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은 역시나 거절의 뜻을 보였다. 은아는 한울이 자신의 손을 잡아 내리는 것을 말 없이 지켜보았다. 한울이 계속 이렇게 거부한다면 자신으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은아는 포개진 두 손을 물끄럼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
"....알고 있어."
하고 조용히 속삭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였다.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네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단지 바람일 뿐이었으며 누군가는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고 비웃을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한울이 먼저 마음을 열고 말해주지 않는 이상 은아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고. 은아는 어쩐지 한울이 앞으로도 절대 말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은아는 떨어지는 한울의 손을 따라 일어서는 한울을 올려다 보았다. 은아의 손은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설거지 하다가 어려운 거 있으면 언제든지 불러."
이윽고 한울이 부엌으로 향하면 은아는 소파에서 일어나 베란다 쪽으로 나갔을 것이었고. 말 없이 비 내리는 어두운 바깥을 응시했을 것이었다. 빗줄기는 그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한울은 부엌으로 가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 다른 사람이 설거지하는 걸 보았던 것처럼. 수세미에 세제를 묻히고 그릇을 닦는다. 그리고 물로 헹궈낸 뒤 식기 건조대 위에 올려놓는다. 생각보다 단순한 과정이다.
그릇을 닦으면서 한울은 생각했다. 마치 방금 자기가 한 말이 꼭... 자신이 아프다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아프지 않다, 라고 말하면 될 것을. 그러면서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나는 아픈가? 아파하고 있었는가? 지금 나는 아픈 상태인가?
상처 받았나?
무덤덤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제 생각 뿐이었던 걸까. 왜 아픈 걸까. 아직도 그 치들에게 기대하는 바가 남아있는 것인가.
어느 새 마지막 그릇을 헹구어내어 식기 건조대 위에 올려놓는다. 한울은 손을 닦고 부엌을 나왔다. 은아가 베란다에서 창 밖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 모습이 외로워 보인다고 생각된다면 자신의 착각일까. 한울은 은아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 은아의 옆에서 창에 등을 기대며 선다.
“삐졌어? 내가 설거지만 하고 갈 것처럼 굴어서?”
한울이 비스듬하게 은아의 쪽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한울은 방금보다는 평상시의 모습을 되찾은 것처럼 보인다. 조금은 여유로워 보이고 조금은 장난스러워 보이는 그런 모습.
어쩐지 이 모든 대화가 그냥 은아를 실없이 웃게 만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비도 많이 오니 그냥 자고 가라고 하고 싶었지만, 은아는 또 다시 거절 당할 거라 짐작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므로 대신 우산을 빌려줄 가능성도 열어놓으며 은아는 어떤 우산이 제일 크던가 생각하기도 했고.
"그래도 처음 해본 거잖아. 원래 뭐든지 처음이 제일 어려운 법이거든. 그런데 넌 처음 해본 설거지도 열심히 잘했으니까 칭찬하는 거지."
가만 보면 생긴 것과는 다르게 성실한 면이 많단 말이지. 반창고까지 붙여 양아치 내지는 악동의 모습이 완성된 한울을 보며 은아는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그래? 칭찬 스티커 10개 모으면 내가 소원 하나 들어줄지도 모르는데?"
그래서 장난스럽게 대답하며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그럴 것 같아!! 약속 있어서 나갈지도 모르지만? 병원도 갈까 말까 고민 중이기도 하고~ ><
실없이 웃는 은아에게 한울이 가볍게 물었다. 이미 여기까지 들어온 거 걱정을 주렁주렁 매달고 나가느니 차라리 소파에서 자고 내일 아침에 나가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판단이 선 탓이다. 들어오기 전에는 이건 아니다 싶었지만 막상 들어오고 나니 별 것 아니다는 판단이 선 것일지도 모르고.
“칭찬에 후한 편이시네.”
하면서 한울이 픽 웃었다.
“딱 끌리는 소원이 생각나는 건 없는데. 예를 들면?”
한울이 장난스럽게 말하며 부엌을 나와 거실로 향했다. 어느새 집이 익숙해진 듯 소파에 털썩 앉는다.
물론 설거지를 이 나이에 처음 해봤다는 게 자부심을 가질만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은아도 진심으로 하는 말은 아닐터였다.
“계약 기간 끝나기 전엔 다 줄거지?”
하며 한울이 묻는다. 물론 안 줄 수도 있지만. 은아의 말이 장난임을 알고 있기에 가벼운 어투다.
“오케이ㅡ.”
라고 말했지만 한울은 따로 TV를 틀지는 않았다. 그저 소파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나름 은아에게 장난을 칠 수 있을 정도로 기분이 나아진 상태였다. 비를 맞고 있었을 때는 확실히 상태가 말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평소라면 이정도까지는 아니었을 텐데. 이게 다 비가 와서 그렇다.
그리고 은아한테 위안받고 있는 자신이 조금 역겹기도 하다.
/요즘 힘든 일이 있는가보네 ㅠㅠㅠㅠㅠ(토닥토닥) 오늘 내일 푹 쉬고 어떤 문제이든 잘 해결되길 바라 ㅠㅠㅠ!!!! 늘 응원하고 있으니까!!!
한울은 ‘너가 그렇게 생각하는 건 착각이다’라는 내용을 어떻게 행동으로 알려줄 수 있는지에 대해 잠깐 생각했다. 영 짚히는 건 없었지만.
한울은 칭찬 스티커를 모으겠다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일단 기억은 해두었다. 왠지 게임처럼 다가오기도 했고 말이다. 아니, 이거 새로운 길들이기인가?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나 안 자. 아직 졸리지도 않...”
한울은 눈을 감은채로 말을 하다가 눈을 떴을 때 보이는 은아의 모습에 잠시 말을 먹은 채 눈을 깜빡였다.
“...고. 너... 잠옷 귀엽네.”
라고 무의식적으로 말을 뱉고 말았다. 아니, 놀라서 그랬다. 잠옷으로 갈아입을 거라곤 생각 못했어서. 그런데 귀엽기까지.... 아니. 그게 아니라. 얘는 경계심이라는 게 아예 없나? 남자애를 집에 불러서 재우는데 그렇게 무방비해도 되는 거나고. 이거 진짜 고양이 취급인가?
/다시 건강한 은아주라니 축하해~~!!!! 아프지 말자 ㅠㅠㅠㅠㅠ 한울이는.... 한울이니까......(?) 좋은 주말 오후야~~!!! 푹 쉬고 풀충전하자~~!!
하나하나 구체적인 예들이 은아의 입에서 익숙한 듯 자연스럽게 나왔다. '나는 너를 싫어하니까 착각하지 말고 마음을 접어라.'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에는 이런 방법이 제일 확실할 테니까.
이윽고 한울의 잠옷이 귀엽다는 말에 이번에는 은아가 놀라 눈을 깜빡였다. 자기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건가, 이거 꿈인가, 하는 생각들이 짧게 지나간 후, 은아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고.
"아, 안 귀엽거든? 그냥 할인하니까 어쩔 수 없이 산 거야...!"
은아는 팔짱을 끼고 일부러 새침한 표정을 지어내려고 하며 대꾸했다. 귀여운 걸 좋아하는 은아의 취향이 잔뜩 들어갔음에도 한울한테 솔직하게 인정할 수는 없었고.
"시간이 늦었으니까 자려면 잠옷 입는 건 당연하잖아...!"
은아가 잠옷으로 갈아입은 이유는 그렇게 매우 단순한 것이었다. 한울이 남자아이이기는 해도 딱히 자신을 이성으로 보지 않을 거라는 확신도 있었고.
/고마워~~!!! >< 한울주도 아프지 말자!!(보듬) 한울주 말대로 오늘은 푹 쉬면서 뒹굴뒹굴만 해야지~ㅋㅋㅋㅋㅋ 아니 한울이는 어째서......ㅠㅠㅠㅠ 한울이가 자기혐오를 멈추게 하기 위해 은아가 귀여워진다(대체) 사실 은아 토끼 캐릭터 무늬가 가득한 잠옷도 있었는데 한울이가 있으니까 일부러 나름 제일 무난한 거(덜 귀여운 거) 입은 거래ㅋㅋㅋㅋㅋ
"농담이야. 내가 정말로 너를 그렇게 생각할 리가 없잖아. 너를 정말로 그렇게 쓰레기로 봤다면 내가 이렇게 너 보고 우리 집에 오라고 했겠어?"
한울의 생각을 눈치챘는지 어쩐지, 은아는 웃으며 가볍게 대답했다. 나열된 예들은 경험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너 그렇게 나쁘게 안 보고 있어."
은아는 진심을 툭 내뱉었다. 가만 보면 얘는 은근히 스스로를 낮춰 보는 경향이 있단 말이지. 그래서 은아는 이번 기회에 한 번 더 확실하게 이야기했다. 나는 너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아. 너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하아.... 알겠어."
이윽고 은아는 달아올랐던 얼굴을 차츰 가라앉히며 한숨을 쉬었다. 야행성이구나, 하는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은아는 한울의 옆 자리에 다시 앉았고.
"뭐 볼 건데?"
습관처럼 자연스럽게 쿠션을 집어들고 품에 껴안으며 한울에게 물어보았다. TV에는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 다행이야!! 한울주 전보다 밝아보여서 나도 기쁘다구~~!!! ><(쓰담) 히히 오늘 같이 푹 쉬면서 뒹굴뒹굴하자~ 햅삐 일요일!! 나중에 둘이 진짜 사귀기 시작한 후에 한울이가 또 자기혐오 하려고 하면 은아가 "귀여운 나 보고 멈춰!" 하는 거 생각났어ㅋㅋㅋㅋㅋㅋ(대체) 창피해 죽겠지만 새빨간 얼굴로 뻔뻔해지기ㅋㅋㅋㅋ 한울이를 위해서라면 뭔들 못할까! 은아도 나름 한울이 신경 쓰고 있다구ㅋㅋㅋㅋㅋ 일코처럼 숨기기(?) 이미 한울이는 은아가 귀여운 거 좋아한다는 거 알고 있지만ㅋㅋㅋㅋ
한울이 진심으로 그런 거 아니었냐는 듯 물었다. 안쓰러워 보이는 쓰레기를 주워서 자기 쓰레기통에 버리는 은아를 쉽게 상상해본다.
“그건 네가 계약을 지키는 내 모습만 봤기 때문이겠지.”
원래 한쪽 면만 보면 그렇게 되는 법이었다. 한울은 제 스스로를 돌아봤을 때 평균보다 나쁘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양심이나 법이나 그딴 것 생각 없이 제멋대로 살아왔고. 지금 잠시 얌전해진 모습을 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게다가 자신이 현재 은아를 도와주는 상황이기도 하고 말이다.
한울은 은아가 옆자리에 앉자 리모컨을 은아에게 주었다.
“아무거나. 네가 졸지 않을 만한 걸로. 나야 뭘 봐도 잠들진 않을 것 같은데. 너는 아무래도 잘 시간인 것 같거든.”
/맞아 해피한 일요일이야~~ 아니 회사 다니는 사람들은 이렇게 행복한 한주를 보내고 있었따니 교대근무자로서 엄청 신세계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귀여운 나 보고 멈춰!<< 라니....... 너무 귀여워........ 한울이 잡생각 싹 사라질듯 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은아 최고다......(힐링) 귀여운 거 안 귀여워하는 척 하는 게 귀엽잖아~~
은아는 되려 어이 없다는 듯 대꾸했다. 아무래도 한울은 쉽게 믿지 못할 것 같았지만. 어쩌면 은아 스스로는 깨닫지 못해도 한울의 말이 맞을 수도 있었고.
"그럴지도 모르지. 그래도 원래 누군가에겐 좋은 사람이 누군가에겐 나쁜 사람이 되는 것처럼 사람은 복잡하니까. 지금 계약 중인 상태에서 나는 너 나쁘게 안 보고 있어."
은아는 한울의 답을 예상한 듯 담담하게 대답했다. 아무리 말해도 한울은 자신의 말을 믿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은아는 차분히 자신의 생각을 전했고.
".......그러면 무서운 것 밖에 생각이 안 나는데..."
은아는 리모컨을 받아들고서는 조용하게 중얼거렸다. 이리저리 넘겨보는 공포 및 스릴러 장르의 영화 포스터마다 은아는 괜스레 긴장하게 되었고.
"나 너 또 끌어안을지도 몰라."
그건 일종의 경고이자 예언이기도 했다. 쿠션만으로는 여전히 무서웠으니까.
/ㅋㅋㅋㅋㅋ큐ㅠㅠㅠ 한울주.......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던 거야.......(보듬) 이제 한울주도 행복한 매주를 보내자~~!!!! 한울이 잡생각 싹 사라지는 거 너무 귀엽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머릿속에 은아밖에 안 떠오르게 해주겠어!!(대체) 한울이는 귀여운 거 별 감흥 없다고 그랬지만 나중에 한울이도 귀여운 거 좋아하게 될까?
원래 당시에는 잘 못 느끼다가 지나고 나서 깨닫게 되는 힘듦이 많은 것 같더라....ㅠㅠㅠㅠ 한울주 불지옥에서 그간 고생 많았다구(보듬) 이제는 천국을 즐기자~~!!! >< 한울이의 귀여움 기준에 은아가 들어간 거 웃기고 귀엽다ㅋㅋㅋㅋㅋ 나중에 진짜 사귈 때 은아가 그거 알고 나서 "그럼 너 나한테도 별 감흥 없어?" 하고 물어보게 하고 싶음(?)
은아는 한울이 한숨을 내쉬자 눈썹을 찌푸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갑자기 여기서 공부가 왜 나와? 은아는 한울의 사고 과정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한울이 이어서 답을 말해주자 은아도 가만히 한울의 설명을 들었고. 은아의 생각도 한울의 생각을 차근차근 따라갔다. 이윽고 은아는 다시금 동그래진 눈으로 한울을 올려다 보았고.
"그럼 너 내가 지금 여자로 보여?"
다시금 한울에게 되물었다. 사실 그게 제일 놀라웠다. 그제서야 은아는 한울의 말이 경고였음을 깨달았고.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쩐지 조금 기분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심장이 작게 쿵쿵 울리는 것만 같았다. 은아는 괜히 민망함에 달아오른 양 볼을 쿠션에 누르고,
"지금 경고 해주는 거야? 나 잘 때 내 방 들어올 거라고?"
하고 일부러 장난스럽게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민망함을 숨기려는 의도였다.
"같이 영화 보자며. 나도 지금 너 때문에 잠 안 오니까 영화 같이 봐."
짐짓 태연히 말했지만 사실이기도 했다. 어차피 지금 이대로 방에 들어가봤자 잠은 안 오고 오늘 밤 내내 한울 생각이 날 게 뻔했다. 방금 전 한울이 말했던 것처럼. 그렇다면 차라리 영화라도 보는 게 더 나을지도 몰랐다.
전에 너무 고생을 했었으니까...ㅋㅋㅋ큐ㅠㅠ 그래도 나름 할만 하다니 다행이라구~~ 한울주라면 잘 적응할 줄 알았어!!! ><(보듬) 한울이 생각? 신념? 확고한 거 너무 귀엽다ㅋㅋㅋㅋㅋㅋ 한울이는 귀엽다고 생각하는 것에 감흥 있으면 왠지 놀리면서 귀여워 할 것 같은 느낌이야ㅋㅋㅋ
헉 진짜? 난 특정 짓지 않고 그냥 생각난 대로 적은 거였거든ㅋㅋㅋㅋ 한울주가 생각한 건 어떤 거야?
“그럼 네가 여자지. 남자야? 너네 아버지는 너한테 아빠와 동생을 뺀 남자는 다 믿으면 안 된다고 말 안하시디?”
한울은 은아의 경계심을 높여둬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러다 다른 사람한테 큰일이라도 당하겠다 싶은 탓이다. 작게는 사기부터 크게는 여러 강력 범죄 같은. 하지만 은아의 반응은 경계심이 높아진 것 같지 않아 보였다. 농담을 던지는 것 보니 말이다.
“기본적인 사항을 말해주는 거잖아. 외간 남자 집에 들이지 말고, 어쩔 수 없이 들였으면 경계를 하라고. 무방비하게 굴지 말고.”
한울은 이상한 쪽으로 반응하는 은아의 말에 한숨만 나온다.
제 말은 귓등으로 들은 건지. 계속해서 영화를 보자는 은아의 말에 한울은 포기하고 “이거?” 하면서 은아가 말한 포스터를 가리켰다.
/한 달 정도 하니까 어느정도 적응은 되네~ 내일 출근하는 건 싫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귀여운거야? 너무 T발놈이진 않고? 확실히 귀여우면 놀리는 타입이긴 하지. 그럼 더 귀엽잖아. 앗 어바웃 타임 생각했었어. 너무 옛날인가....(흐릿) 작중에는 그냥 모브 영화라고 생각하자 ㅋㅋㅋㅋㅋㅋ
은아는 한울의 반응에 어쩐지 웃음이 새어나왔다. 가끔 한울을 보면 의뭉스럽게 굴며 속을 숨기고 있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었는데, 지금 이렇게 짜증을 내는 한울을 보니 오히려 솔직해진 것 같아 보였기 때문에. 이제서야 진짜 그 나잇대 또래 남자아이처럼 느껴져, 은아는 이런 한울의 모습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알았어, 알았어. 조심할게. 외간 남자 집에 들이지 말고, 들였으면 무방비하게 굴지 말고 경계하고."
다시 가볍게 농담을 던졌다. 사춘기 남자아이를 놀리는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의뭉스럽게 나오던 것보다는 이렇게 알기 쉬운 모습이 어쩐지 진짜 한울 같아서 더 좋았고. 마음이 오히려 편해지는 기분이었다. 애초에 은아는 원래 모두를 경계하는 편이고 한울이 유일한 예외였지만. 오히려 은아가 이렇게 경계하지 않고 편하게 있는 사람은 한울이 유일하다는 것을 아마 한울은 몰랐을 것이었고.
"응, 그거."
한울이 포스터를 가리키자 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실제로도 비가 오고 있으니까. 그래서 보고 싶어. 이 포스터 안에서도 비가 내리니까."
한 달 동안 잘 해냈으니까 앞으로 차차 더 잘 적응할 거야!! >< 나도 월요일은 싫다.......ㅠㅠㅠㅠ 한울이는 T여도 귀여워ㅋㅋㅋㅋㅋㅋ 지금 답레도 사춘기 남학생이 틱틱대는 것 같아서 넘 귀여움ㅋㅋㅋㅋㅋ 한울이가 귀여우면 놀리는 이유를 알 것 같달까....(대체) 앗 어바웃 타임!! 보고 싶었는데 아직 못 봤어ㅋㅋㅋㅋ 근데 포스터는 알아! 은아주도 옛날 사람이라구~~~ >< 응응 작중에는 모브 영화라고 생각하자ㅋㅋㅋㅋㅋ
은아의 말은 생각보다 한울의 속을 더 긁었다. 물론 은아는 한울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경계심이 많은 애였고 외간 남자를 집에 들일만한 애는 아니었으나, 한울은 은아의 이런 모습만 보다보니 모두에게 이럴 것처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자신이 아닌 다른 남자일 가능성도 자연히 상상하게 돼버리고. 그러니 자연히 짜증이 났다.
결국 한울은 리모컨을 내려놓고 순식간에 은아의 양 손목을 잡은 채로 소파에 내리 눌러 눕혔다. 자연히 한울은 그 위에 올라타게 되었고. 은아에게는 아주 순식간에 일어난 일일 터였다. 물론 소파 위였기 때문에 신체적인 충격은 없었겠지만.
“예외? 그럼 내가 어떤 짓을 해도 이해하게? 가짜긴 해도 남친이니까.”
한울이 은아의 코앞에서 으르릉 거리듯 낮게 말했다. 붉은 눈빛은 위험함을 품고 있었고 장난기는 없었다. 한울은 은아가 너무나 풀어졌다고 생각했다.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은 자신이라는 걸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겁만 줄 생각이다. 아니, 그럴 생각인데 또 모르지. 오늘 이후로 계약은 파기될지도 모른다.
창 밖에서는 끊임없이 빗소리가 들려온다.
/흠... 혹시 불쾌하다면 당근을 흔들어줘! 다시 써올테니! ㅋㅋㅋㅋㅋㅋㅋㅋ 한울이를 귀여워 해주는 건 은아와 은아주밖에 없지 않을까? 사실 사춘기 남학생 맞다구~~!!! 아직 못봤다고 하기에는 너무 오래된 영화라 ㅋㅋㅋㅋㅋㅋ 포스터 왠지 기억이 남는 편이야. 이상하지. 은아주도 옛날 사람이라니 동질감 든다 히히
영화는 어떤 내용이려나 기대하며 TV 화면을 보던 은아는 한울이 리모컨을 내려놓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이윽고,
"어?"
하는 소리와 함께 은아의 시야가 흔들렸고. 은아의 몸은 어느새 양 손목마저 붙잡힌 채 한울 밑에 눕혀졌다. 은아의 회색 머리카락이 소파 위에 흩어지고, 분명히 영화 포스터를 보고 있던 은아의 홍매색 눈동자에는 한울의 붉은색 눈동자만이 가득 들어찼다. 그 순간까지도 자신에게 일어난 상황을 인지하지 못해 멍한 얼굴로 눈만 깜빡이던 은아는 뒤늦게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알아차렸고.
"어, 음.... 저기, 지금 좀 많이 가까운 것 같은데...."
당혹스러움과 왠지 모를 긴장감에 은아의 미소는 한없이 조심스럽고 어색해졌다. 이렇게까지 가까운 적은 없었는데. 빗소리를 따라 심장이 깊은 곳에서 쿵쿵 울렸다.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만 같았다. 지금 한울의 모습은 마치 고삐가 풀리기 직전의 맹수처럼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으니까. 자신에게 차갑게 선을 긋던 한울은 종종 봤어도 이런 모습의 한울은 한 번도 본 적 없었는데. 눈빛만으로도 잡아먹히는 먹잇감이 된 것 같아 은아는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은아는 일단 손목이라도 빼내려 슬쩍 붙잡힌 손목을 움직이려고 했다.
/ 하나도 안 불쾌하니까 걱정 마~!!~!!! >< 오히려 전개 예상이 하나도 안 되어서 흥미진진해ㅋㅋㅋㅋㅋ 전에 돌렸던 일상 생각도 나면서 그 때랑 둘의 반응이 좀 다른 게 재밌기도 하고? 그치만 귀여운 걸 어떡해ㅋㅋㅋㅋㅋㅋ 그럼 지금은 자극 받은 사춘기 남학생인 건가?ㅋㅋㅋㅋ(맛있음) .......그냥 아직 못 봤다고 해줘!!!!!ㅋㅋㅋㅋㅋㅋㅋ(땡깡)(??) 마자마자 포스터 왠지 기억에 남더라. 아마 빗속에서도 엄청 행복하게 웃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보는 내가 다 마음이 따뜻해져. 히히 우리 같이 옛날 사람~ 라떼는 말이야 한번 가~~?ㅋㅋㅋㅋㅋ(대체)
그제야 은아에게서 긴장감이 감돈다. 조심스러운 목소리와 어색한 미소에 한울은 조금 만족감을 느꼈다. 우위를 점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한울에게도 독이기도 했다. 가까운 거리감. 손아귀에 닿은 은아의 여린 손목과 체온. 가까이에서 느껴지는 은아의 채취. 충동적인 행동으로 인해 차라리 공포영화를 보고 껴안기는 게 나을 정도로 오감이 자극되고 있었다.
“대답. 이해할 거냐고 물었어.”
하지만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충동이란 참 무서운 감정이다. 순식간에 선을 넘어버리니까. 하지만 먼저 선을 넘은 건 은아였다. 자신은 계속 경고를 해왔고 그걸 무시한 것은 그쪽이었으니까. 은아는 손목을 움직이려 했지만 단단히 잡힌 손아귀에 흔들림도 없었다. 오히려 그런 행동이 한울을 더 자극할 뿐이었고.
/나도 이런 장면 한 번쯤 해보고 싶었달까. 은아가 자꾸 한울이를 놀리니까 ㅋㅋㅋㅋ 확실히 장소의 문제도 있다고 봐. 아무래도 그렇지? 부정하진 않겠어 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데 생각보다 포스터랑 내용이 딱 들어맞다는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 포스터가 잘 만들어지긴 한 것 같아. 진짜 재밌었는데 지금은 가물가물하지만. 라떼는 말이야 ㅋㅋㅋㅋㅋㅋㅋ
이상했다. 달라진 건 자세와 분위기밖에 없는데도 은아 역시 갑자기 온 몸의 감각이 예민해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아래로 숙여진 한울의 머리카락에서는 익숙하지만 어딘가 낯설게 느껴지는 샴푸향이 났고, 자신의 얇은 손목을 감싸쥐고도 남는 한울의 손은 너무 뜨겁게 느껴졌다. 게다가 창 밖을 두드리는 빗소리보다도 서로의 숨소리가 더 크게 다가오는 것 같았고. 은아는 얼굴이 화끈거리고 눈이 빙빙 도는 느낌이었다.
"이, 이해하면 어떡하고, 이해 안 하면 어떡할 건데....?"
평소의 그 잘 돌아가던 머리도 지금은 사고하기를 멈춘 듯, 횡설수설하는 물음이 한울이 요구하고 있는 대답 대신 나왔다. 그러나 어색한 미소나 장난으로 슬쩍 넘겨보려 해도 그냥 넘어갈 분위기가 아님을 은아는 직감했고. 슬쩍 움직여본 손목은 미동조차 없는 한울의 단단한 손 아래 소용이 없었다. 결국 은아는 고개조차 돌리지 못한 채 한울을 올려다 보았고. 당혹스러움과 긴장감이 맴도는 은아의 홍매색 눈동자가 겁 먹은 순한 토끼 마냥 한울의 붉은 눈동자를 마주했다. 심장이 쿵쿵 울렸다.
/ 진짜 장소랑 분위기가 무서운 것 같아ㅋㅋㅋㅋㅋ 자극 받은 사춘기 남학생 한울이랑 한울이가 이렇게 나올 줄 모르고 놀린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은아........(맛있음) 둘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ㅋㅋㅋㅋ 아 진짜? 포스터랑 내용이 딱 들어맞지 않다니 무슨 영화일지 더 궁금하다ㅋㅋㅋㅋㅋ 시간 잡고 한 번 볼까..!! 라떼는 말이야~~ 놀토가 있었고~ 우유 급식 당번이 있었고~ 떼잉 쯧(???)
그러니까 은아야.... 내가 이 새끼 집에 들이지 말자고 했잖아.....(?) 둘이 어떻게 될지는 은아에게 달린 것 아닐까?(네?) 아니 딱 들어맞지 않은 건 아닌데. 아닌가? 진짜 오래되어서 기억이 잘 안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은아주 나랑 진짜 같은 세대인데? 우리 학교는 우유 수요일에는 맛있는 우유 나왔음. 딸기우유나 초코우유 같은 거.
ㅋㅋㅋㅋㅋ비 맞은 새끼 고양이인 줄 알고 들여왔는데 거대 늑대였어........(대체) 한울이의 의사는 어딨어?!ㅋㅋㅋㅋㅋㅋ 사실 어느 쪽이든 재밌을 것 같아서 쉽게 못 고르겠다.......... 정 모르겠으면 다갓님께 맡겨봐야지~~ >< 그 정도로 오래되었구나..!!ㅋㅋㅋㅋㅋㅋ 그러면 기억이 잘 안 날만 하지. 내가 보면 대신 알려줄게(뻔뻔) ㅋㅋㅋㅋㅋㅋ진짜? 신기하다!! 잘 맞는 이유가 또 있었네~~ >< 우리 학교는 딸기우유 초코우유는 없었는데 대신 금요일에 우유 대신 요구르트 주고 그랬던 것 같아. 초코우유는 제티 가져가서 만들어 먹고 그랬었어ㅋㅋㅋㅋ 추억이다ㅋㅋㅋ 점심시간!! 한울주도 점심 맛있게 먹고 오늘도 화이팅하자~~ 늘 응원해~~!!~!! ><
은아는 한울이 손목을 놓아준 후에도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 눈만 깜빡였다. 한울의 눈치를 살피듯 이리저리 눈을 굴리던 은아는 사나운 분위기가 누그러졌음을 감지하고 긴장을 조금 풀었고.
"배우기는 했는데.... 너무 당황해서 머리가 안 돌아갔어. 그리고 너는 왠지 위협만 하고 진짜로 그럴 것 같지는 않아서."
뺨이 꼬집혀도 은아는 내심 안심한 듯 웃어버렸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비록 놀라고 겁을 좀 먹긴 했었어도 한울은 자신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무의식적으로 있었던 것일까. 지금만 해도 한울의 꼬집기는 전혀 아프지 않았으니까. 상대방이 한울이 아니었다면 은아는 한울이 말한대로 차갑게 정색하며 밀쳐내 버렸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상대방이 한울이었기 때문에 은아는 진정시키기를 선택했고.
이어진 한울의 말을 들으며 은아는 말 없이 눈을 깜빡였다. 조금씩 감정이 진정되니 사고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한울의 말을 곱씹던 은아는 이윽고 어느 한 결론에 다다랐고.
"너 혹시... 지금 나 걱정하는 거야?"
은아는 한울을 올려다 보며 물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 없는 결론이었지만, 그것 외에는 딱히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왜 너한테 그런 연습을 해야 하는데? 너한테 딱히 그런 말 하고 싶지 않은 걸."
애초에 다른 사람들하고는 이런 상황에 놓이기 전에 은아가 먼저 벽을 치고 거리를 두었을 것이 뻔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참 이상했다.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은아는 순간 한울이라면 괜찮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버렸고.
은아는 여전히 누워있는 상태로 한울을 물끄럼 올려다 보았다. 거리는 여전히 가까웠고, 한울은 제 바로 위에 있었다. 이윽고 은아는 한 손을 천천히 움직였고. 은아의 손바닥이 반창고가 붙어있는 한울의 뺨을 부드럽게 감싸려고 하며,
"나, 이미 다친 애한테 또 모질게 굴 정도로 나쁜 애는 아니야."
하고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사실 한울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었다. 은아는 상처를 주는 말을 할 위인이 못 된다는 것을. 차라리 한울을 안아주었으면 안아주었지, 밀쳐내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
은아가 위협만 하고 진짜로 그럴 것 같지 않았다고 말하자 한울은 한쪽 눈썹을 들었다가 내리며 기분이 언짢은 티를 내었다. 누구 속은 모르고 헤헤 웃는 은아의 모습도 조금 짜증나기도 했고. 게다가 지금 걱정하는 거냐며 묻는 물음은 순진하기 짝이 없다.
“걱정? 누가 걱정을 이딴 방식으로 해?”
걱정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하는 게 아닌가? 이어지는 은아의 말들도 한울이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사나운 기색을 줄였다고 이내 안심하는 표정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손을 뻗어오는 것도. 긴장이 풀린 채로 나직하게 속삭이는 것도. 그런 말을 하고 싶지 않다, 모질게 굴고 싶지 않다. 그 말은 지금 이런 상황에서 할 말이 아니다.
한울은 이런 걸 예상한 게 아니었다. 겁을 주고 은아에게 조금은 경계심을 주려 했을 뿐이었다. 언제부터인지 전체적인 거리감이 부쩍 가까워졌다고 느꼈고. 오늘은 더더욱 그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 밀어붙이면 당연히 거부 반응이 나올 거라 생각했다. 모든 것이 제 생각과 다르게 움직여서 그럴까. 한울의 이성은 이 상황을 원점에서 재검토 해보라고 한다.
뺨에 부드러운 손바닥이 닿는다. 한울은 그것에 집중하기 보다 은아의 속내를 짐작하려 눈을 가늘게 뜬다.
“너 말야. 여유있네. 지금 이 거리감 불편하지도 않아 보이고.”
한울은 뺨에 닿은 은아의 손을 제 손으로 잡아 미끄러뜨리며 그 손바닥에 입술을 묻었다. 은아가 손을 빼려면 충분히 뺄 수 있을만한 정도의 세기였다.
“이런 상황 익숙해 보이지도 않는데.”
한울은 은아의 손을 놓고 좀 더 은아에게 거리를 좁히다가 은아의 표정에서 다시 긴장감이 느껴질 때쯤의 거리에서 멈추려고 했다. 전에는 그저 정은아라니까 하고 넘어갔던 거리감이 이쯤 되면 슬슬 이상하다.
“보통 불쾌해 해야 정상이잖아. 저절로 ‘그런 말’이 나오는 거라고. 상대방 사정 고려할 거 없이.”
/한울이 붙잡고 거의 두 시간 고민한 답레 큐큐 확실히 극F와 극T의 만남이라고 생각해버렸다... 진짜 은아의 반응을 나도 한울이도 전혀 예상치 못해서 ㅋㅋㅋㅋ 너무 흥미진진해. 일단 답레만 두고 누울게.....(기력 다씀)
은아는 눈을 깜빡이며 되물었다. 은아는 오히려 반대로 기분이 언짢아 보이는 한울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안 돼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 하는 걸 연습시키려는 게 걱정이 아니라면 뭐 때문이지? 특유의 걱정 방식인가, 하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도 저런 한울의 모습을 보니 은아는 오히려 긴장이 풀렸다. 짜증을 내는 모습이 방금 전처럼 밀고 들어오는 모습보다 훨씬 더 익숙했으니까.
"익숙하지 않기는 한데.... 여유 있다기보다는 지금 그냥 좀 많이 가까운 것 같아서 약간 민망한 느낌? 아, 잠깐, 간지러워..!"
손바닥에 한울의 입술이 닿자 은아는 손을 움찔거리며 웃다가 손을 뒤로 뺐다. 어쩐지 감각이 예민해진 것 같던 게 아무래도 착각이 아닌 듯 싶었다. 찰나였지만, 한울의 부드러운 입술이 닿았던 부분이 낯설도록 뜨겁고 간질거리는 느낌이었고. 이윽고 한울이 다시 가까이 거리를 좁히자 은아는 반사적으로 움찔했다. 다시 어색한 긴장감이 올라왔다. 이런 모습은 익숙하지 않은데. 그러나 이어진 한울의 말에 은아는 잠깐 생각에 잠겼고.
".....솔직하게 말해도 돼?"
은아는 긴장을 누그러뜨리고 천천히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나는 네가 지금 일종의 화풀이를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고양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더 까칠해지는 것처럼. 너의 정확한 사정은 잘 모르지만 그래도 오늘 너 되게 위태로워 보였거든. 그래서 좀 놀라긴 했어도 그다지 불쾌하지는 않아. 그러니 '그런 말'도 안 나오는 걸테고."
얼마나 힘들면 그렇게 선을 긋고 거리를 두던 애가 나한테 이러는 걸까, 하고 생각하니 지금 이 순간에도 은아는 한울을 차갑게 대할 수 없었다. 결국 은아는 한울을 데려온 처음부터 지금까지 오직 한울의 사정을 고려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었으면 나도 당연히 불쾌해했을 거야. 아마 지금 뭐하는 거냐고 화내고 밀치고 했겠지. 근데 너는 불쾌하지 않네."
한울이랑 둘이 머리 싸맨 거야?ㅋㅋㅋㅋㅋㅋㅋ 둘이 진짜 극F와 극T지ㅋㅋㅋㅋ 둘이 확고하게 정반대라 더 흥미진진한 것 같아. 은아 반응 예상치 못한 거였구나..! 나는 한울이 반응이 더 예상치 못했는데..!!ㅋㅋㅋㅋ 둘이 어떻게 되려나~!! 나도 기력 이슈로 답레 쓰다가 자버렸다.....한울주도 오늘도 힘내자~~!!!! 늘 응원해!!! ><
아무 것도 모른다는 듯 순진하게 눈만 깜빡이는 은아의 모습에 한울은 조금 허탈한 기분이었다. 실제로 까딱하면 그럴 수도 있었고. 그럴 마음도 없었다고 할 수 없었다. 걱정이라기에는 욕정에 가깝지 않나 싶은데.
손을 빼고 움찔하던 은아는 생각하더니 이윽고 천천히 말을 뱉었다. 가까운 거리에서 한울은 은아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니, 들을 수밖에 없었다. 솔직하게 말해도 되냐는 질문 이후에 나온 말들. 한울은 그대로 멈출 수 밖에 없었다.
화풀이?
그 단어가 한울의 머릿속에 꽂히듯 박혔다. 한울은 순간 버퍼링 걸린 것처럼 생각에 빠졌다. 순식간에 자신의 감정과 행동이 리플레이 되었고. 한울은 잠시 인상을 찌푸리더니 이내 힘이 빠진 듯 스르르 은아의 위로 무너져 내렸다. 그 아래 깔린 은아는 조금, 아니 꽤 무거웠을지도.
“...최악이네.”
한울은 소파에 얼굴을 묻은 채로 중얼거렸다. 온전히 그 말이 맞다곤 할 순 없었지만... 그렇다고 틀린 말도 아니었다. 한울은 잠시 그러고 있다가 은아를 끌어안고는 몸을 틀었다. 한울의 등이 소파 등받이에 닿고 은아는 한울의 가슴팍에 코를 박고 있게 된 것만 빼면 한울이 누르던 무게에서 해방되었을 것이었다.
“...그야 넌 나를 비 맞은 고양이 정도로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렇지.”
한울이 힘이 빠진, 조금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은아의 불쾌하지 않다고 한 말에 대한 느즈막한 답이었다.
아니 한울이는 냅두고 나만 머리를 싸맨 거지. 원래 양 극단은 통하는 게 있다고 했으니 그런 걸지도....? 은아가 한울이의 정곡을 찔렀어.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얘가 왜 이렇게 감정적인가 생각했더니 확실히...... 은아와 은아주에게 감탄했다. 어제도 수고 많았어~~ 오늘도 고생했구~~ ㅋㅋㅋㅋ 나도 어릴 적에 우유에 제티 타먹고 그랬던거 기억난다. 흰우유 맛없잖아. 근데 요즘엔 우유 급식 안하는 거야?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