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거 안 바래. 그냥, 같이 있는 동안에는 아무 생각 없이 웃고 떠들고 싶단 말야. 근심 걱정 다 잊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있고 싶은데. 제발 있는 정 좀 떠나가게 하지 말아줘. 내가 너를 만날 때 괜찮은 척을 하니까, 너도 나를 만날 때 괜찮은 척을 좀 해달란 말이야. 제발.
그러실 거면 그냥 관계를 끊으세요. 직장에서 친하지도 않은 사람 감정 받아주기 싫습니다. 내가 왜 일부러 그 화제 안 꺼내는지 그 잘나신 머리로 조금만 생각해보면 안 됩니까? 머리는 뒀다가 뭐해요? 내가 만만한 건 나도 자주 아는 데 좋아서 참는 거 아니거든요? 나는 당신 신경 쓰기도 싫어요. 일하다가 집에 가고 1년 채워서 경력 만들고 떠날 생각인데요? 떠날 티 내지 말라고 했죠? 그렇게 못되게 구는데 그러면 그거도 참아요?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지껄이는 거 보면 기도 안 차서
그곳에서 죽었어야 했다. 나는 군대에서 죽었어야 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곳에서 나는 죽었어야 했다. 하루하루 이 악물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던 그 시절에 죽었어야 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총포를 들고 과녁을 향해 쏘아냈던 그 시절에 죽었어야 했다. 잠깐 총구를 다른 곳으로 향하게 하면 죽을 수 있던 그 순간에 죽었어야 했다. 이렇게 무기력하게 실패 끝에 좌절하고 끝없이 가라앉는 시간에 멈춰있기 전에 죽었어야 했다. 더 이상 노력하기 싫어서 그저 허송세월한 끝에 어떻게 노력하는지도 잊어버리기 전에 죽었어야 했다. 기생충도 살아가기 위한 노력을 하는데 그런 노력도 안하는 쓰레기가 되기 전에 죽었어야 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을 그때 문득 아무렇지 않게 죽었어야 했다. 실패한 인생이라고 확정 지어지기 전에 내던져진 그곳에서 몸부림 치다가 죽었어야 했다. 매일 밤마다 찾아오는 불안과 후회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기 전에 죽었어야 했다. 총구 비스듬하게 물고 방아쇠 한번 당기면 되는 그곳에서 죽었어야 했다. 편하게 죽을 기회가 다시는 찾아오지 않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그곳에서 죽었어야 했다. 목을 메려고 빨래끈을 샀는데 너무 얇아 목이 잘릴 수준의 빨래끈 밖에 살 수 없었어 허탈함에 웃느라 죽을 마음이 사라져버린 순간을 맞이하기 전 그곳에서 죽었어야 했다. 떨어져 죽으려고 어딘가에 올라가서 아래를 보니 지나다니는 사람이 너무 많아 미안하기도 하고 고소공포증이 도져 죽을 마음도 사라져버린 순간을 맞이하기 전 그곳에서 죽었어야 했다. 그 곳에서 죽었어야 했다. 차라리 그 곳에서 죽었어야 했다. 그랬어야 했는데.
사람 같이 살기 위한 노력을 뒤로 하고 오늘도 낭비한 하루의 끝에서 한때 즐거운 허송세월을 하던 사이트의 한 구석에 찾아와 자기연민과 자기혐오와 자살욕구가 뒤섞인 글을 두서없이 생각하며 써내려가는 자신의 모습에 기가 차서 실실 웃는 처지가 되기 전에. 그 전에 죽었어야 했는데.
빠진 머리에 망가진 허리에 비대한 체중에 될리가 없는 취업에 하지 않는 공부에 늘어난 거짓말에 먹어야 하는 약에 마실 수 없는 술에 풀지 않은 문제집에 들춰보지 않은 기본서에 꺼지지 않는 컴퓨터에 멈추지 않는 음악에 끝나지 않는 낭비에 이룰 수 없는 성공에 늘어가는 나이에 잡을 수 없는 미래에 이 모든 것들이 뒤엉켜서 늘어붙는 월세방에 고이기 전에 죽었어야 했는데 왜 죽지 못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