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여담이지만...이번 전투는 이전처럼 한번에 척척 풀리는 전투는 아니었죠. 그나마 모두들 눈치가 빠른 편이고 대처를 잘 해서... 그나마 쉽게 쉽게 되긴 했지만... 이 전투는 최종전투를 제외하면 3번째로 어려운 전투. 즉...최소 이보다 어렵고 강력한 전투가 앞으로 2번은 더 나온다는 겁니다.
자장가는 다음으로 미뤄둔다며, 대신 공평하게 다른 것을 가져간다는 말이 들리기는 했는지 어쨌는지 아실리아는 연신 침묵하며 제 손 안에 얼굴을 푸욱 파묻곤 잔뜩 달아오른 얼굴을 애써 숨기는 데에만 급급했더랬다. 그래서일까, 손이 얼굴에서 떨어지고 입술이 맞닿기 직전의 순간까지도 상황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은.
" ....... "
잠시동안의 입맞춤이 끝나면, 아실리아는 참았던 숨을 가늘게 내쉬면서 서하에게 서서히 몸을 기댔다. 진하게 풍겨오는 커피 향 때문인지, 단순히 부끄러워서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 때문일지는 몰라도 머리가 보통 어지러운 게 아니었다. 이에 아실리아는 전신의 힘이 거의 다 풀린 마냥 서하에게 기대 서서는 한동안은 바닥만 쭉 내려다보았다.
" ....좋아, 서 죽을 것 같다.. 고 하는 말. 무슨 말인지 잘 몰랐는, 데.. 지금은, 좀 알 것 같아. "
그렇게 조용한 목소리로 말하며, 아실리아는 기댔던 몸을 떨어뜨리곤 다시금 몸을 똑바로 세웠다. 두통은 여즉 짙게 남아버렸지만 어쩐지 피곤한 느낌이 사라져버린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육체적인 피로감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만.
" 후우... 심장, 떨어질 뻔 했잖아요. "
물론 먼저 시작한 건 이쪽이지만. 돌연 아실리아는 제 손을 잠깐 바라보다가, 일순 머뭇거리더니 서하의 손 끝을 힘주어 잡고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웅얼이듯 말했다.
" .....아까, 수면제랑, 자장가랑.. 손, 잡는 거. 서류도 다 끝났으니까. "
제대로 끝을 맺지 못 한 말을 뒤로 하고, 아실리아는 서하의 손을 약하게 잡아당기는 시늉을 하다가 도로 놓았다.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죽는다던데 제가 딱 그렇게 될 것만 같았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입맞춤이 끝났을 때, 내 얼굴은 얼마나 붉게 물들어있을까? 그 사실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내 얼굴은 붉게 달아오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바로 내 눈앞에서 나에게 몸을 기대고 있는 아실리아처럼... 사실 이쪽에선 얼굴이 잘 안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아마 아실리아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겠지. 나에게 기대는 그 몸을 팔로 확실하게 받치면서 넘어지지 않게 지탱했다.
잠시동안 그렇게 나에게 기대면서 바닥을 바라보고 있던 아실리아가 입을 열었을 때 들려오는 목소리는 나를 피식 웃게 만들기 충분했다. 좋아서 죽을 것 같다라. 그리고 심장이 떨어질 것 같다라. 누가 할 소리를 하는 건지...
"...네가 내가 할 소리를 다 하면 내가 할 말이 없어지잖아. ...정말. 그리고 시작은 네가 했잖아. 나도... 내기의 결과로 키스를 받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으니까."
괜히 부끄러움이 더 몰려오는 것 같아 한쪽 손으로 달아오르는 얼굴을 부채질을 하며 식히려고 시도했다. 그럼에도 좀처럼 식혀지지 않는 얼굴의 열기는... 찬바람을 쐬어야 식혀질까? 아무튼 시간을 확인해보니, 어느새 당직 시간도 거의 끝이 나고 있었다. 이제 쉬면 되는 시간일까? 서류를 처리하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는 사실에 그저 신기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일...귀찮은데 하다보니 시간이 이리 빨리 가는 이 아이러니함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을 잠시 고민하다 아실리아를 바라보며, 손가락을 가볍게 퉁겼다.
그러자 내 손에 전송되는 것은 내 방에 있는 수면제 통이었다. 자주 먹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먹는 그 수면제를 통 속에서 꺼낸 후에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고 이야기했다.
"...수면제는 일단 이렇게 되었고 남은 것은 자장가와 손 잡는 것이겠지? ...하윤이가 출근하고 발견한 후에 놀라지 않을까 싶긴 한데.. 일단 숙직실로 갈까? 익스파 탐지기는 익스파가 크게 잡히면, 울리게 될 테니 말이야. ...그리고 그와는 별개로... 아실리아."
이것을 말해야 할 지, 조금 고민하긴 했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이야기하기로 했다. 적어도 그녀는... 대원들 중에서는 내가 '요원'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으니까. 그렇기에... 그렇기에....
"...'감마'는 요원이었지. 아마. 네가 보여준 그 영상에 의하면 말이야. ...그런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웃기긴 해. ...물론 나는 너에게도 알려주지 않는 기밀이 있어. 내가 성류시로 온 이유라던가.. 하지만, 그것은 R.R.F와는... 그리고 감마인 그 자와는 관계가 없어. ...혹시나 불안해하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야. 믿어주지 않을래?"
//일단 이번 스토리에서 새롭게 밝혀진 요소가 있으니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살짝... 그리고 죄송할 것이 뭐가 있나요. 괜찮습니다! 아실리아주! 오히려 아실리아주가 피곤하지 않을까 걱정이에요..8ㅁ8
방금 전에 네가 정한 것이냐는 정답을 듣고, 틀린 소리는 아니잖아? 라고 대꾸하는 목소리는 마냥 가볍지만은 않았다. 순간적으로 눈을 반쯤 감기도 했고. 그래, 인간은 가식의 동물. 진실도 잘만 숨기면 거짓이 되고, 거짓도 잘만 부풀리면 진실이 된다. 인간은 그것이 가능하다. 흘러가는 물처럼 그 생각을 조용히 하면서 눈을 다시 원래대로 떴다. 역시 그 인간은 지옥에 떨어져야해. 최대한 고통스러운 최후를. 아니, 영원히 고통 속에서 지내도록. 그와중에 들려오는 '너가 더 무서운데...?'라는 말에는 그저 하하, 쓴웃음을 살짝 짓는 걸로 반응하였다. 위험한 능력이기는 하다. 범죄에 눈을 뜬 사람의 손에 넘어가기라도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그 때라면..."
17살 때라는 소리에 문득 떠올렸다. 갑자기 17살 때 우울함을 극복한 듯이 보였던 유혜. 이건 인과관계가 성립하는 것일까, 아니면 단순한 우연인 것일까. 후자라면 역시 우연이란 굉장하다는 말 밖에는 못하겠다. 어쨌든 나는 뒷말을 잇지 못하고 그냥 얼버무렸다.
"...뭐, 그렇네. 여차하면 숨겨왔던 쌍둥이라고 우기면 될테고."
헛웃음을 흘리면서 이런 말로 돌렸다. 금방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여하튼 우리의 차례는 금방 왔고, 나는 땅 위에 받쳐놓고 잡고 있었던 스키보드를 들고 발걸음을 옮겨 발판 앞에 섰다. 옆에서 재미있겠다고 하는 중얼거림에 나지막히 그렇네, 라고 나른하게 답하면서. 직원들의 통솔 하에 리프트에 착석했고, 보드를 안았다. 그리고 뭔가 무섭다는 말에는,
"괜찮아. 끽해야 죽기보다 더하겠어."
...라는 더 무서운 소리로 무덤덤하게 답했다. 리프트는 처음이었다. 그러나 나는 별로 무섭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리프트가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체감하는 리프트의 속도에, 조금 성급한 사람들은 이 과정을 못 참겠네, 라는 생각을 잠시 하였다.
//(감마 정체만 확인하고 쓰러저버렸다.....)(무한점) 뒤늦게 답레 올립니다아아ㅏ ;ㅁ; 아침 갱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