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의 패턴이 지금은 많이 바뀌었는데, 예전에는 엄청 수동적이었어요. 아주 당찬 캐릭터가 사랑만 시작하면 자꾸 울고 슬퍼하고 갑자기 다른 느낌처럼 변하는 게 항상 답답했어요. 그 캐릭터를 잃는 것이. 그래서 그런 갈증이 늘 있었어요. 그런데 <봄밤> 이정인은 끝까지 잘 끌고 갈 수 있었던 캐릭터였어요. 이후에 <우리들의 블루스> 영옥이도 그렇고. 이제는 시대가 좀 바뀌었어요. 남자가 멋있게 다 해주고 이런 것들에서 이제 시대가 바뀐 거죠. 당시에는 ‘나는 지금 다른 작품을 하고 있는데 왜 그때랑 똑같은 걸 하고 있는 것 같지?’ 이럴 때가 많았던 것 같아요.
저는 저 보고 반갑게 인사해주면 너무 좋아요. 기차를 타잖아요. 기차가 지나가면 저는 무조건 손 흔들어 인사해요. 저한테 인사 안 해줘도. 너무 재밌잖아요. 저 사람은 어디서 왔고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냥 그 잠깐이 반갑잖아요. 그래서 인사 엄청 많이 해요. 손 많이 흔들어요.
순수했죠. 저는 그때가 좋아요. ‘언제가 좋았지?’라고 생각해보면 아침에 일어나서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 다 계시고, 별거 아닌 그냥 일상적인 일요일의 풍경이 생각나요. 그때가 제일 그리워요. <사랑이 뭐길래> 같은 주말 드라마, <짝> 이런 일요일에만 하는 드라마 다 같이 모여서 보고. 으하하하. 저 너무 옛날 사람이죠. 다 같이 모여서 깔깔거리면서 보던 기억이 너무 행복해요. 항상 그리워요. 다시는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순수함이잖아요. 저는 아날로그적인 걸 더 좋아하고, 스마트폰보다 편지 쓰는 걸 좋아하다 보니까 지금 이 시대를 쫓아갈 수가 없어요. 너무 빨라. 저는 면대면이 좋아요.
오롯이 저로서의 편안함? 저는 일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어서 작업하는 동안 내내 편안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지금 촬영은 다 마무리가 됐으니까 안녕의 선상에 들어온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음···, 사람이 아니어도 강아지한테도 정을 많이 느끼고, 헤어짐이라는 것 자체를 되게 힘들어해요. 그래서 조카들이 한 달 있다 갈 때도 가기 전부터 너무 싫어요. 그런데 한번 저희 친할머니, 제일 가까운 사람을 떠나보내고 나니까 표현을 훨씬 더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언젠가는 또 맞이할 순간인데 그때 후회할 것들을 남기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하게 돼요. 엄마랑 투닥거려도 사과하고, 매일 애정 표현하고, 사랑 표현하고. 감정에 솔직해지려고 해요. 어쩌면 그게 가족에게 하기 제일 어려운 일 같아서. 그래서 제일 많이 하려고 해요.
외로움 많이 타는 사람이에요. 맞아요. 그러니까 혼자 있는 것보다 북적북적 내 곁에 누군가가 있는 걸 좋아하고, 옛날도 자꾸 그리워하나봐요. 그런데 사람은 누구나 다 외로운 것 같아요. 그렇지 않아요? 대부분의 사람은 저를 외로움, 우울감, 이런 게 전혀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견디는 거? 잘 못해요. 하하하하. 알려주세요. 외로움 견디는 거. 그렇다고 나가서 친구들 만난다고 그 외로움이 채워지는 건 아니거든요. 가족들이 채워주지 못하는 외로움도 당연히 있는 거고, 사랑을 하고 있어도 외로울 때는 외로운 것 같아요. 그래서 그냥 저와 함께 늘 같이 있는 친구 같은 느낌의 외로움이에요. 예전에는 그 외로움이 ‘싫어, 안 외롭고 싶어’였으면 지금은 ‘나에게 외로움은 늘 있지. 같이 가는 거야’, 이렇게 친구처럼 있는 것 같아요. 이제는 나이도 찼고, 그러다 보니까 아, 내가 내면에 그런 게 있는 사람이구나, 바라봐주는 거죠. 인정을 하는 거죠. 그걸 ‘채워서 없애야지’ 하기보다는. 즐기게 되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인정하게 됐어요. 그런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