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용의 우는 것이 그 대지를 떨게 할 따름이었도다. ◆SFYOFnBq1A
(4769064E+5)
2018-05-14 (모두 수고..) 21:26:49
상황극판 규칙 ☞ 상황극판은 익명제입니다. 본인이나 타인의 익명성을 훼손하는 행위는 삼가주세요. 하지만, 자신의 위치(스레주/레스주) 등을 밝혀야 할 상황(잡담스레 등에서 자신을 향한 저격/비난성 레스에 대응할 시 등)에서는 망설이지 말고 이야기해도 좋습니다. ☞ 서로를 존중하고, 자신이 먼저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집시다. 모니터 너머의 이용자도 당신처럼 '즐겁고 싶기에' 상황극판을 찾았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모두 두루두루 친하게, 잘 지냅시다. 말도 예쁘게해요, 우리 잘생쁜 참치들☆ :> ☞ 상황극판은 성적인/고어스러운 장면에 대해 지나치게 노골적인 묘사를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약물과 범죄를 미화하는 설정 또한 삼가해주세요. 각 스레마다 이를 위반하지 않는 수위 관련 규범을 정하고 명시할 것을 권장합니다. ☞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행동이 결코 아닙니다. 바람직한 상판을 가꾸기 위해서라도 서로에게 관심을 가져주세요. 다만 잡담스레에서의 저격이나, 다른 스레에서의 비난성 및 저격성 레스는 삼갑시다. 비난/비꼬기와 비판/지적은 다릅니다. ☞ 상황극판의 각 스레는 독립되어 있습니다. 특정 스레에서의 인연과 이야기는 해당 스레 내에서만 즐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잡담스레에서 타 스레를 언급하는 일도 삼가도록 합시다. 또한 각 스레마다 규칙 및 특징이 다르기 마련입니다. 해당 스레의 이용자들에게 문의해주시고, 그 규범에 따라 행동해주세요. ☞타 스레와의 교류 및 타 스레 인원의 난입 허용 여부(이건 허용한다면 0레스에 어디까지 괜찮은지 명시해둡시다)와, 스레에 작성된 어그로성 및 저격성 레스의 삭제 여부, 분쟁 조절 스레의 이용 여부에 대한 결정권은 각 스레의 스레주에게 있습니다.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서 "분쟁 조절 스레"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 처음 오신분은 어려워말고 잡담 주제글에 도움을 청해주세요! 각양각색의 스레들을 가볍게 둘러보는 것도 적응에 효과적입니다.
공문이 내려왔다.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시험적으로 배급해볼 생각이니. 신청서를 작성하라는 내용이었다.
주의! 데플은 없지만 부상 등으로 구를 수는 있습니다. 어두운 분위기도 존재하고요. 개인설정, 개인 이벤트, 환영합니다. 완전 초보라 미숙한 스레주입니다.. 잘 봐주세요..(덜덜덜) 모두들 서로를 배려하고 활발한 어장생활! 캡이 응원합니다!
전투 시스템에서 다이스를 사용합니다!! 라고 공지하지 않는다면 그냥 공격하시면 됩니다. 다만 공지할 경우에는 명중빗나감 다이스를 굴립니다. 다른 다이스가 필요하신 분은 자신이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생각해보라... 저말은 말해주기 싫다는것을 돌려 말한거다. “그래. 그럼 열심히 훈련해 은.” 이라고 말하곤 내 훈련을 하러 조금 떨어진다.
내 근력 훈련. 무게추를 계속 들고 스쿼트를 한다. 손가락 끝으로 아령을 잡아서 손가락이 힘들다. 20번씩 4번을 하니 온몸이 후들거리려 한다. “18...19...20...” 5번... 성공. 하고 무게추를 완전히 놔버린다. 힘이차서 숨이 거칠게 나온다. “후우...”
물을 마시고 있는데 저쪽은 아직도 모래덩이를 뭉치고 있다. 뭔가 반복적으로 하고 있는거 같은데. 하고 있는게 있나...
♬ 김리타 (은)는 또래를 만나 매우 기뻐하는 눈치다! ♬ 이얏호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역시 또래로 보인다 싶었더니 동갑이었다! 하지만 3학년이니 볼 일은 없을거다. 잘하면 팀전으로 붙긴 하겠지만 어지간해선 학년끼리 붙을텐데. 꼬꼬마들이랑 선배님은 붙을 일이 많지 않답니다! 하지만 어쨌든간에 인상으로 봐선 상당히 쎄보인다. 후배 개념 없지 않냐는 말에 두말않고 고갤 끄덕이다 말았다. 그치? 먼저 들어오냐 늦게 들어오냐의 차이일 뿐 다 고만고만하지. 재수생도 있잖아 요새 신입생들은. 우물거리다 귀엽다는 말에 잠시 목이 메였다. 아 헛기침할뻔했네!
♬ 넌 진심으로 쟤가 귀엽다는 말을 믿어? ♬ 란 생각을 할 시간에 볶음밥이나 한 숟갈 더 떠먹도록하자. 생각할 시간이 아깝다!!!!! 바보김리타!!!!
"머, 머라하는고야 징쨔!!!!!!! "
밥이나 머거! 라 하는 순간 내 눈에 뵈는 건 비류의 접시였다. 언제 다 먹었는지 텅텅 비었다. 너무 빠르잖아......! 역시 내가 늦게 온 게 맞았다. 너무 맞출 필요는 없지만 너무 지체하기도 뭐하다. 무엇보다 빨리 먹고 연습하러 갈거란말야! 부루퉁해져선 한 숟갈 더 떠먹고 질문했다.
"어디서 와써? 는 실례야? 혹시 실례면 말 안하께. "
발음은 포기했으니 적당히 알아듣길 바랄 뿐이다. 아, 그보다 상대에 질문하기 전엔 나부터 밝히는 게 예의겠지. "난 디트리히! " 라고 작게 속삭이곤 다시 한 숟갈 펐다. 베리아트 수도는 디트리히니까 도시 이름만으로도 대충 설명이 될거다. 그나저나 말하면서 3분의 1은 비운 기분이다. 참 먹는 속도 빠르다.
역시 또래로 보인다 싶었더니 동갑이었다! 하지만 3학년이니 볼 일은 없을거다. 잘하면 팀전으로 붙긴 하겠지만 어지간해선 학년끼리 붙을텐데. 꼬꼬마들이랑 선배님은 붙을 일이 많지 않답니다! 하지만 어쨌든간에 인상으로 봐선 상당히 쎄보인다. 후배 개념 없지 않냐는 말에 두말않고 고갤 끄덕이다 말았다. 그치? 먼저 들어오냐 늦게 들어오냐의 차이일 뿐 다 고만고만하지. 재수생도 있잖아 요새 신입생들은. 우물거리다 귀엽다는 말에 잠시 목이 메였다. 아 헛기침할뻔했네!
♬ 넌 진심으로 쟤가 귀엽다는 말을 믿어? ♬ 란 생각을 할 시간에 볶음밥이나 한 숟갈 더 떠먹도록하자. 생각할 시간이 아깝다!!!!! 바보김리타!!!!
"머, 머라하는고야 징쨔!!!!!!!!!! "
밥이나 머거!!!!!! 라 외치려는 순간 내 눈에 뵈인 건 비류의 텅 빈 접시였다. 언제 다 먹었는지 텅텅 비었다. 너무 빠르잖아 이건......! 역시 내가 늦게 온 게 맞았다. 어쩌면 내가 볶음밥을 받아오는 사이 거의 다 비웠을지도 모른다! 너무 맞출 필요는 없지만 너무 지체하기도 뭐하다. 무엇보다 빨리 먹고 연습하러 갈거란말야! 그런 의미에서 적당한 속도로 먹기로 했다.
"어디서 와써? 는 실례야? 실례면 말 안하께. 그냥 궁그매서 구래. "
부루퉁해져선 한쪽 볼을 부풀린 채 한 숟갈 더 떠먹고 질문했다. 발음은 포기했으니 적당히 알아듣길 바랄 뿐이다. 아, 그보다 상대에 질문하기 전엔 나부터 밝히는 게 예의겠지. "난 디트리히! " 라고 작게 속삭이곤 다시 한 숟갈 펐다. 베리아트 수도는 디트리히니까 도시 이름만으로도 대충 설명이 될거다. 그나저나 말하면서 3분의 1은 비운 기분이다. 참 먹는 속도 빠르다.
하녀를 자칭한 그녀에게 신경쓰이는 것이 있다면 그런 이야기일터였다. 사용인으로서의 움직임이 몸이나 말에 베여있다는건 하루이틀로 그러한 일에 종사했다는 말은 아닐것이다. 다만 보기 흉한 녀석을 동반하고 있어서 커뮤니케이션을 나눈다면 조금은 상황이 나쁘다면 나빴다 그렇기에 말해둘것이 있다.
"제 능력인 이 녀석이 조금 흉하게 생겨서 되도록이면 사람을 안만나길 원했습니다만, 그쪽은 딱히 불쾌하진않은지 물어보겠습니다."
흉하게 생겼다는 말에 기이한 울음소리를 내려는 것을 보채고는 일단 상대에게 수련장에서 실례좀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는것이다.
시가지에서 홀로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 이미 가로등이 환하게 켜진 거리엔 지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그나마 있는 사람도 다들 한껏 느긋했다.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는 내 손에는 시가지의 유명 제과점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 신학기 기념으로 나온 신상품인데 마침 딱 하나 남은 걸 운 좋게 살 수 있어서, 같이 먹어야지~ 하며 즐겁게 돌아오는 길이었다.
"어차피 한번 보기도 해야 하니까~ 아, 미리 연락 해둘까."
생각난 김에 메세지를 보내두려 가디건 주머니에서 디바이스를 꺼내던 순간이었다. 디바이스를 꺼낼 때 일순 바람이 불더니 같이 들어있던 손수건을 낚아채어 공중으로 날려버리는게 아닌가.
"아, 내 손수건!"
디바이스를 다시 주머니에 꽂아넣으며 헐레벌떡 손수건을 쫓아갔다. 이럴 때 바람은 어찌나 얄미운지. 폴짝 뛰면 더 높이 올라가고, 낚아채려 하면 종이 한장 차이로 손아귀를 빠져나가는게 아주 열받더라. 얼마간 손수건 추격을 하던 끝에 겨우 뛰어서 잡았는데, 내려설 때가 문제였다.
"잡았- 꺅!"
하필이면 오른다리로 내려설게 뭐람. 구두가 땅에 닿자마자 찌릿하게 느껴지는 통증 때문에 몸은 바로서지 못 하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래, 길 한복판에서 꼴사납게 넘어진 것이다. 무슨 만화도 아니고.
"아야야..."
지면과 부딪힌 충격으로 얼얼한 손바닥이며 뺨을 슬슬 문지르며 주섬주섬 일어나 앉았다. 그대로 잠시동안 힘이 없어 일어나지 못 하고 있었다. 참, 재수도 없지.
그가 팀 건물로 들어선것은 대략 점심 즈음 이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온 그의 모습은 활기차보였다. 날씨가 계절과는 이상하게 달라서 꽤 더웠음에도 그는 여전히 긴팔 차림 이었지만, 그건 아무 상관 없다는 듯이 들어와 자리에 걸터앉았다.
" 어라.. 계셨었군요. "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역시 팀 건물에 들어와 있는 라야를 발견했다. 그는 그녀가 시야에 들어오자 반가운 듯이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 고개와 함께 몸을 숙였다가 일으키는, 어쩌면 너무 예의바르다 할수도 있을 인사였다. 물론 그는 자신의 행동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 이제 점심인데, 밥은 드셨나요? "
그는 웃으면서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시간은 언뜻 보아도 정오. 슬슬 점심을 먹을 때일텐데. 아, 프란츠 자신은 이미 빵으로 배를 채우고 왔다. 아마도 그것 덕분에 더 기분이 좋아보이는 것도 같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문득 정신을 차린 루이는 제 앞에 놓인 붉은 잉크로 글씨가 적혀져있는 사전과,자신이 힘을 너무 준 탓에 그만 부러져버린 깃펜을 촛점 없이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이런,너무 오버했다.왜 나는 그 대목에서 이성이 나가서는,사전에 이런 글귀를 써질러둔걸까.한가지 다행인건 그 책이 이 아카데미의 것이 아닌,루이가 개인 소유하는 책이었다는 것이다.
이대로는 안되겠어.슬슬 한계가 올것만 같아.조용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독서를 할 심산으로,도서실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던 중 어깨에 올라앉은 레이를 뒤늦게야 눈치채었다.
"...하아..레이,기다려주시죠."
평소 같았으면 어디든지 늘 레이와 동행했을 루이였건만.오늘은 평소와는 다르게 조금은 무감정해진듯한 말투에 레이도 오늘은 주인이 심상치않음을 느꼈는지 제 횃대로 올라가서는 깃털 정돈에 한참 열을 기울이고 있었다.그 모습을 보며 조금은 안심했다.너는 네 주인이 미쳐도,꿋꿋이 네 체면을 지키겠구나.다행이야.정말로.
꽤나 예민해진 신경으로 도서관으로 내려갔다.다행히도 시간이 시간인지라 보는 사람들이 몇 없어서 망정이지,만약 그를 보았다면 오늘 정말로 안 좋은 일이 있었냐며 귀찮게 물어올법한 분위기와 표정이었다.정말로 안 좋았던 일이 있는것은 아니었다. ..그저 제 본성을 완벽히 컨트롤하지 못한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와 자책감일 뿐.
"..."
조용한 복도에 부츠 굽이 맞닿는 소리만이 울려퍼지고,이내 도서관의 문을 천천히 열었다.이 시간까지 도서관에 남아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했으니,여기서는 조금 마음을 놓아도 되겠지.본성을 드러내지 않게 주의하면서.본성을 드러내는 순간 자신은 끝장이라고 자기 자신에게 세뇌하듯이 머릿속으로 되풀이했다.정말 끝장은 아니지만,지금까지 유지했던 선한 이미지가 너무나도 쉽게 검은빛으로 물들어 버릴 것이 염려스러웠던게지. 아무튼,루이는 천천히 책을 고르기 시작했다.어떤 책이 좋을까.
거대한 바다요새를 연상시키는 그 국가의 이름의 뜻은 불멸이였다. 암브리시오 국가는 별자리를 믿는 종교가 발달해있었고 또한 그 별자리를 읽고 미래를 예언하는 로머들이 인식장해기기가 있는 탑에 한명씩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예언이 있었고. 예언자가 있었으며. 그들은 왕보다는 아래였으나 왕보다 위에 놓인 이들이였다. 19년 전의 그날의 예언에 왕의 자식들이 서로 다른 운명으로 갈라졌다.
.
머리 위에서부터 뒤집어써서 눈가를 가리고 머리카락마저 가리는 뿔달린 늑대를 연상시키는 가면을 잡아 당겨올리며 후끈하게 달아오른 열기가 섞인 숨을 뱉는다. 입안으로 가차없이 손가락을 쑤셔넣으며 복도 창문을 짚은 뒤 허리를 꺾었다. 헛구역질. 쿨럭거리는 기침과 피와 함께 무언가가 섞여서 뱉어냈다.
암전. 다시, 구역질. 뱉어냄. 세네번 정도 반복하자 그제야 울렁거리고 메스꺼우며 오한까지 밀려드는 느낌이 사라진다. 입가를 문질러 닦는 손에는 온갖 더럽기 그지 없는 것이 잔뜩 묻어 있었다. 하아. 하. 기침을 하며 피섞인 침을 창문 밖으로 뱉어내다가 걸음을 멈췄다.
"이번에는 또 누가 나를 위협했니?" "ㅡ밤공기가 찹니다. 왕녀님. 옥체를 보존하소서."
해양에서 밀려들어오는 바닷바람에 의해 흐트러지는 투명한 푸른빛이 도는 새하얀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트리고 장밋빛이 도는 홍색의 잠옷과 새하얀 장미 자수가 놓인 외투를 걸친 채 바라보는 은색 눈동자에 걸음을 멈춰 예를 갖춘 뒤 벗고 있던 가면을 다시 쓰려했다.
"류야. 비류야." "벽에도 귀가 있으며 문에도 귀가 있고 바람은 쉬이 소문을 옮깁니다. 허나 저는 당신을 위한 자. 가장 밝은 달에 기댄 어둠을 걷는 자. 부디 하명하소서." "대체,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거야? 우리가 왜.. 나는 노을색 눈동자가 아니잖아. 그런데 어째서..?" "왕녀님. 바닥이 찹니다." "나는 동생을 잃고 싶지 않아. 류야. 위험하잖아.. 죽음을 가까이하고 죽음을 쫒아다니는 일이 얼마나..."
언니. 나 피가 좀 많이 묻었어. 안돼.
- 곧 태어나는 두 아이는 쌍둥이.
피하지마.
- 그중 일카이 국가를 멸망시킬 해악의 별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가 있으니 그 아이를 죽이시고.
"나는 괜찮아. 언니."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우는 모습에 속절없이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양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조심스레 손을 뻗는다.
"별자리가 다 무슨 소용이니. 우리 자매를 갈라놓은 건 그 예언이잖아." "그런 소리 하지마. 언니. 응? 누가 듣겠어. 나는 괜찮으니까."
- 은안을 지니고 태어난 여아는 국가를 부흥시키는 옳은 별이니 그 아이를 계승자로 우대하소서.
"나의 반쪽, 나의 언니. 나의 왕. 부탁이야. 피는 내가 묻힐테니 언니는 그냥."
행여 그 새하얀 머리카락에 피가 묻을까 전전긍긍하며 조심스레 앞머리를 매만지는 손끝이 떨려왔다. 피맛이 느껴지는 와중에, 바라보는 은색 눈에 비스듬히 미소를 지었다.
"웃어줘. 언니. 그냥 그거면 돼. 언니는 내 빛이고 종교이며 신앙이며 신이야. 웃어줘. 응? 언니."
노을색 눈동자와 은색의 눈동자가 서로 마주했다. 행여 더럽힐까 노심초사하며 뻗은 손이 허공을 맴돌며 긴 소매 아래로 늘어진 차가운 금속이 다른쪽 소매 아래로 연결되어있었다.
"그거면 돼. 정말이야."
14년 전의 예언으로 열넷의 쌍둥이들은 엇갈린 운명을 걷고 있었다. 곧 다가올 무언가를 알지 못한 채.
로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질문이 들어왔을 때 내가 대답 해 줄 수 있는 것은 단연코 하나. 바로 체력이다. 물론 당장은 모르겠지만, 체력 단련을 평소에 해 두면 미래의 위급상황에 반드시 보상이 돌아온다는 일종의 보험 같은거라고 생각해서 매일 빼먹지 않고 꾸준히 체력단련을 한다.
곧 점심 타임이라 팀 훈련장의 문을 활짝 열어두고 환기를 시켜 두는동안, 미리 싸온 점심 도시락을 꺼낸다. 오늘 점심은 스테이크. 보온 도시락이라 처음 그대로의 따뜻함이 유지되어있어 굉장히 만족스럽다.
자신보다 어린 상급생,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동급생등등. 그렇다보니 나이개념이나 학년개념을 비류는 일찌감치 버렸다. 그대신 어디에서 헛기침을 하는 타이밍이 나온걸까 하고 비류는 생각하며 손을 뻗어 물잔에 물을 따르고 리타의 앞에 놓아주는 행동이 여유롭고 느긋했다.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여서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표정을 바라보며 비류가 입을 연다.
"같은 나이에 4학년이라, 실력이 좋은가 보군. 그렇다면 이번 실습때에도 마주했을 확률이 크겠네. 그리고 귀여운건 귀엽다고 하는 것또한 당연한 것이다."
느긋하고 여유로운 태도와 같은 목소리. 하지만 그 목소리와 태도와는 정반대인 무던하고 담백한 표정으로 그녀는 리타의 말에 하나씩 대답하듯 말을 하면서 어디에서 왔냐는 말에 잠시 슬쩍 눈썹을 여유롭게 치켜보인다. 잠시 갈등했다. 어디에서 왔다고 하지. 그 생각은 이윽고 무척이나 짧고 간결하게 결론이 내어졌기에 비류는 자신의 턱을 문지르며 입을 연다.
"은제국."
거짓말이다. 무던하고 담백한 표정으로 리타가 고향을 소개하는 것에 그런가? 하며 여유롭게 대답을 해주고는 잠시 고개를 느긋하게 끄덕였다.
저번 실습이 아직도 꿈에 나온다. 살고 싶어하지만 죽어가는 개와 눈 앞에 놓인 검 한 자루가 아직도 눈에 새겨져서는 땀에 젖어 일어나는 것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을 정도로 자기 혐오가 목을 옥죄어 오고 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 있는 것을 죽였다. 꽃을 꺾는 것하고는 완전히 다른 무언가. 손에 끈덕지게 달라붙던 혈향과 흙의 냄새가 아직도 지워지지 않아서 책을 잡으면 표지에 그대로, 피가 묻어나오는 듯 했다.
그럼에도 책을 읽는 것을 그만 둘 수는 없었다.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 개의 모습이 겹쳐보여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구역질이 나고는 했다. 혼자 있으면서도 그나마 머리를 비울 수 있는 수단은 오직 하나였다.
시간이 늦어서인지 도서관에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오늘도 어두운 곳에서 읽으면 그저 사상이 어두워 질 뿐이다.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그나마 빛이 비추는 곳으로 고개를 땅에 내려박고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면 안된다. 평소에도, 지금도.
“…오늘은 생각없이 읽을 수 있는걸로.”
아무런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정확히는 실습이 끝나고 나서는 아직도 읽기 시작한 시집에 책갈피를 걸어두고만 있을 뿐이었다. 심상의 문제. 분명히 그렇게 생각했다.
“아…”
책을 가지러 간 장소엔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주변에 그 짐승은 없었지만 외견으로 이미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루이, 나의 오라비이자, 속을 알 수 없는 인물. 차라리 겉으로 드러나는 성격이라면 충분했지만 주변의 모두가 악이었지만 홀로 덕을 쌓는 인물이 일반적으로 봤을 때 정상일리는 없었다. 개인적인 평가지만, 요주의 인물 1호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었다.
조용히 도망치면 된다. 아직 이쪽이 들킨게 아니니까 아무런 문제없이 도망 칠 수 있다. 급한 마음에 뒷걸음질 쳤지만 로퍼의 굽이 이상하리만치 크게 울리는 것을 신호로 심장은 쿵쾅거리기 시작했고 눈은 지진이라도 난 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아직이다, 도망칠 수 있어.
"너무 격식을 차릴 필요는 없답니다. 소개는 번지르르하게 했지만 황위계승권한은 포기한 입장이라서 오라버니나 언니하고는 달리 커다란 권력이나 연줄이 있는것도 아니고요."
조금 부담스러운 재인사를 받았기에 오히려 언잖은 표정을 짓고는 곤란해했다. 허리를 숙여서 인사하는건 사용인의 마음가짐이라지만 역시 내가 받을 인사로는 너무 무겁다.
"그렇다는건 당신은 주인으로부터 상당히 은혜받고 있는 셈이로군요. 그만큼 아끼는 존재라는 걸까요? 저로서는 그런 입장이 아닌지라 의문을 표해보겠습니다."
어떠한 사정이 있는지는 잘모르겠지만, 대략적으로 가문의 자식을 대신해서, 혹은 그러한 이유를 대고 학교를 다닐수있는 입장이라면 상당히 가문의 신뢰를 받는다는 의미겠지. 소문을 잠재우기 위한 이야기일수도 있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나로서는 크게 연연하지않는다. 자신조차 헛소문를 달고다니는 입장에서 누구를 소문으로 판단하겠는가.
"흠..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생긴걸 보고 놀래기도하기에 되도록이면 숨겨놓고 다니는 입장이랍니다. 가끔은 위협하고자 하는 용도로는 쓸만한 녀석이지만."
그는 가만히 그녀가 도시락을 꺼내드는 것을 지켜본다. 그리고 나온 것은 스테이크? 음? 때는 점심이었지만.. 뭐, 훈련이라도 해야 하는 날이라면 열량 소모도 심할테니 최대한 체력 보존이 가능한 음식을 먹어야만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잠깐 당황하는 눈치를 보였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다시 마음을 가라앉혔다.
" 맛있어 보이네요.. 흐음. "
그는 도시락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저 정도는 먹어줘야 힘이 솟는 법이다. 그러면 더 열심히 활동이 가능하고, 그리고 또.. 아니다. 더 생각했다가는 주제가 하늘로 날아가 버릴 것만 같다.
" 오늘도 훈련이시군요. "
그는 문득 활짝 열려있는 훈련장의 문을 보며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약간의 즐거움이 담겨 있었다.
저번에 먹었던 어묵과 탕이 너무나도 맛있었기에 밖에서 혼자 사먹었다. 가격도 제법 저렴했으니 매우 만족스럽다고 할 수 있었다. 한산한 거리와 적당히 차가운 바람이 기분이 좋다. 게다가 배까지 부르다니. 아아, 너무나도 행복하다. 하지만 심심하다. 여기에 무언가 놀릴만한 사람이 있으면 더 할 나위 없이 좋을텐데. 하지만 요즘 주변사람들이 영 그렇다. 무서워. 무섭다고. 장난을 칠 수가 없다고.
"앗, 이것은."
손수건이다. 누가 떨어뜨린걸까. 하고 생각을 하는 사이 학생으로 보이는 여성이 '꺅!' 하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푸흡."
이렇게 성대하게 쓰러지다니. 최근들어 본 적이 전혀 없었다. 심지어 실습때도 없지 않았을까. 하하하하하하하하. 하고 마음속으로만 웃어둔다. 소리를 내어 웃으면 정말이지 실례되는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아무래도 이 손수건의 주인은 그녀겠지. 하지만 쉽게 넘겨줄 수는 없다! 암. 상인은 자신의 물건을 쉽게 내어놓지 않는다.
한참 책을 정하고 있던 도중,갑작스런 로퍼의 굽 소리가 들렸다.분명 인기척은 없었는데? 하마터면 누구야?하고 굉장히 날선 목소리로 말할뻔한 것을 꾹 눌러담고서,잽싸게 그곳으로 시선을 돌렸다.곱게 미소짓던 두 눈은 그저 싸늘한 무표정으로 형형히 빛났겠지.
"....어머,이게 누구예요."
이내 마주한 상대.친애하는 나의 여동생,에녹.에녹의 등장이 전혀 예상치 못한 등장이었음일까,상당히 의외라는 뉘앙스로 그렇게 말하고서는 이내 다시 평소처럼 곱게 웃어보였다.마치 방금 전 지은 무표정은,그저 눈의 착각이었다고 말하는것처럼.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완벽하게 본성은 빛에 녹아들었다.당신 앞에서는 험한 표정을 지을 이유 없지요.속으로 가만히 되내리고는 천천히 그쪽으로 향했다.
"우리 동생도 이런 곳에서 나를 만나 꽤나 의외였던 모양이지요?설마 했는데 이런 야심한 시각에 도서관에서 마주하게 될 줄이야.결국 핏줄은 못 속인다..뭐 이런 것이려나요."
마치 뒷걸음질이라도 친것마냥 애매한 위치에 서 있는 에녹을 바라보며 눈꼬리를 곱게 휘었다.저런,갑작스러운 만남에 꽤나 놀란 모양인데.뭐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였으니 그렇다 치고...여전히 제 동생은 변함이 없었다.생각해보면,그녀 역시도 책 읽는것을 꽤나 좋아했더라지.그래서 여기서 이렇게 다시 마주하게 된 것일지도.
"그동안 평안히 잘 지내셨는지요?실습도 무사히 잘 끝내셨구요?"
그리고는 다른 우애 좋은 남매들이 으레 그러듯이,사근사근한 눈웃음을 지으며 그동안의 안부를 물어보았다.뭐,일단 겉으로 보기에는 크게 다친곳은 없어 보였다.이번 아바돈은 약했으니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지만,원래 오빠라는 존재는 동생을 잘 챙겨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랍니다.후후훗.
정식 토벌에 나간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몸이 축나기 시작하면 앞으로는 어떻게 버티나. 이러다 졸업 전에 명이 다하는 건 아닐까 싶었다. 아, 그건 싫은데. 아직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하는 것도 잔뜩 남았단 말야.
얼얼한 손바닥을 탁탁 털고 뺨에 묻은 흙알갱이를 덜어내는데 누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기요, 라고 해서 날 부르는 건 아니겠지 했는데, 깨닫고 보니 내 손수건, 없네? 급히 고개를 돌리자 어떤 남학생의 손에 들린 손수건이 보였다.
"그, 그거 내 거야! 돌려줘!"
앞뒤 생각 않고 손을 뻗으며 몸을 움직였다가 또 앞으로 털석. 이제보니 두 무릎에 스타킹이 찢길 정도로 찰과상이 나서 피가 조금씩 나고 있었다. 뼈를 제대로 부딪힌 모양인지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 어쩔 수 없이 강경책을 써야했다. 뭐 그래봐야 그림자로 다리를 지탱해 억지로 일어서는 거지만.
"내, 손수건...돌려줘. 그거 소중한 거야."
비틀거리며 일어나 남학생을 향해 한 손을 뻗었다. 순순히 돌려주지 않는다면, 조금은 무력 행사를 해버릴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순간 보였던 표정은, 마치 감정은 모두 죽인 것처럼 싸늘할 뿐이었다. 한기가 느껴질 뿐 아무런 감정은 알 수 없는 그 표정은 이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순식간에 환한 평소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마치 환상이라도 본 것처럼 공포의 대상일 뿐인 그가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자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고는 이내 심호흡을 하고는 천천히 대응하기로 했다. 괜찮다. 아직은 공적인 자리라고 생각하면 되는거야.
“아… 그게…”
떨리는 입으로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역시 입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핏줄이라고 주장하는 그에게 무어라 말해야 했다. 같은 피라고는 반밖에 섞이지 않은 사이, 엄밀히 말하면 서로를 견제할 뿐인 상대가 아니던가. 언젠가 왕위를 노렸던 시절엔 서로 경쟁할 뿐이던 사이. 물론 그게 얼마나 오래된 일인건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나… 아니 저는 괜찮았습니다… 실습은 아무렇지 않았어…요…”
떨리는 목소리로 눈을 마주치고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오래 된 사이었지만 나는 이 사람이 어떤지. 정확히는 왕실의 모든 사람들이 어떤 취미를 가졌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혹시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면 여긴 이제 들리는 빈도를 줄일 필요가 있었다. 고개는 여전히 땅바닥에 고정된 채로 더듬거리며 말할 뿐이었지만 이 공포는 어쩔 수 없었다. 다른게 아니다. 이 사람은 그냥 데리고 다니던 커다란 새부터 가끔 보이는 방금 같은 표정까지, 알 수 없기에 두려웠다. 다른 녀석들은? 아마도 이 사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 될 정도로 1차원 적인 생각을 가진 녀석들이 대부분이었으니 아무리 견제를 받아도 피곤할 뿐이었다. 그건 그냥 멍청한 견제였으니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오ㅃ… 오라버니는 어떠셨습니까…?”
아직 살아있다는 건 실습을 끝마쳤다는 뜻이겠지. 주변에서 괴성을 질러대던 사람은 셀 수 없이 있었고 무엇보다 아직도 개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다보니 이 사람이 어떻게 했을지는 상상이 가지도 않았다. 그보다는 실습 전날 파티의 그 고백이 너무 인상적이여서 그랬던 걸지도 모른다.
"멍멍이라면 조금 특이한 부류라고 생각합니다. 상대에게는 물리적으로 타격을 주고 실체가 있으면서도 역으로 물리적이던 정신적으로 이녀석을 타겟팅으로하면 통하는걸 본적은 없었거든요. 이렇게 말하면 천하무적이겠지만 그렇지도 않은게. 약점은 있답니다."
술자 자신이 통제하지않으면 기본적으로 움직이지않거나 피아식별이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는 것과, 술자가 타격을 입으면 결국은 술자의 통제가 불가능하기에 전적으로 술자를 보호하는 전술을 사용하지않으면 약점을 노출하는 셈이다. 그러니까 내 능력의 약점은 술자인 나한테 그 근본이 있다고 해야된다. 더군다나 무예에는 그리 능하지못한 입장으로선 더욱더 자신이 약점이 되는 거겠지.
굉장히 떨고 계시는군요,안쓰러운 나의 여동생이시여.여전히 가벼운 미소를 걸치고서,떨리는 목소리로 제 물음에 답하는 에녹을 가만히 바라보았다.물음에 답하나 싶더니 끝내 말을 잇지 못하더란다.입가에 지은 고운 미소가 잠깐 사그라들고,검지손가락으로 제 볼을 살짝 긁적이던 루이는 이내 허리를 숙이고,검지와 중지로 제 여동생의 턱을 살짝 잡고 들어올리고는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하였다.
"..제가,두려우십니까?"
그렇게 말하고는 손을 놓고 다시금 예쁘게 미소지었다.두려워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여기에서는 왕위계승경쟁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무엇보다,저는 왕위에 관심이 없는걸요.진실인지 거짓인지 모를 말이 상대를 안심시키기 위한 부드럽고도 잔잔한 미성에 섞여 나왔다.그것은 세이렌의 노래와도 같이 사람을 안정시키는 분위기였을까.한번 긴장한 사람을 진정시키기란 쉽지 않겠지만은.
고개를 땅바닥에 고정시키고서,눈만 마주한 채로 제 말에 더듬거리며 대답하는 여동생을 그저 부드러운 미소를 띈 채로 온화하게 바라볼 뿐이었다.정말이지,당신이 다치는 날에는 제가 아바돈을 싸그리 잡아 매달았을 것이랍니다.분명 험한 표현이 섞일법도 하건만,그의 어법은 변화 없이 부드럽기 그지없었다.자신이 지키려고 하는 왕족의 프라이드만큼은 확실히 지키고 있었던 탓일까.뭐 어느쪽이든 중요하진 않았다. 그리고 곧 이어지는 말에 피식 웃으며 손가락에 제 머리를 가볍게 꼬아 감는다.
"흐응,오빠라고 불러도 상관 없는데~"
제법 노골적으로 그렇게 말하고서는 다시금 고혹적으로 웃어 보이며 오,이번 말투는 꽤나 낯설지 않았나요.하고 장난을 거는 것이었다.상대방이 자신을 오빠라고 부르지 않으리라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기는 하였었지만.그리고 곧 아까 답하지 못한것에 대해서 입을 열었다.
"제 실습도 굉장히 무난했었답니다.이번이 첫 실습이라 그런지,약한 상대가 나왔었지요.우리 여동생님과 비슷하게,아무렇지도 않았다구요?"
늘어져라 대련을 하고 갑옷도,가면도 벗어던지고 수련장 벽에 등을 기대고 반쯤 누운채로 앉는다. 후우,진로상담도 받았으니 열심히 수련해야지. 그나저나 웨이트 트레이닝도 좀 하고,수영도 좀 더 해야하는데. 자꾸 무기술이랑 체술만 연습하면 안된다고. 그러고보니까 요즘 살이 조금씩 찌고 있는거 같기도 하고,역시 이 학교에선 개고기랑 아바돈고기 많이 못먹고 달달한거만 많이 먹어서 그런건가. 개고기 탕은 한사발 뚝딱 마시면서 땀빼면,힘 팍올라와서 열심히 운동하고 살 뺄 수 있었는데. 으음...
"테오 선배! 진 왔어요!"
후배녀석 한명이 나한테 그렇게 말하자 나는 고개를 든다. 오오,이 재미 없는 꼬맹이 후배 왔는가? 아아주 예전에 이 꼬맹이가 신체강화능력 좀 알려달라고 했었고,그 후로 몇달동안 보지도 못했던거 같은데.
"이야,키 많이컸네?"
나는 고개를 젖혀 이 진이라는 녀석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본다. 거 참,나는 키가 이래작은데 이자식은 키 이래 커도 되는거야? 이건 불공평하다고! 내가 얘보다 수련도 더 열심히 했고 몸관리도 더 잘했는데! 세상은 역시 불공평해!
"그래서,뭐 신체강화 능력 배우고 싶다고? 여자 후배 소개해줄꼬야? 아니면 맛난 쬬꼬렛 가져왔어? 둘 다 아냐? 아니면 껒여. 이쁘디 이쁜 여자애면 몰라도 시커먼 사내스키 수련시켜줄 생각은 읎다구."
하지만 이녀석은 순순히 돌아갈거 같지가 않다. 하이고,이녀석 보게.
"일단 여장하는법부터 수련하고 오지 그르냐? 우리 프랑이나 로렌스같이 나랑 정말 친한 애면 내가 아주 1:1로 밀착해서 알려줄텐데 너는 그게 아니자너. 나랑 별로 친하지도 않고,그렇다고 니가 이쁜 낭자애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고. 임마,너는 경쟁력이 없어요. 사실 여자였다던가 하는 반전 읎냐?"
나는 거기까지 말하고 물병의 뚜껑을 따고 물을 쭉 들이킨다. 근데 이래도 이녀석은 갈 기색이 안보인다. 나는 필살의 방법을 쓰기로 했다.
「https://postimg.cc/image/7zcl4pwjb/」 내가 들고온 큰 가방에서 이 옷을 꺼낸 뒤,진에게 건네주고 말한다.
"마,진! 진지하게만 굴지 말고! 사람들한테 큰 웃음 한번 줘야지?!"
그렇다. 혹시나 해서 저번 파티때 프란츠가 입던 팬더옷과 내가 입던 여우옷을 가져와서 킵해두고 있었는데 써먹을 날이 왔다.
"얼마든지 환영하겠습니다. 타인을 상대로 실전을 연습하는건 이렇게 죽치고있는거보다야 효율이 높으니까요."
특히나 상대의 경우는 어떠한 능력인지 감을 못잡겠기에 더욱이나 전술로서의 효율이 강화된다고 봐야한다. 불특정대상을 상대로한 전투는 모든게 베일에 가려져있으니까. 다만 자신을 지키는 능력이라는 말에는 부정하고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나를 비참하게 만든 잔재가 이 녀석이었으니까. 필요로하고있음에도 차라리 없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몇번이나 했는지 셀수도 없다. 내 목적을 위해서 그걸 희석시켜버린지는 꽤 되었지만서도.
실력 좋긴 무슨, 팀 내에서 강한 서열로 따지자면 1위는 라야고 2위는 란츠오빠 3위가 나다. "난 그냥 춤을 좀 마니 잘 추는고야…" 라 작게 중얼거리며 다시 한숟갈 퍼 입에 가져가 우물거리다가 또 헛기침할뻔했다. 뭐? 비류 쟤 날 마주했을 것 같다고?????
"에에에엥 그럴리가! 나 너 본 적 업써!!!!! "
황급히 물잔을 받고(그와중에도 고맙다며 엄지척은 했다) 들이킨 뒤 요렇게 외쳤다. 그냥 콧노래 불며 들어가서 싸우기만 하고 나왔는데 무슨! 택도 없는 소릴!!!! 그러고보니 사람 참 바글바글했는데도 주변인들엔 신경쓸 겨를도 없었다. 이게 다 먹을 거에 정신팔려 거기에만 집중한 탓이다. 그래! 근처에만 있었지 있는줄도 몰랐다는 게 정확하다! 당장 나만 해도 우리 팀원들 어디 들갔는지도 신경 못썼으니까! 그래. 그런거다. 그보다 은제국이라,
"와 은제국이야??? 우리 팀에두 은 제국 오빠야 이써! 염력 쓰시는데 쓸 때 와~~~안전 새빨갛게 되신다?? 그분도 4학년이셔! "
란츠오빠랑 프레데릭오빠가 워낙 좋은 윙과 리어이시기때문에 은 제국 사람들은 다 쎄지 않을까 하는 관념이 은연중에 정착된지 오래다. 그러고보니 얘 팀 대항전은 나갔을까? 혹시 팀 대항전에서 만났으면 어떤지 대략 알텐데. 한숟갈 더 퍼서 꿀꺽 삼킨 뒤 눈을 반짝이며 질문했다. 좋아 앞으로 3분의 1만 더!
고개를 숙인 채로 살짝 가로저으며 말했다. 거기서 장난을 쳤다면 아마 나는 정말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들었을지도 모른다. 자라아하는 이성을 잃고 상대를 무자비하게 때렸을지도 모르지. 그런 의미에선 오히려 장난을 관둬준 상대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 판이었다. 아이러니 하지만.
옆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슬쩍 고개를 돌리니 자리 하나가 더 생겨 있었다. 어차피 쉴 생각이었단 말에 그러냐며 적당히 대꾸했다.
"때마침 그쪽이 자나가고 있었으니까 안 놓칠 수 있었던 거지. 잃어버렸으면, 일주일...아니 한달은 아무하고도 말 안 하고 죽을 상을 하고 다녔을 걸."
어차피 내 얼굴은 거의 안 보이지만서도. 농담이랍시고 그렇게 말하고 실소했다.
"어쨌든, 손수건 잡아준 건 고마워. 나중에 답례할게. 지금은 가진게 없어서."
생초콜릿이 있기는 했지만 그건 다른 사람을 위한 거였으니까. 말하고 무릎을 살짝 건드렸다가 따가운 통증에 움찔, 떨었다. 아파라...
그저 공포가 발목부터 머리까지 뱀처럼 얽혀서는 목을 조르고 있었다. 이건 무엇일까. 괴롭힘에는 익숙하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런 변화조차 없는 걸 보면 역시 나는 성장하고는 거리가 먼 인간이라고 깨닫게 할 뿐이었다. 루이는 내 턱을 살짝 들어올리더니 강제로 시선을 맞추었다. 필시, 내 눈동자 속에는 공포만이 서려있을테지. 그럴테니 이 말은 틀리지 않았다. 이 사람이 두려운가? 엄밀히 말한다면 모든 인간이 두렵다. 어떻게 움직일지 모르니까, 더 두렵다. 그때의 그 아바돈은 본능에 충실했다. 그래서 오히려 보기 좋았다고 느낄 정도였다. 원초적인 욕망에 따라서 그 개는 나를 먹으려 했고 난 그를 죽이려 했다. 그리고 나의 승리. 지극히 단순한 일이지만 그 일련의 과정조차 나의 정신을 더럽히기에는 충분했다.
”…그럴리가 없지 않습니까.”
시선을 피하면서 애써서 내뱉은 그 말은 루이의 말에 의해 점점 거짓인 것이 들킬것만 같았다. 왕위에 관심이 없다고 말 할 수 있는 건 모든 것을 내려놓은 사람만이 가능하겠지. 나조차도 아직 욕심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이 상쾌한 미소 뒤에는 무엇을 감추고 있는걸까. 아마도 이게 진실이라면, 나의 정신병이라고 밖에 볼 수 없겠지.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나의 생각이 맞다면? …그렇다고 한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한때 파벌이 있기는 했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과 함께 몰락해버렸으니.
“…그럴리가 없지않습니까. 저 또한 아무리 썩어도 왕족. 품위를 떨어뜨릴만한 일은 하지 않습니다.”
</clr red black>어울리지 않습니다.</clr> 이것만큼은 편하게 할 수 있었다. 애초에 평소의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일까. 이런 장난조차 편하게 넘길 수 있을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건 내가 가장 잘 알 수 있었다. 한순간 입학직후부터의 일이 지나갔다. 아마도 떨어질만큼 떨어졌으니 마음대로 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아마도 내가 왕족인걸 아는 사람은 이 학교 교사진이랑 루이정도밖에 없으니 별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분위기를 바꾸면 반 이상이 알아채지 못할 테니까.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것만큼은 편하게 할 수 있었다. 애초에 평소의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일까. 이런 장난조차 편하게 넘길 수 있을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건 내가 가장 잘 알 수 있었다. 한순간 입학직후부터의 일이 지나갔다. 아마도 떨어질만큼 떨어졌으니 마음대로 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아마도 내가 왕족인걸 아는 사람은 이 학교 교사진이랑 루이정도밖에 없으니 별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분위기를 바꾸면 반 이상이 알아채지 못할 테니까.
이사장님 선보러 갔다가 거하게 차이고 그것도 모자라서 노처녀라는 말에 모독까지 들어서 핀트가 나가버려서 취하지도 못하면서 96% 알코올을 열두 병이나 위에 다이렉트로 때려넣고 모든 학생들이랑 교사랑 크리드까지 대련이라는 형식으로 후드려패는.... 사적으로 여동생이건, 다른 나라의 왕족이건 그딴 거 필요없다는 듯이...눈이 맛이 조금 가서..(흐릿)
그래서 시트캐들이 이사장님을 차버린 남자를 찾아서 (그동안은 크리드가 몸빵해주고 있다) 적어도 사과하라고 끌고 와서 대령하는 괴상망측한..
시선이 맞추어졌다.여전히 고우면서도,살짝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역시 두려우시군요.그것을 궂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말 안해도 알고는 있었다.겉으로는 잘 지내는것처럼 보이게 하면서도,내면으로는 그녀가 자신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
저런,그러나 그렇게 떨면 아니되지요.주변에 사람들이 있었다면 어떻게 보았겠습니까.마치 그렇게 말하는듯한 눈빛으로 제 시선을 피하는 에녹을 바라보던 루이는 이내 다시금 허리를 들었다.
"두렵지 아니하시다면 다행이군요.뭐,반쪽짜리 핏줄이라고는 해도 엄연히 같은 아버지를 두었으니 저희는 엄연히 혈연 관계니까요.여동생이 제 오라버니를 무서워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답니다."
제법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경계를 풀어주려 했건만,역시 한번 취한 경계는 쉬이 풀리지 않았다.뭐,궂이 안심시키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의 대화는 이루어지니 그것 정도면 문제 없겠지.나머지는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괜찮은 것이었다.
"...후후훗,역시 피는 못 속인다니까요.제아무리 왕위계승에 대한 관심을 버린 상태라고는 하더라도,여동생도 왕족의 품위만큼은 지키고 싶으신거죠?"
그것은 왕족의 피를 물려받은 자들이라면 어쩔수 없는 일인 듯 싶었다.하긴,정말로 몰락한 왕족이 아니라면야 누가 품위를 지키지 않으려 하겠냐만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에 부드러운 웃음으로 응수하며,가만히 에녹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장해요.장하지요,나의 여동생.잘 하고 계시는 중이십니다.왕위에 대해 욕심이 없다고 한들 왕족은 왕족.아버지의 이름에 먹칠을 해선 아니되잖습니까?
"그렇지요.저의 형,카인 크로즈델이 살아 있었더라면 어머님의 걱정이 조금 덜했을텐데 말입니다.애석하기도 하지..."
다시금 그때에 대한 기억이 나려는건지 꽤나 슬픈듯한 모습을 해 보였지만......글쎄.에녹이 바라보는 그는,정말로 슬퍼 보였을까.그 슬픔은 진정한 슬픔이었는가 아니면 그저 악어의 눈물에 불과했는가.
나는 그렇게 말하고,이제 이 팬더옷 입은 진녀석을 어떻게 놀려 먹을까- 생각하며 키득키득 웃는다. 이야,이거 아주 재밌을거 같은데? 저 진녀석,팬더옷 입고 고생 좀 하면 다시 나 찾아오지 않을거야. 그래,알려달라캐서 좀 알려줬지만! 나는 10년 넘게 개고생해서 익힌 기술인데 쟤한테 다 알려주긴 아깝자너! 돈을 많이 받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얘가 귀여운 꼬맹이도 아니고! 그러니까 이 기회에 확실히 고생시키면 더 들러붙지 않을거-
"테오 오빠야,나 오빠야한테 돈 빌려준거 있는데 언제 갚을기나?"
"아."
수련장에서 죽도를 열심히 휘두르던,3학년 빨간머리 여자-이자식은 무슨 깡패력이 아바돈 수준이라서 여자라고 부르기도 뭐하지만-후배가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내게 그렇게 말했다.
그는 검 하나를 뒤로 휙 하고 던져 띄운뒤에, 순간적으로 능력을 사용해 몸을 강하게 사선으로 밀쳐낸다. 부웅.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와의 거리가 좁혀지고, 그는 다리로 몸을 지탱하며 양손으로 하나의 검만을 잡았다. 그리고는 바로 빠르게 휘두른다. 또다시 능력으로 팔과 어깨 부분을 밀어내 사실상 내려찍는 형태가 되었다.
이제껏 이렇게나 사람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 한탄스러워 질 정도였던 적은 없었다. 공포의 대상이었던 다른 인물들이 적어도 지금 닥친 이 상황보다는 훨씬 낫겠지. 그때 만난 디트리히라는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도 지금 이 거북한 상황에 비할 것은 아니었다. 이 뱀과 같은 눈. 분명히 선할터인 눈동자에서는 포식을 앞둔 뱀이 보였다. 눈을 피해도 느껴지는 이 감각, 속이 뒤집어질것만 같았지만 지금은 그래서는 안된다. 죽어버린다면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한다.
“…네, 지당하십니다. 오라버니도, 아니면 언니들도 두렵지 않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제 아무리 두렵게 하려하여도 공포의 종류는 모두가 달라서 그 모든 종류에 익숙해 질 수 밖에 없다. 가장 어리석은 방법인 육체의 고통은 이미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져서는 이젠 아무렇지도 않지만 이렇게, 정신을 직접 좀먹는 듯한 것은 그 누가 익숙해 질 수 있을까. 아마 나는 평생을 가도 불가능한 일이겠지. 알고있다. 성장하지 않는 것은 먹히지도 않고 사냥당하지도 않는다. 그저 홀로 썩어 문드려져서 잊혀지겠지. 이렇게 사는 것이 좋다. 아무렇지도 않게. 평화롭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오는 루이가 두렵다. 대화가 성립되지만 성립되지 않는 느낌이 들어 떨리는 나의 목소리는 나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두려움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오라버니는… 아니십니까? 아무리 썩어도 올바른 왕족이 있어야만 민중이 길을 잃지 않을 테니까요.”
내가 할만한 이야기가 아닌 것 쯤은 알고있다. 누구보다도 왕족과는 다른 이질적인 왕족이자 떨어질만큼 떨어진 실패작. 지금의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이런 말 밖에는 없다. 떨리는 말이 끝나고 나니 머리위에 큰 손이 느껴진다. 분명히 따듯하고, 상냥함이 느껴지지만 거역할 수 없는 무언가가 무겁게 머리를 짓누르는 듯 한 느낌이 들어서 움직일 수 없었다. 당장이라도 다리에 힘이 풀릴것만 같았다. 지금 이곳을 뛰쳐나가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 숨어버리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공포의 무게는 너무나도 무거웠기에 발을 떼는 것 조차 허락받지 못하는 것같았다.
“…”
카인 크로즈델. 알고는 있다. 그렇게 잘 아는것도 아니지만. 분명히 죽은 왕자였다. 하지만 그게 특별하지는 않았다. 물려받을 권력이 많다면 그만큼 죽음은 가까이에 있다. 하룻밤 사이에 멀쩡했던 인물이 폐인이 되는가 하면 상냥했던 인간은 독으로 사람을 죽이기도 했다. 달리 말할 방도가 없는 지옥도. 그것이 카트아르. 친형제라고 해서 의심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아마도 이 인간의 것은 그저 위선. 이런 방식으로 자신을 향상시키는 녀석은 많이도 보았다.
“카인 오라버니에 대한 건 저도 애석합니다. 어머니도 필시 그 때문에 루이 오라버니에게 집착하시는 거겠지요.”
아무리 봐도 무모한 공격, 나는 이런 무모함을 꺼려하지만, 때로는 이런 도박수가 큰 이득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바로 지금처럼. 프란츠의 얼핏봐도 무모한 동작의 공격은 나에게 먹혔다.
"한판승 룰에 따라서, 일격을 허용한 내가졌네. 수고했어!"
하지만, 오히려 팀의 리더로서 나는 굉장히 기쁘다. 이정도로 센스가 좋고 판단력이 뛰어난 인물이 우리 팀의 윙 자리에 있다는 그 자체가 굉장히 기쁘다. 그래서 내 목소리에는 오히려 분함보단 즐거움이 묻어 나왔다. 이렇게 팀원의 강함도 알게되고, 나도 중요한 경험을 하나 얻어간다.
그 뒤에 있었던 일은...더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어쨌든 다들 내가 희생해서 재밌어했다. 드러운 자식들!
//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진이 가져온 쪼꼬렛을 먹으면서 나는 진을 마구마구 갈구기 시작한다. 신체 강화능력을 알려달라고? 임마! 기본기가 안되어 있는데 무슨 신체강화 능력은 능력이야?! 어림도 없다. 암! 아아아아암!
"야,일단 신체강화 운운하기전에 스텝 하는법부터 제대로 익혀. 먼저 발목을 제대로 쓰고,너 스텝 밟을때 보니까 발목 제대로 안쓰더라고? 신체강화 능력 있으면 발목 힘이 엄청 좋아진단 말야,이걸 잘 써먹어야해. 먼저 발목을 잘 쓰면 한걸음만 내딛어도 다른사람 몇걸음 거리 만큼 움직일 수 있고,아바돈 공격 어지간한건 다 피할 수 있어. ...진짜 기본기부터 제대로 익혀야지,몇년 전에 봤을때랑 스텝 수준이 아직도 그대로면 어떻게해."
진짜 이 학교에서 기본기 더럽게 잘 안가르쳐주는 모양이다. 실전에서 아바돈이랑 싸울때 이렇게 스텝 밟다가 공격 제대로 못피해서 한두대씩 얻어맞을거 같은데,게다가 진 이녀석은 그 문제점도 모르고 신체강화 능력부터 알려달라고 하고.
"너,신체강화 능력 어떻게 쓰고있어? 이 능력에서 중요한게 뭐라고 생각해? 근육 강화따위는 아니야. 어짜피 인챈트 걸고 칼질하면 근육강화는 그렇게 필요 없어. 맞춰봐."
"뭐,그러하시겠지요.왕위를 계승하기 위한 다툼에 아주 잠시라도 끼어들었다면,그런 공포들은 이미 질려버릴만큼 겪어왔으니.게다가,저는 그들과는 다르지 않습니까?되려 제 모습에서 공포심을 느낄만한 부분을 찾는것이 힘들 것 같군요."
자신이 어떤지 잘 알고 있으면서.그러면서도 괜히 한번 빙 둘러서 말을 건네어보는 것이었다.이유야 간단했다.그가 지금까지 연기하고 있는 그 순진함을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하여.머리를 식히기 위한 독서에서 잘못 과열되었으니,이렇게라도 다시금 자신 스스로 세뇌를 시켜가며 적응해야만 한다.다시 그 깨져나간 가면을 고쳐야만 했다.
"허어,그러면 역으로 되묻겠습니다.친애하는 여동생은,이 오라버니가 왕족의 품위를 그냥 놓아버릴 인물으로 보이시는지요?제가 스스로 답하기에는 너무 자화자찬을 하는 것만 같아서 그렇답니다.왕족으로써,참된 군주의 면목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자화자찬은 삼가해야지요."
한 손으로 제 입을 가리고 웃는 모양새가 퍽 숙녀다우면서도 한 편으로는 왠지 모를 조소마저 느껴지는 그런 것이었다.자신은 올바르다.올바른 왕족이다.딱 그 정도까지만 세뇌를 시켜두면,나머지는 일사천리였다.지금까지 해왔던것처럼 빛 속에 그 모습을 가리면 되니까. 쓰다듬던 손을 멈추고 머리에서 천천히 떼어내었다.
"방금 제게 했던 그 말을 끝까지 잘 간직하고 계시도록.훗날 당신에게는 꽤나 도움이 될 말일지도 모르니까요."
뭐,그렇다고 해서 달라지는게 무엇이겠냐만은.자신이 제아무리 미쳐돌아간다고 해도,이렇게 한 줄기의 희망만큼은 남겨두는것이 바람직했다.그리고 마지막에는 그 한 줄기의 희망마저도ㅡ 잠시동안 침묵이 이어지고서,에녹 쪽에서 먼저 입을 열었다.
"...아마도 그렇겠지요.어마마마께서도 그 일에 관해서 상당히 애석해하셨답니다.이제 믿을만한 아들은 저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면서,한참을 말없이 저만 안고 계셨었지요."
자신을 알고있기에 할 수 있는 이 말이 긍정을 강요하는 것 처럼 느껴졌다. 그들과는 다르다고 계속해서 말하는 이 사람의 말이 그럴듯하게도 느껴졌지만 그 여자의 아들이 아닌가. 어떤 식으로 성장했을지는 뻔했다. 웃는 얼굴 뒤에 칼을 숨긴 사람들 정말로 단순히 그뿐인 인간들의 일부. 하지만 그 내용을 알 수 있는 다른 녀석과는 다르다. 칼인지, 독인지, 아니면 맹수인지.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그저 위험해 보인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네, 그렇지요. 오라버니는 그런 것들과는 담을 쌓으신 분이셨지요."
인간은 알 수 없는 것에 원초적인 공포를 느끼지 않는가. 깊은 바닷속에 무엇이 있는지. 그 어둠을 걷어내면 무엇이 나오는지.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지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루이는 그 미지를 구현화한듯한 인간이었다. 나에겐 그저 공포의 대상. 그럼에도 이 상냥함이 어째서인지 안심이 되기도 해서 두려움을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한 인간이었다.
"그럼 ㅈ...저도 물어보겠습니다. 오라버니는 왕족의 품위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거침없이 적을 쳐낼 수 있는 결단력입니까? 아니면 적도 아군으로 만드는 관용입니까...?"
품위? 당연하다. 아마도 내가 아는 왕족중에선 가장 노블리스 오블리주라는 단어를 그대로 표현한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점이다. 이 사람이 카트아르라는 점이다. 제국이라면? 그나마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것이다. 다른 시국이라도 당연하겠지. 하지만 은투국은 아니다. 아버지는 대단하신 분인게 확실했다. 왕으로서의 권한을 거의 놓지않으면서도 민중의 요구를 해결해버리셨으니. 이런 아버지를 이어 왕이 된다면 분명히 민심은 그대로 이어지겠지. 얻는 것이 너무 많기에, 말 그대로 무엇이든 하는 인간들이다. 그런 사이에서 고결함은 존재할 수 없었다. 진흙탕보다 더러운 사이, 그게 카투아르의 성을 이은 형제들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천천히 머리에서 손이 떨어지고 다시 고개는 땅으로 향한다.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무력감만이 느껴져서 무엇을 해야할지도 몰랐다. 그저 쉬고싶었다.
오랜 침묵이 깨지자 루이는 자연스러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 여자다운일이다. 아니, 내 어머니가 이상하리만치 달랐던걸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첩들은 왕비가 되려 필사적이다. 권력을 노리는 모습은 마치 지금의 형제들과 같아보였다. 아마도 그런 모친 아래에서 자랐으니 그대로 성장해버린걸까.
압축시켰던 모래들이 조금씩 쌓여가고 점점 짜증도 늘어갔다. 왜 더 세밀하고 작게 압축시키지 못하는 것일까. 만질 수 없는 것을 압축시키는 것은 능력 밖의 일이기에 미련을 가지지 않는다. 하지만 내 노력과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것은, 너무나도 불쾌한 일이다.
가벼운 한숨을 쉬며 허리춤의 검집을 만졌다. 고급스럽게 무늬가 새겨진 검집은 오래되었지만 매일 손질해 무늬에 티가 나지 않는다.
진짜 중요한게 뭔지 모르는구나,어처구니 없을정도로 간단한 이 대답에 나는 내 머리를 감싸쥐고 다른 손은 손 바닥을 쫙 펴 진의 등짝에 스매슁!을 날린다. 얌마! 그게 아냐! 그렇게 단순한게 아니라고!
"눈이야! 눈! 신체강화에서 가장 중요한건 눈이라고! 다른 로머들이 아무리 강해도,시각만큼은 단련 할 수 없어. 왜냐고? 인간의 시각 구조가...두 눈을 한 포인트에 고정시켜서 초점을 맞춰야 제대로 정보를 볼 수 있거든. 이 시각 구조는,진짜 신체강화 능력이 아니면 도저히 해결이 안돼. 인간은 그렇게 태어난 생물이니까."
나는 그렇게 말한다음 쯧,하는 소리를 내고 진 앞에 손가락을 대고 흔든다. 잘 봐,내 손가락을 왼쪽으로 움직이면 니 눈동자도 왼쪽으로 굴러가고! 오른쪽으로 움직이면 오른쪽으로 굴러가잖아! 신체강화 능력으로 이걸 극복 할 수 있는거라고. ...진은 아직도 못알아 들은거 같아서 한숨을 푹 내쉰다.
"왜 인간이 이렇게 두 눈을 써서 한곳밖에 보지 못한다고 생각해? 거리 감각때문에 그래,두 눈이 아니면 거리감각 잡기 힘들거든.
근데 말야,신체강화 능력 제대로 써봤는지 모르겠다만. 쓰면 감각 되게 예민해지지 않아?
...그걸 쓰면,한 눈으로도 거리 감각을 잡을 수 있어. 처음엔 토나오게 어렵고,한쪽 눈만 가지고 거리 감각 잡기는 힘들지. 집중도 잘 해야하고,경험도 필요하고. 하지만 강해지고 싶다면 지금부터 해야지 어쩌겠어?"
나는 그렇게 말한다음 신체강화 능력을 걸고 진에게 내 눈동자를 보여준다.
...조금 그렇긴 한데,내가 가면을 쓰는 이유도 이거다. 싸울때 내 눈은 따로따로 놀거든. 이거 보여주면 좀 그러니까.
아마 진은 내 두 눈이 따로따로 다른 방향을 보고 계속 데굴데굴 굴러가는걸 보고 있을거다. 보여줄만큼 보여줬다고 생각한 나는 나는 진의 이마를 콕 찌르고 말한다.
"이게 진짜 중요해. 시야각이 엄청 넓어지거든,다른 능력자들은 이걸 못해."
여기서부터 파생되는 기술이 많지,아바돈의 시야 사각으로 파고든다거나,양손에 총 하나씩 들고 쏜다던가,그리고 완벽히 익히는데 3년쯤 걸린 백 샷이라던가. 신체강화 능력을 단순히 힘이나 강하게 하는 능력으로 생각하면 안된다. 얼마나 쓸 구석이 많은데.
"이만큼 알려줬으면 만족해야겠지? 내 영업비밀중 가장 큰거 하나 알려준건데."
나는 진을 보면서 키득키득 웃는다. 어이,어떻게 대답할거냐? 이건 진짜 귀한 정보라구! 한번 대답이나 좀 들어보자.
태오 선배는 내 대답을 듣고선 그게 아니라면서 내 등을 도닥인다. 이게 아니라고..? 그럼 어떤거지? 하고 생각하며 테오 선배의 말을 듣는다.
손가락을 내밀어 보여서 본능적으로 눈이 따라간다. 그리고 이어진 설명.
눈을 따로 움직이며 초점을 맞추면 더 넓은 시야각을 갖게 된다! 라는것이었다. “조금 흉해보인다 해도 큰 시야각을 갖게 된다 라는거구나. 방어적으로는 뛰어난 방식인데.”
여러가지 책을 읽어보았다. 그중 초식동물은 테오선배가 말한것처럼 시야각이 넓게 벌려져 있다. 아마 테오선배는 그것을 응용한것일것이다. 거기에 신체강화 능력을 더해 거리감각도 보완. 능력상으로는 매우 뛰어나다. “좋은 발상이네. 그런데 원래 시야와 완전 다른것이 되는데 수련하는데 얼마나 걸렸어?”
“... 5...년?” 5년이라고..? “엄청 걸리잖아...” 좋은 방법인데 내게는 시간이 부족하다. 5년이라는 시간을 써야 하는데 내가 재능이 있어 시간을 단축할수도없을것이다. 그렇다고 섯불리 따라하면... 그것이야 말로 바보같은 짓이다. 약간 추욱 늘어졌다. 하아... 역시 시간이 부족하다. 내 능력도.
그리고 스탭에 대해 또 듣는다. 하지만 나도 알고 있... 윽 마음 읽혔다!!! 뜨끔해서 고개를 두번 끄덕였다. “알..알겠어.” 사람마다 방법이 있고 그 방법은 다르게 유용할것이다. 이마 저 부드러움을 하는 스탭도 생각해 둬야겠다.
“손가락의 빠르기..!” 이건 생각 못 해본것 같다. 이제까지 들은것을 보면 나와 테오선배의 차이를 알겠다. 테오 선배는 부드럽고 섬세한것을 중요시 하는것이다. 유연함과 탄성있음. 이것인거겠지.
“고마워 선배! 덕분에 많은걸 일았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지식이 늘었다! 난 한번더 감사 인사를 하고 그곳을 떠난다. / 수고했어요! 약간 진이 너무 쿨했으려나... 진은 진짜 절실하게 힘이 필요한거예요. 그래서 언제나 진장성 있게 행동하는거죠. 하지만 이게 너무 진이 매력 없게 보이게 하나...
삼주신께서 주사를 부리는 꿈이란.. 참 아스트랄하군요... 삼주신님 이런 분들 아닙니다..
칼라미티: 이xxxx들이 내 낙원 더럽히뮤ㅠㅠㅠㅠㅠ 내가 얼마나 정성들여 만든건뎀뮤ㅠㅠㅠㅠ 아 진짜 리셋욕구듬요ㅠㅠㅠ 리그트: xx 내가 책 얼마나 힘들게 쓰고 하루종일 쉬지도 못하는데 저금 인생 안 풀리기만 하면 날 원망하고 x랄이야... 아니 모든 인간과 아바돈이 행복하게만 살 순 어뵤낞아... 텐게르: 예전에. 세상에 강림했을때. 아바돈이라며 공격받아서 한 번 강림한 육신이 죽었다.. 너무하다고 생각했다...(우럭) 칼라미티,리그트: 훌쩍.. 텐게르으으으으... 미안해애애.... 그치만 신이 세상에 잠깐이라도 강림할 때에 인간으로 내려올 순 없는걸...
소통이야 보통은 그냥 신께서 존재하시는 별격의 세계에서도 텔레퍼시로도 가능은 합니다만. 통신상태가 세계와 세계를 건너는 거다 보니 영 지지직거려서.. 신탁 내렸다가 그 뭐지..통신상태가 초기 통신망 같이 잘 들리지도 않고 해석도 인간들 지 입맛대로 하는 게 더러워서 내가 직접 강림해서 5g기가 와이파이 텔레파시로 전해준다. 라는 느낌이니까요.(고개끄덕)
1. 칼라미티: xx. 낙원 망쳐놓은 놈들이 적반하장도 적당히 해야 들어주지. 서로 공존하면서 잘 살라고 만들어놨더니만 배신 때리고 낙원 더럽혀놓고 살기 힘들게 x져놔서 내가 몇 번이나 리셋욕구를 느꼈는..(이하 신세한탄) 2. 리그트: 서로 싸우는 걸 우리가 막을 의무는 없도다. 얼기설기 엮인 것을 함부로 건드리면 인간과 인간의 인과율에는 지독한 죄과가 오느니라.. 애초에 인간은.. 음. 너무 말하는 것은 지양하도록 하마. 3. 텐게르: 상급 이상의 아바돈은 현재 시점에서 타락자와 정죄자를 제외하면 거의 다 우리가 존재하는 별격의 세계로 승천하였느니라.
제복을 챙겨입을까 했지만 챙겨입지 않았다. 비류는 손을 씻고 세수를 한 뒤에 아카데미 교복을 챙겨입었지만 지금 목적지로 두고 있는 곳으로 가기에는 꽤 흐트러진 옷차림이였다. 단추를 풀어해친 채 그녀는 제 목을 감싼 문신을 손바닥으로 덮어서 문지르며 여유롭고 느긋하게 걸었다.
그녀의 목적지는 이사장실이였다. 잠시 그 앞에서 머리를 대강 정리하고는 그녀가 문을 두드린다.
원래 그녀가 흐트러진 모습으로 일을 하는 건 아니다. 원래라면 지금처럼 잘 틀어올린 머리카락과 잘 챙겨입은 옷으로 사무를 보는 편이다. 그렇게 한참을 서류정리를 했을까..(빌어먹을 서류들. 그녀에게 있어서는 서류보다는 발로 뛰는 것이 더 알맞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그런 것 치고는 상당히 유능해서 자기가 하는 게 더 이득이었기 때문에 누구를 고용하는 식으로 멈출 수도 없었다) 문득 들린 노크소리에 고개를 들고 들어오시길. 이라고 말합니다.
"소파에 잠깐 앉아 기다릴 수 있겠나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비류를 바라보고는 거의 다 끝나가는 서류에 도장을 찍고 일어나서는 가도록 하지요. 라고 소파를 가리키며 말합니다.
"선 약속을 잡지 않아도 찾아온다면 너무 가벼운 것이 아닌 이상은 받아주려고 노력하는 편이지요." 이젠 잠 같은 거나 식사도 필요량이 극단적으로 적으니까 말이지요. 라고 극단적으로 적다에서는 잠깐 망설이긴 했지만 느릿하고 여유롭게 답하면서 마무리된 서류를 봉투에 집어넣고는 소형 게이트로 보내야 할 곳에 보냅니다.
"그래서 저를 찾아온 이유가 무엇인가요 비류 학생?" 소파의 맞은편에 앉으며 차와 다과를 내려놓습니다. 괜찮다면 한 잔 드시길. 이라고 권유도 하는군요.
이사장실에서 소비되는 차 중 절반은 학생 입에. 나머지 절반의 5분의 4는 교사들 입에 들어간다는 소문이 있었던가요..?
"첫번째 질문은 로머라는 직종의 범위에 따라서 대답이 갈리겠군요." 로머이면서 연구직인 경우도 있고, 로머 일을 하지 않고 다른 직업을 얻는 경우도 있고.. 로머이면서 사람을 사람에게 지키는 일도 하니.. 굳이 로머 자격증을 따고 묵혀두는 이는 별로 없으니까요. 자유로 보시면 되겠군요. 라고 말하고는 인챈트의 강화라는 말에
"칼라미티 신님의 사제이자. 새 인챈트 과목 교사인 크리드에게 가보시면 되겠군요." 크리드가 요즘 자기가 너무 어렵게 문제를 내서 아므도 안 오는 가 하고 우울해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라고 느긋하게 말하고는 차를 한모금 홀짝이다가 예언이라는 말에 손을 멈췄습니다. 가볍게 그녀의 손에서 찻잔이 바닥으로 놓아졌고. 아라는 비류를 똑바로 바라보았습니다.
"예언이라... 듣고 싶으신가요? 겉핥기만을. 아니면 감당이 가능하다면.. 조금 더 깊은 곳을 들을 것인지." 그것은.. 느릿느릿하면서도 위압있는 목소리였습니다.
"그렇게 된다 하여도 별 문제는 없지요." 그걸 강요할 건 아니니까 말이지요.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크리드의 문제가 끔찍하다는 것에 그건 맞기는 하지만 요즘은 이야기만 적당히 하고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라고 덧붙입니다. 그리고 예언이라는 말에 푸른 은빛의 눈동자는 반짝이지 않았습니다. 무기질같았지요.
"예언.. 예언이라.." 먼저 로머의 예언이란 것은 본래 시기를 정확히 예견하는 것은 우연뿐이라는 것을 먼저 말해둬야겠네요. 아니면 자기가 직접 예언을 실행하거나. 부드러운 미소였지만 말은 차가웠다. 원래 예언이란 게 그런 말이 나올 수 밖에 없었으니까.
"예언은 삼주신의 권역이기에 로머의 예언은 삼주신의 권역을 침범치 아니하게 백년 이상의 단위로 먼 미래를 보거나, 바로 몇 초 뒤를 보아서 막을 수 없거나. 혹은 그 몇 초마저도 보다가 튕겨나가는 것이 비일비재한 법." "암브로시오 국가의 예언은 어떻게 보면 우연에 기댄 것이니까요.. 먼 미래에 일어나는 일과 닮은 일이 일어나는 일이 없진 않을 것이니. 무희를 모독하는 건 아니지만, 무희가 예언을 실행하는 게 아닌 이상." 유일하게 믿을 만한 것은 신탁이지요. 그러나 그것도 해석하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니.. 라고 말하고는 부드럽게 웃었습니다.
"크리드는 칼라미티 신께 신탁을 간혹 받고는 하지요." 나중에 찾아가서 물어보아도 괜찮을 것 같군요.
//아라가 지금 말하는 건 고위층 로머들만 아는 겁니다.. 되게 고급 정보들이니까 말이지요..
비류는 무기질적인 푸른 은빛 눈동자를 바라보다가 슬몃 어딘지 몹시도 상냥한, 굉장히 그리움이 가득한 눈동자로 가만히 웃어보였다. 가장하지 않은 상냥함이였다.
"그거 다행이군. 안그러면 과로사로 단명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버렸거든."
상냥한 시선으로 그 눈에서 시선을 떼어내지 못하다가 그녀는 슬몃 시선을 돌리고 다과를 마저 먹은 뒤에 상체를 곧게 세웠다.
로머의 예언이라는 것은 우연이나 혹은 직접 예언을 실행하거나. 예언은 삼주신의 권역. 침범하지 않게 백년단위의 먼 미래를. 잠시 비류는 찻잔을 들면서 슬그머니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렇군. 짤막한 말을 하며 그녀는 찻잔을 비워냈다. 소리없이 비워낸 찻잔을 내려놓고난 뒤 그녀가 목을 문지르다가 귀걸이에 손을 가져다댔다.
하하. 무희를 모욕하는 게 아니지만이라는 이사장의 말에 비류는 여유롭지만 제법 호쾌하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빌어먹을 무희들. 다만 그녀의 눈빛은 실습때 아바돈을 마주했던 것처럼 기묘한 살기를 띄고 있었다.
"크리드에게 가서 물어봐도 되겠군. 좋은 정보 고마워. 그, ㅂ..아니 무희들보다는 신탁이 낫겠어."
비류는 슬슬 돌아가려는 듯이 자리를 정리하고는 소파에서 일어나다가 아, 하는 짧은 소리를 내곤 이사장을 돌아보며 여유롭게 미소를 띄웠다.
지독한 악몽에 한참을 시달리다가 숨이 넘어가기 직전에서야 눈이 떠졌다. 정말 한순간만 늦었으면 영영 못 깨어났을지도 모를 정도로 지독하고 끔찍한 시간이었다.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짧게 내쉬며 떨리는 손을 가슴께에 얹어보니, 심장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펄떡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아직 살아있다는 안도감이 미쳐 날뛰는 심박을 천천히 진정시켜가기 시작했다.
"살아있어...아직 살아있어......"
진정한다는게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만.
빠르게 돌던 피가 서서히 제 속도를 찾고, 차갑게 식어갈수록 내 머릿속은 온통 아까의 꿈 내용으로 채워져갔다. 이성이 돌아올수록 점점 선명해지는 꿈의 색에 정신이 집어삼켜질 것만 같았다. 거기에 지끈지끈한 두통까지 더해지니 차라리 꿈을 꾸고 있을 때가 나았단 생각까지 들었다. 어느 쪽도 결코 달갑지 않지만.
이불을 움켜쥐고 숨을 몰아쉬는 내 머릿속으로 주마등 같은 꿈의 내용이 빠르게 흘러갔다. 흘러간다...
차르르륵...
...새까만 어둠. 한가닥 빛도 없는 그 곳에서 나는 눈을 뜬다. 현실의 눈을 감고 허상의 눈을 떠 내가 떨어진 나락 속을 바라본다. 아무것도 없는, 내 몸마저 내 눈으로 볼 수 없는 그런 어둠이자 심연 속에서.
문득, 하나의 빛이 반짝인다. 나는 자연히 그것을 쫓아간다. 그 빛을 향해 나아가면 보이는 것은 하얀 손. 손 밖에 없는 무언가. 손 뿐인 무언가가
절규하고 있다. 그 순간 귀를 찢는 비명이 내게도 들려온다.
시, 싫어어어어어!!!!!!
강렬한 거부, 거절의 기운이 담긴 비명은 너무나 강렬해서 나도 모르게 그 손으로부터 도망친다. 도망치다보면 또다른 빛이 보이고, 다시 그 쪽으로 이끌리듯 간다. 그러면 이번엔 새하얀 몸통이. 절반 뿐인 몸뚱이가 간헐적으로 떨고 있다. 그 단면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로 다시 비명을 지른다.
비명. 비명. 비명.
나는 다시 도망친다. 새로운 빛을 찾는다. 그 빛으로 다가가면 새로운 신체 조각을 발견한다. 조각은 다시 비명을 지르고 나는 다시 도망친다. 다시 새로운 빛을 찾는다. 다시 그 빛으로 다가가면...
끝없이 반복되다보면 어느새 어둠 속은 비명으로 가득차있다. 모든 비명이 한데 합쳐져 공명한다. 이 어둠을 부숴버릴 작정인마냥 거대한 비명이 울려퍼지지만 어둠은 부숴지지 않는다. 나는 이제 도망칠 수 없는 노이즈 속에서 정신이 혼미해져 감을 느낀다. 아, 이대로 끝났으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그 순간 비명이 그친다. 그리고 무수한 시선이 나를 향한다. 보이는 눈은 없건만 찌르는 듯한 시선만이 나를 향한다.
너... 네가 우릴 가뒀어...
비명이, 나를 향해, 말하기, 시작ㅎ-
네가!!!!!!!! 너 때문에!!!!!!!!!!!! 왜!!!! 왜 살아있는 거야!!!!!!!!!! 우리는, 우리느으으으은!!!!!!!!!!!!!!!!!!!!
"아....아니야, 너희를 가둔 건 내가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나는 내 목소리를 내어 거대한 무언가에게 대항하지만 상대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비명의 소리에 내 작고 작은 목소리는 묻히고, 흩어지고, 사라진다. 듣고 싶지 않아 귀를 막아보지만 역부족. 마치 소리에 유린당하는 것 같은 감각을 느끼며 몸부림을 치고 있다보면 그것들은 그 말을 한다.
같아져야, 같아져, 같아, 같, 아...? 그 말이 뇌리에 꽂혀든다. 조각난 몸. 절단된 몸뚱이. 있어야 할 것이 없는. 어딘가 부족한. 온전하지 않은. 그것들과 같아진다는 것은.
"시...싫어어어어!!!!!!!!!"
나는 비명을 지르며 거부한다. 하지만 그 어둠 속에서 도망칠 곳은 없다. 도망칠 곳은 없지만 그것들, 그들이 나를 잡아챌 곳은 있다. 나는 잡히고, 무수한 악의에 의해서 온 몸이...
으드,득
더이상은 떠올려선 안 돼. 본능적인 직감에 나는 혀를 깨물었다. 그 통증으로 하여금 말려들어가는 정신이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려고. 사정 없이 씹은 혀끝이 너덜거리며 아파오고 비릿한 맛과 향이 입 안에 가득 퍼지자 일순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어찌어찌 의도한대로 제정신을 차렸기에 다행이었지만.
"흐읍, 흐윽, 흐읏, 흐..."
아픔이 선명해질수록 현실감이 살아나고 동시에 목메임이 스물스물 올라왔다. 억울함과 분함, 원망스러움이 동시에 치솟아올라 이윽고 한 방울의 물방울이 되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물방울이 한 줄기가 되어 흐르는 것 역시.
"왜...왜 내가, 왜..."
북받친 감정에 뒤섞여 나오는 탄식과 오열은 너무나 작았다.
나는 손이 새하얘지도록 이불을 쥐고 남은 밤을 지새웠다. 이제는 아플 리 없는 상처를 움켜쥐고, 한껏 웅크린 채 홀로 밤을 지새웠다.
비류는 이사장실을 나서자마자 여유롭고 느긋하지 못한 걸음을 빠르게 놀렸다. 빌어먹을 무희들. 빌어먹을 예언. 예언을 실행시키기 위해 직접 움직일 수도 있다고?
인적이 드문 수련장으로 걸음을 돌린 그녀가 이내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몇개 풀어해치고 있는 목이 답답한 느낌에 목께의 옷깃을 잡아 당기며 기침했다. 여유롭고 느긋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기에 자신을 아는 사람이 지나가지 않기를 바라며 비류는 손가락을 입에 넣고 수련장 구석에 허리를 숙이고 구역질을 하고 말았다.
역겹지. 역겹기 그지 없어. 침묵해야했다. 바람은 소문을 빠르게 퍼지게 하며 모든 것에는 귀가 있다. 발설할 이는 없으나 듣는 이는 많다. 비류는 잠자코 몸을 추스르며 이곳에서 들은 것을 잠자코 침묵하기로 했다.
실행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졸업 후에 돌아가서 ㅡ
"언니"
햇빛이 뜨겁고 바람은 적었다. 비류는 숨을 몰아쉬면서 손수건으로 입가를 막으면서 가만히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괜찮다. 괜찮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비류는 빠르게 자신의 페이스를 되찾아가고 있었다.
하루종일 훈련장에 틀어박혀 공국의 레일캐논을 작게 축소한 형태의 응용법을 연구하고, 오차를 측정하기를 계속 반복 하다보니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버린 시간대였다. 사실 계속 뭔갈 먹어가면서 훈련중이다보니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그래도 점심을 건너뛰었다는 심리적인 느낌은 무시 할 수가 없는 노릇. 하는 수 없이 가까운 카페테리아에서 샌드위치를 사와서 한 손에 쥐고, 한 손으로는 계속 레일캐논 축소판을 생성해가며 테스트를 한다.
햇빛을 피하기 위한 용도로 푹 눌러쓴 로브의 모자에도 불구하고,여전히 쨍한 햇빛은 자신을 기분 나쁘게 했다.머리부터 발 끝까지 전부 로브가 가려주니 화상을 입을 걱정은 없었지만,자칫 잘못하다가는 피부가 상해버릴지도 몰랐다.자신의 피부는 꽤나 약한 편이었으니까.어깨 위에 앉혀둔 레이도,더운지 연신 부리를 벌리고서 허덕이고 있었다.그럴때마다 물통에 따로 챙겨온 물을 레이에게 먹이고,또 살짝 장난치듯 뿌려가며 더위를 식혀 주었다.
자신이 어디를 가기 위해 나왔느냐고 묻는다면,별 이유는 없었다.그저 레이가 저처럼 방 안에만 틀어박혀있으니 꽤나 심심해 보였기에,바람좀 쐬어 주려고 나온 것이다.근데 햇빛이 이렇게까지 강할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해가 저물려면 아직 한참 더 걸릴것 같았다.바람조차 없는 날씨에 더워 보일지도 몰랐지만,의외로 루이는 더위를 잘 타지 얺았다.대신 추위는 지독히도 잘 탔다.
"많이 더워 보이시는걸요,레이.제 곁을 지키는 것은 잠깐 보류하고,나뭇가지에 앉아 햇빛을 피하고 계시는 건 어떠하신지요?"
이 날씨에 그늘도 없는 제 어깨에서 고생하고 있을 레이가 매우 안쓰러웠던 건지,적당한 거리에 있는 음지에 자라난 나무를 가리키며 말했고 레이는 곧 그리로 날아갔다.저곳이라면 그나마 시원하게 있을 수 있겠지.레이를 나뭇가지에 앉혀놓고서 주위를 슥 둘러보니 아무래도 수련장인듯 싶었다.수련장에 저가 앉아있을만한 곳이 있던가.아무래도 자신이 이곳에 있는 유일한 사람일줄 알았더니만,먼저 온 객이 있었더란다.
"앗."
분명 그때 같은 팀으로써 활약했었던 적 있는 그 여인.비류였다.그러나 이번에는 평소와 분위기가 달랐다. 구역질.무언가를 잘못 먹은 탓인가,아니면 역겨운 무엇이라도 본것인가.혹시 이 더운 날씨 탓에 일사병이라도 걸린 것일까.어느 이유인지는 크게 개의치 않고서 살며시 그녀의 뒤로 다가서서는 등을 토닥였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속은 괜찮으신지요?"
걱정스러운듯한 표정을 하고서 다정하게 토닥이고 몇번 쓸어내려 주고는 허리를 들었다.지나가는 사람이 적은 길이라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을까.
이런, 그 사이에 새로운 일행이 와 있었나. 그렇다면 저쪽에 방해되지 않게 내가 조금 더 물러나야겠지. 아마 하급생일 이름 모를 누군가를 향해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절반 정도의 공간을 비우는 정도로 자리를 옮겼다. 레일 캐논은 소음이 심할테니 차음용으로 배리어도 세워둘까 생각했지만, 역시 과한 오지랖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냥 공간을 절반씩 나눈 정도로 족하기로 하자. 시끄러우면 시끄럽다고 말할테니 차음벽을 치는건 그때 가서도 늦지않다.
"으음..."
어떻게 바꿔볼까. 일직선형 패널을 조금 비틀어 볼까. 그러면 탄환에 회전력이 더해져 더 강해지겠지. 패널의 구조를 바꿔 한바퀴 정도 강선이 생기듯 비틀어 다시한번 시도 해 보니, 역시나 예상했던대로 출력이 강해졌다. 부딛히는 소리가 더 커진걸 보니 유의미한 타격력도 확보한 것 같고.
비류는 숨을 몰아쉬면서 자신의 눈을 두어번 깜빡이다가 이를 악다물었다. 실습용 아바돈을 목도했을 때에도 흔들림 없이,되려 여유롭기 그지 없는 행동을 해보였던 그녀는 이사장에게서 들은 그 모든 것이 역겹기 그지 없었다.
귀걸이를 더듬거리면서 빼려고하던 비류의 손길이 멈춘 건 등 뒤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였고 그녀는 몸에 익은 익숙하기 그지 없는 행동으로 얼음으로 짧은 단도를 만들어보이려는 듯 늘어트리고 있던 팔을 움찔 움직였다.
밝은 달에 기대어 어둠에 숨은 자. 비류는 여유롭고 느긋하게 고개를 들고 혹여 지저분해지지 않았는지 자신의 옷차림을 체크하면서 평소 두개쯤 풀어해치고 있었지만 당기듯이 잡아뜯은 탓인지 하나가 더 풀린 셔츠 차림을 한 채 손을 가볍게 흔들어보였다. 여유롭고 느긋한 제스처였다.
"미안하군. 사람이 없는 곳이라 추태를 보이고 말았어."
속은 괜찮아. 비류는 몸을 돌려서 흐트러진 자신의 머리카락을 정리하기 전 얼음조각을 이용해 손을 닦아내면서 여유롭고 느긋한 미소를 짓는다.
"오랜만이야. 루이. 잘 지냈나."
느긋한 태도로 손을 다 닦아낸 뒤에 비류는 바닥으로 손을 닦아낸 얼음 조각들을 떨어트리고 헝크러진 머리를 넘기며 여유로이 웃어보였다.
자연스럽게 반씩 나뉜 훈련장 안에서 상대는 상대대로, 나는 나대로의 훈련을 시작했다. 차근차근 몸풀기를 마친 후 훈련장에 비치되어 있는 훈련용 나무봉을 하나 들었다.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들었을 목검이 오늘따라 무겁게 느껴졌다. 살짝 팔이 떨렸지만 못 들 정도는 아니고 못 움직일 정도도 아니었기에 이걸로 할 생각이었다.
"흣, 후으-"
치는대로 궤도가 바뀌는 훈련용 허수아비를 한창 상대하고 있는데 뒤에서 별안간 어떤 소리가 났다. 큰 듯도 하고, 아닌 듯도 한 그 소리에 순간 깜짝 놀란 것이 화근이었다. 놀란 탓에 허수아비를 치고 반동으로 휘어오던 봉을 미처 피하지 못 하고 그대로 얼굴을 후드려 맞아버린 것이었다.
"악!"
단말마 같은 비명이 입 안에서 터졌다. 눈가를 후려친 충격에 정신마저 아찔해져서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손을 벗어난 나무봉은 바닥을 데구르르 굴러가고, 나는 얼얼한 눈가를 손으로 감싸쥐고 짧은 호흡을 하고 있었다. 손으로 감싼 곳에서부터 무언가 뜨끈한게 느껴지는 것도 같았다.
"후후,괜챦습니다.사람이 없는 곳에서는,누구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말이예요."
당장 자신만 하더라도 어제 제 방에 있었을때 그러지 않았는가.뭐,금새 사그러들 광기였기에 망정이었지. 속은 괜찮다는 말이 들려왔다.그렇다면 앞서 유추했던 그런 이유들은 아닐 것이었다.뭔가 말하지 못할 고민이 있었던 것 같아 보였다.그녀 역시도 자신처럼 비밀이 많은 타입인것 같아 보였단 말이지.
"어머,용하게도 누군지 알아보셨네요?목소리 때문이었던 것일까요~"
얼굴을 가리듯 살짝 흘러내린 로브 모자를 살짝 들춰 보이며 방긋이 미소지었다.자신이 아무리 피부가 약하다고는 해도 햇빛에 닿자마자 파스스 하고 녹아내리는 그런 타입은 아니라서 잠깐의 노출은 괜찮았었다.다만 조금 더 오래 내놓고 있는다면 그새 새빨개지고 화끈거리겠지.
"네에,그럼요.저는 잘 지냈답니다.비류 아가씨께서도 그간 평안히 잘 지내셨었는지요?"
다시 느긋하고 여유로운 모습을 되찾은 상대를 바라보면서 곱게 웃어보이고는 평소와 다름없이 예를 갖춘 격식있는 제스쳐를 취하며 신사스러운 인사를 건네었다.자신의 복장은 그닥 격식있는 복장은 아니었지만,크게 신경쓰일 것도 없었다.
"참,그리고 어째서 이런 곳에서 그러고 계셨던 것인지,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한번 여쭈어보아도 되겠습니까?물론,대답하기 버거우시다면 궂이 답해주시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질문은 질문일 뿐이고,자신이 하는 것은 강요가 아니고 권유였으니까.상대방에게는 발언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누구나 그런 권리가 있기야 하겠지만은.하지만 내가 ■■가 된다면......
흐아암,프란츠랑 같이 수련장 가서 열심히 수련중인데. 프란츠 이녀석이 놀라운 성장을 했다. 재작년에 봤을때보다 50미터 달리기 기록을 1초나 단축했으니까! 이야,이렇게 열심히 수련 안하는거 같아보여도 열심히 수련 하는구나! 나는 속으로 감탄하며 프란츠의 어깨를 탁 치고 말한다.
"프랑,평소에 공부만 하고 사는줄 알았는데 진짜 열심히 연습하네? 달리기 속도 이렇게 줄이고 말이야. 이제 달리기 속도는 나랑 비슷해졌자너. 아! 물론 신체강화 안했을때 기준이지만."
신체강화 하면 50미터를 거의 3초컷으로 끊을 수 있는데. 요즘 다시 안재봐서 모르겠다. 몸 키우면 달리기 속도 더 느려져서... 그동안 50m 달리기 2초대가 목표였는데,어째 이 기록은 세우기 힘들단 말이지! 자세를 잘 못잡아서 그런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프란츠 이녀석이 수련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허어,예나 지금이나 쌍검이구만. 저기요,쌍검은 쓰는게 아니에요. 차라리 대검을 들어라. 하지만 그럭저럭 잘 쓰긴 한단말야,정말 빠르진 않지만 칼 끝에 힘이 제대로 실려있고 부드럽게 이어지고 횡으로 넓게 베는 범위도 일품이다.
"그래도,그렇게 휘두르면 너무 빨리 지칠걸?"
실전에서 프란츠의 체력이 얼마나 버텨줄지가 문제니까,프란츠의 쌍검 연습이 끝나자 나는 그렇게 한마디 해준다. 나도 신체강화 능력 없이 저렇게 쌍검 휘두르면 빨리 지칠거 같은데 프란츠가 시작부터 끝까지 저렇게 휘두를 수 있을까. 의문이 생기는건 사실이다.
"그나저나,뭐 재미있는 썰 없어? 이제 좀 쉬는 타임이잖아. 한번 재미있는 썰 좀 열심히 풀어봐봐. 응? 응? 요즘 잘 되가는 여자애 한명 있어? 아니면 러브레터 같은거 받아본적 없냐?! 좀 재미있는 썰 있을거 아냐!"
없을리가 없지,우리 둘이 2학년이었을땐 얘가 발렌타이 데이때 받은 초콜릿이 한 빡스였어요! 어휴,진짜 그때 나는 초콜릿이라고는 돈 주고 내가 사먹은 핫쪼꼬 한컵뿐이었는데! 이자슥은...
어느 쪽이든 황가의 일원들과 공화국의 자들과는 깊은 관계를 맺으면 안됐다. 비류는 자신을 바라보는 깊게 눌러쓴 로브 아래의 얼굴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보려고 했으나 이내 여유로이 슬금 시선을 돌려 느긋하게 미소를 지어내보였다. 속 안에서 피가 치밀어오르는 느낌이였다. 아니 사실은 더 게워내지 못한 역겨움이 분명했다. 단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비류는 천천히 입을 연다.
"이해해줘서 고맙다. 루이. 그리고 이 아카데미에서 너처럼 독특한 말투를 쓰는 사람은 그리 많이 보지 못했거든. 고풍스럽고 고아한 말투 말이야."
로브를 올려 미소 짓는 그의 모습에 그녀도 느긋하고 여유롭게 미소를 마주 지어보이고는 손을 뻗어서 그 로브를 다시 당겨 얼굴을 가리게 해버리며 곱상한 얼굴 다 상하겠군. 모호한 말투로 덧붙히는 건 명백한 농담이였다. 그 와중에 그의 손과 자신의 손이 스치듯이 닿은 것에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냥 그렇지. 아카데미 생활이라는 게 별거 있는가."
비류는 양팔을 머리 뒤로 옮겨 깍지를 낀 뒤에 여유롭고 느긋한 태도를 취하며 대답하다가 일순 아가씨라는 호칭에 슬몃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고 격식있는 인사에 큭큭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런 인사는 됐어. 덧붙히는 말 끝에 무언가가 뚝뚝 늘러붙어있지는 않았겠지.
"아침을 먹은게 잘못됐나보더군."
루이의 질문에는 여전히 머리 뒤로 깍지를 낀 느긋하고 여유롭지만 예의에서 벗어나지 않고 무례하지 않은 태도를 유지하고 비류가 그렇게 답했다. 바보같지 않은가. 눈을 찡긋해보이는 것이 지극하게 여유로웠다.
보통 잘 달리는 사람이 50m를 어느정도 뛰었더라? 그는 약간 쓸데없어 보이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손을 탁탁턴다. 7초? 8초? 아마 그정도 였던가.. 결국은 잘 모르겠다는 결론을 냈다. 그렇게 살짝 정신을 놓고 있을때쯤 테오도르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마 그가 놀란것은 척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 아, 그런가요. 하하.. "
최근에 정신을 이상한데 두고 다니는 때가 많아졌는데, 오늘도 여전히 그 상태였다. 언제부터 그랬냐고 하면 실습이 끝난 뒤부터, 라고 답할수 있겠다. 아무튼 그는 검을 꺼내들고, 이번에는 검으로 휘두르거나 찌르는 연습을 계속했다.
" 그래서, 싸울때는 한번 치고 빠지고를 반복하고 있어요. 크게 데미지를 주기는 어렵지만. "
연습이 끝나고 난 뒤, 프란츠는 테오도르의 조언을 듣고 그렇게 답했다. 어디 용어로는 히트 앤 런이라고도 하던데, 아마 그가 싸우는 방식과 거의 똑같은 의미라고 할수 있겠다. 그는 아무 곳에나 걸터앉고는 질문에 답했다. 왠지 곤란해보이는 표정이다.
" 요즘에는 별로.. "
아마 요즘 들어서는 그런 일이 없었다는 말이겠지. 이게 진심인지 아닌지는, 그만이 알고 있을것 같다.
"우후훗,저는 이 정도도 공감하고 이해하지 못할 만큼 심성이 문드러진 인간상은 아니니까요.그리고 역시 말투 때문이었군요?뭐,이 정도는 왕족으로써의 기본 소양이라고 생각하여,어릴 적 이 말투에 익숙해지려고 오만가지 애를 다 썼었지요."
이제는 꽤나 익숙해진 기분이지만요.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가며 입술이 부드러운 호선을 그렸다.근데,정말?정말로 익숙해진게 맞아?하,그런건 중요하지 않아.빛 속에 모든것을 감추기로 한 이상,익숙해지건 익숙해지지 않건 그냥 비슷하게 보이면 되는 것이었다.그렇게만 한다면 자연스러울테니까.지나친 완벽함도 부자연스러운 법이다. 다시 로브를 당겨오며 들려오는 말에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장난스럽게 수줍은 듯 웃어보였다.
정작 옷차림은 햇빛에 1초라도 닿으면 죽을 사람처럼 하고 다니면서. 손이 살짝 스치듯이 닿았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는것은 이쪽 역시 매한가지였다.이정도 스킨십은 실수로 치고 넘어갈수 있는 부류의 것이었으니까.아무튼,로브의 모자를 집었던 손을 얌전히 내려놓았다.너무 오래 빼놓고있으면 나중에 좀 고생하니까.
"뭐,그건 그렇지요.딱히 특출나게 이렇다 할 만한 일이 없는,평온한 나날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바깥과는 다르게 말이지요.왕족이라는 사람들은 아직도 자기네들끼리 왕위계승경쟁을 하느라고 혈안이 되어 있을게 뻔하였다.자신이 이곳에서 무사히 졸업을 하고 나간다면,과연 몇이나 살아남아 있을까? 아무튼 폭풍전야같은 바깥에 비하면 아카데미 안의 하루하루는 아바돈을 이용한 실습만 아니라면 굉장히 편안하고 아늑했다.
"아침이 잘못된 것이라...저런.역시 그러하셨군요."
아,잘못 생각했던 모양이었다.처음부터 속이 안 좋았던것이 아니고,지금은 조금 괜찮아졌다는 뜻의 이야기였구나.뭐,지금이라도 알아챘으니 눈에 띄이지 않게 자연스럽게 넘긴다.바보같지 않냐는 말이 들려왔고,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누구나 그런 실책은 하기 마련이랍니다.바보같은 일이 아닌,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은 저지를법한 실수라고 생각한답니다."
아침식사를 잘못 해서 체하는 경우는 왕족에게도 예외는 없었으니까.자신도 어렸을 적 무얼 잘못 먹고서 체한적이 꽤나 잦았었다.그것은 그저 제 몸이 다른 사람보다 특출나게 약한 탓도 있겠지만은,그렇다고 해서 왕족 형제자매중 자신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그렇게 바보같지 않은 일이다.
"나는 너한테 심성이 문들어졌다는 식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만. 그리 들렸다면 내 말투의 문제점이겠지. 사과라도 올릴까. 왕족님?"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는 루이의 모습에 맞춰서 비류는 여유롭고 느긋하게 웃음을 흘리면서 모호한 농담과 같은 말을 내뱉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무던하고 담백한 표정이 날카롭게 날이 선 인상에 덮어씌워지고 그녀는 싱긋- 하고 가벼이 수줍게 웃는 것에 별말씀을. 하고 예의바르고 무례하지 않은 인사를 여유롭게 해보였다. 물흐르듯이 자연스러운 태도였다.
"실습을 한 이상 그리 평온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음. 뭐, 너한테는 관계 없을지도 모르지. 평온하지. 평온하고 평온해서."
무뎌질것만 같아.라는 말을 비류는 굳이 입밖에 내지 않고 느긋한 목소리로 무던히 뱉어낼 뿐이였다. 아무래도 이 양지에 놓여있는 게 비류 자신에게는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언니. 언니. 차리리 쉴새없이 들어오는 인간들을 죽이는 게 덜 지칠거 같아. 여기는 또다른 감옥이야.
"그런거지. 뭐, 가끔은 이런식의 실수도 있는 거니까."
느긋하고 여유롭게 티나지 않은 거짓말을 하며 슬금 곁눈질로 그를 바라보다가 비스듬히 미소를 지어보인다.
"거기 계속 있을거야? 이쪽이 더 시원하다만. 이쪽으로 오지 그래?"
자신이 햇빛을 피하고 있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 나무 아래의 그늘을 가리키면서 비류는 무례하지 않게 상대에게 제안을 해보였다. 그러고보니, 여기는 수련하러 왔는데 내가 방해했는가? 하고 묻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는 웃으며 두 검을 칼집에서 꺼냈다.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의 손잡이 부분이 합쳐져 양날이 된다. 잠깐 그것을 휘둘러보던 그는, 난데 없는 테오도르의 대사에 흠칫한다. 데들리.. 브루탈.. 스타일리시..? 어디서 나온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는 그냥 웃고있을 뿐이었다.
" 후후. 그런 말 안해도 충분히 멋있어 보이는걸요. "
다른 뜻으로 바꾸어보자면, 하지 마세요. 가 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테오도르가 만화 주인공 이야기를 하자 그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착실히 자세를 잡았다. 그다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고, 진심을 다하..지는 않더라도 긴장 정도는 당연히 해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 그럼 선공은 받아가볼까요. "
말을 끝낸 뒤 그는 빠르게 돌진해 검을 휘둘렀다. 크게 휘두르는 것이 아닌 가벼운 견제정도의 느낌이었다.
괜찮다고 하는 사람의 상태가 굉장히 안 좋은데 대체 어디가 괜찮다는건지...얼음을 가지고 오려는 내 발걸음은 상대의 손에 붙잡혀 무마되었으니 어쩔 수 없이 있는걸로 치료를 하기로 했다.
"조금 따끔할거야! 참아!"
생체전기장의 출력은 최대로 했을 때, 전신에 약하게 쥐가나는듯한 감각 수준으로 약하지만, 환자라면 이 감각마저도 고통스럽게 느껴질지도 ㅗ른다. 그래도 안 하는것 보단 신체 컨디션의 회복을 촉진시키는데 도움이 되니까. 출력을 올리고, 왼손으로 상대의 손을 잡아주며, 포션을 꺼내 먹이려고 한다.
들려오는 모호한 말에 자신이 무언가를 실수한건가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그리고는 이내 가볍게 웃어 보이며 고개를 살랑 내저었다.
"아니요.제가 말한것은 그 뜻이 아니었답니다.그저 제 인간상이 그렇지 않다는 걸 새삼스럽게 다시 알리기 위한 자기방어적 수단이었지요.비류 아가씨의 말투에서 문제점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었습니다."
그리 들려서 그런 수식언을 붙인 것이 아니라는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키고,사과라도 올릴까 하는 말에 고개를 저었다.이유 없는 사과를 받아봐야 제 마음만 편치 않을 뿐이었으니까. 뭐,지금 제 눈 앞에 서 있는 그녀의 성격상 이것 역시도 그저 가벼운 농담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원래 이런 것으로 자주 농담을 주고받기도 하였으니까.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태도를 보며 역시 장난이었겠거니 생각하고서는 입을 연다.
"뭐,저는 아바돈이라는 것들에 대해 그렇게 적대적인 감정도 가지고 있지 않고,그렇다고 해서 친화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그저,방해가 가는 것은 그 죄를 죽음으로 사할 뿐이지요."
간단하게,방해가 간다면 싸그리 쓸어버린다는 뉘앙스의 말이었다.허나 그가 그렇게 험한 단어를 감히 입에 올릴 리 없었으니. 아무튼,비류의 말이 맞다고 생각하였다.자신에게는 실습이 그렇게까지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실습은 실습.딱 거기까지 선을 그어놓고서 그 이상으로 넘어오게 하질 않았다.제아무리 아바돈이라고 한들 그것 역시 그냥 아바돈일 뿐.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더한 의미부여는 하지 않았다.
"지나친 평온함도 그닥 좋진 않지만요.무엇이든지 그 정도가 지나치면 결국에는 해가 될 뿐이니까 말이예요."
칭찬도 자꾸 들으면 질리는것과 마찬가지였다.한두번은 괜찮지만,조금 더 지나면 질리고,계속 듣는다면 짜증날 것이고,그것이 지속된다면 결국에는 미쳐버리겠지.가끔은 이런 식의 실수도 있다는 말에 가벼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쪽으로 오라는 말에 잠깐 머뭇였다.
"..제가 그리로 가도 불편하지 않으시다면야,그러도록 하지요."
행여 자신이 가서 불편하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안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애초에 불편하다면 자신을 부를 이유가 없었으니.그저 예를 갖추기 위한 면목으로 그리 말하고서는 그늘 아래로 갔다.그늘 아래라서 그런지 태양빛이 가려졌고,로브 모자를 벗었다.그늘 아래에서는 벗어도 상관 없었으니.모자를 따라 고운 머리칼이 살짝 쓸려내려가 흐트러지자,빗과 손거울을 꺼내 그것을 가볍게 정돈하였다.
"아,그건 아니니 신경쓰지 않으셔도 괜찮답니다.저는 그저."
잠깐 말을 멈추고는 가볍게.그러나 적당한 거리에서 확실히 들릴만한 크기로 휘파람을 불었고,저쪽 나무에 잠깐 앉혀두었던 제 반려는 그새 자리를 옮겼던것인지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자신을 향해 큰 날개를 펼치고 날아와 제 팔에 완벽히 착지했다.
"이 아이가 지루해하는것만 같아,잠시 바람좀 쐬어줄 겸 나왔답니다."
그새 또 무엇인가를 먹었던 것인지.부리에 드문드문 묻은 검붉은 것을 물로 가벼이 씻어주고는 다시 살살 쓰다듬었다.그늘진 자리에서는 같이 있어도 너무 더워하지는 않을 테니까.
상대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다시 한번 쨍하게 울렸다. 아니 정말 괜찮은데. 그러니까 아무것도 하지 말았으면. 건드리지 말아요. 내가 뭐라거나 말거나 조금 따끔할 거라고 하더니 이내 온몸이 저릿해지는 감각에 휩싸였다.
"으윽..."
감긴 눈 안쪽에서 별이 튀는 느낌이었다. 지난밤 악몽과는 다른 감각에 그냥 얌전히 기숙사에나 박혀있을 걸, 하는 후회 아닌 후회가 몰려왔다. 괜히 나와서 이런 상황을 맞이하는 것보다 나았을 것을. 아 해보라는 말에 턱이 벌어지긴했으나 자의로 벌린 것은 아니었다. 온몸에 쥐가 난 듯한 느낌에 저절로 벌어진거지. 막으려고 해도 손을 붙잡혀 움직일 수 없었으니, 고스란히 상대가 하는 대로 두는 수 밖에 없었다.
발차기가 날아오자 그는 순간적으로 몸을 뒤로 빼려 했지만, 곧 퍽 하는 소리가 나며 가격당했다. 약간이라도 피했기 때문에 고통은 생각보다는, 어디까지나 진짜 생각보다는 적었다. 그는 다시 뒤로 빠지면서 기회를 노렸다. 신체 강화라는건 어떻게 쓰든지 위협적인 능력이니까, 한방 한방에 집중해 피하는 수 밖에 없을까..
" 왠지 진심이 담긴 것 같은데요? "
그는 맞은 곳을 손바닥으로 감싸면서 말했다. 뭐, 진짜 심각하다기 보다는 농담조에 가까웠으니 별 문제는 없어보인다. 말을 마치고, 그는 다시한번 공격을 시도했다. 이번에는 뒤로 돌아가볼까. 순간적인 가속을 이용해 가까이까지 빠르게 접근해, 그대로 파고들기를 시도한다. 월광검이 닿기에는 조금 가까울 때까지 거리를 좁혀야 할텐데.
비류는 느긋하고 여유로운 태도와 무던하고 담백한 표정을 동시에 공존시키며 몹시 익숙하게 루이의 아가씨라는 호칭을 지적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모호한 농담과 장난,또 이어지는 농담으로 친분을 쌓아왔던 사이니까 그또한 크게 신경쓰지 않을거라는 걸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생각을 이해라도 한 건지 그는 자신의 말을 장난으로 받아들였다. 싫어하지는 않은 성격이다. 가끔씩은 그래. 맹금류 같은 남자라고는 생각한다.
"이런이런, 무서운 신사분이로군. 고운 얼굴에서 나올 험하기 짝이 없는 말이지만. 동의하지 않을 수는 없네."
그녀또한 아바돈에 대해서 적대적이지도 친화적이지도 않았다. 그녀를 움직이는 것은 아주 단순했다. 왕녀의 안전. 더 나아가서 왕의 안전. 그것에서 오는 숭배와도 같은 맹목적인 애정과 충의. 비류는 깍지를 끼고 있던 손을 떼어내서 자신의 헝크러진 머리카락을 대강 손으로 정리하고 루이를 응시했다.
"독이지. 지나친 평온함과 안락함은 독이되는 거다."
불편하지 않으시다면, 이라는 말에 비류는 불편하지 않다는 제스처로 손을 가볍게 까딱여보인 뒤 루이가 그늘로 들어와서 머리를 정리하던 그의 휘파람 소리에 날아오는 커다란 까마귀를 볼수 있었다.
일단 어느정도 처치는 끝났으니 전기장이 알아서 치유하는 동안 다음 일을 생각 해 보자. 억지로 치료 한 것에 대한 사과? 아니면 다른 거? 대체 어떻게 해야할까. 아 그냥 차음벽을 치고 연구할걸. 그러면 이런 일도 없었을텐데. 양반다리로 앉아서, 전기장의 치료가 끝날 때 까지 든 생각들은 대체로 그러했다.
"...정신이 들어?"
전기장이 완전히 걷히고 나서 먼저 한 말은 그거였다. 아까보다는 확실히 컨디션 회복이 되었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라 다시 한 번 되물었다.
쳇,까다롭게 움직이는구만! 프란츠가 점점 머리를 잘 쓰기 시작한다. 예전에는 꽤 쉬운 상대였는데,이젠 방심했다가는 순식간에 골로가버리겠어. 프란츠의 빠른 파고들기는 그만큼 위협적이었다. 저번에 대련했던 커피녀의 파괴적이고 단순하고 직선적인 공격보단,이렇게 트리키하게 들어오는 공격이 피하기는 훨씬 힘드니까. ...상대가 내가 아니라면 말이지,프란츠,미안하지만 아직 날 이기려면 한참 멀었어.
아주 부드럽고 가볍게 스텝을 밟는다. 그저 한 걸음을 하늘로 내딛은 것 같은 스텝이지만,프란츠와의 거리는 순식간에 벌어진다. 그래,나는 화려한 능력도 뭣도 없으니까 이런 기술이라도 배워둬야지. 그리고 말야,이쪽이 그런 초능력보다 훨씬 강하다고!!!
스텝을 밟고 여유롭게 거리를 벌리고 나서는,이제 견제용으로 프란츠에게 고무탄이 장전된 마리아를 쏘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프란츠도 이 사격자세를 보고 재빨리 스텝을 밟아서 헛방. 예전이라면 이렇게 파고들기를 유도한다음 백 스텝을 밟고 총을 한발씩 꼭 얻어맞았는데,다시 빠르게 스텝을 밟아주는 걸 보면 프란츠의 실력이 많이 늘긴 늘은거 같다. 응.
"너도 능력 쓰지? 나도 쓰고 있는데 말야."
나는 그렇게 말하고 재빨리 스크롤을 꺼내 찢어 월광검에 인챈트를 한다. 자아,지금부터 프란츠가 2페이즈로 들어갈텐데,엄청나게 빡세지겠구만.
"염력으로 견제 안하면 패링 당하기 너무나 쉬울테니까 말이지."
프란츠,아직도 패링 잘 당하려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이번에는 마리아를 장전했다. 그래,지금은 살살 기다려주자,프란츠가 어떻게 나올지 한번 봐야지.
"괜찮습니다.호칭을 떼고 이름만으로 부르는 것은,격식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하니까 말이예요."
제 어미가 아무리 악하더라도,결국에는 왕족의 핏줄이라는 것은 변함없는 일이었기에 끝까지 예를 갖추어 깍듯하게 대하는것이 맞는 일이었다.그러는 것이 왕족으로써의 이미지에 더 잘 맞았으니까.혈통에 대한 체면만큼은 완벽하게 지키는것.그것이 최우선 순위였다.
"어머,험한 말이었나요?이런,제가 잠시 실언을 했던 모양이군요.감히 그런 고결하지 못한 단어를 입에 담다니."
어쩌면 그것이 너의 모습에 걸맞는지도 모른단다,아가.제 옆에 자기 어머니가 계셨더라면 그렇게 말했을까.아니,그러지는 못했을 것이다.자신은 확신할 수 있었다.그리고 그 확신은 절대로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끝내는 자기 확신이 맞아 떨어질 것이라는것도.
왜냐하면.....
"으음,그렇지요.독이 되지 않게 스스로 잘 조절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답니다.비류 아가씨께서는 간단히 해내실것 같지만요."
아,잠깐 생각이 다른 곳으로 새어나갔군.다시 상대와의 대화에 촛점을 맞추기로 했다.지나친 평온함과 안락함은 독이 된다.맞는 말이었다.너무 평온해서 곧 가해져올 위협에 대한 감각마저도 무뎌진다면 그것은 곧 인생의 끝자락을 예고하니까.자기 컨트롤이 쉽다면 그것은 별 무리없이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네.제 곁에서 너무 더워하기에,잠시 열좀 식히라고 저쪽 그늘진 곳의 나뭇가지에 앉혀 두었었지요."
비류가 까마귀와 시선을 맞추자 까마귀도 잠시 시선을 맞추는 듯 싶었다.새카만 눈동자가 익숙한 이를 바라보자 살짝 반짝이는듯 싶었다.그닥 경계하는 모양새는 아니었다.
생각만 해도 별로 달갑지는 않은 단어다. 그야 검으로 패링은.. 할수 있긴 하지만 어렵고, 방패나 총은 그가 쓰는 무기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평소 대련할때도 자주 당했던 방식인데, 어떻게 대처해볼까. 테오도르가 무기에 인챈트를 하자, 그는 검 하나를 손에서 떼어놓는다. 이때 다른 손에 잡을수 있는 무기가 있다면 좋을거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손에 검을 잡고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려한다. 허공에 떠있는 검은 그가 거리를 좁힐때 함께 날아가 쉽사리 대처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렇다고는 해도, 다른 한 손에 아무것도 없는 것이 너무 신경쓰이는데. 평소라면 검을 양손으로 꽉 쥐고 돌진했을 터이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도 한 국가를 통치하는 왕의 동생으로서 아카데미에 와있는 주제에 내뱉는 목소리에 모호한 농담을 섞었다. 실상, 그녀는 본국에서 없는 존재였으며 동시에 태어나자마자 죽은 존재였으니까. 라는 건 3년 전에 깨졌지만서도. 으으음, 하고 생각에 잠겨서 목의 문신을 쓰다듬는 손길이 느긋하고 여유로웠다.
"그정도로 험한 말이라고 하기는 했지만 대부분 다 쓰는것 아냐?"
비류는 여유롭고 느긋한 어조로 무던히 담백한 표정을 지으면서 루이의 기준에 한해 고결하지 못한 단어들을 줄줄 몇가지 읊어주다가 비스듬히 미소를 짓는다. 장난이라고? 라고 모호하게 덧붙히는 건 역시 그녀는 잊지 않았다.
"내가? 음. 글쎄 과연 어떨까싶다만. 내가 보기에는 루이 네가 더 잘해낼것 같다. 피차일반 서로가 더 잘 조절할거라고 칭찬하는군."
자기 컨트롤인 것이다. 비류는 중얼거리면서 여유롭고 느긋하게 까마귀를 바라보던 시선을 슬금 돌려 지그시 루이를 바라보며 가늘게 떴다. 딱히 무언가를 찾아내려는 건 아니였기에 비류는 경계하지 않는 까마귀를 한번 쓰다듬을 까 생각했다.
"후후,적응만 된다면 그렇게까지 고된 일은 아니랍니다.제왕학이 조금 힘들기는 하지만,그래도 스스로 독학할수 있기도 하구요."
사실 격식을 차리지 말라고 한다면야 충분히 격식을 놓아버릴수 있었다.지금 당장도 이성을 잃고 본성을 드러낸다면 더더욱.그러나 아직까지는 격식을 차리는 것이 자신에게는 더 잘 어울리는 일이었으며,자신은 그래야만 했다.지금까지 쌓아왔던 순결함을 순식간에 잃는 일은 원하지 않으니까.
"어머나."
대부분 다 쓰는것이 아니냐는 말에 고개를 살짝 갸웃 기울였다가,예시를 몇개 들어주자 눈이 살짝 동그래졌다.마치 그런 단어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것이 가능하냐는듯한 표정으로.정말 아무렇지도 않게.스스로가 스스로를 속인 채로 그렇게 행동하고 있었다.다시금 들려오는 장난이라는 말.정말이지,장난치기를 참 좋아하는것 같다고 생각했다.물론 그 장난 속에 숨겨진 진실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장난이라도 꽤나 놀랐답니다.순간 정말인 줄 알아버렸지 뭐예요.저는 어려서부터 다른 형제자매들의 권력다툼에는 끼어들지 않고 오로지 저희 형과 함께 조용히 지내왔으니,그런 단어들을 함부로 입에 담을 생각조차도 하지 못했지요."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었지만,어느 정도의 모순은 섞여있기 마련이었다.조용히 지내왔던 건 맞는 말이었지만 나머지는.........글쎄?믿거나 말거나.자신은 무조건 거짓만을 담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그렇다고 해서,무조건 진실만을 담는 사람도 아니었다. 이어지는 말에 눈꼬리를 곱게 접고 고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런가요?후후,그것은 지켜보아야 알 일이겠지요.사람의 일이라는 것은 가히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서로가 서로에게 공평하고도 평등하게 칭찬을 건내는 건...괜찮은 모습이지요.그렇죠?"
가장 이상적인 군주의 마인드.누구나 차별 없이 공평하게,평등한 위치에서 소통할줄 알아야 하는 것. 상대방의 말에 공감하는듯 방싯 웃으면서도 나름 괜찮은 모습 아니냐며 말을 이었다.칭찬을 서로 주고받는것만큼 보람찬 일은 없었으니까.남들은 어찌 생각할지 몰랐지만 일단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고는 있었다.아마도?
여유롭고 느긋한 태도로 비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루이의 말에 이해를 못하겠다는 뜻이 내포된 모호한 느낌의 어조로 중얼거렸다. 자신의 왕도 제왕학에서는 꽤 고전하던 것을 떠올렸다. 아차, 왕이 아니라 언니라고 해야지.
비류는 잠시 고개를 들고 버릇처럼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느긋하고 여유롭게 한쪽으로 기울이자 오른쪽 귓볼의 귀걸이가 가볍게 흔들린다.
누가 보더라도 놀랐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는 그의 모습에 큭큭하고 고개를 돌려서 여유로이 큭큭 웃음을 터트리면서 어쩔까하는 뜻이 내포된 여유롭고 느긋하게 어깨를 으쓱여보인다. 슬몃 눈썹을 치켜올리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루이가 어디 출신이였지. 운투국이였나? 조용하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지."
비류는 루이의 팔에 있는 까마귀를 향해 느긋하게 손을 뻗어서 쓰다듬으려고 시도하며 고혹적인 미소에는 그저 슬몃 시선을 돌릴 뿐이였다. 왕위 찬탈은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자신의 언니는 시해당할 일이 많았지. 예언이라는 걸 믿는다면 그러지 말아야하는데. 비류는 비릿한 피맛이 올라오는 것에 눈가를 살짝 찡그리곤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묻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잠깐 하늘을 올려다보는 상대의 모습에 저도 잠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태양이 불편하다는것만 빼면,파란 하늘도 나쁘지는 않아.다만 자신에게는 새카만 밤하늘이 더 잘 어울릴 뿐이었다.제 출신을 물어오는 말에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운투국 출신이랍니다.허나 다른 형제자매들과는 다르게,권력에 그렇게까지 욕심이 없지요."
만약 권력에 미련이 있었으면 이곳에 있지도 않았을 테니까요.하고 속 모를 말을 덧붙였다.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는..스스로의 판단에 맡기는 듯 싶었다. 남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는 까마귀는 그저 쓰다듬는대로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그러다가 눈가를 찡그리는 모습에 루이가 고개를 갸웃였다.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일까.그것을 묻기도 전에 상대의 말이 들려왔고,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연다.
"저는 조금 더 있으려 합니다.레이가 충분히 놀았다는 생각이 들면,그때 들어가도록 해야지요.들어가시는 길 안전히 잘 돌아가시고,오늘 저의 말동무가 되어 주셔서 영광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