정이다!
"으응 고마어! 비류우라 저장하께! "
진짜로 [비류우]라 저장했다. 뭔가 늘여적고 싶어서 그리 저장했다. 엄청 먹고 싶을 때 연락하라 했으니 오지는 문자와 함께 연락해주면 되겠다. 먼저 가는 후배님께 "바이바~~~~~~~~이~~~~~" 하고 인사한 뒤 포장된 꼬치를 들고 이용권을 건네드렸다. 쪼아 이렇게 오늘 꼬치는 클리어! 나머진 라야한테 주자! 이 안에 와사비가 한개쯤은 있겠지! 아마도 말이야???? 하 하 하!
안이 더운터라 잘 먹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예상이 빗나갔나 보다. 생각보다 빠르게 음식을 먹는 그녀를 보며 순간 멍하니 앉아있었다. 돌아가면 대체 뭘 해야할까. 다음에는 무슨 의뢰가 들어오려나. 같은 생각들이 머리 속을 스쳐지나갔다. 더운 공기가 주변을 감싸다보니 저절로 나른해진게 틀림없었다.
" ..아. "
누구나 완벽할 수는 없으니까.. 거기까지 아무 의미없는 생각이 도달했을때, 마침 냉수가 앞으로 들이밀어졌다. 그는 미처 격식을 차릴 생각도 하지않고 잔을 들어 그대로 입 안에 부어버렸다. 뭐, 중국집에서 격식을 차리는 쪽이 더 이상해 보이겠지.
" 그, 그렇겠죠. 온난화라.. 확실히 작년보다는 좀 더 더워진 것 같기도 하고. "
다행히 그 와중에도 그녀의 말은 제대로 들었는지, 정신을 차리고는 곧바로 대답했다. 그러나 말을 조금 더듬는 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이래서야 일 처리를 빠릿빠릿하게 하는건 글러먹은 것 같은데. 라고 스스로 자책한건 덤이다.
" 휴. "
고개를 흔들며 그는 생각을 떨쳐냈다. 중국집에 들어온게 미스였던걸까? 그러면서 눈을 깜빡이는 그녀를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심드렁하게 그러한 헤일리의 태도에 응대하고는 역시나 끓는점 높은만큼 식는점도 낮은 인물이네 하고 속으로 끌끌거린다. 지난번에도 그랬고.
"식는점도 낮아서 재미없네. 뭐 마음에 들지만."
적당히 놀려서 약 확올리는데 내리는점이 낮아서 푹꺼지면 그런 사람을 놀리는것도 다양하게 생각할수는 있었다.
"그거 알아? 힘겨루기는 함정이고, 네 능력은 형태가 자유자재라면, 내 능력은 형태가 일정하지않거든. 발밑을 두려워해. 네 공격은 맞아줄테니까."
애초에 힘겨루기에서 철선을걸고는 바로 내버리려했지만 그것은 쉽지않았다. 그렇다면 공격을 받아채고 그대로 같이 붙들어서-.
"커헉...큭...!"
마치 쇳덩이가 옆구리 뼈를 짓눌러 으깨버리는듯한 고통이 온몸에 전율하듯 들어오고 시야가 흔들렸다, 그런 혼미한 상황에서 나는 옆구리를 짓누르는 그녀의 다리에 시선을 향하고는 공중의 무게중심점을 머리속으로 계산해내고 그대로 그림자가 잡히지않는 반대팔방향으로 몸을 뒤집어, 팔을 뻗고 다리를 옭아매려고 시도한다.
아래에는 거대한 입이 있었다. 그 안에서는 징그러운 벌레처럼 생긴 액체가 진열을 이루고 덤불을 이루어 말그대로 둥지와도 같은 형상이었다. 빠진자에게는 트라우마가 상당할것이리라. 그때 비류하고의 첫만남에서도, 이걸로 무승부를 냈으니까.
//계속 머리가 멍해진다...오늘 왜이러지.... 10분동안 답레쓸려고 폰잡고 멍때렸어....//
"아무리 생각해도 여름은 사람을 잡아먹기 위해 독니를 번뜩이는 계절이라고 하는 것 외엔 아무 생각도 안들어요..."
슬쩍 의자에 늘어지는 폼이 퍽 나른하고 기운이 없어보이는 동시에 어딘가 만족스러운 기분을 느끼게도 만든다. 그녀의 남자가 무리하는게 아니라면 꼭 하루에 한 끼 정도는 같이 식사를 하는 이유가 이렇게 식사 뒤의 포만감이 몰려오는 그녀의 모습때문이라는 것을 그녀는 모른다. 선풍기가 달달거리면서 바람을 뿜고 찬 물을 마셔도 영 개운하지 않은 더위에 그녀가 땀이 베이는 이마를 티슈로 훔치며 잠시 멍해졌다.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요. 아니면 스무디...! 여기요! 계산 부탁드려요!"
별안간 그녀는 번개같이 눈을 번뜩이며 말한다. 이렇게 더운데 여기에서 매운 것 까지 먹고 늘어지기엔 너무 더웟기에 그녀는 곧바로 남편의 카드를 꺼내며-이따금씩 식욕이 돋을땐 남의 3배는 먹기에 두그릇이나 나온다고 의심받진 않았다-바로 일어선다.
그녀가 의자 등받이에 푹하고 늘어지자 그도 비슷하게 뒤로 밀려난다. 여름은 사람을 잡아먹으려 하는 계절이라. 하나부터 열까지 흠잡을 데 없는 말이다. 그는 나른한 말투로 입을 열어 말하려 했다.
" 정말. "
그 말이 맞아요. 라고 덧붙이고 싶었겠지만, 선풍기가 돌아가는데도 왠지 모르게 더욱 더워지는 중국집 안의 공기는, 야속하게도 그가 말하는 것을 허락해주지 않았다. 입을 열려고 하면 덥디 더운 공기가 훅하고 빨려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으니. 그녀가 재빨리 그를 데리고 나간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 꼭 그렇게 해요.. "
아이스크림. 스무디. 으음.. 상상하니 꽤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그는 벌떡 일어나 옷을 챙긴뒤, 거의 끌려나가다시피 하며 중국집의 문을 나섰다.
그렇게 일어서자마자 윗공기가 더 덥다는 과학적인 이유로 얼굴에 몰려온 뜨거운 공기에 숨이 막히는 기분이였지만 그녀는 너무 더워서 거기에 굴하지 않고 일어서서 재빨리 계산을 끝내고 물먹은 솜같은 프란츠의 소매를 살짝 잡고 나온다.
"빨리 가을왓으면..."
그렇게 해서 근처에 있는 모 대형프렌차이즈 카페-젤라토 아이스크림 18종을 같이 취급하는-가 보이자 곧장 그와 같이 들어가 에어컨 바람을 맞자 햇빛쐐는 해바라기같이 상쾌한 미소를 지었다.
"으핫, 살것 같네요~ 아. 그러면 슬슬 고를까요?"
라고 할 때 별안간 그녀의 핸드폰이 울리자 그녀는 아무 생각 없이 전화를 받았다가 얼굴이 새하얘졌다.
"네, 아... 네. 당연하죠. 잠깐 그게 무슨소리에요? ...흥분하지 말고 말..."
그녀의 남자인듯, 수화기 너머로도 욕설이 같이 들리는 남자목소리에 카페 손님들 몇몇의 눈이 찡그려지며 이아나와프란츠에게 시선이 모이기 시작하자 이아나는 통화를 끊지 못 하면서도 살짝 애처롭게 프란츠를 바라보길 잠시, 고개를 까닥이며 핸드폰을 가리킨 이아나는 미안하다는듯이 손을 흔들며 뭐 하나 시키지도 못 하고 카페를 빠져나왔다.
두 입술이 겹쳐지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담백하고도 깊은 입맞춤이 그 정적 속을 오갔다. 그에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 페이스를 조절해가며 느긋한 키스를 나눈 뒤 천천히 떨어졌다. 아쉬움이 가느다란 은빛 실이 되어 두 입술 사이에 걸쳐진다. 그걸 혀끝으로 스윽 훑어 거두곤 그가 다시 편히 기대도록 보듬어 안았다.
"언제든지 와. 내 옆은 항상 달링을 위한 둥지니까."
가두는 새장이 아닌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둥지니까. 그에게만 들리도록 속삭이곤 다시 천천히 그를 쓰다듬었다.
"I just wanted to tug your hair behind your ears
저는 단지 당신의 귀 뒤에 있는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보고 싶었을 뿐이에요
Hold you in my arms
제 팔로 당신을 껴안았고
I'm always here
저는 언제나 여기 있어요..."
그를 쓰다듬으며, 낮은 목소리로 잔잔하게 노래가사를 흥얼거렸다. 사랑하는 그 마음을 목소리에 실어서. 잔잔하게, 나긋하게.
무대 위에서 허리를 숙여 관중을 향해 인사하는 그의 모습이 조명에 비추었다. 대부분의 피아니스트가 그렇듯이 그도 정장과 흰 장갑이라는 형식적인 복장을 갖추고 있었다. 인사를 마치고 난 뒤,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무대 밖으로 내려오는 그의 표정은 언제나와 같이 밝았다.
투박한 색의 복도를 지나 비상구 문을 열면, 저 멀리 계단 위에 서있던 그녀가 천천히 걸어내려왔다. 그는 그녀를 맞이하려는 듯이 가만히 한 팔을 내밀었다. 날씨에 맞지 않는 두꺼운 패딩을 입은 그녀는 그 손목을 부여잡고 다른 손을 뻗어 가볍게 그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 다음 소리를 최대한 죽인 목소리를 내어, 정확한 발음으로 그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 오늘도 수고 많으셨어요. 천주님께서도 분명히 기뻐하시겠죠. "
그녀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자신의 행동을 숨기었다. 어느새 얼굴에는 깊은 그림자가 드리웠지만, 전혀 신경쓰지 않고 패딩 주머니에서 작은 권총을 꺼내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리고는 밝은 갈색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계단 아래로 걸어가다, 도중에 고개를 돌려 다시 한마디를 남겼다.
" 이제 돌아갈 시간이에요. 프란츠. "
심히 어둡기에 오히려 편안한 그곳으로. 그 말을 끝으로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손에 쥐어진 권총을 정장 안 주머니에 넣으며 싱긋 웃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