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6403073> [All/육성/슬로우/무협] 무림비사武林秘史 - 75 :: 1001

◆gFlXRVWxzA

2021-12-19 15:25:28 - 2021-12-27 01:16:47

0 ◆gFlXRVWxzA (TDquKaD58o)

2021-12-19 (내일 월요일) 15:25:28

주의사항
※최대 12인이 제가 받을 수 있는 한계입니다.
※총 10개의 대사건이 모두 일어나면 완결됩니다.
※이 스레는 슬로우 스레로서, 매우 천천히 진행됩니다. 진행은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 보통 오후 2시~4시 사이에 진행되며 길면 2시간 짧으면 1시간 반 진행되니 참고 바랍니다.
※진행 때에는 #을 달고 써주시면 됩니다. 진행레스가 좀 더 눈에 잘 띄기 위해서 색깔을 입히거나, 쉐도우를 넣는다거나 하는 행위도 모두 오케이입니다. 스레주가 지나치지 않을 수 있도록 이쁘게 꾸며주세요!
※유혈 묘사 등이 있사오니 주의 바랍니다.
※이 외에 미처 기억하지 못한 주의사항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스레주도 무협 잘 모릅니다...부담가지지 말고 츄라이츄라이~
※기본적으로 우리는 참치어장 상황극판의 규칙을 적용표준으로 적용하며, 이에 기속규칙대로 해야한다됩니다.

시트스레 : https://bbs.tunaground.net/trace.php/situplay/1591885835/recent
수련스레 : https://bbs.tunaground.net/trace.php/situplay/1596307065/recent
다이스스레 : https://bbs.tunaground.net/trace.php/situplay/1592093605/recent
임시스레 : https://bbs.tunaground.net/trace.php/situplay/1591887528/recent
위키 : http://threadiki.80port.net/wiki/wiki.php/%EB%AC%B4%EB%A6%BC%EB%B9%84%EC%82%AC%E6%AD%A6%E6%9E%97%E7%A7%98%E5%8F%B2
익명 설문지 :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e40d_FakoEwIYj7dHpDGZLWrxfDOqH6WZM-53IcFJCou4k5g/viewform?usp=sf_link

210 재하 (/A9mF2ybrw)

2021-12-20 (모두 수고..) 22:32:58

나 노인은 올해 일흔셋으로, 한때 교국을 주름 잡았던 명배우였으나 지금은 교국 내를 떠돌며 후계자를 양성하고 세상을 더 넓게 바라보는 중으로, 예술을 사랑하며 투자에는 절대 돈을 아끼지 않는 졸부 왕 씨 덕에 루주인 주 씨를 만나 대략 4년 정도 알고 지냈다. 예기라면 모를까, 창기 가득한 주루를 운영하는 직위 때문인지 나 노인은 루주가 탐탁지 않았다. 여인 팔아 돈 버는 것은 중원에서 흔한 일이지만 주 양반처럼 야망 가득한 사람은 적기 때문이다. 처음 만날 적에도 자신의 욕망을 숨긴 적 없으니 강호에 들어서면 필히 배교할 것이요, 수단 방법 안 가리는 사파가 될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루주 주 씨가 나 노인을 이곳으로 부를 때까지는 그 양반이 드디어 미쳤구나 싶었다. 창기로 극단을 세울 생각일랑 그만두라 했지만 주 씨가 발목을 붙들고 딱 한 사람만 가르치면 된다며,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 했을 때 나 노인은 왕 씨의 정이 있으니 이번에는 교육하겠으나, 시정잡배를 가르치는 것이라면 그만두고 나가 버릴 것이라는 조건 하에 교육에 나섰다.

"이제 됐다. 자세를 편하게 해도 된다."

재하는 허락이 떨어지자 냉큼 일자로 곧게 찢고 있던 다리를 오므렸다. 그리고 종아리를 다소곳이 모아 부자연스럽게 꿇어앉았다. 벽화 속 여인처럼 살짝 틀어앉아 비죽 튀어나온 종아리 뒤로 조그맣고 새하얀 손은 허벅지 위에 겹쳐 올려두었는데, 주름이 자글자글 하고 새하얀 머리를 질끈 묶은 나 노인은 그 모습을 보고 눈을 가늘게 뜨고 흐음, 소리를 냈다. 재하는 그 소리에 바로 나 노인을 쳐다봤고, 눈이 마주치자 고분고분하게 풍성한 속눈썹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나 노인이 길게 자란 수염을 아래로 슥슥 쓸며 재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분명 맨 위층 복도를 채우는 아릿한 술 찌든 내에 질려버려 첫 수업을 핑계로 그만둬버리겠다 생각했는데,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재희라고 불리는 눈앞의 작은 아이 때문이다. 첫날엔 온통 하얀 아이라 놀랐던 기억이 있다.

"재희야, 편히 앉으래도. 그러다 다리가 저릴 것이야."
"다리가 저려요?"
"그럼. 자고로 다리를 쭉 뻗고 앉아야 키도 크는 법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정이 들었다. 이 아이는 연기에 한해서는 가히 난 인물이요 천재였다. 자신이 가르친 제자 중 벌써 대배우가 된 아이만 셋이 넘는데도, 그 아이들보다 훨씬 낫다. 배우는 것은 재깍 받아들이고, 날이 갈수록 일취월장했다. 그러면서도 나 노인이 73년이란 세월 동안 봐온 여러 사람 중 가장 가늠키 어려운 인물에 속했다. 어린 사내아이가 창기 가득한 기루에서 자라고 있다는 사실도 드물고, 치마 입고 다니는 것도 드물지만, 그런 것보다 배우는 것이 정상적인 속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수 세기마다 태어나는 천재가 있다고들 하나 이런 느낌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나 노인이 이상함을 느낀 건 첫 만남부터 우아하게 인사하는 태도부터 시작된다. 이런 저속한 곳에서 보기 어려운 우아한 태도도 그렇고, 첫 가르침부터 아이들이 흔히 부리는 투정 하나도 없었다. 집중력이 흐트러지지도 않고, 천천히 다리를 찢는 연습부터 했거늘 점점 벌어질 때마다 우는소리, 하물며 비명도 하나 내지 않았다. 자고로 아이란 마음껏 뛰놀고, 울고, 소리 지르고, 꿈을 키워야 하는 존재인데도 이 아이는 그런 점 하나 없어 꼭 누군가 인위적으로 빚어놓은 인형 같았다. 지금도 부자연스럽게 둔 다리를 엉거주춤 움직이다 머뭇거림 없이 다리를 뻗는다. 긴 치마폭 뒤로 새하얗고 가느다란 발목이 빼꼼 고개를 내민다. 잠시 고운 얼굴이 창백해지고 종아리를 바닥에서 한 뼘 띄웠다. 나 노인이 그 모습을 놓칠 리가 없었다.

"재희야."
"네에."
"어디 불편하더냐? 다리에 쥐라도 났디?"
"아니오.."

재하는 눈을 내리깔고 치맛단을 그러모아 쥔다. 시선을 피하자 나 노인은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와 마주 앉는다. 이제 보니 해라면 사족을 못쓰던 이 작은 아이가 해를 피해 그림자에 있는 것도 모자라 식은땀도 난다. 다리 찢는 일이 고되어 쥐라도 났나 싶었지만 이렇게 안색 파리 할리 없다. 나 노인은 "재희야." 하고 재하를 한 번 부른다. 재하는 고개를 들어 주름 자글자글한 얼굴을 마주했다.

"다리 한 번 걷어보아라."

재하는 고개를 필사적으로 저었다. 어쩔 줄 모르는 눈으로 주변 눈치를 살피며 자꾸만 문가를 향해 눈을 흘겼다. 나 노인은 문밖을 남몰래 지켜보던 점소이를 쳐다보며 손을 휘휘 젓자 점소이는 "재하야, 루주는 지금 돈 계산 중이니 올 일은 없다." 하고 언질을 주며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근다. 이제 이 방엔 재하와 나 노인밖에 없다. 재하가 걸어 잠근 문을 한참이고 쳐다보다 나 노인을 쳐다봤다. 두려움 가득한 눈길에 나 노인이 이전 일을 떠올린다. 수업 사흘 차, 루주가 참관했을 때 나 노인이 무리하지 말라 해도 기를 쓰고 다리를 죽 찢던 그날. 그때는 아이가 왜 이리 필사적인가, 오기라도 있는 아이인가 했더니 이제 보니 루주 때문인 것 같다. 나 노인이 루주 성격을 알기에 수업 내내 재촉도 참 많다 했는데, 받아들이는 직위가 다르지 않던가. 나 노인이 부드럽게 타일렀다.

"할아버지는 혼내지 않아요."
"……."
"참이란다. 천마님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마."
"……."
"탕후루도 걸어주마."

불안하게 눈치를 살피던 재하는 천천히 치맛단을 올려 걷었다. 나 노인의 눈이 휘둥그레 뜨이고 탄식했다. 부드러운 비단 뒤로 드러난 종아리는 참담했다. 아직 세상 물정 하나 모르는 아이들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무릎이 까지고 다리가 나뭇가지에 스쳐 긁힌 상처가 나야 하는데, 재하는 무릎도, 다리 앞쪽도 전혀 다치지 않아 매끈했다. 그렇지만 양쪽 종아리 뒤로 길게 뻗은 상처가 앞쪽까지 붉은 기를 내보였다. 앞으로도 얼마나 상처가 심한 지가 보이는데 뒷부분을 확인하면 얼마나 참담할까? 연고를 바르긴 했지만 그마저도 새 상처에 덮여 물러 터져버렸다. 이런 다리가 바닥에 몇 분이고 붙어 있었다니! 얼마나 아팠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재희야. 아프면 아프다고 미리 말을 하지 그랬더니."
"……아프다 하면 걸어 다닐 줄 알면서 거짓말한다고 더 화내실 까봐.."

재하는 한참 고운 입술을 오물거리다 병아리 같은 주둥이로 톡 뱉었다. 그 발언에 나 노인은 기가 찬다는 듯 헛숨을 뱉었다. 그제야 지나치게 조용한 이유도, 우는소리도, 비명 소리도 내지 않는 상황도 이해가 갔기 때문이다. 소리를 내도 화를 냈을 것이고, 울어도 화를 냈을 것이다. 야망 가득하고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사람임은 알지만 이 정도면 천마님께서도 분노하시지 않을까 싶었다. 재하는 기가 차단 표정을 짓는 나 노인을 올려다보다 눈치를 살피며 허벅지에 모인 비단 자락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나 노인은 재희가 여기에 얼마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고작 이 정도 된 아이가 벌써부터 주변 눈치를 보고 소리를 내지 않을 정도면 이런 체벌이 한두 번이 아니었을 것임을 짐작했다.

"재희야."
"…네에."
"이 회초리는 언제 맞았더냐?"
"……."
"말하기 어렵다면 하지 않아도 좋다."
"어제 자시子時에."
"자시라면 네 잠들어야 할 시간 아니더냐."
"배운 것을 보이라 하였어요. 그래서 보여드렸는데, 앞으로도 줄곧 그렇게 해야 한다고. 흐트러지면 이렇게 될 거라면서."
"안 되겠다. 내 이 행동을 신고해야겠구나. 너를 이 기루 밖에서 꺼내와야겠어."
"아, 안 돼요!"

재하가 다급하게 나 노인의 옷깃을 부여잡았다. 처음 보이는 행동에 자신도 놀랐는지 한참 허둥대다 고개를 푹 숙였다. 재하의 몸이 덜덜 떨렸다. 나 노인은 괜찮다는 듯 재하의 등을 토닥이며 왜 안 되는지 물어도 되냐고 했고,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던 재하는 이내 입술을 꾹 다물다 한번 크게 히끅, 하며 딸꾹질을 했다. 딸꾹질까지 할 정도면 얼마나 무서운 건지! 루주가 무슨 일을 친 건가 싶었다. 나 노인이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자 재하는 입을 더듬더듬 뗐다.

"바, 바깥은, 다 싫어해요. 아무도, 조, 좋아하지 않아요."
"뭘 싫어하더냐?"
"저를!"

재하가 주변 눈치를 보다 다급하게 속삭인 단어는 숨결 섞인 절규에 가까웠다. 재하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고개를 떨구더니 다급하게 치맛자락을 쥐었다. 주섬주섬 고운 비단을 그러모으며 놓치길 반복하다 다리를 급하게 덮으며 꼭 정신 나간 아이처럼 말을 뱉었다.

"요괴라면서, 다 비명 지르고, ㅈ, 제가 하얀색이라, 불길하다고. 저번에도, 축제 때 그랬어요. 모두 손가락질하고 비명을 지르는데 나가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루, 루주께서는, 이, 이 밖은, 제가 색이 달라서, 그런 거라고, 그렇지만, 여, 여기 있으면 된댔단 말이에요. . 여기 있으면 아무도 위협하지 않는다고. 예뻐해 주니까.. 그니까.."
"재희야. 그렇다 해서 악행이 용서되는 건 아니다. 널 좋아해 줄 사람도 충분히 있단다. 이 할아비도 있지 않더니?"
"그렇지마안, 루, 루주가 잡혀가면.. 은야 누이와 백화 누이도 있을 자리를 잃어요. 내가 떠나면, 다 잃어버릴 거야. 그, 그러니까 여기 있어야 해요. 아, 안 나갈 거야……."

나 노인은 재하가 입을 다물어버리자 물을 한잔 따랐다. 그리고 재하에게 물이 든 잔을 쥐여주며 걱정 어린 눈길로 내려다봤다. 재하는 물 잔을 덜덜 떨면서도 마셨다. 턱을 타고 흐르는 것이 반이고, 마시는 것도 반이다. 안타까웠다. 재하의 세상은 기루였고, 인질이었다. 매일같이 겁박했을 것이 눈에 선했다. 성급하게 빼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새장 속의 새를 아무렇게나 자연에 내버려 두면 필히 수리와 매가 낚아채가 찢어먹는다. 재하를 한번 안아주며 등을 쓸어내던 나 노인은 이내 진정한 듯 물을 내려다보던 재하가 걱정스러운 눈길로 올려다보는 것에 고개를 기울였다.

"어찌 그런 눈이더니?"
"이번 일은 루주에게 고하지 말아 주세요."
"어째서 고하지 말하야 하는지 물어도 되겠느냐?"
"어르신께서는 루주에게 다치지 말아야 하니까.. 채연 누이처럼 떠나지 말아요. 다 도망쳐버렸어.. 그 사람도, 채연 누이도.. 어르신만은 떠나지 말아요."

재하는 품속으로 파고들며 눈물을 글썽였다. 아직 아홉 나이 채 넘기던 나이의 아이가 눈에 만고의 수심을 담고 있기 때문인지 나 노인은 동정심을 느꼈다. 그간 얼마나 힘들었을지 눈에 선했다. 아무리 여기 사람들이 가족같이 대해준다 해도 루주 귀에 들어가는 건 삽시간일 테니 털어놓을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나 노인은 몇 번 더 토닥여주고 조막만 한 재하를 품에서 떼어 어깨에 주름 자글자글한 손을 얹었다.

"이 할아비가 어찌 떠나겠니. 오래오래 수업해 주마."
"그것이 참말이지요?"
"물론이다. 대신, 재희야."
"네."
"이 할아비가 재미난 바깥 얘기를 하나씩 들려주마. 그래도 되겠니?"
"…네에."
그럼 이제 네 진짜 이름을 알아야겠구나. 주 씨가 준 이름 말고 네 진짜 이름이 무엇이더냐?"
"……마를 재裁, 물 하河 하여 재하요."
"고운 이름이다."
"정말요?"
"꽃이 가인을 보면 부끄러워 수화羞花한다 하듯 물이 가인을 보면 부끄러워 재하裁河하는 법이지."

다음날부터 나 노인은 수업 날마다 재하에게 바깥에 대해 하나하나 알려주기 시작했다. 꽃 쟁탈전에 대한 이야기, 바다에 대한 이야기, 정마대전에 대한 이야기, 교국에 대한 소식과 무림인에 대한 이야기까지. 한 가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다른 수업도 같이 받았다. 일취월장하던 재하는 한 달이 지나자 몸놀림이 기려해졌고, 곧 자세를 잡고 대사 외울 때가 되어 나 노인은 밧줄을 꺼내 천장에 달았다. 대사를 외울 때 굳지 않고, 곧은 척추 선과 유연한 몸, 그리고 오래 돌아도 지치지 않을 힘을 위해서였다. 밧줄을 본 재하는 눈을 느릿하게 끔뻑이다 조심히 다가와 너른 소맷단으로 나 노인의 다리를 끌어안았다.

"아직 수업은 시작하기 전인데, 무슨 일이더냐?"
"스승님, 도망치지 말아요."
"도망이라니, 내 왜 도망을 치겠더냐."
"저 줄은 도망치는 줄이야."

재하는 다리를 끌어안던 것을 풀고 밧줄을 잡아당겼다. 누가 뭐라 할 새도 없이 밧줄을 목 주변에 둘둘 두르고는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며 나 노인을 올려다봤다. 나 노인이 화들짝 놀라 눈을 크게 뜨자 재하는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이러면 조용해지고, 불러도 답하지 않아요. 루주가 그랬어요. 채연 누이는 도망친 거라고."
"재하야, 어디서 도망친 사람을 보았더냐. 여기에서?"
"기억이 안 나. 그러니까 우리 수업 빨리해요. 오늘은 루주가 일이 있어 저녁에 오신 댔어요. 그 안에 안 끝내면 수업 도중에 나가야 할지도 모른단 말이에요."

재하는 부스스 웃으며 침묵했다. 영 석연치 않았으나 그 사실은 재하가 한 대사를 계속 실수하며 묻혔다. 실수는 이틀이 넘고, 사흘이 넘어도 계속 이어졌다. 모든 것이 완벽하던 재하가 하는 실수는 단 한 가지였다. 단어의 순서를 바꾸는 것. 나흘 정도 됐을 때 루주도 그 광경을 보게 되었다. 루주는 그동안 나 노인이 쓴소리를 하자 수업을 전혀 참관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심통이 난 건지, 팔짱을 끼며 거만하게 쳐다보는 모습에 재하는 눈치를 보다 입을 벌렸다.

"나는 비구니. 꽃다운 시절 사부에게 머리를 깎여 나는 본래 사내아이로.."
"재하, 틀렸다. 다시 해보자꾸나. 비구니는 무엇이라 하였지?"
"여자 스님이요.."
"스님이라는 것이 머리를 밀어 남녀 구분하기 어렵지만 엄연히 성별이 있는 법이란다. 그럼, 네 무엇이라고?"
"사.. 사내아이요.."
"네 이년-!! 정녕 네가 사내아이라 생각하느냐!!"

루주의 호통에 재하는 화들짝 놀라 밧줄을 잡던 손을 놓쳐 하마터면 뒤로 넘어질 뻔했다. 그런 재하를 단단히 붙든 나 노인은 루주를 나무라려다 재하가 처음 마음을 열던 날 절박하게 속삭이던 소리보다 더 크게 빌자 눈을 둥그렇게 떴다.

"계집, 계집입니다!! 저는 계집아이로 태어났습니다!!"
"그렇지. 네 계집 아이지. 다시 한번 불러봐라."
"나는, 나는.. 비구니이.. 꽃다운.."
"이보시오, 아이에게 너무 심한 것 아니요?"
"이렇게 해야만 말을 들어먹는 아이요."
"아이에게 그럴수록 악영향인 걸 모르오?"
"나 노인, 우리가 왕 씨의 정이 있으나 내 쪽에서 단절하면 나 노인은 재희 영영 못 보오. 단절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시오."

루주를 쏘아보던 나 노인은 한마디 쏘아붙이려다, 아래층에서 난 소란에 점소이가 뛰쳐나와 또 무림인이 말썽을 피운다고 곡을 하자 후다닥 밖으로 나섰다. 나 노인은 문이 닫히자 재하를 토닥였다.

"재하야, 너는 너다. 알겠지? 루주의 말을 귀담아들을 필요는 없단다. 마저 수업할 수 있겠더냐? 네 원한다면 오늘은 쉬도록 하마."
"…해요."
"으응?"
"마저 해요. 마저.. 다 외울 수 있어요."

무슨 생각인지 재하는 계속해서 대사를 외웠다. 계속해서, 계속해서.. 몇 시진이 지나도. 하지만 다음날 또 루주 앞에서 실수를 했다. 루주는 회초리를 들었고, 여린 종아리를 쳐내렸다. 너는 계집이라 몇 번을 말하냐는 호통에 재하는 어떤 오기가 들었는지 이를 악물고 참았다. 평소 같으면 열 대로 끝났을 것이 스무 대가 되고, 서른 대가 되었다. 다리를 타고 피가 흐르며 기어이 찢어지기 시작한 회초리에 살이 짓물릴 때야 재하는 부르르 떨다 눈물 한 방울을 떨구며 입을 열었다.

"나는.. 나는 비구니. 꽃다운 시절 사부에게 머리를 깎여 나는 본래 계집아이로 사내아이도 아닌데 왜 허리띠를 하고 도포를 걸치게 하는가? 연인들을 바라보니 쌓이는 사모의 정, 가슴을 설레게 하는구나."
"드디어 달달 외는구나. 할 줄 알았으면서 왜 하질 않았더냐."

루주는 회초리를 내팽개치고 자리에서 일어서 자리를 떴다. 은야가 황급히 달려 들어와 앞으로 휘청이다 쓰러진 재하를 품에 안고 울자 재하는 가만히 마주 안으며 눈을 내리감았다. 나 노인의 호통이 듣기 싫었던 건지 수업은 일주일 동안 쉬게 됐다. 그동안 회복에 전념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점소이와 기녀들은 이틀 뒤 매정하게 왕 씨 어르신에게 첫 지명을 하자 목소리를 내려 했으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마저도 잘릴게 뻔하기 때문이다. 벌써 두 명이 그렇게 기루를 떠났다. 그리고 생계를 잇지 못해 떠돌다 소식이 끊겼다. 아무리 삶이 나아진다 한들 그나마 남은 생계가 밑바닥인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기에.

"못 보던 비녀구나."
"왕 씨 어르신이 주셨어요. 이번엔 루주에게 뺏기지 말라고 해서.."
"소중히 여길 것이 생겨서 참 좋구나."
"저어, 스승님. 저 배우고 싶은 게 생겼어요."
"어떤 것이더니?"
"제일가는 미녀 양귀비가 술에 취했으니, 귀비취주貴妃醉酒라 하데요. 저어, 배워보고 싶사와요."
"그럼 이번 곡이 끝나면 꼭 배우자꾸나."
"탕후루 두 개 걸고 약조한 것이어요."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왕 씨가 재하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정이 좋아졌으나 목소리를 높일 수 없었다. 기루의 사정이 좋아진다는 뜻은 바빠진다는 뜻이고, 바빠진다는 것은 더 이상 재하를 신경 쓸 겨를조차 없어진단 것이었다. 재하가 모형 칼 두 자루를 쥐고 능숙하게 춤을 출 수 있게 된 것은 반년이 지나서였다. 그리고 귀비취주를 배우기로 약조한 겨울이 다가왔을 때 나 노인의 수업은 끝이 났다.

"재하가 떠났다고? 누구 손에?"
"…저희는 아무것도 발언할 수 없습니다."
"어찌 발언할 수가 없…… 아니지?"
"……."
"재하가… 아무것도 모르는 그 아이가 가버렸으니 이를 어째. 조금 더 세상을 알려줘야 하는데, 배우고자 했는데, 이제 열 살 된 아이인데. 재하야, 아이고, 재하야……."

재하가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기루의 사람들은 그날을 차마 기억할 수 없다. 감히 고개조차 들 수도 없다. 입 밖으로 낼 수도 없다. 재하는 찢긴 옷가지, 휘어잡혀 흐트러진 머리채, 부러진 비녀를 뒤로하고 떠났다. 나 노인은 소식을 듣고 달려왔으나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나 노인이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글썽였다. 재하의 자유를 원했지만 이런 방법을 원하지는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교두였던 손님의 목소리에 재하가 입마관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점소이를 통해 건너 들었을 뿐이었다.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흐르고 흘러 나 노인은 노쇠하여 제자가 임종을 지키던 상태에서 편히 자연사하였다. 당시 재하는 입마관에 있었던 지라 소식을 늦게 전해 들었다. 그러나 늦은 만큼 빠르게 묘에 도착했다. 죽기 전까지 재하가 과연 입마관에 잘 적응했을 지 안위를 걱정했고, 유언은 되었으니 무덤 장황히 짓지 말고 땅에 묻어 풀과 들꽃이나 무성히 피워달란 것이었다는 말을 제자로부터 전해 듣고 재하는 무덤을 끌어안았다. 차가운 흙과 함께 흙 비린내가 났다. 스승님. 하고 처음 말을 꺼내고 다시금 되뇌듯 새된 목소리로 속삭였다.

"스승님. 스승님.. 할아버지…… 바깥에 나왔사온데 이리 가셨습니까. 차라리 잊기라도 하지, 어찌 잊지도 않고 이 못난 소마를 품고 곯다 가셨습니까. 천마님, 어찌 모두 데려가신단 말입니까. 아, 아으……."

목 끝부터 끓어오르듯 비참한 울음소리가 작게 울렸다. 어깨를 들썩이며 몸을 떨고 울었다. 점점 소리는 작아지고 몸만 바르르 떨린다. 그 모습마저 가련해 나무에 앉았던 겨울새가 재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눈밭을 뛰던 토끼도 가만히 멈춰 섰다. 한 겨울날이라 눈발이 쳤으나 추위조차 견뎌내며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눈물이 말라버릴 만큼 울었다. 그리고 비틀거리며 일어서서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人生在世如春梦..인간의 삶은 무상하여 봄날과 같고"

비록 나 노인의 곁에서 떠났으나 차마 놓지 못하고 홀로 배운 것이었다. 재하는 몸을 빙글거리며 춤을 추다 천천히 쓰러졌다. 그리고 다시는 나 노인의 묘를 찾지 않았다. 입마관에서 졸업하던 날에도, 성씨도 없이 한낱 기루에서 자란 고아 꼬맹이가 감찰어사라는 직위를 갖던 날에도. 그 춤이 마지막 작별 인사였다는 듯.
재하는 비틀거리며 기루를 나섰다. 더 있다 가라며 아쉬워하는 여러 젊은 기녀의 손길을 툭툭 쳐내고 흰 장삼을 걸쳤다. 눈은 탁하고, 뺨은 상기되었으며, 귀한 술을 머리 위로 붓기라도 했는지 풀어헤친 머리는 잔뜩 젖고 아릿한 술 냄새가 났다. 재하는 계속 밤길을 홀로 걸었다. 손에는 모형 검이 쥐여있고, 취기가 가시지 않아도 인적은 물론이고 발걸음은 진작 끊긴 곳까지 비틀거리며 걷는다. 한 장소에 도착하자 재하가 환히 웃었다. 모형 검을 양손에 들고 한 걸음씩 내디뎠다. 능숙한 검무와 함께 관리가 일절 되지 않아 습이 차고 아무렇게나 이끼가 낀 돌판을, 그리고 아무렇게나 쌓이고 풀이 자란 돌 위를 밟아 올라섰다. 검을 빙그르 돌리고 몸을 화려하게 움직이며 멈추지 않을 춤을 췄다. 옷자락이 휘날리고, 돌이 발에 채여 굴러떨어졌으며, 고운 노랫소리가 밤공기를 타고 울려 퍼졌다. 한나라의 군사들이 이미 포위하여, 사방에는 온통 초나라 노랫소리뿐이네.. 대왕이 의기를 상실했는데 소첩만 어찌 홀로 살아남겠습니까……. 우미인이 자결하는 모습을 흉내내던 순간 재하는 수심 깊은 목소리로 탁하게 몇 번 웃더니 술에 곯아 떨어져 그 자리에 와운臥雲하여 잠들고 말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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