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극판 규칙 ☞ 상황극판은 익명제입니다. 본인이나 타인의 익명성을 훼손하는 행위는 삼가주세요. 하지만, 자신의 위치(스레주/레스주) 등을 밝혀야 할 상황(잡담스레 등에서 자신을 향한 저격/비난성 레스에 대응할 시 등)에서는 망설이지 말고 이야기해도 좋습니다. ☞ 서로를 존중하고, 자신이 먼저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집시다. 모니터 너머의 이용자도 당신처럼 '즐겁고 싶기에' 상황극판을 찾았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모두 두루두루 친하게, 잘 지냅시다. 말도 예쁘게해요, 우리 잘생쁜 참치들☆ :> ☞ 상황극판은 성적인/고어스러운 장면에 대해 지나치게 노골적인 묘사를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약물과 범죄를 미화하는 설정 또한 삼가해주세요. 각 스레마다 이를 위반하지 않는 수위 관련 규범을 정하고 명시할 것을 권장합니다. ☞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행동이 결코 아닙니다. 바람직한 상판을 가꾸기 위해서라도 서로에게 관심을 가져주세요. 다만 잡담스레에서의 저격이나, 다른 스레에서의 비난성 및 저격성 레스는 삼갑시다. 비난/비꼬기와 비판/지적은 다릅니다. ☞ 상황극판의 각 스레는 독립되어 있습니다. 특정 스레에서의 인연과 이야기는 해당 스레 내에서만 즐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잡담스레에서 타 스레를 언급하는 일도 삼가도록 합시다. 또한 각 스레마다 규칙 및 특징이 다르기 마련입니다. 해당 스레의 이용자들에게 문의해주시고, 그 규범에 따라 행동해주세요. ☞타 스레와의 교류 및 타 스레 인원의 난입 허용 여부(이건 허용한다면 0레스에 어디까지 괜찮은지 명시해둡시다)와, 스레에 작성된 어그로성 및 저격성 레스의 삭제 여부, 분쟁 조절 스레의 이용 여부에 대한 결정권은 각 스레의 스레주에게 있습니다.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서 "분쟁 조절 스레"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 처음 오신분은 어려워말고 잡담 주제글에 도움을 청해주세요! 각양각색의 스레들을 가볍게 둘러보는 것도 적응에 효과적입니다.
-실습공지
실습용 아바돈은 학생의 a수치 5천을 기준으로 체력 1만을 지니고 있습니다. 9천의 경우에는 약 1만 5천 가량입니다. 각 학생당 한 마리의 아바돈이 배정됩니다.
주의! 데플은 없지만 부상 등으로 구를 수는 있습니다. 어두운 분위기도 존재하고요. 개인설정, 개인 이벤트, 환영합니다. 완전 초보라 미숙한 스레주입니다.. 잘 봐주세요..(덜덜덜) 모두들 서로를 배려하고 활발한 어장생활! 캡이 응원합니다!
전투 시스템에서 다이스를 사용합니다!! 라고 공지하지 않는다면 그냥 공격하시면 됩니다. 다만 공지할 경우에는 명중빗나감 다이스를 굴립니다. 다른 다이스가 필요하신 분은 자신이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실습이란건 이런것이었나. 이런 끔찍한 짓을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마침내는 그것에 온전히 익숙해지도록. 그렇게 한명의 로머가 탄생하게되겠지. 절대로 유쾌한 기분이라고 할수는 없었다. 투구를 벗어내자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앞을 가린다. 바깥에는 이미 많은 학생들이 나와 수업의 끝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무사히 첫 실습을 끝마친것이다. 당장 출처를 알 수 없는 목소리에 대한 이야기를 묻고 싶었지만 입을 굳게 다문다. 의구심과는 별개로 지금은 아무와도 이야기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으니까. 아바돈의 피에 물든 학생들의 손에는 달콤한 초콜릿이 하나씩 쥐어진다. 수고했다는 짧은 한마디. 그리고 그들또한 아바돈의 마지막 절규를 들었다고 한다.
"감사합니다.."
클로드는 손에 쥐어진 초콜릿을 겨누어보며 중얼거리듯 말한다. 지금은 그저 쉬고싶을뿐이었다. 당장이라도 이곳에 누워 잠들고 싶을만큼 몸도 마음도 지쳐버렸으니까. 그나마 위로가 되는것이라면 그토록 피하고 피했던 운명에 결국 순응했다라는정도. 아버지께선 기뻐하실지도 모르겠지. 그렇지만, 아직 잘 모르겠다. 이해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것 같았다. 스스로의 나약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그걸 애써 부정하면서까지 나아가고싶지는 않았다. 이정도만해도 충분한것 같다. 오늘까지는.
입가를 닦았다. 시큼한 침이 소매에 묻었다. 배가 고파졌다. 가까스로 공터로 돌아와서 초콜릿을 받았다. 피드백을 주고받는다. 아바돈의 역겨운 감각이 사라지자, 생각의 텅 빈 부분을 재빨리 다른 상념들이 채웠다. 초콜릿 하나만으론 성이 차지 않지만, 지쳤으니 돌아가서 룸메이트랑 이야기나 나누고 잘까. 녀석은 분명 아바돈을 상대할 때도 경박했을 것이다. 조금 웃음이 나왔다. ‘그래, 일찍 자야겠다. 무엇보다 ‘중요한 일’도 있었으니까.’
“시엔….” 나는 아무도 듣지 못할 만큼 조용히, 신 맛이 나는 입으로 읊조렸다.
아직도 카페에서의 기억이 채 가시질 않았다. 나는 가만히 서서 아까 있었던 일을 되짚었다.
# 수고하셨습니다 Cap'n! 그리고 이제... 아아... 답레를... 드랍 더 회상 BGM...!
성과: - 맹수형 아바돈 격퇴 - 첫 아바돈 대면 경험 - ‘아바돈을 녹이는 감각’ 터득 - 공포심 조금은 극복한 것으로 보임, 전투 이후 금방 정신을 다잡음
피드백: - 아바돈에 대한 혐오 증상: 전투 태세 흔들림, 전투 종료 후 구토 - 부주의한 전투 방식: 양 팔에 부상(동상), 과하게 거리를 좁힘 - 아바돈 진압 방식 미숙: 지형 변경을 통한 간접적 공격과 직접적 공격, 녹이기를 통한 직접적 공격, 육탄 공격 모두 시도. 공격의 노하우가 정립되지 않은 모습. - 말투: "멍청이! 바보!" 같은 애교스러운 욕설 사용. ******************
장비 뒷수습을 대충 마치고 곧바로 기숙사로 돌아와 등에 찬물을 끼얹는다. 마물의 단말마가 머릿속을 계속해서 아른거린다. 땀으로 흥건한 몸을 씻어내고 또 씻어내지만 이상하게도 개운한 기분이 들지 않는다. 그깟 괴물들의 말에 흔들려선, 자신의 나약함을 탓하며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린다. 그러나 그런 자책도 한순간일뿐. 마음에 얼룩진 때는 결국 씻어내지못한다. 다른 아이들은 첫 아바돈을 쓰러뜨린 일에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할텐데, 혼자서 궁상을 떠는 모습이 참 한심하게 느껴진다. 거울속에 비친 얼굴에서 시선을 외면한다.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나서 기숙사 층계를 내려온다. 한손에는 이사장이 건네주었던 초콜릿을 쥔채로. 울적한 마음을 달래기엔 책이 적격이니까. 이럴땐 도서관에 처박혀 날이 새도록 책을 읽는게 훨씬 나을것 같았다. 초콜릿을 한입 까득 깨물고선 어둑어둑해지는 교정을 걷는다. 실습이 막 끝나 대부분 아이들은 기숙사에서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겠지. 그래서인지 오늘따라 훨씬 고요한 분위기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이런 실습을 얼마나 더 버텨낼수 있을까.. 매번 견뎌내지 않는다면 결국 아카데미에서 또다시 쫓겨나고 날테니까.
그리고 싫어하지'는' 않지. 좋아하지'도' 않지만. 그녀는 여유롭게 그런 식의 목소리로 중얼거릴 뿐이다.
무던하고 담백한 표정으로 앉아 있으려니 이내 음료를 가져온 겐의 모습에 비류는 턱을 괴고 있던 손을 떼어 자신의 아메리카노를 끌어당겨 앞으로 둔다.
달그락거리는 얼음이 녹기를 바라면서 빨대를 젖고 그녀는 언제나 느긋하지. 라는 그의 말에 불만이냐는 뜻으로 슬며시 눈가를 치켜올리고는 바라본 뒤 빨대를 입에 물었다.
조심스레 한모금 입에 머금자 확실히 쓰디쓴 맛이 있기는 하지만 부담없이 마실 수 있었다. 비류는 감상평을 나중에 카페를 소개해준 여학생에게 이야기해줘야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앞으로 프란츠에게 추천받은 카페와 이곳을 같이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가 음?하는 반응을 보였다.
아카데미에 다닐만 하냐니. 생각 외의 정석적인 질문에 입에 물고 있던 빨대를 놓고 여유롭게 얼음을 저었다.
‘좋아하는 사람이라.’ 나는 쑥스럽게 웃었다. 조금 낯뜨거운 말이긴 해도, 이렇게 좋은… 친구가 있다는 것은 다행인 일이다. 소심한 내가 편할 수 있는 상대. 때로는 동경, 때로는 걱정, 때로는, 우애?
“지금 내 앞에, 너.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당신입니다.” 시엔은 이렇게 말했다.
물론 좋아한다는 것은 안다. 난 티엘린에서 만난 친구들도 좋아하고, 가족들을 좋아한다. 조금은 괴짜인 아버지와 고지식한 어머니, 아버지보다 더 괴짜라서 굳이 가업을 물려받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동생 해더까지. 우물쭈물하는 성격이라 쉽게 말하지는 못하지만, 쾌활한 룸메이트, 선배와 동기, 후배들, 그리고 물론 시엔, 너도 정말 좋아한다고 말할 차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말을 한다고 생각하니 목이 떨렸다.
대화는 내가 반응할 새도 없이 빨리 흘러가 버렸다. 어느새 시엔의 손에 인형이 들려 있었다. 대체 무얼까. 연애적인 의미라니. 폐허가 된 키리에를 그리워하는 시엔을 보면서, 걱정을 연심으로 착각하지 말자고 몇 번이나 다짐했었다. 친구로서의 즐거움과 가까운 사이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행복하니까, 괜히 마음을 착각해 일을 그르치지 말자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떨고 있다. 걱정과 연민이 아니었나? 나는 사랑을 걱정과 연민으로 포장하고 있던 것이었나.
「나는 당신을….」 인형이 입을 열었다.
“잠깐, 잠깐만!” 나는 인형의 입을 틀어막았다. 억지로 닫힌 입 안에서 웅얼거리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깊게 심호흡했다. 저 뒤편 거울에 비친 얼굴은 순무처럼 붉었다. 나는 눈을 부릅뜬 채로 떨었다.
흔들다리 위에서 사람은 떨림을 사랑으로 착각한다. 감각이 빚어내는 오류다. 로머 지망생으로서의 고통과 미숙한 마음이 흔들리는 다리가 된 것일까. 하지만 나는 흔들다리 위에 있기 전부터 ‘시엔을 좋아한다’는 말을 생각하면 떨고 있었다. 너는 내 또 다른 고향이야. 키리에가 더없이 그립다면 피센으로 와. 마르바에서 함께 살자. 이런 말들을 나는 참아 왔었다. 순간의 감정에 흔들려 넘어가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잡아 봐도 방도가 없었다. 이 이상한 느낌은 잠깐 쌓인 눈이 아니라 거대한 빙하 같았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녹차 향이 퍼졌다. ‘확인할 수밖에.’ 나는 인디고 인형의 주둥이를 꽉 쥐고 있는 엄지와 검지를 조심스럽게 뗐다. 사람 없는 카페 안에 인형의 작은 목소리가 울렸다.
「나는 당신을 좋아합니다. 나는 당신을 좋아합니다. 나는 당신을 좋아합니다.」
*
아직도 그 고양된 ― 그러나 더없이 당황스러운 ―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룸메이트에게 이 이야기를 털어놓을까. 시엔은 2학년 중에서도 수치가 높은 것으로 특출나게 유명한 학생인데…. 분명 누군지 알 것이다.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머리카락이 풀썩거렸다. 아직도 입 안에서 신맛이 느껴져서, 얼른 입을 헹구고 싶었다. 나는 게이트를 빠져나와 기숙사로 뛰어갔다.
실습을 마친 학생들은 제각각 기숙사로 돌아가 휴식을 취한다. 하지만 나는 기숙사로 가지 않고 어두워지는 교정을 혼자 걷고 있었다. 딱히 어딜 갈 것도 아니라서, 그저 일정 범위를 빙빙 돌며 산책 아닌 산책을 하고 있었다. 한 손에 아직 뜯지 않은 초콜릿을 든 채로. 앞도 아닌 저 먼 바닥 어딘가에 시선을 두고 터덜터덜. 걸을 때마다 오른쪽 다리가 아릿해지지만 멈출 생각은 없었다. 아예 그럴 생각도 들지 않았다는게 정답이겠지. 그저 멍하게 아무 생각 없이 걷고 걷고 또...걷고.
얼마나 걸었을까. 슬슬 가로등이 켜질 즈음 나 외의 기척이 교정에 나타났다. 문득 나타난 기척에 그리로 슬쩍 고개를 돌리니 어...저번에 반에서 봤던 사람이 있었다. 누구였더라. 이름, 기억 안 나는데. 어딜 가는지 모르지만 교정을 가로질러 가는 그를 멀찍이서 물끄러미 보다가 가까이 다가가며 말을 걸어보았다.
"야."
한참을 다물고 있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조금 잠겨 있었다. 나는 목을 풀 생각도 없이 그대로 말했다.
첫 이벤에서 인디한테 연어샐러드 먹인 거 사실 제 사심이었고 인디 안고선 흐엉ㅇ어 하고 울면서라던가 절대 죽지 말라고 말하던 것도 나름 뭐라고 해야하나 막 노린거였고 막 제 사심 튀어나갔구...... 여태까지 복선 일억오천쯤 깔아놓은 수준은 아니었지만 나름 저도 복선 많이 깔았다고 생각하거든여
큼지막한 초콜릿을 오독오독 씹으며 본관으로 향하던중 문득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에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피곤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보면 익숙하듯 익숙하지 않은 얼굴이 보인다. 썩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사람이 없을 시간에만 유독 우연이 겹쳐 이렇게 마주치곤한다. 따로 친한 사이가 있는것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도서관."
피곤함이 잔뜩 느껴지듯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짧막하게 대답한다. 항상 정자세를 유지하던 표정도 피로에 찌든듯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는다. 약간은 찌푸려진 얼굴이 되었을것이다. 항상 입꼬리를 치켜 올리고 다니던 녀석이 대놓고 이런 표정을 내비치면 기분이 좋을리는 없겠지만. 뭐, 어차피 누구 신경쓰라고 일부러 표정연기하고 다니는것도 아니니까.
"너는."
묻는투라기보다 그냥 되는대로 내뱉은 말투였다. 그저 딱딱하게 굳은 초콜릿이나 질겅질겅 씹어대며 눈이 가려진 동급생의 얼굴을 쳐다본다.
>>119 네에... 뭐... 복선이 DMZ 수준으로 깔리긴 했었는데 SL이라 "설마"라고 생각했죠. 원래 절친 -> 소중한 사람 -> 설마 사랑인가 -> 그렇다 (+어장 엔딩) 이런 전개를 생각했지만 뭐어...! 어장에 시리어스 끼얹어지기 전에 미리 해 놓는 것도 좋은 선택이죠!
껄껄껄 여러분 모두 감사합니닷!! 그래도 아직은 「좋아합니다」까지만 나왔어요!! 여러분도 모두 사랑을 찾으시길.
실습의 피로 때문인지 상대의 얼굴엔 전의 그 유들유들한 미소가 없었다. 나로서는 그 이후 처음 보는거니 아, 웃지 않을 때도 있구나- 싶을 뿐이었지만. 어디 가냐는 물음에 짧고도 간결하게 목적지만을 담은 대답이 돌아왔다. 도서관이라. 들으니까 나도 거기나 갈까 싶다. 그래서 너는, 이라고 돌아온 말에 가볍게 대꾸했다.
"할 거 없으니까 나도 도서관 갈래. 동행하게 해줘."
말투는 약간 부탁하는 어조였지만 행동은 거절은 거절한다는 듯 이미 그의 옆으로 가고 있었다. 어찌보면 나는 어디 가냐는 물음에 어울리는 대답은 아니었지만.
"도서관까지만 가면 되니까."
그 다음까지 따라다닐 생각은 없다며 가자고 걸음을 떼었다. 약간은 절룩거리는 걸음이었지만 아픈 내색은 않고.
저번과는 조금 달라진 상대의 태도에 약간은 생각을 해볼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아무런 생각도 하기가 싫었다. 그냥 다리가 가는대로 움직이고, 기나긴 글줄에 묻혀 시간을 보내고 싶었을뿐이다. 그렇기때문에 어쩌면 조금 비틀거리는 걸음조차도 눈치채지 못한것일테다. 평소에도 말이 없는데다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기에 이런저런 말을 걸어봤지만 오늘은 정말이지 아무말도 없이 걷기만 할뿐이다. 야금야금 깨물던 초콜릿을 내버려두고 땅을 향해 시선을 내리깐채로 묵묵히 본관에 들어선다. 한걸음 한걸음 내딛을때마다 뚜렷하게 울리는 발걸음소리. 너무나도 고요한 분위기다.
"다리는 왜 그래?"
문득 아래로 향한 시선에 절뚝거리는 걸음이 잡혀 묻는다. 할게 없다는 애가 다친 다리로 어딜 그렇게 열심히 쏘다닌다는것인지. 그는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동급생을 향해 시선을 옮긴다.
"양호실 먼저가자."
당연히 먼저 했어야할 일을 말하며 방향을 튼다. 흐리멍텅한 눈으로 앞을 겨누어보며 텅 빈 복도를 묵묵히 걷는다.
내킬대로 해. 허락이라기보단 귀찮은 듯한 대답이었다. 저번처럼 살가운 것을 기대한 건 아니라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보폭을 얼추 맞춰 걸었다. 쭉 걷는 동안 몇 개의 가로등이 지나가고, 몇 번이나 밝아지고 어두워지길 반복했을까. 어느새 건물에 다다라 복도로 발을 디뎠다. 텅 빈 복도에 두 사람 분의 발소리가 조용하면서도 선명하게 울려퍼졌다. 그대로 도서관까지 갔으면 좋았을 것을. 느닷없이 들려온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고 그를 보았다. 다리, 아.
"좀 무리했어."
상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그 얘길 해봤자 내 기분만 울적해질테니까. 양호실에 가자고 말하며 몸을 돌리는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팔뚝을 잡아 걸음을 멈추게 만들며 말했다.
"지금은 선생님 안 계실 시간이야. 그냥 도서관 가. 별 거 아니니까."
그렇게 말하고 손을 놓았다. 손을 놓고, 자진하듯 몸을 돌려 도서관으로 가는 복도로 향했다.
도서관 반대편을 향하던 발걸음은 곧 상대의 손에 붙잡힌다. 그리곤 아무렇지 않은것처럼 다시 돌아온 길을 되돌아간다. 별거 아니라는 말에 오히려 더 신경이 쓰이는건 순전히 자신뿐만이 아닐것이라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라는거지. 갑자기 화가 났다. 왜 이렇게 쓸데없는 고집을 피우는것인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홀로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는 동급생의 뒷모습을 말없이 지켜볼뿐이었다.
"다친 다리로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는건데?"
작은 한숨과 함께 마지못해 발걸음이 떨어진다. 그나마 짐작이 잡히는것이라곤 아까전의 실습정도가 전부. 좀처럼 납득할수 없는 행동에 참견이 쏟아진다. 이쪽도 그 이후론 신경이 굉장히 곤두섰으니까. 말투는 조금 날카롭다.
"그런 몸으로 돌아다녀봤자..... 아아. 그래. 괜한 참견이겠지."
한마디 더 덧붙이려던 찰나 문득 저번에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라 입을 굳게 다문다. 그래, 원래 이런 아이니까. 그냥 멋대로 하게 내버려 두는편이 나을것이다. 이젠 참견할 힘도 남아있지 않았으니까. 졸업하기전까지는 이런 실습이 끊임없이 반복될것이다. 아직도 손끝을 아리는 감각이 계속되고 있었지만 익숙해져야한다. 문득 복도 창에 비친 자신의 찡그린 낯빛을 보곤 억지로 입꼬리를 치켜올려본다.
"날 배신자라고 했다면서?" 웃겨. 정말. 이라고 코웃음치고는 날 죽이고 싶단 학생이 있다면 환영이야. 죽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건 그렇지. 널 죽일 가능성이 생길려면 일단 이 세상에 인챈트라는 개념을 싹 다 없애놔야겠지." 우스운 일이지. 라고 아라는 말했고. 크리드는 칼라미티 사제로써, 기도합니다.
"아아....." 재앙과 파멸과 멸망의 신이자 용인 칼라미티는 계속해서 잠들어있으니 용의 모습이던. 인간형의 모습이던 보는 것은 응당 꿈이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끊임없이 흐르는 모래시계를 몇 번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도 그녀도 아닌 칼라미티는 허무한 꿈의 세계에서 리그트의 일을 돕고 있었다. 다만 확실히 칼라미티가 할 일이 없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나마 가장 큰 일이 카인 에트라사야에 저주를 내린 일이었으니. 그러나 그를 일반적인 잣대로는 잴 수 없으니.
"우리의 창조주이시자 파멸과 파괴를 우리에게서 거두어가신 칼라미티님." 가장 최근에 나타난 상급 아바돈들 중 하나인 크리드는 그의 명을 받아 '승천'하지 못하게 된 타락자들을 사냥하는 임무를 수행하여야 했다. 모래시계는 몇 번이고 흘러갔으니 그 혹은 그녀인 크리드는 몇의 타락자를 잡아내었지만... 마지막 두 타락자에 대해서는 자신이 직접 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것도 그렇겠지...
"그러한 것이로구나." 이 몸이 신탁을 내리마. 칼라미티가 신탁을 내리는 것을 크리드는 경건히 들었다.
"선조의 위광을 찾을 것이다." "네가 수행하지 못한 두 타락자의 정화는 하나는 강림자의 도움으로, 하나는 모인 것에 의해 처단되리라." 그녀는 깊은 꿈에서 깨었다.
"칼라미티님. 칼라미티님. 인간들의 모든 것을 거두어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나이다." "안식에서 깨소서. 그들의 발 디딜 곳을 철저히 파괴하소서." 그들은 감히 불경하게도 칼라미티님의 형상을 따 프로젝트를 만들었고, 칼라미티님의 권속인 우리를 배척하며, 도움을 원수로 갚는 이들일진대. 우리의 본신을 희생하여도 좋으니 깨어나시어 그들을 전부 삼키소서. 그 댓가를 치르게 하소서. 기도하는 그의 모습은 호수의 빛과도 같은 푸른 머리카락의 색을 띠고 있는 남성이었다. 그의 뒤를 따르는 여성형은 폭포수와도 같은 검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모습이었다.
타인이니까 신경쓰지 않는다 이런건가. 그래서 그렇게 남들과 담을 쌓고 지내는거고. 무슨 이유에서 자신의 몸을 함부로 다루고 다니는건지 알길은 없었지만. 무언가 거창한 이유라도 있을줄 알았는데 고작 이런 이유로 그렇게 냉정한 태도였던것일까. 억지로 올렸던 입꼬리는 다시 아래로 처진다. 어차피 닿지도 않을 이야기를 또 한마디 꺼냈다. 그렇게 신경쓰이지 않는다면 어째서 아픈 내색조차 보이지 않는것인지. 묻고 싶었지만 돌아올 대답은 뻔했기에 따로 묻지 않는다.
"...그렇게 혼자서 숨기고, 끌어안고.. 가다보면 언젠가는 해결될것같겠지."
마치 스스로에게 하는 말 같아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지만 평소라면 그저 조용히 넘겼을 일을 가지고도 옆사람 들으라는식으로 궁시렁댄다. 왜 하필 지금일까. 하필이면 왜, 이렇게까지 우울할때 이렇게 마주친걸까.
"넌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보는 사람은 걱정된다고. 이것도 불쾌해? 네 일에 간섭하는것 같아서?"
어쩌다 내뱉은 한두마디에 점차 격양되기 시작하더니 마침내는 자신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져버렸다. 지독한 참견이 이뤄낸 참사다.
화가 나다가도 갑작스레 튀어나온 이야기에 헛웃음을 터트린다. 온갖 위험이 도사리는 세상속에서 가슴에 상처 하나 가지지 않은 사람은 한명도 없다. 그렇지만 그렇다고해서 그게 스스로의 몸을 함부로 다루는데 합당한 이유는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러고 다니는거야?"
뭐라고 말을 해야할지. 말문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도통 속을 알수없었다. 우울함속에서 깊이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를 필요로 하기라도 한것일까. 하지만 높게 쌓아올린 마음의 벽이 있기에 이렇게까지 말을 돌리는것일까. 잘 모르겠다. 이런 바보같은 추측이 맞을리가 없겠지. 대화를 나눠보는것도 한손으로 셀수 있을정도로 그 횟수가 적었고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라곤 항상 냉정한 모습뿐이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갑작스레 속에 있던 이야기를 그저 일상 얘기하듯 툭 던져놓곤 언제나처럼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뿐이다. 정말, 뭐라고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단 말이다. 그렇다고 다가가기엔 아득히 높은 마음의 벽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고.
"무슨 일 있었어?"
이젠 짜증이 나지도 화가 나지도 않는다. 평소라면 쿨하게 한두마디 던지고 슥 사라질 아이가 과거의 아픔 같은 이야기를 하질 않나. 이대로 가만히 두면 사고라도 칠것같은 느낌이었다. 이게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물음이다. 밝히든 밝히지 않든 상대의 자유지만. 밝히지 않을 생각이라면 이쪽에서도 이제 참견따윈 그만둘 생각이다. 애매모호한 말을 억지로 이해하면서까지 남의 일에 귀 기울여줄정도로 여유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상대의 말을 따라하며 애매한 대답을 했다. 아, 조금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상대는 알까? 알면 아는거고 모르면 모르는 거지만. 차가운 유리창에 등을 기댄 채 왼다리에 살짝 체중을 싣고 서서 보이지 않을 금빛 눈으로 상대를 보았다. 상대쪽을 보았다는게 정확했다. 그즈음 어딘가에 시선을 두고 있을 뿐이지 명확히 상대를 보고 있는 건 아니었다.
"무슨 일 있었어, 이런 상황에 나올법한 말이네. 아니, 당연히 나올 말이야."
그렇네~ 묻는 말에 대답은 않은 채 그렇게 중얼거렸다. 뭐 그래도 이렇게까지 해주는데 답은 해야겠지. 나는 고개를 갸웃 기울이며 말했다.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어. 라고 그 사람은 말했지. 나를 보면서."
그것 뿐이야. 두서없는 한마디를 던져놓고 슬금 몸을 떼었다. 여전히 도서관에 갈 생각으로, 가던 방향을 향해 몸을 돌렸다.
깜빡이는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다가 사라진다. 오늘도 문가 근처에 숨을 죽이고 무릎을 끌어안고 가만히 기다렸다.
문밖에 있는 아저씨들이 열번 바뀌면 보러올게. 가만히 자그마한 짐승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다가 문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칼날이 옷깃에 스치는 소리. 이번이 정확히 열번. 그리고 곧 있으면 들려올 노크 소리에 웅크리고 있던 몸을 펴서 조심스레 소리를 내지 않도록 ■■을 잡아 손에 쥔다.
똑똑. 노크 두번. 왔다! ■■을 바닥에 내려놓고 문을 향해 손을 뻗자 빠꼼 열린 문 밖에서 새하얀 손이 들어왔다.
늦을까봐... 뛰어왔어... 잘 있었어? 응응! 잘 있었어! 오늘 화도 안내구 밥도 잘먹었구! 잘잤어! 뛰어왔어? 왜? 기다리게 하기 싫어서 뛰어왔어. 약속했잖아. 응응. 약속했어. 나 언니랑 약속했으니까.
■■가 무거웠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화도 냈고 우울해 있었다. 끼니도 걸렀고 몇번이나 빼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날카로운 것으로.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쏙 빼내고 그저 하얀 손이 들이민 머리카락을 쓰다듬 것에 베시시 웃을 뿐이였다. 아무려면 어때. 자신은 이것이면 된다. 아픈 것도 심심한 것도 어두운 것도 전부 이 손의 주인이 찾아와주는 거면 됐다.
조금만 참아. 곧 나올 수 있을거야. 응. 참을게. 우리들 쌍둥이니까. 아프면 안돼? 응. 쌍둥이야. 가면을 써야하겠지만 그래도 나올 수 있어. 응.
나의 쌍둥이.
해악의 별이 아니야. 내가 사랑하는 동생인걸. 언니는 나한테 밝은 달이야. 나는 달빛의 밤인걸. 그러니까 괜찮아. 언니.
그러니까 울지마. 언니. 문을 사이에 두고 들려오는 작은 흐느낌 소리에 문에 손을 대고 가만히 얼굴을 가까이 대고 속삭였다.
웃어줘. 언니. 나는 괜찮으니까. 그저 날 위해서, 나를 위해 그곳에 있어줘. 더러운 것은 모두 내가 묻힐테니까.
괜한곳에 감정을 실었나 싶어 괜한 한숨만 새어나온다. 어쩐지 눈빛이 조금 더 퀭해진듯한 느낌이다. 가벼이 시간을 보낼뿐이었을텐데, 순전히 이쪽의 착각과 참견에서 모든 일이 시작된것 같았다. 짧은 한마디조차 이젠 머릿속에 쉽사리 들어오질 않는다. 나까짓게 뭐라고 그토록 언성을 높인것일까. 상처가 얼마나 크고 깊은지, 아무것도 모르는데. 괜히 우울한 기분에 청승을 떤 기분이다.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자신도 아버지에게 비슷한 말을 들었던적이 있다. 하지만 가문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도 스스로가 자초한것이였으니. 서로의 상황은 조금 다르겠지. 그래 여기까지다. 정확히 어떤 아픔을 가지고 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꼬치꼬치 캐묻고싶지는 않다. 되돌아올 대답도 앞뒤가 대부분 생략된 문장 덩어리가 대부분일테고. 선은 확실히 정해져 있었고 아무리 그 간격을 좁히려해도 경계는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아직 도서관에 닿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피곤하다. 그냥 이대로 기숙사에 돌아가고싶은 기분이다. 그저 조용히 동급생의 뒤를 따를뿐이다. 길이 끝날때까지만.
뭐, 아무래도 좋아. 이해하지 못할 말을 한 것은 나다. 그러니, 상대가 저렇게 말해도 나는 그것을 응당 받아들여야 한다.
말하고 싶지만 말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앞만 보고 걸었다. 절룩거리면서, 가끔 한번 비틀거리면서. 당초의 목적지인 도서관을 향해. 복도에는 두 사람 분의 발소리만 고요하게 울렸다.
끝이 없을 것 같은 복도를 지나 계단을 한층 올라간 듯 싶다. 그 다리로 용케도 계단을 올라가 위에 다다랐을 땐 깊게 숨을 내쉬었다. 아, 겨우 올라왔다, 그런 느낌으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짦은 동행의 끝은 두터운 도서실의 문 앞이었다. 나는 그 문을 향해 걸어가며 아마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말을 중얼거렸다.
"저번의 파티에서 말야, 나도 춤 추고 싶었어."
춤, 좋아하는데. 그렇게 말하고 다다른 문에 손을 얹었다. 하지만 열지는 않고 그를 돌아보았다.
"동행 고마워. 덕분에 심심하지 않았어."
진심일지 아닐지 모를 말을 하고, 그제야 도서실의 문을 열었다. 소리 없이 매끄럽게 열리는 문 사이로 들어갔다. 이제 그에게는 볼일 없다는 듯.
이해하기엔 너무나도 지쳐있었기에 외면했다. 이렇게 화를 내는것도 정말 오랜만인것 같았다. 멍청하긴. 안경을 벗고 얼굴을 쓸어내린다. 이렇게 곤두서 있어봐야 자신만 손해라는걸 알면서도 그게 쉽지가 않다. 또각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층계 양옆으로 부드럽게 울려퍼진다. 간헐적으로 박자가 엇갈리는 발걸음소리. 마침내 도서관의 쪽문 앞에 도착하게된다. 별로 되지 않는 거리였음에도 정말이지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다. 갑작스레 마주쳤던것처럼 일방적인 몇 마디와 함께 순식간에 문 너머로 사라진다. 아아. 그래. 이래야 이 아이답지. 조금은 헛웃음이 나왔지만 이내 등을 돌려 벽에 몸을 기댄다.
"끝까지 자기 할말만 하고 사라지냐.."
안까지 먹을것을 들고갈순 없으니 남은 초콜릿을 마저 입안에 쑤셔넣는다. 도통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보일듯말듯 애매하게 던지는 말 한마디한마디에 신경이 쓰이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차라리 저번처럼 들어가는 말마다 뭉텅뭉텅 잘라내기라도 한다면 속이라도 편할텐데 한걸음 다가서면 두걸음 물러나듯 쫓고 쫓기는 대화는 지금처럼 우울한 상태에선 정말로, 정말로 고달픈것이었다.
생각하다보니 조금 짜증이 났는지 초콜릿을 와두둑 와두둑 거칠게 깨물어 먹는다. 생각이 짧아 보이지 않는다니. 참 과찬이다.
situplay>1526142717>571 “거친산이야. 맨위쪽에 분화구 구덩이가 있어서 물이 고이긴 하는데 그곳 외에는 물이 고일곳이 없어서.” 산을 개간해서 적당히 농사 지을곳을 만들기는 했다. 다들 산을 잘 안 떠나려고 한다. 그곳에 있으면서 막아내는게 의무니까.
그리곤 왜 떠냤냐는 질문에 조금 깊게 숨을 마셨다. 그래. 내 고향 덕분이지. “내 고향은. 지금 조금 위험하거든.” 하고 조금 텀을 두며 말했다. “아바돈이 매일같이 나와서. 거기에 고향사람들에게 점점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 그래서 난 여러가지를 배워 고향을 구해야해.” 강해지고 똑똑해져서 내 고향을 위해 싸워야 한다.
“벌써 1년이 다되가는데 아직도 진전이 없는것 같아 갑갑해.” /일단 일상을 이어 놓는다.
분화구가 있다는 건 화산 활동을 하던 산이었다는 건데. 그런 곳에서 왜 사람들이 살까. 그 이유는 이어진 말이 답해주었다. 아바돈이 나오는 지역. 그곳에 사는 사람들. 아, 어느 문헌에서 스치듯 본 것도 같다. 일부러 그런 곳에 살며 나타나는 아바돈들에게 대항하는 민족도 있다고. 진의 민족이 그런 민족일까.
아직도 진전이 없는 것 같아 갑갑하다는 말에 그가 2학년이란 사실을 알았다. 나는 키득 웃고 그 말에 대꾸했다.
"여기서 모든 걸 배울 수 있지는 않아. 가르쳐주는 수업 외에도 자신이 여러가지를 찾고 알아내야 해. 너 평소에 도서관은 가니? 여기 도서관, 오래되고 귀한 서적이 많아서 정보가 아주 많아. 어떤 진전을 느끼고 싶다면 넌 그 정보들을 접할 필요가있어."
일종의 개인 연구를 하는거지. 라며 말만은 가볍게 하고 두 팔을 앞으로 쭉 뻗으며 기지개를 켰다.
"난 2년 넘게 여기 있었는데도 아직 내가 원하는 걸 찾지 못 했는 걸. 1년 가지고 우는 소리 하면 못 써. 후배 군."
라연: 옳소. 아동학대랑 어.. 수위가 뭐가 라이트합니까! 삐이잉하고 삐이이한 거에다가 잘못했으면 약에 취해서 시험도 못 볼 뻔했다고요? 르투아르: 나는 이제 라이트하다! 가문이랑 반쯤 연끊었으니까! 캡:ㅎㅎㅎㅎ 라이트라고 계속 말해야지 그 이상으로 안 굴리려고 노력하니까.. 라이트라고 하겠음...
아바돈은 중급만 되어도 약간의 변신스킬이 있고, 상급부터는 거의 자유롭게 변신할 수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혼혈들에게 아바돈의 피가 있으면 사용 조건이 풀리지만 인간의 피 때문에 스스로 쓰진 못하고 이미 그 스킬을 아는 혼혈이나 상급 아바돈에게 사사를 받아야 쓸 수 있게 되는 변신 스킬이 있기는 있습니다. 가장 많이 쓰는 건 눈 색을 변화시키는 겁니다.(고개끄덕) 현재는 그 스킬이 혼혈 사이에서 유실되어 가장 가까운 세대 외에는 전해지지 않습니다. 크리드는 당연히 알고 있지만요.
피어싱은 두고왔다. 안경도 색이 없는 유리로 바꿨다. 최대한 정갈해 보이도록 머리카락도 정리했다. 그럼에도 언제나 이 문앞에 서는 건 많히 힘들다. 모든 근심 걱정이 내 발목을 붙잡고 '정말로 들어갈꺼야? 지금이라도 도망치자!'라고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언젠가는 해야한다. 반성문 예시도 3장 정도 준비해놨다. 변명의 시나리오도 30개 정도 준비했다. 지금의 난 준비만전이다.
억지로 끼고온 넥타이를 정리하고 셔츠의 주름 도 정리했다. 지금의 난 완벽한 모범생이다. 가자 디트리히. 당당하게 말하는거야! 캐치볼 하다가 유리창 깬 거 때문에 화나셨다면 죄송하다고!
"..."
아니 잠깐. 혹시 그게 아니라면? 모르시는데 내가 그냥 말한거라면? 사실 정신나간 과학자가 통속의.. 아니 이게 아니지.
문 밖에서 고민하길 한 참. 날카로운 들어오라는 소리에 결국 노크를 하고 조심스럽게 들어간다.
"아.. 밖에 있는 거. 알고계셨구나. 그.. 스승의 날 축하드립니다 이사장님." "제가 선물을 준비하고 있는데 내일 드릴려고..."
사랑하는 아들아,너를 사립 아카데미에 보낸지도 어언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구나.그간 평안히 잘 지냈니?이 어미는 그간 별 탈 없이 잘 지냈단다. 한참 왕위계승경쟁에 힘써야 할 너를 갑작스레 죽을 위험이 높은 로머로써의 길을 걷게 한 점에 대해서는 아직도 미안하게 생각한단다.하지만,그건 이 어미도 어쩔수 없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하구나.설마 그 때 루이 네가 자발적으로 그렇게 움직일 줄은 이 어미조차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으니.그 일 이후로 국왕의 의심이 커지게 될 것을 염려하여 부득이하게 너를 그곳으로 보내게 된 것이란다.그래도 왕위계승경쟁에서 그런 일은 흔히 있으니,국왕의 의심이 그렇게까지 큰 편은 아니었던것 같았지만 그래도 이 어미가 그리 생각했듯이,얌전했던 너가 그런 일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모양이더구나.약간은 의외라는 그 반응이 네가 숨기고 있는 본래 모습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질 것이 두려웠단다. 그래도,그곳에서의 일상은 꽤나 괜찮은 편이지?들어보니 직접 아바돈과 맞부딛히는것만 아니라면 나름대로 괜찮은 학교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이라고들 하더구나.괜히 명문이 아닌게지.지금 이곳은 한참 왕위계승경쟁이 치열하니,어쩌면 이 치열한 판에 너를 남겨두는것보단 자기네들끼리 스스로 숫자를 줄여나가기를 기다리는것이 더욱 현명한 선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직접 경쟁에 뛰어드는것도 괜찮지만,정말로 현명한 현인은 그 동세를 직접 드러내지 않고 수면 속에 감추었다가,결정적인 순간에 조용히 나타나 모든걸 차지하는 법이지.루이 너라면 그정도 일 쯤은 손쉽게 할수 있을 것이라고 이 어미는 믿고 있다.부디,이 어미의 믿음이 헛된 생각으로 그치지 않게 해다오. 간만에 쓰는 편지에 심오한 내용들만 가득 담아 미안하구나.내용은 이러하지만,이 어미가 루이 너를 사랑하는 마음은 언제나 한결같단다.부디 몸 다치지 않고,평안히 잘 보내기를 바란다.그럼 이만 글 줄이마.사랑한다,나의 아들.
꽤나 늦은 시간에 저에게 온 편지를 찬찬히 읽으며 가벼이 미소지었다.그래요.확실히 그때 그것은 제가 자발적으로 저지른 일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할 그럴 일이었지요.저 스스로도 저질러놓고 꽤나 놀랐답니다.후후.하지만 어쩔수 없잖아요?결국에는 그 일 역시도 당신 모르게 철저히 숨겨왔던 제 본성이 저지른 일이니. 편지를 전부 정독하고서 다시금 눈으로 가볍게 쭉 훑어본 루이는,답장을 보낼 생각으로 새 편지지를 꺼내고서는 깃펜을 들어 글자를 적어 내려갔다.
셔츠의 칼라 부분을 몇번 다듬으며 폼 을 제어봤으나 이사장님에게서 돌아온 말은 전혀 달갑지 않았다. 턱을 살짝 괴고있는 이사장님의 말과 분위기는 애송이인 디트리히에겐 위압감 처럼 느껴졌다.
"어.. 실습에 불참한 이유는. 몸이 안좋아서.. 아 또 그리고 수업에 관해선 앞으로 열심히 들을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아 혹시 저번에 벌 받는데 유현 황녀와 같이 도망친 것 때문인가요? 그게 아니라면 그날 파티의 음주의혹 때문에? 전 안 마셨습니다! 증거가.. 증거가!" "그것도 아니라면 설마 최근에 있던 기물 파손 때문인가요? 저는 유리창 말고 부순게 없습니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 대략 10초! 엄청나게 빠른속도로 고해성사 하였지만 이것은 명백한 자폭이다!
"이사장님은 선물 싫어하십니까? 스승의 날이니까 제자가 챙겨드리고 싶은데."
그러나 디트리히는 다시 쿨한 모습으로 돌아오며 근처에 있는 반짝이는 수정구를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리기 시작했다. 어 이건 아카데미네요? 우와.. 비율이 어느 정도일까..
"그런 정도라면 나쁘지는 않군요." 계속 출장을 나가다 보니 신경을 쓸 시간이 줄어든다니까요. 라고 생각하면서 디트리히의 성적표라던가 평가서를 슥 훑어봅니다. 그러다가 디트리히의 고해성사에 희미하게 웃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이사장님 헤어스타일은 평소와 다르게 풀어내린 상태네요. 옷도 조금 불편하기는 했는지 블라우스 윗단추 두어개는 풀어져 있고..ㅇ.
"그렇군요.. 음주 의혹에다가 유리창을 부순 것에 유현 황녀랑 같이 도망쳤다라.." 계속 숨겼으면 벌점을 더 부어서 정학을 시킬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지요. 라고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말하기는 하지만 음주라는 것에는 살짝의 표현조차도 없었지만 조금은 당혹스러웠을지도 모릅니다. 디트리히가 반짝이는 수정구를 건드리자..
"어머. 그걸 함부로 건드리지 마시길." 그건 황실에서 직접 제작한 거라서 가격이 어마어마하답니다. 라고 말하면서 건드린 건 옆의 부드러운 천으로 닦아두세요. 라고 덧붙입니다. 그리고 목적에 대해서 몇 가지 말해둘 게 있다는 것을 알기는 하는지. 소파에 앉기를 바란답니다. 라고 말합니다.
"기본적으로 정말 나쁜 평가는 안 하는 편이지만." "로머 중에서도 어떤 로머가 될 지에 대해서이지." 포션 관련도 있고, 연구직도 있고, 전선에서 싸우는 로머도 있으니까. 베리아트 공화국 쪽이라면 아마 하마르 대륙에서 전선이 제일 몸값은 높지. 물론 생명수당 포함해서. 라고 말합니다. 혹은 부르주아의 호위거나. 라고 덧붙인 뒤
"돈많은 백수놀음이라.." 돈많은 백수놀음... 하고 싶었는데 로머이다 보니 할 순 없었으니 말이다. 라고 말하면서 디트리히를 바라봅니다.
"다음 실습에는 참여하기를 바란단다. 디트리히." 로머가 어떤 일을 하는지. 경험해봐야 좀 더 자세한 이야기가 가능할 것 같으니. 라고 덧붙입니다.
"학생에게 엄격해야 하지만 친절하기도 해야하지." 너무 엄격하기만 하면.. 이라고 말을 잇기는 하지만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어깨를 살짝 으쓱이고 말을 잇습니다. 돈이 성공의 척도라는 것에 그런 풍조가 없잖아 있지. 라고 하고는 짧게 벌어 길게 쓴다는 걸로 볼 수도 있겠군. 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이라...." 예전에의 일이었지만..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이가 있기는 있었다. 디트리히에게 선생님이 되기 위한 진로 커리큘럼을 몇 개 제시합니다. 알아두고 있으면 도움은 되겠지. 라면서요. 대략.. 티엘린 사립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교육자 과정을 밟는다. 혹은 티엘린 사립 아카데미 내의 교직 과목을 이수하고 일정 성적 이상을 받아, 견습 교사가 된다. 티엘린 사립 아카데미 말고 다른 아카데미의 견습 교사가 된다. 정도려나요.
"출장을 다녀와서 처음 참여한 수업이 그 실습이었지." 다양한 반응도 있었으니까. 라고 덤덤하게 말합니다. 혐오감에 속이 안 좋아진 이도 있었고, 말을 험하게 뱉는 이도 있었고, 아바돈을 난도질하는 이들도 있었지. 라고 무덤덤하게 말하는 표정은 정말 아무 의미도 없다는 듯. 저 멀리에 있는.. 느낌을 줄 수도 있었습니다.
공화국의 풍조에 대해선 할 말이 없었다. 공화국은 그런 땅이니까. 가난한 사람이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있다? 전혀. 빈곤층은 한 없이 잔인해질 수 있다. 공화국이 사람을 그렇게 만든다.
"이런 자료를 주셔서 정말 기쁘고. 또 진심으로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들지만.." "저의 후견인이 누군지 아시잖아요? 이사장님은"
분위기가 한 순간 쩡 하고 얼어붙는 느낌이였다. 디트리히는 싸늘한 분위기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지만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정말로 매력적이였다.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교관님 처럼 이사장님 처럼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자상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룰 수 없었기에 미련이 남는 거겠지.
"출장 가셔서 아바돈을 잡으셨을텐데 바로 수업 참여라니 많이 바쁘시네요." "아바돈과의 전투가 그렇게 혼란스러웠나요? 2학년 비율이 많아서 그런가..."
늦은 밤,나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그러고보니 오늘은 그 날이었다. 나는 침낭속에서 나온다음 현관문으로 걸어가 집을 나가려는 내 아버지에게 질문했다.
"떠날거냐.월광검사."
나는 내 아버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며칠전부터 아버지가 떠난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아버지가 사라지는게 아쉽지는 않았다. 다만 아버지를 사랑하는 어머니가 어제 많이 울었는데,그걸 보니 내 마음이 아팠다. 그정도다. 나에게 있어서 이 인간은 그정도였다. 월광검사는 나를 내려다보며 키득키득 웃었다.
"테오,이제 나는-"
"테오도르라고 불러,언제부터 우리가 그렇게 친한 사이였다고. 떠날때 되니까 친한척 하지 마."
"그래,테오도르."
한결 낫다. 어짜피 떠나는 사람한테 괜히 쓸데없는 감정따위 갖고싶지 않아. 월광검사는 자신의 은발을 쓸어넘기고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말을 잇기 시작했다.
"예전에도 얘기했었지,내가 지하 도시로 가려는 이유 말야. ...쓸데없이 네게 동정 사고싶진 않지만,내 인생은 정말 피로 얼룩졌거든. 아마 이 대륙의 인간들중,나만큼 불행한 삶을 살아온 인간은 없을거야."
"제발 집어치워. 네 이야기따윈 관심 없어! 태어날때부터 죽임 당하려고 했고,주변인들은 죽고,고문 당하고,미쳐버렸다! 그런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 하지 말란 말야! 빨리 본론을 말해. 나한테 무슨 이야기를 하고싶은거야?!"
월광검사는 표정이 굳었지만,이내 웃는 낯으로 돌아왔다. 그 낯짝에 주먹을 날리고 싶지만 아직 나는 어린 5살이었다. 그러기엔 너무 힘이 약하다. 나는 그저 월광검사를 째려볼 수 밖에 없었다.
"그래,네 말대로야. 인간은 다른 사람의 불행에 별 관심이 없어,자기랑 관계되어있는 사람의 불행이 아니면 아무도 관심 안가져주지. 그러니까 네게 값 싼 동정따위 사려고 이런 얘기를 한게 아냐,그래,유치하지만...날 괴롭힌 세상에 복수를 하고 싶거든. 신을 죽이고,이 지옥같은 세상을 멸망시키려고 저 지하도시로 들어가는거야. 저 곳 가장 깊숙한 곳에 신이 있거든."
"이기적인 인간이네,네가 괴로웠다고 이 세상을 멸망시킬 권리가 있는거야?"
아버지는 나를 진지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공포스러웠다. 너무나 단순하다. 그런데 그 열망은 너무나 강하다. 신을 죽여버리고,세상에 멸망을 가져오겠다는 그 의지가 너무나 강하게 느껴졌다.
"테오도르,넌 내 첫번째 자식이 아니고. 아마 마지막 자식도 아니겠지. 하지만 내 자식중에선 네가 가장 기개있는 자식이다."
월광검사의 손이 내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월광검사는 내 목을 척 붙잡고,내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익숙하다. 이런 고통은,저자식이 자주 하는 행동이니까. 하지만 눈이 흐려지는건 조금 견디기 힘들다. 월광검사는 즐거운 말투로 말을 이었다.
"신은 우리를 행복한 낙원에서 살게 할 수도 있었어,하지만 그러지 않았지,신은 우리를 이 지옥에 살게 해준 대신 자유를 줬다. ...그러니 이 자유를 써서 신을 죽일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이라도 없었으면 나는 미쳐버렸을거야.그래,일생일대의 소원이거든?"
나는 월광검사의 손목을 손톱으로 할퀴었다. 월광검사의 손목에서 핏방울이 떨어져 나올정도로 할퀴자,그러자 내 목을 잡은 손이 떨어졌다. 나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고 월광검사의 어처구니 없는 논리를 반박했다.
"넌 미쳤어.신은 죽일 수 없으니까 신이고,가능하다 하더라도 그건...그건 다른 사람들이 죽으니 옳지.않.하.하하.하하하...미안,내가 태어난지 얼마 안되서 그런가.이 말은 아닌거 같은데."
그래,어짜피 이 세상은 지옥이잖아. 나는 월광검사의 말에 반박 할 수 없었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 세상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안되는데,나는 내가 한 말이 너무 웃겨서 웃었고 내 이야기가 재밌었는지 월광검사도 킥킥거리는 웃음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래,내가 신을 죽이면...아마 내 아내도 죽고 너도 죽고,착한 사람들도 다 죽을거 같다."
"나는 사랑하지 않지? 내 엄마라면 몰라도."
"응. 너는 내 목표때문에 태어난 살아있는 실패작이다. 네 어머니가 널 원해서 낳게 해준것 뿐이야. 그래도 네 어머니는 달라. 신을 죽이기 위해,카인 에트라사야의 로머가 되려고 네 어머니를 만났을때 네 어머니는 정말 사랑스러웠어! 앞으로도 그럴거고,내가 모든 것을 바쳐 사랑한 여자중 한명이야. 하지만 네 어머니보단 내 소원이 더 중요하다."
"역겨운 새끼."
나는 솔직한 감상을 이야기 했다. 월광검사는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묘하게 만족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럼 가볼게."
그리고 월광검사는 현관문을 열었다. --- 그 다음 있었던 일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어머니가 며칠동안 더 울었던 일도. 아버지가 말은 그렇게 했으면서 내게 월광검과 스크롤을 남겨놓은 일도. 몇달뒤 카인 에트라사야 로머들의 척살대상이 된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죽은 일도. 결국 신을 죽이겠단 아버지의 소원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도.
나는 어머니가 울때 함께 울 수 없었고,아버지의 죽음엔 묘한 통쾌함마저 느꼈다. 이것들은 정말로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중요한건 단 하나였다. 아버지의 대화를 통해서 생겨난 의문이 내 머릿속을 사로잡은 것이 중요했다.
'저 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카인 에트라사야의 지하 유적에서 아버지는 무엇을 본 것일까,무엇을 보았길래 그곳에 신이 있다고 확신했던걸까.
그리고 10년이 지나 지하 유적에 들어갔을때 난 깨달았다.
아버지는 그냥 미쳐있었던거였다. 그곳에는 유물과 아바돈밖에 없었다. 신은 없었다. 결국 아버지의 내 죽음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비참하게 살다 카인 에트라사야에 유입된 로머 한명이 내 어머니와 결혼했다. 그 로머는 미쳐서 지하 유적으로 도망쳤다가,탈주한 로머를 척살하는 임무를 맡은 우리 어머니에게 죽었다.
아깝다는 표정으로 쓰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정말 궁금한게 아카데미 내부 다른 학생들은 능력 실험을 어떻게 하는걸까? ..내가 특이한걸까? 반사적으로 느릿하게 움직이는 이사장님의 손으로 시선이 향했다. 참 당혹스러운 분이다.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피곤해 하시는 모습이 조금 더 매력적이라고 볼 수 있겠다. .. 이상한가?
"저의 후견인에게 헌법이 중요할까요? 저는 .. 회장.. 아니 그 분이라면 틀림없이 가능할거라고 생각해요"
빈곤, 노동자 그리고 노블 계급. 전부 경험했기에 그는 강하다. 사업가의 눈매가 정치가의 눈매가 너무나도.. 디트리히는 한숨을 내쉬었다.
선생님을.. 하고 싶지만. 미련이 생긴다. 이사장님이 보여주신 종이들을 차곡차곡 정리해 자신의 앞에 두었다. 멍하니 내려다 보니 선생님이 된 자신의 모습이 그려졌다. 항상 혼나겠지. 제자들에겐 단정치 못하다고 혼나고. 이사장님에겐 교수평가가 낮다고 혼날꺼야. 혼나기만 하면서도 내가 알려주는 제자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기쁠까. 부수는게 아니라 만들어 나간다는 직업. 얼마나 멋질까.
"네? 아니 그건 무리죠."
적당히 웃어 넘기려고 했지만 디트리히를 폐허로 만들어 줄 수는 있다는 말에 쩍 하고 얼어붙는다. 설마 정말로... 아 농담이시구나.
다시 부드럽게 내려놓는 찻잔과 이사장님 손으로 시선이 향했다. ..디트리히는 차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그런가요.." "어. 스케줄이라면 미리미리 줄이세요 스트레스 때문에 이사장님의 어여쁜 얼굴에 주름이 생긴다면 애제자는 슬프답니다?"
"능력을 연습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공터에서 하는 것이 추천된단다. 능력 연습실이 아무리 튼튼하더라도 학교 내의 기물을 파손하는 것은-특히 능력 연습실이 아닌 학교 내부의-" 그다지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 라고 말했습니다.
"헌법 중 일부는 신탁과 밀접한 관계가 있지." "은 제국은 황족과 관련된 신탁. 운투 국은 입헌군주에 대한 신탁. 그리고 베리아트 공화국은 연임에 대한 신탁." 신탁에 제대로 고하지 아니하고 함부로 바꿨다가는 삼주신이 아니라 하여도 저주가 내릴 것이니까. 욕심은 적당히 부리는 것이 온당한 것이야. 라고 말합니다.
"....별로 걱정할 건 아니지. 나는 온당한 자로써, 사제이니까" 느릿하게 말하고는 자료는 챙겨가렴. 이라고 말했습니다.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건 적어두고. 라고 덧붙입니다.
첫 실습의 여파는 학생 제각각에게 퍼져갔다. 나는 우리에서 나오던 학생들 사이에 은근히 감돌던 광기와 혼란의 파편을 보았다. 금빛 눈은 잔인하게도 한치의 떨림 없이 그것들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기나긴 밤이 지나갔다. 잠들지 못 해 뒤척이다 끝내는...
오전 내내 밥도 먹지 않고 기숙사 방에만 틀어박혀있다가, 배고픔을 못 견디고 간신히 나왔을 때는 해가 정수리 위에 떠 있을 무렵이었다. 옷을 제대로 갖춰입을 여력도 없어 가벼운 사복 차림에 겉옷 없이 숄 한장만 걸치고 나오니 쨍한 햇빛이 얼굴을 때려왔다. 앞머리가 없었다면 필시 눈이 멀어버릴 것 같았겠지. 손으로 앞머리를 한번 쓸어내린 후 가까운 매점으로 향했다. 다리는 변함없이 절룩거리고, 이런 오늘조차도 식당이 아닌 매점이었다.
매점에서 산 빵과 음료수를 들고 교정의 한 구석으로 갔다. 그늘이 짙게 내려앉은 벤치에 쓰러지듯 앉아 빵을 뜯어 입에 넣고 음료수를 마셔 넘겼다. 마치 먹기 싫은 걸 억지로 밀어넣는 것처럼. 그렇게 빵 하나를 다 먹고서야 긴장이 풀려 벤치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늘어지듯 앉아 있었다.
벤치 등받이 가장자리에 목을 걸치고 그대로 멍하니 앉아있는데 누가 말을 걸어왔다. 눈을 감고 있었기에 소리로 보아 그리 가까이 있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카페를 추천해준, 이라는 말에 비 오는 날을 떠올리곤 천천히 자세를 바로했다. 그 상태로는 뭔 말도 못 하겠거든.
"여어, 안녕. 추천해준 카페는 가 봤어?"
마음에 들었을라나 모르겠네. 덤덤하게 내뱉는 말은 마치 오랜 지기에게 하듯 편했으나 실상 이 사람과는 이제 두 번째 만남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이리 담담할 수 있었던 건, 상대의 분위기가 그러했기 때문이었다. 잔잔한 호수의 물결 같은, 동시에 깊이를 알 수 없는 분위기가.
한 팔을 등받이에 걸치고 다리를 꼬며 그제야 눈을 뜬다. 이러나 저러나 상대에게 내가 눈을 감고 뜨는 건 보이지 않겠지만. 눈을 뜨고 작게 하품한 후 고개를 살짝 가로저었다.
"그다지 실례할만한 상황은 아니었으니까 신경쓰지 마."
말 그대로인 것을 보여주듯 느긋하게 중얼거리곤 다른 손에 들고 있던 음료수를 마셨다. 좋은 날씨네- 라고 혼잣말 하듯 덧붙이면서.
한 벤치에 비슷한 자세를 취한 사람이 둘이 되었다. 멀리서 본다면 묘한 조합이지 않을까. 묘하지만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다리를 풀었다가 반대로 꼬았다.
지나가듯 흘린 말에 저번 카페에서처럼 대꾸를 해준 상대가 내 손 위에 무언가를 올려놓았다. 부드러운 천의 감촉과 차가운 온도. 그것을 쥐어 보니 얼음덩이를 감싼 손수건이 보였다. 이런 얼음을 가지고 있었을 리는 없고, 능력으로 만들어낸건가 싶었다. 차가운 건 그다지 원치 않지만 지금은...
"그 호의 고맙게 받아들이지."
가볍게 손에 쥔 채로 은근히 느껴지는 한기를 받아들였다. 손에서부터 머리로 전해지는 차가움이 조금씩 정신을 일깨우는 듯 하다. 그 감각에서야 아, 내가 온전한 정신이 아니었구나 깨달았다. 그래서 그런.
소개를 청하는 말에 나는 달리 거절하지 않고 대답했다.
"헤리ㅇ...헤일리 미뉴엣. 3학년이고."
머ㅜ 여기서 학년은 딱히 상관 없나. 또다시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 얼음을 들어 살짝 뺨에 닿았다. 사르르 퍼지는 차가움이 싫지만은 않았다.
막상 자세를 취하고 보니 같은 벤치에 앉은 채 똑같은 자세를 취하는 사람이 둘이 되었다는 게 비류에게는 여유롭고 느긋한 웃음을 흘리기에는 충분했다. 벤치 뒤로 넘긴 팔로 가만히 벤치 등받이를 톡톡 두드리며 그녀는 상대가 반대로 다리를 꼬는 것에 무던한 표정을 짓고 슬몃 시선을 올려 하늘을 바라봤다. 햇빛은 쨍하기 그지 없었지만 살랑거리면서 부는 바람은 나쁘지 않았다.
"이걸로 카페를 알려준 것에 대한 보답은 한거라고 해도 되겠지?"
무던하고 담백한 표정과는 달리 비류는 비스듬히 느긋하게 미소를 지으며 여전히 시선을 돌린 채 흘리듯 대답을 건넸다. 두번째 만남이였지만 흘러가는 것 같은 대화법이 썩 나쁘지 않았기에 다른 손으로 머리를 쓸어올리며 생각했다. 친구, 라면 이쪽이 좋지 않을까. 불가능한 이야기이지. 너는 양지에 있을 수 없는 밤에 사는 존재니까.
햇빛이 쨍쨍한 한낮.피부가 약한 탓에 햇빛 아래에 오래 있지 못하는 루이는 외출을 삼가하기로 했다. 제 방에서 제왕학 공부를 끝내고서,머리를 식힐 겸 두꺼운 사전을 집어들었다.사전으로 머리를 식힌다는게 이해가 안될법도 하지만,제왕학같이 난해한 것에 비하면 사전은 루이에게는 그저 가뱝게 외울만한 단어장 정도의 개념이었으니. 꽤나 예전에도 본 적 있었던 조류사전.어렸을적에는 동물들에 은근히 관심이 많아 이런걸 자주 챙겨보고는 했었다.요즘은 엘리트학이니 제왕학이니 해서 이런걸 볼 여유도 없었고,본다고 한들 자신에게 득이 되지 않았기에 자연히 멀리하게 되었지만.
옆 테이블에 놓아두었던 히비스커스 차를 가볍게 한잔 마셨다.역시 독서와 티타임은 늘 함께 어울려야한다고 생각하였다.제아무리 진지한 내용이 없는 이런 사전이라고 한들,그 본질은 책이었다.그렇다면,자신 역시 그 책에게 최대한의 예를 다하여야 하지 않을까?티타임이 책에게 대체 무슨 예의를 차리는지는 잠시 뒷전으로 미뤄두도록 하고. 책을 읽어내리던 루이는,문득 책의 한 대목에서 시선이 멈추었다.꽤나 흥미로운 내용을 발견한건지,어느새 가벼운 미소마저 띄운 상태였다.
루이의 시선이 멈춘 페이지는 다음과 같았다.
-나스카부비새의 생태-
-가마우지의 일종인 갈라파고스의 나스카부비새(Sula granti)는 한 배에 보통 두 개씩의 알을 며칠 간격으로 낳는데 먼저 부화한 첫째는 암수를 막론하고 며칠 뒤 알을 깨고 나온 동생을 무조건 쪼아 둥지에서 내쫓으며 이렇게 쫓겨난 둘째는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해 죽게 된다.-
-형제를 죽이고 살아 남은 새끼들은 커서도 남의 둥지를 뒤지고 돌아 다니며 어린 새끼들을 괴롭히는 등 공격적인 행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어,가벼이 터져나온 웃음이 적막을 깨부수었다.새 주제에,웃기지도 않아.너희도 꼴에 살아있는 생명체라고,최소한의 생존본능은 있는거니?도태되면 어떻게 되는지,우선순위가 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지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있는거야?최고로 군림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알지?당연히 알지?알고 있는거지?정말 알고 있는거지?그러니까너희도■■■■■■■■■■■한 하늘 아래 두개의 태양이 공존할순 없는거야. 피식 터져나온 실소는 어느새 큭큭거리는 조소로.이어서는 그저 광기뿐인 광소로 변질되었다.한 손을 제 이마와 눈에 올려 살짝 가린채로,그저 미친듯 웃어재꼈다.제 주인의 이질적인 모습을,그의 반려는 그저 무감정한 검은 눈동자로 바라보기만 했단다. 이어,루이는 제 깃펜을 잡았다.쥐어잡고,글씨를 내갈겼다.
아, 보답이라 하면 그 때 티슈를 준 것에 대한 답례였는데 말이다. 보답의 보답이라. 부담스러운 것도 아니니 그냥 그런 셈 칠까. 같은 학년이지만 학년은 관계 없지 않냐면서 내 이름을 이리저리 부르는 것에 장난치지 말라고 얘기했다. 이름에 딱히 애착이 있는 것은 아니다만, 그래도 내 이름이기에.
"농담이 짖굿어. 그거면 됐어. 악수는...손이 이래서."
나도 농담처럼 말하며 오른손을 들었다. 얼음을 들고 있는 손이었다.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려보지만 내 눈은 여전히 앞머리가 가리고 있었다. 앗. 이제서야 깨달은 건데 나 안경 안 쓰고 나왔네. 어쩐지, 좀 허전하더라니.
"뭐가 없다 했다..."
중얼거리며 앞머리를 살짝 매만졌다. 이렇게나 덥수룩하니 행여나 보일 일은 없었겠지만서도. 얼음을 다른 손으로 옮겨 쥐며 자세를 살짝 바꾼 나는 딱히 누구에게랄 것도 없는 말을 던졌다.
"이 학원은 감옥일까 성일까. 생각하기 나름이라지만."
갇혀있다 느끼면 감옥이요 보호받는다 느끼면 성이 된다던데. 어떤 의식의 흐름을 따라 한 말이었기에 특별한 의미는 없었다. 아마도.
평생 책이나 끼고 살면 책 속의 내용 밖에 모르는 바보가 될거라고. 누군가 했던 말이 어렴풋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지만 어쩌면 그 아이의 말이 맞는건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분이라면 책에 나와있지 않은 궁금증을 해결해주실지도 모르겠지. 헝클어진 머리를 빗고 지저분하게 자란 수염을 밀어낸다. 어느정도 정리를 하고 나서야 퀭한 차림새가 조금은 나아진것 같았다.
초조한 마음에 게이트를 밟아 본관에 들어선다. 층계를 올라 수많은 방들 사이를 지나다보면 과묵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사장의 얼굴이 비친다. 클로드는 문가에 다가가 벽을 살짝 두드린다.
"이사장님."
조금은 조심스러워진 행동으로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쉽사리 다가가기 힘든 무거운 분위기에 다른 교수님을 찾아갈걸 그랬나 잠깐 후회가 되기도 했지만 어찌됐든 발걸음을 안으로 한걸음 내딛는다.
풀어내린 머리카락이 바람에 살짝 날렸다. 뭐.. 전장에서야 머리카락이 방해되기에 꽉 올려묶지만 이 정도 서류에서는 딱히 묶지 않아도 괜찮은 법이니. 그렇지만 예기되지 아니한 방문은 조금 곤란했을지도.
"어서와요 클로드 군." 눈이 서류에 가 있기는 했지만 귀신같이 알아차리고는 대답했습니다. 완벽하게 차려입고 업무를 보기는 하지만 요 며칠동안은 한 마리 한 마리씩 상냥하게 어루만져줘서 수치를 조정하고 피도 뽑고 시체의 처분도 해야 했던 터라 흐트러진 옷차림이긴 했지만요.
"먼저 지금 당장 일어나서 대접해드리지 못해서 미안하게 생각해요." 앉아서 차나 다과라도 들고 있으면 제가 크리드의 교사임용 건에 대한 서류만 처리하고 그쪽 소파로 갈 것이니까요. 라고 말하면서 도장을 몇 개 찍기 시작합니다.
저 앞으로 던져진 얼음조각들은 잔디 위를 뒹굴었다. 그 얼음조각들 아래에서 가느다란 거미줄 같은 그림자가 살살 올라오더니 얼음조각을 휘감았다. 그것을 보는 내 눈은 무심했고, 얼음조각은 이내 그림자에 의해 부서졌다.
친절하게도 하는 말에 나는 괜찮다고 대꾸하며 들고 있던 얼음을 비류에게 주었다. 손에서 손으로 얼음덩이가 전해질 때 손가락에 맺힌 물기가 물방울이 되어 굴러떨어졌다. 또르륵.
"찬 것에 내성이 없어서 말이지. 이마는 되도록이면 대지 않는게 좋다더라고."
그러고보면 뺨에도 아주 잠깐씩만 댈 뿐이었다. 아주 잠시, 한기가 머무르고 사라질 정도로. 앞머리에 타인의 손끝이 스쳐갈 때엔 반응 없이 눈을 감을 뿐이었다. 손길에서 위협을 느끼지 않았기에 가만히 있을 수 있었다. 만약 일말이라도 억지로 젖히려했다면, 그림자가 사정없이 내려쳤겠지.
생각 없이 한 말에 비류는 유배지라고 했다. 유배지, 감옥. 너는 무언가로부터 떼어져 이곳에 보내진 것일까. 네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는 가만히 눈을 감은 채 말했다.
"내게는 세상에 둘도 없을 성이야. 이곳을 나가는게 상상되지 않는, 그런 성. 방공호, 도피처, 전선의 후방, 최후의 안식처..."
사람의 체온이 따뜻한 연유는 불을 벼러넣었기 때문이라고도 하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임용 건에 관한 마지막 서류에 도장을 찍고는 그것을 정리해서 넣어둡니다. 그리고는 클로드에게 다가와서 그의 맞은편에 앉고는 탁탁 주전자를 치자 인챈트가 걸려 있는 듯 금방 끓어오른 물에 차를 넣고는 우려내진 차를 따르려고 합니다.
"한 잔 하시겠나요?" 클로드에게 물었습니다. 어쩐 일로 저를 찾으셨는지 궁금하네요. 라고 물어보는 건 당연한 일이죠. 본래 이사장님과의 만남은 절차상이라는 게 존재하는 법이니.
얼음 조각을 부수는 거미줄 같은 그림자를 보는 비류의 노을색 눈동자는 무던하고 담백했다. 부서져내리는 얼음조각들이 잘 세공된 유리조각마냥 빛을 발했다. 빛. 빛이다. 비류는 건네어지는 얼음 덩어리를 받아들고 그것또한 앞으로 가볍게 던지고는 손에 묻은 물기를 툭툭 털어낸다. 무던한 행동이였다.
"찬것에 내성이 없는데 내 호의를 받아줘서 고맙군. 나는 능력이 능력이라 말이다."
실례했어. 여유롭고 느긋한 목소리로, 그와는 반대인 무던하고 담백한 표정을 지은 채 비류가 헤일리의 말에 대답하고는 등받이에서 등을 떼지 않고 반듯하게 앉아있었다. 앞머리를 스치듯이 손을 댄 것은 별수 없는 버릇이였다. 감촉은 언니랑 똑같네. 얼굴을 파묻고 우는 버릇이 있는 언니의 앞에서 피가 묻을까봐 했던 행동이였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그녀는 헤일리가 하는 말에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성이라고 하는 것에 그저 느긋하게 고개를 끄덕여보인다.
"헤일리. 너에게는 이곳이 빛이구나. 삼켜지지 않을, 삼켜질 걱정이 없는 구원."
실소를 흘리는 것에 비스듬히 여유롭게 미소를 지으면서 비류는 똑같이 흘리듯이 말을 하다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가볍게 던져진 얼음덩어리는 이번엔 공중에서 그림자의 실에 붙잡혔다. 가느다란 실에 감싸인 얼음덩어리를 이번엔 바로 부수지 않은 채 볕 아래에서 이리저리 굴려보았다. 불규칙적인 단면에 볕이 닿을 때마다 눈부시게 반짝여, 마치 그 얼음이 빛 덩어리라도 된 듯 보였다.
"일일히 실례할 건 없지 않나. 원치않다면 거절했을 테니까."
내가 필요했기에 받아들인 것 뿐. 그것 뿐.
비류는 내게 이곳이 빛이라고 했다. 삼켜질 걱정이 없는 구원이라고. 그 말에 무심코 소리내어 웃고 말았다. 프흐, 흐흣. 묘한 울림의 웃음소리 뒤로 말이 이어졌다.
"보호해준다 해서 구원인 것은 아니지. 방공호에서 영원히 살 수는 없고 도피처는 언젠가 떠나야만 하지. 전선의 후방은 언제 최전선으로 바뀔지 모르는 곳이고. 그런 것은 구원도 빛도 아니야. 그저..."
그저, 라고 말하고 잠시 텀이 있었다. 살짝 입술이 달싹이다가 다시 말했다.
"...한번 맛보면 잊을 수 없는, 끊을 수 없는 독이자 나락이지."
너무 두서 없는 소리였나. 낮게 중얼거리고 여즉 빛 아래 녹아내리는 얼음덩이를 보았다. 두 시선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림자가 천천히 얼음덩이를 죄여 이내 산산조각내었다. 허공에서 부서져 흩어지는 파편들은 제각기 빛을 발하며 바닥에 흩어졌다. 그리고 녹아 사라졌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그래. 그럼 그렇지. 어제의 스트레스가 과한 추측을 만들어냈다. 비슷한 이름이라고 해서 그게 같은 사람이라고 볼수는 없다는것이다. 완전히 벗어난 억측으로 수 시간을 보냈다는게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죄송합니다."
이사장의 입장에선 조금 우습게 보일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바쁜 와중에 이렇게 불쑥 찾아와선 다짜고짜 묻는 말이 아직 학생들과 대면조차 하지 않은 교수에 대한 의심이라니. 클로드는 이사장의 물음에 그저 고개를 숙일뿐이었다. 그녀가 건네준 찻잔 위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른다. 짙은 향이 코끝을 간지럽혀온다. 하지만 그것을 쉽게 삼키진 못한다.
"...마물들도 우리처럼 생각할 수 있고 감정을 느낄수 있나요? 마치 사람처럼.."
최후의 목소리는 증오와 절규에 가득차 있었다. 우리에 가두어져 죽음을 기다리고 마침내 때가 왔을때는 최후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위해 발버둥을치듯한 그런 목소리였다. 클로드가 상대했던 마물은 그나마 무생물에 가까운 생김새였었기에 가까스로나마 실습을 통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만약 다른 생김새였다면 무사히 수업을 마칠수 있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바닥에서 솟아나는 그림자가 만들어낸 가느다란 실에 의해 얼음덩어리들이 이리저리 움직이자 잠시 비류는 그 빛을 지긋하게 바라봤다. 입술 안쪽의 연한 살을 자신도 모르게 짓씹었는지 피맛이 도는 느낌이였다. 내색하지 않은 무던하고 담백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다가 슬금 비류는 헤일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버릇이라고 해둘까? 비밀은 여자를 여자답게 만들어주니까."
필요할거 같아서 건네어주고. 필요하기에 받았고. 무던하게도 그런 사이였다. 글쎄 무례하게도 자신과 그녀는 같은 평행선을 걷는 느낌이였다. 친구라면 이런 느낌의 친구가 좋겠지.
웃음을 짓는 헤일리가 하는 말에 비류는 여유로이 느긋하게 큭큭 웃었다. 무던하게 그녀는 턱을 여유롭게 쓰다듬으면서 흘리듯이 입을 연다.
"가장 안전한 곳에서 가장 끔찍한 나락을 느끼는군. 그렇다면 다른 독에 중독되어보면 어떻겠나. 무슨 일이 있어도 방공호가 되어주고 너를 구원해주고."
느릿하게 비류는 말을 이어가며 가볍게 바닥에 대고 있던 발을 굴려 저 멀리 부서진 얼음 알갱이들이 떨어진 빛을 향해 얼음들을 솟구치게 만들었다. 눈부신 빛이 얼음에 비춰져서 눈이 멀것 같은 빛무리를 자아냈다.
"기꺼이 너의 빛이 되어줄 수 있는 것. 그림자는 빛이 있기에 더 짙어지는 법이지만 빛이 없다면 그림자도 없어."
비류의 입을 타고 느긋하고 여유롭게 흘러가는 목소리는 담백하기 그지 없었다. 바람도 잘 불겠다. 이정도면 시원하지 않나? 모호하게 농담조로 중얼거리곤 그녀가 비스듬히 웃었다.
"아니요. 의심을 거두기 위해서는 빠르게 묻고 답을 듣는 것이 중요한 법이니까요." 아예 쓸데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라고 말하고는 그의 질문에 차를 홀짝입니다. 차의 표면에 파문이 일었습니다. 그런데....무언가가 이사장실에는 없지요?
"하급 중급 상급... 아바돈이 이렇게 나뉘는 것 정도는 알고 있으리라 생각되네요." 하급도 말은 할 줄 알지만 인간에 대한 혐오감에 그들은 굳이 우리에게 말을 걸려 하지 않지요. 아바돈들의 언어를 해석하면 우리가 느끼는 혐오감은 인간이 배신하여 낙원을 더럽히었음에.. 라는 이하생략적인 것도 있기는 하지만 그건 넘어가도록 하지요. 라고 말하고는 생각할 수 있고 감정을 느끼느냐는 본 질문에는 그렇다. 라고 봐야겠지요. 라고 말합니다.
"하물며 하급 아바돈이 퇴화한 동물조차도 감정을 느끼는데 아바돈이라 하여 감정을 못 느낀다는 것은 지극히 인간중심적인 사고관이지요." 애초에 아바돈이 인간을 증오하고 혐오하지 않았더라면 공격하지도 않았을 터이니까요. 라고 덧붙입니다. 더 궁금한 게 있으신가요? 라고 물어보려고 합니다.
이사장의 시원스러운 대답에 클로드는 쉽게 입을 열지 못한다. 여태껏 마물을 보아왔던 시각이 단숨에 산산조각나는듯한 기분이었다.
아버지는 어린 자신에게 마물들은 그저 괴물같은 존재라고만 가르쳐왔다. 외딴 섬에 자리잡은 소국에는 아바돈의 침범이 끊이질 않았고 어쩌면 마물에 대한 증오심을 가지는건 당연한 일이었을테지.
어릴적 고향땅을 습격해온 마물에게 죽임을 당할뻔한것을 계기로 그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형제를 따라 칼을 드는것을 거부했고 강제로 공화국 아카데미에까지 입학하게 되었으나 적응하지못하고 도망치듯 그곳을 떠나야만했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어쩌면 자신조차도 그 막연한 거부감의 원인을 깨닫지 못했다. 그것은 아마 가슴 깊은곳에 틀어박힌 트라우마보단 칼을 들어야만하는 명백한 이유를 알지 못해서이기 때문일것이다.
"수많은 책을 읽어보았지만 어떤 책에도 마물과 인간이 갈라서게된 시초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고 죽이고 지켜내고, 그런 역사의 반복뿐이었다. 만약 마물들이 인간과 같이 사고를 할 수 있는 존재들이라면 어째서 이토록 갈라졌어야만 했는지. 그 해답을 푸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얻을수 있진 않을까. 그래서 이곳을 찾아온것이다. 그리고 이사장은 아주 간단명료하게 그 해답을 말해주었다. 아바돈이 이토록 인간을 증오하는것에 명백한 이유가 있었음을. 그런데 어째서 도서관에 꽂혀있는 수많은 문헌은 그러한 내용을 전혀 알리지 않았던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수많은 책이라.. 학생들에게 공개된 책은 그 정도가 한계이니까요." 분노와 증오에 미친 걸어다니는 화산이 간혹 도서관을 불태우는 경우도 있으니. 라고 생각하면서 느릿하게 그를 바라봅니다.
"클로드 군이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되지 않는답니다." 세상은 칼라미티 신의 몸 위에 세워진 낙원에서부터 시작하였으나. 그 낙원은 결국엔 점차 더럽혀지고 붕괴되어가기 시작하였지요. 인간의 가장 오래된 기록에는 아바돈이 나타났음에 그리 되었다고들 하지만.... 글쎄요. 고위층이 아는 것은 조금 다르답니다. 그렇지만 분명 하급 아바돈은 우리에게 있어 죄책감은 가지지 않으셔도 괜찮을 따름입니다. 란 생각을 하고는 완곡히 거절합니다.
"다만.. 타락자에 대해서는 약간의 공지가 필요할 수도 있겠군요." 고개를 기울이면서 정책 일부를 생각해봅니다.
비밀은 여자를 여자답게. 어릴 적 괴로워하는 내게 유모가 곧잘 해주던 말이었다. 누구나 비밀 한둘쯤은 가지고 있으니 나 역시 그래도 된다고. 하지만 그 비밀이 감당이 되자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비류가 발을 굴렀다. 저 멀리 부서진 얼음알갱이들로부터 새로운 얼음의 무리가 솟구쳤다. 탐스러운 얼음은 조각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환한 빛을 만들어내었다. 햇빛을 받으면서 그 빛보다 더 눈부시게 반짝였다. 그것을 바라보며 느릿하게 들려오는 말을 들었다. 들으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전에는 그런 것을 원했지. 내가 도망칠 수 있는 곳, 나를 건져올려줄 곳을. 네 말마따나 빛을 원했어. 하지만 나는 그림자야. 빛을 원할수록 점점 어두워져만 가는 그림자."
손을 들어 허공에서 두어번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손을 펴는 것과 함께 감았던 눈을 뜨니 시야에 펼쳐진 손바닥이 보였다.
"그래서 생각했지. 빛을 원할수록 짙어지는게 그림자라면, 기꺼이 그림자가 되겠노라고. 누군가의 뒤에서 그 사람을 받쳐줄 수 있는 그런 그림자가 되고 싶다고."
그러면 자연히 그 사람이 내 빛이 될테니. 하얀 손바닥 위로 그림자가 타고 올라오더니 일렁이며 어떤 형체를 만들어낸다. 마치... 나는 가벼운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 비류를 돌아보았다. 미소 어린 입술이 이게 내 대답이야. 라고 말했다.
그동안 접했던 기록은 고작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것이였다. 그녀는 조근조근 이야기를 이어나갔고 차는 점차 식어가고 있었다. 아카데미생에게 공개되는 정보에는 어느정도의 한계가 있었다. 그녀의 말대로, 일개 학생이 감당할 수 없는 내용들일테지. 해답을 찾기위해 이곳을 찾아왔지만 어째서인지 의구심은 점차 커져만갔다.
"...다른 방법은 없는건가요."
자신도 모르게 엉뚱한 질문을 던져버렸다. 만약 그럴수 있었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희생하면서까지 인간의 영역을 지켜내진 않았을테지. 역설적이고도 이상주의적인 사고관은 결국 스스로를 파멸의 길로 이끌어갈것이다. 그렇다고해서 셀수도 없을만큼 많은 마물들과 싸워왔을 이사장에게는 무례하기 짝이 없는 질문이 되리란것을 결코 몰라서 내뱉은 말은 아니었다. 마지막까지 버틸 자신이 없었기에 그녀에게 도움을 바란것이었다.
아버지의 말대로 자신은 소국의 방패가 되는 정도의 운명조차 과분한 그런 작은 그릇이었을것이다. 쓸데없는 잡념에 세월을 버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서 끊임없이 달아나고 달아나는 나약하기 짝이 없는 그런..
"글쎄요.. 다른 방법이라..아바돈을 멸종시키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경제적인 이유 때문일지도 모르지요." 대부분의 상위 이상의 아바돈들은 타락자를 제외하면 거의 다 별격의 세계로 승천하였으니까요. 아마도 그들은 삼주신의 곁에 있을지도 모른답니다? 라고 아이들의 동화같은 이야기를 말하면서 쿡쿡 웃었습니다.
"환상같은 이야기일 뿐. 아바돈을 죽이는 것은 고귀하지도, 사명깊지도 않지요. 동물을 아무렇지 않게 죽이는 이는 없듯. 아바돈을 죽이기 어려워하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지요." 상담 시스템이 없는 건 아니니. 털어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안정을 준답니다. 라고 말해주려고 합니다.
그녀는 수많은 결투를 통해 깨달음을 얻은듯 편한 자세로 대답을 해주었다. 반대로 이야기를 듣는쪽에선 조금 초조한 눈빛이었지만. 차가 완전히 다 식을때까지 한 입을 마시지도 못하고 결국 테이블 위로 가득 찬 찻잔이 내려진다.
"얘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이상 이야기를 물어봤자 의구심은 더욱 커져만 갈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매달려 칭얼거릴 나이도 지나버렸고. 바쁜 와중에도 고작 학생 한명의 이야기라도 깊게 들어준 그녀에게 감사를 표한다. 황급히 이야기를 마친 클로드는 자리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결국 앞으로의 일들도 고스란히 스스로가 풀어나가야할 숙제로 남았다. 언젠가는 확고한 자리에 멈춰서리라 믿어보지만..
실습이 끝나고 난 뒤의 저녁이었다. 어느 아바돈의 질 나쁜 목소리는 더이상 없지만, 아마 그의 기분을 돌려놓는 데에는 충분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별로 좋지 않은 표정으로 무작정 걸어다니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목적지는 전혀 정해두지 않았다.
" 하아.. "
다른 사람들에겐 아마 실습으로 힘이 빠진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뭐, 절반은 맞는 말이었다. 단지 실습의 무엇때문에 지친 것인지가 다를 뿐. 그는 실습에서도 적당히 임했다. 전력을 다해봐야 어차피 약할테니까. 비록 아바돈도 약화 되어있는 상황이었다 하나, 그의 전투 센스는 별로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냥 치고 빠지고. 그게 끝이었다.
그렇게 고민이나, 별 의미없는 생각이나 하고 있던 그는 문득 고개를 돌렸다. 척봐도 눈에 띄는 외모라 해야할까. 분홍색 눈동자가 눈에 띄지 않는다 말한다면 거짓말이겠지. 아무튼 그는 낮익은 얼굴에 곧바로 그 쪽으로 다가갔다. 아마 이쯤되면 상대도 그가 다가온다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때는 실습이 끝난 다음 저녁.해가 막 지고,황혼이 적당히 내려앉은 다음이었다.모든 상황이 끝나고 제 검에 잔뜩 묻어버린 더러운 아바돈의 피를 깨끗이 닦아내고는,오늘도 혼자 조용히 휴식을 취할 요령이었다. 공포심을 자극했던 아바돈의 목소리는 그에게 데미지를 주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완벽히 감정이 결여된 건 아니었던지라 약간의 두려움은 있었다.그러나 그 정도의 두려움은 간단히 무시해도 무리 없을 수준의 것이었다.유약한 외모였지만 정신마저도 나약한 케이스는 아니니까.
저녁 시간의 고요함 속에,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더해진다.그것 외에는 간간히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나뭇잎 소리 정도랄까.적당히 걸어가다 보니,어느새 인기척이 적은 곳까지 와버린걸까.오히려 환영이었다.자신은 낮의 활기참보다는 이런 고요함이 좋았다.고요함 속에 무난하게 숨어들수 있는 이 느낌이.적당히 내려앉은 새카만 어둠이 마치 실습 마지막에 잠깐 드러내었던 제 흉흉한 본성마저 완벽히 가려주는것만 같았다.그러나 가림막은 언제까지나 제 구실을 해낼수는 없겠지.
그리고,고요한 만큼 인기척은 더욱 잘 느껴지는 법.이쪽으로 다가오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루이는 곧 그쪽이 꽤나 안면을 튼 사이임을 확인하고는,언제나 그래왔듯 눈꼬리를 곱게 접고서,순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평안한 저녁입니다,귀공.실습에서는 크게 힘들다거나 한 건 없으셨나요?"
제법 친하다고 할법한 사이였지만 그의 존대는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이었다.사뿐하고도 가벼운 인삿말과 함께 예를 갖춰 인사를 하고는 다시 곱게 웃어보였다. 뭐,일단 말은 그렇게 했는데.찬찬히 살펴보니 상대는 꽤나 힘이 빠진 기색이 역력했다.실습에서 만난 상대가 호락호락하지 않았었던 것일까.일단은 그 점에 대해서는 대답을 들어봐야 알 것이라고 생각하며 상대를 응시했다.실습때문에 힘이 뻐진게 아니고 다른 일을 하느라 그런 것일수도 있었으니.
"..참,그건 그렇고.귀공께서도 그 역겨운 자의 목소리를 들으셨는지요."
그리고서는,실습 마지막 단계에서 들렸던 그 목소리에 대해 물어보며 고개를 갸웃인다.그것이 자신에게만 들렸던 것인지,아니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들렸던 것인지가 궁금했던 탓이었다.
루이의 말에 그는 말과 함께 고개를 숙여 가볍게 목례했다. 목소리는 착 가라앉아 있지만, 얼굴에 띄는 미소를 생략하는 일은 없었다. 그는 최대한 평소와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긴, 한동안 자신의 기분이 썩 좋지 않다는 것을 드러내고 다녔으니 이제 와서 고치는건 별 의미도 없을 것이다. 그는 숨기는 기색없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답한다.
" 조금 힘들었지요. 참 여러가지 의미로 말이죠.. "
그는 미처 기숙사에 두고오지 못한 검 두 자루의 손잡이를 톡톡 두들긴다. 아마 두고오는 것도 까먹을만큼 신경 쓸일이 있었다는 증거겠지. 그리고 실습때에 있었던 목소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무심코 주먹을 꽉 쥐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웃으며 말한다.
" 저도 들었답니다. 역겨운, 말이었죠. "
그의 말은 아바돈이 아닌, 그 아바돈에게서 나온 말에 더욱 초점을 맞추는 것 같았다. 감히 그 따위 말을 하다니. 라고나 해야할까.
가벼운 목례.그러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역시 힘들었던 것은 어쩔수 없구나.평소같이 보이려고 하는 듯 싶다가 숨기는 기색 없이 한숨을 내쉬는 모습에,인간의 감정을 컨트롤한다는 것이 굉장히 힘들다는걸 새삼 다시 깨닫게 되었다.그리고 내심 불안해졌다.설마 자신도 무의식중에 감정이 드러나진 않았을까.아니,그럴 일 없을 것이다.실습장에서의 것은 자신이 컨트롤한 것이었다.그래.남들 앞에서 내 본색을 띄었다가는 금새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눈치챘겠지.자신은 늘 한결같았다.이번에도 곱게 미소를 지으며 다독이는듯한 목소리 톤으로 말을 이었다.
"저런,그러셨군요.아무래도 그런 끔찍한 것들과 직접 맞대면하게 된다면,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상당히 힘들어질게 당연한 일이기는 하죠."
이어서 상대방이 검 자루의 손잡이를 건드리는 모습에 빙그레 웃었다.자신은 손질을 목적으로 갖고 나온것이라고 하지만,상대방은 아마도 그런 목적으로 가지고 나온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꽤나 지쳤었다는 증거인걸까.그런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루이는 잠깐 주먹을 꽉 쥐는 상대를 바라보았다.그것이 그리도 사람을 화나게 하는 말이었던 것일까.저 내면에 담긴 감정은 두려움일까,분노일까.
"역시,저만 들었던 것이 아니었군요.그리고 그것에 관해서는 크게 신경쓰지 않으시길."
아바돈의 말에 초점을 맞춘듯한 말에 원래 정말로 하등하고 별볼일 없는 존재가 괜히 입만 살아서는 나불대는걸 잘 하니까요.하고 덧붙이며 조용히 미소지었다.자신은 상대방만큼 역겨움을 느끼지 않았다.오히려,날파리의 단말마겠거니 하고 가벼이 넘겼었지.그랬던 것이 누군가에게는 꽤나 크게 작용하는듯 싶었다.결국에는 이것도 그 사람이 겪어왔던 일에 따라 달라지는걸까.
"감정을 숨기기 힘드시다면,가끔은 드러내는것도 좋답니다.사람들 앞에서 드러내기 힘들다 싶으시면 아무도 없을때도 괜찮구요."
주먹을 꽉 쥘 만큼 감정이 격화되어 보였음에도 다시 웃어보이는 상대에게,부드럽게 말을 건네었다.그렇지.가끔씩은 내면의 것을 드러내도 좋잖아.정말 가끔씩은....
"이제야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마도 아니었던 모양이겠죠.. 전 아무래도 더 노력해야 겠네요. "
그는 전부 털어 버리려는 듯이 다시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도 언젠가, 그 말을 확실하게 부수어줄 뭔가가 나타났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다. 그는 항상, 머리 속에 무언가가 생각날때마다 끝없이 똑같은 말을 되뇌었다. 자신이 잘못된 길을 걷고 있을리 없다고. 설령 누군가에게 미움받을 길은 맞더라도, 그게 진실로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그리고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를 바랬다.
" ...그 말이 맞아요. "
조금 긴 정적끝에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하등한 존재. 정말로 그 말이 맞았다. 아바돈은 우리가, 또한 그가 잡아야할 적이었다. 동정이나 연민은 당연히 필요없는 존재다. 그런데도 그것들의 말에 흔들린다는건, 아직도 미숙하다는 걸까.. 아니면 다른 이유일까?
" 그렇게 생각할수도 있겠네요. 조언 감사합니다, 덕분에 좀 괜찮아진 것 같아요.. 하핫. "
그렇게 말하던 그가, 뭔가 생각난듯이 다시 입을 연다. 그러고보니 상대도 어딘가 가는 곳이 있었을텐데.
실습은 그럭저럭 괜찮게 끝냈다! 마지막에 웬 이상한 소리때문에 기분 잡치긴 했지만 대체로 곱게 끝낸 편이라고 생각한다. 분진폭발을 쓰는 아바돈을 상대로 멀쩡히 족치고 나온건 진짜 잘 끝낸거다. 속성상으로도 전혀 가망없는 걸 순수 무력으로 제압하고 나온거니까.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간식은 어제 먹으려다 만 딸기 아이스크림이다! 딸기 케이크를 먹고 또 딸기 아이스크림을 먹는건 쫌 그래서 어제는 케익 오늘은 아이스크림으로 하기로했다. 연습하고 난 뒤 먹는 차가운 거만큼 맛난게 없다!
"아 징쨔 너~~~~~엄모 마잇능거아이야~~?"
입 안 가득 아이스크림을 문 채 오물거리며 학생 식당으로 향했다. 슬슬 저녁 시간이기도 하니 든든하게 먹고 갈 생각이다! 한참 연습하고 나왔기 때문에 오늘은 핫팬츠에 크롭티 차림의 연습복이다. 어제도 반바지였던거 같지만 넘어가자. 싸울때랑 연습할땐 다르다.
이사장은 진짜 몇년만에 보는거지? 예상외로 진로상담을 신청하자 생각보다 빠르게 일정이 잡혔다. 그동안 학교 다니면서 이사장과 면담을 많이 해보지 않았는데...음,뭐 괜찮은 대답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래야겠지. 나는 심호흡하고 문을 열고 난 다음 이사장실로 들어간다. 이사장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주 터프한(?) 차림을 하고 있었고,나는 그런 이사장을 보고 태연한척 하면서 (속으로는 놀랐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 준비된 자리에 앉는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진로상담을 신청한 테오도르 비르겐슈타인입니다."
나는 그렇게 말한뒤,이사장의 눈빛을 본다. 별로 좋은 기색은 아닌거 같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이 학교에 들어올때 골치아팠다고 하니까,좋은 반응이 나올 수는 없겠지.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 나는 다시 한번 심호흡하고 이사장에게 묻는다.
"로머는 같은 무게의 은보다 더 비싸다고 합니다. 제 가치는 그것보다 높으면 높았지 낮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서론 얘기하는건 별로네요,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저는 졸업하고 나서 어디로 가야할지 정해져 있는겁니까?"
그래,카인 에트라사야 출신의 저주받은 꼬맹이를 받아준 이유가 있을 것 아닌가. 순수한 선의로 날 받아젔다면 고맙겠지만 내가 졸업하고 나서 나를 어디에 써먹을지 계획이 짜여져 있는지,그게 알고싶다.
"으음,그것은 사람마다 각자의 차이가 있으니까요.제가 주제넘게 참견할 일은 아닌 것 같지만,너무 무리하시지는 않으시기를."
노력도 자신의 상황이나 상태에 맞게 적당하게 해야만 최상의 시너지를 내는 것이지,그냥 앞뒤 안 가리고 한다면 아무래도 제대로 된 시너지를 보기는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물론 이것도 개개인의 차가 당연히 있을 것이기에 확신하지는 못했지만.아무튼 그것과는 별개로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는건 어쩔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렇지요.진정한 집행인은,사형수가 뭐라고 입을 놀리든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답니다.제아무리 모욕적인 독설을 들어도,하급한 비속어를 듣는다고 하더라도요."
상대방이 하는 말이 제아무리 정곡을 찌르는 말이더라도 절대로 일절 반응하지 않고 자기 페이스를 지키는 것.그것만큼 힘든 것은 없지만,그것만큼 완벽한 방어 체계도 없었다.사실상 기계가 아니고서야 다다르기 힘든 경지였다.
"..뭐,저도 아직 그 정도 수준까지는 아니지만요.아무튼,제가 전해드리고픈 말은 사사로운 말은 그냥 흘려버리셔도 된다는 것이었습니다.주제넘게 참견했다면 사죄드리도록 하지요."
자신이 너무 남의 선택을 방해한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선택은 본인에게 달려있는 것인데,쓸데없는 사족으로 시간낭비를 하고 있지는 않았을까.그런 고민은 곧 들려오는 상대방의 말에 조금은 씻겨 나가는듯 싶었다.
"감사할것까지야 없죠.되려 제가 너무 주제넘는 참견을 한 것은 아닌지 걱정하던 참이었답니다.괜찮아지셨다니 다행이예요."
자신의 말이 누군가에게 힘이 된다는 것은 썩 괜찮은 느낌이 아닐 수 없었다.누군가를 돕는것만큼 보람찬 일은 없었으니까.진정한 성군의 자세에 한 걸음씩 다가가고자 하였다. ....일단은.
"아,저는 괜찮답니다.혼자 조용히 사색을 즐기는것도 좋지만,고요한 분위기에 가벼이 말을 나눌 말동무가 있다면 더욱 좋으니까요."
왠만하면 자신은 전자쪽을 더 선호하는 타입이기는 했지만,후자도 즐기는 편이었다.물론 너무 시끌시끌한 분위기라면 잘 적응을 하지는 못 하였다.
물이라면 마셨을지도 모르겠는데 차는 정말 아니다. 갈증을 해결해주지도 않고 그렇다고 시원한 맛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히 이 이사장실에서 주는 음식은 하나같이 맛이 끔찍하게 없었던 것 같으니까. 차는 이쯤으로 넘기고. 나는 나의 진로가 정해지지 않았다는 이사장의 말을 담담히 듣다가 이야기한다.
"뭘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를 도우러 지옥같은 카인 에트라사야로 가야하는지,아니면 자유를 박탈하는 황족과 부르주아들의 하수인이 되어 그들의 나라를 지켜야 하는지."
나는 그렇게 말한 뒤 멍하게 천장을 올려다본다. 카인 에트르사야에서 싸웠을땐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떠나고 나니 모든 것이 허망했다. 엄마가 내가 이 학교를 졸업하길 바라니 졸업할때까진 다녀야 할거 같긴 하지만,그 다음은?
"물론 하기 싫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겠죠,제게 투자된 돈이 많으니까 본전을 뽑아야하지 않겠습니까. 혹시,당신이 제게 맞는 선택지를 알고 있다면 이야기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차가 별로라니. 유감스럽구나." 그럼 물이라도 마시렴. 목이 탈 때 물이라도 마시면 머리가 조금 맑아지니까. 라고 말하면서 물병을 꺼내둡니다. 그렇지만 테오도르가 생각한 것처럼 맛대가리 없는 음식을 내놓진 않습니다... 비싸고 고급인 것만 내놔서 맛은 괜찮은데 양이 x랄맞으면 모를까요...
"선택지라. 선택을 하는 건 네가 되어야지." 몇 가지 괜찮은 길을 제시해 줄 수는 있지만. 이라고 말하고는 몇 가지를 제시해보려고 합니다.
"카인 에트라사야로 돌아가고 싶다면 존중해 주마." 자유를 박탈하는 황족의 먼 방계가 나이지만..이라고 생각하고는 그를 향해서 무엇까지 생각해봤냐고 물어보려고 합니다.
"..그렇지요.그 정도 경지까지 가진 않더라도,비슷하게나마 재현해낼수 있다면 이미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걸요."
모든 도발을 완벽하게 커버하진 못해도 커버 가능한 선에서 적당히 감정을 제어한다면 정말 더할나위 없이 좋으련만.인간이라는 태생적 한계는 극복해낼수가 없었기에 그저 꿈 속 이야기에 불과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모든것을 포기한다고 한들 쉽사리 범접 가능한 범위가 아니었으니.
"그러시다면야 정말 다행입니다.귀공께 힘이 되어드렸다는 사실이 영광스럽군요."
그래.다시금 상대의 얼굴에 드리워지는 은은한 미소를 보자 내심 안도감이 들었다.그저 말 한마디로 사람의 기분을 좌지우지할수 있다는 건,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할 따름이었다.그저 같은 사람일 뿐인데.정신계 능력자도 아닌데. 뭐,그런 생각은 잠깐 접어두도록 하고.이내 맞잡아지는 두 손에 놀랐던건지 두 눈이 잠깐 동그래졌다가 이내 다시 예쁘게 호선을 그렸다.
"후후,이런 저라도 괜찮으시다면야,기꺼이 귀공의 말동무가 되어 드리도록 하겠나이다."
평소보다 조금 더 격식을 차린 말투로 말하고는 다시금 곱게 미소지었다.자신은 그닥 말재주가 특출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서로 가벼이 잡담을 나누며 즐길 정도는 될테니까.그렇다면야 조금 더 시간을 할애하는것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어짜피 이제 막 저녁이 되었으니만큼,본격적인 밤의 쌀쌀함이 찾아오려면 아직은 멀었다.뭐,요즈음은 밤에도 그닥 쌀쌀하지는 않았다만.
"그러고 보니 귀공께서는 실습때 어떤 형태의 것을 상대하셨는지요?"
각자 다른 우리에 들어갔었으니 상대했던 아바돈 역시 달라질까.문득 그것이 궁금해졌던 것이었다.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난 뒤에 메뉴판을 뜷어지게 보고 결정했다. 오늘 저녁은 해물볶음밥이다! 든든한 걸 먹고싶었지만 디저트를 먹기 위해선 적당히 먹을 만큼만 받기로 했다. 식판에 적당히 접시를 올리고 들고 가는데 아까부터 시선이 묘하게 신경쓰인다. 뭔가 계속 이쪽을 보는 것 같아서 고개를 돌려보니 오잉또잉, 얻그제 봤던 걔잖아? 그그 왕게임에서! 같이 벌칙했던 애!
♪ 인사하자
"안녕!!! 큰…잠깐, 너어 이름이 머였더라?? "
바로 식판을 들고 코앞까지 가서 인사했다. 누군가 했더니 큰 고양이였네! 이름은 모르지만 아무튼 그랬다. 제 나이 또래인거같은데(쟨 어떻게 볼지 모르겠지만) 일단 편히 말을 놓기로 한다. 나이야 서서히 물어보면 된다. 물론 쟤는 4학년일 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다. 학년 수업때 못보던 얼굴이었으니까.
"나 요기 앉아두 대? "
♪ 합석을 시도한다
앞자리에 아무도 없는지 확인한 후 식판을 내려놓으려했다. 합석해도 될진 모르겠다. 아무튼 일단 물어보고 합석하기로 했다. 먹던 도중인거 같은데 난 속도를 맞출수 있으니 상관없으려...나? 에라 모르겠다!
이사장이 이번엔 물병을 주자 고개를 숙이고 물병을 받아든다음 뚜껑을 따고 물을 한모금 마신다. 그리고 이사장의 이야기를 담담히 듣는다. 나온 말은 생각보다 재미있는 말은 아니었다. 너무나 원론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그정도로 내 자유를 존중 해준다는 것에 나는 이사장께 감사했다. 감사합니다. 이사장님.
새삼스레 비류는 그 여학생을 보자마자 왕게임때에 있었던 굉장한 혼돈은 떠올릴 수 있었다. 한참 작은 사람, 아니 그렇게 작지는 않았던가. 여유롭고 느긋한 태도로 비스듬히 미소를 짓고 눈이 마주치자 인사를 하듯 그녀는 상대를 향해 고개를 가볍게 끄덕여보이고는 버터에 맛깔나게 구운 새우와 조갯살. 감칠맛이 나는 소스가 부어져 있는 생선등이 있는 접시에 예의있게 놓았던 포크와 나이프를 쥐고 음식을 입에 가져가 우물거리고 있던 비류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여학생의 모습에 느긋하게 미소를 짓는다.
"안녕. 화난 고양이의 주인인지 고양이를 향해 맹렬하게 짖던 개의 주인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반갑군."
코 앞까지 다가오는 모습에도 그녀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여기서는 나이를 넘기고 겉으로 보이는 모습도 넘겨야한다. 무던하고 담백한 표정으로 상대를 바라보며 입을 열어 덧붙힌다. 비류라고 한다. 너는? 그 뒤에.
"물론이지. 상관없다. 편히 앉도록 해. 이 자리는 내가 사놓은 자리가 아니니까."
비류는 앉아도 좋냐는 물음에 자신의 물잔을 여유롭게 당기며 앞자리를 권했다. 독특한 말투를 봐서는 은 제국이나 운투 국, 공화국이 아닌 다른 곳의 사람인가. 비류는 그렇게 생각하며 식기를 움직였다.
그는 상대의 말에 다행이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말하자마자 맞잡은 손을 다시 떨어트린 그는 잠시 무슨 주제로 이야기를 내어야 할까 고민했다. 물론, 먼저 그에게 온 질문부터 답하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그는 잠시 거미의 모습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 거미, 아무리봐도 상처입은 거미였습니다. 눈이 상해있고, 이상하게 느린 속도, 그리고.. 음, 아무튼 제 상대로 맞다고 판단된 것이겠지요. "
첫 실습인만큼 상대는 보다 가벼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조금 쉽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지만, 그가 그렇게 느꼈다면 다른 학생들도 전부 그랬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딱히 드러내고 다니지는 않았다. 그리고 지금이 되어, 그는 마침 이 점이 궁금했기 때문에 대답을 마치고 얼마 안되어 다시 질문했다.
"돌아가지 않는 것은 자유이지." 지옥이라... 그래. 그 곳은 칼라미티 신님의 저주가 짙게 맴도는 곳이니까. 지옥이라고 불러도 이상할 것은 없겠지. 라고 한숨쉬듯 말을 잇습니다. 열지 말라는 것을 연 대가라고 그녀가 말했었지. 라고 느리게 말을 했습니다.
"다른 쪽으로 가는 것이 더 나을 거라고 생각했니?" 라고 말하고는 다른 쪽이 더 낫다면 공적인 부분이 강한 쪽에 가는 것도 방법이지. 라고 말한 다음 차를 홀짝입니다.
"가장 우선되는 건..공적인 시스템 쪽으로 도시국가의 연합 쪽, 그 다음이 베리아트, 그 다음이 은, 마지막이 운투 국 정도일까." "그리고 제일 마지막은 하마르 대륙의 개척자로 가거나, 카인 에트라사야로 돌아가는 거겠지." 도시국가의 연합은 종교적으로 꽤나 자유로우니까. 적어도 그 종교의 사상으로 남에게 피해입히지 않는다면 말이야. 라도 말합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 라고 덧붙입니다.
조용히 독백하며 골똘히 생각에 잠긴듯한 그의 표정은 잠깐 무표정으로 굳어졌다.상처입은 거미라니.자신이 상대했던 그 토끼를 닮은 아바돈에게서는 그런 부상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자신이 제대로 살피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아무튼 처음부터 공중에 점프해서 물의 창을 날려버리는 토끼를 보고 어느 누가 저 아바돈은 다친 상태라고 판정짓겠는가.
"아마 조금 높은 등급의 아바돈에게 데미지를 입혀,상대하는데 지장이 없을만한 상태로 만들어놓은 게 아닐까요."
그 거미의 상태를 자신이 직접 보지는 못했으니 뭐라 확정지을순 없었지만,일단은 그것이 확실해 보였다.널리고 널린 하급 아바돈들을 놔두고서 궂이 그럴 필요가 있었겠냐만은.뭐 그것도 아카데미에서 준비한 실습의 일부였으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길만한 문제였지.
"제가 상대했던 적은..겉보기에는 큰 손상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만.가뿐하게 이길만한 상대였다는 점은 변함이 없었지요."
아아,나는 아직도 그 추한 몰골을 기억한다.순진하기 그지없는 본체와는 다르게,흉악하게 드러난 이빨이라니!시커먼 속내를 숨기고서 백을 연기하는 자기 자신의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 있어.가벼이 입꼬리를 올려 미소지으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명경지수. 사람은 흐르는 물에는 얼굴을 비추지 않고 잔잔한 물에 얼굴을 비추나니,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한 번.
다행스럽게도 이 훈련장에는 이상하리만큼 학생들이 방문하지 않는다. 일설에 의하면 지반이 약해 갑자기 구멍이 생긴다느니, 우박이 내리느니 같은 시답잖은 소문들이 떠돌아 다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물론 나에게는 굉장히 다행인 일이다. 황자라 뒷소리를 듣지 않아도 될 뿐더러 내 능력은 주변에 무조건적을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다른 이들에게 해가 가는 것은 더더욱 싫다. 황가의 성을 있는 내가 조심하지 않으면 위대한 황가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꼴이 될테니.
바닥의 모래를 조금 집어 힘을 준다. 조금씩 모여 우박만한 구체로 변한다. 타인이 보기에는 빠른 속도일지 몰라도, 그 저주받을 아바돈들에게는 어린아이 뜀박질같이 느려보일것이다. 혀를 차며 몇 개 더 만들어본다.
"곤란하군."
속도가 쉬이 늘지 않는다. 무엇이 문제일까. 공기를 빼 진공상태로 만드는 공정을 건너 뛰어야 하는가? 아니면....
딱 봐도 약한게 티가 나지 않나요?하며 가벼이 웃어 보이고서는 어깨를 으쓱였다.자신은 그렇게까지 몸이 강한 편은 아니었다.그러니 상대방이 거미같은 위험한 아바돈이 나왔을 때 본체가 초식동물인 토끼가 나왔었던 것이겠지.물론 그 형용할수 없는 느낌의 이빨은 뭐라 표현을 하지 못하겠지만. 이어서 조금 놀란듯한 상대의 말이 들려오고,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서 말을 이었다.
"아마 그럴 가능성이 크겠죠?첫 실습부터 강한 아바돈이 나온다면 상당히 난해해지니까요."
아바돈을 상대한다고는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실습일 뿐,실전이 아니었으니까.게다가 첫번째 실습일수록 몸풀기 같은 느낌으로 가볍게 나가는 것이 옳은 순서이기도 했고.무엇보다도 첫번째로 강한 놈을 내보내서 부상자가 속출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실습이 아닐 것이다.아니,말로는 실습이라고 하더라도 평소 알고있던 범주에서 상당히 어긋난.그런 것이겠지.
"그러게요.조금 더 강한 적이 나오게 된다면,배워가는것은 훨씬 많을 테니까요."
그 말에 공감하는듯 가벼이 고개를 끄덕였다.쉬운것도 좋지만 너무 쉬운 적은 실력 향상이 되질 않으니.뭐,그것은 이제 차차 강한 녀석을 상대해가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모든 실습은 그렇게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니까.
"뭐 그래도..역시 아직까지는 조금 약한 아바돈을 상대로 해서 실력을 키우는게 중요하겠지만요."
그것은 다른 사람을 칭하는것이 아닌 자기 자신을 칭하는 말이었다.자신은 아바돈을 베어본 경험이 거의 없다시피 했었기 때문에.
토끼쟝: 사실 나는 내상 엉망진창이라서 원래는 물의 창 엄청 만들 수 있었는데.. 겨우 두어개..에.. 이빨도 많이 부러졌음.. 코브라쟝: 사실은 피가 독 아니거든. 이사장에게 후들겨맞아서 독 기관이 파괴되어서... 피가 독화됨... 개구리쟝: 소리 내는 기관 하나 나가리됨요.. 점액질도 엄청 걷어졌어요.. 흑흑 사실은 혀에서 속성공격 나가는데 잘림요.. 아귀쟝: 흑흑흑.. 내 불 뿜는 기관...
솔직한 평가였다. 제국에서 태어났다면 여제의 친위대가 되었을법한 거구의 남자. 그런 남자가 자신에게 다가온다면 열에 아홉은 긴장할 것이다. 자신을 해한다는 감정을 떠나 사람은 큰 물체 앞에서는 경외심과 긴장을 느끼기 마련이니. 그의 중얼거림 속에서 '신기한 능력'이라는 말이 들려왔다. 그렇다면 그는 나의 능력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역으로 말하자면, 나에게 해를 끼칠 인간은 아니라는 것이다.
거의 다가온 그를 향해 압축해 놓은 둥근 모래를 하나 던져준다.
"보잘 것 없는 능력이다."
겉보기에는 능력의 유무를 알 수 없다. 검과 그의 다부진 체격이 무투파라는 것을 말해주지만, 그 외의 정보는 얻을 수 없다.
단칼에 거절당할줄 알았는데 아니네, 편히 앉아도 된다니 편히 앉기로 했다! 그보다 왕게임 할때는 잘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얘 꽤 딱딱하고 또 날카롭다. 어쩌면 난 얘를 큰 고양이가 아니라 큰 호랑이라 불러야 될지도 모른다! 어쩐지 왕게임때도 포스가 장난아니더라니. 실은 엄청 무서운 아이일지도 모른단 생각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보다 뭐야, 얘도 해산물 먹고 있었어????? 물론 그런건 중요한게 아니다! 파파가 남의 건 탐하지 말라고했다! 그러니까 난 내 몫만 맛있게 먹으면 된다. 수저를 들며 상콤히 말문을 텄다.
"리타. 리타 라이프니츠! 올해 4학년. 열아홉이야. "
너 4학년 아니지? 4학년에서 너 본적 없어. 너도 아마 나 본적 없을고야! 척 봐도 무리수일 말을 태연히 늘어놓곤 한 숟갈 떠먹었다. 음~그래 이거야! 천천히 맛을 음미하며 한 숟갈 더 펐다. 볶음밥을 들고오길 너무 잘 한것같다. 너무 맛있으니 후딱 먹고 또 연습하러 가야겠다! 먹은 만큼 춰야지. 기초부터 탄탄히 다져두지 않으면. 그러고보니 걸리는 게 있는데 이 참에 말해둬야겠다!
"왕게임때 자세히 못봤는데 너어 눈 징~~~~~쨔 예쁘다아! 노을빛 넘모 예뻐 징쨔, 하늘 보능거 가타. "
꼭 말하고 싶었던 걸 읊은뒤 다시 한 숟갈 펐다. 어째 쟤가 몇마디 할때 난 두 숟갈 뜨는 거 같은데 양이 맞춰지면 적당히 속도를 줄여야겠다. 너무 빨리 먹으면 무거워서 못 추니까. 아이스크림 먹은 값 해야지 응.
// 프록시^^ 돌아왔어요 이제 프록시는 모바일로만!!!!!!!!! 외국 아이피 여긴 못쓰니까!!!!!!!!
그래,맞아.겉으로 보이는게 전부가 아니다.그래도 어느 정도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힘이 비례하기는 하였다.꼭 그것뿐만 아니더라도...어느 정도는..... 아무튼,무언가를 말하려다가 멈칫 하는 상대를 보며 살짝 고개를 갸웃였다.무언가 할 말이 더 있었던 것일까,아니면 그냥 농을 건네고 싶었던 것일까.이유는 후자에 더 가까워 보이기는 했지만.
"확실히 그건 그렇기는 하죠.그저 단순하게 능력을 사용하는것뿐만이 아닌,능력을 최대한 응용하는 것 역시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한답니다."
뭐,아직 첫번째 실습이었으니만큼 앞으로 할 실습이 더 많이 남아있으니 기대해도 좋겠지요.하고서는 다시 눈꼬리를 곱게 휘었다.이번 실습이 그저 능력 사용 및 무기 사용으로 끝났으니 다음 실습에서는 응용 역시 더 자유롭게 할수 있겠지.
"후후,좋은 자세예요.무언가를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도 모르니까요.뭐든지 한번쯤은 경험해보는것이 좋을 것이랍니다."
그렇게 말을 마치고서는 잠깐 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오늘도 날씨는 좋았더란다.그러다 문득 자신이 아직 하지 못했던 일이 있었음을 깨닫고는 이내 잡담을 나누던 상대방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먼저 실례하겠습니다.급히 해결하여야 할 일이 남아있어서 가 보아야 할듯 합니다.늦은 시간까지 저의 말동무가 되어주신 귀공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겠습니다."
비류는 여러모로 보나 현저하게 어려보이는 얼굴이라던가. 언뜻 드러나는 체형. 게다가 독특한 옷차림을 한 여학생을 예의바르고 무례하지 않은 무던하고 담백한 표정을 짓고 슬금 눈짓으로 훑다가 자그마하지만 꽤 공격적인 작은 동물을 떠올렸다. 고양이는, 이쪽이 더 잘어울렸다. 왕게임 때에도 느낀 것을 생각하며 소리 없이 해산물들을 깨끗하게 발라내어 입에 가져간다. 소리없이 음식을 우물거리다가 비류는 여유롭게 슬쩍 눈썹을 치켜올린다.
"열아홉이긴 하지만 학년은 아래야. 3학년. 이 아카데미에서 선후배의 개념은 없지 않던가?"
4학년이 아니니 당연히 본 적이 없지. 느긋하게 덧붙혀지는 그녀의 목소리는 입안의 음식물을 모두 삼킨 뒤에 이어졌고 비류가 잠시 눈을 깜빡인 건 그 뒤를 이은 리타의 말 때문이였다.
"그래. 고맙군. 리타. 너도 예쁘다기보다는 귀여운 편이야."
노을빛 눈동자가 예쁘다는 말에 잠시 시선을 슬몃 피하면서 큭큭 여유롭게 웃은 뒤에 리타의 칭찬에 비류또한 마주 칭찬을 해보이고는 물이 담긴 잔을 들고 입에 대고 몇모금 마셨다.
비류는 이것으로 식사가 끝이라는 듯 포크와 나이프를 나란히 접시에 기대어놓고 티슈로 잇가를 닦으며 여유롭게 테이블 아래로 다리를 꼬고 리타를 마주 바라본다.
한밤중의 수련장. 이 시간에 사람이 없을거라고 대략적인 조사가 끝났기에, 나는 다른 용건으로 실습에 빠졌던 연유로 개인적인 몸풀이정도는 필요했다. 다음번에는 참여해서 어느정도 성과를 보일 필요는 있었으니까.
몸풀이. 말은 그렇게 했지만 능력인 심연의 파편의 통제로 적당한 멍멍이 훈련시키듯 프리스비 원반을 날리고 그것을 능력 통제를 통하여 집는 그런 반복적인 활동이다. 자유자재로 다루려면 결국 반복적으로 계속해서 이 능력. 생명체도 아니면서 생명체 흉내를 내는 불길한 무언가에게 너는 내 통제안에 있다라는 것을 주입시킬 필요가 있다. 지속적으로 그런 행위를 반복하지않는다면 다시 통제불능의 상태로 써먹지도 못할 물건이 되버리니까.
"단지.. 문제가 있다면 생긴게 문제겠지요."
혼잣말을 하듯 말하며 생각한거지만 통칭 멍멍이 훈련을 시키면서도 껄끄로운 점이 있다면 이것을 멍멍이라고 부르고 있음에도 생긴게 정말 특정하기 힘들다. 누구는 눈알벌레라던가 누구는 승냥이라던가 누구는 맹수라던가. 형언할수없는 무언가라고 말하는게 좋지만, 술자인 내 입장에서 다루는 느낌이 훈련이 하드한 맹견이라고 생각하기에 그저 멍멍이라고 애칭처럼 부른다.
어째서 이렇게 능력이 뒤틀려버렸는가를 생각한다면 가증스럽기 그지없지만서도, 지금으로서 의지할 능력도 몇되지않는 자리에 선 시점으로선 결국 하나라도 더필요한 힘의 일부라고 생각해 잃는다면 아까워 할것이다.
"결국 애증의 존재라고 하는게 맞을까요 이 녀석은."
결론적으로는 그런 복합적인 관계로 얽힌게 내 능력인 심연의 파편이고, 나는 결국 필요해서 이 능력을 훈련할 필요가 있었다. 단지, 어느정도 멍멍이 훈련이 되고있는 과정속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을 순간적으로 느낀게 문제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