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테이주를 다시 체크넣도록 할게요! 화연주가 지금 자리를 비우신 것 같은데.. 음. 그럼 조금만 더 기다려볼게요! 이름없는 수리 전은 난이도가 꽤 있을 수밖에 없기도 하고 그렇기에. 물론 정식 전투라기보다는 약간의 이벤트성 전투가 되겠지만 그래도 역시 혼자보다는 두 명이 낫겠지요!
"그래. 내가 이름없는 수리. 이전 차예성 경위를 습격하고 죽이려고 한 작자다. 그리고 죄를 저지른 괴물 둘을 죽여버리고 다음 심판을 준비하는 중이지. 왜 살인을 정당화 하냐고? 정의를 거론할 생각은 없으니 이 세상을 위해서라는 말은 하지 않으마. 허나 우리들은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되는 이. 아니. 더 나아가 익스퍼라는 존재 자체가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되는 이들이다. 나를 포함해서 다른 이들도 모두. 그러니까 전부 죽어야만 해. 나를 포함해서. 모두가 말이지!"
"어째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거예요? 우리들은 괴물이 아닌데. 분명히 이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인데!!"
"사람? 아니지. 분명하게 말하지. 우리들은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되는 존재들이었어. 원래라면 존재할 수도 없었고 존재하기에 수많은 인간들이 고통받는 미래가 찾아올거야. 익스퍼라는 것은 그런 거니까! 실제로 너희들 중에선 그것을 부정할 수 없는 이들이 한둘이 아닐터다!"
소라의 말에 반박하는 목소리는 보통 싸늘한 것이 아니었다. 안경알 너머의 눈빛은 진득하게 살기가 반짝였다. 무슨 이유인진 알 수 없었으나 익스퍼를 전면 부정하는 이 모습은 단순히 아버지를 잃어서일까? 아니면 다른 뭔가가 있었을까? 그것을 판단하기에는 정보가 너무나 부족했을 것이다. 아무튼 예성은 자신의 오버 익스파를 발동했고 주변은 이전 지하철 때와 마찬가지로 마치 사이버 세상, 컴퓨터 세상인마냥 바뀌었다. 이어 예성은 자신의 손을 움직이며 자신들과 태윤 사이에 몇겹이나 되는 돌벽을 형성시켰다.
"선배는 그 범죄자를 데리고 여기서 빠져나가주십시오. 여기는 저를 포함해서 대원들이 막겠습니다. 괜찮으시겠죠? 모두들?"
그래봐야 상대는 B급 익스퍼. 아마 그렇게 어렵지 않게 제압할 수 있는 이일지도 모르지만 과연 그럴까? 일단 소라는 불안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뒷일을 부탁한다고 이야기하며 신호를 잡고 자신의 익스퍼를 사용해서 그 자리에서 빠져나갔다.
"뭐, 좋아. 이 계획을 시행한 두 번째 이유는 경찰의 탈을 쓴 괴물들을 일망타진하는 것이기도 하니까. 그렇기에 모두 다른 곳으로 보낸거야. 죽어야 할 괴물들이 너무 많이 한 자리에 있어도 곤란하니까."
돌벽 뒤에서 느껴지는 목소리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대체 무엇이 그 자를 이렇게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게 하는 것일까.
/이벤트성 제압전의 시작이에요! 분기는 당연히 있고 승리하는 법도 있지만 조금 어려울 수도 있고 그런 것이에요! 이번 전투에선 예성이가 함께합니다. 예성이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부탁하면 그대로 시행해줄테니까 참고해주세요! 8시 45분까지!
혹시나 말하는건데 중도참여는 얼마든지 자유로우나 제가 체크를 해야하기 때문에 중도참여를 하시는 분들은 꼭 저에게 체크를 받길 바라고..
제압전은 기본적으로 회피+공격, 방어+공격을 제외하면 오로지 한 가지 행동만 할 수 있어요. 그리고 공격을 한다면 정확히 어떤 위치로 어떤 공격을 하는건지 명확하게 적어주셔야 판정이 제대로 나오니 다들 꼭 참고해주세요! 최근에 또 그냥 공격을 날렸다 식으로 하시는 분들이 나오고 계시기에!
오, 좋아요. 이게 그 말 많은 악당의 클리셰라고 할 수 있겠죠. 자신의 목표를 말해 줍니다. 사실, 설명 같은 것은 아니고 그냥 이렇게 하고 싶다. 같은 것이기 때문에 그다지 쓸만한 정보는 아니지만 저 인물에 대한 행동에 대하여 대략적으로 유추해보도록 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나저나 어쩜 이렇게나 똑같을 수가 있을 까요. 저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하나가 같이 수준이 똑같거나 비슷한 주장을 하면서 합리화 합니다. 죽인다! 하지만 죽이려면 내가 살아있어야 해! 나는 살아있어야 한다! 나는 마지막에만 자결하면 될 것이다. 참 한심하죠, 항상 자신은 마지막에 둡니다. 자신부터 처벌하여 먼저 자결하도록 하세요! 하지만 그런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가요, 그럼 괴물 사냥의 시작입니다. 누가 사냥감이 되고 사냥꾼이 될지 정해보도록 하죠."
저렇게나 당당하니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겠죠. 그게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말이에요. 아니면, 그저 미친 것이거나. 무어라 하였던지 실제로 미친 짓을 미친놈인 겁니다. 하면, 저런 사람은 대부분 논리적인 지적으로 인한 설득이나 회유 같은 것이 통용되지 않으므로 괜히 시도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한다고 해도 이런 상황을 마무리 한 다음에 해주어야 겠죠
"이 중에서 가장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는 것은 너일터다. 요원으로서 일하게 되면 싫어도 이것저것 알게 된단 말이지. 아. 설마 자네는 내로남불 주의자인가?"
화연의 말을 피식 웃으면서 태윤은 비꼬았다. 그가 한 행동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것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뒤이어 예성은 잠시 생각을 하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죽이면 안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이야기했다.
일단 돌벽으로 막혀있긴 했으나 이내 그 돌벽은 정말 하렴없이 무너져내렸고 순간적으로 예성이 큭 소리를 내며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 오른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잡는 것이 영 심상치 않아보였다. 그리고 돌벽이 무너져내리자 화연의 주먹이 제대로 태윤의 얼굴을 강타했고 그 때문에 태윤의 몸이 아주 살짝 흔들렸다. 뒤이어 마리의 가시덩굴이 태윤을 공격했고 태윤의 몸을 아주 살짝 긁어내는데는 성공했을 것이다. 허나 화연은 물론이고 마리 역시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것은 절대 사람의 몸을 강타하는 느낌이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돌을 강타하는 것에 가까웠다. 그래서일까. 오히려 화연의 주먹이 아팠을 것이고 마리의 가시덩굴도 그렇게 큰 효과를 보진 못했다.
그러나 정신 공격만큼은 조금 효과가 있었는지 태윤은 작게 혀를 차며 자신의 머리를 살짝 만졌다. 뭘 떠올린 것일까. 태윤의 표정에 더더욱 강한 살기가 녹아내렸다.
"그래. 이런 것이 가능하기에 너희들은 괴물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을 받아낼 수 있기에 나 역시 괴물인 것이지."
"유니온 오브젝트. 저 사람의 익스파에요. 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물체와 자신의 몸을 융합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아마도 지금 것은..."
"그래. 그렇다고 정신적인 것을 막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덕분에 더더욱 느낄 수 있었지. 너희들은 괴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나를 포함해서 익스퍼들은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아버지가 이야기한 적이 있었지. 익스퍼는 절대로 이 세상에 탄생해서는 안되는 비극의 덩어리. 그 자체라고 말이야. 처음에는 나도 부정했지만 이내 알 수 있었어. 우리들은 정말로 이 세상에 살아있어서는 안되는 괴물이고, 그 괴물을 심판할 수 있는 이 역시 결국엔 같은 괴물이어야 한다는 것을!"
이어 태윤은 AE 소총을 들고 앞으로 계속 발사했다. 이어 예성이 빠르게 다시 돌벽을 쌓아올렸고 돌벽은 계속해서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라지면 다시 만들고, 사라지면 다시 만들고. 그리고 그로 인한 영향은 예성이 다 받아내는지 그의 몸이 살짝 움찔했다.
"AE 소총.. 절대로 맞으면 안됩니다. 자료에 따르면 저건 익스파를 차단해버리는 것도 모자라서 익스퍼를 단번에 기절시켜버릴 수 있는 대 익스퍼용 무기. 우리들에게 있어선 권총보다 더 치명적인 흉기입니다. 그걸 주의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마리는 그녀의 의도대로 후려쳤다는 것은 알겠지만 뭔가 느낌이 다릅니다. 이상하긴 하는데 아무럼 어떻습니까. 익스파든 다른 것이든 뭐, 그런 것이겠죠. 중요한 것은 지금 행동은 태윤에게는 그다지 별 효과가 없었으니 다른 행동을 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도 약간의 부수적인 건 있었으니 그것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아, 알겠습니다. 방금 전에 들었던 다른 느낌에 관련하여 원인이 무엇일지. 설명을 듣자 하니 태윤의 익스파, 능력은 어떠한 물체를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런가요."
마리는 태윤의 말에 대충 넘기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저 소총이 익스파 마냥 물리 법칙을 무시하거나 뒤틀어 실현하는 것이 아닌 이상 결국, 끝이 있기 마련이에요. 작동하기 위해선 어떠한 것이 필요하겠죠. 전력을 사용하는 형태라면 배터리가, 전용 탄약이라면 탄약이, 그런 것들의 잔량이 없으면 작동하지 못할 거라는 싱거운 발상이에요"
AE 소총에 대하여 마리는 대략적으로 먼저 기초적인 문제를 생각하여 말했습니다. 저 소총의 정확한 원리를 마리는 아직 모르지만 여러가지를 가정 할 수 있습니다. 간단하게 해서 첫 번째는... 바로 익스파를 지우는 익스파를 발생시키는 장치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익스파라는 것을 인공적으로 발생 시키는가? 그것이 핵심적이고 중요한 목표라고 할 수 있죠.
마리는 최대 속력으로 이동하면서 이전과 같이 같이 가시 덩굴을 솟아오르도록 하여 태윤의 몸을 후려치려 했습니다. 이번에는 좀 더 성가시도록. 방해 정도는 될 수 있을 겁니다... 아마도.
그는 화연을 잠시 바라봤다.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만일 본인이라도 이 말을 들었다면 자제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사살은 안 된다는 말에 그는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죽일 생각도 없었다. 죽였다면 이미 태윤이 말을 하는 시점에 쐈을 것이다. 그는 머리를 잡는 모습에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물리적인 공격을 뒤로하고 정신 공격은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이런 것이 가능하기에 괴물이라는 말에 잠시 쓰게 웃었다. 그리고 표정을 구겼다.
"당신이 괴물이라고 했고, 존재해서 안 된다고 했지만 누가 그걸 정했죠? 누가 익스퍼가 되고 싶어서 됐냔 말이야. 익스퍼가 되고 싶고 이렇게 하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알아요? 당신의 논리는 명제부터 틀렸어요. 아무도 이런 힘을 바라지 않았어."
AE 소총을 발포하자 그는 가위를 역수로 쥐었다. 예성 씨가 무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건만, 단번에 기절시킬 수 있는 총이라서 그런 것이었다. 그는 이 소모전이 반복되면 안 될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위를 벌렸다가 다시 닫았다. 2차 정신 공격이었다.
"후훗. 찔리기라도 하나? 동요하는 것이 보기 좋군. 그래. 자네는 나와 다를게 없지 않나. 그렇다면 적어도 이 중에서 자네는 나를 대적하면 안되지. 아니면 뻔뻔하기라도 하던가. 자네는 되고 나는 안된다..라는 논리를 꺼낼 생각이면 입을 다물게나. 그래야 더 괴물답지 않겠나."
화연이 동요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태윤은 피식 웃어보였다. 그러면서도 AE 소총은 계속 예성이 있는 방향으로 발사했고 또 발사했다. 돌벽이 계속 사라지는 것을 반복하고 예성도 그만큼 지쳤는지 숨을 헐떡였고 마침내 그의 오버익스파가 해체되었다. B급이라고 한들 AE 소총은 익스파를 직접적으로 차단해버리는 기술력의 총합. 이른바 대 익스퍼용 병기. 거기엔 이미 S급의 레벨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내 가시덩쿨이 태윤의 몸을 후려쳤지만 역시나 돌을 내려치는 것과 비슷한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허나 후려친다는 사실 자체가 변하는 것은 아니었고 태윤이 살짝 움찔하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뒤이어 화연이 날아오르는 것을 바라보며 태윤은 그다지 신경쓰지 않으며 오버익스파를 해체하면서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된 예성 쪽을 바라봤다.
"...익스퍼를 이 세상에 만든 이가 정한 거다. 이 세상의 태반은 자신이 원해서 이뤄지는게 아니지. 나도 괴물이 되고 싶진 않았어. 허나 나 역시 괴물이 되어버렸고 이 청해시는 이미 그런 괴물들이 정도를 모르고 날뛰고 있지. 자네들이 누구보다 잘 알지 않나? 자네들이 본 것은 인간이었나? 괴물이었나?"
그들이 해결한 사건을 이야기하듯 태윤은 피식 웃어보이며 두 어깨를 으쓱했다. 이내 화연의 불꽃이 날아왔고 태윤은 피하지 않고 그 상태로 그대로 흽쓸렸다. 몸이 그을리고 열기를 느끼긴 했으나 화상을 입힐 수는 없었다. 말 그대로 지금의 그는 돌이었으니까. 그래도 조금 아픈지 표정을 찡그렸고 2차 정신공격이 가해지자 태윤은 오른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살짝 잡았다.
"...그래. 그런 일도 있었지. 내가 처음으로 괴물이 되었을 때 아버지는 그 누구보다도 슬퍼하셨어. 그리고 모든 것이 다 자신들의 죄라고 했지. 그렇기에 더더욱 나는 내 손으로 결단을 내야만 하네. 그게 아버지의 뜻일테고, 아버지를 죽인 괴물에 대한 복수이며, 진정으로 사라져야 할 이들이 사라짐으로서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가는 방법이니까."
뒤이어 태윤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예성을 향해 AE 소총을 발사했다. 검붉은 빛이 예성의 몸에 제대로 명중했고 예성은 표정을 찡그렸다. 그리고 정말로 힘 없이, 마치 말 그대로 체력이 금방 다 떨어지기라도 한 것 마냥 한쪽 무릎을 꿇었다. 몸이 마비가 되는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그리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큭. 죄송합니다. 아까부터 계속 머리가 어지러워서 피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튼... 다들 흩어지십시오!"
적어도 흩어진다면 단번에 전멸하는 일은 없으리라. 그렇게 생각을 했는지 예성은 그렇게 겨우 외쳤다. 허나 태윤은 근처에 있는 물로 뛰어들었고 이어 모두의 탐지기에 B급 익스파 반응이 잡혔을 것이다.
"...정말 시간이 길게 지속되기 힘들다는 것이 문제야. 두 개를 저장해서 융합할 수 있지만... 돌을 포기해야하는 건 좀 아쉽군."
그런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태윤은 왼손을 들어 화연이 있는 곳을 향했다. 허나 거기엔 그 어떤 것도 들려져있지 않았다.
사민은 정신이 없었다. 다행히 경위님이 기절하는 일은 없었지만... 이럴 줄 알았으면 소총부터 노릴 걸! 사민은 굼뜨게 움직인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렇지만 회복력 빠른 사민답게 자책하는데 시간을 오래 끌지는 않았다. 바로 몸을 움직여 흩어졌다.
사민이 눈을 빠르게 굴렸다. 보아하니 물과 융합한 모양인데-사민의 짧은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차라리 돌로 융합한게 나았다. 힘으로 몰아붙이는 것이야 말로 사민의 영역이었기 때문이었다. 연우 선배가 화연을 보호하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사민은 가까이 다가가 주먹을 날리는 대신 자갈을 하나 집어 들었다.
"다시 돌로 돌아오는 건 어떨까요?!"
바위에 주먹치기는 자신 있는데! 과연 물과 융합한 상태에서 공격이 먹힐지 자신이 없었지만 일단은 던지고 보자. 물속에 없었더라면 무릎을 노렸겠지만... 어쩔 수 없지. 사민은 그리 생각하며 자갈을 태윤의 왼팔 뒤꿈치, 그러니까 관절부분을 향해 던졌다. 익스파를 사용했기에 날아가는 속도가 무척 빨랐다.
이제 좀 행동을 수정해야 될 순간이 온 것 같습니다. 지금 까지의 행동은 말 그대로 '성가심' 이외는 별 효용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상황에서 소모전은 도움이 안 될 겁니다. 전술은 상황에 맞춰 해야 하는 법이죠. 맞는 것을 찾아봅시다
"당신은... 소설가가 되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
마리는 태윤이 여전히 줄줄이 물어보지도 않은 온갖 것들을 말해주자 그렇게 말했습니다. 일단 이건 진짜로 그렇게 말하는 거였습니다. 지금은 삼류 소설 같은 줄거리 같지만 적어도 흥미는 있습니다. 실력을 높이면 더 재미있는 걸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그러도록 하죠."
흩어지라는 말에 마리는 그러도록 했습니다. 사실, 이미 지금까지 그렇게 하고 있었기도 하고요. 그렇지 않더라도 저 총기에 맞지 않도록 하려면 이리저리 움직여야 할 겁니다.
마리는 현장에서 너무 멀지 않게 이동하면서도 무수히 많은 가시 덩굴들 솟아나던 것들이 달리 땅바닥에 거세게 파고들게 하고는 하고는 이내 바위를 지반 째로 뽑아들어서 던지도록 했습니다. 이건 자연물이기 때문에 AE 소총이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 만큼 쏴봐야 소용 없을 겁니다. 태윤은 뭔가 다른 방법을 써야만 할 겁니다
오버익스파마저 깨졌다. 익스퍼를 이 세상에 만든 사람이 정했단 말에 그는 잠깐 멈춰섰다. 그리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원하지 않았다고 해도 이런 삶을 바라지는 않았다. 그는 더는 반응하지 않았다. 차라리 잊는게 좋겠다. 평생 잊을 수 없겠지만 그렇게 믿어야 할 것 같았다. 누군가 그의 삶을 이렇게 줬다고 해도 이제 원망해서는 안 됐다. 모두 그의 잘못이었으니.
그러나 한 가지 틀린 점이 있다. 인간이었는지, 괴물이었는지 알 필요 없다. 마주한 건 범죄자였고, 그게 일반 범죄자라도, 익스퍼라도, 아니면 범죄자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라도 그는 평등하게 싫어했기 때문이다.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아팠다. 어디선가 너는 아무것도 모르잖아, 하고 발악하듯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손을 들어 귀를 틀어막았다. 무시하는게 좋겠다.
"뭔.."
그는 손을 떼고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주 자기만 아빠 있는 줄 알지. 지 아빠만 슬퍼한 줄 알지.. 아주 자기만 아버지 있는 존재인 줄 아나보다. 죽은 아버지도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서 그게 아니라고 할 논리에 그는 황당하다는 듯 테이저건을 겨눴다. 정신 공격이 아니라 다른 걸로 제압에 나서야 할 것 같았다.
"당신 진짜 최악이야. 그거 알아요? 나 당신만큼 최악인 사람 많이 봤는데 일단 한국에서는 당신이 제일 최악이야."
"아니. 괴물을 모두 이 세상에서 없애버리고 싶을 뿐이다. 뭐라고 하더라도 그게 지금 내가 해야 그할 일이니까. 물론 아버지의 죽음이 트리거를 당겼다는 것은 인정하도록 하지. 허나 말했다시피 익스퍼는 익스퍼를 만든 이가 이 세상에 존재하면 안된다고 정했으니 우리들은 전부 이 세상에 살아있을 가치가 없다. 그리고 거기 자네. 자네의 옛 이야기는 아무래도 좋아. 자네가 지금껏 사건을 마주하면서 범죄자들에게 어떻게 대했는지를 떠올려보는건 어떻겠나. 대체 나와 무슨 차이가 있지? 자네가 하는 행위는 정당한 정의이고 내가 하는 행위는 처단해야 할 악 그 자체인가? 똑같지 않나? 그런데 왜 그렇게 열을 내고 화를 내지? 역겨운 살인자? 그래. 나는 살인자가 맞아. 인정하겠어. 그러는 너는 뭐지? 그렇게까지 말한 이상 더더욱 지금 이 무대에 오를 자격이 없는 이가 아닌가? 아. 혹시 지적을 당하면 화를 참지 못하는 그런 부류인가? 미안하군. 거기까진 파악을 못해서 말이야."
일부로 보란 듯이 도발을 하는 모습이 유난히 태윤은 화연을 도발하고 있었다. 마치 그의 방식을 일부러 비꼬려는 듯. 일부러 도발하려는 듯. 이어 태윤은 잠시 말을 끊은 후에 다른 이들을 바라보았다.
"소설이라. 차라리 이 모든 것이 소설 속 이야기라면 덜 잔혹하겠지. 그냥 죽어주면 얼마나 좋겠나. 괴물 제군들. 그리고 우연이군. 나도 자네들은 좋아하지 않아. 정확히는 자네들 같은 괴물들을 포함해서 말이지만. 언젠가 모두 다 죽여버릴 참이야. 하나도 빠짐없이. 그러기 위해서 라타토스크라는 이를 찾아낼 필요가 있단 말이지. 그들이 아버지에게서 뺏어간 것을 되찾아야만 하니까."
말을 마치는 와중 마리가 날린 바위와 사만이 날린 자갈이 빠르게 태윤을 향해 날아왔다. 허나 마치 물을 관통하듯 첨벙이는 소리만이 들려왔고 태윤은 피식 웃어보였다. 그리고 화연이 날리는 불꽃은 닿자마자 빠르게 꺼져버렸다. 그렇지만 연우의 공격. 큐브 웨폰을 통한 나이프 공격만은 데미지가 들어갔는지 태윤은 표정을 찡그리고 머리를 살짝 잡았다. 익스퍼의 익스파에게 직접적으로 데미지를 주는 큐브 웨폰은 상대가 물 상태가 되었다고 해도 확실하게 공격이 가능한 모양이었다.
"뭐, 좋아. 여기까지만 해둘까. 지금 이 상태에서 계속 싸우면 아무리 그래도 내가 불리할테니까 말이야. 나를 붙잡고 계속 옆에 붙어있는 이가 있는 시점에서 이미 계획은 확실하게 틀어졌으니까. 원래라면 몰래 숨어서 하나하나 잡아낼 생각이었다만."
더 이상 여기에 있어도 그리 이득을 볼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태윤은 가볍게 손을 털었다. 그리고 왼손을 내리고 무차별적으로 AE 소총을 왼손에서 발사해댔다. 물과 AE 소총. 각각 두 개와 융합을 한 모양이었다. 아무튼 무차별적으로 발사되는 AE 소총은 그야말로 여기저기로 튀었고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모두의 시야를 가렸다. 그 와중에 예성에게도 한 두발 정도 날아가서 맞은 모양이었으나 예성은 자신은 신경쓰지 말라는 듯 애써 작은 목소리로 숨을 허덕이며 제압을 하라고 지시했다.
/이벤트 전인만큼 사실상 승리 조건은 달성했어요! 일정 시간을 버텨냈기에 조건 만족이랍니다! 물론 여기서 어떻게 행동할지는 여러분들의 자유지만요! 11시 10분까지!
그리고 여기서 밝히는거나 사민이가 그렇게 끈질기게 달라붙은게 아니라면 계곡 쪽에 있는 이에게 갑자기 의문의 저격(?)이 날아와서 매우매우 위험했을 것을 밝히며!
AE 소총과 물의 융합. 굳이 몸과 다른것을 융합하는게 아닌 이런식으로도 가능한건가. 그녀는 예성의 말대로 제압을 해야하나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젓고 얘성과 다른이들을 지킬 수 있게 모든 패널을 전개해서 막아내려 했습니다. 예성의 오버익스파마저 견디지 못했으니 아마 자신의 패널은 한발에 한개씩 깨져나가겠지만 그래도 그를 따라서 부숴지는대로 계속해서 전개하면 아마 막아낼 수 있을것입니다.
화연은 웃음 터뜨리며 그를 비꼬았다. 백번 양보해서 그의 사상이 아무리 훌륭하고 옳은 말이라고 해도 결국 그는 지금 현행범이다. 태윤의 말이 맞았다. 화연은 익스퍼 범죄자를 제압하려는 것이 아닌 그들을 재기불능 상태에 빠뜨리려고 한적이 많았다. 아니. 비 익스퍼 범죄자라할지라도 흉악범들에겐 능력으로 신체 일부분에 큰 상해를 입히는 일이 자주있었다. 화연과 태윤의 차이는 그저 살인이라는 선을 넘었느냐 안넘었느냐의 차이었다. 화연은 자신 또한 범죄자에게 고의로 상해를 입힌다는 선을 넘었으며 선을 넘었다는 점에서 그와 별 차이는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자, 자세한 이야기는 서에가서 듣기로 하지."
그렇기에 지금 이 곳을 평범한 범죄자 체포 현장이며 사상따윈 중요치 않다고 그에게 답했다. 모든 테러리스트와 사상범은 각자의 사상과 이유가 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한낱 범죄자에 불과하다.
태윤이 손을 털며 AE소총을 난사하며 흙먼지를 일으키자 화연은 온몸에서 불꽃을 뿜으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지금 여기서 놈을 놓치게 된다면 정말로 모두가 위험해진다.
놈은 물과 자신을 융합하여 불꽃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되었다. 더 이상 불은 녀석에겐 무의미하며 동료들에게 피해만 끼치게 된다.
AE소총만 어떻게 한다면 그 다음은 누가와도 알아서 해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받아라!!"
화연은 슈퍼맨처럼 두 팔을 곧게 뻗은 후 그에게 정면으로 날아갔다. AE소총에 맞아 기절한다고 해도 놈의 시선이 화연에게 향하는 한 동료들이 무엇인가 해주리라 믿었다.
차라리 이게 소설 속이라면 좋겠다. 아니, 소설이라도 좋지 않을 것이다. 그는 태윤을 쳐다봤다. 언젠가 모두 죽여버릴 참이다. 나도 실패한 일을 네가 어떻게 한다고. 그는 손을 들어 자신의 목을 한 번 더듬고 가위를 들었다. 가위 날이 소름끼칠 정도로 선득한 은색이었다. 오늘은 돌아가서 술을 마셔야겠다. 여기까지만 해두겠다는 말에 그는 가위를 쥐고 손 안에서 날을 한 번 접었다 펴고, 다시 한 번 더 접었다 폈다. 총 두 번을 잘각거렸지만 능력은 아직 쓰지 않았다.
"어딜 째, 이 새끼야."
쌀쌀한 1월,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카락. 떨어지는 체온과 심각하게 쌓인 스트레스, 정신적 피로. 시간이 지날 수록 그는 제대로 된 생각을 하기 어려웠다. 나도 실패한 일을 네가 어떻게 한다고. 차라리 죽일 거면 그 때 죽게 내버려 뒀어야지. 왜 나를 죽지 않게 살려두고 이렇게 삶을 이어가게 하냔 말이다. 허공에 가위질 하는 소리가 선명하게 세 번째 들렸다. 자신도 모르게 가위를 쥐지 않은 손바닥의 살을 자를 줄 누가 알았을까. 그래도 괜찮다는 양.
"정말로 저희를 없애고 싶으셨더라면 돌아가셨어야죠! 법안을 내시든가 왜 여기서 이러시는데요. 세상이 힘드신 건 이해하는데 그렇다고 무작정 사람 죽이시고 그러면 그냥 살인자 되는 거라고요-!"
사민은 그 말을 끝으로 구태여 태윤의 악담에 답하지 않았다. 솔직히 사민은... 논리로써 상대를 이길 자신감이 없었다. 머리에 내용을 입력하고 이해하고 반론을 제기하는 과정 자체가 거대한 스트레스인데 하물며 소총도 피해야하는 상황이니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대화보다는 주먹으로 평화롭게 해결하도록 해볼까. 자갈 날려서 해결될 일이 아닌 것 같으니 큐브 웨폰을 사용해야하는 순간이었다. 사민은 비장한 얼굴로 너클을 꽉 쥐었다. 후... 조금 떨리네.
"연우 선배! 지금부터 다가갈건데 패널 부탁드릴게요!"
이미 도움을 받은 상태였지만 사민은 좀 더 염치 없게 구릭로 했다. 일단 다음 계획을 말해야 패널 전개에 차질이 없을 것 같아 소리친 후 사민은 연우가 만들어낸 패널을 이용해 요리조리 총알을 잘 피해냈다. 이래서 근접 딜러가 서럽다 이말이다. 사민은 속으로만 징징거리며 태윤에게 조금씩 다가갔다. 지형지물과 연우의 능력을 잘 활용한 결과라고 해야할까. 사실상 후자의 도움이 제일 컸다. 때마침 화연이 태윤의 시선을 끈 것도 도움이 됐을 것이다. 연우의 패널이 깨지는 순간 사민이 치고 들어와 태윤의 턱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시, 실례하겠습니다!"
그러게 협조 좀 잘해주시지 그랬어요! 사민의 다리가 약간 후들거렸지만... 그런것 치고는 날아가는 주먹에는 흔들림 한 점 없었다.
이번에도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마리의 수단은 별 효용이 없었습니다. 그야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다. 액체는 물리적 고정된 형태가 없습니다. 거기에다 저건 평범한 액체가 아니라 익스파라는 초능력으로 바뀌었습니다. 유익한 특성만 골라다 사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말이죠. 아무튼 마리의 목적은 AE 소총의 목표를 분산시키는 것일 수만 있다면 충분했었습니다
"현실도 소설이라고 하고 싶네요. 운명 혹은 신이라는 불리는 작가가 집필하는. 그곳에 등장인물로 당신이나 저희나 딱 어울리지 않았나요? 줄거리도 꽤 그럴듯 해요."
태윤의 말에 마리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것이 소설 이였다면 좋겠다고 하는 것은 지금 까지의 모든 경험이 다른 형태 이였다면 좋겠다고 하며 부정하는 것만 같지요. 결국, 줄거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때는 것과 같습니다. 태윤은 악역에 잘 어울리네요. 말이 많은 것부터 오늘은 물러가 주겠다. 그리고 뒤틀린 신념까지! 뭐하나 모자람이 없습니다!
이어지는 것은 참으로 억지스러운 상황이 이지만 애초에 익스파라는 것 자체 억지스러운 것이니 받아 들어야 할 상황입니다. 마리는 다시금 이전에 그랬던 무수히 솟아오르는 것처럼 가시 덩굴들로 하여금 주변의 큼지막하게 자란 나무 한 그루를 뽑아 들어서 휘둘러 치기로 했습니다.
모두의 시선을 흐트리고 자신의 모습을 감추려는 듯한 행동인 AE 소총의 난사는 그야말로 누가 언제 맞아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허나 연우는 자신의 능력을 써서 그 검붉은 광선을 막으려고 했고 그녀의 생각대로 어느 정도 막을 수는 있었으나 그와 동시에 그녀의 머리가 깨질 것처럼, 정확히는 누군가가 뇌를 강타하는 것처럼 계속 타격이 느껴졌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정신을 잃을 것만 같은 느낌. 그리고 더 나아가 익스파가 차단되는 느낌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대신 연우의 패널로 인해 다른 이들은 그나마 AE 소총에서 무사할 수 있었다. 그것을 틈타서 화연이 직접적으로 돌진했고 마리의 나무 공격이 태윤을 향해 날아왔을지도 모르나 마치 물을 관통하듯 태연하게 통과해버렸다. 허나 사민의 '큐브 웨폰'을 통한 공격은 제대로 명중했고 상처를 주진 않았으나 익스파 그 자체에 타격을 주는만큼 태윤의 몸이 움찔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퍼디난드의 정신공격에 태윤은 표정을 찡그렸다. 가장 끔찍했던 기억. 그것은 바로...
"...주제넘게 굴지 마라."
이어 퍼디난드의 머리카락 한 올이 땅에 떨어졌을 것이고 마치 일부로 안 맞춘 것 마냥 정말 아슬아슬하게 검붉은 광선이 퍼디난드의 머리카락을 스쳐지나갔다. 만약 맞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어쩌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예성과 비슷한 꼴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어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위그드라실 멤버들을 바라보던 태윤은 다시 목소리를 이었다.
"또 보자. 위그드라실 팀. 경찰의 탈을 쓴 괴물들아."
이어 태윤의 몸이 천천히 녹아내렸고 그 상태로 사라져버렸다. 물의 특성과 융합을 했기에 물에 녹아내려 그 모습을 감춰버린 것일까. 확실한 건 위기는 넘겼으나 '체포'는 실패했다는 사실이었다.
"다들 무사하십니까? 하아. 다행입니다. 비록 놓친 것 같지만... AE 소총을 가지고 있는 요원을 상대로 이 정도로 했으면 선방한 겁니다. ...아쉽지만 여기서는 무사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도록 합시다."
아직 체력을 회복하지 못한 예성은 여전히 한쪽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쓴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더 이상 공격해오는 것 같진 않았기에 아주 조금은 숨을 돌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한가지 확실한 건... 저 자는 라타토스크와 같은 편은 아닌 것 같군요. 박사님에게서 뺏어간 것. ...말이 나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박사님이 가지고 있는 디스크 중 하나가 사라졌다는 조사 결과가 있었습니다. ...일단 다들 파악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자신도 정확하게 아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런 조사 결과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그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가 한 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익스퍼를 만든 자라는 거. 조금 신경쓰이는군요."
패널이 깨지고 다시 생성되고의 반복. 그러나 그 통증은 상상이상이었습니다. 이런것을 막아냈던건가. 단순히 물리적인 파괴력이 아닌 뇌를 직접 후려치는듯한 통증. 오히려 물리적이 아닌 직접적으로 투과한듯한 두통에 그녀는 제대로 소리내지도 못하고 상황이 끝나고 나서야 주저앉았습니다.
물리적으로 깨진건 아니더라도 패널이 깨져버렸으니 그에 따른 반동까지 중첩되어 그녀는 가쁜숨을 몰아쉬며 바닥을 짚었죠. 다행인건 피가 튀고 그런식으로 다친건 아니었다는거지만.. 머리가 아직도 울리는듯한 느낌에 그녀는 예성의 말에 답하지 못한채 몸을 갸누는게 고작이었습니다.
생각이상의 파괴력. 만약 이런걸 연속으로 몸에 직접 맞는다면..
"썩... 좋은 기분은 아니네요."
간신히 간신히. 익스퍼를 만든 자라는 대화주제를 다시 떠올린 그녀는 간신히 입을 열었습니다.
"인정하기 싫어도 그는 정보가 많아보였습니다. 어쩌면 어떤 사실을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네, 이번에도 결과는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안 해서는 안됩니다! 계속 해야 해요. 뽑아서 든 나무가 부족합니까? 아닐 겁니다. 그래도 이번에는 몇 그루 더 추가해봅시다. 무수히 많은 가시 덩굴들이 주변의 자라난 나무들을 뿌리 째 뽑아 들고는 태윤을 향하여 마구 휘둘러 봅니다. 결과는 같겠지만 뭐, 어떻습니까. 반대로 '결과는 같다'. 라는 것을 알기에 다음 번 결과를 일부 나마 확실히 예측할 수 있으니 나쁜 것만 아닙니다.
"적어도 자신이 내뱉은 말은 지켜 주세요."
태윤의 말에 마리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주제 넘기지 말라 네요. 그럼 본인은요? 이전에 자신과 저희는 별 반 다를 것 없는 사람.. 아니, 괴물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말해도 무의식적으로는 자신은 다르다 라고 믿고 있다는 느낌 이로군요. 자기 합리화형 범죄자의 전형적인 패턴입니다.
"네, 다음에 또 봐요. 자칭 괴물 사냥꾼인 괴물 씨."
그런 말만 남기고 뻔질나게 도망치는 태윤에게 마리는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그와 익스레이버, 위그드라실 팀의 목적이 그런 만큼 어떠한 방식으로든 다시금 만나게 될 것이라는 것 정도는 쉽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좀 차분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결과는 별다른 소득은 없었습니다. 사냥꾼은 사냥감을 놓쳤고 사냥감은 자신을 노리는 사냥꾼을 따돌릴 수 있었습니다. 뭐, 이렇게 표현하자면 사냥감 쪽이 더 낮긴 합니다. 일단 자신을 보전했으니까요
"네, 괜찮은 것만 같네요. 그런가요, 그렇다고 할 수 있겠네요. 저는 AE 소총 보다는 태윤의 능력이 탈주의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생각 하지만요."
마리는 괜찮냐는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고는 다른 것을 덧붙여 다시 말했습니다. 다른 혹사한 동료들에 비하면 마리에게는 없는 거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자, 생각해 봅시다. 태윤의 말은 어느 정도는 사실일 거에요. 정말로 익스파가 기초적인 상식과 법칙마저 무시하고 존재하는 초자연적인 존재라면 왜 인류의 과학적 해법으로 저지하고 모방 할 수 있습니까? AE 소총의 존재부터 익스파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역으로 추산할 수 있어요. 즉, 익스파도 과학적 방법론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겁니다. 선사 시대의 인류가 번개를 신의 노여움으로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저 공기층의 대류 작용으로 인한 전하의 이동으로서 발현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요"
"허나, 그렇다고 해서 반대로도 가정할 수 없다고 할 수는 없어요. 단지, 앞서 말한 추정이 조금 더 합리적이다 라고 할 수 있을 뿐."
머리카락 한 올이 땅에 떨어졌다.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붉은 시선이 따라 움직이다 바닥에 닿았을 무렵, 그는 고개를 다시 올렸다. 그리고 표정이 삽시간에 변했다. 지금까지 사람 좋게 웃으며 방방 떠있던 모습과 달리 새하얀 테두리의 동공은 작게 수축했고, 가위를 든 손은 그대로 멈춰있었다. 잠시간의 정적에서 사람을 향해 달려들기 직전의 개와 같은 위험한 느낌이 들었다. 그가 입을 벌렸다. 솜씨 좋게 한국어를 구사하던 유쾌한 목소리와 달리 낮고 탁한, 말 그대로 가라앉아 짐승처럼 그르렁대는 목소리였다.
"Don't be fucking presumptuous, Fatherless bastard." 너나 시건방진 소리 마라, 아비 없는 후레새끼야.
마지막까지 속을 박박 긁어야 성이 풀렸는지, 아니면 그가 지금껏 눌러 담고 하지 않으려 했으며 이성을 잃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모욕이었는지. 아마 후자에 가까웠을 것이다. 몸이 녹아내리고 사라지자 그는 한참 동안 사라진 방향만 쳐다봤다. 침묵이 오갔다. 예성의 말에도, 들려오는 목소리에도. 그는 피가 흐르는 손을 쥐며 줄곧 그 사라졌던 방향만 쳐다봤다. 질문을 들어도 답하지 않았다.
타인이 본다면 계곡에 입수한 여파로 몸이 부르르 떨리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렇게 믿어야만 했다. 그를 정면으로 쳐다보지 않기를 바랐다. 이를 악 물기라도 했는지 턱 근육은 긴장했으며, 목에는 핏대가 잔뜩 서있고, 눈은 사백안으로 뜨인 모습이었다. 평소 같으면 분을 삭이지 못하는 모습을 들켜봐야 추할 것이라 생각했으나 지금은 아니다. 속으로 숫자를 거꾸로 세며 심호흡을 해도 도저히 나아지지 않았다. 전개했던 큐브웨폰을 다시 집어넣을 수도 없을 정도로 정신이 어딘가로 가버렸다. 가위 날이 손을 파고들었다. 다시금 낮게 한마디, 부르르 떨리는 입을 벌렸다.
"Tell him not to say fucking nonsense.." 개소리 말라고 해요.
입술 한쪽이 바들거리며 올라갔다. 뭘 안다고 감히 그딴 개소리를 내뱉는가. 운명론과 같은 허무맹랑한 소리의 답은 짙은 침묵이었다.
다른 이들의 의견을 들으면서 예성은 어느 정도 공감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익스퍼에 대한 것은 아직 공식적으로 밝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대체 익스퍼는 무엇인지, 어쩌다가 탄생했는지 아무 것도 밝혀지지 않은 상황 속에서 '익스퍼를 만든 이'라는 말이 나오자 그는 조금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셀린은 연구 끝에 익스퍼를 쓸 수 있게 된 앵무새입니다. 허나 그것조차도 따지고 보면 뇌를 연구하다가 우연히 발현되었다는 느낌이기 때문에 뭐라고 설명할 순 없네요. 자세한 것은 어머니에게 물어봐야 알겠지만..."
적어도 자신으로서는 아직 명확하게 답을 알 수 없다는 듯 그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연우의 말대로 어쩌면 자신들이 모르는 뭔가를 알고 있을지도 모르고, 마리의 말처럼 어쩌면 과학적으로 이미 뭔가가 증명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다면 단지 자신들이 모를 뿐. 이면에서는 익스퍼에 대한 많은 연구가 있고 성과가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문이 떠오를 뿐이었다.
"...일단 이 부분은 나중에 어머니에게 여쭤보겠습니다."
연구원으로서 일하고 있는 어머니라면 혹시 뭔가를 알고 있지 않을까. 예성은 그렇게 판단했다. 이 부분은 나중에 확실하게 알게 되는 것이 있으면 답을 하겠다고 그는 모두에게 약속을 했다.
아무튼 위그드라실 팀이 태윤을 막은 덕에 어떻게든 이송작전이 다시 이어질 수 있었고 겨우겨우 신호를 더욱 안전한 구치소로 옮기는 것이 가능했다. 또한 이후 보고를 들은 프로키온, 아니. 수영은 위에 보고해서 태윤을 요원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자신들이 추적하겠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이미 그가 살던 집에서는 개인 물품이 다 빠져있었고, 모습을 완전히 감춰버렸기 때문에 추적에는 조금 더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었다.
'익스퍼를 만든 이.' '살아있어서는 안되는 존재.'
어쩌면 누군가는 이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고, 누군가는 개소리로 치부할지도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건 뭔가가 조용히 진행되고 있었다.
어딘지 모를 장소. 평소라면 혼자 있을 마스터의 공간에는 마스터만이 아니라 라타토스크 조직에 소속되어있는 나이트. '유나리'가 서 있었다. 광기에 가득찬 눈동자는 이전과는 다르게 상당히 날카로웠고 매서운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래서 보내달라는건가?"
"네. 아버지. 저에게 그런 치욕을 준 그 녀석들을 절대로 두고볼 수 없어요. 절대로..."
그녀의 목소리에 섞여있는 것은 강렬한 불꽃과도 같은 잔인한 분노였다. 이전, 위그드라실 팀과 싸웠을 때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고 하나 그녀는 패배했고 룩에게 겨우 구조받았기에 무사할 수 있었다. 그 모든 것이 그녀의 가슴 속에 치욕으로 남아있었는지 그녀는 빠드득 이를 갈고 있었고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어찌나 세게 쥐었는지 손톱에 피가 살짝 묻어나왔고 주먹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확실히 정말로 거슬리는 존재가 된 것도 사실이지. 하지만 네가 처단할 수 있겠나?"
"물론이에요. 아버지. 그래봐야 A급. 전에 패배한 것은 방심했기 때문이에요. 이번에는 방심 따윈 하지 않겠어요. 제대로 쓸어버릴테니까..."
"하는 것은 자유지만 지휘관은 남겨둬."
이내 문이 열리고 새로운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20대 정도의 목소리로 들리는 여성은 태연하게 앞으로 걸어왔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마스터는 피식 웃어보였다.
"퀸인가. 지휘관을 남겨둬야 하는 이유가 있나?"
"그래. 퀸! 모두 다 죽여버려야..."
"대원들이 모두 죽고 난 이후의 절망감에 어린 표정을 보는 것이 더 좋지 않겠어? 지금까지 우리를 계속 방해했으니 말이야. 그러니까... 지휘관은 남기고 다 죽여버려도 좋아. 절망어린 표정을 보고 절망에 물들어가는 눈동자를 보고 차후에 천천히 가지고 놀아도 상관없어."
"그래? 그렇네. 확실히... 물론 난 그 녀석보다는 다른 이가 더 마음에 안 들지만..."
퀸이라고 불리는 이의 목소리에 나리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조금 내켜하지 않는 듯 보였으나 그럼에도 강력하게 반발을 하지 않는 것은 단순히 퀸이라는 이가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있어서일까? 마냥 싫은 것은 아니기에 그런 것일까?
"뭐, 좋아. 계획에만 지장이 없으면 돼. 물론 그들이 아무리 날뀐다고 한들... 진행되고 있는 1단계를 막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말이야. 미래를 보는 것이 아닌 이상 말이지. 아무튼 위그드라실 팀이 모이는 자리가 있으면 지령을 내리도록 하지. 네가 움직이는 것은 바로 그때다. 나이트."
"알겠어요. 나의 아버지. 나의 마스터."
마스터의 지시에 나리는 고개를 아래로 숙인 후, 마치 기사가 충성을 맹세하는 것처럼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마스터는 정말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정말로 이 상황이 마음에 든다는 듯이.
우후후~ 아무래도 그런 편이지. 테이는 경찰 일에 비정상일 정도로 큰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편이고, 동시에 죽인다는 것에 대해 상당히 민감한 편이니까. 범죄자를 사람 자체로 안 보는 건 동의하는 편이지만 테이는 일단 익스퍼고 민간인이고 범죄자 전체를 그렇게 보는 편이기도 하고..
요약하면 뭘 안다고 네가 그런 소리를 해+나도 실패했는데 네가 어떻게 날 죽이려 들어+니네 아부지는 내 고항이 아니라 하늘나라 가셨어(진짜 나빴음)+천조국 고소리스트에 너도 추가다.. 이런 느낌이기도 하지..🙄
"음... 언제까지 일하는 일이 될지는 단언할 수 없지만요... 그래도 한참은 이렇게 머무를 예정이니 앞으로 선물 주고받을 기회도 분명 가득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놓치고 만 실수는 아무래도 만회해야 하니..."
농담 비스무리 치면서도 부끄러운 양 숫기 없는 웃음. 스파이더맨을 떠올리려는 것처럼 곰곰이 생각하던 신이 머지않아 아, 하며 소리 없이 손뼉 비슷한 것을 쳤다. 쿠키를 쥔 쪽 엄지 첫 마디에 톡 하고 다른 쪽 손끝을 살짝 댔다는 말이다. 결과적으로는 박수 비슷한 것이다. "아침 거미와 같은 존재라는 걸까요. 알려줘서 고마워요, 다음에 참고할게요." 수줍은 기색 그대로 사람 모양 쿠키의 목보다 깊숙한 자리를 베어 물면 딱 소리가 났다. 이제는 신체 부위를 잃은 쿠키가 다소 괜찮아진 모습으로 오물오물 얌전스레 씹어 넘기던 신은 좋아하는 히어로나 캐릭터나 없느냐는 말에 난처한 양 입을 일자로 다물다가 살그머니 장난을 담아 웃었다.
"으, 일지반해의 사람에게 그런 질문이라니 잔인해요? 말씀드렸지 않아요, 저 히어로는 잘 모른다고. 자랑은 물론 아니지만 캐릭터- 같은 것도 잘은, 잘은 몰라서... 그나마 아는 캡틴 아메리카 씨에 대해 설명해라 만약 들어도 후추를 통째로 삼키는 것*만 못한 대답을 돌려드리게 될 것이 뻔한걸요. 그래서 부끄럽지만 이번 질문은 대답하지 못하는 것으로... 그래도 이대로는 죄송스러우니, 음, 대신이라기엔 건방지지만 제게 궁금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라도 물어보셔도 좋아요... 깜짝 진실게임 시간이라는 것이죠."
기껏 물어봐줬는데 싱거운 대답만 돌려 받으면 누구든지 조금은 김이 새게 되니까. 눈썹을 팔자로 눕히며 제법 뻔뻔하게 진실게임이라며 말한 신은 으앗, 하며 서둘러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 그래도 많아도 세 질문이에요...! 라며 말이다. 쿠키를 마저 입에 넣고 음료를 얌전히 들이킨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하얀 속눈썹을 내리깔며 신은 곰곰이 생각하듯 중얼거렸다.
"잘 몰라도 들어본 히어로라던가 그런 건 있을 수도 있는걸요. 저도 처음엔 스파이더맨 밖에는 잘 몰랐어요. 혹은 일본에만 존재하는 유명 히어로가 있다던가 그럴 수도 있잖아요?"
말은 그렇게 했으나 아무래도 정말로 이 분야는 잘 모르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기에 소라는 그 이상 무슨 말을 더 하지 않았다. 굳이 상대를 곤란하게 할 마음은 그녀에겐 추호도 없었으니까. 깜짝 진실게임이라는 것을 거론하는 것으로 보아 더더욱. 괜히 장난스럽게 어깨를 으쓱하며 소라는 작게 웃어보였다. 술이라. 술도 나쁘지 않았다. 그리 자주 먹는 것은 아니었지만 못 먹는 것은 또 아니었으니까.
"제가 뭘 물을 줄 알고 무엇이라도 라는 조건을 붙여요? 흑역사 캐내면 어쩌려고."
조금 얄궂게 이야기를 하며 소라는 가만히 주변을 바라보다 저 편에 있는 와인을 꺼냈다. 그리고 글래스를 가지고 온 후 거기에 반 정도 따른 후에 그에게 내밀었다. 뒤이어 자신이 사용할 잔에도 와인을 어느 정도 따른 후 가볍게 그에게 잔을 내밀었다.
"그렇다면 전 하나만 물을게요. 곤란하게 할 생각은 없으니... 이즈미 씨는 익스레이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스카웃 받을 때도 설명드렸다시피... 여기가 마냥 편한 곳은 아니기도 하고 솔직히 그 창립 이념. 그러니까 1년 뒤. 뭐, 사실상 몇개월 뒤겠지만요. 아무튼 익스퍼를 정식으로 공표할 때 충분히 익스퍼로 인한 혼란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만든 것이긴 하지만... 공감 못 하는 이들도 많잖아요?"
당장 위그드라실 팀에서도 그런 이들이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기에 소라는 넌지시 그렇게 물어보며 답을 기다렸다. 만약 그가 건배에 응해줬다면 아마 와인도 한 모금 깔끔하게 마셨을 것이다.
일본의 유명한 히어로, 영웅이라 한다면 역시 전국삼영걸戦国三英傑이 아닐지. 심히 서브컬처와는 멀고 옛것에는 더없이 찌든 생각을 떠올리며 신은 상대가 어려워 하는 이야기는 오래 물지 않는 소라의 수완 혹은 관용에 마음 깊이 감탄하고 또 감사했다. 흑역사 캐내면 어쩔 거냐는 말에는 읏, 소리가 절로 나왔지만.
"긋... 서, 설마 그러시겠어요... 저어 있죠, 소라 씨를 믿고 있어요, 응..."
분위기로 보아 아무래도 장난임이 분명하다... 장난... 맞지? 스스로 파 놓은 함정에 다소 긴장하는(...) 아래서도 정결히 움직이는 작은 몸은 여전히 군더더기 한번 비추지 않으며 소라가 건네는 잔을 두 손으로 정중하게 받는다. 감사합니다, 역시 놓치지 않음이다. 질문이 들려올 즈음에 웃음 섞인 안도의 숨을 뱉으며 가볍게 내민 잔에 제 잔을 맞부딪친 신은 맑게 울리는 유리 소리를 들으며 와인을 입에 머금고 질문에 관해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그러나 늘어지는 일은 없다. 중지를 검지 윗면에 걸치듯 겹치고 조용히 손가락을 퉁기면 검지 손톱이 내려놓은 유리잔에 닿아 짧게 공명하는 소리를 낸다. 파문을 그리는 붉은 와인을 내려보며 신이 살며시 눈을 내리감았다.
"우선은 제가 택하고 제가 임한, 성실히 일해야 마땅한 직장이지요. 네에, 꿈이 아닌 현실을 살아가는 만큼 이것은 어쩔 수 없는 대답으로. 마냥 편한 곳이 아니래도 이미 사전에 듣고 각오해둔 바예요, 이제 와서 힘들다고 투정하다니 그것은 직업의식을 갖춘 경찰로서 아무렇게나 뱉어서는 안 될 말이지요."
"창립 이념은 그 뜻이 좋아요. 익스퍼를 숨기는 일이든 널리 밝히는 일이든 각기 나름의 일장일단이 있기 마련이지요, 저는 진솔하게 말씀드리자면 공표하고 말고의 넓은 정책보다는 그 속에서 사람이 취하는 작고 작은 태도가 관건이지 않을까 싶기에 대중을 설득하고자는 그 노력이 자못 가상할 만하다고 보아요. 가부간 사람은 변화하지 않으면 나아가지 또한 못하니... 솔직해지자면, 변화하는 세상에 손톱 끝이나마 이바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 사뭇 분에 겨우면서도, 또 영광이라고 보아요... 이 역시 높은 보수와 함께 일에 성실히 임해야 할 하나의 동기가 되기도 하겠지요, 아무래도?"
눈을 뜨면 날카로운 세로동공이 박힌 붉은 동자가 드러난다. 말끝에서 장난스레 미소를 품은 신은 느리게 와인으로 목을 축이고 말을 이었다.
"물론 무엇이든 쉽게 풀릴 리가 없으므로, 결코 만만히 봐서는 안 되겠고, 그러므로 우리는 더더욱 노력해야겠죠. 아무리 힘들어도 주저앉지 않고 애쓰고 또 애쓰고... 그렇기에 사람이니까요. 이러한 일에 많은 좋으신 분들과 함께하는 기회를 누릴 수 있어 정말이지 기쁘기 그지없어요. 항상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있답니다. 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익스레이버. 조금은... 아니, 많이 재미없는 이야기였으려나요? 뜬구름 잡는 이야기였을지도 모르고... 으응, 그치만 봐주세요, 열심히 말했는걸......"
다른 것은 몰라도 맨끝에 살짝 애교를 섞은 것만은 그야말로 뻔뻔하다. 심지어 분위기나 술에 취한 탓도 아니다!
"말하고 보니 저도 궁금해지네요. 진실게임과는 별개의 질문인데, 반대로 소라 씨는 익스레이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신주: 이게 자기 과잉진압하는 버릇은 쏙 빼놓고 말하는 것 보소? 신: 으응, 봐주세요...(???)
익스퍼는 절대로 위험한 것만은 아니고 충분히 안전하게 통제할 수 있다. 익스퍼로 인한 범죄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고 막아낼 수 있다. 그리고 나쁜 익스퍼만은 아니다. 참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창립배경을 생각만 해도 소라는 가끔 머리가 아플 때가 있었다. 허나 그의 말이 그녀는 나름 마음에 드는지 미소를 지었다. 물론 저 말이 모두 참이라고 해야할진 알 수 없었다. 그냥 듣기 좋게 거짓을 섞어서 말을 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마지막 애교에는 그녀도 작게 웃고 말았다.
"이즈미 씨. 은근히 귀엽다는 말 많이 듣지 않아요? 아무튼 이즈미 씨의 생각은 잘 들었어요. 재미없지 않아요. 이즈미 씨의 생각이잖아요? 거기에 재밌고 재미없고가 어딨어요? 재밌는 것을 원한다면 흑역사를 말하라고 했거나 개그를 선보이라고 했지 않겠어요?"
이어 들려오는 물음. 자신은 익스레이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하느냐라는 말에 그녀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빠졌다. 자신은 익스레이버를 이끄는 지휘자였다. 물론 자신보다 더 상관도 있는만큼 자신이 최고 책임자는 아니었으며 중간 관리자에 지나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해서 생각이 아예 없는 것은 또 아니었다. 굳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자면...
"솔직히 말하자면 조마조마한 팀이라고 생각해요. 익스퍼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일환으로 만들어졌다고는 하지만 시작부터 라타토스크라는 이상한 집단에 의해서 목표가 크게 흔들리고 있기도 하고 팀원들을 바라보다보면 아슬아슬한 느낌의 분들도 있으니까요. 물론 그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에요. 허나 우리 익스레이버는 그 목표가 목표인만큼... 어느 정도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어야 해요. 강한 힘에는 강한 책임이 따른다. 제가 좋아하는 히어로 영화에서 정말 지겨울 정도로 많이 나오는 말인데 어쩌면 우리에게 그대로 해당되지 않겠어요? 우리들의 활동은 때로는 치안활동이 되지만 때로는 강력한 힘을 쓰는 폭력으로 바뀔 수도 있어요. 그렇기에... 조마조마해요. 좋은 의미로건, 나쁜 의미로건."
굳이 깊게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자신이 지금껏 받아본 보고서나 직접 본 것들를 토대로 이야기한 것이었으니까. 물론 딱히 다른 멤버들의 활동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었다. 허나 힘이 있는 팀이기에, 정말로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 이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팀이기에 조금 더 그 기준을 높게 볼 뿐이었다.
글래스를 괜히 손으로 빙글빙글 돌리다 소라는 스파이더맨을 토대로 한 쿠키를 입에 쏙 집어넣고 천천히 씹었다. 그리고 이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팀이기도 하고요. 중간관리자이긴 하지만 그래도 일단 지휘를 맡고 있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다들 좋아하거든요. 제가 직접 스카웃을 하기도 했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성과도 내고 있고... 범죄자들도 더 큰 범죄로 발전하기 전에 제압해서 막는데 성공했고요. 제가 처음으로 이끄는 팀이라서 그런지 정말 기억에도 오래 남을지도 모르겠네요."
처음에는 조금 부정적인 말을 했을지도 모르나 결국에는 칭찬을 하면서 소라는 오른손으로 엄지를 치켜세운 후에 신에게 내밀었다가 다시 손을 아래로 내렸다.
"그러니까 이즈미 씨 말고 그 '신'이라는 작자를 빨리 막고 싶네요. 저희 팀의 창립 배경에 가장 큰 방해물이 있다면 역시 그 '신'이니까요. 평범한 생활을 하던 이들이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대형참사를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일으킬 정도의 선동력은...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을 지경이니까요."
아오야.. 캡틴께 미안한 말씀 전하게 되었네요..🔨 죄송하지만 일상은 캡틴 레스를 막레인 셈으로 쳐도 괜찮을까요? 제 상태로 보아 빠르게 답레를 드리기가 힘든데 그렇다고 이 이상 오래 끌자니 난감하고 죄송스러운 탓이에요😥 정말 미안하답니다 반성문이라도 쓸 것임.. 3신주.. 앞으로는 현생 똑바로 살피고 일상 구하든 말든 할 것..()
>>438 여기 분들 대부분이 다 현생이 바빠서 스토리 참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분들도 계시는지라.. 그 점에 대해서는 그냥 차후에 정주행 정도만 하시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진행 위주라기보다는 진행과 스토리도 있는 상황극 스레가 모토인 곳이기 때문에 일상 위주로 즐기고 싶다면 그것도 환영이에요.
그간 참으로 여러가지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위그드라실 팀은 그 사건들을 해결하고 범인을 검거함으로써 확실하게 실력을 보였고 그 실적들은 상부에도 그대로 전해졌다. 그에 따라 위그드라실 팀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높아졌고 큐브 웨폰이나 1층 카페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던 청해그룹과 청해시 경찰 상부층은 서로 협력해서 위그드라실 팀을 표창하기로 했다.
청해 공원 바로 부근에 세워진 15층의 건물. 바로 이곳이 청해 그룹 일원들이 사용하고 있는 건물이었다. 물론 모든 층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고층 부분은 청해 그룹에서 일부 사용하고 있었다. 관광, 금융, 보험, IT 등등. 참으로 많은 분야를 청해 그룹은 담당하고 있었으며 그 건물에도 여러 사무실이 존재했다. 그러나 위그드라실 팀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14층에 있는 연회실이었다.
수많은 요리가 준비되어있고, 많은 경찰 고위 인사들이 자리잡고 있었던 바로 그곳엔 [익스레이버 위그드라실 팀 표창 기념식] 이라는 플랜카드가 걸려있었다. 층 하나를 그대로 연회실로 사용하고 있는 만큼 보통 넓은 것이 아니었다.
당연히 소라와 예성 역시 그 자리에 참석했고 다른 멤버들도 정말로 긴급한 일이 없었다면 아마 그 곳에 참여했을 것이다. 수많은 이들이 그들의 노력을 치하했고 격려했으며 악수를 하고자 하는 이들과 사진을 찍고자 하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지금까지의 노력이 허사는 아니었어요. 이렇게 상부에서도 우리의 노력을 인정해주잖아요?"
방금 전 고위 인사와 인사를 나누고 돌아온 소라의 표정은 상당히 뿌듯해보였다. 그만큼 지금 이 상황이 정말로 기쁜 모양이었다. 한편 청해그룹의 회장의 비서로 보이는 2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남성이 천천히 걸어왔고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했다.
"지금부터 저희 청해 그룹의 대표인 민광원 회장님께서 표창을 하겠습니다. 익스레이버 위그드라실 팀은 앞으로 올라와주십시오."
연회라. 물론 팀이 정당한 평가를 받는것은 좋은것이며, 항상 경계하고 있어야 한다던가 하는 그런 구닥다리스러운 말을 하려는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로서는 범죄자는 잡았을지언정 결론적으로 그들의 진짜 목표를 막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죠. 거기에 애초에 항상 공적에서 멀었던 그녀기에 이런 상황 자체가 달갑지 않기도 했고요.
"이거 맛있네요."
그렇기에 그녀의 포지션은 눈에 띄지않는 구석. 원래부터 남의 눈에 잘 안띄므로 괜찮을거라 믿고 있었답니다. 그래도 다른 팀원이나, 우리 대장님은 기뻐보이기에 뭐 가끔은 나쁘지 않네. 하는 생각과 함께 그녀는 마이크로 인해 울리는 목소리를 무시했습니다. 저런류의 표창은 팀원 한명 한명한테 주는게 아니라 팀전체에게 주는걸테니. 단상위에 올라가지 않아도 괜찮을겁니다. 사진에 찍힌다거나 하고싶지도 않고요.
누군가는 단상 위에 오르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누군가는 단상 위에 올랐을 것이다. 일단 연회장 내에선 익스퍼를 대대적으로 공표할 수 없는 만큼 표창 장면을 카메라로 담으려는 이는 없어보였다. 어차피 사진으로 찍고 보도하려고 해도 바로 요원들에 의해서 막혀버릴테니. 무엇보다 익스퍼에 대해서 모르는 이들은 아예 이곳에 오지도 못했을테니.
아무튼 이내 연회실의 앞문이 열리고 검은색 양복을 입고 있는 70대 정도로 보이는 남성이 천천히 안으로 들어왔다. 경제 쪽에 관심이 많은 이들은 알법한 인물인 민광원 회장이었다. 청해시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갑자기 등장해서 금액을 지원해서 정부에 협력했고 그것을 기반으로 청해시에서 수많은 사업을 시작해서 마침내 청해그룹이라는 거대한 그룹을 만들어낸 나름 전설적인 인물이라면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청해시를 만들기 이전에는 어디에서 뭘 했는지 밝혀진 것이 전혀 없는 나름 미스테리에 쌓여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새하얀 머리, 그리고 이마의 주름살은 세월의 여파를 그대로 받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으나 그 눈빛은 마치 독수리처럼 상당히 날카로웠고 전신에서 퍼지는 카리스마는 절대로 보통 인물이 아님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입가에 짓고 있는 미소에서조차 묘한 카리스마를 돋보이고 있는 그는 천천히 걸어와 단상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비서가 잡고 있는 마이크를 받아들었다.
"이렇게 표창식을 할 수 있게 되어 참으로 영광입니다. 저희 청해 그룹 소속의 연구원들의 연구 실적인 큐브 웨폰이 큰 도움이 되고 있는 것 같아 큰 영광입니다. 비록 저는 익스퍼가 아니나 제 딸이 익스퍼인만큼 이 청해시에 만들어진 익스레이버의 존재는 이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저희 그룹은 여러분들의 활약에 적극 동참할 생각이며...."
조금은 지루할지도 모르는 그런 말들, 허나 표창식이기에 이어질 수 있는 말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말도 그렇게 길게 가진 않았으며 이내 소라가 대표로 앞으로 나왔다.
"그럼 지금부터 이 표창장을 수여하겠습니다."
"네!"
-치직. 치지지직.
이내 소라는 앞으로 걸어나가 회장의 앞으로 두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회장은 챙겨온 표창장을 그녀에게 수여하려고 했다.
마리를 포함한 위그드라실 팀이 한 곳에 모였습니다. 다만 이번에 만큼은 본래 이유가 무언가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니 였습니다. 저희에게는 지금까지 있었던 온갖 일들이 있었지요 그리고 그런 것들을 좋든 나쁘든 결과를 내보였습니다. 그래서 그 결과를 본 이들, 소위 높으신 분들께서 이를 기념하고자 하든 축하하든지 간에 뭐든... 하고자 행사를 기획했었던 겁니다. 청해시의 으뜸이라고 할 수도 있는 자본인 청해 그룹에서 후원한 만큼 꽤 화려해요. 그만큼 사람도 많고요. 익스레이버란, 철저히 익명으로 행동하는 것을 모토로 하는 집단인 만큼 주요하고도 은밀한 연결점인 청해 그룹이 주도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것이겠죠
어떠한 의도든 간에 진심일지도 몰라요, 회장이 직접 행차하셨거든요. 굳이 말이죠. 그의 연설은 진부하고 지루할 법도 하지만... 나름대로 흥미로운 구석이 있기는 했습니다.
마리는 말없이 그저 표창식이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중요 인사가 있는 곳에는 일이 따르기 마련이죠. 뭔가 상당히 귀찮게 될 것만 같습니다... 신분상 의부적인 보호라던가 뭔가를 해주어야 될 것 같으니까요
마리는 부디 아무런 일도 없기를 바라지만, 버피의법칙이라고 혹시 아십니까? 간단히 말해서 가장 최악의 일은 언제든 솟아나올 수도 있다는 겁니다.
휴가중인 애쉬는 '몸이 좋지 않아서' 참석하지 않았다. 그가 애쉬가 정말 아프다고 변호 아닌 변호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는 연회에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으며, 그저 뒷짐을 지고 그 자리를 지키고 서있었다. 누군가 그에게 다가와 혹시 퍼디난드 베르너 씨.. 하고 묻자 눈을 한 번 흘기더니 유감스럽다는 웃음을 지어보였다.
"Sorry. I can't speak korean."
그렇게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을 슬쩍 밀어냈다. 영화배우니 뭐니 옛날 일인데도 이렇게 다가오는 것은 질색이다. 단상 위에 오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는 소극적인 사람이 아니지만, 공적인 자리에서는 묘하게 소극적이 됐다. 표창장이니 훈장이니 질린다. 고통과 노고를 치하한다 해도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으리라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연회실 문이 열리자 그는 고개를 돌렸다. 처음 보는 사람이다. 경제는 관심이 없고 오늘 쓸 돈이 더 중요한 사람이라 그런가? 그는 지루할지도 모르는 말 사이로도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게 무슨 소리람.
그는 소리가 들렸던 방향을 찾기 위해 슬쩍 익스퍼를 썼다. 어디에 있을까, 소리가 어느쪽에서 들렸을까. 기억을 더듬는다. 누군가 콕 찌르며 혹시- 사진 한장만.. 하고 속삭여도 무시하며.
누군가는 신경을 썼을지도 모르며 누군가는 적당히 넘겨버렸을 치직 소리는 정말로 집중해야 겨우 들릴 정도로 작은 소리였으나 그 크기는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자신의 기억을 더듬으며 소리가 나는 방향을 떠올려보지만 역시 좀처럼 쉽게 방향을 찾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허나 조금 더 집중하다보면 천장 부근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허나 그것까지 파악하기는 아무래도 바로 옆에서 계속 사진을 요구하면서 콕콕 찔러대는 철없는 순경 때문에 시간이 걸린 편이었다. 만약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봤으면 스탠드에서 이미 엄청나게 커다란 스파크가 계속 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모두의 익스파 탐지기에 S클래스의 익스파가 탐지되었다는 정보가 떴을 것이다.
표창장을 막 잡는 순간이었다. 마치 타이밍을 잰 것처럼 천장의 스탠드가 일제히 박살났고 그와 동시에 소라를 향해 전기가 마치 번개처럼 덮쳤고 연우의 쉴드를 너무나 손쉽게 박살내버리면서 소라의 몸에 명중했다. 어? 하는 표정을 짓는 것과 동시에 소라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그리고 그 혼란을 쉽게 잠재워줄 수는 없다는 듯 다른 전기제품들이 일제히 폭발하며 검은 연기를 모락모락 일으켰다.
"소라 선배!!"
바로 옆에 있던 예성은 물론이고 비서에 회장까지 순간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단 예성은 상당히 아파하는 소라를 부축하듯 일으켜세웠다. 생각도 못한 상황 속에서 정말 제대로 맞았는지 소라는 표정을 잔뜩 찡그렸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 아. 표창장은 무슨. 그래도 이렇게 다 모여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이내 내부 방송 시스템이 울려왔다. 그리고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최근에 들어온 이가 아니라면 누구나 쉽게 간파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유나리. 이전 자신을 '나이트'라고 칭한 이의 목소리였다.
-익스레이버 위그드라실 팀. 오랜만이야. 내 목소리 잊진 않았겠지? 지금 당장 옥상으로 올라와. 아. 올라오지 않아도 괜찮아. 물론 그럴땐 방금 너희 지휘관처럼 쓰러지는 이가 더 늘어날 뿐이야. 예를 들면 이렇게.
이내 바로 근처에 있는 아직 깨지지 않는 전구가 펑 터졌고 그 속에서 전기가 번개마냥 회장을 향해 날아갔다. 바로 옆에 있던 비서가 반사적으로 몸을 던졌기에 명중하진 않았지만 회장의 머리카락 부분을 노린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이상한 치직 소리가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화연은 이리저리 소리의 진원지를 찾다가 이것이 천장 부근에서 들려오는 소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화연이 고개를 들어 위를 보자 스탠드에서 엄청나게 커다란 스파크가 계속 튀고 있었다.
"뭐야 저거?"
그때, 화연의 익스파 탐지기에 S클래스의 익스파가 탐지되었다는 정보가 떴다. 화연의 머리속에서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소라가 표창장을 막 잡는 순간, 스파크가 흐르던 천장의 스탠드가 일제히 파괴되며 소라에게 강력한 번개가 내려쳤다. 연우의 쉴드가 박살나며 번개는 소라에게 명중했다.
"소라씨!"
소라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자 그동안 조금씩 희미해져가고 있던 과거의 기억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히 떠올랐다.
전신 화상으로 고통스러워하며 자신의 품에서 숨을 거둔 서경위의 모습이, 울며 사과하는 자신에게 네 탓이 아니라며 위로의 말을 건넨 그녀의 목소리가, 그녀의 살 타는 냄새와 인간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게 타 딱딱하게 굳어버린 그녀의 살점이, 날 잊은 동안 행복했었냐며 묻는 것만 같았다.
"빌어먹을...제기랄!!"
나이트, 나리었다. 지난번 실종 사건 때 붙잡히 못했던 그녀가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이제 익스레이버와 선량한 시민들까지 위협하고 있다. 하찮은 하룻강아지가 같잖은 힘을 얻었다고 호랑이 마냥 설쳐대는 꼴에 화연은 크게 분노했다.
함정이라고 가면 안된다고 하는 예성의 합리적인 판단에도 그는 이대로 있으면 모두 다친다며 옥상으로 뛰어올라갔다.
오.... 결국에는 이렇게 되고 말았군요. 무언가가 모처럼의 행사를 완벽한 순간이라 할 만큼 훌륭하게 지체 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익스퍼겠죠. 탐지기가 그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니더라도 이건 너무나 작위적인 결과입니다.
마리로서는, 상황은 나름 심각해 보이고 어떤 식으로든 심심할 이유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이곳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이가 당황하거나 불쾌하거나 겁을 먹거나 할 수 있겠으나... 운명의 작곡가는 이 상황을 아주 좋아할 것 같아요. 서정적이고 잔잔함에서 격정적이고 가파른 변화에 이르는 곡조. 이런 상황을 쓰지 않고는 못 참는다 거겠죠. 아니, 애초에 참으려 하기는 했었을 까요?
사건이 있는 곳에 위그드라실이 있는 것인지, 위그드라실이 있는 곳에 사건이 모이는 것인지는 구분은 별 의미가 없을 겁니다.
어떻게든 해서 방송실을 점거한 것인지 아니면 모종의 다른 방법을 사용한 것인지 행사장에 울리는 목소리가, 당당히 자신이 이 상황의 주모자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암살자로서는 일하기에는 그다지 적절하지는 않겠네요.
"그럼, 어떻게 할 건가요? "
네, 함정입니다. 아니, 함정조차 못 되는 매우 노골적인 행위입니다. 마리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고자 하는지 묻듯이 말했습니다.
그는 눈을 아예 감고 집중했다. 무시해야 한다. 이런 일이 어디 한두 번이었나. 무시 속에서 들려온 소리에 그는 눈을 떴다. 이미 스탠드가 박살나고 전기가 소라에게 내리꽂힌 뒤였다. 소라는 쓰러지고, 전기제품이 일제히 폭발하고 스피커로 익숙한 목소리가 울렸다. 아는 목소리다. 그는 자신이 혼나던 때를 상상했다. 퍼디난드 테이 베르너, 너는 외출 금지다. 그는 놀랍게도 저 어린 미성년자 학생을 너그럽게 봐줄 요량이었다. 잡히면 이번에는 외출 금지다. 어디서? 익스퍼 감옥 안에서. 옥상으로 올라오라는 목소리가 어찌나 당당한지, 그는 코웃음을 쳤다.
"선택권 어쩌고저쩌고.. 응, 어쩔티비."
지금 어쩔티비 운운하는 이 23살.. 그러니까 이 23살.. 앞날 창창한 녀석은 아까 전에 한국어 못한다 딱 잘라 말했지 않나? 그는 주변의 시선을 신경도 쓰지 않고 순경을 잠시 바라봤다. 이 친구가 조금 조용히 해줬다면 좋았을 텐데.. 치밀어오르는 감정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어깨 위에 손을 얹어 두어 번 툭툭 두드렸다.
"다시는.. 그러지 마요. 우리는 경찰이니까 사회에 모범이 되어야지. 사진이 필요하면 이따가 줄게요. 그리고 예성 씨, 어쩔 수 없잖아요."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우리가 그렇다고 안 가면 여기 사람들로 통구이를 만들겠다 하는데, 단순히 그러지 마! 하고 훈계 한다고 들어 먹겠어요?"
아직 민증 검사도 못하고 술담배도 못하는 어린 애가 이런다는 상황 자체를 막아야 하니 경찰이 존재하는 거 아닌가. 물론 이 애는 좀 선을 넘긴 했는데. 그는 올라가겠단 의사를 표명했다.
"...어떻게 할 것도 없지 않습니까. 사람을 대피시켜야합니다. 저런 도발 따위에 넘어가서는..."
허나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없이 대부분의 대원들은 옥상으로 향하려는 듯 했다. 무엇보다 퍼디난드는 어쩔 수 없다고 이야기를 하며 올라가게 할 것을 종용하고 있었다. 이미 올라가버린 이도 있었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예성은 눈을 감았다. 물론 소라는 고통스러워할 뿐, 숨은 제대로 쉬고 있었고, 의식이 끊어진 것도 아니었다. 이내 소라는 기침소리를 내면서 겨우 입을 열었다.
"괜찮으니까...옥상으로 올라가세요. 다들. ...함정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경찰이니까 함정으로 뛰어들지 않으면 안될 때도 있잖아요."
"하지만!!"
"괜찮아. 괜찮아. 그러니까..."
자신은 괜찮으니 옥상으로 올라가라고 하는 소라의 말에 예성은 이를 꽉 악물었다. 이어 예성은 아직 남아있는 이들을 바라보며 소라 대신에 지휘하듯 이야기했다.
"저는 일단 현장 수습을 맡겠습니다. 혹여나 모두가 올라가면 또 무슨 일이 일어날 때 대처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옥상은 맡기겠습니다. 허나 반응기에 나온 익스파 반응은 S클래스. ...조심해야만 합니다."
아무래도 예성은 소라도 있고 현장을 수습하거나 기타 등등의 일이 있는만큼 이 자리를 떠날 생각은 없어보였다. 어쩌면 이것을 노리고 한 행동일지도 모를 일이었고, 적어도 현장의 누군가는 아무도 모르게 피식 웃고 있었다.
한편 옥상으로 올라가면 정말로 의기양양하게 서 있는 나이트. 유나리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허나 그 표정은 여유로움과는 달리 독기가 가득 차 있는 표정이었다.
"만나고 싶었어. 익스레이버 위그드라실 팀. 이렇게 올라왔으니 얼마나 기쁜지 몰라. 너희에게 전에게 당한 치욕이 너무 아프고 아파서...얼마나 분했는지 몰라. 그래서 아버지를 졸라서 이렇게 왔어. 너희들이 다 모이게 될 바로 이곳이야말로 너희들 전원을 모두 없애버릴 절호의 기회이자 무덤으로 삼기 딱 좋은 곳이니까."
완벽한 적대적인 목소리를 내뿜는 와중 그녀의 몸 여기저기에선 강한 스파크가 튀고 있었다. 이전 대치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위압감을 느낀 이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이번만큼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 느껴졌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익스퍼와 익스퍼가 아닌 이들의 조화를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 중 하나로서 결성된 익스퍼로 이뤄진 경찰 팀. 익스레이버. 허나 그 팀이 없어진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자. 조금은 기다려줄게. 마지막으로 유언을 남길 전화할 시간 정도는 말이야. 아니면 지금 이렇게 있어줄테니 공격해도 좋아. ...하지만 공격하는 순간, 나도 공격할거야. 감당할 수 있다면 해보던지."
화연의 몸에선 미처 완벽히 컨트롤하지 못한 열기들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유나리의 강함은 잘 알고 있다. S급의 힘은 A급의 힘의 최소 10배, 죽었다 깨어나도 지금의 자신은 그녀를 이길 수 없다는 건 지난 번 전투로 누구보다도 더 잘 알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 녀석을 제압하지 않으면 또 누군가 다칠 것이고 또 누군가가 죽는다. 또 그 장면을 봐야한다. 그럴 바에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생각했다.
"혓바닥이 길다?"
농담은 하지 않겠다 선언했지만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농담
화연은 손을 위로 쳐든 후 여러개의 화염구를 발사했다. 화염구를 허공에서 유유히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등과 다리에서 불꽃을 발사하여 나리에게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미리 만들어 놓은 화염구가 그녀에게 날아갔다.
경찰이기 때문에 함정에 뛰어 들어가야 할 때가 있다. 그는 잘 알고있다. 지금껏 여러 번 겪었고, 이미 한 번의 큰 상실도 겪었다. 그럼에도 그는 놓을 수가 없었다. 올라가라는 허락이 떨어지자 그는 올라가기 전, 잠시 고민했다.
"소라 씨, 죄송한데. 그.. 아시죠, 조심해야 해요. 그 이상한.. 컨셉질 하면서 자기가 뭐.. 막.. 알죠, 아직도 자기가 최고인 줄 아는.. 머저리들 모임. 라..따뚜이? 아무튼간에, 걔네 통수가 한두 번인 것도 아니고. 내가 남아도 될까요?"
말은 경박해도 눈은 아니었다. 그의 한구석에서 계속 치솟는 감도 있었다. 고작 한명만 왔겠어? 저번에 왔던 그 이상한 조력자도 있을 것이 뻔했다. 적어도 이 사이에 섞여있거나, 아니면 밑에서 수작질을 하거나. 감이 좋지 않다. 이 빌어먹을 감이 그때 있었다면 참 좋을 텐데. 그는 조용히 눈을 흘겼다. 종용하긴 했어도 안 가는게 본인이 생각해도 이상했는지. 그리고 흐르듯 중얼거렸다.
"적어도 의심가는 사람 있으면 권총으로 쏴 버려도 오늘은 괜찮을 거야. 아, 높으신 분들 앞에서 이런 말은 좀 그랬나..? sorry. 아직 나는 귀여운 23살이니까. 농담이고.. 적어도 경호 경력 있는 내가 남는게 좋을 것 같기도 해서."
"당연한 말씀을... 그것은 기본적으로 행해지도록 해야 될 것이니까요. 저의 물음이란..... 저 함정 아닌 함정을 어떻게 하고 싶으시냐는 거죠. 결국, 처리해야 될 대상이지 않겠나요? 뭐, 다수결이라 한다면 답은 이미 나와 있는 것 같네요"
마리는 이러한 상황에서 어쩌면 태평하게 보일 수도 있도록 차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능글맞은 태도로 말했습니다. 이렇게 떠보기 했지만 이미 저 초대장에 응한다는 결과는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마리라고 해서 예외는... 아닌 것만 같았죠
"네, 아무래도 그래야만 할 것 같네요. 이렇게나 차려진 무대를 올라서라고 노골적으로 하고 있지 않나요. 딱히 경찰이라서 항상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지만요. "
마리는 소라의 말에 고개를 살며시 끄덕이며 긍정하면서도 굳이 그렇게 마치 딴지걸듯이 말했습니다. 마리가 이러한 태도라고 해서 소라를 걱정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생각해 봅시다. 지금 여기서 마리가 소라를 향해서 걱정한다고 한들 그녀가 나아지기라도 한 답니까? 그보다는 긴장도, 당황도 하지 평소 행실로 임하는 것이 더 나은 행동이 될 겁니다.
"알겠어요. 그럼, 아무쪼록 몸조리 잘해 주세요... 어쩌면, 저 자신에게도 해당 하려나요. 후훗."
곧바로 마리는 그렇게 말하고는 뒤이어서 살짝 웃어 보이고는 했습니다. 그렇게 마리는 행사장을 벗어나기로 했습니다. 목표는 당연하게도 건물의 최상층, 옥상이라고 불리는 장소입니다.
그렇게 하여 마리는 이 상황의 주모자와 마주하였습니다. 정말이지 저 당당한 품새를 보세요. 거기에 자신의 의사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건 결투라는 느낌이군요! 음, 좀 웃긴 표현이라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래도 거침없이 이런 상황을 만든 사람이라는 느낌이군요. 그래서 오늘에도 뭔가 말이 많은 악당 씨와의 싸움이 되겠습니다
고작 고등학생 정도였으나 이전 학생들을 납치하고 공원 관리인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고 음독으로 자살처럼 보이게 하는 범죄를 저지른 경력이 있었던 것일까. 나리는 화연의 말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피식 웃으면서 올거면 오라는 듯이 도발을 걸었다.
"전에도 그랬지만 그렇게 강한 척 하는 이유가 뭐야? 유난히 혼자만 강한 척 하네. ...그러지 마. 진짜 약해보이거든."
이내 화연이 자신에게 공격을 가하자 나리는 조금도 회피하지 않았다. 이내 화염구가 모두 파직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졌고 화연이 그 상태에서 뒤로 물러나지 않았으면 아마 다리 부분에서 강력한 찌릿함을 느끼고 절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만약 이상함을 느끼고 뒤로 물러섰다면 더 이상의 피해는 없었을지도 모르나 확실하게 그녀의 주변에서 강한 스파크가 튀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게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길면 어때? 딱히 너희 허락받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행동하는 것도 아닌데. 아무튼 다 올라온 것 같진 않아서 아쉽네. 뭐, 상관없어. ...룩이 알아서 해주겠지."
끝 부분은 명백한 혼잣말이었다. 이어 나리는 화연을 손가락으로 가리켰을 것이다. 그 순간 번쩍하는 소리와 함께 뭔가가 정말로 빠르게, 순식간에 화연의 몸을 향해 찌릿하는 느낌으로 날아갔을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방어를 해주거나 혹은 불길한 느낌에 몸을 옆으로 치우거나 하지 않았다면 정말로 아팠을지도 모른다.
"익스퍼와 비익스퍼. 둘은 공존할 수 없어. 아니. 공존해선 안돼. 그러니까 너희들이 슬슬 거슬리다고 아버지는 판단하고 계시거든. 그러니까 모두 죽어줘야겠어. 오늘 이 자리에서 말이야."
<연회실 루트>
남겠다고 이야기한 퍼디난드의 말에 소라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예성 역시 일단 주변을 경계하듯 바라봤다. 확실한건 회장은 일단 다른 경찰들이 모두 앞장서서 모셔서 대피시키고 있었다. 그만큼 높은 사람이니 제 1순위로 대피시키는 것일까. 다른 고위인사층도 빠르게 대피하고 있었으며 이 연회를 준비하고 있던 직원들도 정말로 빠르게 대피하고 있었다.
"그럼 일단 소라 선배는 맡기겠습니다. 저는 다른 민간인들을 대피시키겠습니다. 제 능력이 여기서는 도움이 될테니까요."
설사 누군가가 길을 막는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오버익스파를 사용하면 길이야 얼마든지 새로 만들 수 있었다. 그런 것을 노리는지 예성은 빠르게 자리를 대피했다. 그리고 아직 대피하지 않은 회장의 비서인 남성은 소라와 퍼디난드를 바라보면서 다가갔다.
"그쪽 경찰 분도 다른 분들을 대피시켜주지 않겠습니까? 그 아가씨 분은... 그러니까 전기를 맞은 분은 제가 보고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가슴 쪽에 맞은 것은 아닌 것 같았으니 크게 위험할 것 같지도 않으니까요."
오른쪽 손을 주머니에 넣고 있던 그는 자신이 보고 있겠다는 듯이 다른 이들을 대피시켜달라고 요청했다.
적어도 자신의 조언이 먹혔으니 좋은 일이다. 이렇게 좋은 직장이 어디 있나, 부하직원이 뜻을 얘기하면 존중해준다. 그렇기 때문인지 고압적인 곳에서 살아온 그에게 이 직장의 동료들이 특히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회장이 대피하는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다, 다른 고위인사층도 대피하는 모습을 확실하게 기억해뒀다. 혹시라도 누군가 건물에 남았다 다쳤다는 기사가 뜨기라도 하면 그는 그 거짓말을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좋아요, 알겠습니다. 명령은 그걸로 확실한 거겠죠."
그는 뭔가 생각 했는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것이 오늘 또 무슨 일을 치겠거니 싶은 미소였다. 그럼에도 사람 좋게 손 한 번 흔들어 배웅하곤 소라의 곁에 섰다. 그리고 천천히 한쪽 무릎을 굽혀 바닥에 대곤 소라를 살폈다. 전기에 직격했으니 내장기관이 상했을지도 모른다. 외상이 있는지 한 번 훑으려 했고, 내상이 있는지 확인하려 했던 찰나. 그는 고개를 돌렸다. 참 이상하단 말이지. 비서가 왜 회장을 수행하지 않고 곁에 남는 거지? 그가 알기로는 그래서는 안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죄송합니다, Sir. 저는 직계적인 상관의 명령이 아니라면 받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제가 맡은 명령은 저희 팀의 지휘관을 지키라는 것이었고, 실례인 발언임은 알지만 회장님의 비서인 선생님께서는 권한이 없으며 저희 쪽에서 대피를 먼저 도와드려야 할 분이기 때문에 감히 지휘관을 맡길 수 없습니다. 말씀만으로도 감사하지만 제가 다른 사람을 통해 선생님의 대피를 도와드리면 어떻겠습니까."
손을 꽂아 넣은 주머니를 보며 그는 무뚝뚝하게 답했다. 고압적인 태도 같기도 했고, 경계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아니, 지금 상황에서 보면 쓸데없이 원리원칙을 중요시 하는 FM같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는 부동적인 자세를 유지했다. 경박한 모습 온데간데없고 붉은 눈은 결의에 차있다. 경찰 모드다.
왜 센척을 하냐는 나리의 말에 화연은 구태여 답을 하지 않고 계속해서 공격을 이어나갔다. 답을 할 이유도 없었을 뿐더러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으니까. 강력계에서 일하며 생긴 일종의 습관이었다. 여유로운 척 강한 척 범죄자들에게 강하게 나가며 기선제압을 하고 체포한다. 하지만 이것이 먹히는 건 잡범에게서나 가능하지 지금 그의 눈 앞에 있는 진짜 강한 적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나리의 말처럼 약해보이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
지금 그의 눈 앞에 있는 건 단순 조직 폭력배 같은 일반 범죄자가 아니다. 살아있는 발전기이자 마음만 먹으면 여기 있는 모두와 도시 전체를 파괴할 수 있는 테러리스트다. 화연은 다리 부분에서 강력한 찌릿함을 느끼고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주변에서 강력한 스파크가 튀고 있었다.
"룩?"
단순 기물의 가치는 퀸 다음으로 강력하다. 지금 상대하는 나이트도 버거운 데 그 이상인 룩은 대체 얼마나 강하다는 소리인걸까? 나리가 화연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무엇인가가 발사되었으나 연우가 방어를 해주었다. 화연은 나중에 고맙다고 말하기로 마음먹으며 손을 뻗어 화염을 뿜어내었다.
우선 예성에게 무전을 걸어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아래층에 룩이 있다면 남은 팀원과 회장 일행도 위험할 것이다.
"지X하네. 익스퍼가 뭐 벼슬이야?"
익스퍼와 보통 사람은 다를 바가 없었다. 누군가는 빨간 머리를 타고나고 누군가는 검은 머리를 타고난다. 누군가는 녹색 눈을 타고나고 누군가는 갈색 눈을 타고난다. 누군가는 익스퍼를 갖고 태어나고 누군가는 익스파를 갖지 못한 채 태어난다. 그저 그뿐이었다. 우월한 종족도, 신도 뭣도 아니라고.
너같은 새끼들은 이미 충분히 많이 봐 왔다.
"저번에 그렇게 당하고도 아직 털 아가리가 남았나 봐? 다친 데 마데카솔은 발랐지?"
노골적으로 비웃으며 재빨리 큐브 웨폰을 꺼냈다. 그대로 우선 전방에 선 화연을 향해 한 발. 큐브 웨폰을 통해 또다시 전격을 날릴 수도 있지만, 부상자가 한 명이라도 있는 이상 그녀는 큐브 웨폰을 꺼내들 수밖에 없었다.
쏟아진 불덩어리는 맥없이 소화되어버린 모습을 보았습니다. 순간 빛이 반짝여 가르고 , 어디선가 발하는 것도.
서로 공존할 수 없다며 열 띈 언성을 높이는 모습의 자칭 괴물 사냥꾼도 그렇고, 저기도 그렇고 여기도 그렇고 왜 저런 아무래도 좋을 주제로 이렇게나 열심인지. 뭐, 사냥꾼 씨와는 목적성이 좀 다르긴 합니다. 그 쪽은 절멸을 원하고 이쪽은 어느 한 쪽만 남기를 원하는 것이니까요. 아무튼 그러한 열정과 행동력을 더 나은 방향으로 두거나 그냥 살면 안됩니까? 익스파는 익스퍼든 뭐든 어떻습니까. 하지만.... 인류라는 족속은 원래 그런 존재들 이였죠.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봅니까? 그건 미래에서 마주 보면 알 게 되겠죠. 역사가 그것을 증명할 것입니다.
마리는, 이 자리에 올라섰고 때가 되었습니다. 이제 물러설 수 없습니다. 그러니 무엇이든 해야만 합니다. 마리의 머리 위해서 가시덩굴로 엮고 매듭지어진 것처럼 보이는, 하나의 가시관이 나타나고 그녀의 몸이 바닥으로부터 떠올랐습니다. 마리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적당한 속도감으로 주변을 돌 면서 상대를 시야에 그대로 넣고 있었습니다.
마리는 바닥에서 무수히 뿜어져 나오는 가시 덩굴들 하여금 적의 그 신체를, 특히 사지를 후려치는 것을 시도 해보기로 했습니다. 일단, 적의 행동에서 배워야 하는 법입니다
연우의 방어로 인해 화연이 추가 공격을 맞진 않았겠지만 적어도 패널은 산산조각 났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이전에도 느낀 적이 있을 강력함. 그것은 명백히 S급과 자신들의 실력 차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물론 화연의 상처는 케이시가 치료했기 때문에 더 아프거나 하진 않았을 것이다. 한편 자신을 가시덩굴로 후려치려고 하는 그 모습을 바라본 나리는 그 공격을 피하려고 했다. 화연이 돌진했을 때와는 명백하게 다른 행동이었다. 왜 이번엔 회피를 시도한 것일까? 아무튼 회피를 시도하긴 했으나 완전히 회피하진 못했는지 덩굴이 일부 그녀의 몸 주변에 명중했고 팍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주변에 펼쳐져있던 전력이 잠시 사라졌다. 물론 빠르게 나리는 다시 손가락을 튀었고 그 손가락 끝에서 다시 전력이 생성되어 그녀의 몸을 다시 감쌌다.
"말했잖아. 너희들에게 당한 굴욕과 치욕을 지금 여기서 씻어버리겠다고. 무엇보다 아버지는 지금 너희들의 존재를 결코 용납하지 못하고 있어. 물론 너희들의 아무리 발버둥을 친다고 한들, 아버지의 계획에 차질은 없겠지만 만에하나라는 것이 있잖아? 슬슬 거슬리는 존재가 되었다 이거야. 익스레이버 위그드라실 팀. 아. 참고로 내 아버지는 한 명 뿐이야. 예나, 지금이나. 그리고.. 벼슬 맞는걸. 우리가 가지고 있는 힘의 진짜 의미. 그것은 말 그대로 벼슬이자 축복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어. 그렇기에 나는 아버지의 '병기'로서 존재하는거야. 아니. 애초에 모두가 다 '병기'지만 말이야. 단지 그 사실을 외면하거나 모르는 척 하는 것 뿐이야. 그렇잖아? 이 힘으로 정말로 다른 이를 구하고 지킬 수 있다고 믿는거야?"
태연하게 손을 탈탈 털면서 나리는 너무나 웃기다는 듯이 키득거리면서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착각하지 마. 우리들은 다른 누군가를 지키거나 구하기 위해서 존재하는게 아니야. 우리들은 말 그대로 '병기'란 말이야. 사람을 죽이고 없애버리기 위한 수단. 그걸 위해서 존재하는 힘이란 말이야. 비익스퍼들은 우리들을 보고 '괴물'이라고 부르잖아. 왜겠어? 자기들에겐 그런 힘이 없잖아. 힘이 없는 자가 힘을 가진 이를 배척할 때 가장 많이 쓰는 표현이 바로 그 괴물이라는 거잖아. 수도 없이 들었을 거 아니야. 그 일을 하면서 말이야."
이어 그녀는 손 끝에서 스파크를 강하게 튀겼다. 그리고 마침내 최후통첩을 날렸다.
"전부 죽여버리고 싶지만 말이야. 그래도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물어보라고는 해서 의미가 없다는 건 알지만 묻겠어. ...우리와 함께 할 생각 있어? 있다면 아마 아버지가 지금까지의 일은 모두 잊고 폰의 자리는 줄 것 같은데 말이야. 잘 생각해. 익스퍼와 비익스퍼의 공존? 그런 허황된 것을 믿고 움직이는거야? 진짜로? 실제로 너희도 안 믿잖아. 비익스퍼는 절대로 익스퍼를 인정하지 않아. 너희가 아무리 노력하고 열심히 한다고 한들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아. 우리들은 그저 병기일 뿐이니까. 그래. 군림하고 위에 올라서기 위한 수단이란 말이야."
<연회장 루트>
아마 케이시의 통신은 퍼디난드에게도 전해졌을 것이다. 허나 그 사실을 당연히 알리 없는 비서는 무뚝뚝하게 대답하는 그를 바라보면서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잖아요? 물론 저도 대피해야겠지만... 지금 경찰 분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많으니까 그 분들을 도와달라는 의미에서 말한 것 뿐이라구요."
말 그대로 자신은 대피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었다. 이유가 무엇인진 아마 물어도 가르쳐주지 않았을 것이다. 두 걸음 정도 가까워졌을 무렵 아마 퍼디난드의 탐지기에 S급 익스퍼 반응이 캐치되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틀림없이 이 연회장 어딘가였다. 어딘가에 장치가 숨겨져있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일까?
한편 비서는 살며시 소라를 일으켜세워주려는 듯 손바닥을 아래로 해서 소라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 부축이라도 하려는 것일까?
"하지만 아까 아버지에게 '졸라서' 온거라고 했죠. 저희를 상당히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거 같은데 어째서 당신이 오는데 조를 필요까지 있는거죠? 솔직히 말해서 전력차는 확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정말 거슬리다면 그냥 모든 전력을 투입해서 밟을수도 있었을텐데요."
무언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건지. 아니면 그녀의 예상대로 저들은 제대로 된 인력은 적어서 '다른 목적' 때문에 전원이 나설 상황은 아닌건지. 그 사이에 패널이 깨지며 통증이 올라왔지만 표정하나 바꾸지 않은채 그녀는 서있었습니다. 깨진 패널만큼 다시 패널을 전개하고. 최대한 아군을 보호하는 포진을 세웁니다. 패널 하나로는 얼마 버티지도 못하니 각 동료들마다 패널을 3~4개씩 배치. 자신의 방어는 비교적 허술해질 수 밖에 없지만..
"구할 수 있어요. 당신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다른 이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저희의 실적은 즉 사람을 구했다는 결과 그 자체니까요. 그들이 받아들이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결론적으로 폭주하는 기차를 멈추고 가라앉는 배에서 사람들을 구해냈으니까요."
그녀는 눈을 깜박이고나서는 말을 이었습니다.
"그리고 병기라는것도 결국 쓰기에 따라 다른거죠. 예를들면 이 총을 봐봐요. 이걸로 은행강도를 쏴 죽였다고 쳐요. 사람을 죽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은행강도에게 당할뻔한 많은 이들을 구한게 되는거죠? 애시당초 이런건 상당히 애매한 문제라구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그 어조에 설득을 하고싶은 의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남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굳이 익스퍼가 아니더라도 어릴때부터 그녀는 남들과는 다른 취급을 받았으니까요. 그러니까 솔직히.... 아예 이해하지 못할것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익스퍼와 비익스퍼의 공존같은건 상관없어요. 그냥 경찰이니까 경찰로서 일을 할 뿐이에요."
갑작스레 패널들이 사라졌습니다.
"그들이 받아들일리 없죠. 하지만 기왕 스카웃 하는거면 대답해줬으면 좋겠는데요. 당신들은 뭘 하려는건가요? 단순히 비익스퍼와 익스퍼 사이를 갈라놓는게 목적은 아닐거 같아서 묻는거에요. 그 이상의 무언가 있는건가요?"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폰보다는 높은 직위를 주면 더 좋을텐데 말이에요. 당신들은 가능하죠? 익스파를 성장시키는거."
패널이 산산조각 났다. 더 이상의 방어는 기대하기 어려워보였다. 온 몸의 상처는 케이시가 치료해줘서 더 이상 아프다거나 하진 않았다 그때, 화연의 눈에 특이한 장면이 보였다. 나리가 마리의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마리의 공격이 나리에게 먹힌다. 화연의 공격을 피할 가치도 없다는 듯 공격을 그대로 받아낸 것과 달리 마리의 공격은 공격을 미룰 정도로 적극적으로 회피했다. 무엇보다 전기가 갑자기 사라지는 타격을 입혔다. 왜 갑자기 행동을 달리했는 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마리의 공격이 그녀에게 위협이 된다는 사실은 틀림없었다. 화연은 나리를 도발하여 그녀가 최대한 자신을 공격하도록 유도하기로 한다.
"어이쿠, 여기서 씻으면 공연음란죄로 잡혀가 친구야."
등에서 불꽃을 뿜어내어 하늘로 날아 올라갔다.
"그게 너희 친아빠라고? 금태양을 날려버리던 민폐쟁이가?"
빠른 속도로 하늘을 날며 불꽃을 쏘아댔다.
"두가지가 틀렸어, 우리를 보고 괴물이라고 한게 아니야, 널 보고 괴물이라고 한거지. 능력 때문에 괴물이라고 하는 게 아니야. 네 성격 때문에 괴물이라고 한거지. 그들은 인간에게 괴물이라고 한게 아니야. 괴물에게 괴물이라고 한거지"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지? 난 네가 힘센 중2병으로 보이니 나도 힘센 중2병이겠네? 아! 그래서 이렇게 센척하지"
룩이 있을 지도 모른다. 그는 케이시의 무전을 전해듣고 주머니의 시선에서 다시금 얼굴을 향했다. 네가 룩이고 그 얼굴이 맞다면 내가 평생 기억하겠다. 그런 의미였겠지만 눈앞의 남성이 뭘 알겠는가. FM에 불과한 사람의 무뚝뚝한 시선으로 봤겠지.
"Sir, 비상 상황인 만큼 인원의 분배는 상부에서 정해두었고 저희는 그걸 따질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빠지는 순간 무너지는 것이 대열입니다. 컴플레인은 달게 받겠습니다만, 지금 상황은 테러입니다. 현재 테러 인원이 정확히 추정되지 않았을 뿐더러 테러 대응반이 없는 이상 민간인의 도움 요청이라 해도 저희는 받들어진 명령대로만 따라야 합니다."
그는 탐지기의 반응에 눈을 슬쩍 흘겼다. 어딘가에서 반응이 있었다. 그는 조용히 앞으로 나섰다. 둘의 사이를 가로막을 듯 하면서도 소라를 부축하려는 것을 먼저 행하려 했다.
"..대피하십시오. 회장님께서 애타게 찾고 계실 겁니다."
오늘 난 조졌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렇지만 누구든 의심하고 봐야했다. 선의와 호의엔 늘 대가가 따르니까.
하! 아무래도 퍼즐의 조각을 하나 찾은 것만 같습니다. 타오르는 불 앞에서도 당당히 맞서 보였지만 이번에는 아닙니다. 적극적으로 접촉을 피하여 하네요. 그것은... 확실히 대조적입니다. 그렇기야 하지만 어쩌면 그저 피하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저 그 뿐입니다. 다른 조각이, 더 필요해 보입니다.
와, 이번에도, 이 사람도 이것저것 줄줄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한 이야기는 재미로서 본다면 흥미롭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마리에게는 별 상관 없는 것들 입니다. 이번에는 익스퍼를 대상으로 벼슬이나 병기, 그리고 축복이라고 하네요. 저번에는 괴물이고... 별명도 참 많으셔라! 앞으로 뭐가 더 나올까요?
"나름 흥미로운 제안이네요. 하지만 거절해야 되겠어요. 부수는 것도 재미있을 일이지만, 만드는 것은 더욱더 재미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거든요. "
이어지는 말에 마리는 일부 나마 긍정했습니다. 확실히 마리의 익스파. 즉, 능력으로도 사람을 죽이기에는 쉽긴 합니다. 잘만 사용한다면 암살에도 꽤 쓸만할 수 있을 거에요. 하지만, 그럴 수 있다고 해서 꼭 그렇게 해야 된다고 마리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현실에서는 무엇으로든 사람을 죽일 수 있고 죽을 수 있습니다. 사람 뿐 만입니까? 생명이라는 것 전체가 그렇습니다. 지금 이야기는 전제가 약간 어긋났습니다. 그래도 답을 도출할 수는 있어요.
마리는 번쩍이는 빛을 두른 적의 제안에 그렇게 답하였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파괴하고 만드느냐 라고 어떻게 정의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상대에게 어떻게 전달되고 이해하고 있는 것인가에 따라서 서도 다르죠.
마리는 바닥으로부터 퍼져나가는 무수히 많게 솟아오르는 가시 덩굴들로 하여 적을 사지를 노려서 속박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가시 덩쿨들은 바닥을 파고 들어가도록 합니다. 전도성은 아마 낮겠지만 피뢰침 원리를 한번 재현해 보도록 합시다... 성공하면 좋겠군요!
자신을 향해 총알을 쏘는 것도, 불꽃을 쏘는 것도 나리는 조금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멈춰서서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소멸시킬 뿐이었다. 발사한 총알도, 불꽃도 전부 그녀가 주변에 두른 전기로 형성된 방어벽을 뚫지 못했다. 단 하나. 마리의 익스퍼는 조금 달랐다. 사지를 노려서 속박하려고 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녀는 빠르게 손을 움직여 직접 전기로 대응했고 그 덩굴을 무너뜨렸다. 닿진 않았으나 확실하게 그녀의 능력만큼은 조금 거슬린다는 듯, 나리는 작게 혀를 찼다.
"너희들을 제거하는데 모든 전력을 부여할 필요가 어디에 있어? 미안하지만 우리들도 그렇게 한가한 것만은 아니거든. 이것저것 알아봐야 할 것도 있고 준비해야 할 것도 많거든. ...원래라면 나도 여기에 올 순 없었지만 도저히 너희들만큼은 내 손으로 죽이지 않으면 안되서 말이야. 특히 방금 나에게 총 쏜 언니라던가. 나에게 가장 굴욕과 치욕을 맛보여준 언니만큼은 절대로 그냥은 못 보내지."
명백하게 케이시에게 특히나 더 강한 적대감을 보이면서 나리는 모두를 가만히 둘러봤다. 아직 공격을 하거나 하진 않았으나 슬슬 움직일 생각인지 그녀의 몸에서 강력하게 스파크가 계속헤서 튀기 시작했다.
"킹은 킹일 뿐이야. 그 녀석이 아버지일리가 없잖아. 아무튼 뭐라고 한들 사실은 바뀌지 않아. 너희를 보고 괴물이라고 한 게 아니라고?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정말로 양심에 손을 얹고 그렇게 대답할 수 있어? 그렇게 정면으로 괴물이라는 소리를 들어놓고서 너희를 향해서 말한 것이 아니라고 자부할 수 있어? 나 때문이라고 생각해? 전혀. 우리들은 원래 그렇게 보일수밖에 없는 존재야. 힘없는 존재들에게 있어서 힘있는 이들은 자신과 다른 존재이며 이질적이며 괴물이니까. 단지 그 뿐인 문제야."
태연하게 말을 하던 나리는 이내 연우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물론 단순히 갈라놓는 것은 아니야. 우리의 목적. 그래. 뭐 말해도 상관없으려나. ...선택받은 이들의 세상. 그것을 위한 심판. 이른바 라그나로크. 그게 우리들의 목적이야. 머지않아 심판이 내려질거야. 너희들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막을 수 없는 막강한 심판이. 머지 않았어. 너희들 같은 경찰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막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거야. 이미... 50%는 완성이 되었거든."
별 상관없다는 듯 태연하게 이야기하며 나리는 피식 웃어보이면서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성장시킬 수 있는지의 여부는 노 코맨트. 내 편이 되려면 끼이지 마. 다른 이들은 모두 죽여버릴 거니까.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연회장 루트>
퍼디난드가 자신의 앞을 막아서자 비서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피식 웃어보이면서 단번에 거리를 띄웠다. 그 모습은 절대 평범한 민간인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의 손바닥 아래에서 작은 바늘이 떨어졌다. 아무래도 뭔가를 하려고 한 것은 분명한 사실 같았다. 그리고 이내 그 바늘은 곧 종이조각이 되어 땅에 떨어졌다. 자세히 봤다면 종이조각에 바늘 모양의 그림이 그려져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일단은 죽이지 말라고 해서 마비시켜놓고 다른 곳에 두려고 했지만 이렇게 방해가 들어와서야.. 곤란하군요."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너무나 태연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범죄 행위를 이야기하나 전혀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모습이 상당히 이질적으로 비쳤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뭐, 당신 정도면 저 혼자서도 어떻게든 할 수 있겠지요. 아. 라타토스크의 룩이라고 합니다. 이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어 비서, 아니. 룩은 싱긋 웃어보이면서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그리고 옥상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이야기했다.
"나이트도 슬슬 위의 이들과 한바탕 할 생각인 듯 보이니... 올라가지 않은 당신은 제가 해결해보도록 하죠. 너무 쉽게 쓰러지진 말아주세요. ...물론 마스터는 당신들을 정말로 싫어하지만... 그래도 너무 쉽게 쓰러지면 재미가 없지 않겠습니까?"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은 본격적으로 각각의 위치에서 전투가 있을 예정이에요! 다들 수고했어요! 반응레스는 자유로 둘게요!
흠흠, 이제 확신할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저 많은 경우에서도 오직 단 하나. 오직 마리를 근원으로 하는 것, 가시 덩굴들의 접촉 만은 행동이 약간 다릅니다. 무력화한다는 점에서는 동일 합니다만... 그 행동에서 오는 무게 감이 다른 것 같습니다. 이 원인을 파악할 수만 있다면 퍼즐을 맞추는데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리는 대치하고 있는 적, 빛을 두른 그녀의 말에 별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전력이 된다면 될 때마다 쏟아 붙는 게 더 좋다고 마리는 생각했습니다. 저들 이 그렇게 하지 않았고 그 덕분에 이렇게 저희가 수습하고 재정비하는 시간을 갖출 수 있었다는 거지요.
"사람이 사람을 소유하거나 거래하거나 죽이면 안된다. 라고 법률이나 사회적 풍습이라는 것이 만들어지고 지정된 것은 인류의 역사에 비하면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죠. 그건 순간에 지나지 않아요, 그럼에도 시간이 지나면 어떤 식으로든 변화하기 마련이에요. 지금과 같이."
마리는 그러한 물음에 가까운 설명에 그렇게 말했습니다. 호칭 따위야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입니다. 실체를 바라보세요. 중요한 것은 행동이에요. 그런데 그 행동이란 말해진 예시에서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반문 할 수 있겠지만 본래부터 세상은, 적어도 인류는 그래왔습니다. 그나저나 당신이 양심을 운운하기에는 조금 웃기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물론, 저희의 양심에게 물어보라는 의미이기는 하겠지만요.
예로부터 과거에서는 노예제는 지극히 당연한 삶의 일부였습니다. 그리고 노예는 사람이 아니고 물건 이였죠. 그러한 풍습은 수 천년 간 이어져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대다수의 국가에 노예제는 폐지되었습니다. 왜 그렇다고 생각합니까?
"호오, 그런가요. 온갖 미사여구가 붙는 것이 나름 흥미롭긴 하네요. 후훗"
마리는 여전히 거침없이 온갖 것들을 설명 해주는 것을 상대의 모습에 작게 웃고는 굳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자성어가 이런 비유에는 아마도 맞지 않을 거라는 것을 마리도 압니다. 하지만 이러면 비꼬는 의미가 살지 않을 것만 같았습니다. 어쨌든 상황의 심각성을 떠나서 저 말은 꽤 웃깁니다.
어이쿠, 그 장대한 계획이 절반에 밖에 준비가 안되었는데 이렇게 계속해서 크든 작든 정보를 말해주면 어떻게 합니까! 마리라면 계획이 다 완성된 이후 45분 이후에나 말해 줄 겁니다! 당신이 '만에 하나' 라고 스스로 말하는 것도 잊었나요? 아니면 신경 쓰지 않나요? 몸소 그 오만, 방심 때문에 굴욕을 당했다고 했으면서도...
이전과는 다르게 나리의 주변에선 강한 스파크가 튀고 있었다. 몸이 아니라 전방 1m 정도의 거리 하에 그녀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스파크가 튀고 있는 것으로 보아 마치 보이지 않는 원이 그녀의 주변에 있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 상태에서 나리는 오른손을 들어올렸고 그 손 끝에 스파크가 강력하게 튀기 시작했다.
이내 익스레이버 멤버 전원의 몸 어딘가에서 강하게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그곳은 어디일까? 전기가 통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일까? 아니. 어쩌면 이전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룩 루트>
"자. 그러면 어디 한 번 춤춰볼까요?"
자신을 룩이라고 소개한 회장의 비서는 손에서 볼펜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다른 손에서는 수첩을 꺼내들었고 볼펜으로 수첩에 뭔가를 가볍게 그리는 것 같아보였다. 이내 그는 그 종이를 찢은 후에 퍼디난드가 있는 곳으로 던졌다.
이내 S클래스의 익스파가 포착되었고 퍼디난드가 있는 곳으로 정말로 날카로운 침이 빠르게 날아왔다. 방금 전 떨어뜨린 바늘과 비슷한 것으로 보아 어쩌면 같은 재질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차피 피뢰침 같이 다른 것으로 유도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저번의 전투에서 익히 깨달았던 것이었고 저번과도 비슷한 전투 양상을 띄고 있었기에 역시나 몸의 어딘가에서 스파크가 튀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정전기가 흐르듯 곤두서는 느낌에 몸에 전기가 흐를법한 물건들을 바닥에 던져버린다.
" 이번에도 비슷할거란 보장은 없지만 ... "
작게 중얼거리며 나이트를 주시한다. 구제불능의 쓰레기지만 죽일 수 없다는 것은 조금 안타까운 부분이다.
이럴 줄 알았다. 춤은 무슨 춤이람? 설마 신체를 조종하는 능력인가 싶어 긴장했지만 아까 봤던 종이를 떠올리니 그건 아닐 것 같았다. 이내 수첩을 꺼내 뭔가 그려내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다, 익스파가 포착되자 눈을 홉뜨고 침을 피하려는 듯 하다 아, 하고 소리를 냈다. 아, 소라 씨! 미치겠네. 소라를 덮어 가리려는 듯 몸을 숙였다. 선공을 내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침은 우리 대부님한테 맞는게 제일 나은데. 아프다. 무전을 보내곤 권총을 꺼냈다.
"아래층에서 접전 발생. 내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그쪽은 나이트를 부탁할게요."
대충 보니 그려내는 걸 실제로 만드는 능력인가? 그렇다면 저 볼펜이나 수첩 둘 중 하나를 뺏어야 승산이 있을 것 같은데. 아니면 다른 매개체로도 그릴 수 있을 테니 손을 최대한 멈출 수 있게끔 해야겠다. 일단 위협 사격으로 손을 겨누고 권총을 격발하려 했다.
일단 당장 연우의 몸에선 당장 스파크가 튀는 것은 없었다. 일단 연우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지 나리는 그저 다른 이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내 유진이 물건들을 바닥에 던져버리자 일제히 그곳을 향해 저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한 스파크가 일제히 물건을 관통했다. 검은색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는 것으로 보아 확실히 이전과는 다르게 힘을 제대로 쓰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내 나리는 유진을 바라보며 단번에 달렸다. 양 손에서 스파크가 튀고 있었고 그 스파크는 이내 뭉치기 시작했고 마치 채찍의 형태마냥 바뀌었다. 이어 나리는 그 스파크로 이뤄진 채찍을 있는 힘껏 내리쳤다. 맨 몸으로 막아서기엔 아무래도 크기가 클 수밖에 없었고, 그 속도도 전기인만큼 상당히 빠른 속도였다.
"그래도 계속 도망치는 건 아니겠지? 그래도 경찰이잖아? 방금 전까지 나를 용서 못한다는 식으로 계속 떠들고 있었잖아. 그건 그저 허세였을 뿐이야? 아하하하!!"
이내 자신에게 달려들게 하려는지, 혹은 공격을 하게 하려는지 그녀는 살며시 도발했다.
<룩 루트>
소라를 덮어 가리려고 한 만큼 퍼디난드의 움직임이 회피 계열로 갈 순 없었고 그 상태에서 침에 명중할 수밖에 없었다. 침에 명중하지만 크게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겠으나 이내 그의 몸이 자신의 생각만큼 잘 움직여지지 않는다는 것이 느껴졌을 것이다. 마치 마비독이 주입되기라도 한 것처럼.
"그것을 맞아주다니. 어리석군요. 어차피 맞아봐야 움직이기 힘들 뿐이라서 목숨에 지장은 없지만... 그래도 당신의 입장에선 상당히 손해본 것이 아닌지?"
이내 권총이 격발되었고 분명히 그 총알은 룩의 손에 명중했다. 허나 룩은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고 '피'가 흐르지도 않았다. 피식 웃는 모습과 함께 룩의 모습이 종이 형태가 되어 사라졌다. 마치 그것조차도 '진짜'가 아니라 '구현'된 무언가인 것처럼.
이내 반대편에서 펑하는 소리와 함께 종이가 하나 떨어졌다. 분명히 아무 것도 없던 공간이었으나 룩은 거기서 천천히 걸어나왔다. 조금도 다치지 않고 태연하게 걸어나오면서 그는 다른 종이를 한 장 던졌다. 이내 보이는 것은 퍼디난드와 똑같이 생긴 누군가의 모습이었다. 방금 전 퍼디난드가 그랬던 것처럼 그 퍼디난드 역시 권총을 꺼내 그에게 겨눴다. 만약 대처를 하지 않았으면 그의 다리를 노려 격발했을 것이다.
"자. 열심히 움직여보세요. 혹은 또 권총을 쏘아보세요. 혹시 아나요? 이번엔 진짜일지? 후후."
상대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뭔가를 관찰해서 파악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다른 건 몰라도 목표가 지휘관인 걸 알았으니 경호가 최우선이었다. 따끔한 감각까지는 괜찮지만 권총을 꺼낼 때 몸이 묵직함을 깨달았다. 꼭 병원에서 괴로워 했을 때 맞았던 주사처럼. 좋은 감각은 아니다.
"그럼 경찰이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지. 혹시 낙하산으로 비서 자리에 앉은 건 아니죠? 기본 상식도 모르고 어떻게 살았어요..? 뇌가 가오에 지배를 당했다고 해도 기본 상식은 필요하지 않나? 아니면 혹시 이쪽 경찰은 안 그ㄹ.."
아, 여기 아직 경찰 있구나. 그는 입을 다물기로 했다. 이 상황에서 찍히면 안 되니까. 격발하긴 했지만 피도 흐르지 않는다. 종이가 되어 사라지 냅다 한손에 큐브웨폰을 전개해 쥐곤 소라를 안아들려 했다. 위험하다. arms carry를 내가 그날 이후로 안 할 줄 알았는데!
"미안해요, 소라 씨! 고소만은 하지 말아요!"
룩이 다른 공간에서 튀어나오자 마비된 몸이 잘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일단 발을 떼어 뛰려 했다. 자신과 똑같이 생긴 모습이 걸어나오자 "이거 저작권 침해야." 하고 중얼거렸다. 그렇게 경박하게 한국어로 중얼거린 주제에, 또 모국어로는 다른 말을 하는 것이다. Knock it off.. 그리고는 손가락을 꾸물거렸다. 가위 날이 벌어졌다 다물린다.
연우가 안전한 곳에서 나이트를 관찰한다면 이전과는 다르게 그렇게 매섭게 공격을 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물론 그녀의 손에서 튀는 스파크는 이전과는 다르게 상당히 위험하고 찌릿찌릿한 느낌이었다. 멀리 있는 그녀의 머리카락에서마저도 정전기가 느껴졌을 정도였으니까. 허나 그런 강력한 전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적극적으로 공격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주변으로 보이지 않는 원 느낌으로 스파크가 튀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허나 채찍을 날리는 그 순간. 아주 잠시였으나 주변에서 튀는 스파크의 강도가 약해지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이내 곧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한편 유진은 자신에게 날아드는 공격을 능력을 이용해 회피했고 화연은 이내 불꽃의 창을 꺼내 나리에게 던졌으나 그 불꽃의 창은 나리의 근처도 가지 못하고 강한 스파크가 튀는 것과 동시에 분쇄되듯 사라졌다. 아주 잠시였으나 연우의 시야에선 그녀의 주변에 퍼져있는 스파크가 살짝 약해진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허나 그것도 아주 잠시였다. 그녀의 손에서 스파크가 다시 튀기 시작했고 약해진 스파크는 다시 커져가며 위협적으로 그 소리를 높였다.
"그래. 그게 너희들의 한계야. 경찰이라는 것에 붙잡혀있는 한계. 그러니까 인정하라니까. 우리 익스퍼들은 모두 '병기'야. 죽이고 싶으면 죽여봐. 죽일 수 있다면 말이야. 나는 너희들을 모두 죽여버릴거거든. 나는 병기니까. 그 무엇보다 강력한 마스터의 병기니 말이야!!"
이내 나리는 크게 기합을 넣었고 땅을 있는 힘껏 내리쳤다. 땅을 향해 아주 빠르게 전기가 흘렀고 그것은 대원들을 향해 빠르게 달려들었다. 이내 나리의 표정이 피식 웃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다른 대원들의 모습을 모두 지켜보기라도 하려는 듯. 혹은 뭔가를 노리고 있다는 듯.
"바보 같다고 생각하잖아. 솔직히? 너희들이 경찰로서 열심히 한다고 해서 익스퍼와 비익스퍼가 공존할 수 있는 미래가 찾아올 거라고 생각해? 그럴 일은 없어. 이 세상은 다시 태어나게 될테니까. 너희들이 생각하는 미래와는 정 반대로 말이야."
<룩 루트>
"미, 미안해요."
아직 소라는 제대로 회복되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순순히 퍼디난드에게 안겨있을 수밖에 없었다. 한편 가위 날이 벌어졌다 다물어졌고 룩은 피식 웃어보였다. 마치 그 능력이 통하지 않았는지 정말로 태연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소용없어요. 이미 당신의 능력은 파악하고 있거든요. 몇 번을 더 해도 저에겐 먹히지 않는다고요."
이어 퍼디난드의 형태와 똑같이 생긴 이가 권총을 그대로 격발했고 그 총알은 퍼디난드의 다리에 명중했을 것이다. 그 통증은 절대로 가벼운 것이 아니리라.
이내 퍼디난드의 형태를 갖춘 이는 곧 종이 형태로 바뀌었고 앞에 서 있는 룩은 피식 웃어보이며 또 다른 그림을 그린 후에 종이를 찢어 앞으로 날렸다. 이내 그 종이는 또 다시 침의 형태로 바뀌었다. 노리는 곳은 아무래도 퍼디난드의 다른 쪽 다리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아마 퍼디난드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면, 눈 앞의 룩에게는 아주 조금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미안한 건 저예요, 조금 더 신경 써서 경호할 걸. 괜히 딴짓 하다가. 지금은 쉬어요."
단단하게 안았기 때문에 손을 움직여도 흐트러지지 않았지만, 능력이 통하지 않자 미간을 좁혔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을 때 능력을 파악하고 있단 소리에 눈을 흘겼다. 누군가 우리의 정보를 빼돌렸거나, 보안 관리부 중 공범이 있다. 아니면 이렇게 멍청한 상황도 벌어지지 않았겠지. 다리에 총알이 명중하자 기우뚱, 몸이 기울었다. 격통에 스민 신음을 꾹 참아내며 한쪽 무릎을 꿇기 직전에 몸을 웅크려 최대한 지켜내려 했다. 보호가 우선이다. 내 몸보다 누군가의 안전이 더 중요하다. 순간 보였던 것은..
"먹히지 않아? 당연하지, 찌질한 새끼야."
다시금 비틀거리며 일어나선, 몸을 기우뚱 옆으로 기울여 침을 피하려 했다. 그리고는 이를 악 물고 숨을 들이마신다. 넘어지지 않게끔 겨우 몸을 지탱하며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했다. 종이, 물.. 화재 경보기. 아, 화연 씨가 여기 있어야 했는데. 어떻게 대비하지? 어떻게..
"아.. ㅆ.. 아니, 아니지. 바르고 고운말."
일단 공격을 피하며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그림자, 부자연스러운 곳. 그런 곳 어디 없나? 대체 뭐가 잘못 된 거지?
"그렇게 눈을 돌려도 상관 없지만 말이야. 결국 익스퍼는 병기일 뿐이야. 당신도, 나도, 그리고 다른 익스퍼들도 모두 말이야. 그 힘이 어느 정도인진 당신들이 제일 잘 알 거 아니야. 안 그래? 그 힘으로 누군가를 지킨다고? 누군가를 구한다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괴물이라고 불리면서까지 그게 그렇게 숭고한 일이야?"
말 그대로 평행선이었다. 자신들을 시민이라고 주장하는 이, 그리고 자신들은 그저 병기라고 주장하는 이. 완벽하게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화연의 불꽃이 날아왔고 땅을 타고 흐르는 스파크와 충돌했다. 허나 압도적으로 스파크가 불꽃을 갈라버리며 화연의 몸에 직격으로 명중했을 것이다. 비슷한 힘이 아니라 다른 한쪽이 압도적으로 강력했기 때문에 그 결과는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전에 한 번 운 좋게 위기를 모면했다고 A 클래스가 S 클래스의 힘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 ...그렇다면 그 힘을 제대로 느껴봐."
전기에 제대로 명중했을 화연의 몸은 좀처럼 움직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마치 다리 부분이 마비라도 된 것마냥 좀처럼 움직여지지 않는 가운데, 나리는 전기를 손에서 모아 채찍을 만들었고 그것을 있는 힘껏 화연을 향해 날렸다. 대처하지 못한다면 제대로 몸에 명중했을 것이다.
<룩 루트>
침은 아슬아슬하게 회피했을지도 모르나 그렇다고 위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눈 앞에 있는 룩은 아직 태연하게 서 있었고, 그의 능력은 도저히 통하지 않았다. 여기서 룩이 다른 무기를 사용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치명타가 될 수밖에 없었다. 말 그대로 지금 여기서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이는 오직 한 명 뿐이었으니까.
"스스로가 괴물이라고 느낀 적이 있지 않나요? 당신은?"
퍼디난드가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와중, 바로 앞에서 룩은 종이를 총으로 바꾼 후에 그에게 겨눴다. 그리고 무덤덤한 목소리를 이어나갔다. 경우에 따라선 상당히 불쾌하기 짝이 없는 그런, 너무나 태연하고 담담한 목소리였다.
"익스파는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 공존을 위해서 만들어진 힘이 아니에요. 경찰 일을 하면서 당신들의 힘을 보는 이들이 어디 여러분들을 슈퍼 히어로로서 대하던가요? 아니요. 괴물이라고 대하겠지요. ...그게 당연한 거예요. 익스파는 누군가를 지키는 힘이 아니라 파괴하는 힘이니까. 당신의 능력도 지킨다기보다는 누군가의 정신을 파괴하는 것에 가까운 힘이지 않습니까."
인정하라는 듯, 태연하게 웃어보이지만 안타깝게도 퍼디난드의 시선에는 특별히 이상한 것이 보이지 않았다. 그림자가 존재하지 않는 룩은 점점 퍼디난드의 근처로 왔고 이내 방아쇠를 당기려는 듯, 손을 천천히 움직였다.
"...보아하니 위의 이들도 인정하지 않고, 당신도 인정하지 않는데 왜 그렇게까지 부정하는거죠? 경찰이니까? 경찰이라는게 뭐 어떻다는 건지요? 경찰이라고 해서 당신들을 히어로로 인정해주고 알아주는 이는 아무도 없는데. 다른 경찰들은 도와주면 민중의 지팡이니 영웅이니 하지만... 여러분들에게 들려오는 말은 괴물에 지나지 않잖습니까."
"우리들은 새로운 세상의 초석이 될 선택받은 존재. 그 세계를 만들기 위한 병기이자 조각입니다. 형제님."
피식 웃어보이는 것이 비꼬는 느낌에 가까웠다. 한편, 그렇게 여유를 부리는 와중 퍼디난드의 눈에 뒷문 쪽에서 부자연스러운 그림자가 하나 땅에 희미하게 서 있는 모습이 보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