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느껴진 건 아니었지만, 어쩐지 알렌이 릭을 신경쓰는 듯한 느낌이 조금 드는 그녀였다. 조짐은 아까 릭과 처음 마주쳤을 때부터 있었는데 응접실로 온 후엔 그게 약간 더 보이는 듯 했다. 아마 릭의 행동에 영향을 받았나보다. 단원이 보기에 자신의 상관에게 무례하게 구는 걸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싶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알지 못 했다. 알렌의 행동과 기분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그녀라는 걸. 그리고 그게 단지 상하 관계 뿐만은 아니라는 걸. 이건 알렌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대가 보기에도 그렇습니까. 좋습니다. ...일단 이렇게 하기로 하고. 만일을 대비해 릭의 조언을 구하기로 하고, 내부의 구조를 좀더 보고 있도록 하죠."
작전에 대한 의견이 얼추 맞아떨어져서 이번에도 그렇게 하자고 하곤 별장의 내부 지도를 한장 집어들었을 때였다. 납치된 아이들이 어디쯤 잡혀있을지 예상 지점을 찾으려고 하는데 옆에서 뜬구름 잡는 물음이 들려왔다. 달리 말하자면 분위기를 깨는 듯한 물음이라 눈만 깜빡이며 알렌을 돌아본다.
"그게 무슨..."
이런 상황에 무슨 소리냐고 질책을 하려다 멈칫했다. 그녀가 릭과 대화하거나 하는 거 보면 충분히 그런 의문이 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오히려 부단장이었으면 오만 호들갑을 떨었을 걸 알렌은 조심스레 물어온 태도를 보면 혼내는 건 과하다 싶었다. 그래서 조용히 지도를 향해 시선을 돌리고, 내부 구조를 눈으로 훑으며 대답을 해주었다.
"별 관계는 아닙니다. 같은 고향에서 한때 같은 공부를 했을 뿐이지요. 릭은 처음부터 신부를 목표로 하고 있어서 저와 검을 맞댄 적은 없지만, 제가 잠시 수녀원에 들어가 교리 공부를 할 때 제 멘토가 되어서 같이 교리 연구를 했었습니다."
그녀는 정말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지만 듣는 사람도 그렇게 느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릭이 그녀에게 서스럼 없이 손을 대는 걸 떠올려보면 정말 같이 공부만 했을까? 싶을테니까. 그 손을 가차없이 내려치는 걸 보면 정말 그냥 공부만 했을 거 같기도 하지만. 알렌이 무슨생각을 하던지 관심이 없어보이는 그녀는 다 본 지도를 내려놓고 별장의 지하 내부도를 찾아 들고서 짤막히 덧붙였다.
"오랜만에 떠올려보니 생각나네요. 검을 맞댄 적은 없는데 제가 부족한 실력이나마 가르쳐 준 적은 있었습니다. 릭이 대검은 못 다뤄도 단검은 잘 쓰길래 저도 배우면서 같이 익혔죠. 서로 봐주면서요."
생각의 여지가 늘어나게 하는 말만 꺼내놓고선 정작 그녀는 임무의 수행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알렌에게 지도를 밀어주며 어서 익히라는 가벼운 잔소리도 보태어가면서 말이다.
어허. 이런 못된 알렌주 같으니. 제가 얼마나 청개구리 심보인지 알렌주가 아직 몰라서 그러죠? 이제 아프다고 해도 신경 안써줄지도 모른다구요. 앗 그럼 저 딴짓하러 갈게요 이러고 가버릴지도 몰라요. 🤭 뭐, 이건 반쯤 농담이고. 알렌주가 잘 판단해서 무리하지만 않으면 되요.
자신의 물음에, 지도를 살펴보던 린포르가 고개를 드는 것을 보며 알렌은 잠시 움찔하고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야 린포르의 표정이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냐는 표정이었으니 그럴 수 밖에 없었겠지. 하지만 역시 궁금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감히(?) 단장님의 머리카락을 그렇게 매만진다니 알렌은 왠지 용납할 수 없다는 감정을 품고 있었다. 그것이 그저 단장과 수하 기사라는 관계에서만 흘러나오는 감정은 아니었지만.
" .. 어린시절의 친구..입니까..? "
그렇다고 생각하고 싶은 알렌이었지만, 남자의 감으로는 릭이 그런 시선으로 린포르를 보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어린시절의 친구에 불과하다기엔 그 손짓이나 거리감이 평범하지 않았으니까. 린포르의 말을 들은 순간부터 알렌의 내면에서 릭에 대한 경계심이 한층 올라갔다. 대형견의 모습이었다간 릭을 볼 때마다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지 않았을까.
물론 릭이 린포르에게 손등을 맞긴 했지만,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걸까, 무엇 때문에 이렇게 릭을 견제하고 싶은 것일까 알지 못하면서도 릭이 더 가까이 다가오려고 하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각오는 더욱 굳건해졌다. 그것을 린포르는 알지 못하겠지만.
" 같이 훈련도...하신거군요..네..어떤 관계인지 알 것 같네요. "
뭐! 그런 면에선 자신도 경험이 있었기에 알렌은 왠지 릭이 눈 앞에 없는데도 의기양양 해지는 기분이었다. 마치 ' 난 그런부분에선 꿀릴게 없네 ' 라는 듯한 기분. 겉으론 드러나지 않지만, 강아지 모습에 비유하자면 꼬리가 맹렬하게 흔들리면서도, 고개를 살짝 치켜든 체 린포르를 바라보고 있겠지.
" 아, 그러면 이부분에 대해서 좀 알려주세요, 리엔. "
딱히 못 알아듣는 부분은 없었다. 사실 지도 정도는 한눈에 보고 외워버린 알렌이었지만, 밖에서 준비를 하고 돌아온 릭이 어깨를 맞댄 체, 단 둘이서 시간을 보내는 자신과 린포르를 보게 만들고 싶었다. 어쩌면 이것이 가장 강렬한 견제방법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알렌은 알려달라고 말하머 린포르와의 거리를 좁혀 어깨를 맞댄 체, 자신의 물음에 대한 답을 들을 준비를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필요한 물건들을 가지고 온 릭이 그런 두사람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분명 그 시점의 알렌의 입가엔 왠지 능청스런 미소가 지어져있을테지.
그녀의 얘기를 들으며 표정이나 분위기가 휙휙 바뀌는 알렌을 보지 못 한건 다행일까 아닐까. 분명한 건 그녀가 그런 알렌을 보았다면 조금, 아주 조금은 다른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라는 가장이 붙은 예상 한줄이 머릿속을 스쳤을텐데. 안타깝게도 그녀의 지금 신경은 임무와 눈 앞의 정보들에 쏠려있었다.
"연배는 그대와 비슷할테니 친구라고 하기엔 약간 그렇지요. 실제로 당시의 저는 릭을 손윗 남매처럼 생각했었습니다."
얼추 보기에 알렌과 비슷해보인다 싶더니 정말 그랬나보다. 설명만 해주고 말려고 그랬는데, 한번 떠오르기 시작하니 이것저것 생각나서 말이 조금씩 더 나오게 되었다. 임무 전에 괜한 잡소리가 많아지는거 같아 입을 다물어야지 하려는 그녀에게 때마침 알렌이 적절한 요청을 해왔다. 그녀가 보라고 내민 지도에 대해 알려달라길래 그녀는 흔쾌히 몸을 알렌 쪽으로 기울이고 지도를 손으로 짚어가며 설명해주었다.
"여러번 설명할 시간은 없으니 한번에 알아들으세요. 일단 이곳은 2층 구조에 지하가 따로 있는 걸로 보입니다. 이 내부도가 맞다면, 아마도 내부에선..."
그렇게 한창 설명을 해주고 있으니 양손에 뭔가를 든 릭이 응접실로 돌아왔다. 두 사람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조용히 들어오면서도 오자마자 시선은 그녀에게로 향한다. 그러자 자연히 알렌도 보게 되었고, 그의 입가에 띄워진 미소를 보고 릭 또한 소리없이 웃음을 짓더니 곧장 그녀에게로 다가온다. 들고온 물건, 아마도 다른 자료들로 보이는 책 몇권을 테이블 한켠에 내려놓더니 그제야 릭을 눈치챈 그녀에게 손을 뻗어 이번엔 뺨을 건드리는게 아닌가. 알렌은 손끝이 닿자마자 떼었던 그 뺨을 아주 대담하게도(?) 손바닥으로 쓸자 그녀가 쯧, 혀를 차며 그 손을 밀어낸다. 하지만 릭은 손을 거두지 않고 되려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해왔다.
"식사 준비가 다 되었으니 식당으로 가요. 리엔. 당신이 좋아하는 레몬크림 파이도 준비해뒀어요." "ㅈ, 제가 아직도 어린애인 줄 아십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세요."
릭은 마치 그녀의 취향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말했고 그녀는 어째서인지 조금 발끈해 했다. 감정이 동하는 그런 모습, 그건 분명 알렌과 있을 때나 기사단에서는 보인 적 없는 모습이었다. 다시 또 혀를 찬 그녀가 손을 빼려 했으나 릭이 놔주지 않는다. 그러니 이번에도 쳐서 떼어내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녀는 미간만 살짝 찡그릴 뿐 손을 잡힌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알렌을 보며 말했다,
"더 귀찮게 하기 전에 식사 먼저 하고 오죠. 알. 달리 물을 것이 있다면 식사 후에 의논을-" "자자, 이러다 스튜가 다 식겠어요. 리엔. 얼른 가요. 알 씨, 당신도 어서 일어나세요. 그녀가 식은 스튜를 먹게 하고싶진 않잖아요?"
그녀의 말을 중간에 끊으며 끼어든 릭이 알렌을 향해서도 웃으며 말하고 먼저 그녀를 이끌어갔다. 억지로 끌고 갔다기보다 정중히 에스코트 해가는 모습이었지만. 그렇게 가면서도 고개를 돌려 알렌을 본 그녀는 어서 따라오라는 듯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달리 해석하자면, 그녀를 릭과 단 둘이 둘거냐, 뭐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다.
//약기운에 기절할 정도면 조금 아픈 정도가 아니었나본데요. 괜히 버티지 말고 쉬러 가라니까요. 정말. 🤨 또 그러면 알렌주 울려버릴거에요.(?) 오늘은 무리하지말고 푹 쉬었으면 좋겠네요.
손윗 남매처럼 생각했다는 말에 알렌은 일단 고개를 가볍게 끄덕여보였다. 일단은 어느정도 안면도 있고, 거리도 생각보다는 좁은 사이라는 것이겠지. 하지만 결국 남녀사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진짜 남매도 아니었으니까 그건 변함없겠지. 알렌은 아무튼 그렇게 머릿속을 정리하며 자신의 물음에 답해주는 린포르의 옆모습을 기분좋게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여보인다.
" 으음.. "
불편했다, 릭이 들어오는 것을 보곤 그저 그러려니 생각했는데 다가와선 린포르의 뺨을 건드리고, 매만지는 모습을 보며 괜히 기분이 이상해지는 것은 어째서일까. 단장을 희롱하는 건방진 신부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감정이 알렌의 예상보다도 격해질 것만 같았다. 린포르가 손을 밀어내는데도, 그 손을 잡아버릴 때에는 자신도 모르게 로브 속의 검집으로 손이 갈 것만 같았다.
" 리엔이 레몬크림 파이를 좋아했었군요, 덕분에 새로운 걸 배웠습니다, 릭. "
그러니까 얼른 손을 놓으라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알렌이었지만, 릭은 여전히 놓아주지 않았고, 린포르는 떼어내려곤 하지 않았다. 왜지, 왜 손을 놓으라고 말하지 않는거지? 알렌은 자신의 손이 닿았을 때는 민감하게 굴던 린포르를 떠올리며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쉰다. 뭔가 저 릭이라는 남자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에게 좀만 더 권력이 있었다면 검을 뽑아서라도 단장에게 희롱하는 것을 멈추라고 하고 싶었지만, 자신은 수습기사였다. 그래서 그저 그 두사람의 뒤를 천천히 쫓아가며 손잡이만을 매만질 뿐이었다.
" 걱정마십쇼, 리엔의 뒤엔 제가 항상 있을터이니. "
자신에게 어서 따라오라는 듯 시선을 보내는 린포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알렌은 마음 속에서 솟아오르는 불편한 감정을 애써 누르며 차분하면서도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체 말했다. 자신만 믿으라는 듯, 자신은 언제나 린포르의 옆 혹은 뒤에 있어주겠다는 듯 말한 알렌은 걸음을 조금 빨리해선 린포르에게 다가가 살며시 어깨를 감싸안아 끌어당긴다. 아마도 릭에게서 멀찍이 떨어트려두겠다는 듯.
" 릭, 리엔양이 그다지 접촉하는 것을 바라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중요한 작전을 앞둔 때에 이런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네요. 게다가 '신부'께서 그렇게 행동하시는 것도 말이죠. "
릭에게서 떨어트려 놓으려는 듯 자신에게로 린포르를 끌어당긴 알렌은 차분하게 릭에게 말을 하곤, 린포르에겐 상냥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 릭의 말로는 안쪽에 식사가 마련되어 있다고 하니 서두르도록 하죠. 식사를 마무리 하고 마무리 준비를 해야할테니까요. 모시겠습니다, 리엔. "
더이상 불필요한 접촉은 피해달라는 듯 린포르에게 말을 하다 릭을 바라본 알렌은 가볍게 손을 들어 릭이 준비해둔 곳을 가리키곤 천천히 둘이서 앞장 서서 걸어가려 했다.
알렌이 보기에 릭의 행동이 영 거슬렸던 것처럼, 그녀에게도 릭의 행동들은 이상했다. 원래도 살갑게 굴었지만 그건 어릴 때라 그런거지 않나 싶어 내칠까 하다가도, 정말 오랜만에 봐서 그런건가 싶어 매몰차게 굴지도 못 하겠다. 그리고 이런 모습을 알렌에게 보이는 것이 조금은 부끄럽기도 했다. 무뚝뚝한 기사단장의 모습만 알고 있을 단원이 봤을 때 실망스러울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떨어지고 싶어도 어릴 때의 정이 뭐라고 쉽게 떨쳐내지를 못 하게 한다. 이런 고민을 하는게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이것도 그녀였다. 잘 내보이지 않을 뿐이지.
'...그런 의미는 아니었는데.'
그녀의 시선을 눈치챈 알렌이 호위로써의 역할만 생각한다고 느껴지자 아주, 아주 작은 아쉬움이 가슴속을 스쳐갔다. 무엇에 대한 아쉬움인지 역시 알지 못 하는 채로 말이다. 그걸 차마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 그냥 잘 따라오기만 하면 됐지 하고 고개를 돌리고 릭이 잡은 손을 따라 걷고 있던 중이었다. 뒤따라올 줄 알았던 알렌의 기척이 슥 다가오더니 큼직한 손이 그녀의 가는 어깨를 감싼다. 자연스럽게 당겨지는 탓에 그녀가 걸음을 멈추자 릭도 멈췄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알렌을 보기만 하는 그녀와 달리 뒤를 돌아본 릭은 서글서글한 미소로 알렌을 보며 말했다.
"알 씨의 말도 맞긴 하지만, 전 지금 신부로써 그녀를 대하는게 아니니 상관없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녀 입으로 싫다고 한 적도 없는데 어째서 그걸 알 씨가 다 안다는 듯이 말하는 건지 모르겠군요. 당신들이 아는 모습이 그녀의 전부일거라 착각하고 있어보이는데, 생각을 좀 고쳐야 할 필요성이 보이네요."
웃으면서 하는 말이지만 말 속엔 보이지 않는 가시가 심겨져 있었다. 그 가시 중엔 알렌보다 릭이 그녀를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자신감도 섞여 있었고. 그저 바보처럼 웃기만 할 줄 아는게 아니었다. 릭이 앞서 안내하려는 알렌을 재치고 다시 그녀의 손을 이끌려고 하자 그때까지 가만히 있던 그녀가 단호하게 그 손을 내쳤다. 애초에 세게 잡고 있지도 않아서 뿌리치는 건 간단했다. 그런 그녀의 행동이 더 의외였다는 듯 릭이 놀란 표정으로 보았고, 그녀는 아주 약간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
"적당히 하세요. 리카르도. 그대가 저를 고향 지인으로 상대하는 것은 상관하지 않겠으나 제 단원이 신경쓰일만큼 구는 건 더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그대야말로 과거의 저를 알았다는 걸로 현재의 저도 다 알거라 착각하는 듯 하니 생각을 고쳐야 할 건 그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알."
짜증이 보이는 것만큼 조금은 아니었는지, 아니면 알렌의 행동이나 말도 그 짜증을 내는데 한몫했던건지. 그녀의 설교는 릭을 지나 알렌에게까지 뻗쳤다. 그의 팔 안에서 빠져나와 마주보고 서서 까칠하게 쏘아붙였다.
"릭이 하는 말이나 행동에 일일히 반응할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별것 아닌 것에 흔들리고 있는 모습 자체가 이미 임무에서 마음이 떠났음을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믿고 맡겨달라던 건 그대가 아니었나요? 그대는 기사로서의 마음가짐을 다시 잡아야 할 필요가 있겠군요."
그렇게 두 사람에게 일갈을 한 그녀는 하, 하는 짧은 한숨을 내뱉고 휙 돌아섰다. 그리고 누구의 안내도 없이 성큼성큼 걸어 식당 쪽으로 걸어갔다. 릭은 이 정돈 별거 아니라는 듯 피식 웃더니 그녀를 따라 걸으면서 알렌이 들으라는 듯 중얼거렸다.
"수줍어 하는 것도 까칠한 면모도 여전하네요. 우리 리엔은."
이쯤 되면 릭은 그냥 알렌을 놀리는게 재밌는 걸지도 모른다는 의심까지 들겠다. 남은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지 관심없다는 듯이 릭은 그녀가 먼저 들어간 식당으로 들어갔다. 자그마한 식당의 테이블엔 3인분의 식사가 차려져 있었는데, 그 중 한 자리는 이미 그녀가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4인 테이블이었으니 그녀의 옆자리와 앞자리만 남은 상황이었다. 릭은 여전히 느긋하게 테이블을 향해 걸어가고, 그녀는 식당에 들어온 둘을 힐끔 보더니 아무 말 없이 스푼으로 스튜를 떠서 입으로 가져갈 뿐이었다.
저 사람을 만나고 나서부터 되는 일이 없는 것 같다. 알렌은 자신에게 들으라는 듯 말하곤 안으로 들어간 릭의 뒷모습을 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게다가 린포르에게 쓴소리까지 들은 만큼 알렌의 기분은 그다지 좋지 못 했다. 그치만 차마 무어라 그녀의 말에 뭔가 대답할 수 없었다. 자신만 이상한 감정이 생겨난 것 같아서, 그에 반해 린포르는 전혀 그런 것엔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아서 기분이 이상했다. 왠지 기운도 나지 않아 두사람이 들어가는 것을 말없이 바라보다 안으로 향하는 알렌이었다.
식탁에 앉아서도 린포르와 마찬가지로 별다른 말 없이 스프를 떠먹기 시작한 알렌은 그저 묵묵히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평소에는 린포르의 식사 시간에 맞춰 속도를 조절하고 있던 모양이었는지, 딱히 이번엔 맞출 생각이 없는 듯 그릇을 비운 알렌은 이자리에 있는 그 누구보다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다.
릭에게는 아주 찰나에, 린포르는 그것보다는 좀 더 오랫동안 바라보던 알렌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며 천천히 입을 연다.
" 자료를 보고 있겠습니다. "
맛있게 드시죠. 알렌은 딱딱한 말을 남기곤 의자를 집어넣고 방을 나선다. 왠지 자기만 이상한 감정을 품고 있는 것 같아서, 괜히 혼자 들뜬 것 같아서 자신이 싫었고, 그러면서도 린포르에게 아주 약간의 섭섭함을 느꼈다. 그것을 린포르에게 티를 내고 싶지 않았전 알렌은 자리를 최대한 빠르게 벗어나는 것을 방법으로 택한 것이다. 두사람을 더이상 신경쓰지 않으려는 듯 뒤로 하곤 작전을 짜던 곳으로 돌아온 알렌은 털썩 의자에 앉아선 늘어진다.
" 바보 같은 녀석.. 단장님이 몇번 대화를 해주니까 뭐라도 된 줄 알아선.. "
자책을 하듯 중얼거린 알렌은 어딘가 의욕이 살아진 눈으로 멍하니 자료를 바라보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다. 마치 자신에게 원래 걸맞는 자리로 돌아가는 것처럼.
알렌이 풀죽은 걸 알아서 그랬는지 릭은 순순히 그녀의 옆자리를 알렌에게 내주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알렌의 수심이 깊었나보다. 주변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그녀와 똑같이 아무 말도 없이, 그의 페이스대로 그릇을 비우곤 식당을 나가버렸다. 그녀는 아직 반도 못 먹었는데 말이다. 그런 모습은 그녀에게도 신경이 쓰이는지라 잠시 손을 멈추고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뒷모습이 그녀에게 혼나고 귀와 꼬리를 늘어뜨린 고향집 개와 닮아있어서,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아까 그녀가 좀 심했나 하는 생각이 그제서야 들었다.
'어떡하지...' "그렇게 신경쓰이면 사과하지 그래요? 따지고보면 그는 잘못한게 없으니까요."
마치 그녀의 마음을 읽은 듯한 릭의 말에 흠칫 하며 쳐다보자 여전하네요, 라며 릭이 웃었다. 그 웃음을 보니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싶어 테이블 아래로 한대 걷어차줄까 했다. 거기까지 예상했는지, 또 때리면 파이를 주지 않을거라고 말해온다. 그 말에 소소한 복수를 포기한 그녀는 미간을 찡그리며 아니꼬운 느낌으로 혀를 찼다. 정말 밉상 중의 밉상이었다.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 웃음이 나오다니, 성격 나쁜 건 변함없네요. 그대가 정녕 신부의 재목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에요." "이런 저를 신부로 인정한 건 이 나라인걸요. 리엔이 이러쿵 저러쿵 할 일은 아니죠. 자, 다 먹었으면 파이 들고 돌아가세요. 전 뒷정리를 할 테니까요."
능숙하게 그녀의 말을 받아친 릭은 주방에서 파이 두 조각과 향이 좋은 홍차 두 잔을 쟁반에 받쳐 들고나왔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가려는 그녀에게 그것을 넘겨주며, 잘 달래주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채 다시 주방으로 가버렸다. 결국 휘둘린 건 그녀와 알렌 뿐이라는 생각이 들자, 이제 화는 커녕 한숨만 푹 새어나온다. 더 신경쓰지 말자며 식당에서 나온 그녀는 일단 들고있는 것도 있고 하니 알렌에게 돌아가보기로 했다. 왔던 길을 되돌아 응접실로 돌아오자 때마침 문이 덜 닫혀있었다. 그래서 어깨로 살짝 밀고 들어가며 안에 있을 알렌을 불러보았다.
"알? 거기 테이블 좀 치워주세요. 이걸 내려놔야 해서."
응접실에 하나뿐인 테이블이 지도와 자료집들로 가득 차 있었으니 그걸 먼저 정리해야 그녀가 가져온 것을 둘 수 있을 터였다. 혹시 못 들었으면 한번더 얘기할까 하며 테이블이 정리되길 기다렸다가, 쟁반을 놓을 만큼의 자리가 나면 그제서야 내려놓고 아까 앉았던 의자에 앉는다. 굳이 쟁반에서 접시며 잔을 내려놓을 필요는 없을거 같아 그대로 두고 알렌에게 먼저 그것들을 권했다.
"이쪽은 그대의 몫이니 사양말고 드세요. 릭은 할 일이 있다 해서 저희 것만 받아왔으니. 이대로 좀더 휴식을 갖도록 하죠."
릭이 그런 말을 해서 그런가, 어쩐지 얼굴을 제대로 못 보고 말만 해버리곤 찻잔을 들었다. 하얀 잔 속에 일렁이는 붉은 찻물을 보면서 신경 안 쓰이는 척, 평소 같은 척을 하고 있었다.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작은 갈등을 품고서.
린포르주도 즐겁고 행복하다면 정말 다행이야 😌 난 늘 나만 즐기는건 아닐까 조금 무섭기도 하거든 ☺️ 나는 열심히 돌리고 같이 열심히 즐기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사실은 아니었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몇번 들었더니 바보같이 걱정하게 되더라 😂 그래도 린포르주는 아닌 것 같아서 기분이 막 좋아. 아마 이 기분에 술 마셨으면 취중알렌주를 보여줬을지도 몰라. 그나저나 어제껀 잊어주면 좋을텐데..😭 요즘 막 린포르주랑 잘 자라는 말 나누고 잠드는게 참 좋더라구.. 그래서 안 빼먹을거야! 라고 결심했는데 바로 그냥..
취중알렌주 아깝다. 아깝다아아. 😮 전 아니니까 그런 걱정 덜어도 괜찮아요. 힘들 땐 힘들다고 얘기했자나요. 요전에 아팠을 때도 그렇고. 그러니까 알렌주도 무리하지 말구 바로바로 얘기해요. 어제처럼 기절잠하지 말구요. 🤭 어제가 아마 처음이었죠? 잘 자라는 말 없이 잔 거. 그냥 그것 뿐인데 어쩐지 허전하고 그러더라구요. 덕분에 뒤척이기까지 했어요. 원랜 잘 안 그러는데.
근시일내에 보게 될지도 모르지만. 슬슬 술 한잔 할 시기가 되서 말이야. 🤭 물론 정신 똑띠 차리구 타이핑 하려고 해서 티가 날지 안날지 모르겠지만~ 무리한 건 아니었는데..뭔가 지금 이렇게 말하면 설득력이 없겠지? 😂 맞아, 이젠 안 하면 허전하고 괜히 아쉽고 그래. 그래서 새벽에 눈 뜨자마자 바로 레스 남겼었오.. 눈 뜨자마자 가슴이 철렁하더라니까..🥰 막 린포르주가 기다렸을거 생각하니까 너무 미안하더라..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