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극판 규칙 ☞ 상황극판은 익명제입니다. 본인이나 타인의 익명성을 훼손하는 행위는 삼가주세요. 하지만, 자신의 위치(스레주/레스주) 등을 밝혀야 할 상황(잡담스레 등에서 자신을 향한 저격/비난성 레스에 대응할 시 등)에서는 망설이지 말고 이야기해도 좋습니다. ☞ 서로를 존중하고, 자신이 먼저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집시다. 모니터 너머의 이용자도 당신처럼 '즐겁고 싶기에' 상황극판을 찾았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모두 두루두루 친하게, 잘 지냅시다. 말도 예쁘게해요, 우리 잘생쁜 참치들☆ :> ☞ 상황극판은 성적인/고어스러운 장면에 대해 지나치게 노골적인 묘사를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약물과 범죄를 미화하는 설정 또한 삼가해주세요. 각 스레마다 이를 위반하지 않는 수위 관련 규범을 정하고 명시할 것을 권장합니다. ☞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행동이 결코 아닙니다. 바람직한 상판을 가꾸기 위해서라도 서로에게 관심을 가져주세요. 다만 잡담스레에서의 저격이나, 다른 스레에서의 비난성 및 저격성 레스는 삼갑시다. 비난/비꼬기와 비판/지적은 다릅니다. ☞ 상황극판의 각 스레는 독립되어 있습니다. 특정 스레에서의 인연과 이야기는 해당 스레 내에서만 즐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잡담스레에서 타 스레를 언급하는 일도 삼가도록 합시다. 또한 각 스레마다 규칙 및 특징이 다르기 마련입니다. 해당 스레의 이용자들에게 문의해주시고, 그 규범에 따라 행동해주세요. ☞타 스레와의 교류 및 타 스레 인원의 난입 허용 여부(이건 허용한다면 0레스에 어디까지 괜찮은지 명시해둡시다)와, 스레에 작성된 어그로성 및 저격성 레스의 삭제 여부, 분쟁 조절 스레의 이용 여부에 대한 결정권은 각 스레의 스레주에게 있습니다.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서 "분쟁 조절 스레"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 처음 오신분은 어려워말고 잡담 주제글에 도움을 청해주세요! 각양각색의 스레들을 가볍게 둘러보는 것도 적응에 효과적입니다.
5월. 자고로 5월은 가정의 날이라고도 하지만 분홍색의 거슬리는 꽃이 많이 피는 계절이기도 한다. 디트리히의 인성으로는 지금 당장 저 꽃을 전부 불태우고도 남았겠지만 지금 그는 선생님의 명에 따라 꽃놀이를 하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투기한 쓰레기를 줍는 처지다. 오늘의 죄목은 수업을 잘 들어야 합니다. 귀여운 SD 이사장님이 그려진 팻말을 목에 걸고 죽어가는 표정으로 쓰레기를 줍는 모습이 퍽이나 불쌍하다.
"..그런데 우와 SD라니 이사장님 춘추 생각하면 안어울리는데 ..ㅎ"
이상한 헛 소리를 하며 근처에 들려서 사온 간식 거리인 하얀 사탕을 입에 넣는다. 사탕을 한 바퀴 입안에서 굴려보지만 허전하다.
문득 디트리히는 주위를 두리번 거려보았다. 저기도 커플 저어기도 커플.. 커플 천국이다. 어쩌면 저 것들이 붙어있는게 자신의 자성보다 더 강할지도 모르겠다. 그는 장난삼아 가까이 벤치에 앉아있는 남녀 커플을 같은 S극으로 지정했고 자력으로 인해 팍 하고 밀리는 모습을 보자 자지러듯 바닥에 앉아 웃기 시작했다.
"네 피를 묻히고 내 이름을 부르려무나." 그리하면 이 몸의 남은 파편이 네게 임할 것이다. 그 목소리가 사람을 홀린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나는 알았다. 근본적으로 무언가 다른 존재라는 것을 나는 안다.
"이름이 뭐야?" "■■■■... ■■■■란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겠지만 네가 말하는 그 이름이야말로 그 몸의 피를 매개로 이 세상의 구성원. 지고하신 칼라미티 신님의 권속이자, 재앙인 나에게 닿아 파편을 불러들일 수 있을 것이다.. 씨익 웃으며 그는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을 흔들거리며 떠나갔다.
>>85 자신이 혼혈인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이나 그런 건 없어요~ 괴롭힘을 받던 때에는 내가 잘못된 것인가 하고 조금 힘들어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어떻게 하면 이 태생을 연구에 쓸 수 있을까 고민할 정도로 아무런 걱정이 없답니다! 다만 눈을 가리는 건 남들이 보고 수군대는게 싫어서에요~
"나 같은 문제아랑 서스럼 없이 지내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난 말이야 그거야. 판잰드럼. 바퀴처럼 빙글빙글 돌아다니다가 펑 터지는 무기. 하지만 이런 문제아가 황자님.. 아니 세하와 친하게 지내고 싶으니까 서스럼 없이 지내주지" "이제 아카데미 남은 2년동안 오늘 이 날을 후회하기만 할꺼야? 나 한번 붙으면 진짜 끈질기니까."
피실피실 웃으며 허리에 손을 얹는다. 그러나 이런 말을 하면서도 조금 어색한지 괜히 근처에 있던 커플들에게 자성을 부여해서 떨어트려 버린다. 떨어져라 커플들아..
"그럼 내 벌은 여기서 끝! 다음엔 실습에서 보겠네! 그땐 잘부탁할게 세하야!"
디트리히는 그렇게 말하며 SD이사장님이 그려진 팻말을 빤히 보더니 차마 버리진 못하고 손에 들고 가버렸다.
크리드: 우으.. 심심하드아아아...(칼라미티 신전을 인챈트로 떡칠할까 말까 심각하게 고민중) 내가 너무 임팩트 없게 등장했나... 아라: 참치머리를 모자처럼 쓴 존재에게 쉽게 부탁을 할 것 같진 않네요. 크리드: 그럼 상어옷을 입었어야 했던 것인가! 그랬던 건가! 그리고 자연스럽게 상어옷에 달린 인챈트를 보여줘야 했던 거야! 고마워 아라쟝! 다음엔 그렇게 해봐야지! 아라: 그런 의도는 전혀 아니었는데. _____________
크리드: '선을 넘었다'라는 의미가 '마음을 열고 더 친해짐' 이라고 해서 교사에게 '오늘 드디어 아라쟝이랑 선을 넘었어요!' 라고 말했어.. 그리고 그걸 듣던 아라가... 시엔: 그..그래서 눈탱이가 밤탱이가 된 건가요..? _____________
[ 최근 일어나는 아카데미 내부의 시설물 붕괴 건에 대하여 심히 유감을 표합니다. 저 디트리히는 2학년의 대표 아닌 대표 입장으로 2학년들 사이에서 시설물 붕괴에 대해 어떤 여론이 돌아다니는지 진중하게 조사한 결과 대다수의 2학년은 별 일 아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증명되었습니다 (참조 - 2학년 설문조사 P2) 위 설문조사 기간은 금일 1교시에 복도에 기제하여 1교시가 끝나자마자 회수하였으나 아무도 어떠한 의견도 적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리 큰 일은 아니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
[디트리히 학생에게. 도대체 1교시 시작에 기제해서 1교시 끝나자마자 회수하는 설문조사가 어디있나요? 다른 학생들이 전부 댁과 같은 줄 아시나요? 다른 학생들은 수업이란 걸 듣습니다! 당신이 시설물을 박살내는 동안! 시설물을 수리하는 돈은 어디서 나온다고 생각하시나요? 주말에도 끌려나와서 청소하고 싶나요? 아니면 그 넘처나는 힘을 제가 좀 빼드릴 수 도 있습니다. 반성문은 못 본걸로 하겠습니다. 다시 제출하세요]
대략 이것이 내가 교실에 남아 혼자 펜을 굴리는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귀찮은데."
능력을 이용해서 홀로 놀다보면 아이디어가 짠 하고 생각나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시작한지 2시간. 이미 교내엔 남은 사람이 얼마 없다. 책상에 머리를 박고 천천히 생각해본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사실 나 역시 아카데미라는 사회의 피해자가 아닐까? 그래 그렇다면 이 아카데미의 사회를 구축한 이사장님이 흑막이다. 땅땅땅 판결 끝
아무리 혼자 있고 싶어도 마음대로 안되는 것이 몇 개 있다. 일단은 학교인 만큼 수업을 일정수준 빠지는 건 역시 불가능하지. 무엇보다 최근에는 혼자 있고싶어서 찾은 좋은 장소가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기라도 한 건지 아니면 그냥 내가 다닌 시간대에만 사람이 없었던건지 모를 정도로 소란스러워져서 자연스레 피하게 될 수 밖에 없다. 애초에 학교가 이상한게 아닌가. 가끔은 뭔가 터지는 소리도 나서 무심코 위축되기도 하는데 학교라면 학생을 보호하기 위해서 안전에 만전을 기할 필요가 있다. 아니라고? 그러면 이렇게 수업이 다 끝난 시간인데도 아직 교실에 남아있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다른 사람은 알 것 없지만 나에게는 충분히 위협이다. 읽던 책을 두고 오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일단은 천천히 다가가서 책만 가져오면…”
어째 늘어나기만 하는 혼잣말로 마음을 다잡고 조용하게 그리고 신속하게 빠른 발걸음으로 자리를 향해서 걸어나가면 된다. 물론 아직 문도 못열었지만 그래도 이건 큰 진보다. 먼저 도망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게 어딘가. 아무도 뭐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준이 된 거야. 나는 또 진보하고 만건가…!!
“천천히… 천천히…”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문을 열려고 했지만 끼익거리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아, 보지마. 이쪽 보지마!!! 점점 공포감이 크게 마음을 잡아먹기 시작하고 그건 수치심을 바뀌어가며 얼굴을 붉게 바꾸어 갔다.
조용히 누군가가 들어왔다. 아무래도 나를 아는 사람인가보다. 그게 아니라면 무슨 이유로 나를 경계할까? 하지만 여기서 디트리히에 대한 평가를 잠깐 집고 넘어가자면 그를 착한 사람이라고 불러주는 사람은 몇몇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에요? 라고 물으면 10에 10은 아니 라고 답할 것 이다.
소녀가 어느 정도 들어오자 디트리히는 펜을 내려두었다. 석양을 등지고 고개를 삐딱하게 돌려 에녹을 바라보던 디트리히는 피식 웃고는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약간의 철로 이루어진 문이 쾅하고 강하게 닫혀졌고 그제서야 디트리히는 천천히 일어나 에녹을 향해 다가갔다.
"괜찮아 침착해 나 무서운 사람 아니야"
이 사단을 내고 무서운 사람이 아니라니.
"그냥 내가 이사장님에게 나좀 그만 괴롭혀달라고 탄원서 비스무리한걸 (반성문이다) 작성하고 있었는데 마침 너가 왔지뭐야? 있잖아 너 몇 학년? 같이 놀까? 나름 나 재밌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
아, 틀렸다. 완전히 들켰잖아. 망했네. 다음 생은 뭘로 태어나게 되는걸까. 이왕이면 돌이 좋겠어. 자갈같은걸로 태어나면 아무도 모르겠지… 부정적인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워가자 혼란때문인지 점점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ㅇ…아니. 나… 아니 저는 책을 가지러… 히익!!”
갓 태어난 송아지처럼 벌벌 떨리는 다리와 흔들리는 동공이 혼란을 그대로 드러내는 듯 했다. 머리에 수많은 생각이 지나가던 사이에 큰 소리와 함께 문이 저절로 닫혀버렸다. 뭐지? 유령? 유령인건가? 아바돈? 유령같은 아바돈인가 아바돈 같은 유령인가? 자기 입으로 무서운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대부분 말 그대로 무서운 사람이다. 거기에 이사장님한테 괴롭힘이라니… 아무래도 사상이 나만큼 뒤틀린건 아닐까 싶은 정도이지만 이건 조금… 아니 엄청나게 위험한 사람이 분명하다. 응, 사람을 단정짓는 건 좋지 않은 버릇이지만 이건 확실하다. 위험한 사람이잖아. 여기 학교지? 여기 학교 맞지?
“ㄱ…그러니까! ㅈ 저저 저는 에녹이라고 합니다…? 22… 2학년 입니다…!!”
아, 엄마. 엄마가 보고싶어. 어째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아, 엄마. 왠지 지금 엄청나게 시기도 안맞는 상태에서 위험한 사람과 만난 것 같아요.
어째서인지 반 강제로 착석되었습니다. 이건 무슨 의미지! 지금부터 널 어떻게 해버리기 전에 사전청취를 하겠다는 건가! 왜인지 공포밖에 남지 않은 상태라서 그런지 아니면 평소에도 이랬던건지 흐름에 따라갈 수가 없을정도로 폭풍같이 말을 쏟아내는 남자가 이제는 일부러 공포를 주려고 하는건지 아니면 그냥 불법침입자인지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아… 아니 저는 책 읽는게 노는거라…”
방에서 나가지도 않다보니 이런 사람이 있는 줄도 몰랐다. 이 정도면 상당히 유명할 법도 한데 아니면 내가 친구가 없어서 그런건가. 단순히 정보의 입수가 어려웠을 뿐인건가!!! 면접은 어떻게 통과한건지 신기할 정도로 학생이 맞는 지에 대한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학생은 맞나? 맞겠지? 이사장님 이야기를 꺼냈으니 아마도 학생이 맞을거다. 응. 오늘부터는 수업에 나오지 말자. 본국 송환이 되더라도 이런 분위기는 정말로 죽을 맛인걸 사람은 견디기 힘들면 도망치면 되는거야. 약 10분동안 폭포수처럼 막힐줄을 모르는 말이 계속되었고 그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느 순간 나의 정신은 이미 아득해져 있었다. 모든 말에 어버버거리면서 정신을 놓은채로 세상의 무의미함을 깨달을 무렵에 귀를 찌르는 듯한 무언가가 들려왔다.
“아니 그래서 너는 이라고 할까 뭐라고 할까 저는 아무것도 아닌데요. 잡초입니다. 네, 잡초입니다. 조금 지나가게 해주시면 이 은혜는 제 평생을 걸어서라도 갚을 테니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세요!!”
자리에서 튀어나가듯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절까지 하면서 엄청난 속도로 말을 뱉었다. 살려주세요. 이정도로 말하는 사람은 왜인지 과거가 생각나서 부끄럽기도 하단 말입니다.
큰일이다.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아니야. 이건 아마도 전에 봤던 그건가. 니 말따윈 시시해! 내 노래를 들어! 같은 상황인건가. 아니면 그냥 평범하게 성격이 이런걸까. 따라갈 수가 없다. 내가 이렇게 했을때의 사람들의 기분이 이랬던건가. 조금 더 상냥하게 대해줄걸 그랬다고 마음속에서 깊은 깨달음을 느껴가고 있었다. 이미지를 신경쓰는 황족에 미사를 즐기는 사람이라니 이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들이랑 얽혀있는거지. 은 제국의 황족과 사적인 친분이 있는 정도라니 1년을 다녔지만 아직도 궁금증밖에 생기지 않았다.
“ㅈ… 저는 괜찮은데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안도와줘도 괜찮다고 말해봤지만 이미 큰 목소리에 묻혀서 나조차도 들리지 않는 수준이었다. 다음부터는 조금 목소리를 내는 연습을 해야하는걸까. 아니, 지금이 그때다. 공적인 자리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될지도 모른ㄷ… 무리야. 아무리 그래도 공적인 자리에서 이렇게 활발한 사람은 없잖아…
“ㄱ… 저… 낯선 사람과 대화하는 법이란 책인데요…”
디트리히는 이미 교실내의 수많은 책을 꺼내 책상위에 올려둔 후였다. 책을 두고 가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면 나도 그냥 내일 올 걸 그랬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무두질이 된 가죽 표지위로 화려하게 제목이 적힌 기묘한 책을 찾아 바로 품에 안았다. 아무래도 이건 들키면 내 왕족으로서의 이미지가 끝이잖아. 그래도 사적인 자리이긴 해도 그런건 영향을 끼치는 법이다.
“ㅇ…운동은 일주일에 두 번 정도 하는데요…”
잡초가 취미라니 무슨 뜻이지. 아니 지금은 맞다. 지금 난 잡초다. 길거리에 난 잡초가 되는거다. 더 자세히 말하면 논에 난 피 같은 존재다. 당황해 하지 말라니, 이렇게 다가오는 사람이었을줄도 몰랐는데 당황하지 말라니! 친구가 많은 사람은 다르다는 걸까. 아니면 그냥 이 사람이 특이한 걸까.
이리저리 기웃거리던 디트리히는 에녹이 책을 찾은 것 처럼 보이자 빠르게 다가가 에녹이 품에 안은 책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제목은 보이지 않았지만 상당히 고급스러워 보이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물건 같았다. 일기장인가? 일기장이구나! 그러니까 찾으러 온거겠지! 아하!
"운동? 일주일에 두 번? 그런 패턴이 있는거야? 성실하네.."
그리고 시작되는 또 다른 자기 이야기 나는 말이야로 부터 시작해서 쓸모없는 잡담이였지만 디트리히는 안경을 어루만지며 그 잡담을 즐겼다.
"그런데 운동을 하는 것 치고는 상당히 가녀린데? 팔이라던가 몸 전체의 느낌이. 응? 이런 말 하면 실례일려나? 미안미안!"
두 손을 합장하며 사과의 제스처를 보여준다. 이 위의 적당히 긴 묘사에서 여기까지 걸린 시간이 대강 4분.
"아 맞다! 너도 실습하지 2학년이면?? 괜찮을려나? 너 토끼 같은 이미지거든!" "하지만 괜찮아! 나 프론트니까 여차하면 보호해줄게! 나는 1학년 온종일 능력을 연구하고 개인 트레이닝에만 시간을 보내서 실습을 어느정도 자신이 있어!" "아 그런데 사실 이렇게 경박한 성격이면 곤란하겠지? ..실습 사실 나도 처음인데.. 아니 하지만 내가 이렇게 허세를 부리면 에(녹)토끼가 실습을 두려워하지 않고 잘 끝낼 수 있지 않을까? 응? 이거 혹시 괜한 참견? 나부터 잘해야하는건가?"
계속해서 책의 제목을 보려고 하는 디트리히를 피해 살짝 뒷걸음질 치고서는 그대로 책상밑으로 들어가 조용히 벌벌떨었다. 오들거리는 팔다리에 책을 얹고서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이대로면 위험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어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처음의 그 문을 닫은게 유령이 아니라 이 사람인 것 같아서 어차피 나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더 많이 하면 근육통이 도져서…”
사실 그냥 하고 싶지 않은 것도 있다. 건강 관리 차원에서 몇 번 몸을 움직이는게 전부인지라 적당히 쓰는 검술에 호신술 조금이 전부인걸. 게다가 저 사람의 말이 틀린건 전혀 아니다. 애초에 그렇게 검술을 잘썻다면 내가 검사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평범하게 이런 틀어박히는 상태가 지속되면서 햇빛을 보는 시간도 저절로 짧아져서 근육은 저절로 줄어들고 말았다. 체중은 오히려 안 먹으니까 빠지기도 했고. 영양실조에는 안걸리게 나름대로 관리를 하고 있는데도 가끔은 힘들다.
“ㄱ…괜찮습니다. 괜찮아요.”
사과하는 디트리히를 향해서 양 손바닥을 내보이면 최대한 적극적으로 괜찮다는 모습을 피력했다. 이러면 별 문제는 없겠지. 아마도… 그나저나 이 사람은 프론트인가. 이 사람의 행동거지를 보면 잘 어울리기도 한다. 게다가 1학년때 매일같이 능력 연습을 한건가… 난 그때 뭐했더라…
“에토끼…? ㅈ…저는 상관없으니까요. 네, 실습은 괜찮아요.”
무언가 이상한 말을 들은 것도 같지만 첫 인상하고는 다르게 꽤나 상냥한 모습을 보여주는 디트리히씨. 그래도 처음 그 광기서린 눈이 계속해서 잊혀지지 않는다. 그나저나 이 사람 탄원서를 쓴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
이렇게 이 사람을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학자들의 시체 더미 위에 앉아있고 회색 코트 아래에 갑옷을 받쳐입은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테오,오랜만이네. 한 3년만인가?"
"그렇습니다."
내가 어릴적 내 아버지의 동료였고 수많은 아바돈을 사냥했던 로머,회색 늑대 루카스. 이 곳에서,이렇게 만나고 싶진 않았다. 루카스 아저씨를 만난다면 조금 더 나은 자리에서,밝은 분위기에서 만나고 싶었는데. 지금처럼 지하유적에서,학자들의 시체더미 위에 앉아계시고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루카스 아저씨를 보고싶지는 않았다. 나는 까마귀 가면 너머로 루카스 아저씨를 바라보며 말했다.
"긴 말은 필요 없으리라 믿습니다."
"테오,너에게 실망했다. 얼마나 무심하면 몇년만에 만난,돌아가신 아버지 친구에게 그렇게 차갑게 대할 수 있는거냐?"
"검에는 의지가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회색 늑대는 그 대답이 웃긴지 크게 광소를 터트렸다. 나는 기다리지 않았다. 나는 왼손에 든 단총,마리아로 회색 늑대의 흉부를 쏘았다.
"그래,그래. 무슨 뜻인지 잘 알겠다."
회색 늑대는 이것으로 죽지 않는다. 그는 광소를 터트리며 갑옷을 뚫고 박힌 총탄을 끄집어냈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부르짖었다. 이미 인간이 아니라 짐승에 가까운 목소리에 난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친구가 있는 곳으로 보내주마."
회색 늑대의 능력이 발동했다. 늑대로 변신한 그는 빠르게 내게 달려든다. 나는 내 왼손에 쥔 단총,마리아를 홀스터에 꽂아넣고 인챈트 스크롤을 찢은다음 월광검을 양 손으로 쥔다. 그리고 방어 자세. 방어 자세를 취하자마자 회색 늑대의 공격이 날아온다. 첫타는 발차기,검신으로 발차기까진 막을 수 있지만 팔이 마비된것 같은 통증이 느껴진다. 아마 두번째는 막기 힘들것 같다. 재빠르게 날아오는 주먹은 막을 수 없으니 차라리 갑옷 위로 맞아준다. 나는 가슴팍으로 날아온 주먹을 정통으로 맞고 한 5m쯤은 날아갔다. 갈비뼈 두세개는 부러진 것 같고 입가에선 피가 흐른다. 나는 피를 삼키고 일어난다.
"크읏."
신음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본능은 어쩔 수 없다. 나는 입에서 신음소리를 내버린다. 그것을 보고 회색 늑대는 껄껄 웃는다. 뭐가 그리 재밌지?
"내 친구가 보면 울겠군! 테오,너무 약해. 겨우 이거 맞고 이렇게 나뒹군다고? 죽고 나서 아버지 보기에 부끄럽지도 않나?!"
"부끄럽죠."
나도 능력을 발동한다. 갈비뼈의 통증은 사그라들고 몸이 좀 더 가벼워진다. 저런 강적 상대로 얼마나 싸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운이 좋으면 이길 수 있을지도. 인챈트된 월광검을 양 손으로 잡은다음 재빨리 내달린다. 1초,2초,3초. 3초가 되는 타이밍에 재빨리 인챈트를 날려버려서 월광검을 가볍게 만든다음 4초에서 뛰어오른다. 그리고 5초에서 찌르기,정면 승부다. 살과 뼈를 꽤뚫어버리는 감각이 제대로 느껴진다. 회색 늑대는 손을 뻗어 월광검을 쳐내려고 했지만 그 타이밍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회색 늑대의 손을 제대로 관통한 월광검은 그대로 갑옷을 관통해 복부까지 찔러들어갔다. 회색 늑대가 몸부리칠 기미가 보이자 나는 그대로 월광검을 한바퀴 비튼다.
검을 찔러넣었으면 바로 뽑으면 안된다. 아바돈을 상대할때건,로머를 상대할때건. 확실하게 확인 사살을 해야하니까. 그렇게 검을 찔러넣고 한바퀴 비틀자 회색 늑대의 몸부림이 그쳤다. 죽은 것인가? 아니다. 아직 안심하기엔 이르다. 확인 사살은 철저해야하니까. 나는 홀스터에 넣어뒀던 마리아를 꺼내고 장전한다음 그대로 회색 늑대의 머리를 조준했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아직 햇병아리군,네 아버지라면 내가 이런식으로 절대 죽지 않는다고 생각했을텐데 말이지."
"무.무슨."
방아쇠를 당기기도 전에 회색 늑대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시야가 캄캄해지고 배에서 뜨뜻한 느낌이 올라왔다. 아,너무 방심했구나.
"잘가라."
"글쎄? 아직 어린애잖아,좀 더 살아있어야지?"
너무나 익숙한,허스키하고 낮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것을 끝으로 나는 눈을 감았다. 너무 졸리다.
///
"테오,괜찮니? 며칠동안 일어나질 못했는데.
눈을 감기 전에 들었던 목소리가 다시 들린다. 눈을 깜빡이고 주위를 확인한다. 나는 온 몸에 붕대를 감은채로 병원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리고 내 옆에는 까마귀 가면과,까마귀 깃털이 달린 코트를 입고있는 여자가 앉아있었다. 내 어머니였다. 나는 어머니에게 대답했다.
"괜찮아요."
"루카스,드디어 미쳐버린 것 같아. 예전부터 딸이 죽고 난 이후로 우울증도 있었고,살아도 사는게 아니라고 수없이 그랬거든. 그래서 그럴 기미는 보였지만."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필 테오랑 같이 갔을때 그럴줄은..."
잘 모르겠다. 지금은 좀 더 잠을 자고싶다. 나는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썼다. 어머니는 내 생각을 알았는지 더이상 말을 하지 않으셨다.
어라? 책상에 들어가버렸다. 책상 밑이 좋은걸까? 저러니까 정말 작은 동물 같다. 디트리히는 책상을 똑똑 두드리며 에녹이 나오는 걸 잠시 기다렸다. 오호라 일주일에 2회 이상 운동을 하면 근육통이 도지는 체질이구나. 그렇다면 비슷한 프론트는 아닌 것 같은데 뭘까?
"자주 자주 밖에 돌아다니는 것도 좋아. 아니면 다른 사람을 만나던지. 지금 피부가 새하얗게 보이긴 하지만 너무 근육이 줄어들면 그건 또 너무 병약해 보이거든" "아 내가 신경 쓸 문제는 아닌가? 미안 나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쏟는 걸 굉장히 좋아해." "그것 때문에 여러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아무튼 재밌잖아? 아 단순히 재미로 다른사람에게 참견하는건 민폐일려나?"
그러나 그 순간. 학교 내부에서 갑자기 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슬슬 돌아가라는 하교 신호 같은데.. 디트리히는 종과 에녹의 말에 멈칫 하더니 뒤늦게 책상 위에 방치되어 있던 탄원서(반성문)을 발견했다. 뒤늦게 디트리히는 안절부절 못하다가 제출 시간이 아슬아슬 하다는 걸 알아차렸고 이내 빠르게 뛰어가 반성문을 낚아 챈 다음 에녹을 향해 말했다.
"아 땡큐! 알려줘서! 진짜 위험했거든! 고마워 토끼야!"
"아 맞다 다음에 만나면 그 땐 디트리히라고 불러! 존댓말 쓰지말고! 2학년이잖아 같은?"
자기입으로 문제를 일으키는데도 재미있다고 하다니 위험한 사람인게 분명해 보였다. 그래도 참견이 항상 좋지만은 않다는 건 아는 것 같은데… 본능이라서 멈추지를 못하는 거겠지. 나도 이랬던 적이 있으니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그냥 공포로 보일 뿐이지. 가끔씩 과거의 내가 웃으면서 계속 쫓아오는 꿈을 꾸기도 하는데 웃으면서 쫓아오는 그게 얼마나 무서운데…
“솔직히 그냥 무서운데요…”
내 말과 함께 종소리가 울렸다. 아마도 하교 신호겠지만 이대로 돌아가는 건 조금 그렇다. 애초에 이 대화만으로도 하루에 소비할 수 있는 에너지의 90%를 써버린 것 같아서 돌아가면 책도 다 못읽고 잠들게 뻔했다. 그렇다고 길을 걸으면서 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상념에 잠겨있었더니 디트리히는 빠르게 탄원서를 낚아채 교실밖으로 향했다. 본명이 토끼인것처럼 불리고 있어서 왜인지 미묘한 기분이 든다. 아니,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이게 뭔가 싶은… 그런 기묘한 기분이다…
“… 만나기전에 도망치는게 맞겠지.”
예로부터 위험은 피할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다. 즐기지 못하니 피하는게 맞겠지. /// 예! 수고하셨습니다 디트리히주!!
현 이사장님이 학생을 상대로 한 부당한 처벌에 관하여 2학년 학생, 저 디트리히 아넬에르벨은 이렇게 탄원서(반성문)을 작성합니다. 지난 1학년 생활을 돌이켜 보면 수 많은 시설물을 부쉈으나 이것은 모두 쓸모없어 처분이 확정된 시설물들 처리한 것 이였습니다. 거기에 저는 능력의 연구를 위하여 약간의 실험을 더 한 것 뿐입니다. 이사장님 언제나 저희를 위하여 노력해주시는 이사장님의 마음은 감동이지만 학생의 탐구열을 탄압하는 것은 이 지식의 전당의 지도자로써 참으로 곤란한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디트리히 아넨에르벨은 빽도 없고 미천한 신분에 돈 도 없지만 적어도 로머가 되고싶은 열정과 학구열 만큼은 이 아카데미 최고라고 자부합니다.
그러나 저 역시 이사장님과 아카데미의 시설물에 대한 걱정은 하고 있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2학년 대표로 다른 학생들을 잘 지도하고 사건의 재발을 최대한 막아보겠습니다. 그러니 이사장님 한 가지 부탁드리자면.... 5월 15일 스승의 날에 있는 행사의 쓰레기 처리, 행사 시설물 설치, 행사 진행 스태프 같은 일은 저 말고 다른 적임자를 찾아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라연은 생각보다 공적인 일로만 대하는 것이 익숙합니다. 불꽃 은 차갑습니다.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아버지가 보내준 목걸이는 기분이 나빴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그는 오늘 약속을 잡았거든요. 맛집! 나름 잘 차려입기는 했지만 그래봐야 교복을 잘 차려입은 것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주어진 목걸이.. 정도려나요.
"조금 일찍 나왔으려나..." 디바이스에서의 약속 시간을 보니 조금 시간이 남아서 능력이나 간단하게 써보려고 합니다. 손 안에서 불꽃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튀어올랐습니다. 얼굴이 살짝 붉게 물들었군요. 조금을 기다리면 올 것 같으니 불꽃으로 모양만들기도? 뭘 만들지..
... 본 출판부 <지식의 요정>은 교지 간행뿐 아닌 학생과 교원의 인적 사항, 학사일정 기록, 생활 관련 정보 전반을 관리하는 티엘린 최대의 정보 부서로서, 교지 <위키페어리> 1호 출간을 맞이하여 교내 학생 자료 통계를 총망라한 특집호를 수록하기로 하였다. 자료 수집 대상이 된 본교 재학생은 18명이다.
<티엘린 통계 애널라이즈♪> Part1. 인원 분포 1. 성별 분포 - 남성 11명, 여성 7명 현재 티엘린 아카데미는 상당한 남초 현상을 겪고 있으며, 고학년으로 갈 수록 인원 부족에 따른 성비 불균형이 극심하다. 4학년은 재학 중인 남학생이 3명, 여학생이 1명이다.
2. 학년 분포 - 2학년 10명, 3학년 4명, 4학년 4명 티엘린 아카데미의 인원 분포는 고학년으로 갈 수록 줄어드는 특성을 가지는데, 진로 변경으로 인한 학업 이탈, 현장 경험을 쌓기 위한 실전 참여 등으로 재학생의 수가 실질적으로 줄기 때문이다. 로머의 전망이 급격히 좋아지며 작년 재수 합격자를 포함한 입학생 수가 대단히 늘어난 탓도 있다.
3. 연령 분포 - 17세 7명, 18세 3명, 19세 3명, 20세 2명, 22세 3명 마찬가지로 로머의 전망이 밝아짐과 함께 저연령 학생이 늘어난 것이 보이는데, 낙방 없이 한 번에 입학 시험을 통과한 17세가 두드러지게 많다는 것은 놀랍다.
4. 국적 분포 - 은 제국 4명, 운투 국 4명, 베리아트 공화국 5명, 기타 출신자 6명(복수응답 1명) 본 아카데미에 재학 중인 은 황족은 2명이다. 티엘린의 명성을 증명하는 고무적인 결과라 하겠다.
Part2. 티엘린 랭킹 1. M수치: 1위 프란츠 발터(930), 공동 2위 라야 델 포리아, 시엔 아나테마(860), 4위 앙투안 위페르(770) 1위는 4학년의 프란츠 발터로 900을 넘는 수치를 보였다. 4학년의 로머 팀 <디 콰트로> 소속원 중 2명이 순위를 차지했다. M수치가 높은 학생들 모두 활용성이 뛰어나고 독특한 능력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2. A수치: 공동 1위 라야 델 포리아, 메디엔 겐(9490) 3위 시엔 아나테마(7650) 4위 디트리히 아넨에르벨(7570) 전격비교! 라야 델 포리아와 메디엔 겐. 시트가 존재하는 학생들 중 단 둘뿐인 20세로, 나이와 더불어 A수치까지 동일했다! 나아가 공동 1등! 그리고 후술하겠지만 공동 최단신! 큰 격차가 있은 다음, "인형사" 시엔 아나테마는 이번에도 높은 순위에 자리매김했다. 그 다음 경미한 차이로 디트리히 아넨에르벨이 뒤이었다.
3. 남학생 장신: 공동 1위 진, 프란츠 발터(185㎝), 3위 앙투안 위페르(181㎝), 4위 디트리히 아넨에르벨(177㎝) 4. 여학생 장신: 1위 헤일리 미뉴엣(170㎝), 2위 르투아르 얀 데이스(165㎝) 교내에 여학생이 부족한데 단신 랭킹에서 공동 수상자가 발생하여 부득이하게 여학생 장신 순위는 2위까지 매겼다. 단, 이아나 온의 경우 알려진 신장 정보가 없었다.
5. 남학생 단신: 1위 메디엔 겐(166㎝), 2위 테오도르 비르겐슈타인(170㎝ 미만), 3위 인디고 키트(170.1㎝) 6. 여학생 단신: 1위 라야 델 포리아(144㎝), 공동 2위 시엔 아나테마, 은유현(150㎝) A수치에서 압도적 공동 1위를 차지했던 메디엔 겐과 라야 델 포리아가 이번에도 각 성별 1위를 차지했다.
Part3. 신변잡기 한마당 1. 우리들은 소수민족 현재 재학생들의 은, 운투, 베리아트 3국이 아닌 국적으로는 카인 에트라사야, 포리아 공국, 피센 시국이 있으며, 소수민족과 무국적 단체를 포함하면 화산 지대 거주민인 현 족과 성 아르고트 성전기사단이 포함되어 있다. 안타깝게도 고향이 아바돈에 의해 함락되어 타국의 국적을 취득한 사례도 있었다.
2. 능력 대잔치 - 으쌰으쌰 난 튼튼해!: 진 vs 테오도르 비르겐슈타인 가장 흔하면서도 강력한 능력 중 하나인 신체 강화인데, 진의 경우 근육 강화와 그를 통한 신체 능력 증강에 방점이 찍힌 특성을 보인다. 반면 테오도르 비르겐슈타인은 전반적 신체 능력 강화를 통한 전투력 상승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 자유자재로 조종해요: 메디엔 겐 vs 인디고 키트 아주 강력하지만 시전자의 역량이 활용도를 가르는 능력인 물질 조종이다. 메디엔 겐은 조종 가능한 물질이 섬유에 한정되어 있지만 완전히 자유에 가까운 활용도를 보여 상당히 강력하다. 인디고 키트는 무생물이라면 대부분 변형할 수 있지만 변형 과정에 제약과 한계가 많아 활용이 힘들다. - 싸움이 곧 뮤지컬: 앙투안 위페르 vs 이아나 온 음공(音功). 음악을 통해 적에게 정신적 공격을 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그러나 앙투안 위페르는 악기 연주, 이아나 온은 성악이 매개체이며, 앙투안 위페르가 환각과 환시, 정신 공격에 특화된 능력을 지녔다면 이아나 온은 아군의 사기와 능력을 진작하고 적에게 부정적인 효과를 불어넣는 데 특화되어 있다.
3. 티엘린 사립 오케스트라 - 교내에 확인된 악기 연주자를 총망라. 루이 크로즈델 휴브테-윤(기타) 에녹 드라콘 휴브테-윤(피아노) 이아나 온(기타, 하프, 피리 등), 인디고 키트(칼림바), 진(기타, 하프)
도서관에서 라연을 만나고, 약속을 잡은 것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서였다. 날과 시간은 라연이, 장소는 내가. 그러고 시간이 흘러 약속을 잡은 날이 되었다.
수업을 들으러 가는 것도 아니니 조금 가볍게 차려입은 채 약속 장소로 향했다. 흰색 민소매티에 네이비색 반바지, 세트인 자켓은 소매를 두어번 접어올리고, 늘 길게 늘어뜨리던 머리는 하얀 끈으로 올려 묶고. 낮은 굽의 메리제인 구두는 깔끔한 베이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잘 차려입은 모습이지만 변함없는 앞머리와 안경이 옥의 티라면 옥의 티일까. 어떻든 상관 없지만은. 약속한 시간에 맞춰 만나기로 한 곳에 도착하니 라연이 이미 도착해 불꽃으로 장난을 치고 있었다. 뭘 만드는 건가? 무언가 형상을 한 불꽃이 궁금하긴 했지만 일단은 라연의 앞으로 다가서며 인사했다.
"안녕. 일찍 왔네? 내가 늦은 거 아니지?"
디바이스로 시간을 한번 확인하고 음, 안 늦었네 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켓 주머니에 디바이스를 쏙 집어넣곤 구두 앞코로 바닥을 탁탁 두드렸다.
"안녕안녕! 오늘 옷 예쁜데?" 헤일리를 발견하고는 밝게 웃으면서 만들던 것을 느릿하게 다듬어보려던 것을 잠깐 멈추고는 안경이랑 앞머리도 정리했으면 훨씬 더 예뻤겠지만 지금으로도 예쁘잖아? 라고 하긴 하는데. 음.. 입에 발린 말인가? 아니면 진심인가?
"아무래도 능력이 능력이다 보니 추위와 더위엔 면역이라고나 할까-" 아마 저 멀리 하늘 위의 칼바람이 부는 곳에 던져져도 멀쩡하지 않을까! 라고 자신있게 말하다가 뭘 만들고 있었던 거냐는 물음에 아앗.. 그..그건 비밀이야! 라고 말하고는 슥삭 불꽃을 꺼트리려고 합니다.
"오늘 맛집이라고 했는데 응응.. 어떤 맛집이야?" 하하 웃으면서 어떤 맛집이냐고 화제를 돌리려고 애씁니다. 돈은 충분하니까 마구 먹어도 괜찮아? 라고 합니다.
옷 예쁘단 말에 선선히 웃으면서 고맙다고 말했다. 안경과 앞머리 얘기엔 별다른 대답 없이 넘어갔다. 과연 내 눈을 보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말로 하진 않았다. 뭘 만들고 있었냐는 말에 비밀이라고 얼버무리며 불꽃을 꺼버리자 미심쩍은 듯 고개를 갸웃 기울였지만 더 캐묻지는 않았다. 그렇게 궁금한 것도 아니었고.
"추위에 면역 있는 건 부럽네. 난 추위에 약해서. 아, 어디냐면...고기 맛있게 굽는 집이랄까?"
애써 화제를 돌리려는 것에 맞춰주며 오늘 갈 곳에 대해 얘기한다. 스테이크랑 샐러드가 한 접시에 나오는 곳이라고.
"그런데 단품 하나만 해도 양이 많아서 말이지. 양에 비하면 가격대도 저렴하고."
돈은 나도 제법 있다고 받아치며 가게로 가는 쪽으로 휙 돌아섰다. 그 가벼운 몸놀림에 머리를 묶은 하얀 끈의 끝에 달린 금색 방울이 딸랑 울렸다. 그대로 또각이며 한발 앞장섰다.
"고맙기는. 예쁜 아가씨에게 예쁘다고 하는 게 뭐가 고마워. 당연한데." 아가씨라는 말은 농담스럽게 하고는 추위에 약하다는 말에 농담처럼 인챈트 핫팩 있어야 할지도? 라고 말하고는 고기라는 말에 눈을 깜박거립니다. 회색..인 것 같은 눈이 반짝였습니다! 건장한 청년이 고기라는 말에 눈을 반짝이지 않을 수 있을까요!
"오오.. 양도 많고..저렴하다니.." "와..그거 되게 맛있겠네..." 헤일리의 말에 맞장구 쳐줍니다. 들어보니 상상되면서 지글지글 굽는 게 상상이 돠는 거 있지? 라고 말하면서 따라오라는 말에 아 너무하네. 나는 기다려 줄건데? 라고 능청스럽게 말하긴 하지만 서둘러 따라가려고 합니다.
능글맞은 걸로는 이 학원에서 라연을 따라갈 사람은 없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건 단순히 내가 아는 사람 기준이 되겠지만서도.
"어휴. 말이나 못 하면."
괜히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중얼거리다가 한 가게 앞에 멈췄다. 간판에 글자 대신 까만 고양이가 익살스럽게 그려진 가게였다. 여기야, 라고 말하며 안으로 들어가서 빈 자리에 앉았다. 식사 때라 그런가 몇 테이블 정도 손님이 있었다. 뭐가 맛있냐는 말에 메뉴판을 펼치며 얘기했다.
"부위별로 시킬 수도 있고, 샐러드도 원하는 걸로 정할 수도 있어. 그렇지만 오늘은 처음이니까, 다 있는 걸로 하자."
너 좀 많이 먹을 거 같고. 그렇게 말하며 가리키는 건 모듬 세트라고 적힌 페이지. 이미지만 봐도 온갖 부위의 고기와 소세지까지 보인다. 휘익 손을 들어 점원을 부르고 모듬 세트 달라고 말한 뒤 라연을 보았다.
"마실 건 뭐로 할래? 그냥 탄산이랑 탄산 들어간 에이드랑 안 들어간 거랑...술도 있어."
그렇지만 우린 못 마시겠지. 당연한 걸 말하며 내 것은 라임 에이드를 골랐다. 탄산 들어간 걸로.
말이나 못하면이라는 말이 있고 난 다음에는 조금 간간히 이어지는 안부라던가 요즘 어떤지에 대해서가 몇 마디 나왔습니다. 고양이가 그려진 간판도 보고.. 글자가 없으니 오는 길을 잘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하는군요! 그가 물어보는 것에 대답해주는 듯한 세트구성이 맘에 들었는지 약간 보기만 해도 배부르다는 듯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모듬 세트라니. 되게 마음에 드는 구성이다." 상당히 다양한 메뉴가 될 수 있도록 꾸몄네. 라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많이 먹는다는 말에. 앗 내가 언제 많이 먹는다고.. 라고 하지만 행동으로 보여줬었으니. 입을 다뭅니다. 마실 거를 묻는 헤일리의 말에 잠깐 고민하다가..
"술.. 못 마시겠지.. 마시고 말썽이라던가 나면 벌점이 어미어마할걸..? 성인이야 마실 수 있겠지만 그래도 말썽 한번 나면 엄청날 거잖아.. 그럼 나도 탄산 에이드로 할까.. 자몽 에이드?" 메뉴에 있는 걸 조금 훑어보다가 자몽 에이드라고 운을 떼기는 하지만 금새 아니다. 블루레몬에이드로. 라고 바꿉니다. 색감은 잘 어울렸을지도 몰랐는데.
고기 좋아하는 손님을 위한 구성이라며 작게 키득거렸다. 입을 다무는 걸 보고 다시 키득. 마실거로 블루레몬에이드를 고르자 점원에게 그것까지 얘기함으로써 주문을 마쳤다. 음료 먼저 준비해드릴게요- 라는 상투적인 멘트를 내며 점원이 가고나자 테이블에 몸을 기대며 라연을 보았다.
"자몽 하지 그랬어? 너랑 잘 어울리는데. 네 머리색이랑 자몽색이랑."
똑같네 똑같아. 라며 놀리듯 말하지만 그런 나도 연녹색의 라임 에이드를 골랐으니 딴말 할 처지는 아니었다. 그대로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며 대화를 좀 주고 받았다. 간간히 손끝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거나 손목에 걸린 팔찌를 만지작거리며.
"저번에 빌린 책은 다 봤어? 난 이제 반 정도 봤어. 네가 추천해준 수기 재밌더라." "며칠 후면 수업 시작하겠지...아, 계속 이렇게만 있으면 좋을텐데. 실습은 기대되지만."
"아아.. 부정하진 않을게! 그렇다고 긍정하지도 않을 거지만?" 자신을 위한 구성이란 말에 키득키득 웃었습니다. 그리고 자몽색이랑 머리색이랑 어울린다는 말에 그건 사실이지만 그런 걸 먹었다가는 머리카락이 더 붉어질지도? 라는 농담으로 받으면서 책에 대해서 묻자 조금은 차분해졌습니다.
"아직이려나.. 편지가 오는 바람에 대판 싸웠거든." "그래봤자 그냥 항의일 뿐이지만..그렇다고 해서 또 돌려보내면.. 그것도 그러니까.." 읽어도 읽은 것 같지 않은 기분이 들어서 그래.. 읽기는 다 앍기는 했는데 막 겉에만 남은 기분이더라고. 라면서 투덜대긴 해도 착실히 읽어가는 것 같기는 합니다.
"수업은 기대된다.. 라기보다는 실습이 기대되려나?" 요즘 많이 나타나는 하급 아바돈 덕분에 확실히 실습 때 한사람당 몇마리라도 지원이 가능하다고 하더라고. 말 그대로 실습이라고 하던데. 원하는 숫자 적어내는 칸이 막 한 사람당 백마리를 주세요라던가. 한 사람당 4마리씩 콰트로오오오! 라는 둥.. 아주 혼파망이긴 했지만 말이야.. 라고 말하고는 물로 입술을 축입니다. 언제 나오던 간에 즐겁게 이야기나누는 건 좋은 거잖아요?
편지 올 데가 있던가, 집인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편지 하니까 나도 집에 연락 해야 하는 걸 깜빡하고 있었다. 이따 기숙사로 돌아가면 전화나 한번 해볼까. 실습 얘기에 요즘 하급 아바돈이 많이 나타난단 말이 끼어있자 관심을 보이며 그래? 라고 말했다. 원하는 수를 지원할 수 있는 실습이라.
"처음은 역시 일대일이지. 능력만 믿고 과신하다간 무슨 험한 꼴을 당할지 모르니."
신중한게 좋은 거지. 응. 고개를 끄덕이고있으니 주문한 에이드가 나왔다. 라임에이드는 내 앞에, 블루레몬에이드는 라연의 앞에 놓였다. 보기만 해도 시원한 에이드를 앞으로 당겨 꽂혀있던 빨대로 한모금 마시고는 그래서, 라고 말을 이었다.
"집에서 말고는 올 데는 없지만 말이야." 어쩔 수 없나? 라고 해도 오는 게 정말 꼴보기 싫을 정도라니까. 워커홀릭인데 편지 써주는 게 감지덕지라느니.. 앗. 너무 투덜댔나.. 라고 얼버무리면서 응응. 하급 아바돈의 수가 급격히 늘었다고 하더라고.. 라고 말합니다. -너는 그 원인 일부를 안다. 그녀가 말했다. 타락자들이 방패를. 일대일이 아무래도 낫지. 라는 헤일리의 말에 동조합니다. 많아봐여 2대나 3대 일이겠지.. 아므리 교수님께서 감독하신다고 해도 4 이상으로는 안 받아주겠지.. 라고 덧붙입니다
"오... 색깔 예쁘다." 나온 에이드들의 색깔을 보고는 빨대로 한모금 마십니다. 새콤한 맛이라던가. 레몬 과육 조금이 느껴져서 산뜻함을 주는 것 같네요. 헤일리의 질문에 약간 쓰게 웃고는
"그렇...지. 본가에서 오는 거야. 이번엔 또 내가 물려받은 물품까지 붙여서 보내는 바람에 차마 물품은 돌려보내지 못하고.." 말끝을 흐립니다. 그러고보니 못 보던 조금 화려한 스타일의 목걸이가 하나 걸려 있네요.
본가 얘기만 나오면 분위기가 좀 흐트러진단 말이지. 말도 잘 하다가 버벅이고. 빨대를 입에 문 채 말끝을 흐리는 라연을 빤히 보았다. 빤히 라고는 하나 눈이 안 보일테니 시선만 느껴지겠지만. 물려받은 물품? 아, 이렇게 보니 라연이 평소엔 안 차던 목걸이를 한게 보였다. 빨대로 에이드를 한모금 더 마시고 나서 입을 떼고 그거 뭐냐며 가리켰다.
"그냥 좀 화려한 거 말고는 특별할 것도 없어보이는데. 그게 그렇게 싫어?"
엄청 질색하는 거 다 티나. 턱을 괴며 중얼거리곤 이번엔 목걸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우리 집에도 있지, 저런 거. 새파란 조각이 달린 은 목걸이. 딱 한번 밖에 못 봤지만 문득 라연의 것은 어떤지 궁금해져 손을 뻗었다. 물론 목걸이를 향해.
"시선이 느껴져?" 헤일리가 보는 걸 알아차렸는지 에에.. 거립니다.. 쩝. 이라고 어쩔 수 없다는 듯 말을 잇습니다.
"승천한 존재의 물품이니까." 내 아버지께서 정말로 사랑한 어머니....의 물건..이야. 라고 조금 어물댑니다. 싫은 건 싫은 거지만 버릴 수도 없고.. 보는 건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울퉁불퉁한 투명한 것 안에 마치 불이 담긴 듯한 적금빛의 파편이 박힌 목걸이는 의외로 열리는 구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건 안 열어도 되겠지요.
"세간에 알려지기로는 사고사이긴 하지만.." 그렇진 않아서.. 라고 얼버무리려 합니다. 시..식사를 할까? 라고 어색하기 그지없는 말을 하는군요!
아, 한번 들고서 보고 싶었는데. 아쉬운대로 라연이 보여주는 것만 보았다. 가공하지 않은 듯한 울퉁불퉁한 표면의 투명한 것 안에 붉은 금빛 조각이 박힌...건가? 우리 집 것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지만 어쩌면, 이라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었다. 돌아가신 모친의 것인가. 말을 얼버무리며 어색하게 구는 걸 보고 목걸이로부터 시선을 거뒀다.
"흠...네 사정을 다 아는 것도 아니니 별 말은 안 할게. 그렇지만 그 목걸이는 예쁘다고 생각해."
남자애한테는 좀 그러려나아? 일부러 놀리듯 말하고 있으니 때마침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넓은 쟁반 같은 접시에 수북한 고기와 소세지, 비슷한 양의 샐러드에 곁들임 과일까지 담겨있었다. 덜어먹으라는 듯 집게와 앞접시를 각자의 앞에 놓아주고 가자 먼저 먹으라는 듯 집게를 라연의 앞으로 밀어놓았다.
"일단은 먹는 거에 집중하자고. 맛난 고기를 앞에 두고 딴 생각을 하면 고기한테 실례야."
폭풍이 지나가면 꽤 축축하고, 선선하고 그렇다. 피센은 시시때때로 태풍을 맞는 동네니까 잘 안다. 또 거센 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잠잠하지만, 적어도 겨울이 되기 전까지 광풍이 새긴 이미지는 선명하게 남는다. 창밖에 내민 팔 살갗에, 마구 휘날리던 앞머리와 얼얼한 이마에. 그렇게 태풍을 맞은 사람은 한동안 얼이 빠지고 마는 것이다. 아직도 코끝이 매웠다. 감정의 폭풍을 맞는 건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다.
“피센은….” 나는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순간 잊었다. 겨우 얼버무렸다. “좋은 도시야. 시간 나면 놀러 와.”
밤이 깊었다. 아니… 깊어도 너무 깊었다. 순간 꿈쩍없이 굳어 있던 대기가 다시 바람을 토해내며 울부짖었다. 골짜기 사이로, 나뭇가지 사이로 휘파람 소리가, 그리고 짐승이 낮게 우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산풍이 지평선으로 내달렸다.
“늦었다. 셴, 몰래 들어가자!”
걸음을 서둘렀다. 추워져서 직물으로 팔을 감쌌다. 벽을 녹여 가며 기숙사로 직진했다. 들키면 바로 끝장이었지만 노숙을 할 수는 없었다. 가로등이 꺼진 갈림길에서 짤막하게 “잘 자!”라고 인사하고, 내 방을 향해 뛰었다.
글쎄. 그 어쩌면은 설마일수도 있고, 그저 그냉 목걸이 일 수도 있다. 끝부분은 조금 날카로워 보였습니다.
"예쁘긴 하지만.." 하지만 안 차고 다닐 순 없기는 해. 라고 말을 잇습니다. 우리를 버리고 승천한 그녀는.. 이것만이 남았으니까.. 라고 어쩔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습니다. 그렇지만 남자애에게는 좀 그러려나? 라는 말에 그치만 이 정도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 라고 나름대로 말하려 하지만 역시 조금은 삐쭉삐쭉.
"그건 그렇지. 고기를 앞에 두고 딴생각하면 칼라미티 신님께 천벌받을 거야" 금방 텐션을 회복해서 약간 들뜬 듯이 자신에게 주어진 집게를 들고 잽싸게 한 덩어리를 헤일리에게 덜어주려고 한 다음 자신의 몫도 가져오려고 합니다.
"그래도 초대자께 한 덩어리 먼저 드리는 게 예의지." 라고 씨익 웃으며 말하고 말이지요. 많이 먹기는 해도 네가 정작 못 먹으면 같이 먹는 의미가 없잖아? 라고 미소짓습니다.
저 목걸이 하나에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건 나쁘지 않지만, 라연 본인은 불쾌해 보이니 말은 하지 않았다. 여전히 삐죽삐죽한 태도에도 어련하시겠냐고 중얼거리며 어깨만 으쓱였다. 먼저 먹으라고 집게를 줬더니 기어코 먼저 내 접시에 고기를 올려놓는 라연을 보며 날 그렇게 모르냐고 피식 웃었다.
"고맙긴 한데, 나 잘 안 먹는 거 알잖아. 그러니까 신경쓰지 말고 너나 많이 먹어."
말은 그렇게 해도 올려준 고기에 칼질을 해서 조각조각 나눈다. 양념은 발라 있었으니 따로 뭘 찍을 필요도 없이 한조각을 입에 넣었다. 잘 구운 고기 사이로 씹을 때마다 베어 나오는 육즙이 맛있긴 맛있더라. 하긴 고기가 맛이 없을 때가 있던가.
"저번에 먹었을 때도 맛있었지만 오늘은 더 맛이 좋은 거 같은데, 기분 탓인가."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하곤 샐러드도 조금 집어와 같이 먹었다. 라연에게 가려먹지 말라면서 샐러드를 덜어주기도 하고.
"그치만 나만 와구와구 먹는 것도 그림이 안 살잖아?" 소개시켜준 사람이 안 먹고 있으면 체해버릴지도 모르겠네에. 라고 능청을 떨고는 고기를 잘라먹습니다. 맛있는 고기. 정말 맛있기는 합니다. 생각보다 칼질이나 그런 것에 고급스러운 스킬을 구사하기는 합니다. 썩어도 부르주아 도련님이다. 이거려나요?
"누구랑 같이 먹어서 더 맛있는 걸지도?" 가끔 그런 말 있잖아. 혼자 보다는 누구랑 마주보고 먹을 때 더 맛있다고 하던 것 같기도 하고? 라면서 빙글빙글 웃다가도 샐러드를 덜어주자 아.. 별로 안 좋아하는데. 라고 투덜대면서도 덜어준 건 냠냠 먹습니다. 별로 안 좋아해서 다행이지. 편식 했었으면 아마 키가 더 작지 않았으려나요?(고개끄덕)
"이거 먹고 나서 디저트로 트로피칼 후르츠 조각케이크 먹을래?" "여기도 디저트가 있다면 그걸로 먹어도 괜찮고." 대략 이 근처에 있더라고. 라고 말합니다. 열대과일을 들여와서 만드는 것 같던데. 라고 말해봅니다.
이게 근래 들어서 제대로 된 식사라고 태연하게 덧붙이며 고기를 먹고 샐러드를 덜었다. 라연이 별로 안 좋아한다면서도 잘 먹는 걸 보고 나이가 몇갠데 편식이냐고 타박 아닌 핀잔(?)을 하기도 하면서. 덜어준 한 덩이을 다먹고 새로운 덩이를 집어오다가 디저트 얘기에 귀가 쫑긋 움직였다.
"열대과일? 그거 먹을래. 여기도 있긴 한데 별로야."
열대과일이 들어간 케이크... 단 거 얘기가 나오자 살짝 밥맛이 물러나는 느낌이었으나 그래도 멈추지 않고 식사를 계속했다. 우물우물... 고기를 씹다가 뭐가 생각나서 말했다.
"저번에 준 과자 잘 먹었어. 책 보면서 집어먹었더니 한번에 다 먹을뻔 했지 뭐야."
아깝게시리. 그렇게 중얼거리곤 푸릇한 야채를 찍어 입에 쏙 넣었다. 중간에 쓴게 섞여있었는지 씹자마자 퍼지는 쓴 맛에 윽,써, 라며 흠칫 놀라기도 했지만.
"음음.. 그러면 뭘 말해야 잘 먹으려나..." 단 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내면 되려나? 라고 말하고는 덜어지는 것에 나는 아무래도 파이로니까 그게 다 태우는 걸로 들어가는 기분이라니까? 라고 말하면서 냠냠 먹습니다.
"그건 그래.." 그래서 학식도 엄청 양 많긴 많더라고. 안 먹는 학생들은 버티지를 못하더라고. 능력 쓰는 데에 칼로리가 엄청 필요한 것 같기도 하고.. 큭큭 웃는 것에 라연도 큭큭거립니다.
"강아지라니. 강아지상인 거는 맞지만?" "그러게. 벌써 다 먹어가네.." 그래. 캡이 고양이상이랑 강아지상을 한명씩 넣었다! 지만.. 그게 들릴 리는 없지요. 눈을 깜박깜박거리면서 헤일리의 눈이 있을 자리를 빤히 쳐다보려 합니다. 이럼 좀 더 울망울망한 강아지 같으려나? 라고 농담을 합니다.
1. 일단은 오버로드의 라나 공주. 그리고 크툴루 신화. 밸런스상으로 문제가 많으니까 당연히 평준화는 시켰다. 신격존재와는 관련이 무관하다고 할수있어 지금은. 2. 멍멍이 취급. 자아를 가졌다곤 할수없지만, 통제하지않으면 날뛰기에 광견이라고 생각하고있고, 왠만해서는 사용을 꺼림. 생긴것도 그렇거니와 은 제국 황녀가 그런 흉측한걸 능력이라고 사용하면 뭔가 깨는거같으니까.
>>365 어느 캐를 모티브로 하고서 입맛에 맞게 바꾸어나가는것도 좋지만,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창작하는것도 괜찮더라구요 XD 앗 저는 뭐든지 다 좋습니다~!시엔주께서 편하신 대로 해주셔요 ^-^*
>>366 앗 그 제 통과레스에는 없어서 살펴보느라 좀 늦었네요 ㅠㅡㅠ...어머어머 데이스쟝 인기스타.. +-+ 루이 성격상 누군가에게 가볍게 러브레터를 쓰는 건 괜찮을지 몰라도 청혼서를 쓰진 않을 것 같기에 청혼서를 쓴 본인이 되진 못할테지만,일단 왕족 중 누군가가 청혼서를 보낸 사람이 데이스라는건 알고 있을것같아요! 일단 가능한 캐릭들과는 전부 짰으면 좋겠어요 ''*
모두들 반가워요!! >>397 A1. 귀여운점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사람을 대할때 눈도 못마주치는 애라...숨겨진 설정이라면 몰래 동화를 쓰고 있습니다. 퀄리티는 미묘한 선이지만요? A2. 아이러니하게도 공적인 자리에서는 말도 잘하고 꽤나 당당한 모습을 보입니다! 물론 아카데미 입학 이후에는 별로 볼 기회는 없었지만요!!
건빵을 먹고 있었다. 그나마 싼 간식이라서 이걸 먹는다. 부모님께 폐를 끼칠 수는 없었으니 간식이라도 이런 걸 먹을 수 밖에 없다. 이런 밤이면 별을 보아야 할 터인데, 보라는 별은 안 보고 건빵이나 씹는 것이 참 낭만 없다 싶었다. ......아니 잠깐. 별은 이제부터 보면 되잖아?
그렇게 생각하며 하늘을 바라본 채로 그저 걸었다. 그저 걸었... 잠깐, 누구랑 부딫혔다. 누구지? 싶어서 산대를 바라보니 굉장히 유약해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어, 그러니까. ......고의는 아니었어요. 죄송합니다!"
먹고 있던 건빵이 든 봉지를 등 뒤로 숨기며 당신에게 허리를 숙여 사과한다. 허리를 숙여 땅을 보자 그제야 부딫히며 바닥에 떨어진 별 머리핀이 보이고, 그에 의해 앞머리가 흘러내렸다는 것도 느껴진다. 상당히 추레한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혹시 저 때문에 피해 입으신 게 있다면 말해주세요! 그러니까, 저... 는. 17살이고요, 2학년. 시엔 아나테마라고 합니다. 당신은...... 그으... 누구신가요...?"
"댕댕스러운 늑대라니..." 나쁜 말은 아닌가.. 라고 잠깐 고민하긴 하지만 에라 모르겠는걸. 이라고 웃습니다. 그건 그렇지. 라고 헤일리의 말에 동의합니다.
"조금만 더 가면 있..." "아 여기야." 퉁 부딪친 헤일리를 보면서 갑자기 멈춰서 부딪쳤나..? 라고 작게 중얼거리면서 고개를 갸웃합니다. 어디 삐끗하기라도 했어? 라고 물어보고는 다 왔다면서 자그마하긴 하지만 시원해보이는 디자인의 가게를 가리켰습니다. 열대과일 장식이 걸려있는 가게 안에는 열대과일로 만든 케이크나 스무디 모형이 있었습니다.
"원하는 거 두 개 정도는 사 줄 수 있다?" 한 판을 말한다면 동공지진하면서도 이미 뱉은 말은 지켜야 한다! 라면서 사주긴 하겠지만요?
부딪힌 탓에 앞머리가 조금 움직이고 안경이 살짝 비뚤어져서 그걸 손보는데 라연이 돌아보며 삐끗했냐고 물어왔다. 눈이 보일새라 분주히 정리해 가리며 대강 대답했다.
"지나가던 사람이랑 부딪혔어. 어, 여기야?"
고개를 돌리니 열대과일 모형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엔 케이크와 스무디 모형도 있어서 저런 걸 파는구나 알 수 있었다. 아직 내가 모르는 디저트 가게가 있다니. 이곳 위치를 잘 기억해두자고 생각하며 씩 웃었다.
"너 그 말 후회해도 모른다?"
뭔가 엄청난 걸 시킬 듯한 분위기지만 사실 배가 좀 불러서 그렇게 큰 걸 바라진 않을 거였다. 오늘은 맛만 보고 나중에 또 오면 되니까. 데려와준 라연보다 먼저 들어가서 주문하는 곳에 냉큼 가서 선다. 스무디 종류가 즐비하게 적힌 메뉴판과 여러 케익이 있는 곳을 보며 뭘 먹을까 고르는 재미에 빠졌다.
조용하면서도 고요한 밤은 독서에 지친 머리를 식힐 겸 가볍게 산책하는데에는 더없이 좋은 시간대였다.아직 잠을 청할 시간도 아니었고,너무 독서만 하는것도 좋은 생활습관은 아니었기에 간만에 하늘에 뜬 별이라도 구경하려는 생각으로 자신의 반려,레이와 함께 외출을 감행했다.원래 주행성인 까마귀인지라 상당히 졸려 보였지만,가볍게 품에 안고서 돌아다니먼 그만이었다.아직 밤은 쌀쌀하였으니까.
"..옛날 생각이 나네요."
하늘에 아름답게 떠 있는 별을 바라보며 추억에 잠기듯이 눈을 감았다.어렸을 때도 형과 같이 밤산책을 나설때면 꼭 같이 별을 보고는 했지.그만큼 사이가 좋았었건만...... ...안타깝기도 하지.회상이 끝나고 눈을 다시 뜨려는 찰나 누군가와 부딛혔고,그 바람에 하마터면 뒤로 넘어갈뻔했다.부딛히며 살짝 눌렸던건지 제 품에 안겨있던 레이가 짧고도 신경질적인 울음소리를 내고는,다시 한번 쏘아붙이는듯한 울음소리를 내려는 것인지 저와 부딛힌 상대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서는 부리를 벌리는 것이었다.
"쉬잇,짖지 마시지요,레이."
왕족의 품위는 당신 역시도 잃지 않으셔야만 합니다.유약한 외모와는 다르게 단호한 명령조의 말이 입 밖으로 나왔고,그러자 레이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것마냥 다시 부리를 다물고서 얌전히 있을 뿐이었다. 이어서,자신도 상대를 바라보다가 곱게 미소짓는다.
"괜찮습니다,아가씨.앞을 주의하지 않고 걸었던 제 탓이기도 하지요."
설령 고의라고 했더라도 자신은 그렇게 넘어갔겠지.자신 역시도 고개를 살짝 숙여 사죄의 뜻을 전했다.땅에 떨어진 별 모양 머리핀이 시선에 들어왔고,고개를 들자 상대의 앞머리가 흘러내린 것이 보였다.다시 꾸벅꾸벅 조는 레이를 조심스레 어깨에 앉히고서는,별 모양 머리핀을 주워들고 상대의 앞머리를 제 가는 손가락으로 살짝 넘겨준 뒤,머리핀을 다시 꽂아주었다.
"피해라면 저보다는 오히려 그쪽 아가씨께서 더 크게 피해를 보신 것 같으신걸요.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어두운 밤길일수록 더욱 주의해서 걸어야 했는데.간혹 몰려오는 잡생각때문에 그러지 못할때가 잦았다.이런 것은 자중하여야겠지.이어서 들려오는 자기소개에 방긋이 웃었다.
"시엔 아나테마..후후,아름다운 아가씨의 외모에 걸맞는 아름다운 이름이군요.제 이름은...우선은 루이 크로즈델.줄여서 루이라고 기억해주시죠.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러고는 한 손으로는 뒷짐을 지고 다른 한 손으로 신사적이고 격조있는 손동작을 취하며 살짝 허리를 숙였다.
>>459 M수치가 왠지 높아서 강제(?) 프론트 행일듯 합니다•○• 그리고 블본에는 항상 멋진 분들이 가득하죠. 채고다 마리아쟝! >>461 제가 피아노 치는 사람을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그러고보니 시트에 피아노 관련 설정을 넣었어야 했는데.. 쓰다보니 깜빡했다는 결말이네욧°°
그녀는 지금 이 상황이 전혀 익숙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어이가 없는 수준이었다. 이 사람 나한테 왜 이러는 거지? ......일단 저 까마귀는 애완동물인가? 그리고 이 사람은 누구지? 어떤 사람이지? 되게 귀한 집에서 자란 도련님 같다. 그렇지?
"......일단 감사합니다... 크로즈델 씨. 저도... 만나뵈어서 영광이에요. ...그보다 머리핀은 굳이 그렇게까지 해주실 필요가 없었지만... 처음 본 사이인데도 그렇게나 친절하게 대해주시니 감사하네요."
크로즈델, 루이 크로즈델. 이름을 작게, 마치 성스러운 기도문을 암송하는듯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름을 외우기 위한 것이었겠지. 소녀는 처음 만난 루이의 태도에 조금 놀란 듯 싶었으나 이내 그 기색은 잦아들은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 밤에는 무슨 일이신가요? 저는, 뭐어...... 보시다시피 밤 산책 겸 별 구경이지만요. ...별을 좋아하거든요."
아, 이건 너무 쓸모 없는 말이었다. 그러면서도 등 뒤로 숨긴 건빵 봉지는 드러나지 않게 최대한 가리고 있었다. 등 뒤로 뒷짐을 진 자세가 어쩐지 어색하겠지. 하지만 그녀는 그런 어색함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을 선택했다. 왜냐하면 이런 귀공자의 앞에서는 뭔가 꺼내면 안됄듯한 느낌이 들었으니까. 그리고...... 그녀에게도 최소한의 자존심은 있었으니까. 본인의 집이 그렇게 잘 사는 편이 아니란 것도, 굳이 밝히고 싶지는 않았다. 그랬기에 돈 낭비를 줄이려고 간식으로 싸디 싼 건빵이나 먹는다는 건 웬만한 사람에게도, 특히나 초면인 사람에게는 더더욱 보여주지 않으려 했다.
"...그, 그리고...... 그 전에 그 쪽의 애완동물...? 이 제가 부딫힌 것 탓에 놀란 것 같은데 그 점 사과드릴게요. 그리고 어디 다치진 않으셨죠? 혹시 다치셨다면 제가 사례를 할게요! 죄송합니다......"
가만히 당신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이는 그녀는 유독 소심해보였다지. 소심함이 덕지덕지 들러붙어 발목을 잡는 건 언제나 여전하구나, 불쌍한 시엔. 언제까지 그러고 살래? 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지만 가슴이 아파오는 말이라서.
"알바를 할 필요는 없기는 하지만.. 사실 용돈은 집나가려고 모으는 중." 내게 이미 증여된 재산이랑.. 어머니가 나에게 상속한 재산의 이자로 생활은 가능하지만.. 미묘하다고나 할까. 라고 말하고는 용돈받아쓰는 내가 그렇다는 것에 멋쩍은 웃음을 지으면서 알바 안해도 괜찮지 않을까? 나는.. 그렇긴 해도..
"알았어. 그럼 스무디랑 이거랑 두 개?" 계산해서 먹고 갈래. 아니면 케이크만 포장할래? 라고 물어보려고 합니다. 나는 포장해 가려고. 라고 말하면서 파인애플치즈케이크를 선택하려고 합니다.
"감사라니요.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이랍니다.친절함과 겸손함은,왕족에게 있어서는 기본적인 소양이니까요."
그렇게 말하면서 수줍은듯 손으로 얼굴을 살짝 가리고서 웃어보였다.가장 이상적인 군주가 취하여야 할 자세중 제일 간단하면서도 보편적인 것은 친절함과 겸손함이랬지.어느 백성이든지 폭 넓게 받아들일수 있는 친절함과,왕족이라는 권위로 거만하고 오만해지지 않도록 조절해줄 겸손함을 늘 갖추어야 하였다.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것 같아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었지만.
별을 좋아한다는 상대의 말에,가벼이 고개를 끄덕였다.아까 머리핀도 별 모양인 이유가 그것 때문인걸까.
"어머,그러시군요?저 역시 아가씨와 비슷한 이유로 나왔답니다.별도 보고,이런저런 도서를 정독하고서 머리를 식힐 겸 해서요."
계속해서 뒷짐을 지고 있는 모양새가 자신에게 무언가를 감추는 듯한 모양이었지만 크게 신경쓰지는 않기로 하였다.등 뒤에 숨긴것이 자신에게 해가 될만한 것만 아니라면야 별로 문제될건 없었으니.게다가 상대는 자신을 해하려는 자의 상은 절대로 아니었다.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면 레이가 진작 그 낌새를 눈치채고 경계하였겠지.애석하게도 자주 그러지는 않는다만.
"아,괜찮습니다.어디까지나 잠깐 놀랐다 뿐이지 별다른 해를 끼치시지는 않으셨으니 말이예요."
어느새 품 안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레이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살살 쓰다듬어주며 말을 건네었다.조금 크기가 작은 갈까마귀나 그냥 까마귀였으면 조금 더 세게 눌려서 날개깃이 빠졌으려나. 그리고 다시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 난처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굉장히 소심해보이는 모습에 동정심이라도 든 것일까.아니면 연민의 정이었던 것일까.그런 것보다는,자신보다 나이 어린 여성이 자꾸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에 대해서 마음이 편치 않다고 느낀 것이겠지.
"거듭 말씀드렸듯,저는 정말로 괜찮답니다.이래보여도 그렇게 쉽게 다치거나 하지는 않으니 말이지요.오히려 저는,아가씨께서 다치시거나 기분 상하시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더욱 염려스럽답니다."
아가씨도 괜찮으신지요?하며 걱정스런 눈빛을 하고서 상대를 바라보았다.자신이 아무리 병약해보이는 외모라고 할지라도... ...아무튼,일단 이런 상황에서는 여성이 괜찮은지를 우선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정답이니까.
"그러니,사례까지는 해 주지 않으셔도 충분하답니다.그래도 마음이 편치 않으시다면..이 늦은 달밤에 아가씨를 만나뵙게 된 것을 사례로 치도록 하죠.괜찮겠지요?"
"승천한 어머니에게 미친 사람이랑 사는 건 싫고.. 그 넓은 데에서 혼자는 싫더라.." 차라리 혼자 살면 건설적이게 누구를 만나거나 그렇기라도 하지..거의 감금이었다니까? 라고 투덜댑니다. 입학하기 전까지는 머리카락도 못 잘랐다니까? 그건 괜찮아! 나름 탐스러운 게 볼만했으니까. 근데 여자 옷은 너무 심했잖아! 그딴 집안 꼴보기도 싫다.. 라고 말하다가 너무 쉽게 말해버린 것 같아서 잠깐 어버버거렸습니다. 눈을 으음 거리면서 피하려다가 어..음... 거리면서 얼버무리려다가.. 이..잊어도 괜찮을지도..? 라고 하하 웃었습니다.
"하숙..?" 그리고 하숙 농담에는 농담으로 웃으면서 집에 들어오면 그거 하숙 개념이니까 싸기는 해도 월세는 받아야겠네! 라고 농담으로 말합니다. 그리고 포장해달라는 것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렇게 2개의 케이크를 포장하고 스무디도 주문하였습니다.
"나도 책도 읽어야 하고.. 넘기기는 넘겨야지." 고개를 끄덕이면서 게이트에서 헤어지면 되겠다. 라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동관과 서관이니까.. 라고 덧붙이고요.
내가 왜 그런 이야기를 했지? 응? 혼란이 약간 오긴 하였으되. 강제적일 정도로 안정적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런 것이 당연하지요. 견디지 못할 리가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불 쓰는 요리는 기가 막히게 해 줄 수 있으니까." "불 안 쓰는 요리는 네가 할래? 그럼 내가 불 안 쓰는 요리 한해서 밥값을 줘야 하려나.." 내가 만든 바베큐 먹고 눈이 휘둥그레해질 듯 놀라지나 마? 라고 약간 페이스를 찾아서 큭큭 웃습니다. 과거는 변하지 않는 법. 이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건 아니지.
"그렇구나... 닮지 않았다는 건.." 난 어머니를 많이 닮긴 했지만 차라리 아버지만 닮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했는데. 라고 지나가듯 말하고는 약간의 침묵 후 스무디가 나오자 포장된 케이크상자를 들려고 합니다.
"이것도 어머니 닮은 거지. 수치가 딱 100만 높았어도 선택 안 했을 텐데." "재료값 반반은 찬성이요." 그의 M수치는 최저수치였으니까. 싫어도 온리 파이로였겠지. 라고 생각했지요. 덜 큰 건 맞았습니다. 그는 그것을 부정한다 하여도 변하지 아니할 것을. 그리고 그것이 당신의 머리채를 붙들 것임을 인정해야 할 것이랍니다.
"뭔가 격세유전 같은 걸지도 모르지." 그러고보니 나중엔 내 유전자도 숨어버릴지도? 라고 농담을 하다가 나가야겠다는 것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덜 붐볐으면 좋겠다는 것에 동의를 표합니다. 맞아. 덜 붐볐으면 좋겠어. 라고 한 다음에 자신의 것을 들고 게이트를 향해 가겠지요. 게이트는 별로 멀지 않겠지요.
"격세유전이라고 해도... 외양만 비슷한 거라면 괜찮을지도..." "그녀?" 그 조상분 피가 좀 버로우타는 경향이 있었나 보지. 라고 말하기는 하지만 사람의 외양은 엄청 다양하니까.. 라고 말한 뒤 게이트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기숙사에 들어가면 케이크부터 넣어두고 책이나 읽을까..
"뭐. 이런 게 아니라도 얼마든지 다음이 있을지도?" 게이트로 들어가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다음 차례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기분 좋게 들어갔겠지? 다만 불쾌한 손님이 찾아와 있었지만 //막레입니다! 헤일리주 수고하셨어요!
"끈을 이어서 모으니 도달하는건 그런 '결론'이었나. 정말이지 재밌는 학교야. 단순히 능력적으로 관심이 있었을뿐인데. 그녀가 말한대로의 목적을 알아낸건 아니지만 이건 이것대로 유효패가 되지않을까."
미뉴엣가의 비밀에 대해서라는게 맞겠지만, 이런저런 연줄을 통해 예전에 미뉴엣가에서 일하던 사람을 통해 전해들은 정보라던가, 항간에 떠도는 소문. 그것을 한곳에 핀으로 고정해놓고 펜으로 선을 그어서 이어보니 꽤나 흥미로운 결과를 도출해냈다. 다만, 자칫 잘못꺼냈다간 도발수나 원수로 전락할수있다는 것을 알기에, 단순히 비유적으로만 그러면서도 단서를 남기면서, 협력을 위한 관계를 만들어볼 획책을 자아내본다.
『청발금안의 존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거기까지는 도달했다. 용건이 있다면 내 기숙사방으로. - 은유현』
밑밥은 그정도로, 스스로 동경하기를 자처하는 어리석은 이들의 힘들을 빌려 그러한 시한폭탄을 헤일리 미뉴엣에게 전달하는 것은 성공했다.
"화는 내지않았으면 좋겠는데. 뭐 나름대로 나도 생각하는 바는 있지만."
샤워기에서 물이나오며 공간을 물소리로 적셔간다. 슬슬 그녀가 올시간이 머지않았다. 그렇기에 단장할 필요가 있다. 거울에 비친 것은 사람이 웃음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도 결락된 구석이 많은 무언가의 얼굴이었으며, 그 눈동자는 은빛은 커녕 보랏빛의 심연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 짧은 내용이 적힌 쪽지가 동급생의 손을 타고 내게로 전달되었을 때, 나는 무심코 잇새로 상소리를 뇌까렸다. 이런 빌어먹을 여자가. 그것을 전해줬을 뿐인 동급생이 내 중얼거림을 듣고 움찔 했지만 그 잘난 충성심인지 뭔지로 니가 뭔데 황녀님을 그렇게 말하냐며 떠들어댔다. 하지만 타이밍이 참 안 좋았지. 그 순간 내 기분이 어땠을지 미처 알지 못 했다는게 동급생의 불운이었다.
"일평생 그림자에 갇혀 살기 싫으면 조용히 닥치고 있어..."
심연의 밑바닥을 기는 듯한 목소리에 동급생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쪽지를 구깃하게 쥐며 나를 부른 그 여자의 방으로 향했다.
은유현. 조금전 받은 쪽지로 알게 된 여자의 이름이었다. 그 잘난 황가의 이름. 문 앞에 서서 그 이름이 맞는지 확인하고 두어번 두드려 노크했다. 아, 아무리 나라도 다짜고짜 문을 부수고 들어가지는 않는다. 내가 무슨 짐승도 아니고.
"..."
문을 두드려 나를 알린 후 열리기를 기다렸다. 가만히 서서 기다리는 내 모습은 평소와 다를 것 없지만, 잘 보면 옷깃 사이며 발밑의 그림자가 술렁거리는게 보이리라. 지금 내 기분을 반영하듯이 말이다.
문두드리는 소리에 샤워직후 입는 가운을 입고는 머리는 보이지않게 수건으로 둘둘말아 감춘다. 그리고 만일을 대비해서, 심연의 파편. 모든 혐오스러운 존재를 뒤섞은듯한 괴이한 존재를 발언저리에 꿈틀거리게 해놓는다. 다짜고짜 들어오자마자 난장판이 들어오는것은 사양이다. 방문할걸알고 미리 차도 끓여놨는데 박살내버리면 조금 실망이기도하고. 최소한 5합은 막아낼 준비정도로.
"환영합니다. 누추한곳이지만 대화로서 저는 대응하고싶은데, 그쪽은 그럴 생각은 없어보이네요. 일단은 당신의 비밀을 제가 행여나 약점으로 삼는다면 큰 오산이라고 말해두고싶네요. 그럴생각도 없고. 그저 당신이 뿌린 말을 거두고 싶거든요."
결락된 미소를 평소의 황녀의 얼굴로 수정한다음 문을 열어젖히며, 들어오려는 헤일리가 공격하는 상황을 저지하기위해 철편을 눈앞에서 펼쳐 시야를 교란시켰다.
"싸우기는 싫다고했습니다. 끓는점 낮은 사람은 싫어해요."
그말을 마치고 나는 다과세트가 준비된 소파에 앉아 그녀를 맞이했다. 평소처럼, 은빛눈을 위장하는 컬러렌즈는 착용하지않았다. 그저 칠흑빛의 눈동자가 보랏빛을 반사시킬뿐.
문이 열리고 제일 먼저 느낀 건 물냄새와 바디워시 냄새. 사람을 불러놓고 샤워하고있었나. 그 사실을 명백히 보여주는 가운 차림에 나는 쯧, 혀를 찼다.
"누굴 싸움패로 아나. 그쪽이 알아낸 정보에 내가 그렇다는 사실이라도 있던가?"
평소보다 거칠고 날 선 태도와 낮은 목소리로 들려온 말에 응대했다. 하긴 이 살기등등한 모습을 보고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이상하지. 처음 한번 힐긋 본 뒤론 다시 시선도 주지 않으며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림자는 계속 잉얼이고 있었으나, 결코 제 범위를 벗어나지는 않았다. 마치 경계하듯이.
"아 나도 싫다고. 몇 번을 말해야 해?"
귀가 먹었나. 거듭되는 말에 조금은 짜증이 나(이미 화난 상태지만) 날카롭게 쏘아붙이며 자리에 앉았다. 그 여자의 맞은편 자리에 앉아, 보이지 않을 눈으로 테이블 너머의 은유현을 응시했다.
"당신이 그렇다는 정보는 없지만 심증은 충분히 찾았지요. 과거적 당신또래 애들이 당신에게 했던 일들을 들었으니까. 물론 질나쁜 협상질을 하기에 적절하게 손은 썼지만요."
물론 그녀를 위해서 한 일이라고는 말하지않는다. 지금에 와서 그런다고해서 달라질 일이 있을거같지도않고.
"일전에 만남에서 당신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가 정확하게 기억하는 편은 아니라서 늬앙스로 듣기에 당신은 시시껄렁한 다과회나 하는 관계로 접근할 생각이였으면 다른사람을 찾아보라는 그런 말이었습니다. 그건 좀 전제가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진정하게 동일선상에서 협력할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혼혈이라는 존재들이 있다. 그들은 기본적인 인간들과 달리 능력에 대한 자질이 높다던가. 자세한 사항은 모른다. 다만 좋은 취급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금색의 눈동자를 증오하는 이들도 있었고, 그저 혐오감이 든다는 이유로 따돌리고 배척하며, 사람으로서 취급하지 않는 이들도 존재했다.
어쩌면 그런 '혼혈'에게서 조금이나마 동질감을 느낀다면 틀린말은 아닐까. 내 경우는 혼혈은 아니다. 황가의 피만이 흐르는 존재임에도, 그 실종사건이 혼혈에게 관심사를 둘만한 존재로 만들어버린것이 문제였지만.
"원하지 않는 혼혈이라는 낙인이 찍힌것에 대해서, 그리고 그런 혈통을 만들게한 원인인 아바돈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저는 몹시나도 궁금할뿐이에요. 그도 그럴것이."
나는 정말 잠자코 얘기를 들었다. 들어주었다. 무슨 얘기를 할지 궁금한 것과 어디 뭐라고 말하는지 한번 보자는 생각이 은유현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또렷하게 전해주었고 그 내용을 이해하게 해주었다. 그래서 얘기를 다 들을 무렵엔 그림자가 잠잠해지고 내 살의도 한결 누그러져 있었다. 그렇다고 화가 다 풀린 건 아니었지만.
말이 끝나고 차례가 내게로 돌아왔을 때, 나는 뭐 그런 것 따위라는 듯 가볍게, 허나 건성은 아닌 대답을 돌려주었다.
"어디 한번 해보랬더니 정말 잘도 알아봤군. 그런다고 내가 그쪽 제안에 협력해준다는 보장도 없는데 말이지. 처음부터 대답하자면, 대답은 노다. 무슨 소문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바돈을 증오하지 않아. 내가 혼혈인 이유만으로 그들을 증오할거라 생각했다면 정말 큰 오산이야. 뭐, 어릴 적 한 때는 왜 내가 이런 모습이어야 하는지 힘들어하기도 했지만 그건 무지한 어릴 때 뿐이고. 지금의 내게 아바돈은 연구 대상이자 알고싶은 대상, 그 뿐."
증오하는 사람을 찾는 거라면 번지수 단단히 잘못 찾았어. 앉은 채 팔짱을 끼며 말을 계속했다.
"그깟 낙인 정도는 내가 무시하면 돼. 하, 낙인. 미지의 것을 두려워하는 일반인들의 배척 따위 신경이나 쓸 것 같아? 오히려 나는 그 점이 궁금하고 흥미로워서 알고 싶어. 서로 혐오감을 느끼는 사이인데 어째서 인간을 만났는지, 왜 그랬는지, 어떤 감정이었을지."
"연구대상으로서 본다라. 흠. 번지수를 잘못밟은거 같긴하네요. 결과적으로 당신은 이학교에서 아바돈을 연구하기위해 로머가 된다는 그런 말이로군요."
실망은 하지않았다. 같은 뜻을 이루는 자를 찾기는 쉽지가 않았기에, 애초에 단념하는 사항이기도했다. 그렇더라도 로머로서의 신념은 이정도하면 확고하다고 봐야할까. 바라던 인물의 상은 아니였지만 확고한 목적이나 업을 탈피한 그모습은 무척이나 나에게 있어서는 바람직한 인물의 상이었다고 보아 만족은 할수가 있었다. 다만,
"조금 당신의 대한 평가를 달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낙인에 대한 업을 쉽게도 탈출했다는 사실에, 조금 시기하고 싶어졌네요."
달리 할말. 그녀가 어떤 사상을 가졌나에 대한 대답에 따라 건낼 패였지만, 지금으로서는 공개하지 말아야할 패가 있었다.
"달리 보여주어야할게 있긴하군요. 원래대로라면 동조자에게만 보여주고싶었던 비밀입니다만."
물기로 젖은 수건을 풀어해치고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그 머리카락은 백금발도 아니였거니와, 오히려 그것과는 상반되는 반사되지않는 칠흑의 머리카락. 그리고, 그것과 어울리는 흑색의 보랏빛을 머금은 눈동자가 나. 은유현이라는 존재의 비밀을 풀어해쳤다.
"애초에 당신의 비밀을 제가 볼모로 삼을생각이 없었던건, 상호적으로 비밀을 하나씩 알고있었으면 했던것이었습니다. 그게 서로에게는 결속이 될테니까. 뭐 이경우에는 당신이 꽤나 좋은 패를 얻은셈이 되겠군요. 대신 대가를 하나 받아가려고합니다."
공허한 눈동자로 헤일리를 바라보며 나는 질문했다.
"당신이 나의 입장이라도 그러한 마음가짐을 가질수가 있었겠습니까? 진지하게 답변해주었으면 합니다."
내 대답에 조금은 관심이 떨어질 것 같아 보였다. 내 착각이 아니라면. 적어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게 아니니 협력이나 뭐니 하는 얘기는 꺼내지 않겠지. 소파의 팔걸이에 팔꿈치를 괴고 살짝 몸을 기울인 채 맞은편의 유현을 줄곧 보고 있었다. 테이블에 미리 준비되어 있던 차는 다 식은지 오래였다. 애초에 뭘 준들 먹을 생각은 없었지만.
원래라면, 이라며 유현이 수건을 풀어 머리카락을 드러냈을 때엔 좀 놀...라지 않았다. 그냥 그런 태도로 뭐 어쩌라는 듯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은 황가의 특징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서뭐, 라는 느낌이 더 강했기에. 그래서 내가 자신의 입장이어도 지금 같을 수 있겠냐는 물음에 한치의 망설임도 주저함도 없이 답할 수 있었다.
"당연하지.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건 주변에서 뭐라고 하건 나는 나야. 단언컨데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잃지 않을 자신이 있어."
은유현이 저런 모습으로 어떤 상황 속에서 어떤 대우를 받으며 살아왔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나 역시도 나름의 고충이 있었고 그것을 이겨내기 위한 시간이 있었다. 조금 시기하고 싶어졌다는 말이 이해된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그쪽이 어떤 일을 겪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나는 몰라. 과연 나도 같은 일들을 겪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들겠지. 맞는 말이야. 겪기 전에는 모르지 그런 건. 하지만 나는 나를 믿어. 세상 그 무엇보다. 그렇기 때문에 단언할 수 있어."
"뭐어, 협력자가 되달라는 말은 안했지만, 교우 관계를 가지자는 의미에서 친하게 지내고싶은 마음은 크게 달라지지않았어요. 당신 지금 관심밖에 나서 기뻐하는얼굴로만 보였는걸요."
목적에 부합하지않는 사람을 목적에 끼워넣을 생각은 없지만, 동급생으로서 이야기할만한 상대로서는 여전히 흥미가 없지는 않았기에 하는 말이었다. 거기에다 방금과 같은 신념을 들을수가 있었는데, 사람으로서의 마음가짐을 시기하는 이끌림이 존재하고있었으니까.
"정말이지.. 신념하나는 확고하시네요. 스스로의 목숨을 위협받는것을 피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 꼴을 만들어버린 자에게 복수하기위해서 망가진 정신으로 살아가는 저같은 인간은 가질수없는 것을 가지고 있으셔요."
식은차를 입에 대고는 계속해서 나는 마음속에 잡힌 멍울을 뱉어내듯 이야기한다.
"이겨낸다는 마음이 애초에 도려내져버려서. 그저 원한과 증오라는 독기에 휩쓸려 살아가고있는 저로서는 자신조차 믿지못하거든요. 이성은 항상 지금을 살아가기위해서 온갓 술수를 부리기를 원하고 본능은 이런 몸으로 만들어버린, 아바돈이라는 존재를 0으로 만들라고 부추기니까. 괴롭습니다. 하아-. 당신같은 자신감을 빼앗아버리고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숨을 푹하고 내쉬고는 뭘말하고 싶은건지 잘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다만 그녀의 목표를 들었을때는, 그런말이 하고싶어졌다.
"부탁하고 싶은게 하나있습니다만, 언젠가 아바돈의 연구를 진행하게된다면 그 피에 대한 정보를 공유받을수있는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째서 제가 이런몸이 되었는가 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밝히고싶으니까."
"아, 티 났어? 거참 안 미안해서 어쩌나. 나는 그쪽하고 교우 그런 거 전혀 하고 싶지 않은데."
그렇게 중얼거리는 말은 약간의 빈정거림을 담고 있었다. 상대의 비밀을 알아버린 지금, 내 말은 그래서 싫다는 의미로도 들릴지 모르지만 내 의도는 그런게 아니었다. 처음부터 순수하게 교우는 싫다고 해왔으니 그걸 관철할 뿐. 식은 차를 마시며 하는 얘기에 나는 동정 따위 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만 했다.
"망가진 정신으로 복수라. 그건 오히려 자기파멸 밖에 낳지 않을텐데. 마음이 도려내어졌으면 다시 채우면 돼. 자신의 마음인데 그것도 못 해? 나로서는 이해 못 하겠네. 스스로도 믿지 못 하는 사람이 대체 뭘 하겠다는 건지. 그런 사람에게 과연 협력해줄 사람이 있을까."
나는 절대 사양이지. 그렇고 말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덧붙였다.
"그 부탁 역시 거절하겠어. 알아서 알아내. 그쪽 같은 사람에게 내가 알아낸 것 쪼가리라도 공유할까보냐."
자신의 능력이 굉장히 유용하다는 생각은 많이 해봤다. 나의 자성 같은 경우에는 철을 끌어당기고 조종할 뿐 만 아니라. NS극을 지정해서 이용할 수 있다는게 참 유용하다. 가령 내가 이렇게 돌을 집어들어도 내 손과 돌을 둘 다 S극으로 지정한다면 자력에 의해서 밀려난다. 그걸 이용해서 원거리 공격으로 응용도 가능하다. 철 방패에 S극을 부여하고 상대의 검이나 주먹에 S극을 부여한다면 방패를 이용한 방어술의 효율이 올라간다. 내 능력은 정말 유용하다. 하지만 가장 유용한 순간은 따로있다.
[야! 디트리히 그 자식 어디로 갔어!] [몰라 나도!]
나는 지금 건물 천장에 붙어있다. 손과 천장의 극을 조정해서 천장에 붙어있는 지금. 저들은 내가 지금 어디있는지 모르고 있다. 그래 장난을 치고 도망치거나. 장난을 치거나 이 능력은 매우 유용하다. 나는 이런 나의 능력을 정말로 좋아한다.
사람이 사라지자 자력을 풀고 천장에서 뛰어내렸다. 풀썩 하고 가볍게 착지하기 직전에 자성을 천천히 부여해서 신발과 바닥을 같은 극으로 하자 조금 공중에 떠있다가 서서히 착지 할 수 있었다. 이것도 능력을 응용하는 법을 연구한 내 성과겠지.
"..어라?"
그런데 나 혼자 있던게 아니였나보다. 나는 어느사이에 내 뒷편에 있던 누군가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끔 아무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을 때, 종종 쓰는 방법이 있다. 그건 사람이 잘 오지 않는 곳의 그림자에 들어가 있는 것. 그림자 속은 너무나 편안하고 포근해서 그대로 푹 잠겨 있으면 정말 좋았다. 누가 그 그림자 위를 돌아다니지 않는다면 말이지.
오늘도 그런 식으로 그림자 안에서 쉬고 있는데 돌연 밖에서 소란스러움이 느껴졌다. 누군가를 찾는 듯한 소리, 다급한 발소리. 뭔가 귀찮은 일이 근처에서 생긴 듯한 감에 어서 지나가길 바라고 있는데, 그 다음엔 누군가 바닥에 떨어지는게 느껴졌다. 아니, 착지한건가? 계속되는 방해에 견딜 수가 없어 그림자 밖으로 나오니 왠 금발 남자애가 있었다.
"뭐야, 너."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불청객(내 기준으로)을 보며 손을 까딱였다. 그러자 발밑에서부터 그림자가 뻗쳐올라오더니 상대의 몸을 휘감으려든다. 내 휴식을 방해했으니 어느 정도 대가는 치루게 할 셈으로 붙잡으려 한 것이었다.
첫인상자체를 별로 안좋게 만들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동정할생각없이 촌철살인하는 그 한마디가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추종만을 하는 달달한 목소리나 내뱉는 것들과는 비교되지않는다고 해야할까.
"남의 감정을 계산적으로만 생각하는 벌레같은 마음이라서 말입니다. 스스로도 최악이라고 자부하고있어요. 거기다가 이성에도 본능에도 휘둘리기만 할뿐이라, 그 끝에 파멸이 있을가능성이 훨씬많다는 것도 인식하고있습니다. 비워진곳을 채워넣을수 있었다면 진작에 했겠지만 무엇을 해도 만족하지못하게 되었네요. 팔다리가 잘린 환지통환자랑 비슷한 느낌이려나."
눈앞의 헤일리는 자신과는 평행선상을 달리는 인간이었다. 엮이고싶지않는게 당연하다.
"그말 기억해두겠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 말을 바꾸려고 움직일겁니다. 그게 재밌으니까."
그렇다하더라도 나는 그 평행선상의 궤도를 흐뜨리려하고싶은 욕망이 존재했다. 언제까지 그렇게 나를 대할수있는지 한번 승부를 걸어보고싶음이었을까.
"앞으로도 귀찮게 굴어드릴테니 명심하시길. 후후후.."
그런 그녀와 친구가 될수있다면 나도 어딘가 바뀌지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이상으로 이 무쓸모의 대화를 마치자고 말했다.
결박이 무위로 돌아가자 순순히 그림자를 거두었다. 거둔 그림자는 다시 발 밑으로 모여들었고, 나는 여전히 무심하게 상대를 보았다. 뭔 수를 썼는지 천장에 한 손으로 매달린 상대를. 쉴 새 없이 나불대는 상대의 입과 달리 내 입은 딱 생각한대로의 말만 했다.
"순순히 잡혔으면 대화로 해결될 수도 있었겠지. 그걸 피했다는 건 뭔가 켕기는게 있다는 의미고. 윈윈이라. 아무리 봐도 지금은 그쪽이 절대적으로 불리하지 않나."
내가 이대로 나가서 바깥에서 찾고 있을 사람들에게 상대의 위치를 말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으니까. 내게 하등 이득 없을 윈윈 따위 신경이나 쓸까보냐. 하지만 계속 능력을 써서 제압하기도 귀찮았다. 휴식 중이었던 만큼 나른함이 아직 전신을 감돌고 있었다. 하암. 나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하품하고 그림자로 의자를 만들어 앉았다.
의자에 앉아, 팔걸이에 팔을 괴곤 가볍게 톡을 받친 채 눈을 감았다. 어차피 앞머리와 안경에 가려져 보이지 않겠지만. 그 자세 그대로 상대가 뭐라고 질문해오든 무응답, 무답으로 응대했다. 무시하기로 하면 철저하게 하는게 내 방식이었으니까. 좀 변한게 있다면 다리를 꼬고 좀더 편안하게 의자에 기댄 정도일까.
"......"
계속 입을 다물고 있다가 아까의 범인이 맞다는 말에만 한쪽 눈을 뜨고 시선을 그리 돌렸다. 보이지 않겠지만, 미약한 시선 정도는 느껴지려나. 그러나 그것도 잠시일 뿐 다시 눈을 감고 한마디로 일축했다.
"인기인이 아니라 골칫덩이겠지."
아주아주 골치 아픈 골칫덩이. 들으라고 한 소리였으니 아주 또렷하게 들렸으리라. 그 말을 하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을 일으키니 의자는 그림자로 돌아갔다.
“하아아...” 세번째 한숨이라 기억한다. 아니면 네번째 다섯번째? 뭐라 말해도 저런식이 되니 이길 자신이 없다. “알겠어요. 또 이건 그놈의 수업료 인거죠? 저 여관에서 한동안 이상한 사람 보내겠네요 진짜.” 그렇게 말하며 겐의 말을 들으며 돈을 받는다. 돈을 세어봤는데...응? “겐. 이거 돈 절반이 아닌데요. 더 많아요.” 하고 절반을 넘어가는 부분만큼 다시 내밀었다. 아까 순간적으로 오가는 돈을 봤다. 이정도가 절반은 아니다. 돈이 궁하긴 하다. 하지만 내 정직함을 팔아먹을수는 없다. 내 양심도...
......아. 왕족이었구나. ...젠장. 어째 귀하게 자란 티가 난다 했어. 그럼 더더욱 수상해보이지 않도록 뒷짐진 손은 다시 앞으로 하자. 그리 생각하며 건빵 봉지를 든 손을 다시 앞으로 해서 모으고 있는다.
"......별... 좋아하시는건가요? 그렇구나. 음. ...별......... 이랬죠. 네. ...별에 대해 아는 게 얼마쯤 되시나요? 별을 많이 좋아하시나요?"
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밤의 어둠을 그대로 담은 것 같던 왼쪽 눈과 백야와 같던 오른 눈이 기묘한 빛을 품고 빛난다. 그녀는 워낙에 별을 좋아했으니 당연한것이겠지.
"그리고 사례가 정말 그걸로 괜찮다면 저도 뭐라 안 하겠지만...... 음. ...아무튼 감사합니다. 크로즈델 씨... 아니 왕족이시랬으니까 크로즈델 님...? 어...... 어떻게 불러야 맞는 건가요?"
난처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당신을 봅니다. 그러다가 졸고 있는 까마귀를 보고는 조금 고민하다가,
"...까마귀...... 귀엽네요. 까마귀는 이름이 뭔가요? 털도 되게 보들보들해보이고...... 되게 사랑받는 아이 같아요."
부들부들하게 웃으며 그리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도 올려다봤을때 얼굴에 그림자가 살짝 지는 그것이 조금 무서워 한 발짝을 뒤로 가려다가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간다. 어째서 나는 이렇게 심약한 성격을 타고난걸까. 내 천성이 그렇지 않았더라면 괜찮았을 터인데. 천성이 이리 간이 작고 심약하여 매번. 시엘의 대체재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하려면 나는 심약하지 않아야 한다.
그 자리를 뜨면 그만일 거라고 생각했으나 아니었다. 상대는 끈질기게 따라왔다. 묻지도 않는 말들을 혼자 줄줄 내뱉으면서. 뒤에서 저러고 따라오니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었다. 아마 최근 들어 가장 짜증나는 상대가 아니었을까. 저 사람의 머릿속에는 민폐라는 단어가 없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건물의 밖으로 나왔다.
"짜증나..."
그때까지도 달라붙은 상대를 보고 나는 짜증을 한껏 담아 쏘아붙였다.
"묻지도 않은 걸 일방적으로 들이대놓고 나도 말하라 강요하는 그 정신머리 한번 참 대단하다. 아니면 둔해빠진 건가? 아님 둘 다? 모르면 가르쳐줘야지. 그쪽, 민폐니까 꺼져."
그림자 가시로 위협을 할까도 생각했으나 이 이상 내 능력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쯧. 신경질적으로 혀를 차고 홱 돌아섰다.
그는 뭔가를 사들고 기숙사로 돌아가고 있었다. 구름이 끼어서 그렇게 날씨가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의 기분은 날씨와는 상관없이 들떠있었다. 항상 들떠 있는게 아니었냐고 묻는다면 '아니다' 라고 말해주고 싶다. 적어도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감정 기복이 있는게 당연한 일이 아닌가. 아무튼 방금 전에 산 무언가를 담은 봉투를, 능력을 사용해 자신의 오른쪽에 띄우고 걸어가는 그는 느긋이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 빠진건 없겠지.. 우유랑.. "
가끔씩 그는 봉투를 손에 쥐어 그 안을 확인해보며 혼잣말을 했다. 장난으로 말하자면 친구로부터 모종의 임무를 받았다고나 할까. 그는 다른 손으로는 아마 사와야 할것이 적혀있을 종이를 보며 봉투에 있는 것과 대조해보고 있었다. 그 때문에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앞에 있는 여학생과 부딪힌 그는 살짝 비틀거리며 뒤로 밀려났다. 다행히 넘어지지 않았고 봉투도 멀쩡하게 공중을 떠다녔지만, 그는 여학생에게 곤란하다는 듯이 사과했다.
암브리시오. 자신의 본국. 폐하가 있는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비류는 유연하게 생각을 고쳐먹었다. 폐하라고 생각하고 있으면 입밖으로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올거 같아서 비류는 본국의 복장인 회색 제복을 입은 채 거리를 걷고 있었다. 한번씩 조금은 신기하다는 듯이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며 걷는 그 발걸음은 몹시도 조용했다.
다른데에 시선을 팔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류는 자신과 부딪힌 남성을 향해 버릇처럼 손을 뻗었다가 이내 거둬들였다. 이놈의 버릇. 비류는 살랑거리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면서 남자를 바라본다.
느긋하고 여유로운 시선을 건네다가 곤란한 사과에 맞춰 비스듬히 웃어보였다.
"마음쓰지 않아도 좋아. 주저앉아서 타인의 이목을 집중시키지 않았고 순전히 다른 곳을 보고있던 잘못이지."
아, 물론 내 잘못이야. 너는 괜찮나? 언뜻 들으면 시건방져보일 말투는 여유가 묻어났다. 눈동자가 살짝 데구르르 굴러 공중에 떠있는 봉투를 바라봤다가 이내 다시 상대를 향해 옮겼다.
상대방이 다시 손을 앞으로 하자,건빵 봉지가 보였다.무언가 했더니 저거였구나.속으로 안심함과 동시에 자신의 판단력을 다시 한번 신뢰하게 되었다.역시 그렇게까지 위험한 인물은 아직 이 아카데미에는 없는 듯 싶으니. 이어 들려오는 말에 조금은 냔처한듯한 미소를 다시 지어 보이며,입을 열었다.
"안타깝게도,저는 별 자체를 좋아하는것이 아니고 별을 바라보는 걸 좋아한답니다."
아,책에서 읽었던 내용이라면 얼마든지 기억하고 있지만요.가볍게 덧붙이며 다시금 곱게 웃어보였다.조금은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저쪽의 반응을 보아하니 상대방은 별을 굉장히 좋아하는것 같아 보이는데.자기 앞에 있는 어여쁜 아가씨를 실망시키는 건 아닐까 했다.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자신은 그저 시간이 남아돌때 별을 보거나 책으로 접한것밖에 없었으니까.상대방의 별을 좋아하는 마음과는 달랐다.
"후후,왕족이라고 해서 너무 어려워하실것 없어요.시엔 아가씨께서 편하신대로 불러주시면 된답니다."
왕족이라고 해서 특별한 호칭으로 불릴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혈통이 어찌 되었던지 근본적으로는 다 같은 사람이었고,이곳에서는 왕족이기 이전에 학생이었으니만큼 모두가 평등하게 불려야 한다.모두가 평등하게 존중받아야 한다.
이어 들려오는 제 반려에 대한 호평에 방긋이 웃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시엔 아가씨.이 아이의 이름은 레이라고 합니다.다른 까마귀들과는 다르게 똑똑하고 영리해서,많이 사랑받는 아이랍니다."
"...물론,큰까마귀라는 이유로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면서 다시금 레이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가엽기도 하지.이 아이는 무슨 죄일까.죄가 있다면,그것은 되려 자신에게 있는 것일텐데.라니,말도 안 되잖아?나는 그저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이야. 아무튼 다시 뒤로 한 발짝 물러서는 상대방을 보다가 고개를 갸웃,기울였다.
저런 무포기 정신은 도대체 어디에서 파는 걸까. 어디에서 어떻게 자라면 저렇게 되는걸까. 몹시 궁금하지 않은 의문이었기에 그대로 생각을 구겨 버렸다. 관심 끄자, 꺼. 내 이런 반응에도 상대는 역시나 포기하지 않고 쫓아오며 이 말 저 말을 해대었다. 머릿속이 비었는지 아닌지, 아니, 저정도로 잔머리를 굴릴 정도면 아예 빈 건 아닌가본데. 어느쪽이던 나와는 하등 관계가 없었으므로 딱 필요한 말만 받아쳤다.
"그쪽과 엮인다면 나는 그 실습을 포기하겠어. 그쪽과 어울려야 한다면 팀워크 따위 내가 알 바냐. 혓바닥 놀릴 시간 있으면 스스로 개과천선하지 그래. 언제까지고 누가 뒤를 봐줘야 살 수 있는 꼬맹이가 아니라면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걸어가다가 가로수들이 쭉 늘어선 길에서 멈춰섰다. 가로수가 저 멀리까지 이어져있고, 그 가로수만큼 그림자도 이어져 있는 길. 나는 나무 그림자 위로 발을 디디며 마지막 경고를 남겼다.
"실습에서는 어쩔 수 없겠지만, 그 외로는 눈에 띄지 마. 아는 척도 마. 그쪽 이름 같은 건 이미 잊었으니까."
그 말을 끝으로 내 몸은 그림자 속으로 쏙 빠졌다. 누구도 쫓아오지 못 할 그림자 속을 유영해 그 자리를 피했다.
뒤로 밀려났을때 그녀가 왠지 손을 내민것도 같았지만, 그는 봉투가 능력의 영역을 벗어난게 아닌지 확인하려 했기 때문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녀가 그에게 답변을 들려줄 즈음에는 봉투가 아슬아슬하게 떨어지려 하는 우유통을 지탱하며 둥둥 떠있었고, 그는 슬그머니 능력을 사용해 우유를 안으로 집어넣었다.
" 다친데가 없으시다니 다행이에요. 저는 괜찮답니다. "
그는 말을 마치고 난뒤, 미처 머리도 묶고 나오지 않아 제멋대로 흩어진 머리카락을 한데 모았다. 그렇게 오래 걸리는 일은 아니었고, 그는 그제서야 그녀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처음 보는 제복의 모습에 그는 잠시 의아해했고, 곧 그녀에게 제복에 대해서 물었다. 정확히 하자면, 조금 돌려서 말하기는 했지만.
" 혹시.. 이 학원의 학생이신가요? "
기숙사에서 굉장히 가까운 곳이었으니, 그가 그렇게 묻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주변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틈틈히 지나다니기도 했으니까.
바깥 신 르투아르, 다른 이름은 이형의 태아, 태초의 악마. 외부 은하에 주로 나타나며, 모든 고양이, 그리고 얼마 안 되는 달의 야수들에게 숭배받습니다. 숭배자들은 르투아르에게 과거을 바치고 굉장한 지혜를, 또는 잠깐의 명예를 받습니다. 르투아르은/는 숭배자를 무가치한 존재로 생각합니다. #위대한_존재가_되었다 https://kr.shindanmaker.com/789728
...그건 그렇지. 고양이 알레르기니까..
르투아르: 하하 나야말로 모든 고양이들의 숭배를 받는 존재다!(사실 그것만으로도 기뻐 죽을 지경)
바깥 신 헤일리 미뉴엣, 다른 이름은 죽은 청동, 미지의 우상. 지구의 심해에 주로 나타나며, 극소수의 달의 야수, 그리고 일부의 거미들에게 숭배받습니다. 숭배자들은 헤일리 미뉴엣에게 과거을 바치고 특별한 지식을, 또는 끔찍한 명예를 받습니다. 헤일리 미뉴엣은/는 숭배자를 아끼고 있습니다. #위대한_존재가_되었다 https://kr.shindanmaker.com/789728
위대한 옛것 루이 크로즈델, 다른 이름은 살아있는 핏자국, 차가운 황금. 태양에 주로 나타나며, 대다수의 나이트건트, 그리고 얼마 안 되는 갑충족들에게 숭배받습니다. 숭배자들은 루이 크로즈델에게 보물을 바치고 매혹적인 고통을, 또는 굉장한 보석을 받습니다. 루이 크로즈델은/는 숭배자를 질려가는 장난감으로 생각합니다.
바깥 신 프란츠 발터, 다른 이름은 옛 벌레, 깊은 환상. 명왕성에 주로 나타나며, 모든 늑대인간, 그리고 일부의 흡혈귀들에게 숭배받습니다. 숭배자들은 프란츠 발터에게 육신을 바치고 굉장한 보석을, 또는 지속적인 고통을 받습니다. 프란츠 발터은/는 숭배자를 쓸만한 장난감으로 생각합니다. #위대한_존재가_되었다 https://kr.shindanmaker.com/789728
바깥 신 은유현, 다른 이름은 기어오는 핏자국, 부유하는 고철. 목성의 폭풍에 주로 나타나며, 극소수의 뱀 인간, 그리고 수많은 구울들에게 숭배받습니다. 숭배자들은 은유현에게 자신을 바치고 끔찍한 쾌락을, 또는 수많은 고통을 받습니다. 은유현은/는 숭배자를 쓸모없는 존재로 생각합니다. #위대한_존재가_되었다 https://kr.shindanmaker.com/789728
바깥 신 시엔 아나테마, 다른 이름은 옛 이끼, 잃어버린 안개. 지구에 주로 나타나며, 수많은 딥 원, 그리고 대다수의 구울들에게 숭배받습니다. 숭배자들은 시엔 아나테마에게 돈을 바치고 수많은 죽음을, 또는 굉장한 지혜를 받습니다. 시엔 아나테마은/는 숭배자를 쓸만한 장난감으로 생각합니다. #위대한_존재가_되었다 https://kr.shindanmaker.com/789728
무던하고 담백하게 예의바른 모습을 보이고는 있었지만 태생이 느긋하고 여유로운터라 비류는 비스듬히 미소를 짓고 상대의 모습을 지켜봤다. 금발의 미남. 비류에게는 그렇게 인식되어버렸고 그 인식은 쉬이 바뀌지 않을거라는걸 알았다. 느긋하고 여유롭게 고개를 천천히 끄덕여보이며 덧붙혀지는 그의 말에 가볍게 웃음을 터트린다.
"흥미롭게 느껴졌다면 다행이야. 이래뵈도 내가 사복으로 자주 입는 것이거든. 느끼하지 않았어. 장신에 미남이 그렇게 쳐다보면 왠만한 여성들은 부끄러운게 당연하지 않나."
비류는 노을색 눈동자 중 한쪽을 느긋하게 찡긋해보인 뒤에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옮겼다가 무던하게 미소를 띄운다. 굳이 자신의 본국을 밝힐 필요는 없지. 여기서는 모두 직위든 나라든 상관없어지니까.
"3학년, 아 나이는 열아홉이다. 역시 내가 무례했군. 사과할게. 프란츠 선배님."
손을 잡아오는 그의 말에 비류는 역시나 하는 느낌을 주는 뉘앙스로 말하며 악수를 하듯 두어번 흔든 뒤 손을 빼내고 뒤로 한발 물러나 가볍게 목례를 해보였다.
바깥 신 리타 라이프니츠, 다른 이름은 옛 불꽃, 썩어가는 위협. 리타 라이프니츠 성운에 주로 나타나며, 모든 개, 그리고 얼마 안 되는 나이트건트들에게 숭배받습니다. 숭배자들은 리타 라이프니츠에게 산제물을 바치고 위대한 쾌락을, 또는 매혹적인 죽음을 받습니다. 리타 라이프니츠은/는 숭배자를 질려가는 장난감으로 생각합니다. #위대한_존재가_되었다 https://kr.shindanmaker.com/789728
위대한 옛것 비류 월야 일카이, 다른 이름은 모독적인 영혼, 미지의 고철. 수성에 주로 나타나며, 극소수의 수수께끼, 그리고 일부의 뱀들에게 숭배받습니다. 숭배자들은 비류 월야 일카이에게 영혼을 바치고 굉장한 황금을, 또는 위대한 보석을 받습니다. 비류 월야 일카이은/는 숭배자를 질려가는 장난감으로 생각합니다. #위대한_존재가_되었다 https://kr.shindanmaker.com/789728
다들 애칭이나 별명이 뭔가요오오오오오!!!!!!!!!!!!!!!(쩌렁쩌렁) 시엔은 애칭으로는 셴이라고 불립니다만!!!!!!!!!!! 별명을 따지자면!!!!!!!!!!
어 음 그러게 뭐 정해놓은 게 있던가? 심심하니까 시엔 별명 정해주실 분? 참고로 시엔을 별명붙여서 놀려먹기 좋은 잡설정을 말하자면 1. 감자를 많이 먹는다. 매우 많이 먹는다. 감자만 먹고 살이 5kg(!)가 빠졌다고 한다. 2. 가끔 키가 더 커 보일때가 있는데 그럴 땐 100% 굽 또는 깔창. 구두신고있으면 굽이고 운동화면 깔창ㅇㅇ 3. 운동신경이 영 아니다. 춤 못 춘다
" 사복이라, 전 아가씨가 뭔가 중요한 일을 맡으신 줄로 알았는데. 아니었군요. 그것보다도 미남이라니, 고마워요. 평소에 그런 말을 들어본적이 없었거든요. 아하하.. "
제복에서 느껴지는 것은 진중함과 사무적인 무언가가 아닐수 없다. 그가 그녀에게서 높으신 분의 기운을 느낀 것도 그와 다르지 않을것이다. 확신은 아니었고, 단순히 마음속으로 추측한 것이었지만. 아무튼 그는 더 이상의 언급을 하지 않았다. 오늘 처음 만난 사이에 이것저것 캐묻는건 스스로도 이상한 느낌이 들었고, 그러니 천천히 알아가는게 낫다는 생각이었다.
" 사과하실 필요는 없어요. 전 그런 것에 별로 신경쓰지 않으니까요. "
그는 말을 마치고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상대가 어떻게 자신을 대하든 그에게는 별 상관이 없다는 것, 아마도 그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일지도 모른다.
듣자하니 최신옷을 자주 입고다니는 한 여학생이 있다고 한다. 사실, 최신옷은 그리 쉽게 구해지는 물건은 아니다. 애초에 '이게 최신옷입니다!' 하는 평가를 얻을 수 있는 옷은 그야말로 뛰어난 재봉사들의 작품 중 하나이며 시중에 나오는 물건들은 그걸 따라 한 물건. 따라 한 물건이 최신옷인가 하는 평가는 각각 다르지만 그런 옷을 입는것도 이미 충분히 엄청난 노력가이거나 재력가임에는 틀림이 없을터.
"그래서 찾아가 보았습니다ㅡ"
라고 작게 중얼거리며 스슥ㅡ 스슥ㅡ 타겟에게 접근한다. 다행스럽게도 타겟은 이쪽을 보지못한듯 별 반응이 없었다. 그나저나 저 기품있는 행동. 아니, 애초에 내가 기품있는 행동을 알아 챌 수 있겠느냐마는 뭔가 다른 사람과는 다른 무언가를 느낀다. 흠흠. 역시 이 학원에는 많은 사람이 오고, 다양한 사람이 있나보다. 그것만으로 이 학원에 온 가치는 있었다.
"더 가까이 가보자."
저 백금색 머리카락. 신기하다. 마치 옷감같다. 흠, 저런 옷감을 만들 수 있다면 떼돈을 버는건 시간문제일텐데. 옷감, 옷감. 뭐, 내가 만드는것도 아니지만. 이야, 신기한 머리카락이야.
그도 그녀의 말에 별 의심없이 답했다. 별로 알아두어서 좋은 것은 없지만, 그가 왜 미남이라는 말을 듣지 못했는지는 말하자면 긴 이야기다. 간단히 말해보자면, 잘생겼다는 말을 듣기 전에 느끼하다는 말이 먼저 나와버린다 라고 할까. 본인은 인기가 없는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같지만.
" 존댓말이 어려우시다니.. 그러면, 물론 알려드려야죠. "
그는 그녀가 조금 특이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그 자신부터가 좀 이상한 사람이라는 것은 잊지 않았다. 그리고, 한 명의 친구를 더 만들수 있다는 점이 그를 더 즐겁게 만든 것인지 그는 한층 기분이 좋아진 것 처럼 보였다.
대낮. 햇빛이나 받을겸 적당히 학교의 거리를 걷는 산책을 즐기고있었다. 오늘의 복장은 은제국의 복식이라기보다는 베리아트쪽에 가까운 느낌으로. 붉은 와이셔츠에 검은넥타이, 체인이 달린 검붉은 색의 체크무늬 스커트. 그리고 벨벳 재질의 롱부츠. 코디에 대해서 개념을 잡자면 펑크룩에 가까웠다. 꼭 은제국식의 복장을 입으라는 조건이 있는것도 아니고, 뭣보다 스스로가 계속 그런옷만 입으면 질린다. 퓨전룩을 선호하는것도 그때문이기도하고.
옷에 대한 이야기는 그쯤해두고 일광이 제법 되었기에 일광욕으로서는 안성맞춤인 날씨였다. 그렇기에 햇빛을 만끽하고 있자니, 제법 인기척을 느낄수있었다. 자신과 같은방향으로 계속해서 움직이는 걸보니 속으로는 경계하고있었지만, 그걸 얼굴에 드러낼 생각은 없었다.
다만, 그러한 움직임이 어느정도 지속이 되자 그렇다면 좀 골려줘볼까. 하고 나는 일시적으로 건물 블럭사이의 복잡한 골목을 활용해 근접하고있던 존재를 파악하고는 따돌리는 척, 뒤로 돌아가서 문제의 인물의 등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긴다.
"어머, 대낮에 과감하시군요. 무슨 용건인지 물어봐도 괜찮을지?"
꽤나 근육은 붙어있지만 그럼에도 대조적으로 신장은 비교적 작은 건강해보이는 연갈색 피부의 남자였다. 무슨용건인지는 몰라도 한가했던 참에 잘되었다.
"방금의 웃음은 조금 느끼한걸. 아무래도 그 웃음이 선배님의 매력을 반감시키는거 아닐까? 조금 더 멋드러지게 웃어봐."
말과는 다르게 목소리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눈을 가늘게 뜨며 바라보는 게 자신의 인상이 어느정도인지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굳이 해보이는 건 아마도 일부러하는 변덕스러운 행동이기도 했다. 지긋하고 물끄러미 프란츠를 바라보다가 이내 언제 그렇게 봤냐는 듯 여유롭고 느긋한 모양새를 취한다.
"오, 그래. 다행이네. 내가 제대로 사용할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음, 그래. 선배님 일단 내가 넋을 놓고 있어서 지금 선배님을 붙들고 있는것 같으니 사죄의 뜻으로 마실거라도 살까하는데."
혹시 바쁜가? 느긋하게 묻는 말투로 비류는 프란츠를 지나쳐서 몇걸음 앞으로 조용히 움직였다. 바쁘지 않다면 마실것 한잔 정도는 사게 해주겠어? 덧붙히는 말투도 그런게 이것도 버릇인듯 했다. 고개만 슬금 돌리자 오른쪽 귀의 귀걸이가 흔들렸다.
일광욕을 하는 그 모습에는 제법 여유가 있었다. 으음, 나라면 저런 여유는 가질 수 없을거라고 생각하는데. 역시 예상대로 저 여성이 입고있는 옷은 제법 엄청난 옷이라고 생각한다. 거래를 한 적은 그리 많지는 않지만 나도 값비싼 옷을 거래한 기억이 있다. 저 완벽한 제봉선과 전혀 얼룩이 없이 완벽한 염색. 도저히 은화 몇닢으로 살 만한 옷은 아니다.
"오오오...?"
옷을 보고 감탄하고있는데 갑자기 여성이 이동했다. 이렇게나 갑자기? 뭔가 해야 할 일이 생긴걸까. 건물사이로 들어갔기에 뒷모습이 안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조금만 더ㅡ"
옷을 보여줘! 라고 마음속으로 말하며 따라갔는데 사라졌다. 없었다. 근처에 뭔가 다른 길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
그의 표정이 순간이지만 곤란해 보이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는 그녀의 말에 손을 올려 머리를 짚었다.
" 아, 이건 버릇이 되어버려서 잘 고쳐지지가 않네요. 바꿀 수 있다면 좋을텐데. "
그런 다음, 그가 두 손바닥을 마주 비비며 대답한다. 버릇이 되어버린 것이 쉽게 고쳐질리도 만무했고, 이 시점에서의 그는 반쯤 포기한 상태였기에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물론 겉으로는 포기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아예 바뀔 생각이 없다는 말은 사람을 지치게 하기에 충분하니까.
" 상할것은 없으니까.. 지금은 괜찮겠네요. "
고마워요. 그는 그 말을 하기전에 봉투의 물건들을 살폈다. 간혹 몇몇 음식이 보였지만, 뭐 날씨가 더운 것도 아니니 괜찮다 생각하고는 그녀의 제안에 수락했다. 그는 말을 마친뒤 기숙사 반대편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아마 자신이 자주 가는 곳으로 안내해주려는 것으로 보인다.
"목소리가 너무 하이톤으로 올라가서 거짓말로 보이는데요. 거기다 비밀기지같은걸 학교 부지내에 설립했다면 이사장님이 과연 가만히 있을지. 후후후."
거짓말이 아닐수도 있겠지만 얼버무리는 티가 역력했기에 함부러 그런 말을 했다가 괜히 이상한 오해로 더 꼬이는것을 경고할 의도로 그의 말에 반박을 해본다. 거기에 하다더 조금만 더라는 말의 의미를 완벽하게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남자의 시선을 보건데 대략적인 추측은 가능했다.
"시선이 옷으로 쏠린거 보니 그런 쪽이 목적입니까. 저는 또 파파라치라도 얽힌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좀 다행이네요."
악질적인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는 쪽이 미행을 붙는것을 쫒아내는것은 별로 드물지 않은 일상이었기에 이렇게 남자의 기척도 쉽게 눈치챌수가 있었다.
"그래서 비밀기지를 만드신 비밀결사단씨. 아까부터 옷에 그렇게 신경쓰는 이유는 뭔가요? 혹시 옷도둑비밀결사단이라는 변태단체라도 되는건가요?"
명백히 약점을 잡은 사악한 여왕의 느낌을 탄듯한 어조로 나는 남자를 몰아붙혔다. 재밌는 장난감을 찾았다는 기분일까.
그럼! 비밀기지는 없지만 비밀기지가 없다는게 밝혀지지 않았으니 비밀기지는 있는거다. 아니, 정말로 비밀기지를 만드는것도 나쁘지는 않을지도.
"그런 쪽이라니, 나는 모르겠는데ㅡ"
눈알을 다른쪽으로 굴리며 말을 하다가 '변태단체' 라는 말에 손사래를 친다.
"나는 변태가 아니라니까!"
주변에서 변태라고 부르지만 나는 절대 변태라고 불릴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실습 중 학생들의 옷의 일부분이 분해되기는 하지만 제대로 돈도 줬고! 그렇다기보다 '당신의 옷이 너무나도 비싸보여서 왔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을리가 없다! 완전 속물적이다! 어, 그게 나구나.
그녀의 행동에 그는 가만히 웃어보였다. 그 웃음에는 평소에는 전혀 느껴지지 않던 미묘한 어색함이 느껴졌지만, 아마도 그의 얼굴에 그림자가 졌기 때문일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으니까. 당연한 일이 아닌가.
" 그렇게 되어도 좋겠네요. 아는 사람이 많아지는건 저도 반가운 일이죠. "
그는 그렇게 말하며 계속 걸어갔다. 천천히 걸음을 유지했으니, 그녀가 마음만 먹는다면 따라잡을 만한 속도였다. 하지만 답답하다거나, 둔하다는 느낌이 아닌 그저 느긋한 움직임이었다.
" 네, 그리 멀지않은 곳에 있어요. "
그는 말을 마치며 손으로 거리의 오른편을 가리켰다. 확실히 몇 분만 걸으면 도착할 수 있을만한 곳이었다. 지금 걸어가는 곳에서 보인다는 것 부터가 이미 가깝다는 증거이기도 했지만. 아무튼 그랬다. 그는 걸음을 조금 더 빠르게 바꾸었다. 봉투는 여전히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한심하다는듯 남자의 변명을 계속해서 듣고는 언잖은 눈치를 준다. 딱히 변명안해도 사유에 따라선 그냥 못본척 해줬을텐데. 어디까지 발뺌하려는걸까.
"너무 강하게 부정하는게 오히려 수상한걸요. 이걸 어째야하나. 황녀를 미행하는 변태가 있다고 소문나면 학교다니기 힘드실텐데."
적당히 거짓말은 이쯤에서 해두라는 의미도 있었고, 더군다나 옷에 풀이 묻어있다는 말을 듣고는 명백하게 이건 다른 목적이 있다는 심산을 느낄수있었기에 지위를 담보로 겁을좀 줘보기로했다. 그러고보니 내가 듣기로 2학년에 옷에 관심이 있어서 심지어는 옷을 분해해버린다는 인물이 있다고 들었는데.
"듣기로는, 옷을 분해하고 다니는 변태가 어디있다고 아는 사람들이 그러던데 설마하니 당신인걸까요? 이걸 어쩐다-."
눈빛은 매섭게 변해있었지만 지금 나는 정말 재밌는 건수를 하나 잡았다고 그런 생각을 하고있었다.
"아, 그런가요... 뭐 그거나 그거나 비슷한 거 아닌가요? 저도 별 보는 거 좋아하고......? ...아, 어쩌면 다를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곤 고개를 갸웃갸웃하다가 책이란 얘기에 눈을 깜빡깜빡. 그러곤 미소짓습니다.
"책이라면 저도 좋아요. 그 전에 읽은 책 중에서는 뒤통수 후려치는 전개가 너무 많아서 이젠 또 무슨 소설을 읽어야 할까 조금 고민되지만...... 아, 소설이 아니라 다른 분야라고 해도 좋아한답니다."
요즘 읽던 책은... 그래. 그 전의 여동생을 사랑한 언니의 영아살해+존속살해가 나오던 그거라던가. 뭐 그런 게 있었지.
"앗, 그리고 그런가요? 그러면 크로즈델 씨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리고 이름은 레이... 군요. 예쁜 이름이에요. 뭔가 어감이 동글동글 부드럽다고 해야 하나...... 발음에서 탑탑 막히는 부분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부들부들한 느낌이 들어요."
뭔가 어감이라던지 그런 걸 따지고 있다. 뭐 본인이 그렇게 느낀다면 그런 거니까 본인의 생각일 뿐인 것 아닐까. 그녀는 그러다가 큰까마귀라는 이유로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얘기에 고민한다. 음, 그런가. 큰까마귀...... 그렇지만 나도 까마귀가 내 키보다 크다면 무서울지도. 하지만 얘는 작은데. 귀여운데. 그러니까 괜찮은 것 같은데? 귀엽기도 하고 말이지. 그렇지 않나?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걸까? 모르겠다.
"그리고, 그...... 딱히 불편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답니다. 혹시 제가 불편하게 했을까... 하는 게 오히려 제 생각인걸요. 그...... 제가 저보다 키 큰 사람들은 조금 무서워서요. 올려다보면 얼굴에 그림자가 지잖아요? 그렇지만...... 크로즈델 씨처럼 좋은 분이라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도서관에서 팬더를 만나게 될줄은 몰랐다. 으으,공부해야하는데,공부해야하는데! 결국 공부가 너무나 하기 싫어 '밥도 사줬으니까 팬더한테 보답해줘야지?'라는 내 마음속의 악마의 소리에 굴복한 나는 이 팬더 후배한테 까까 사준다고 카페로 꼬셔왔다. ...아이고,공부해야 하는데,진짜 안하면 이러다 F나온다니까. 나는 카페 테이블 위에 펴놓은 프란츠와 로렌스의 필기 노트를 베껴둔 페이퍼들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쉰다. 머릿속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아. 도대체 왜 역사같은걸 공부해야 하는건데? 젠장! 우리 동네 얘기라도 들어갔으면 내가 말을 안해요,우리 동네는 깡촌인지 말도 드럽게 없으니 머릿속에 들어갈리가 있나. 아니,우리 집에서 수만리 떨어진 은 제국이나 베리아트 공화국 역사는 왜 배워야하는건데?! 엘레노아님의 말이 맞았어,인간은 모두 평등하고 자유롭다니까. 이 망할 황족이나 부르주아 놈들만 없었어도 이런 쓸데없는 역사는 안배워도 됐을텐-
"아,미안. 불러놓고 너무 딴얘기만 했지?"
나는 내 앞에 앉아있는 팬더 후배한테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얘 근데 은근 비싼거 주문했네) 나는 오렌지 주스를 한모금 쪽 빨고,그 다음 이 팬더 후배를 내려다보고 빤-히 쳐다보다가 말한다.
"공부 열심히 혀,안그러면 이 아저씨처럼 돼."
이번에도 또! 또! F나오면 정말 위험해서 절박하단 말야,으으으,실전 점수만 가지고 평가했으면 내가 4학년 최고인데. 뭔 별 거지같은 필기시험을 봐가지고는. 그나저나 이 팬더 후배,보면 볼 수록 참 묘헌게.
"팬더,일찍 자고 다크서클 없앨 생각 읎니? 그럼 쪼오금 더 이뻐질거 같은데."
응응,잠만 좀 더 일찍자도 지금보다 훨씬 귀여워질거 같긴 하다.
"나는 개가 더 좋은데,보통 사람들은 고양이 더 좋아하잖아. 그러니까 다크서클 없애고 팬더에서 고양이가 되는거야.알게썽?"
쿡쿡거리고 웃고는 이후에 들은 겐이 목적이랍시고 말하는 말에 슬쩍 표정이 일그러지고 만다.
"당신도 혹시 그런부류인가요. 추종한답시고 별 시답잖은 짓을 벌이고 다니는 치들이 제법있던데. 앞에서는 이야기안하지만 정말 가증스럽거든요."
그런경우의 사람이라면 사절하는바이다. 애초에 큰 권력을 가진것도 아닌데 잘보일려고하는 시점에서 속물이고 하찮다고 그렇게 여기고있던 탓에, 평소의 표정을 유지하기 쉽지않았다.
"날 알고 있다고해서 달라지는건 없을거에요. 그리고 행여나 그런일은 하지않겠지만. 황족관계자를 빙자한 사기라던가 금품갈취등은 좋은 꼴은 못보실거에요. 재판을 제 어머니인 황제 은 사하께서 내릴터이니. 그리고 학교 내에서라면 제 멍멍이랑 산책을 시켜준다음 호수에다가 콘크리트로 묶어서 수행중이라는 팻말을 붙이고 던져버렸을거랍니다."
그로테스크한 심연의 파편이 잠시나마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졌다. 겐의 뒷소문이 그리 좋지는 않았기에 그런일을 하면 알지? 라는 의미로 던진 말이었다. 사기꾼 같은 존재들에게 굳이 아량을 베풀만한 사람은 아니였다 적어도 나는.
"죄송할건 없습니다. 그저 제 이름을 의미없는 곳에 팔아버리거나 위세를 위해 저를 이용하는걸 납득못하겠다는 그런 말이랍니다."
황녀라는 이름을 팔아먹는 존재도, 황녀라는 존재를 시기하며 근거없는 소문을 퍼뜨리는 존재도. 모두 하찮고 가증스러운 존재였기에, 행여나 그런일을 한다면 가만히 있지는 않을것이다. 꽤나 격정적인 반응으로 겐을 대하고 있었기에 다시 표정을 고치고는 너무 공포감을 조장한 탓에 진정하라는 듯 이야기를 계속이어나가본다.
"메디엔 겐씨. 학교의 교우관계로서 친목을 도모하는건 괜찮습니다만 황녀로서라는 전제를 깔고 무언가 해볼심산이 있다면 관두시는게 좋을겁니다. 조금 흥분해버렸는지 표정유지하기가 쉽지않았거든요."
권력을 쓸생각은 없지만 황녀라는 키워드자체가 어느정도 방아쇠를 당긴탓에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들수밖에 없었다.
"뭐, 학교에서 교우관계를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이름팔고다니는 그런 행위가 아닌이상 저는 환영합니다. 학생으로서 모범이 되는 모습을 보이는 면모는 좋거든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진 않았습니다. 선배님의 말을 잘 들으면 뭔가 도움되는 건 있을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이것은 내가 10살적부터 깨달은 진리. <처세술을 알면 세상을 다 살은 것이다!> 라는 것의 일부이죠. ...10살때부터 그런 걸 깨닫다니 나도 참 찌들었구나 싶지만요.
"선배님이 스스로 아저씨라고 말하면 전 뭐가 되나요...... 얼굴만 보면 저보다도 어린 것 같은데. 그리고 팬더라니. 음. ......그리고 다크서클은 체질이 이래서 잘 먹고 잘 자도 안 없어지던데요. ......어제도 12시간 넘게 잤는걸요?"
고개를 갸웃. 그러곤 가만히 당신을 보다가 공부에 대한 얘기에서는.
"그리고 저 이론과목 쪽에서는 선배님보다 훨씬 성적 좋을걸요?"
아마 웬만한 과목은 다 높은 점수를 받았으니까. 하지만 그에 반해 실기 성적은 평균정도에 그쳤지. 아마 그녀는 이론과목에 조금 더 시간을 투자하는 편일 지 모른다. 아무래도 그런 모양이다. 실제로 투자하는 시간은 비등비등했지만.
"개가 좋으세요? 그런가...... 개도 귀엽죠. 저는 고양이가 좋지만. 그래도 이거 다크서클이 뭘 해도 안 없어지는 걸로 봐서는 아무래도 팬더로 남아야겠네요. ......선배님한테 계속 팬더라고 불리는 건 싫지만 이게 뭘 해도 안 없어지는데."
입술을 비죽비죽거리며 당신을 가만히 본다. 그러곤 이내 살짝 삐진듯이 딸기 아이스크림을 한 스푼 떠 입에 넣는다. 맛있어. 맛있는데 저 선배한테 얻어먹으니까 내가 뭔가 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단 말이지. 응, 그렇지 않아? 그렇지 않냐구.
"그리고 선배님. 그러는 선배님은 제가 선배님의 그 나이에 안 맞게 저보다도 어려보이는 얼굴을 지적하면 어떨 것 같으신지. 어차피 둘 다 고칠 수 없는 점인거, 그냥 적당히 넘어가죠. 다크서클 얘기는......"
삐진 듯이 맹렬한 눈빛으로 째려봅니다. ......잠깐, 선배한테 이러면 역시 혼나겠지? 분명 그럴거야. 혹시 한 대 맞지는 않으려나? 싶어서 순간 몸을 움츠렸다.
" 도움을 줄수 있는 사람도 많아지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도 많아진답니다. 물론, 서로가 진심으로 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건 친구가 아닌 지인이 되겠죠. "
그렇다고는 해도, 나쁘지 않아요. 그는 말을 잇는 마지막 말에 조금 힘을 주었다. 적어도 어떤 사람을 적으로 돌리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관계가 비교적 가볍더라도 그걸로 좋았다. 생활권내에 적을 만드는 것은 그가 원치 않는 일이었다. 모든 사람과 친해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 하지만.. 직접 시도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다.
" 제 능력이에요. 쉽게 말하자면 염력이라고나 할까요. "
그녀가 이어 말을 꺼내고, 그가 대답했다. 너무 당당하게 쓰고 있었으니, 신경쓰이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할 것이다. 그는 그녀의 말이 맞다며 봉투를 공중에서 한바퀴 돌렸다. 안의 내용물은 아슬아슬하게 떨어지지 않았다.
"미안하지만 틀렸다. 팬더,동안인건 장점이지 단점이 아니거든. 그런고로 하나도 안부끄럽습니다요?"
나는 그렇게 말한다음 낄낄 웃는다. 이야,팬더 후배님 처음에 봤을땐 재미 없고 성격만 드러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재미있잖아. ...자존심도 건드릴줄 알고 말이지!
"야,야. 이론과목 성적 얘기가 여기서 왜나와. 그렇게 따지면 실기는 4학년 학생중에서도 내가 최고중 하나...그래요,저 이론 못해요."
팬더의 표정을 보니 내가 더 우겨봐야 할 말이 없을거 같다. 그래! 나 이론 못한다! 됐냐! 으휴,2학년 애보다 성적이 더 안나온다고 갈굼당하다니. 프란츠가 보면 도련니임? 하면서 이거 3개월 내내 우려 먹을게 분명해! 다행히 프란츠가 이 자리에 없음에 하늘에 계신 엘레노아께 속으로 감사를 표한뒤,이 성질 더러운 팬더 후배가 살짝 움츠러든걸 보고 '으이구'하고 손을 확 들었다 내린다.
"다 긁어놓고 그렇게 움츠러들면 뭘 어떻게 하라는거냐. 치고 빠지는 솜씨가 아주 말벌급으로 예술이구만유?"
어우,열뻗쳐. 나는 속 좀 삭히자는 의미에서 이번엔 오렌지 주스를 쭈우욱 한모금 마신 다음,집중도 안되는 공부를 하느니 잠시 머리좀 식히는게 낫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카페의 문 밖으로 날씨 좋은 바깥 풍경을 보다가-
"그나저나 도서관 왜왔어? 시험 공부 벌써부터 하는거야? 나는 보충좀 해야해서 대비하는거지만 너는 왜 온건진 모르겠는데."
흐으음,왠지 이런 꼬맹이는 책을 읽을거 같지는 않은데. 아! 읽긴 읽겠다. 좀 암울하고 설정은 길고 등장인물들은 지들끼리 아는 얘기 해서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무슨 말인지 못알아들을 그런 소설이 요즘 인기니까,그런거 읽으려고 온건가. 뭐,그런 소설들이 도서관에 들어오는지 안들어오는지는 잘 모르겠다.
"안어울리게 핑크핑크한 연애 소설 읽진 않겠지."
응,이건 아니다. 정말 아니다. 너무 아닌거 같아서 도저히 내가 왜 말했는지 이해가 안되는 말이야. 저 팬더는 왠지 연애소설 안 읽을거 같은데 이건 확신 할 수 있어! 내가 지금 가진 돈을 전부 걸 수도 있다구. 연애 소설이나 코미디 같은건 죽어도 안읽을거 같은 오오라가 풍기잖아.
아아,그건 둘째치고 이제 힌트를 얻었으니 얻어낼건 얻어내야지? 나는 한숨을 푹 내쉰다. 자존심 좀 구기는거긴 한데!
"...그런데 이 이론 어떻게 해야 머리에 잘 들어오는거야?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슴돠. 팬더 싸부님."
잠시 무슨 말을 꺼내야할지 아주 조금 비류는 생각에 잠겼다. 도움을 주고 받고, 진심으로 친하다고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지인이라고 한다. 프란츠의 말을 듣고 잠시 여유롭게 눈을 깜빡여보이던 비류가 비스듬히 미소를 지었다. 적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군. 본국에 널리고 깔린 자신의 - 언니의 - 적을 생각하며 자신의 주변을 한번 살펴볼 수 있었다. 디트리히,는 그 사고뭉치. 그 남자는 친우가 아닌 악우일테지. 눈앞의 이 남자의 말에 따르면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괜찮다니 다행이군. 그럼, 우리는 오늘부터 지인인가?"
여유롭고 느긋한 태도를 고수하며 비류가 배부른 짐승처럼 그르릉거리는 무던한 대답을 꺼내놓았다. 아니라면 말지. 무던하고 담백한 생각이 이어지다가 비류의 머릿속에서 그 생각은 깨끗하게 사라졌다.
느긋하게 비류는 미소를 지었다.
"실생활에 유용해보이는 능력인걸. 내 능력?"
공중에서 한바퀴 돌아가는 봉투를 바라보다가 그녀는 고개를 한번 가볍게 한쪽으로 기울였다가 손바닥을 펼쳤다.
그리 크진 않은 자그마한 얼음조각이 비류의 손바닥에 나타났다가 그녀는 그 조각을 가볍게 던졌다.
"소문을 잠재우고싶다면 능력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활용해보는걸 생각해보시는게 좋을겁니다. 섬유라고 하더라도 가짓수가 제법되지않나요? 친구들에게 자랑할만한 거리를 만든다면 다른방법으로 생각을 해보시면된답니다. 면과 실크가 결합된 재질의 옷이 있다면 같은 식으로 말이죠. 모나 삼베도 있고말입니다. 꽤나 시장에서는 새로운 상품이라고 좋아라할텐데."
계산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공격적인 능력은 아니다. 섬유을 마음대로 가지고 놀수있다면 경제적인 방면으로 생각해볼 여지는 있었기에 이율타산적으로 그의 목적을 이루길 원한다면 이런게 낫지않나라고 그저 제안해볼뿐이었다.
"학교가 로머를 양성하기 위한 기관이라지만 꼭 공격적인 능력을 가지고 오는 사람이 있는 법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해보니까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었네요... 그걸로 어떻게 긁을 수는 없던걸까. ...선배님 너무 얄밉단말예요."
한숨을 푹 쉰다. 으으,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진짜.
"그리고 이론과목 성적 얘기는... 그게 사실이니까요? 그리고 실기 과목 그건...... 선배님을 상당히 부러워한다고 해야 하나.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고 있슴다."
빵싯 웃으면서 가만히 당신을 봅니다. 그보다 내가 연애소설을 안 읽을 것 같은 이미지인가? ......나 이래뵈도 이 나이대 평범한 소녀인데? 안 읽을 것 같은 이미지였구나...... 대충격을 받은 눈빛으로 가만히 눈을 깜빡깜빡. 그러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멍한 얼굴로 잠시 생각하는 듯, 아니면 충격을 받은 듯 가만하고 고요하게 있다가 작게 묻습니다.
"......저 의외로 로맨스라던지 그런 것도... 많이 읽는데요. ......막, 달달한 그런 거. ...왜 아닐 거라고, 안 어울릴거라고 생각하신거죠......? 저에게 감성이라는 게 아예 없을 것 같다는 마냥...... 아......"
그렇다고 운다던지 그러진 않지만 굉장히 아련하게 말한다. 말끝마다 (아련)따위의 지문을 붙여야 할 듯한 분위기이다. 아니 이게 아닌가.
"아무튼 도서관은 천문학 이론 좀 찾아보려고 왔어요. 별을 좋아하거든요, 전. 취미로 별을 보기도 하고요."
뭐, 그녀가 테오도르를 만났을 적에 읽고 있던 책은 굉장히 어려워보이는 제목을 하고 있었기에 취미라기에도 애매해보이지만.
"그보다 그 이론이요? ......어, 그거... 설명해드릴까요? 아니 설명해드릴게요. 머리는 박지 마시고. 이마 빨개졌잖아요. 안 아파요? 많이 아플 것 같은데. 벽에다가 머리 자주 박아봐서 알아요. 그거 엄청 아파. 그러니까 웬만하면 그러지 마시구. 장난이라도 안돼요."
대화를 나누면서 속도가 조금씩 느려지고 있지만, 카페로 도착할 시간은 이제 1분 조금 남았을까. 물론, 동일한 속도로 걸었을 때를 가정한 것이고 실제로는 조금 더 느리게 도착할 것이다. 그녀가 작은 얼음 조각을 보여주며 말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 빙결, 이군요. 꽤나 좋은 능력이네요. 특히 여름에는 더욱.. 그렇죠? "
그는 그녀의 말을 이어주려는 듯이 웃으며 농담하는 것처럼 말했다. 조금 단순할지는 몰라도, 그만큼 활용성도 높은 유동적인 능력이었다. 적어도 그의 생각에서는 그랬다. 그는 그녀의 능력이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며 걸어갔다.
" 여기에요. "
카페의 인테리어는 수수한 느낌이었다. 흔히 카페하면 생각나는 검은색과 갈색이 적당히 섞인 배색이라고나 할까. 그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그가 가장 편하다고 느끼는 창가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녀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봉투를 의자에 내려놓은뒤 카운터에서 음료를 주문했다.
"당장에는 불가능하더라도 언젠가 되게 만든다면 좋겠네요. 그러면 투자해볼의향도 있으니까."
능력과시하는 모습이 그리 좋게는 보이지않았지만 노력하는 사람을 비하하기는 싫다. 무언가 장래에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된다면 이쪽은 환영하는 바이다. 다만, 공격적인 방향으로도 응용이 가능하다는걸 말하고 싶은듯 했다. 어떻게 써먹을지는 별로 감이 안잡히니까 적당히 응수하는 차원에서.
큭큭하고 비류는 만족스럽게 웃고는 프란츠의 말에 무응답을 했지만 무던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꽤 상냥하게 보인다. 상냥한 느낌의 눈빛을 한번 보내고 모호하게 눈을 슬쩍 접으며 새삼 다시금 미소를 띄운다. 그런가. 지인인가. 비류는 턱을 손끝으로 문지르며 생각한다.
"여름에는 유용하지. 그렇게 써도 상관없는 능력이기도 하고."
시원하고,차갑고. 여차하면 여름의 뙤약볕 아래에서 조금 뛰다가 더우면 사용하기도 한다. 그런식의 아주 유용하고 실용적으로 쓴게 더 물던가. 음, 모르겠네. 아아, 우리 언니 보고싶다. 비류는 귀걸이를 한번 매만지고는 목을 쓰다듬었다.
카페의 분위기는 차분한 느낌이 든다고 비류는 생각했다. 해안 한가운데에 놓여서 요새처럼 뒤덮힌 자신의 본국에서는 전혀 볼수 없는 근사한 풍경이였다. 비류는 프란츠의 뒤를 쫒아서 창가로 걸어가 봉투가 놓인 맞은편 의자에 앉으려다가 이내 그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