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6732085> [All/이능/대립] 블랭크 = 05 / 푸른 나비 :: 787

◆kO0rkvnhXo

2023-01-18 20:05:40 - 2023-02-06 03:07:23

0 ◆kO0rkvnhXo (zzHZDLeMwA)

2023-01-18 (水) 20: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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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자

468 나인/일상 (5w4D47MkhE)

2023-01-24 (FIRE!) 01:05:26

아이는 새빨간 불길 속에 서 있었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반은 금이 간 난간을 잡고는 여상하게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것이 위태롭기 짝이 없었다.

아, 이건 꿈이구나. 지독한 악몽인 동시에 아이를 기억할 수 있는 마지막 기억의 끝자락이기도 했다.

이미 훌쩍 커버려 성인이 다 된 그가 젖은 눈빛을 하며 아이의 앞으로 성큼 걸음을 내딛는다. 기척을 읽은 아이는 고개를 돌려 그와 시선을 맞추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속눈썹이 긴 눈이 사르르 접히고 검붉은 입술이 그림같이 반듯한 미소를 그렸다.
사랑스럽기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천사 같은 얼굴 위로 광기와 같은 것이 스쳐 지나가고 두 뺨 위로 머문 홍조가 아이의 기분을 대변했다.

'어서 와.'

소녀와 소년 그 어딘가의 중성적인 아이가 그의 볼게를 잡으려 두 손을 뻗어왔다.
그에, 그는 타 죽더라도 결국 해를 갈구하고 마는 개처럼 뻗어진 체온을 외면하지 못하고 그저 쓰다 담 받고 싶은 개처럼 한쪽 무릎을 꿇고 목을 길게 빼 아이의 의지대로 그리 무기력하게 뺨을 내줄 뿐이다.

비릿한 피 냄새. 누구의 것일까. 아이의 손길이 닿는 족족 진득한 핏물이 길자국을 내며 면접을 넓혀나간다. 피비린내가 더 강하게 올라왔다. 이내 쿡쿡, 목울대로 넘어가는 웃음소리가 그의 머리 위로 선명하게 내려앉았다.

'잊지 마.'

아이가 그의 어깨를 밀어냈다. 때가 되었다는 듯 멀어지는 아이의 손을 그는 말없이 응시했다. 어딘가 여상스러운 아이의 말투는 어르고 달래듯 달콤하기 그지없어서. 끝을 알고 있는 지금의 상황과 지독하리만치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지 마. 어느새 어린아이가 된 나인이 사색이 된 얼굴로 멀어지는 아이를 향해 달음박질친다. 그럼에도 거리는 좁혀지지 않고 더욱더 멀어졌다. 마음 한편에서 불안감과 초조함이 공존하고 그럴 리 없다고, 일어나지 않을 일을 먼저부터 괴로워 하며 나인은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지금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고 후회하며 그렇게 괴로워하렴.'

가증스럽다는 듯 싸늘하게 일갈한 아이가 빨간 화마 속으로 사라진다. 어찌할 틈도 없이. 빠르게 사라지는 가냘픈 등을 나인은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곤 불같은 화마가 저마저 삼켜버리며 그대로 의식이 끊겼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싸늘하게 식은 침대 위였다.

.
.
.

시내에서도 상당히 떨어진 위치. 아름다운 위용을 자랑하는 고딕 양식의 대성당이 숲과 조화를 이루며 세워져 있다.
그 뒤편을 잘 살펴보면 작은 정원이 딸린 2층 주택이 보일 것인데 성당의 후원을 받고 있는 보육원으로, 바로 그가 방문하게 될 장소였다.

성당만큼의 임팩트는 없지만 아담하게 지어진 보육 시설은 복지가 꽤 좋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소문의 출처는 불분명했지만 경험해온 바 어른의 사정이랄 게 없어, 이곳만큼은 신뢰해도 무방하리라.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정원 안쪽에서부터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끈 길 줄 몰랐다. 게다가 하나같이 밝은 것이 세상의 불평등이라곤 모를 것 같은 순수함이 넘쳐흘렀다.

그리 꾸밈없는 순간을 그는 사랑했다. 마치 안식처를 찾은듯한 평온함도 느꼈다. 이 세상의 불순물이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어서 그런 걸까.
이따금 가슴 한편에서 씁쓸함이 고개를 치밀다가도 아이 특유의 말랑말랑한 기운이 저조한 기분을 다시 따뜻하게 적셔주곤 했다. 그래서 그는 주에 한 번은 그곳에 들렸고 적은 금액이긴 하나 익명으로 후원도 했다. 또 시간이 되는 대로 아이들의 돌보미 역할을 자처하기도 했다.

벙커에 들어오면서부터 시작된 작은 선의였다. 가끔씩 의뢰로 못 올 때도 있었으나 의뢰가 없는 때는 꼭 들려 손을 벌리곤 했더랬지.

"기부금은 늘 그랬듯 익명으로 달아둘까요?"

제법 굳은살이 두드러진 손이 그의 손에서 돈 봉투를 가볍게 건네 받는다. 검은 사제복을 입은 고용인이 세미 정장 차림새의 그를 살갑게 응대하고 있었다.
창밖을 지그시 응시하던 눈길이 고용인을 향해 돌아가고 고동색 눈동자와 푸른색 눈동자가 잠시 동안 시선을 교환한다.
이내 피식 미소 지은 그의 어깨가 한차례 위로 들렸다 내려앉았다.

"당연한 말씀을."
"하하, 이쪽은 절차대로 진행해야 돼서요. 아시죠?"

그 절차가 후원금 관련 절차는 아닌 걸로 아는데. 봉투를 아기 다루듯 안주머니에 고이 품은 고용인이 깍듯하게 뜨거운 커피를 내온다.
비즈니스 관계에서 나 볼법한 서글서글한 얼굴을 하며 산뜻한 말투를 흉내 내고는 오시는 길에 차는 막히지 않았냐 따위의 일상적인 대화를 걸어왔다.
그에, 그도 이 소꿉놀이에 동참해 주기로 한다. 어디까지나 명분이 필요한 일이기에 그럴싸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니 동참해 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떠들썩했던 그 소문 들었나요?"
"아, 대부호만 노린다는 연쇄살인 사건 말입니까."
"네네 그거 말이에요. 공격당한 사람들 중에 드디어 살아있는 생존자가 발견됐다고 하던데 알고 계셨나요?"

러셀 하워드. 산듯하기 짝이 없는 금발 벽안의 청년 러셀 하워드(23세)는 이곳 보육원 출신이었지만 워낙 수완이 좋아 이른 나이에 사제가 된 인물이었다. 동시에 보육원의 총 관리자였으며 그와 특별한 사이이기도 하다.
물론 흔히 말하는 어른들의 사정으로 말이다.

"몸집이 큰 들짐승의 소행이라는 말이 돌던데 맞습니까?"
"와... 형제님, 저보다 더 빠삭한 거 아닌가요? 맞아요. 그런데 일각에선 그 짐승이 능력자가 아닌가 하는 소문이 돌더라고요."
"러셀씨도 같은 의견 입니까?"
"글쎄요~? 이다음부터는 금액이 세지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질문에 음흉한 웃음기를 띄며 러셀이 작게 속삭였다. 이것이 세간에서 신실한 신자로 알려진 러셀 하워드의 본모습 중 극히 일부분 되시겠다.

사실 돈 밝히는 걸로는 어딜 가도 빠지지 않는 러셀은 어찌 된 영문인지 뒤 세계에 대해 빠삭했다.
게다가 러셀 하워드는 자신의 손님이 될 사람을 보는 눈썰미가 매우 탁월했다. 자신의 도움이 간절한 사람들이 대게 입이 무거운 법이라 그쪽으로는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자신의 손님이 될 이를 선택하는 데 있어 러셀은 늘 신중에 신중을 기여했고 이것이 점차 제 손님을 단박에 알아보는 능력으로 발전한 셈이다.
그리고 나인은 그의 손님 중 가장 긴 시간 동안 함께한 의뢰인 중 하나였다.

청렴결백해야 할 신부인 입장이면서 왜 그리 뒤 세계에 대해 잘 아냐 묻는다면 당연 영업 비밀이라는 진부한 답이 들려오곤 했었지.
자신은 어디까지나 조금 독특한 일반인이라 했던가?
틀린 말도 아니다. 그도 그럴게 러셀 하워드는 그저 주워들은 게 많은 것뿐이지 죄를 저지를 만큼의 악인은 못되었다. 돈을 밝힌다는 게 흠이지만 서류상 신을 믿는 이답게 그쪽도 깨끗했더랬다.

결국은 어른의 사정인 셈이다. 그가 무어라 할 것도 없었다. 아발란체와 관련되지 않는다면 장사 수완이다 생각하면 그만인 것이다.

"사양하겠습니다. 지금은 그걸 알고 싶은게 아니니까요."

정중하게 사과하고는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 그는 주변에 사람이 없는지 부터 확인했다. 열린 창문 밖과 문밖에서 사람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걸 보니 러셀 하워드가 주변에 사람을 무른듯했다. 이럴 때 보면 일 처리가 참 확실한 사람이다.
여하간 중요한 대목은 지금부터였다. 잠시 침묵하던 그가 자세를 바르게 고쳐 앉았다.
그 주제를 말로 꺼내는 건 언제나 고역인지라 갈증이 이는 목구멍이 까슬거렸다. 마른침을 삼키고는 조심스럽게 입술을 열었다.

"그것보다... 예의 그 건의 진행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어... 음. 안타깝게도 영 진전이 없네요."
"그렇,습니까?"

하긴 벌써 몇 해째 진행되고 있는 일이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 그래도 마음이 심란한 건 어쩔 수 없나?
오늘 아침 꾸었던 꿈 때문에 자꾸만 나쁜쪽으로 생각이 고여버린다. 좋지 않은 징후인데... . 그는 설풋 인상을 찡그리고는 꽉 조여맨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반대로 러셀은 제가 송구스럽습니다는듯 저자세로 나왔다.

"정보가 적은 게 원인이라고 해야 할지... 하하하... 그래도 비슷한 사람은 꾸준히 발견되고 있다니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네요."

차라리 죽었다 생각하고 살면 좋으련만 모진 미련이 자꾸만 고약한 희망을 품어서, 결국은 제 발목을 잡는다.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다 했지. 그 하나에 몇 년을 거기에 매달렸다.
그러니 이건 저주 같은 거다. 과거에 못 박힌 듯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드는 그런 서글픈 저주.

속은 꺼멓게 타들어가는데 겉가죽만큼은 평온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살아있을지 죽었을지 모르는 가족을 잊고 정상인처럼 살라고 해도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형제님. 제가 이런 말 할 처지는 아니지만 이 정도까지 했는데도 머리카락 한올도 안 보이는 걸 보면... 음... ."

러셀이 눈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도르르르 굴리며 위로 아닌 제안을 해보지만 그는 들어줄 생각이 없는듯하다. 그저 인정하기 싫은 것처럼 다시 침묵했다.
저 사람도 참 인생 피곤하게 산다. 러셀은 눈치만 살피며 그의 입술만 바라보았다.
뭐가 어쨌든 그가 무엇을 결정하든 저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쪽은 이쪽대로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가 아닌가.
그럼에도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건 정이 들어서일까? 눈앞의 그가 기약 없는 기다림 앞에서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옆에서 지켜본 본인은 잘 알기에 러셀은 그에게 측은지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걱정 차 말해주는 거 압니다. 다만... 제가 아직까지는 그 걸 정리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 미련이 남나 봅니다. 적어도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니 그때까지는 예정대로 진행해 주십시오."

긴 고요 후 미련이 담뿍 베어든 저음이 말문을 텄다. 체념을 입에 담으면서도 희망을 버리지 못해, 내쉬는 짧은 한숨에 많은 감정이 서려있었다.
그래서 러셀은 저가 더 미안한 듯 자신의 볼게를 긁적이며 하하 어색한 웃음소리를 내뱉었다. 끝내도 본인이 끝내는 게 맞는데 그걸 옆에서 두드려 팬 저의 행동이 경솔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그가 누구인가 그런 것을 구태여 내버려 둘 위인은 못됐다. 이내 그저 너털 미소 지으며 괜찮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러셀과 나인 사이에서 감돌던 무거운 분위기가 단번에 전환된 건 그를 발견한 아이들 무리가 열린 창문을 막 넘나들기 시작했을 때였다.

"형아!"

아슬아슬하게 착지한 아이가 그의 코앞까지 오도 도도 다가오더니 이내 두 팔을 벌려 앉아있던 그의 허리께를 와락 안았었다. 분 냄새가 빠지지 않은 아이의 말캉한 볼 위에 붉은 홍조가 만연했다.

그는 메마른 웃음을 터트릴수밖에 없었다.
아이의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넣고는 가볍게 아이를 안아들자 화사하게도 웃어준다. 꺄르르 웃는 소리마저 어쩜 이리 사랑스러울까. 그는 아이들의 등장에 조금 울적했던 감정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건 무척이나 따뜻해서 어떠한 감정이라 딱 잘라 정의할수 없었다.

다만 러셀 하워드는 다른 의미로 어버버 했다.
순식간에 창백한 낯짝을하곤 창문을 넘나들고 있는 주요 인물 세명을 향해 언성을 높였다.

"아델, 린다, 유리! 맙소사 지금 이층 창문으로 들어온 거 맞죠?"
"협! 신부님이랑 같이 있던 거예요?"
"헐, ×됐다."
"세상에! 유리! 어떻게 그런 말을 입에 담을수가 있어요?"

망연자실한 표정이 세 아이의 얼굴에 드리운다. 아마 이후부터는 긴 설교 시간이 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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