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이 사인 떴다- 밝아졌다 그건 좀... 이라는 듯 절레절레하는 상대의 얼굴을 보면서 HAHA- 했다. 지키지도 않을 엉뚱한 소리를 해서 남을 놀리는 건 오랜 습관인지라. 오히려 진짜로 당장 벗으라고 했으면 더 곤란했다구.
“이런, 교토말은 아는 게 없는데.”
TV에서 본 빈약한 기억밖에 없는 사투리를 척척 알아듣긴 무리라구. 나 어색합니다~ 하는 듯이 괜히 후드 위로 머리를 긁적이는 사인을 했다. 그래도 먼저 반말을 요구했는데 이제 와서 역시 존댓말이 좋습니다던가 곤란할 테고, 모르는 단어 나오면 표준어도 아는 거 같으니 다시 알려달라고 하면 되겠지.
"그러니까 당신... 아니, 같이 다닌다면 먼저 이름부터 알아야겠다. 나는 시미야 사이토, 당신은?"
뙤약볕에서 계속 이야기하긴 쪄죽을 거 같아 적당히 햇빛 피할 데를 찾으며 이름을 말했다. 여기 어디려나 대체. 걸어서 아와나미 벗어난 건 아니겠지... 아, 적당한 크기의 나무 발견. 휘적휘적 따라오라고 뒤로 손을 젓고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로 그늘에 앉았다.
하고 시치카는 눈을 가늘게 뜨고 응후후, 하는 웃음소리를 낸다. "집사님들 중에 내가 이렇게 기분좋게 웃는 얼굴을 본 건 아직 캇쨩밖에 없을걸." 혹시나 벌써부터 나를 독점하고 싶은 거라면 너무 서두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하고, 나직하고 짓궂은 속삭임이 그녀의 말 뒤에 조용히 따라붙었다. -그야, 자유분방한 길고양이를 다짜고짜 잡아가려 하면 아무리 조그만 고양이라도 어느 정도는 반발하겠지. 의도가 그렇지 않더라도 잘못 전달되는 말들이 있는 법이다... 제 4의 벽 너머에서 말해두자면, 시치카는 독선적이고 오만한 부모의 영향으로 인해 누군가가 자기 입맛대로 자신의 행동을 제어하려 한다고 느낄 때 매우 크게 반발한다. 그녀와 매우 친밀한 게 아닌 이상은.
"지금은 캇쨩이랑 이렇게 기분좋게 산책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
하고, 자칫 차게 멀어질 수 있는 거리를 다시 따라붙은 시치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아스카를 따라간다. 이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별 것 없는 반복되는 일상의 지루한 풍경일 텐데, 시치카에게는 이런 바닷가 마을의 풍경 하나, 하늘 한 조각, 바다 한 웅큼, 모래사장 한 줌이 그렇게 신기한 모양이다. 그러다 잠깐의 하이킹만으로 한적하면서도-물론 모든 것이 과잉된 도쿄에서 살던 시치카 기준으로- 아담하고도 멋진 상점가가 나오자, 시치카는 반색을 했다.
"시작부터 엄청 멋진 데로 데려와줬잖아... 정말, 캇쨩을 만난 건 행운이야!"
멋지다- 라는 표현의 기준이 이상하다. 도시 생활에 익숙해져 있던 낭만 고양이에게는 오히려 이런 지역색이 강하고 친근한 가게가 힙하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실례하겠습니다~ 도쿄에서 온 캇쨩의 친구입니다!" 이 집 텐동이 그렇게 맛있다고 들어서요, 하고 너스레를 덧붙이며 시치카는 가게의 주인 아주머니에게 싹싹하게 인사를 건네곤 아스카를 따라 안쪽 자리로 들어온다. 살랑살랑, 연갈색 머리카락이 기분좋게 흔들린다.
"이렇게 기분좋은 식당은 도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데, 나 할아버지 말 듣기를 정말 잘한 것 같아."
/ 아스카가 지뢰를 밟았어...... 원래는 더 날선 말이었던 걸 최대한 둥글게 다듬었는데 어떨까 모르겠네...
" 딱히 독점하려는건 아니지만~ 적어도 다들 치카짱에게 잘 해주고 나서 봤으면 좋겠달까? 그만큼 치카짱의 미소는 값진거라고 생각하는걸. "
애초에 우리 고양이는 꽤나 능력있는 사람이잖아? , 아스카는 눈을 가늘게 뜨곤 웃음소리를 내며 속삭여오는 시치카에게 눈을 깜빡이다가 히죽 웃으며 답한다. 시치카의 분위기가 변했다는 것을 알아챘는지, 아닌지 모를 정도로 변함이 없는 미소였다. 어쩌면 지금은 괜히 알아차렸다는 티를 내는 것이 더 안 좋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 그리고 아무거나 주우려고 하면 안된다고 했어. 그저 먼저 손을 내미는 것정도만 하라고 배웠거든 ' 아스카는 슬쩍 말을 덧붙여 속삭이고는 다시 기분 좋게 나아간다.
" 나도 그래~ 누군가랑 산책하는건... 뭐라고 해야할까. 내가 좋아하는 고향, 내가 좋아하는 곳을 같이 공유하는 기분이라서 괜히 더 가슴이 벅차거든. 그래서 내가 이곳을 좋아하는 만큼, 치카짱도 즐겼으면 하는 마음이야. 그렇게 바라고 있어. 그러면 나중에 돌아가게 되더라도, 나를 생각해주고, 여기를 생각해줄테니까. "
자신을 따라붙으며 하는 말에 맑은 웃음소리를 낸 아스카는 차분한 목소리로 앞으로 보고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으며 말한다.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닌데도, 가늘고 맑은 목소리가 노래가 되는 것처럼 청량하게 울려서 시치카의 귓가에 울렸을 것이다. 마치 소녀의 기도처럼, 부디 시치카도 자신이 이곳을 사랑하는 만큼 좋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기도.
" 후후, 그렇게 생각해주면 고맙네~ 나도 여기 좋아해. "
멋지다는 말에, 눈이 동그랗게 커진 아스카는 이내 볼을 붉히며 수줍게 웃어보이곤 답한다. 누군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해준다는 건 꽤나 기분 좋은 일이구나 하는 걸 새삼스럽게 깨달으면서. 아무튼 그렇게 가게에 도착해서 자리를 잡은 아스카는 기분좋게 살랑이는 시치카의 머리카락을 보며 턱을 괸다.
" 그래? 나는 도쿄... 한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거기도 근사한 곳이 많아서 아와나미에 있는 곳은 눈에 안 들어오면 어쩌지 했거든. 그런데 이렇게 좋아해주니까 다행이야. "
분명 입도 만족할거니까 조금만 기다려줘. 주방에서 고소한 기름향이 퍼지는 것을 느낀 아스카가 요리가 시작된 것을 보고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체로 속삭이듯 말한다. 곧이어 튀김이 튀겨지는 소리가 기분 좋게 울려퍼지기 시작했고,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먹음직스럽게 새우튀김과 여러가지 해산물 튀김이 먹음직스럽고 예쁘게 차려진 쟁반 두개가 두 사람 앞에 놓여진다.
" 감사합니다, 아주머니! 자, 혹시 인증샷이라거나 찍을꺼면 살짝 비켜줄까? "
아스카는 혹시나 sns에 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식기를 들려던 손을 멈추곤 조심스럽게 물음을 던진다. 아무래도 유튜버로서의 시치카도 신경을 써줄 모양이었다.
그래, 느닷없는 사투리는 당황스러웠을 테지. 머리 긁적이는 사이토에게 작게 하하, 웃어보인 치하야는 조금 미안한 양 눈썹을 팔자로 늘어뜨렸다. 아까 전의 겸연쩍은 미소도 그렇고, 이것은 말을 너무 까다롭게 쓰진 않으리라는 나름대로의 호의 표시라 보아도 됐다. 물론, 물론 존댓말로 돌아가줄 의사는 여전히 없다시피 했지만... 칸사이벤- 하면 나름 유명한 거니까? 그렇게까지 어렵지는...... 아닌가, 어려운가. 치하야는 잠시살짝 제가 과히 쿄부심을 부리는 건 아닌지 고민했다...
"...아, 어-째 허전-하더라이!"
하여간 이름부터 알아야겠다는 말에는 쥔 손을 손바닥에 대며 깨달음의 표시를 하는 것이었다. 어쩐지!
물론 이 해석은 흔히 아는 사이토에 기반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 사이토에게는 어느 방식으로 실례였을 수도 있지만, 뭐 어쩌겠는가. 명함 주고받지도 않은 노릇을. 만일 다른 한자라면 농담 하다못해 애쓴 칭찬이라고 넘어가주면 고마울 것 같았다. 아무튼 제 이름도 알려줘야 하는데... 시미야 저 친구 조금 전부터 주위 둘러본다 싶더니 설마 길을 찾았나? 따라오라는 손짓에 살짝 기대감을 품은... 품은 것이 잘못이었다. 그늘에 앉아버리는 모습을 보고 상황을 파악한 치하야는 한숨과도 같은 헛웃음을 지었다. 하기야 무더위가 기승이다마는...
"덥기는 억시 덥제. 쪼미 시다 가까?"
갑자기 앉는 것은 쉬고 싶다- 이 뜻밖에 없겠지, 아마.
"암튼, 내는 오다 치하야라 하고. 대답이 이래 가리늦다니 모쓸 일이다, 그제."
말하는 순-서가 잘못된 것이지, 에-라-이. 치하야는 내심 쯔쯔 혀를 찼다.
//컨디션 훨씬 나아졌다 <:3! 답레랑 함께 갱신이야~ 미야주 고맙고 미안하구 그래 <:3..
누군가_자캐의_오른뺨을_때린다면_자캐의_반응 "이야, 이엇 참말로 무례하다. 니 문- 사정으로 이래 구는진 내 알지 모하나 저의가 있으믄 말로 푸는 것이 백번 낫단 사실만큼은 아는데, 니 나와 대화할 기고 아이믄 나라-히 경찰서 정모나 갈 기고?" ...라고 허세빵빵하게 말하지만... 정당방위가 아닌 이상 싸움을 자처할 일은 없을 거야:3 허세킹 오다 노부나가...
자캐는_사랑받고_있습니까 듬~뿍 받고 있습니다 :3! 형제와는 두말 할 것 없고, 할머니와도 없고, 부모님과도 없습니다! 화목한 가족관계~~~!
트위터_하는_자캐 🤔,,, 굳이 한다면 가끔 그리는 그림이나 올릴 거 같은 느낌...? 약-간 트인낭 사상에 젖어 있어서(...) 꼭 필요하지 않은 이상 본인이 취미로 트위터 하는 일은 없을 듯해:>
추운 겨울이 아니라도 온천을 찾아오는 이는 있었고 그런 손님들을 위해서 온천은 오늘도 문을 열었다. 소년은 아침부터 열심히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물건을 채우고 청소를 하면서 열심히 일했고 그 때문에 이마에서 땀이 주륵 흘렀다. 온천 내부에 돌아가는 에어컨이 아니었으면 아마 소년은 지금쯤 일사병으로 쓰러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타올에 우유까지 전부 채워넣은 후에야 소년은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오늘은 일감이 왜 이리 많나 몰라. 진짜 체력 훈련은 딱 되겠네."
수영부에서 방학마다 하는 체육 트레이닝에 밀리지 않게 이 일도 보통 육체노동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소년은 괜히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렇다고 여기에 온 것을 후회하진 않았다. 이곳의 분위기를 즐기는 것은 나름 재밌었고 이 일도 마냥 손해보는 일은 아니었으니까. 무엇보다 소년은 이미 여기서 친구를 두 명이나 사귀지 않았던가. 일 끝나고 라인 메시지를 보내볼까 생각하는 와중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소년은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온천 이용객이신가요?"
라고 말을 하는 건 좋았는데 눈앞에 보이는 건 서양인 느낌이 드는 사람이었다. 키도 크고 피부도 하얗고 동공도 푸른 색이었다. 외국인? 아닌가? 혼혈인가? 혼란스러운 표정을 잠시 짓던 소년은 일단 일본어로 이야기했다.
일본어가 가능한 것으로 보아 외국인인지 아닌지는 둘째치고 의사소통은 충분히 가능한 것에 소년은 속으로 안도했다. 만약 영어로 해야 했다면 아마 조금 의사소통이 힘들었을지도 모르니까. 영어를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소년에게 있어서 더 익숙한 것은 모국어였다.
"그러니까 손님이라는 이야기죠?"
온천 자체가 처음이라면 일본에서 쭉 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온천이 없는 나라에서 온 이인 모양인데 어디서 온 것일까? 하지만 바로 물을 순 없다고 생각하며 소년은 우선 저 편에 있는 카운터로 손가락을 가리켰다.
"우선 저쪽에 있는 카운터로 간 후에 계산을 하면 열쇠를 줄 거예요. 옷을 넣을 수 있는 열쇠 말이에요. 그걸 가지고 탈의실로 들어간 후에 해당 번호가 적혀있는 로커의 문을 열고 옷을 벗은 후에 이용해주세요. 아. 맞아. 열쇠만이 아니라 몸을 닦을 수 있는 타올도 줄 테니까 꼭 챙겨가세요! 그리고 이건 온천이 처음이라고 하니 알려주는 건데."
역시 온천을 즐기고 난 후에는 이거라고 생각하며 소년은 뭔가의 뚜껑을 열고 그 내용물을 마시는 시늉을 하면서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탈의실에 들어가면 100엔을 내면 마실 수 있는 우유가 있는데 온천욕을 끝낸 후에 먹으면 이게 또 엄청 맛있거든요. 진짜. 처음이라면 꼭 마셔봐야죠. 아. 물론 안 마셔도 상관없어요. 어디까지나 자유지 강매가 아니에요. 이거. 아셨죠?"
오른손 검지를 가볍게 흔들던 소년은 다시 오른손을 아래로 내렸고 사내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온천이 처음이라면 일본 출신은 아닌 것 같은데 일본어 능숙하시네요. 대단하네요. 외국에서 오신 분인가요?"
소년은 정말로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진실은 조금 다르긴 하지만 오늘도 자신은 직원으로서 온천에 큰 도움이 되었고 곤란에 처한 사람을 직원으로서 도왔다는 뿌듯함 덕이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최대한 열심히 일을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었으니까.
"꼭이에요! 정말 왜 온천욕을 즐긴 후에 우유를 먹으면 기분이 좋은건지. 진짜 과학적으로 누가 밝혀내야 해요. 이건."
괜히 우유를 또 다시 강조하며 소년은 미소지었고 무의식중에 입맛을 다셨다. 오늘 일이 끝나면 온천욕을 즐긴 후 우유를 마셔야겠다고 생각하는 소년의 시선은 탈의실 쪽으로 향해 있었다.
"어머니가 일본? 아. 혼혈인가요? 그래서구나. 미국에서 여기까지 온다고 고생했어요. 꽤 멀잖아요. 미국."
정확히 얼마나 먼지는 말 할 수 없지만 비행기를 타고 한참을 날아가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기에 소년은 괜히 거리를 머릿속으로 쟀다. 여기서 치바까지 왕복을 하면 몇번을 해야하나? 수백번? 대충 그 정도라고 생각하니 역시 엄청난 거리라고 생각하며 소년은 경이로운 표정을 짓다가 사내에게 이야기했다.
"아무튼 더 도움이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얘기해주세요. 물론 서비스를 제 마음대로 줄 순 없지만 그래도 도움이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도와줄게요. 아. 맞아. 노천탕에 들어가면 아무래도 물의 온도가 있으니 조금 더울 수 있으니까 그 점 주의하세요. 괜히 따뜻한 거 즐긴다고 버티다가 열이 너무 올라서 쓰러지는 분들이 간혹 있거든요. 열사병 걸리면 큰일나요."
정말로 주의사항이라는 듯이 이야기를 하며 소년은 괜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사내가 그럴 것 같진 않지만 온천이 처음이라고 하니 나름 주의를 주는 것이었다.
물장구를 치는 모습도 튜브를 쓰는 모습도 귀여워! 풋풋한 느낌이 잘 살잖아! 유키는 멋지게 수영을 하기보단 친구들에게 물 뿌리는 것에 더 집중하지 않을까 싶네. 사실 수영도 좋아하지만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더 좋아하는 애라서 그렇게 물을 뿌리다가 추격전이 시작되면 그제야 수영으로 도망칠 것 같아. 하지만 아와나미 시 아이들도 수영을 잘하겠지! 잡힐 미래 밖에는 안 보여.
지금 날씨에 온천은 최고지. 물론 실제로 지금 갔다간 2주 격리 당할 가능성이 약 .dice 0 100. = 89 퍼센트일 것 같지만 그래도 따뜻한 물에 몸 담그고 싶어. 그러고 보니 요즘도 목욕탕이나 온천은 다 하는 것 같던데 어떻게 들어가는걸까? 마스크 끼고 목욕하는거 안되지 않나?
아와나미에서 그나마 번화가 비슷한 곳을 꼽으라면 아와나미시 현지인들은 입을 모아 기요누마라고 대답할 것이다. 성수기-사실 지금이 성수기이긴 한데-를 제외하면 그다지 활발하지 않은 아사하마보다 그나마 발달한 동네인데다 시청도 있으니까.(?) 아무튼 아사하마보다 기요누마에 그나마 귀여운 것들을 파는 가게라던가, 그런 것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가게에 매주 들러서 새로 들어온, 귀엽고 자신의 마음에 쏙 드는 것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나기의 취미였다. 오늘도 기요누마의 한 기념품 가게에서 취미활동을 만끽하던 나기의 발걸음이 잠시 멈칫했다.
“와아, 귀여워! 뭐야 이거, 귀여워어☆”
저번주까지는 없었던 귀여운 인형 키링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 크지 않고 작은 크기라 여차하면 놓치고 그냥 지나갈 뻔했지만 다행히 나기의 카와이 레이더(?)가 포착한 것이다. 작은 바다표범이 귀여운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 키링… 이건 어디를 어떻게 봐도 귀엽다! 좋아, 질러야지☆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계산을 빠르게 마친 후, 좋은 걸 찾아냈다는 기쁨에 기세좋게 걸으려던 나기가 또 다시 멈춰섰다. 이번에는 귀여운 것을 발견해서가 아니라 때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누군가와 하마터면 부딪을 뻔했기 때문이다. 귀, 귀여운 걸 산게 너무 기뻐서 눈에 보이는 게 없었나봐.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네… 그래도 다행히 충돌이 일어나기 직전에 멈춰서 양쪽 모두 무사할 수 있었다. 조금 놀란 가슴을 속으로 쓸어내리며 일단은 상대에게 사과를 건넸다.
“으앗☆ 미안해요! 어디 다친 데는… 앗, 어디서 본 것 같은…”
익숙한 얼굴이다. 어디서 봤냐면, 일단 우리집에 온 손님은 아니고, 음, 학교에서 본 것 같은데… 한 손을 입가에 가져가 살짝 입을 가리고 고개를 기울인채 고민하던 그 때, 그래, 떠올랐다! 입가에 댔던 손의 한 손가락을 펴고 살며시 내밀며 무슨 퀴즈 정답이라도 맞추듯 말한다.
“붕대! 가끔 붕대 감고 학교오는… 선배? 동급생? 맞죠? 헤헤, 나기 이런 거 기억 잘 하니까☆”
분명 시작은 사과였는데 어째서인지 지금은 의기양양하게 맞췄다!라는 뿌듯한 얼굴로 상대를 보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이렇게 된 걸까.
기요누마라. 딱히 뭘 살 생각으로 이곳까지 온것은 아니었다. 그냥 산책이나 할 겸, 그런 와중에 눈에 띄는게 있으면 충동구매나 할까 해서 그냥 멍하니 길을 거닐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기념품 가게 같은곳을 보며 '이런덴 살만한게 있을까' 라고 멍하니 생각하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앞에서 튀어나왔다.
" 왁!? "
굉장히 멍하게 걷고있던 터라 갑자기 발생한 시츄에이션에 흠칫 놀라버렸다. 아무리 그래도 소리까지 내버린게 조금 부끄러워져서 헛기침을 한번 했다.
" 크흠... 아, 네. 멀쩡... "
...? 뭐지? 사과받던중 아니었던가. 머릿속으로 생각난 태클을, 어떻게든 입으로는 내뱉지 않았다. 그야 처음보는 사람한테 갑자기 그런 소리를 했다가는 상대도 굉장히 난처할테니까. 그러고보면 나도 상대를 본 적은 있는것 같았다. 그야, 분홍머리의 학생은 그리 보기 쉬운게 아니니까. 갑작스레 사과에서 퀴즈쇼로 변질된 이 상황이 놀랍기는 했지만, 괜히 태클을 걸만한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부딪힐뻔 한것 정도야 아무렇지 않으니까.
왁!? 소리까지 났던 걸 보면 상대도 제법 놀란 것 같은데, 뭐 아무튼 갑자기 퀴즈쇼가 되어버린 이 상황에는 별 말이 없던 걸 보면 괜찮은 걸지도!(아니다) 그런 근거없는 확신을 안은 나기에게 상대가 2학년이라는 정보가 들어온다. 아하, 그럼 선배였구나! 하긴, 같은 학년 아이들 중에서는 붕대 감고오는 건 못 봤던 것 같으니까~ 그래그래 선배였구나 선배.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던 나기가 이번엔 고개를 살짝 저으면서 밝게 대답했다.
“나기는 완전 멀쩡한 걸☆ 부딪기 전에 멈췄으니까. 앗 그리고 나기는 1학년! 그럼 선배네요! 그러니까… 어- 음-”
붕대를 감고 다니는 게 인상적이어서 기억에 남긴 했지만, 솔직히 이름까지는 모른다. 좁은 마을이니까 주민끼리 잘 아는 게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막 좁진 않거든?! 물론 이런저런 소식을 접하기는 하지만, 아무튼 중요한 건 그렇게 가까운 사이가 아닌 이상 이름을 모르는 건 당연한 일이라는 거다. 그리고 지금 눈 앞의 상대의 이름도 그러한 이유에서 모르는 상태였다. 하지만, 어쩐지 맞출 수 있을 것 같단 말이지!! 어째서인지 퀴즈쇼가 계속되고 있었고, 나기는 한 손을 펴서 앞으로 내밀고 잠시 기다리란 제스처를 하며 고민하다가, 정답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응, 그러니까… …시노노메! 시노노메 선배 맞죠?”
정답이라고 당당하게 말했지만 사실 그냥 생각나는대로 아무 이름이나 말한 것이었다. 운이 좋다면 정답일수도 있겠지만 일단 지금은 확실히 아니었다. 그걸 알 리가 없는 나기의 표정은 당당함 그 자체였지만.
“뭐 아무튼☆ 여기서 만나다니 우연-이라고 하기엔 좁은 마을이라 당연한 일인가 싶지만, 아무튼 우연이네요☆”
아, 후배였던건가. 고개를 두어번 끄덕였다. 확실히 동급생 중에선 분홍머리 여자아이를 본 적이 없었지. 이름은 나기라는 것 같다. 본인 이름을 저렇개 3인칭으로 광고해서야 모를 수가 없겠지.
그나저나, 나기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모양이다. 뭐지? 아직 퀴즈쇼가 계속되고 있는건가? 뭔가 정답을 맞출만한게 아직 남아있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설마 이름을 맞춘다던가? ....는 너무 앞서간 생각이겠지. 갑작스럽게 이제 처음 만난 상대의 이름을 맞춰낼 리가 없다. 굳이 생각해서 맞춰낼 바에야, 앞에있는 사람한테 물어보는게 제일 빠르...
" 누구야 그게!? 그런 등에 태엽 달고다닐것 같은 이름*은 아니라고! "
아, 이런. 태클은 최대한 피하려 했는데. 하지만 갑작스럽게 개명당해서야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다. 뭣보다 태클은 대부분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거였으니까.
같은 행도 아니고 애초에 글자 수부터 다른 것을 대체 어디가 아깝게 틀렸다는지 모르겠지만, 어쩐지 이렇게 말해야 할 것 같았다. 등에 태엽은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의외로 하나쯤 달고 있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의외로 귀여울지도 모르고? 아무튼 아쉽다는 듯이 어깨를 축 내리다가 순순히 본명을 밝히는(?) 카무이 선배를 보고 다시 활기차게☆ 웃으면서 말했다.
“카무이 선배군요! 나기는 미쿠모 나기! 앞으로 학교에서 보면 인사해주기에요! 붕대 선배!”
카무이라는 이름은 어디로 갔는지, 뒤에 가서는 인상 깊었던 모습으로 부른 후, 뭐하고 있었냐는 질문에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웃었다. 뭐어, 이런 가게에서 할 거라곤 당연히 그거 아닌가요 그거? 아주 당연한 것을 말하는 듯한 어조로, 그리고 어느 새 가방에서 꺼내든 아까 산 키링을 보이며 말했다.
“그야 쇼핑이죠? 아이쇼핑하다가 엄청 귀여운 걸 발견해서 사버렸어요☆ 그게 너무 기뻐서 앞도 안 보고 나오다가 그만…! 이라는 느낌이네요. 그러는 선배는 여기서 뭐 하고 계셨어요? 어딘가 가던 중이셨나요?”
"맞나? 그래도 고엇도 머찐 이름이네. 내 이름은 아무리 해도 무녀님의 치하야- 부엌일의 다스키- 머 이런 식이라."
정말이지, 수차 생각하지만 무슨 생각에 지은 이름인지 알 수 없을 노릇이다. 어디 무녀님의 축복이라도 받았나, 태몽에 무녀가 나왔나, 이도 저도 아니면 그저 다스키에서 팍 하고 영감을 받았을 뿐인가... 으응, 세 번째라면 조금은 상처일지도(웃음). 닷치라면 애칭인가 생각하며 사이토가 가리킨 자리에 편한 자세로 앉은 치하야는 떨어진 거리를 보더니 짐짓 짓궂은 얼굴을 했다.
"미얏치는 내와 가직게 앉는 일이 싫나 보아."
뭐, 당연하게도 농담이라서, "머 알따. 쫌 셨다 인나자고." 하고 가뿐하게 제 말을 갈무리한 치하야는 바쁜 길 오가는 군상이나 그동안 지켜볼까 했다. 폰 이야기가 나오자 눈 둥글게 하며 사이토를 봤지만. 단순 폰 이야기도 아니다. 이르자면 조금 더...... 충격적인 이야기.
"방-전이라고?"
치하야는 입을 가려 놀란 양을 했다. 방전... 방전이라고...? 보전宝殿 말고 전기 할 때 그 방전? 정말? 생각지도 못한 날벼락에 치하야의 시선처리가 난감해졌다.
"그 말... 그 말 참말이가? 이야, 이엇 진짜... 아, 아이, 그엇이 말다..." 치하야는 여기서 눈알을 한 차례 굴렸다. "...내는... 폰이 아주 없어가. 니한테 내 모든 기댈 걸었는데 설마 방전일 줄이야..."
하하, 하하하하하하하...... 그런 어색한 웃음이라도 흘려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소리내어 웃진 않았지만 그 대신 어색한 미소만은 지은 치하야는 느릿하게 첨언했다.
다음은 없다고 단언하다니! 그건 플래그 발언이니까 다음에 또 이런 때가 올 수도 있다구요! 하지만 보통은 없겠지. 응. 그래도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 더 재미있으니까(?) 그런 걸로 치자. 그리고 다음에 만났을 때 한 번 더 할 수도 있고. 그나저나 이 선배, 태클이 장난아닌데. 마치 만담이라도 하는 듯한 묘한 재미가 있다. 이제는 붕대 선배가 아니라고 별명을 부정하는 선배를 보며 키득키득, 즐겁게 웃었다.
“좋아요~☆ 미쿠모 후배님도 나기 후배님도, 뭐든 좋아요! 앗, 그쵸? 귀엽죠? 저번주까진 가게에 없었는데, 아마 새로 들어온 것 같아요! 보들보들하고 동글동글해서 엄청 귀여워☆”
귀엽긴 하네, 그 말에 눈을 엄청나게 빛내며, 아니… 희번득하게 뜨며(?) 키링을 들고 귀여움 타령을 시작했다. 그치만 어쩔 수 없어! 이거 엄청나게 귀여운걸!! 아와나미에 바다표범은 없지만 원래 관광지 기념품이라는 건 다 그런 거다. 관광지에 실재하는지 아닌지는 제쳐두고, 일단 귀엽고 눈길을 끌면 장땡이지!! 아무튼 이거 엄청나게 귀엽다는 주장이 길게 이어지기 직전에 산책중이었다는 선배의 말이 들렸다. 아하. 산책 중이었구나~
“산책… 뭐, 한적한 동네니까 돌아다니기엔 좋죠. 지금은 여름이라 사람이 많긴 하지만, 평소보다 많을 뿐이지 그렇게 북적이는 것도 아니고. 그쵸? 앗, 그치만 산책은 역시 아사하마 쪽이 더 낫지 않나 싶어요. 그쪽은 진-짜 바다 말고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참, 나기는 아사하마 쪽에 살거든요! 그래서 학교도 동고로 간 건데. 그러고 보니 선배는 어느 쪽에 살아요? 아사하마? 기요누마?”
유키는 수영을 좋아하고 수영부도 좋아하지만 체육부 아이들이 여름에 하는 지옥훈련은 정말로 싫어하거든! 물론 그럴 목적으로 아와나미에 온 것은 아니지만 지옥훈련에서 빠진 것 자체는 정말 좋아하고 있어. 어차피 수영선수 될 것도 아니니까 그 시간에 나는 다른 것을 하겠다는 아주 게으른 마인드지!
“에이, 설마요. 잊어버릴리가 없잖아요? 카모 선배. 그보다 인형은 보들보들한게 보통이잖아요? 만져보실래요? 지금이라면 무려 100엔에 1회 터치라구요!”
농담이지만요! 그렇게 덧붙이고 까르르 웃었다. 아니 뭐, 나기는 그렇게까지 돈에 욕심있는 편이 아니니까! 키링을 만지게 해준다는 명목으로 돈을 뜯을 생각은 전혀 없다구☆ 그보다 자연스럽게 이름을 또 다르게 불러버린 기분이 든다면 그건… 착각이 아니니까! 일부러니까! 아무튼 만져보라며 키링을 살짝 내밀었다. 음, 카무이 선배도 아사하마 쪽에 사는구나. 하긴, 동고에서 가까운 쪽이니까. 물론 아사하마에 살면서 서고에 다니는 애도 있지만.
“헤에, 그렇구나… 맞아요. 사람이 없을 때의 바다, 나기도 좋아해요. 혼자서 산책하거나… 지금은 한밤중이 아니면 사람들이 많을 때니까 요즘은 바다 쪽에서 산책하기 힘들지만요. 그쵸?”
바다말고는 아무것도 없지만, 그래서인지 여름이면 사람들이 꽤 찾아오곤 하니까. 유명한 관광지보다는 덜해도 일단 평소보다 사람들이 많아지는 건 사실이었다. 올해의 가계를 책임져줄 좋은 수입원… 어흠, 손님들이니 불평은 하지 않겠지만, 이맘때면 혼자만의 바다를 빼앗긴 것 같아 묘하게 분하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한… 그런 기분이 든다.
“앗, 좋아요☆ 더우니까 뭐라도 마시러 갈까요! 자, 가요 선배!”
그렇게 둘이 향한 곳이 유명한 프랜차이즈 카페였다면 참 좋았겠지만, 도시에는 있어도 이런 곳에 그런 시설은 드물단 말이지. 므으으, 역시 부럽다. 도시는 좋겠다아. 뭐 아무튼. 가게를 향해 걸어가다가 슬쩍 카무이 선배를 올려다보며 빠르게 선수를 쳤다(...).
"그래도, 오다 노부나가스러운 성에 치하야라니 뭔가 질풍(하야테)같은 느낌이라 멋지잖아. 이름만 봐도 어감만으론 나쁘지 않다구, 거기에 뜻을 부여하는 사람이 문제지."
그렇게 너스레를 떨었다. DQN네임이 아니라는 점에서 어떤 이름이든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본인 만족도가 안 좋다면야 그러려니 하지만. 닷치의 반응(가까이 앉는 게 싫냐는 농담)에는 "더운데 다른 녀석이랑 붙어앉고 싶겠냐구-" 라며 가벼운 답변을 돌렸다.
"방-전이다!"
만담하듯이 대답하긴 했지만, 이 반응을 보니 녀석도 없구만! 갈곳잃은 눈동자와 당황이 가득 묻어나는 말들이며, 결국은 기대와 어이가 완전히 증발한 듯 어색한 미소를 살그머니 지어보이는, 그것도 모자라 진짜 인연이라고 힘없이 덧붙이는 닷치에게 씨익 웃으며 엄지를 들었다.
"맞나(せやな)."
그리고 기습하듯 닷치의 손에 (강제)악수를 시도하며
"HAHAHA-! 진짜 아무것도 없는 인연이지만, 어떻게든 해보자~! 잘부탁(よろしく)! 이 아니라(にゃー), 잘부탁한데이(よろしゅう)! 닷치!"
를 아주 당당하게 외쳤다. 물론 본토 억양 없는 엉터리 교토말과 근본없이 일부만 옮은 나고야 사투리의 혼종이지만, 보케에는 나쁘지 않을지도. 이 상황이 그냥 재밌어서, 길 잃은 것쯤이야 사소한 문제로 느껴진다. 될대로 되라- 언젠가(메타적으로 일상 끝날 때쯤) 현지인을 만나 길안내를 받거나 발견되거나 하겠지. 안되면 나뭇가지로 불피우기라도 하고! 돌멩이로 SOS 그리면 멀리서 보이려나? 무인도 아니지만 말야! 야하하하~!!
어느 쪽인가 하면 재미있다가 90%를 차지하고 있는 ‘귀여워’였다. 그야 이렇게 즉각적으로 반응이 오는 걸, 재미있어~ 그치만 너무 곤란하게 만들어도 좀 그러니까 이제 적당히 할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히죽히죽 웃으면서 선배를 본다. 아무래도 바다표범 인형이 마음에 들었는지 제법 집중해서 만지는 모습이다. 흐흥~ 역시 귀여운 건 최강이라니까☆
“지금까지는 마주친 적은 없었던 것 같지만, 생각해보니 정말 그러네요. 아, 어두워서 그냥 지나쳤다던가? 그랬을수도 있겠네요☆”
가로등이 적은 구간에선 정말로 캄캄해지니까, 그런 곳에서 마주친다고 해도 코앞까지 다가오지 않는 이상 얼굴도 분간이 안 될 것이 뻔하다. 게다가 산책 중에 누가 지나간다고 그렇게 코앞까지 가서 확인하는 것도 보통 하지 않으니까. 아마 오가며 마주쳤어도 누군지 모르고 그냥 지나쳤던가… 그랬겠지? 아니면 서로 다른 시간에 나갔던가. 뭐, 어느 쪽이든 생각해보니 새삼 신기한 일이다. 우연히 만난 사람이 비슷한 걸 좋아한다니… …아니, 즐길 것이 별로 없는 이 마을에선 그리 신기한 일도 아닌가?
“야호☆ 역시 선배, 최고! 오늘부터 존경할게요!” 어라, 의외로 음료수를 사달라는 식으로 한 말에는 태클이 날아오지 않는다…? 살짝 아쉽기도 했지만 좋은 게 좋은 거지! 생긋 웃으면서, 주문하는 선배를 옆에서 지켜보다가 초코라떼 괜찮냐고 물어보는 듯한 시선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원하고 달달한 거, 지금 날씨에 딱 좋죠! 나기는 쓴 것만 아니면 모두 좋아한다구요☆”
그리고 밖은 더우니까~ 시원한 실내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미리 앉아서 기다렸다. 아아, 에어컨 바람 최고야! 여기서 몸을 좀 식히고 천천히 돌아가야겠네~
"시미야 씨는 다정한 사람이네?" 이름 이야기는 삼형제가 한 자리에 앉아 곧잘 꺼내는 화젯거리, 직설하자면 '투덜투덜'. 사토루는 이것 분명 부모님이 사토리覚를 염두에 두고 지은 이름일 테다 하고 투덜(동생들은 가장 폄범한 이름이 아니냐고 지적하곤 했다), 나나시는 뜻을 그럴싸하게(七志) 꾸몄을 뿐이지 도큔 네임이 따로 없다고 투덜(이것은 킹직히... 위아래 형제가 결국 인정하곤 했다), 치하야는 무녀도 다스키도 하다못해 나리히라業平도 아니고 무슨 의도 담긴 작명이냐며 투덜(형들은 나리히라가 맞지 않냐며 고개를 갸웃하곤 했다). 물론 크게 진지함 담는 건 아니지만 불만이 솔직하게 아주 없는 것은 아니라, 생판 초면인 사람이 이것을 두고 이러하고 저러하니 멋진 이름이다 굳이 일러주면 설령 겉치레라도 참으로 다정하다 여기지 못할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비록 농담같이 너 다정하네- 대답했지만 뜯어 살피면 진심 대략 5할 정도는 담겼을지도 모르는 일, 혼네를 툭 내비쳤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뭐어, 그럴 따름이니 길고 지루한 이야기는 이것으로 되었다 치고...
"교토말은 그래 하는 기 아인데! 마아, 이란 건 됐으이께네, 닷치도 미얏치에게 아무쪼록 잘 부탁해(よろしく)? 이 좋은 인연 아사하마 찾아 좋게좋게 이어야마 쓸 텐데, 이엇 참 잘 될는지 몰다. 까닥하마 악연 될지도?"
이야, 이건 달리 어찌할 길 없이 강제 악수 당했다고 해야 하나. 그러나 지금 상황이 재미있는 것은 치하야에게도 일반인지, 보케에 대응하듯 츳코미를 거는가 싶더니, 곧바로 3인칭화에 야매 나고야 억양, 마지막으로 '아사하마 못 찾으면 우리 악연된다' 선언(농담)으로 콤보를 찔러넣고서 소리없이 즐거운 웃음을 짓는 것이었다. 객지에서 좋은 인연, 좋은 친구를 만난 셈이라 처음에 잠깐 신경쓰던 사이토의 연하 여부는 가맣게 잊고 만 양 치하야는 맞잡은 손을 흔들며 반가움을 표명했다. 그리고 조금 뒤 짐짓 짓궂은 얼굴을 하며 이렇게 말한 것이다.
안녕! 나오키주! 어서 와! 별 건 아니고 그냥 좀 이런저런 일이 있었어. 큰 건 아니고 좀 번거로운 일들? 사실 지금도 집의 세탁기가 문제가 생겨서 어떻게 해결해야하나 난감한 상황이야. 일단 온도가 풀리면 좀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을까 싶긴 한데 어찌될진 모르겠어. 쓰담쓰담은 고맙다! (역 쓰담쓰담)
재미있다, 마음에 든다 등등을 모조리 섞어서 ‘귀여워’라는 말로 내보내니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황당할 수도 있겠다. 아니, 황당하겠지. 하지만 그걸 조목조목 설명해줄 생각은 없었다. 뭐 어때☆ 원래 말은 하는 사람 마음대로 하는 거지! 그런 이상한 논리를 기반으로 깔고 과감하게 설명을 생략하고서 초코라떼를 마신다. 아~ 달달해! 이런 거 좋아☆
“으음~ 그럴게요. 선배도 나기를 보면 인사해주기! 알았죠? 엣, 다음엔 나기가 사는 건가요! 뭐어, 좋아요! 오늘 얻어먹었으니 다음엔 나기가 살게요☆”
다음에 어디서 만나느냐가 문제겠지만. 밤산책 중에 마주친다면 잘해야 자판기에서 파는 음료가 최선일텐데. 뭐, 낮에도 다시 이렇게 마주치거나 그럴 수 있을 테니까 아무래도 좋은 걱정인가~ 벌써부터 사서 걱정을 하고 있는 나기의 귀에 조금 색다른 화제가 닿았다. 아아! 맞아!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온천으로 보러 갔던 그 도시 사람도 그랬지!
“앗! 맞아요!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이쪽에서 만났었는데, 우리 또래인데 혼자 여행 온 도시 사람도 있었어요! 굉장하지 않아요? 치바에서 왔대요 치바! 꿈의 나라가 있는 치바! 사진도 몇 장 받았는데 보실래요? 도시의 귀여운 가게들을 찍은 사진인데 엄~청 부러웠다구요☆ 아아, 좋겠다. 그런 도시에서 살면 어떤 기분일까~”
보실래요?라고 하긴 했지만 의사를 묻는다기보단 통보에 가까운 것이라, 나기는 이미 핸드폰을 꺼내 그때 받은 사진들을 화면에 띄우고는 카무이를 향해 내밀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연신 부럽다는 말이 입에 달려 있었다.
이런 말(이름 얘기)에 다정한 사람이란 말이 나올 게 있나. 딱히~ 라고 몸으로 표현하듯 손을 흔들었다.
"좋은 이야기 다 나눠놓고 악연이 되면 안되지. 솔직히 말하면 지금 좀 재밌긴 하지만, 아사하마 못 찾으면 재미없는 건 같으니?"
아까부터 호흡이 척척 맞다 못해 재밌기까지 한 이 녀석, 이제 보니 확실히 알겠다. 모르는 사람? No No No! 친구? 맞긴 맞지만(?) 지금은 No! 정답은! 동 류 다 ! ! 여행지에서 잠깐 만난 사람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의 케미컬. 폰이 방-전이 아니라면 번호교환이던 LINE친추던 했을 텐데. 하지만 지금 생각할 건 그게 아니지.
"그래그래, 가자고. 청수의 무대에서 뛰어내리러*."
비장하게 말한 것치곤 느긋한 태도로 그늘을 나선다. 실제로도 대책 없는걸. 막연히 갈 생각만 하고 있을 뿐이지.
"우선은, 높은 곳에 올라갈까나. 지금 우리는 너무 낮으니까."
바다가 보일 때까지 시야를 넓히겠다는 소리. 그리고 이 주변에서 높은 곳이라 할 곳은... 저 산뿐. (이 여름에 등산이라니 과연 줄 없는 번지점프에 비교할 만한 일이다...) 닷치는 나보다 작고 약해 보이고, 등산까지 따라와줄지는 모르겠다. 그러면 나 혼자 보고 오면 끝이니까, 산을 가리키면서 따라올 것인지 묻는다.
*교토 청수사 전망대의 이야기를 이르는 속담. 뛰어내려 살아남으면 소원을 이룰 수 있고, 죽어도 성불할 수 있다는 설화가 있다. 좋은 결과를 위해 과감히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이르는 말.
//거절하면 적당히 미야가 길 보고 와서 해질 때쯤 돌아갔다는 식으로 일상을 끝낼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리고 미야의 생각은 제가 대신 사과드립니다. _O_
"소원이 성취될 가능성은 약 80%겠네~" 기요미즈데라의 무대에서 뛰어내린다라, 그곳에 얽힌 전설-뛰어내려서 살아남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과 생존률-약 80%-을 떠올리며 치하야는 넉살 좋게 맞장구 치며 사이토를 따라 그늘을 나섰다. 그때까지만 해도 몸쓰는 일에 자신 없는 164cm 이팔청춘 기력 넘쳐야할 소년은 대충 이 방향 저 방향을 시도해보거나, 어찌저찌 현지인을 붙잡아 아사하마의 방향을 물어보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이토는 뜻밖의 제안을 내놓았고, 그것은 치하야의 의표를 정확하게 찔렀다.
"머라꼬?"
우선은 반문부터 하고. 잠시 벙쪘던 치하야는 이윽고 아하하, 하고 난처한 듯 웃었다.
"와아... 미얏치, 참말로 거, 생각이 틀에 백히지가 않었구나... 대단하네."
바다 찾는다고 산을 오른다니, 이것 정말로 신 차원적인 생각이다... 몸에 배인 다테마에의 일환으로 생각이 틀에 박하지 않았고 너 몹시 대단하다 이르기는 했으나, 실제로도 꽤 '대단'하다고 생각한 치하야는 고민하는 양 볼을 긁적였다.
"그엇 말고 좀 더 팬한 방법도 많다 아이가. 이르자모 동서남북 걸어댕기민서로 찾을 수도 있고, 아주 사람을 붙잡아가 길 좀 물을 수도 있고, 그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겄제. 구태여- 산을 올라야마 쓰나...... 쓰나?"
이제 저도 조금 헷갈릴 지경이다. 치햐야는 반신반의하며 사이토를 보았다. 조금 주저하다가 한마디 더.
"우서-은 나가 체력이 좀 간당간당한디야..."
//여기서 사이토가 개의치 않고 데려갈 수도 있고 쉬고 있으라고 할 수도 있고 다르게 할 수도 있고 그렇네 :3~~! 미야주 어서와~~ 사과할 것은 없다구 >.0
한여름에 당당하게 뜨거운 단팥죽을 뽑아주겠다는 황당한 발언을 하고 키득키득 웃었다. 아~ 물론 단팥죽을 일부러 뽑아줄 생각은 없지만! 말하자면 그냥 장난이지만! 살짝 태클을 기대하듯 선배를 보다가 부럽냐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부럽죠! 도시에는 이 마을보다 여러가지가 더 많고, 귀여운 것도 많고... 하여간 이곳과는 많은 것이 다를 테니까. 도시의 인프라가 부럽지 않은 사람이 있긴 할까? 한적한 곳이 좋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기가 봤을 땐 배부른 소리라구.
"그야 엄-청 부럽죠! 이 가게만 봐도, 이 마을에 있는 가게랑은 차원이 다르잖아요? 물건의 양도 질도 귀여움도! 그러니 당연히 부럽죠~ 나기도 가고 싶다~"
가고싶다 가고싶다 연호하면서도 뒤이은 여행을 가보는 건 어떠냐는, 그런 권유같기도 한 말에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여행...이라. 아아, 나도 모르게 산책할 때의 얼굴이 되어버릴 것 같다. 안돼 안돼☆ 다른 사람 앞에서 그런 건 보이고 싶지 않은걸~
"...가보고는 싶지만~ 아빠가 절대 보내주지 않을 걸요☆ 그리고... 그렇게 대단한 곳에 갔다오면, 더 초라해질 것 같아요. 여행을 다니는 며칠 동안은 즐겁겠지만, 결국 돌아와야 하는 걸. 그러고 나면... 내가 사는 곳은 역시 그곳보다 초라하구나, 그런 생각... 더 자주 들 것 같으니까."
아예 그곳으로 가버리는 거면 모를까, 다시 돌아와야 한다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 보기만 해도 부러운 걸 직접 겪어보고 다시 돌아온다면, 제 자신이 더 초라하게 느껴질 것 같았다. 뭐어, 그건 둘째치고 역시 아빠가 보내주지 않을 것 같은데☆ 아무튼 다시 웃으면서 선배를 보고 이번에는 반대로 물어봤다. 아니, 여행이란 선택지가 바로 나오는 걸 보면 어쩌면 이 선배는 언젠가 여행을 간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394 앗 아아 오히려 나야말로 미야주 너무 오래 붙잡은 건 아닌가 걱정했는걸 <:3! 피곤한 건 그저 현생 탓이구(...) 유쾌발랄한 미얏치 덕분에 답레 받을 때마다 넘나 즐거웠으니 염려는 내려두라구:3 치하야의 헛소리 재치있게 받아줘서 고마웠어~ 미야주도 돌리느라 수고 정말정말 많았어~~! :D
>>429 하루주도 다시 안녕! 고등어조림해서 맛있게 먹었어! 선관 이야기가 나와서 하루키 시트를 다시 읽어봤는데 역시 조금 아쉽네. 유키는 아무래도 치바 출신이라서 얽히게 할 방도가 안 보이더라. 여행자 시트는 이게 단점이구나. 어쩔 수 없으니 만나게 되면 천천히 친해지겠어!
아와나미 하면 바다. 바다 하면 아와나미. 물론 아와나미에 볼거리라곤 바다밖에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여행 책자를 펼치면 그런 식으로 적혀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니, 일단은 여행객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나오키가 바다를 보러 나온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닌 셈이었다. 여기에는 오후 아르바이트 일정이 취소된 것도 한몫했다. 듣기로는 사촌이 아침에 매대를 끌고 나갔을 때 뭔가가 망가진 모양인데,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했다.
사람이 많은 해수욕장을 피해 구석진 곳으로 온 나오키는 신고 온 샌들을 벗고 발을 물에 담갔다. 운 좋게 그늘을 찾은 데다 시원한 물 덕분에 그리 덥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멀리서 인파가 자아내는 떠들썩한 소리와는 대조적으로 이곳에는 적막이 흐르고 있었다. 잔잔한 파도 소리를 들으며 물장구를 치자 흰 거품이 발목을 타고 밀려왔다.
"...조용하다."
말 그대로였다. 여름철 휴양지라고는 믿기지 않으리만큼 조용했다. 하지만 그게 싫지는 않았다. 하아아, 하고 의미를 알 수 없는 탄식을 내뱉으며 나오키는 그대로 벌렁 누워 버렸다. 머리에 모래가 좀 묻겠지만, 이 정도는 상관없겠지. 마침맞게 어디선가 바람도 솔솔 불어오는 바람에 점점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이대로 한숨 푹 자고 일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 잠든다, 잠든다...
그래! 이거야! 이런 태클을 원했어! 그야말로 만담 그 자체! 흡족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재미있는 선배야! 완전 귀여워☆ 그래도 여기서만 찾을 수 있는 매력이란건… 잘 모르겠지만. 너무 익숙한 곳이라 딱히 느끼지 못한 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나기에게 매력적이라는 건 도시 쪽을 말하는 것이었으니까.
“그야 물론 도시도 사람 사는 곳이겠지만… 전 그런 곳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걸요!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을 동경하는 건 그다지 이상한 일도 아니잖아요? 그쵸?”
초라한 부분이 있더라도 이 마을보다는 낫지 않을까. 음, 그치만 도시에서는 눈뜨고 코를 베인다는 말도 있었고(?) 의외로 무서운 부분도 있는 걸까. 잘 모르겠다. 모르니까 동경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이상한 논리로 머리가 가득찰 즈음 달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선배가 휘젓는 초코라떼의 얼음이 내는 소리였다. 묘하게 풍경소리와 비슷한 것 같기도, 다른 것 같기도 한 소리.
“헤에, 여기저기라니 엄청 벼르고 있는 것 같네요 선배. 그럼 여행 중에 사진 찍으면 나기한테도 보내줄래요? 이것저것 다 보내진 말구 좋은 것만! 헤헤헤☆”
여행이라, 여기저기를 다닐 생각이란 걸 보니 아마 엄청나게 벼르고 벼르던 일인가보다. 좋겠다. 자신도 초코라떼를 한모금 마신다. 분명 달달한 초코일터인데 어쩐지 쓴맛이 감돈다.
“…졸업하면… …뭐어☆ 언젠간 갈 수는 있겠죠☆”
/루팡과 답레와 함께 갱신...! 어제는 몸이 흐물흐물해서(?) 못 들어왔어.. 미안해 카무이주... ;ㅁ;
"사실 더 내려가서 고베나 아주 그냥 후쿠오카까지 가버릴까, 하고 생각했거든. 그러지 않길 잘한 것 같아."
시치카는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 그녀의 유튜브에 있는 영상들을 보면 그녀가 대단한 역마살이라는 느낌이 없잖아 있었다. 삿포로를 1박 2일로 다녀오더니, 어느 때는 난데없이 오키나와를 배경으로 브이로그를 올리기도 했고. 다만 그런 영상들을 보면 그녀의 체제기간은 꽤나 짧은 편이었다.
댓글들 중에는 현지에 사는 집사들이 이런이런 명소도 있다며 다음번에 왔을 때는 이런 곳도 들러서 즐겨주었으면 좋겠다는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다. 보통 그런 댓글에는 스트레이 캣이 좋아요를 남겨놓았고. 그러면서도 그녀는 정작 현지의 스네이크(일본의 서브컬쳐 커뮤니티 등지에서 현장에 직접 나가 현장을 실황하거나 상황에 개입하는 행위 혹은 행위자를 칭하는 말)들의 도움을 받아서 현지를 둘러보거나 하는 기색은 없었다.
시치카가 가출이라는 명목으로 이렇게 여행기간을 길게 잡은 것도, 현지에 사는 팬과 이렇게 직접 만나서 길게 도움을 받은 것도 시치카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아스카에게도 별난 체험일 것이다.
"도쿄? 도쿄라... 뭐, 거기 있는 것들은 모든 게 남아도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중요한 게 하나 모자란 곳이니까 말야."
아스카가 도쿄를 언급하자, 시치카는 어깨를 으쓱했다. 하긴, 도쿄의 삶에 질려서 오토바이 한 대 덜렁 끌고 가출해버린 가출소녀가 도쿄를 딱히 긍정적으로 평가할 리는 없겠지. "잠깐 며칠 놀기는 좋은 곳인데, 그것들에 질리고 나면 뭐 없어. 환경만 조금 다를 뿐이라구." 하고, 시치카는 東京は愛せど何も無い 하고, 팝송 한 구절을 흥얼거렸다. 텐동이 나오자 탐스럽기 그지없는 비주얼에 눈을 빛내며 수저에부터 손을 뻗던 시치카는, 아스카가 사진을 언급하자 앗차, 하며 손가락을 딱 튕긴다.
배가 고파서 정신이 없었네~ 하고 키들거리며 핸드폰을 꺼내든 시치카는, 아스카에게 찡긋 윙크했다.
"-찍기는 찍을 건데, 같이 찍자. SNS나 유튜브에 올릴 건 다음번에 와서도 찍을 수 있으니까... 캇쨩이랑 같이 찍은 건 내 앨범에만 저장해둘래."
그건 정말 아쉬웠을 것 같아. 시치카의 말에 아스카는 그건 곤란하다는 듯 '윽' 하는 소리를 내더니 고개를 휙휙 저으며 중얼거린다. 분명 그랬다면 평생 자신의 삶 속에서 시치카를 만나지 못하고, 그저 흥미만 넘치는 유튜버라고만 알아두고 살았을테니까. 이런 미래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자기자신이 얼마나 안타까워할지, 아스카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 그래..? 음, 여기 아이들은 안 그런 척 하면서도 동경을 동경하고 있거든. 이게 바로 입장 차이인가봐. 그치? "
시치카의 말에 눈을 깜빡이던 아스카는 피식 웃으며 '역시 나는 안가봐서 그런가 궁금하지만... 거기 가서 살 일은 없을 것 같기도 해서 나중에 한번 시치카가 관광이라도 시켜줘.' 하고 속삭임을 덧붙였다. 지주의 외동딸, 무무출중한 그녀는 분명 나이가 들고, 성장해서 아버지가 자리에서 물러날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일을 이어받게 될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녀에게 있어 아와나미 밖으로 나가서 살게 된다는 선택지는 생각할 수도 없었기에 고작해야 짧은 관광정도를 생각할 뿐이었다. 그녀에게 있어 도쿄에서 이곳으로 떠나온 시치카는 충분히 자유로운 모습으로 동경을 하는 것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 같이!? 에! 그, 잠깐만! "
같이 찍을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지 눈이 휘둥그레 변한 아스카가 후다닥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정리한다. 딱히 망가지거나 한 곳이 없어보이는데도 정리를 하는 것은, 아스카가 시치카와 사진을 찍는 것에 소홀한 마음가짐을 갖고 싶지 않다는 의사표시일지도 몰랐다. 아무튼 그다지 변한 것 없는 듯한 정돈을 마무리한 아스카는 심호흡을 하더니 준비가 되었다는 듯 몸을 앞으로 내밀고는 사진을 찍을 준비를 한다.
" 나... 준비 됐어...! "
전쟁터에 나가는 비장한 군인처럼 결연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여보인 아스카는 이내 사진용으로 보이는 화사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아니, 손끝을 보면 파르르 떨리는 것이 의외로 사진 찍는것에는 익숙하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입장 차이지. 누구나 자기가 살아보지 않은 곳을 동경하니까. 캇쨩에게는 매일 보는 해안선이고 친근한 친구네 댁 어머니가 하는 밥집이겠지만... 도쿄 사람들에게는 저 에메랄드빛 백사장이라던가, 원가를 아끼지 않고 음식을 만들어주는 특별한 맛집이 대단히 소중한 경험으로 와닿으니까 말야."
시치카는 텐동집을 한바퀴 둘러보고는, 창 밖 멀리 펼쳐진 아와나미의 수평선을 고갯짓하며 헷, 하고 웃었다. 도쿄의 바람을 안고, 아와나미의 바닷가를 찾아온 별난 소녀는 그녀다운 별난 여름바람을 몰고 왔다. 그리고 다행히, 그것은 운좋게도 아스카에게 불어왔고.
"그렇지만 역으로 나한테는 지긋지긋한 도쿄도 캇쨩에게는 재밌고 별난 경험으로 다가올지 모르니까... 십대에 한 번쯤 도쿄를 겪어보지 않으면 그건 그것대로 아쉬울지도 모르지. 캡슐 호텔에서 지내도 괜찮다면, 언젠가 도쿄구경을 하고 싶을 때 치카쨩한테 말해달라구♪"
그것은 약속은 아니었지만, 허가였다. 별난 바람을 안고 온 고양이가 전해주는 별난 고향 이야기. 조그만 탈출구를 열어주겠다는 허가. 물론, 그 뒤에는 "일단은 나도 내 나름대로 가출생활을 좀 즐기고 나서 말야!" 하는 웃음 섞인 조건이 뒤따랐지만. 아스카가 조심스레 옷매무새를 가다듬자, 시치카도 핸드폰을 셀카모드로 돌려놓고는 옷매무새며 머리카락 등등을 나름대로 정돈한다. 애초부터 한 갈래로 묶어만 놓고 자유분방하게 내버려둔 다박다박한 머리카락들이었기에 정리한 것과 안한 것의 차이가 없었지만.
아스카의 손끝이 파르르 떨릴 때, 시치카의 손이 아스카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왔다. "찍고 나면 아스카한테도 인화해서 보내줄게!" 하고, 시치카는 얼굴에 싱끗 개구진 미소를 한가득 담았다.
"그럼 찍는다. 하나-둘-셋!"
찰칵, 하고 핸드폰 카메라에 사진이 찍히는 소리가 났다. 시치카는 사진이 잘 나왔는지 살펴보라는 듯 방금 찍은 사진이 떠 있는 액정화면을 아스카의 앞에 놓아주고는, 수저를 집어들었다. 얼굴 표정에 숨길 생각이 없는 식탐이 드러난다. #아와나미 #가출 #점심 #침질질 정도의 해시태그를 달아도 좋을 법한 표정이다.
하긴 아까도 반응이 재밌다니 어쩌니 하는 말을 했었으니까. 특별히 처음인것도 아니었다. 나를 아는 사람들 중에서는 반응이 재밌다고 놀려먹던 사람이 여럿 있었으니, 그리 큰일은 아니었다. 이 정도야 이제는 웃어넘길 수 있는 일이다. 뭐, 직접 말해줬으니 어쩌면 태클이 더 늘어날지도 모르지?
" 뭐, 그야 그렇지. 그러니까 나도 여행을 가고싶어하는거고. "
그건 사람마다 다르다는 이야기일까. 나처럼 다른 곳을 동경하며 이곳저곳을 여행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후배님처럼 동경은 하지만 가고싶지는 않아하는 사람들도 있을테다. 어째서인지는 잘 모르지만... 그것은 후배님이 정한 일이다. 내가 이것저것 토를 달아봐야 그것은 오지랖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 오, 좋지. 내가 본 것들을 후배님도 봐준다면 나도 기쁘겠어. "
그럼 그 날을 기약하며. 라면서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후배님에게 내밀었다. 사진을 보내려면 연락처가 필요하니, 당연한 일이다. 절대로 작업건다거나 그런거 아니다!
" 음... 후배님이 졸업하면 난 이미 여기저기를 쑤시고 다니는 중일테니까, 혼자 떠나기 무서우면 특별히 연락을 허락해줄게. "
장난스럽게 미소지으며 후배님에게 말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절대로 작업건다거나 그런거 아니니까!? 그냥 후배님이 여행에 대해 너무 안좋은 생각만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에서다.
다. 그런걸지도 모른다. 자신도 도쿄에서 태어났다면 분명 시치카처럼 말했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리고 그말을 듣는 순간 아스카의 마음 속에는 한가지 해야할 일이 더 적혀졌다. 좀 더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주기, 해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시도도 해보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 후후, 캡슐호텔이건 공원벤치가 되던 나는 아무렇지도 않지만. 오히려 동경하던 유튜버가 직접 관광을 시켜준다는 것만으로도 호사인걸. "
나중에 기회가 되면 슬쩍 부탁할게. 시치카의 허가에 답하듯 장난스럽게 턱을 괸 체 윙크를 해보이며 답한 아스카는 기분좋은 듯 맑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언제 이루어질 수 있을지 모를 일이지만, 분명 가능성이 한가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지금은 충분했다. 딱히 아와나미가 싫은 것도, 지루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 물론이지, 가출생활을 방해할 생각은 없으니까 걱정할 것 없네요~" 하고 가볍게 말을 덧붙이는 것은 덤이었다. 시치카의 현재 생활을 방해하면서 이루고 싶은 희망사항은 아니었으니까.
" 응...! "
손끝이 떨려오는 것을 눈치 챈 시치카가 손을 잡아오자, 대담하게 끌어안고 그러던 아스카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곤 쳐다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기분 좋은 듯, 꽃이 피어나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좀 더 자연스런 미소를 지은 체 렌즈를 바라본다. 시치카의 숫자에 맞춰 찍혀지는 소리가 들려오자 안도하듯 숨을 내쉬긴 했지만.
" ..... 역시 유튜버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구나.. 치카짱 대단하네.. "
자신이 생각하기에, 자신이 몇배나 예쁘게 찍혀나온 듯한 사진과 당연히 예쁘장한 시치카를 보며 놀란 듯 가벼운 감탄사와 함께 말하는 아스카였다. 하지만 고개를 들었을 때 식탐을 완연히 드러내는 모습을 보고는 입가를 가린 체 웃더니 자신도 망설임 없이 젓가락을 집어든다.
" 나도 잘 먹겠습니다~ 맛있게 먹어, 치카짱 "
아스카는 그렇게 말하곤 맛있게 한입 먹고는 "친구랑 먹는 밥은 역시 맛있네" 하는 중얼거림을 남기며 흐뭇함과 뿌듯함이 담긴 눈으로 시치카를 바라본다. 여기에 데려오길 잘 했다는 듯. 그렇게 시치카가 맛을 볼 시간을 주고는 잠시 젓가락을 내려놓은 아스카가 턱을 괸 체 입술을 열었다.
>>527 글쎄. 바라는 상황이라고 해야 할지. 첫만남이니까 우선 가볍게 첫만남을 가지는게 제일일 것 같은데 나기사가 시장님 딸이라고 하니까 유키가 시장님 집으로 온천 홍보물 배달 심부름을 갔다가 만나는게 제일이지 않을까 싶은데 캡틴 생각은 어때? 캡틴이 돌리고 싶은 상황이 있으면 그것도 괜찮아.
자신의 친척이 운영하는 온천의 홍보물을 쥔 소년은 문 옆에 있는 초인종을 꾹 눌렀다. 초인종 소리가 여기라고 해서 크게 다를리 있겠냐만 지역이 지역이라 그런지 맑고 시원하게 들리는 것 같아 소년은 괜히 초인종을 한번 더 꾹 눌렀다. 딩동거리는 소리가 근처에 조용히 울리는 것을 듣다 소리가 완전히 사그라들쯤에 소년은 안을 향해 큰 목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계세요? 온천 홍보물이 완성되어서 드리러 왔어요!"
자신이 잘못 찾아온 것이 아니라면 이곳은 아와나미 시의 시장이 살고 있는 집이었다. 혹여나 엉뚱한 곳에 도착하지 않을까 싶어 스마트폰 네비게이션으로 길을 세 번은 확인한 후에 왔기 때문에 집을 잘못 찾아오진 않았을거라고 생각하며 소년은 문이 열리는 것을 기다렸다.
"안에 아무도 없는건 아니겠지?"
만약 그렇다면 소년은 근처에서 시간을 보낸 후에 다시 올 생각이었다. 나중에 번거롭게 또 오는 것보다 지금 이렇게 왔을 때 볼일을 해결하는 것이 나았으니까. 아주 잠깐 외출을 한 것이라 금방 올 수도 있는데 괜히 돌아가면 그것만큼 아까운 일도 없을 것이기에 소년은 조금 더 문이 열리는 것을 기다리기로 했다.
밀렸다 돌아가는 파도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그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전부터, 그가 마음에 들어 하는 시간 중 하나였다. 그렇지만 멀쩡한 옷을 적실 마음은 없었는데. 하릴없이 거리를 거닐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해안가에 도착해 있었다. 바다 안으로 뛰어들고 싶은 충동, 파도의 유혹을 느끼고는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물속에 발을 내디뎠다.
허리 위로 흔들리는 수면에 그는 마침내 발을 멈췄다. 그의 시선이 넓게 펼쳐진 바다로 향했다. 끝이 보일 것만 같은 수평선에서 맞닿은 하늘과 바다의 색이 비슷하다. 서서히 시선을 가까이 가져오면 구름 하나 없이 말간 하늘은 태양을 품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이에 반해 바다는 조각조각 부서진 파도 끝자락에 빛나는 햇살이 시원하기만 하다.
더 있다가는 감기에 걸리겠지. 천천히 물을 헤치며 수면 위로 올라오며 모래 위에 누군가 누워있는 것을 발견했다. 발바닥에 멋대로 들러붙은 모래를 털어낼 생각조차 않고 타박타박 걸어간 그는 모래 위에 몸을 뉘인 소년의 곁에 쪼그려 앉았다. 살아는 있는 걸까. 그는 소년의 목가로 팔을 뻗으며 제법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시치카는 질색팔색을 하며 오만상을 쓰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귀한 댁 아가씨를 구중궁궐 심처에 마련한 좋은 잠자리에 모시지 못할망정 감히 노숙시킨다는 사실보다도 더 문제되는 것이 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도쿄는 아와나미처럼 평온한 동네가 아니란 말이지." 아무리 일본이 치안이 좋은 편이라고 해도 위험한 행동이라는 것은 있는 법이다. 도쿄는 온갖 것들이 가득가득 들어찬 도시이고, 그 중에는 어두운 것들도 분명히 있었다.
사진을 찍고, 아스카가 건네온 칭찬에 시치카는 별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구독자 15만이 되는 그날을 기다리며 열심히 연마하고 있지롱!" 그러고 보면 시치카는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얼굴을 공개한 적 없는 스트리머였지. 이례적으로 아스카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힌 것도, 아스카가 구독자인 것뿐만이 아니라 할아버지 친구분 댁의 아가씨이기도 하다는 특수한 관계 덕분이었다. 실제로 그녀는 아스카가 자신을 스트레이 캣의 구독자로서 대해주기보단 네코미야 시치카의 친구로 대해주기를 바라고 있었고. 결국 그것은 아스카의 마음에 달린 것이지만.
"그럼 본격적으로 먹어보실까..."
더 이상 거칠 게 없어진 시치카는 젓가락을 거침없이 놀리기 시작했다. 소스가 얹어진 밥과 해물 튀김이 거침없이 쑥쑥 들어가는 게, 먹는 모습이 참 먹방을 해도 조회수깨나 뽑아낼 성싶다. 원래 이렇게 먹성이 좋은지, 배가 고파서 그랬던 건지는 모르지만. '아, 매일 이렇게 든든하게 먹으면 러닝 빡세게 돌아야겠네...' 하고 내심 걱정하면서도, 아스카가 묻는 말에는 뭐라 말도 못하고 엄지만 세우는 시치카였다.
키요누마의 시가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한 도시의 시장이 사는 집…… 이라고 부르기에는 다소 평범해 보이는 주택. 물론 밭 한가운데 놓인 농가들에 비해서는 깔끔한 양옥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맨션은 고사하고 저택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곳에 사는 것은, 이 도시의 시장이라는 직위가 별 거 아니라는 증표와도 같이 보였다.
초인종 소리가 울리고 문이 열리기까지, 흰 색으로 「淸水」라고 쓰인 문패가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그러나 잠시 뒤에 문을 열고 나온 것은 50대 남성도 아니고, 시장 본인도 더더욱 아닌, 눈매가 나쁘고 피부가 탄 소녀였다. 소녀는 문 뒤에서 소년을 한참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입을 열었다.
"미안한데, 누구……?"
반말인지 존댓말인지 구별할 수 없는 묘한 지점에서 말끝을 흐려 버린 소녀는 여전히 문틈으로 고개만 슬쩍 내밀고 있었다. 그러다, 맞은편 소년이 손에 든 물건이 무엇인지 눈을 살짝 찡그려서 살펴보다가, 가만히 한숨을 내뱉고 천천히 문을 열어젖혔다.
"…… 아빠 곧 있으면 돌아오실 거니까, 들어오세요."
활짝 열린 채 서서히 닫히는 문을 내버려둔 채로, 뒤돌아 집안으로 걸어갔다. 하품을 내쉬는 소녀의 발걸음은 현관 바로 근처에 있는 응접실로 향해 갔다.
"그, 뭐야…… 무슨 홍보물이라더라…… 그 사람, 맞죠? 과자 내올 테니까 편하게 기다리세요." 진심은 전혀 담겨 있지 않은 듯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문이 열리자 보이는 소녀의 모습에 소년은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자신과 나이가 비슷한 나이의 저 소녀가 시장일린 없을테니 아마 시장의 딸이겠거니 소년은 추측했다. 실제로 이후 아빠라는 말에 자신의 가설이 맞음을 소년은 확인할 수 있었다.
"아. 저는 아와나미 온천 알죠? 아와나미 마을 명소라고 실린 그 온천! 그 온천에 헬프로 일하고 있는 사람이에요. 그 온천을 운영하는 사람이 제 고모와 고모부거든요. 이름을 묻는 거라면 아사기리 유키! 아무튼 아까도 말했다시피 홍보물 갖다주러 여기에 왔고요."
자신의 소개를 하며 소년은 바로 옆 문패인 시미즈라는 글자를 바라봤다. 그렇다면 저 소녀의 이름은 모르겠지만 성이 시미즈일 거라고 추측하며 일단 열린 문으로 들어섰다. 자연히 집 안 인테리어를 바라보듯이 소년의 눈동자가 빠르게 굴러다녔지만 너무 바라보는 것은 또 실례라고 여겨 소년의 눈동자는 그 자리에 멈추었다.
"온천 홍보물이에요. 시장님이 필요할 거라고 하는데 다들 일손이 바빠서 잡일 담당인 제가 온 거고요. 아. 굳이 과자까지 내올 필요는 없어요. 이것만 갖다주면 되는 거니까. 조금 시간이 걸리면 그냥 이것만 놔두고 가도 괜찮을 것 같은데."
한숨도 그렇고 목소리도 그렇고 사춘기가 온 듯한 느낌을 받으며 소년은 일단 소녀가 향하는 응접실로 따라 들어가면서 소녀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러니까 성, 시미즈라고 읽으면 되나요? 아까 문패를 보니까 시미즈라고 쓰여있던 것 같아서. 그러니까 시미즈 양?"
눈가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소녀는 가만히 말을 듣고 있었다. 경청하는 것인지 뭔지는 알아보기 힘든 눈빛이었다. 굳이 누설하자면 소녀는, '자기소개가 참 발랄하군'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와나미 온천…… 아."
그 외에 이런저런 이야기가 귓전에 오고 갔지만 소녀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흥미가 전혀 없는 표정인 걸 보아선 아무래도 온천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딱히 아닌 듯했다. 그래도 소녀는, 아사기리, 아사기리 하고 이름을 짤막하게 외우는 시늉은 해 보였다. 그러다가 '시미즈 양'이라는 말을 듣고 대뜸 돌아서서는,
"시미즈 와타루."라고 말했다.
소녀는 혹시나 소년이 자기 이름을 시미즈 와타루라고 착각할까 봐 다시금 이야기했다.
"시미즈 와타루, 몰라요? 시장이잖아요. 온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나 시장이요' 하고 광고하고 다니는 사람인데, 그러니까 나도 당연히 시미즈……."
그러다가 잠깐 말을 멈추고는, 무언가 중대한 사실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이 잠깐 놀란 눈빛을 띄운다. 부엌에 과자를 가지러 가지 않는 것을 보면, 일단 아까 그 말을 모두 듣고는 있었던 것 같다. "…… 여기 사람이 아닌가? 뭔가 낯이 선데……."
그때 현관에서 안경을 쓴 마른 아저씨가, 유달리 약한 위엄을 뽐내며 들어왔다. 시장, 시미즈 와타루였다. "아, 손님이 와 계셨네! 나기사, 인사는 제대로 했냐?"
"오셨네, 시장님……. 아빠, 얘가 그…… 온천? 뭐시기, 그거 들고 왔대. 홍보물." 그리고 나기사는 부엌으로 향해 가며, 무심한 목소리로 소년에게 말했다. "손님, 차 안 내오면 내가 꾸중 들으니까…… 가지고 올게요."
질색팔색에, 오만상까지 쓰는 시치카를 보며 아스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해맑게 웃어보이며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시치카와 놀러간다면 뭐라도 즐겁겠지 싶은것인지, 아니면 머리 속이 꽃밭인 것인지 알 수 없는 해맑은 표정이었다. 오히려 평온한 동네가 아니라는 말에는 모험가라도 된 것처럼 눈빛이 초롱초롱해지는 것은 시치카의 불안감을 건드릴만한 모습이 아니었을까.
" 15만....! 달성하면 축하파티 해야지!! '
아스카는 깜빡하고 있었다는 듯 아차 하는 표정을 짓더니 두 주먹을 불끈 쥐곤 앉은 상태로 콩콩 뛴다. 적당히 자제해서 뛰는 덕분에 먹을 것이 올려진 테이블은 안 건드리고 있는 것이 꽤나 대단해 보일지도 몰랐지만. 아무튼 이미 머리속으로는 파티 구상에 한창인 듯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모습이, 아가씨의 추진력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은연중에 보여주는 듯 했다. " 친구의 경사를 그냥 넘어가는건 우리 집안으로서도... " 라는 중얼거림이 더욱 더 잘 느껴지게 해주겠지.
" 응응, 배고플 때니까 얼른 먹자. "
젓가락을 거침없이 놀리기 시작하는 시치카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아스카는 그걸 따라하듯 얌전히 아가씨처럼 밥을 먹기 시작한다. 딱히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니라 몸에 배인 듯한 자세로 오물거리던 아스카는 무언가 생각이 난 듯 '아차' 하는 소리를 낸다.
" 이거 뭔가 영상거리로 좋았을 것 같은데... 이미 먹어버렸으니 어쩔 수 없네. "
그 와중에도 시치카의 유튜브를 생각해주고 있었는지 아깝다는 듯 웅얼거리는 아스카였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었고, 엄지를 치켜세우는 그 모습에 화사한 미소를 지어보인 아스카는 주방에서 슬금슬금 자신과 시치카를 바라보던 친구 어머님께 엄지를 돌려준다.
" 내가 좋아하는 곳을, 치카짱도 좋아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 여긴 튀김도 매일매일 바뀌니까 그날그날 느낌이 다를거야. 잘 기억해둬. "
열심히 먹고 있는 시치카에게 나중에 영상소재로 써먹으라는 듯 살며시 말을 던져주곤, 다시 우아한 손놀림으로 먹기 시작한다.
"몰라요. 자랑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저, 치바현 치바시 출신인데 거기 시장도 잘 모르거든요. 그러고 보니 누구였더라. 치바시 시장. 되게 말 많았던 아저씨 같았는데."
시미즈 와타루라는 사람이 얼마나 광고를 하고 다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소년에게 있어서는 누군지 알 방도가 없었다. 돌아다니면서 봤을지도 모르지만 딱히 이번처럼 심부름을 하러 온 것이 아닌 이상 시장과 엮일 일이 없는데 그 시장이라는 이를 기억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기에 소년은 아무래도 좋은 것 아니겠냐는 듯이 괜히 소리없이 웃으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양 옆으로 저었다.
허나 안경을 쓴 사내가 안으로 들어오자 소년은 어느 정도 직감할 수 있었다. 아 이 사람이구나.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본 적이 있나 싶어 소년은 가만히 시미즈 와타루. 그 시장이라는 작자를 바라봤다. 하지만 역시 기억에는 남지 않는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있는 것은 예의에 맞지 않았기에 소년은 꾸벅 허리를 숙여 막 들어온 사내에게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아와나미 온천에 임시 헬프로 온 아사기리 유키라고 합니다! 고모와 고모부가 홍보물이 완성되었다고 해서 전해주라고 해서요. 여기 받으세요!"
소년은 손에 쥐고 있는 홍보물을 사내에게 내밀었다. 책자 구성으로 되어있으며 온천의 효능, 노천온탕의 사진, 밤하늘 사진 등등이 담겨 있어 확실히 홍보용으로서 쓰기 좋은 물건이었다.
이제 돌아가면 될지도 모르나 차를 내오지 않으면 꾸중을 듣는다고 하니 소년은 일단 조금 더 있다가 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입을 열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치바인가!" 시장은 말라빠진 몸에 비해 꽤나 호탕하게 웃으며 홍보물을 받았다. "마을이 아름다우니 손님이 저절로 늘어나는 법이지요. 아무튼, 이건 아와나미 관광 센터 쪽에 잘 전달하도록 하겠어요. 음, 아사기리 군! 아무튼, 날도 더운데 이렇게 와 줘서 고마워요. 그럼 나는 볼일이 조금 있어서, 모쪼록 편하게 있다가 가세요."
그렇게 말하고는, 시미즈 와타루 씨는 응접실을 나갔다. 그 다음에는 뚱한 표정의 나기사가 돌아와서, 오렌지 주스가 담긴 컵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시원한 차가 없어서…… 주스, 괜찮죠?"
그러고 보니 여전히 반말과 존댓말을 오가고 있었다. 나기사는 응접실 바닥에 털푸덕 주저앉아 멍하니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가뜩이나 따분함 가득한 삶에 방학까지 겹쳐 버리니 진심으로 따분해 죽겠다는 표정.
"손님 응대는 나한테 시키니까, 항상……. 스위치도 없고 플레이스테이션도 없고, 심심한 집이니까…… 너무 따분하다 싶으면 언제든지 배웅해 줄게요."
나기사는 딱히 대화가 오가지도 않는 것 같은 LINE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바쁜 척 하고 있기도 무리한 짓이라는 것을 알았는지, 이례적으로 나기사 쪽에서 먼저 입을 열었다.
편하게 있다가 가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놀러온 것이 아니기에 소년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대로 있으면 되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돌아가면 되는 것인지 고민을 하는 찰나 나기사가 돌아오자 소년의 시선은 소녀에게 향했다. 오렌지 주스로 괜찮냐고 이야기를 하는 물음에 소년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컵을 손에 쥔 후에 그 주스를 마셨다. 이 여름에 딱 알맞는 시원한 느낌에 소년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근처에 비어있는 자리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아니요. 따분한 것은 아니에요. 스위치라던가 플레이스테이션이 없으면 어때요? 게임하려고 여기에 온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심부름으로 온건데. 오히려 편하게 있다가 가라는 말도 그렇고 그렇게 신경 쓸 것은 없는데. 아무튼 상당히 유쾌한 분이시네요. 시장님."
지금 이 분위기에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망설이면서 말을 고르는 와중 소녀의 입에서 물음이 나오자 소년은 무슨 말을 하냐는 듯이 소녀를 빤히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명물 아니에요? 아와나미시 홍보지에 그렇게 적혀있던데. 그 정도면 충분히 괜찮은 온천이라고 생각도 드는데. 아. 그리고 나이 차 별로 안 날 것 같은데 말 편하게 해도 괜찮아요. 아. 의외로 날 수도 있나? 전 열 일곱살! 시미즈 양은?"
이름이 시미즈 나기사라는 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나기사라고 바로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소년은 소녀의 나이를 물었다. 비슷하다면 편하게 말을 할 생각이었다. 소녀 역시 왔다갔다 하고 있으니 하나로 통일하는 것이 좋을테니까.
"아무튼 명물이 아니면 어때요? 놀러온 사람들에게 추억거리나 좋은 기억을 남겨주면 그게 명물이지! 안 그래요?"
"9만 달성한 지도 얼마 안 됐는데 15만이면 한세월 걸릴 텐데 뭐. 올 여름에는 힘들거얼~"
하고 비관적 예측을 낙관적 태도로 느긋하게 말한 시치카는, 다시 식사를 게시하려다가 아스카의 불안감이라곤 전혀 없는 눈빛을 잠시 말없이 가만 바라보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뭐, 캇쨩이 나한테 아와나미 가이드를 해준 것처럼, 캇쨩이 도쿄에 놀러올 일이 있다면 나도 캇쨩에게 성심성의껏 가이드를 해줄 거니까... 대신 도쿄로 놀러갈 때는 나한테 꼭 말해야 한다?"
하고 검지손가락 대신 젓가락을 경고하듯이 세워보이면서 아스카를 빤히 바라보던 시치카는, 다시 젓가락과 시선을 밥그릇으로 떨어뜨리고는 식사를 재개했다. 확실히 복스럽긴 한데, 꽃다운 여고생이라기엔 너무 거침없는 먹음새다... 그와 대비되는 정갈한 자세로 식사하던 아스카가 멈칫하며 아쉬운 소리를 내자, 시치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입안에 든 것을 넘기고는 말을 이었다.
"영상으로 담을 건 다른 날 와서 여기 아주머님께 제대로 양해를 구하고 찍을 거라구. 오늘은 유튜버 스트레이 캣이 브이로그를 찍으러 온 게 아니라 가출소녀 시치카가 친구랑 같이 밥 먹으러 온 거니까 말야!"
내 맘 알지? 하고, 시치카는 얼굴에 웃음을 활짝 띄워주고는 남아있는 텐동에 공세를 마저 퍼붓기 시작했다.
"유쾌하다니……. 지금 밖에 나가면 더워 죽을지도 몰라서 하는 소리야. 쓸데없이 더운 것 말고는 특징이 없는 동네니까……."
나기사는 마침내 존댓말은 도무지 몸에 맞지 않는다는 듯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아무래도 처음 보는 타인에게 살갑게 대하는 성격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거기가 괜찮은 온천일 수는 있어도…… 나는 몇 군데 안 가 봐서 모르지만, 이 좁은 땅덩어리에 온천만 몇 개씩 되니까 문제지. 그리고 말야, 관광 센터에서 나온 책자를 보면 이 도시에 명물 아닌 게 없다니까. 에가와 영감, 아와나미에 있는 거면 길거리의 잡초도 명물이라고 할 사람이고……."
아마도 나기사는 인터넷을 쓱쓱 뒤져보고 있는 듯했다. 이 마을보다는 인터넷을 통한 저 너머의 일이 훨씬 관심이 가는 것이라는 듯.
"예예, 말 편하게 합니다. 열다섯인데……. 봐, 이 따분한 곳에 15년이나 갇혀 있으면 이렇게 된다고. 관광객들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개인적으로 신칸센이나 도쿄타워 같은 걸 보고 추억이 생기는 타입."
눈길은 여전히 스마트폰에 가 있다. 그렇게 말하고 주스를 홀짝 마신다. 대화가 아주 재미없는 것은 아닌지, 아까와는 다르게 계속 말대꾸를 해 주고 있다.
"다 마시면 그냥 거기 둬. 내가 치우든 말든 하게……. 으므므므므므……."
기지개를 쭉 펴면서 기묘한 소리를 내고는, 나기사는 조금 헝클어져 있던 머리를 빗었다. 아마도 손님이 오기 전까지 자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창가는 햇빛이 잘 들어서 바닥이 꽤나 따뜻하다.
시치카의 말에 고개를 좌우로 열심히 저어보인 아스카가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는 듯 반짝이는 눈으로 말한다. 시치카의 잠재력을 믿고 있다는 것처럼, 분명 반등하는 시기가 찾아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눈치였다. 애초에 스트레이 캣의 열성 집사였으니 이런 부분은 어쩔 수 없을지도 몰랐다.
" 그럼! 약속했는데 당연히 말해야지. 혼자 가봐야 재미도 없구~ 이렇게 관광을 즐겁게 시켜줄 사람이 있는데 몰래 휙 가버릴리 없잖아."
경고하듯 젓가락을 세워보이는 시치카에게 걱정말라는 듯 기분 좋은 콧소리를 내며 웃어보인다. 뭐, 추진력이 있는 사람이라 미래에 어떨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약속을 잊어버리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다 자신의 아쉬워 하는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보인 시치카의 말에는 감동 받았다는 듯 두손을 모은 체 초롱초롱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 ... 역시 치카짱은 최고야.. "
알고 말고, 아스카는 시치카의 말에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보이곤 시치카를 따라 남아있는 텐동을 먹기 시작한다. 그래, 지금은 유튜버 스트레이 캣과 있는게 아니라 친구 시치카와 함께 있는 것이라고. 다시 한번 머리를 정리한 아스카는 열성적으로 텐동을 먹는 시치카를 바라보며 한껏 웃고는 컵에 물을 따라 놓아준다.
" 그러다 체한다. 천천히 먹어~ "
젓가락을 내려놓은 아스카는 턱을 괸 체, 부드러운 눈으로 열심히 밥을 먹는 시치카를 구경할 뿐이었다. 새로 생긴 친구에게 앞으로 꼭 좋은 기억, 좋은 일들만 일어나길 바란다는 생각을 하면서.
열다섯. 자신보다 두 살 연하라면 그렇게 크게 나이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었다. 학년으로 따지자면 한 학년에서 두 하년 차이인만큼 소년은 편하게 말을 하기로 했다. 소녀는 아와나미 시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문뜩 누군가가 떠올라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지만 곧 비웃는 것이 아니라는 듯이 두 손을 휘저었다.
"아. 미안해. 절대 비웃는 것은 아니야. 그냥 전에도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어서. 그러니까 여기서 사귄 친구 중 하나가 비슷한 말을 했었거든. 하긴 여기서 오래 살면 그렇게 생각할만도 해. 나도 치바시에서 쭉 살다보니 거기 풍경에선 딱히 뭘 느끼지 못하거든. 그래서 이런 다른 환경에 자극을 느끼고 흥미로움을 느껴."
소녀가 가지고 온 주스를 홀짝이며 그 시원함을 목구멍 속에 가득 채운 후 소년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앨범을 연 후에 자신이 살던 곳 부근의 번화가 가게 사진을 띄운 후에 소녀를 향해 비췄다.
"시미즈 양도 이런 풍경을 좋아해?"
소년에게 있어선 낯익다 못해 별반 감흥도 없는 풍경의 일부였다. 하지만 소녀에게는 이런 것이 역시 조금 더 흥미롭고 좋을 것일까? 그렇다고 해도 역시 소년에게 있어선 크게 이상하게 여겨질 일은 아니었다. 늘 보는 것보다는 굳이 보지 않은 것이 더 흥미로우니까.
"만약 이런 풍경을 더 좋아한다면 관광객들이 여기서 추억을 느끼거나 흥미를 느끼는 것도 이해해줘. 나 같이 다른 곳에서 온 이에게는 이곳의 풍경은 본 적이 없어서 색다르고 흥미로우니까. 당장 나만 해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이곳저곳 사진을 찍고 있거든. 나중에 보고 추억을 떠올릴까 싶어서 말이야. 바다라던가 완전 좋던데? 내가 사는 곳 근처엔 여기처럼 예쁜 해변가나 바다가 없어서 더더욱 그래."
>>556 뒤에 더 잇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지만 시치카주의 데일리 기력이 한계인 관계로... 아스카의 상냥한 시선을 막레로 받을게. 저대로 식사 마치고 서로 헤어지거나, 아스카의 집이 너무 멀다고 하면 시치카가 또 오토바이로 바래다줬을 거야. 너무 오래 붙들고 있었지, 시치카랑 놀아줘서 고맙고 고생많았어...!
나기사는 고개를 돌려 유키의 휴대폰을 쳐다보았다. 그다지 표정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검은 눈동자에 화면의 불빛이 비쳐 푸르게 빛났다. 그래도 꽤나 오래 들여다보고 있었다. 사진 속으로 들어가 구석구석 둘러보는 사람처럼, 그대로 굳어 있긴 했지만, 상당히 오래. 그러다가 마침내 입이 열렸다.
"딱히 어떤 풍경을 좋아한다는 건 아냐……. 근데 사람이 많긴 하네……. 좋겠네. 이것저것 있어서." 그리고 손을 뒤로 짚고는 천장을 향해 고개를 냅다 젖혀 버렸다. "여기선 화장품 구하는 것도 일이니까. 화장 같은 걸 굳이 해 봤자 보여줄 인간도 없는 건 둘째치고……."
말인즉 아와나미에는 이것도 저것도 화장품도 사람도 없다.
"치바에도 바다 있잖아. 차 타고 가, 차. 여기가 뭐가 예쁘다고……. 규슈나 오키나와도 아닌걸. 딱히 외지인들이 이런 마을을 좋아한다고 해서 내가 뭐라고 하는 건 아니지만…… 시장 따님으로서 솔직한 감상을 밝히는 거야. 그리고 이런 마을에서는 말이지, 무엇보다도……."
오랜만에 누구와 이야기를 할 일이 생겨서 조금 신이 났는지 마을에 대한 불평을 재잘재잘 떠들다가, 나기사는 황급히 말을 멈췄다. 무언가 중요한 비밀이라도 말해 버릴 뻔했다는 듯이. 그리고는, 다급하게 주스를 모조리 들이켜 버렸다. 쨍한 햇빛이 넓은 창문 앞에 내놓은 다리를 덮어서, 볕에 씌인 살갗이 밝게 빛났다. 나기사는 말머리를 살짝 돌렸다.
"그래도…… 그래, 뭐, 내가 질려 버려서 그런 걸지도……. 이런 곳에서 노는 거랑 사는 건 또 다른 이야기니까." 그리고 기지개를 쭉 펴고는 그대로 드러누웠다.
사진을 꽤 바라보는 것에 역시 사람은 익숙한 것이 아니라 색다른 것에 끌리는 것이 맞는 것 같다고 소년은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오래 볼리가 없을테니까. 자신에게 있어서는 그저 평범한 풍경일 뿐이지만 여기 사람들에겐 색다른 풍경이고 여기 사람들에겐 평범한 풍경일 뿐이지만 자신에게는 색다른 풍경이라는 것이 소년에게는 조금 흥미로웠다. 그렇기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는 것이었고, 소년의 핸드폰에는 아와나미의 풍경 사진이 여러 장 있었다. 물론 그것을 나기사에게 보여줄 일은 없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화장을 해서 다른 이에게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친구나 가족이라던가 보여줄 사람은 많을 거 아냐. 본가에 돌아가면 보내줄까? 여기로? 물론 주소 정도는 알아야 가능할테니까 시미즈 양 선택 나름이겠네."
과거라면 모를까 요즘은 택배도 잘 되어있고 인터넷 주문을 하면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하지만 소녀의 사정에 따라서 다를 수도 있기에 소년은 그렇게 이야기했다. 화장품이야 소녀의 말대로 자신이 사는 곳이라면 쉽게 구할 수 있었으니까.
소녀의 마을에 대한 불평을 듣다가 말이 끊어지는 것에 소년은 호기심을 품었다. 뭔가를 숨기는 것처럼 주스를 다급하게 마시는 모습에 소년은 괜히 소리없이 웃으면서 주스를 마저 천천히 마시면서 잔을 비웠다. 완전히 드러누워버리는 소녀의 모습을 바라보다 소년은 살며시 팔을 쭉 위로 뻗으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엇보다도 다음이 엄청 궁금한데 지금 물으면 가르쳐주지 않을 것 같으니 묻지 않을게. 내가 여기를 떠나기 전에 들을 수 있다면 좋겠는데 가능하려나. 아무튼 쉬고 있었던 모양이고, 나도 심부름을 마쳤으니까 슬슬 돌아가볼게. 아. 배웅 안 나와도 괜찮아."
어차피 현관으로 걸어가는 것 뿐인데 굳이 배웅까지는 필요없다고 말을 하며 소년은 소녀를 바라보며 나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말을 걸었다.
"그럴 일 없거든……?" 나기사는 조금 더 뾰루퉁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뱉었다. "너, 타인한테 벽이 너무 낮잖아……. 생판 남한테 함부로 그런 약속하면 못 써. 나 같은 시골 여자애한테 굳이 정 붙여 봤자 좋을 일도 없고."
이제는 드러누운 채로 휴대폰을 두드리면서 대답했다.
"글쎄, 알려줄까 말까……. 생각해 볼게." 놀랍게도 표정은 그대로라 전혀 농담을 말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아니었다. "나한테서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건지는 전혀 모르겠는데……. 재밌는 건 절대 아닐걸. 그리고 내가 하는 말 같은 거에 신경쓰기보단 차라리 하늘의 구름을 구경하는 게 더 생산적일 거라고."
평생을 쳐다보고 다닌 마을 친구들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것을 생판 외지인에게 어떻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나기사는 자기 표정이 전혀 다양하지 않다는 것을(그리고 그나마 평소에 짓는 표정도 대부분 딱딱하게 굳은 것이라는 사실을) 이럴 때만큼은 다행으로 여겼다.
그러다가 유키가 일어나는 것을 보자, 나기사는 날쌘 몸놀림으로 다리를 젖히며 몸을 튕겨서, 바닥에 손도 짚지 않고 일어났다. 배웅이 필요없고 자시고 간에 현관까지 따라나서겠다는 것 같았다. 어디까지나 나기사는 지금 손님을 접대하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벌써부터 손님에게 친구처럼 구는 것이 오히려 나기사에게는 비상식이었다.
"아와나미 온천…… 이랬지. 참…… 여러모로 직관적인 네이밍이네. 아빠 보고 업무는 시청에서 좀 보라고 일러둬야겠다……."
그러면서, 현관까지 어기적어기적 따라나와선 현관의 턱 위에 다소곳이 선 채로, 가만히 소년을 내려다보다가, 뜻밖의 말을 듣고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어 고개를 기울였다.
"…… 놀자고?"
나기사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머리를 긁었다. "…… 그래, 그러든가……." 고개를 돌려서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함부로 그런 약속일 정도의 일이야? 그냥 택배로 물건 보내는 것 정도잖아? 그리고 벽이 낮으면 어때. 그게 나인걸. 괜히 벽 높게 해서 친해질 수 있는 이와 못 친해지면 나중에 너무 벽 세웠나? 싶어서 후회할 수도 있잖아. 난 그렇게 후회하긴 싫어. 그리고 정 붙이면 어때서. 요즘은 라인도 있는데 친하게 지내면 되지."
무슨 문제가 있나 싶어 소년은 오히려 뻔뻔하게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물론 상대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자신은 여기서 친구를 두 명이나 사귄 이가 아니던가. 그렇다면 저 소녀와도 친해질 수도 있는 것이기에 소년은 나중에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오히려 뻔뻔함을 보였다.
"구름을 구경하는 것보단 대화를 하는게 더 생산적이더라. 아무튼 그걸로 됐어. 끊어졌던 말이 뭔지 들을 수 있다면 좋은 거고, 못 듣는다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억지로 캐묻고 그러고 싶진 않거든."
그 정도로 충분하다고 이야기를 하며 소년은 돌아가려는 듯 발을 옮겼으나 소녀가 따라나오는 모습에 앞을 바라보며 괜히 작은 미소를 지었다. 드러누웠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손님 대접은 제대로 해주는구나 생각을 하며 넌지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며 소년은 현관 앞에서 멈춰서면서 문고리를 잡았다.
"응. 놀자는거지. 시미즈 양도 방학일 거 아냐. 방학 때 집에만 있으면 좀 그렇잖아? 역시 친구들과 어울려서 놀고 그래야지. 그럼 다음에 또 보자. 시미즈 양."
손을 가볍게 두 번 흔든 후, 소년은 문 밖으로 나섰다. 당연히 목적지는 온천이 있는 곳이었다. 물론 일은 다 끝나긴 했지만 그래도 일단 심부름이 끝난 것을 보고해야만 했으니까.
/일단 첫만남으로는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긴 한데 막레를 잇고 싶다면 이어도 괜찮고 이걸 막레로 받아도 괜찮아!
시원스럽게 인정했다! 인정 얹고 자백까지 해버린 느낌이지만... 아무래도 좋나☆ 진지하게 화냈다면 진지하게 반성하면서 사과하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선배는 그냥 넘겨주려는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선배. 앞으로도 좋은 태클 부탁해요☆ 그리고 사진을 달라고 했던만큼 자연스럽게 연락처를 공유하는 흐름이 되었다. 뭐어, 아사기리 씨랑도 주고받았으니까! 아무렇지않게 연락처를 입력한 핸드폰을 돌려주며 생긋 웃었다.
"에~ 그건 즉 나기랑 같이 여행을 가겠다는 말인가요? 우리 아빠가 들으면 선배를 죽이러 올지도 몰라요☆"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정말로 그럴지도 몰라... 그러니 이 일은 아빠한테는 비밀이다. 사실 여행을... 갈 생각도 아직은 없지만. 그러니 반쯤은 그냥 선배를 놀리려고 한 말인 셈 치자.
"뭐 농담이지만. 아무튼... 언젠가는 그렇게 연락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때가 되면 잘 부탁할게요 선배☆"
언젠가는, 이라고 하긴 했지만 아마 없겠지. 그럴 일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방긋 웃었다. 딱 그 타이밍에 메세지가 도착했다. 손님이 많아졌으니 그만 들어와서 일을 도우라는, 언제나와 같은 말이었다. 아쉽네. 좀 더 놀고싶었는데.
"...집에서 이만 들어오라고 하네요. 나기는 이만 가볼게요☆ 다음에 또 봐요, 카무이 선배!"
어느새 다 마신 빈 컵을 두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게를 나오니 뜨거운 햇빛이 쏟아진다. 집까지 걸어가면 엄청 덥겠지...
막 기분 좋게 감기려던 눈이 다시 뜨였다. 그대로 눈알을 굴려 자신에게 말을 건 사람이 누군지 확인했다. 모르는 사람. 누구지. 아니, 그보다 여기서 잔다고 파도에 쓸려갈 일은 없었다. 애초에 얕은 바다고, 딱히 물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니까. 나오키는 우선 몸을 일으켜 바로 앉았다. 옷에 묻은 모래를 손으로 툭툭 털어낸 뒤 상식적인 질문부터 던졌다.
"누구세요?"
이 동네에서는 아는 사람이 없는데. 아니면 사촌 친구인가. 그렇다고 해도 말을 걸 만한 이유는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머리와 등을 대강 털어낸 뒤 바닷물에 찰박이며 손을 씻었다. 적당히 시원한 물이 아직 멍한 머리를 조금은 깨워 주었다. 그래서, 진짜 누구?
아와나미 서고 영어교사이자, 방학 중 학생활동 감독을 맡은 니시노 아메 선생으로부터의 메일.
[ 여러분, 서동제의 준비는 잘 되어 가고 있나요? 다음 주부터 본격적인 휴가철에 접어들면서 서동제 기간이 시작됩니다. 서고인 여러분이 직접 만들어나가는 축제를 올해도 안전하게 진행합시다. 가게 운영 및 봉사활동을 맡은 학생들의 경우 홈페이지에서 각자의 역할이 맡은 위치를 확인해 주세요. 가마 행렬을 담당하는 학생들의 경우 추후에 공지하겠습니다. ]
비슷하게 동고의 체육교사 히가시야마 소타 선생으로부터도, 동고 학생들의 휴대폰에 메일이 도착했다.
[ 제군들!! 올해 동서제도 서고에 지지 않도록 화끈하게 해라!! ]
아무래도 성격 차이가 잘 드러나는 두 선생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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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관광 센터의 포스터
아와나미 협동 학원제 봉사활동자 모집
모집대상: 시민/외부인 모집인원: 000명
문의: 아와나미 학원제 운영위원회 (000)-0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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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동고 학생들의 대화 ~ 바닷물과 모래와 공……?
아사하마 해수욕장이 본격적인 활기를 띠면서, 매년 개최하는 [아사하마 서머 비치발리볼 선수권]에 대한 소문도 다시 들려 오고 있다…….
이하는 바닷가 근처 한 카페에서 동고 학생들이 나누는 대화.
"상금이랄 것도 많지 않은데, 굳이 나가서 뭐 해?" "중요한 건 명예지! 동고, 서고, 관광객 할 것 없이 모든 남자와 여자들을 내 우월한 비치발리볼 실력에 반하게 만드는 거야!" "아하하하하하! 그럴 실력은 되고?" "조용히 햇──! 그리고, 관광 저널에 대문짝만하게 사진도 찍힌단 말이야! 완전 찬스 아냐?!" "으악, 우승하면 온 동네에 소문이 난다고? 그럼 난 절대 못해……!" "아하하핫, 그럴 실력은 되고?"
서백희가 아와나미에 발을 들인지도 벌써 몇 주가 지났다. 하지만 놀랍게도 서백희가 만난 사람이란 고작 해변가의 아이스크림 판매원과 제 외할아버지가 고작이었는데, 이게 무슨 일인고 하니 글쎄 서백희가 날이 덥다는 것을 핑계로 거의 모든 시간을 방 안에 처박혀 보냈다는 것이다. —할아버지, 스마트폰은 정말 좋은 친구야. 그렇게 몇 주만에 미드 수십 시즌과 각종 로맨스 영화를 섭렵한 서백희에게 결국 할아버지가 불호령을 내리고 말았으니, 당장 집 밖으로 나가 이곳 지리라도 좀 익혀보라는 것이었다.
" * 아, 찾았다. "
서백희가 한 가게의 간판을 읽어내리며 중얼였다. 사실 할아버지가 집 밖으로 좀 나가보라는 말을 건넸을 때, 서백희는 그 명령에 쉽게 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땡깡이란 땡깡은 모조리 피우며 기꺼이 나잇값 못하는 손녀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것이 아닌가. 결국 보다못한 할아버지가 서백희에게 비장의 카드를 하나 꺼내들고 말았으니, 인즉 —이 근처에 네 또래 여자아이들이 좋아하는 카페가 있으니 케이크라도 하나 사와보렴— 하고 속삭이는 퀘스트였던 것이다. 서백희는 한창 ‘인스타 감성 카페’의 미련에 젖어있었고, 그 제안을 수락할 수 밖에 없었다.
아무튼, 이것이 바로 서백희가 직접 카페까지 오게 된 거창한 이유시란다.
" 안녕하세요. "
조심스레 카페 문을 열자 시원한 에어컨 공기가 서백희를 반긴다. 지글대는 햇빛을 온몸으로 쬐며 시원하지도 않은 부챗바람을 쐬는 일은 무척 불쾌한 경험이었다. 잠시 짜증이 끼어있던 서백희의 얼굴이 풀어지니 기분이 좋아진 것일까, 서백희는 아스팔트 바닥에 질질 끌리던 슬리퍼를 고쳐신으며 케이크 쇼케이스 앞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 * 뭐가 맛있을라나······ "
혼자말을 자주 하는 습관은 나쁘지만, 어차피 한국어를 알아들을 사람도 없을테니 상관 없다. 서백희는 그리 생각하며 찬찬히 쇼케이스를 구경하기 시작한다.
나메를 '물가의 소문들'이라고 했어야 했는데 아이고!! 말씀하신 대로 앞으로 한동안 학원제(동서제/서동제) 기간이에요! 그동안 서로 왕창 면식을 트고 친해진 뒤에, 학원제가 끝나고 나면 그 인연을 더욱 깊이 발전시켜 봅시다.
학원제 공지를 지금 해 버리자면, 학원제 이벤트는 다음과 같이 진행됩니다.
다음 1주간 동고와 서고, 그리고 기요누마 시내와 아사하마 해변에서 학생들이 각종 점포를 운영하는 기간 + 비치발리볼 챔피언십 기간. → 자유롭게 설정을 사용해 주시면 됩니다. 둘이 함께 점포를 운영한다거나.... 하는 설정을 짜셔도 좋아요. → 아사하마 서머 비치발리볼 챔피언십(ASBC)은 여유로운 스레 분위기를 보아 별도의 집합 이벤트 없이 진행할 예정입니다만.... 여러분이 원하신다면 다음 주 중에(또는 주말에) 이벤트로 진행하겠습니다!
그 다음 1주는 가마 행렬과 제의를 행하는 등 조금 더 전통 마츠리스러운 기간. → 그러나 사실 전통 따위는 없이 지자체에 의해 급조된 마츠리라는 설정으로, 학생들 사이에서는 합법적으로 전통복 차림과 분장을 하고 놀 수 있는 할로윈 비슷한 행사로 통해요.... → 가마 옮기는 것을 이벤트로 해 버리면 굉장히 따분할 것 같아서 자세한 내용은 고려 중입니다.
자, 어느날 이상형이 다가와서 이번주에 쉬는날 뭐해? 라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할꺼야? 라는 친구의 질문에 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 날 카페에서 일해야하는데? 그래. 쉬는날은 카페에서 일해야지... 잠만, 그럼 나는 언제쉬는거지? 평일에는 학교가고 학교 끝나면 카페 뒷정리 좀 도와주고 주말에는 카페에서 일하면... 어라? 이거 이상한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오픈 준비를 끝낸 뒤 인스타에 오늘의 케이크를 찍어 올린다. 오늘의 메뉴. 캐럿.. 쇼콜라... 베이크드치즈케이크. 엄마가 직접만드는 수제케이크입니다!
"자, 이제 들어가서 쉬세요. 바빠지면 문자 드릴게요"
그렇게 엄마를 보내고 몇시간이 지났을까... 오늘은 이상하게 손님이 없었다. 어차피 일하는거 차라리 바쁜게 좋다고 생각한다. 왜? 바쁘면 시간이라도 빨리가니깐 아님 관광객들이랑 수다떠는것도 재미있고. 아무튼 이렇게 손님이 안올때는 오게하는 주문이 있다! 그것은 바로...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는거! 자, 이렇게 게임을 시작하면...
"어서오세요"
봐바. 맞지? 화려한 머리색을 가진 손님이었다. 느낌을 보니 에어컨을 시원하게 틀어두길 잘한것같다. 분명 관광객이겠지? 비슷한 또래 같은데 본 기억이없으니까. 그렇게 카운터에 서서 주문을 기다린다. 음.. 메뉴 설명이라도 해드릴까? 몇시간동안 얌전히 있으니 심심한데.
"*어라? 한국분이세요?"
순간적으로 한국말이 들렸고 반가운마음에 곧바로 말을 걸어버렸다. 정말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한국말이었다. 발음은 좋았으려나?
서백희는 '트렌디' 한 것에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요컨대 할아버지가 즐겨보는 따분한 TV 채널이나, 한산한 주택가 따위가 아닌 것들 말이다. 제 또래 아이들이 즐길 만한 것들! 인스타에 올라올만한 그런 것들!
" * 어, 네! 그쪽도 한국분이세요? "
한창 쇼케이스를 들여다보고 있을 즈음이었다. 어디선가 반가운 언어가 들려오는 게 아닌가. 서백희는 곧장 고개를 들었다. 익숙한 언어로 제게 말을 걸어온 것은 다름아닌 카페 카운터를 지키는 낯선 남학생이다. 서백희가 눈을 밝혔다. 타국에서 모국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마주했을 때의 반가움이란 그런 것이다. 아무리 까칠한 인간도 눈을 반짝이게 만드는 희열.
" * 뭘요, 아. 밖에서 한국어 쓰니까 속이 확 뚫리는 기분이에요. "
웃기는 소리. 여태껏 혼잣말로 잘만 내뱉었으면서. 하여튼, 서백희는 무척 반갑다는 얼굴로 조잘조잘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뭐, —밖이 더워서 죽는 줄 알았어요, 요즘 일본어가 서툴어서 좀 자신감이 깎이고 있었는데 너무 기쁘네요, 아 이제 좀 살 거 같아요, 따위의 쓸데없는 말들. 어쩌구 저쩌구.
" * 큼, 저는 서백희예요. 한국에서 왔고, 열여덟살. "
서백희가 입을 다문 것은 TMI를 연달아 오분 정도 쏟아내고 난 뒤였다. 그리고 어색하게 헛기침을 하며 제 이름을 밝혔는데, 말을 끝내고 가만히 상대의 대답을 기다리는 것을 보니 그쪽의 이름과 나이도 궁금한 모양이었다. 그니까, 이게 바로 우리 친구하자! 라는 무언의 신호다.
예상치도 못한 대답이었다. 아무래도 관광지다보니 외국인들도 자주 왔고 또 그중에 한국사람도 당연히 있었다. 한국인들에게 한국말로 응대하면 대부분 깜짝놀라며 '와아, 한국어 엄청 잘하신다!' 라는 한국어를 잘하는 '일본인'이라고 생각하지 한국분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처음이였다. 음... 그만큼 나의 한국어 발음이 완벽했다는건가?
화려한 머리색에 이쁜 여자애가 눈을 밝히며 쳐다보니 그만 눈을 깔아 시선을 돌렸다. 아, 무서워서 그런게 아니라 부담..이랄까? 아니 쑥스럽잖아. 이게 정상아냐? 아무튼 그 이후 쏟아지기 시작하는 한국어를 듣다보니 자연스레 한국어가 익숙해져버렸다. 오랜만에 하는 한국말이라 입에서 안나올 줄 알았는데 그럴 걱정은 사라졌다.
"*저는 류로운입니다. 여기서 살고 지금 고3 입니다"
한국식 나이라는게 있다는것을 알고있기에 학년으로 소개한다. 이래야 그나마 오해가 없으니까. 그나저나 상당히 활발한 사람이네 이게 그 한국말로... 인싸? 라는 사람 맞지??
백희의 신호 무사히 전달되었다!
"*덥다고 하셨죠? 그럼 시원한걸로 준비해 드릴게요. 아, 음료는 서비스로 드릴게요."
몸을 돌리며 말을 끝낸 로운은 잠깐동안 어떤 메뉴를 줄지 생각했고 케익을 구경하던것을 기억하고 무난한 커피를 서비스하기로 했다. 브랜딩된 원두를 그라인더로 갈아낸 뒤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추출한다.
"*관광으로 온건가요? 아니면 이사?"
준비해 둔 유리잔에 얼음과 커피를 가득 채워즌다. 카페에 왔으면 커피를 마셔야지. 우리 매장에서 사용하는 원두에는 자신이 있으니깐.
서백희가 살며시 웃으며 대답했다. ······대체 왜 혼혈일 것이란 생각은 안 한것일까. 서백희 본인 역시 쿼터 혼혈이면서. 서백희는 평소 굳이 자신이 쿼터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딱히 별다른 이유는 없고, 그저 설명하기 귀찮았기 때문이다. 주변인들에게 쿼터 혼혈이라는 말을 꺼내면, 어느순간 꼭 본인이 태어나기도 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연애 이야기까지 거슬러 올라가곤 했다. 그리곤 다시 두 분이 어떻게 만나게 된 것인지부터 서백희의 구구절절 인생 이야기까지 찬찬히 내려오는 것이다. 이게 얼마나 부담스러운 일인데. 때문에 서백희는 굳이 밝혀야할 상황이 아니고선 자신을 "순수 한국인" 이라 지칭하곤 했다. 어차피 태어나 줄곧 살아온 것은 한국이었으니 뭐, 틀린 말도 아니다. 하여튼 그녀가 남학생을 한국인이라 추정한 것은, 그저 서백희가 한국인이기에 자신에게 가장 일반적으로 느껴질 상황 가설을 채택한 것이라 설명해두자.
서백희는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남학생이 제 눈을 피한 것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입을 겨우 다물고 목을 다듬을 때에야 그 사실을 눈치챘던가.
" * 류로운······ 어라, 저보다 나이 많으시네요? 말 놓으셔도 돼요! "
이름도 한국식이시네! 서백희가 속으로 생각했다. 사실 서백희는 그리 사교적인 성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타국에서 모국어를 만난 기쁨이란 그런 서백희 조차도 입 터진 수다쟁이로 만드는 것이다. 묘한 반가움이나 동지애? 글쎄, 제 멋대로 동질감을 느낀 것일테다.
" * 헐 괜찮은데······ 감사해요! "
서비스라는 말에 서백희가 다시 한 번 눈을 반짝인다. 사실 시원한 커피가 땡기긴 했더란다. 한 겨울에도 놓을 수 없었던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거. 아, 착한 분이다. 서백희가 물그럼 로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꼭 친해져야지. 아니, 커피 때문은 아니고······ 진짜로······
" * 음, 관광이요. 말하자면 복잡한데. 유배 온 거랑 비슷하다고 해야하나, 아니면 강제 요양······? "
서백희가 가볍게 제 뺨을 문지르며 말 끝을 흐렸다. 서백희는 거의 강제적으로 외할아버지댁에 보내진 처지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됐다. 지금은 본뜻이 거의 변질된 거 같지만······
" * 아 맞아, 여기 초코 케이크도 포장해주세요! 쇼케이스 윗줄 가장 왼쪽에 있는 거요. "
서백희가 커피로 채워지는 유리잔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초코 케이크' 라 뭉뚱그리기 아까운 번듯한 이름을 가진 아이였지만, 안타깝게도 서백희의 일본어 실력이 조금 어설펐다.
발음도 그렇고 내가 사용한 단어가 맞는건지 뭐 이런거 말이야. 그나저나 오랜만에 한국어를 하는것도 재밌는데? 외국어를 능숙하게 사용하는게 뭔가 똑똑한거 같잖아? 그리고 정말 수다떠는걸 좋아하는 애구나. 아, 싫은건 아니야 지금처럼 손님도 없고 한가할때는 오히려 감사하지.
"*그럼 다음에 만날때 편하게 할게요"
나이가 많다는 백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역시 동생이구나. 한국식 나이는 헷갈린단 말이지. 감사하다는 말이 부끄러워 뺨을 어색하게 어루만지는 로운. 항상 매일같이 듣는 말이지만 아직도 뭔가 어색하고 부끄럽다.
"*뭐, 저마다 사정이 있는거죠. 이거 말하는거죠?"
관광이며 유배, 요양. 흐으음... 뭔가 이상한데? 아무튼 백희가 말하는 케이크를 가르키며 한번 더 확인한 뒤 그대로 종이상자에 포장하기 시작한다. 한조각씩 옮겨담아야 하기에 잘못하면 옆으로 툭 쓰러져버릴수 있어서 신중에 신중을 가해야한다. 부모님은 다 잘하는데 나는 이런 세심한 작업은 못하겠단 말이지. 아, 손떨린다
"*그럼 여기서 제법 머물겠네요? 그렇다면 자주 놀러오세요. 아니면 나중에 동네 구경이라고 시켜줄까요?"
다행히 안전하게 포장을 완료한 로운은 안심의 한숨을 푸욱 내쉬곤 백희에게 건내주며 말한다. 내 입장에서는 따분한 마을이지만 그래도 제법 분위기있는 장소를 알고있으니까. 아, 생각해보니까 이거 좀 부끄러운거 같은데..?
서백희가 능청스레 입을 열었다. 그러다 어색히 뺨을 만지작대는 로운을 보고서는 별 뜻 없이 환하게 웃어보이는 게 아닌가. 역시 어른들 말 들어서 나쁠 거 하나 없다. 모처럼 나왔다가 친구도 사귀고 말야.
" * 네, 그거. 아무튼 놀러왔어요. "
서백희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서백희는 초콜렛 케이크를 좋아했다. 다음으로 좋아하는 것은 생크림 케이크였고, 고구마 케이크는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아, 그러고보니 할아버지는 초콜렛 케이크보다 생크림 케이크를 더 좋아하실텐데. 뭐 이미 사버렸으니 어쩔 수 없지. 서백희가 쇼케이스에서 카운터쪽으로 움직여 아슬아슬히 옮겨지는 케이크 조각을 바라보았다.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입 마시고, 케이크를 바라보고, 슬쩍 긴장한 로운의 표정도 살피고. 다시 아메리카노 한 입. 시원한 아메리카노가 곳곳에 퍼져 에너지가 충당되는 이 기분!
" * 적어도 몇 달은 있을 거 같아요. 동네 구경이요? 저야 좋죠! 사실 여기 온지 몇 주가 지났는데도 아는 게 별로 없거든요. "
자랑은 아니지만. 서백희가 케이크가 든 종이 상자를 받아들었다. 동네 구경이란 단어에 제법 신이 난 모습이었다. 각얼음이 조금 드러난 유리잔을 한 손으로 잡아들며 쫑알쫑알 말을 이어가던 서백희가 잠시 걸음을 옮겨 주변 테이블 위에 케이크 상자를 올려두었다. 그리고는 다시 카운터 근처로. 지금은 사람도 없이 한산한듯 하니, 커피를 다 마실 때까지 로운과 얘기라도 나눌 생각인 모양이다. ······좀 부담스러우려나? 하지만 커피가 테이크아웃 종이컵이 아니니 어쩔 수 없다.
" * 저 이 근처에 사니까, 심심하면 커피 마시러 자주 올게요. 친구라곤 한국에 있는 애들 밖에 없어서 진짜 따분해요. "
서백희가 차가운 유리잔을 두 손으로 잡아쥐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다시 아메리카노 한 모금.
" * 마을이 잔잔하니 분위기 있고 좋던데요. 꼭 영화에 나오는 바닷가 마을 같아요. 꼭 마녀 배달부 키키에 나오는······ "
어깨를 으쓱이는 상대를 향해, 서백희가 넌지시 창 밖을 내다보며 입을 열었다. '마녀 배달부 키키' 이야기를 꺼내고서는 조금 오바를 떤 것 같기도 하여 느릿히 말끝을 흐리고 말았지만. 서백희가 재빠르게 아메리카노를 들이키며 어색히 어깨를 으쓱였다. ······음, 제가 그 영화를 좋아하거든요.
" * 그러려고 노력해야하는데 말이에요. 뭐, 일단 오늘 친구 한 명 사귀는 건 성공 했네요. "
청소년들이 흔하게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장소라 하면 대개 학교와 학원, 동아리 따위를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까 필연적으로 그들에게 공통점을 엮어줄 수 있는 곳. 아무 패스트푸드점이나 들어가 제 또래 애들에게 친근하게 말을 붙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런 짓을 저질렀다가는 십중팔구 이상한 눈빛으로 그녀를 처다보며 말 없이 자리를 옮기고 말테다. ······물론 오늘은 예외. 서백희는 그런 생각을 하며 비슷한 일을 저질렀음에도 본인을 피하지 않은 로운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 * 에이, 인기는 무슨. 이제 친구 한 명 사귀었는데. 그래도 고마워요. "
서백희가 가볍게 손사레를 치며 웃었다. 말은 그렇게 해도 로운의 말에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다.
" * 학원제요? 그거 지역 축제죠? 그때를 노려야겠어요. "
학원제라는 이름을 보면 아무래도 이 지역 학생들이 주로 참여하는 축제인 듯 하지만······ 외부인이라고 참가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을까? 음, 그럼. 서백희가 다시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넘기며 생각했다. 그러다 힐끗 바깥을 바라보곤, 잠시 후 온 몸으로 맞이할 아와나미의 열기에 푹 한숨을 내쉰다.
" * 재미있을 거 같아요. 오빠도 거기 참여할거죠? "
서백희는 뒤늦게 두 가지를 깨달았는데, 먼저 친구는 사냥감처럼 '노리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과, 오빠라는 호칭이 적절치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일단은 한국에서 하던 버릇대로 오빠라는 호칭을 쓰긴 했지만, 여기는 보통 ~씨 라고 부르지 않나? 아니 그건 둘째 치고 원래 초면인 사이부터 오빠라는 말을 꺼내는 것은 좀 어색한 일이긴 했다. 서백희가 머쓱한 표정으로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아니 근데, 내가 먼저 말을 놓으라고 해놓고 로운씨라 부르면 뭔가 이상하잖아. 아닌가? 상대를 지칭할 때만 일본어를 쓸까? 차라리 서백희에게는 생각을 멈추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일지도 모르겠다.
잔잔하니 분위기가 있다는 백희의 말에 고개를 갸웃 거린다. 평생을 보고 자라온 마을이라 나에겐 당연하고 평범하게 느껴지기 때문이겠지. 아무튼 그래도 우리동네 이쁘다고하니 기분은 좋네. 키키는 또 오랜만이네? 옛날 엄마가 보여준 기억이 있다. 아니다 유치원에서 다 같이 봤던가? ... 아무튼 거기 스튜디오에서 만든 영화는 대부분 봤을 정도로 좋아하는 편이다.
"*차근차근 시작하는거죠. 네, 맞아요. 마침 외부인이나 관광객들도 즐길 수 있는게 잔뜩이거든요. 분명 좋아할거에요"
손사레치며 웃는 백희를 담담하게 답해준다. 덧붙여서 학원제도 적극적으로 홍보해본다. 선생님 저 잘하고있는거 맞죠? 이렇게 하는거 맞잖아요. 저 한명 홍보했습니다? 그리고 커피 한모금
"*그렇게 불리는것도 괜찮은데요? 아, 맞아요."
오빠라는 단어를 정말 오랜만에 듣는.. 아니 잠시만 처음인가? ..그러네! 나 생각해보니까 여자 지인이 거의 없다고해도 되는데? 맨날 남자들이랑만 놀아서.. 이거 갑자기 위기감이 느껴지는걸? 당장 연락처를 뒤져봐도 엄마나 할머니 말곤 제대로 연락하는 이성도 없잖아.
"*오빠라는 호칭을 포기하고싶지는 않지만... 농담이고 그냥 편한 방법으로 불러요. 말도 편하게 하시구요. 친구잖아요"
장난섞인 웃음을 보인 뒤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는 얘기한다. 생각을 해보면 평생 한국에서 살다 온 백희에게 일본식 호칭은 어색할수 있었다. 흐음. 그럼 서로 편하게 하는게 좋겠지? 어차피 나이도 한살차이니까 그냥 거기서 거기지 뭐..
원상복귀한다고 하니 다행이야. 하지만 그 날만 보고 달리다고 지쳐서 쓰러지지 않게 조심 또 조심해랏! 나는 코로나가 좀 풀리지 않는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건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조심할게! 치하야주도 코로나 조심 건강 조심 아무튼 다 조심이야!
한번 눈을 깜박이면 벤치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는 그녀가 있었다. 그러고나서 다시 눈을 깜박이면 또 다른 사람들이 스쳐지나가겠지. 즐겁고, 바쁘고, 한창 들떠있는 사람들의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긴 하지만 그렇다고 혼자서만 시간이 느긋하게 흘러간다는게 나쁜건 아니니까. 그들이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즐거움을 표현한다면 그녀 역시 나름대로의 방법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딱히 사람들을 구경하는 취미가 있는건 아니었기에 시선은 여전히 아래를 향해있었다.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다는건 아니지만, 그런 사람들을 눈여겨볼 이유도 지금은 딱히 없기 때문일까? 표정만 보면 그 시선 앞에 놓인 플라스틱 컵의 거리감마저 흐릿하게 느껴질만도 하지만 용케도 빨대가 뺨이나 눈을 찌르지 않는건 그 여유로움에서 비롯된 걸지도,
"......"
라곤 해도 손에서 떠나지 않는 휴대폰 안의 화면은 그런 한적함과는 거리가 멀어보였기에 뭐든지 펑펑 터지는 것과 그걸 바라보는 멍한 시선엔 아무래도 괴리감이 느껴질 법했다.
여름하면 축제. 축제하면 여름. 전에 들은 적이 있었던 학원제가 개최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소년은 일이 없는 날이 찾아오자마자 바로 축제 장소로 찾아갔다. 출발하기 전, 고모와 고모부에게 미리 길을 묻고 나왔기에 소년은 길을 잃지 않고 무사히 축제 장소에 찾아올 수 있었다.
두 학교가 힘을 합쳐 개최해서 그런지 그 규모가 생각보다 컸고 소년은 두 눈을 반짝이며 핸드폰으로 여기저기를 찍으면서 축제를 구경했다. 그러다 노점에 잠시 들려 딸기 시럽이 올려진 빙수를 산 후에 스푼을 이용해 시원함을 만끽하며 앞으로 걷기도 하고 물풍선 던지기가 보여 가볍게 물풍선을 던지기도 하며 소년은 나름대로 축제를 만끽하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허나 역시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은 소년의 성미에 그리 맞지 않았다. 역시 누군가와 같이 놀았으면 좋겠는데. 전에 라인을 교환한 두 명을 불러낼까 고민을 하던 도중 소년의 눈에 벤치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는 여성의 모습이 보였다. 가장 먼저 눈에 보인 것은 에메랄드르 연상시키는 연녹색 눈동자였다. 적어도 자국 토종 눈동자 색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소년은 컬러렌즈 혹은 혼혈을 떠올렸다. 물론 어느 쪽이어도 달라질 건 없었다. 눈에 띄었다는 사실이 중요했으니까.
"저기. 혼자세요?"
누가 보면 헌팅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나 소년은 스스로 찔리는 것이 없었기에 개의치 않고 태연하게 여성에게 말을 이어나갔다.
"혹시 괜찮다면 같이 둘러볼래요? 별 건 없고 저도 혼자거든요. 학원제를 크게 한다고 해서 왔는데 막상 혼자 둘러보고 놀려니 영 그렇고 제가 여기 출신이 아니거든요. 치바에서 온 사람인데 아무튼 그렇다보니 여기서 아는 사람도 많이 없고 그래서 어쩔까 생각을 하다가 혼자 계신 것 같아서. 어때요? 같이 둘러보는 거. 아. 거절하셔도 괜찮아요. 제가 생각해도 되게 뜬금없이 말을 건 것 같으니까요."
라는 물음에 한번 더 눈을 깜박이곤 시선을 위로 올렸다. 검은 머리카락에 갈색 눈, 이곳이라면 어디서든 볼만한 특징이면서도 유독 눈에 띄는 그의 물음에 그녀는 일행이 있던가, 하는 표정으로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고선 다시 그에게 시선을 맞추어 대답 대신 의미모를 희미한 웃음만 지어보였다.
"혼자일지도...?"
느릿하게 나온 말 역시 확신은 없었지만 그의 말마따나 뜬금없이 말을 걸어왔다곤 해도 거절하면 아까처럼 혼자가 될 뿐, 그렇다고 거절할 이유도 딱히 없었기에 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빨대를 우물거리면서 그에게 무어라 말해야 할지 잠시 생각해보았다.
"그치만 여기 지리는 잘 모르니까, 안내는 무리일지도 몰라요. 하루 즐기는 것만으로는 부족할만큼의 학원제에서 같이 길을 잃는다 해도 화내지 않는 분이라면 상관없지만..."
그러고선 살며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떠보았다. 그때서야 더 또렷하게 보이게 된 시선에선 선이 고우면서도 또래남자애다운 인상이 있었고, 목을 덮을 정도의 머리카락은 살짝 구부러져 있기에 덥수룩하단 느낌은 들지 않았다.
자신과 비슷한 키의 여성이었기에 자연히 여성이 일어서자 눈높이가 비슷하게 맞춰졌다. 손에 든 빙수를 한숟갈 뜨고 입에 넣은 후 그 차가움을 입 안 가득 녹이며 소년은 여성의 말에 집중했다. 의미를 읽을 수 없는 희미한 웃음은 몽롱하면서도 신비한 느낌이었기에 소년의 시선이 절로 고정되었다.
"물론 괜찮아요. 안내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같이 놀 사람을 찾고 있었거든요. 아까도 말했지만 저는 여기 사람이 아니어서 평소 노는 친구들이 여기엔 없거든요. 물론 여기서 사귄 친구도 세 명. 아. 한 명은 조금 애매할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있긴 한데 그래도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까 새롭게 사람을 알아가는 것도 재밌잖아요?"
물론 그건 소년에게만 해당되는 일이고 여성에게는 전혀 이해하기 힘든 것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허나 일단 자신은 그렇다는 것을 확실하게 표현하며 소년은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며 별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강조했다.
"같이 길을 잃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길을 물으면 되니까 상관없잖아요? 여기 지리를 잘 모르면 저처럼 다른 곳에서 온 모양인데 외부인들끼리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구경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은데."
별 문제가 있겠냐고 이야기를 하며 소년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금 여기서 당장 보이는 것은 축제에서 볼 수 있는 가벼운 놀잇거리. 대표적으로 금붕어잡기, 물풍선 던지기, 다트 던지기 등이었다. 천천히 둘러보며 게임을 즐기는 것도 좋을테고 공연거리가 있으면 구경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을 하며 소년은 여성에게 물었다.
"그런 의미에서 돌아다녀봐요. 괜찮다면요. 저기에 있는 게임을 하면서 놀아도 좋을 것 같고, 근처 노점을 둘러보면서 먹을 것을 먹어도 좋을 것 같은데. 아. 혹시 어디서 오신 분이세요? 저는 아까도 말했다시피 치바. 디즈니랜드가 있는 곳이요."
/이렇게 답레를 올리고 슬슬 자러 가야 할 것 같네. 킵을 요청할게! 그리고 쥬히주도 너무 늦게까지 깨어있지 말고 잘 자! 답레는 이어두면 시간 될 때 바로 나도 이을게!
지금 상황에서 딱히 어울릴만한 사람이 없단건 피차일반일까, 어느쪽이건 혼자선 딱히 즐길거리가 없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녀 역시 예외는 아니었을 거고... 어쩌면 그저 그녀가 붕뜬 일상을 살아왔던 것 뿐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그게 단순히 누군가와 같이 축제 분위기를 즐기려는 입장이건, 그저 의미없이 떠돌아다니는 입장이건 어느쪽이든 좋은거 아닐까? 라고 생각했기에 그의 권유를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네요... 별 문제 없으시다면야, 같이 구경하는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새롭게 사람을 알아간다는 부분에선 역시 물음표가 띄워질 수도 있을법 하지만 그 논점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기보단 그저 내것인양 와닿지가 않을 뿐이었다. 스스로도 그런 둔감한 부분은 알고 있기에 고쳐볼까 생각은 해본적 있어도... 생각에서만 그쳤기에 여지껏 어딘가에서 누군가와 어울려본적은 없었으려나, 그런데도 여차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길을 물으면 그만이라며 별 문제 없을거라는 그가 눈 앞에 있었기에 그녀는 늘 그랬던 것처럼 희미하게 웃어보이면서도 약간은 멋쩍은 기분이 들었을지도 몰랐다.
그제서야 시야가 좀 넖어진 걸까? 움직이는 그의 시선을 따라 둘러보니 학교 주최라곤 해도 축제답게 즐길 것은 많았다. 간단한 게임에서부터 먹거리까지, 있을건 다 있는 풍경이 눈에 들자 그녀는 자신의 손에 쥐어져있는 음료가 이미 얼음만 잘그락거리고 있었다는걸 깨닫게 되었다. 주변을 가리고 있던 희멀건한 안개가 걷힌만큼 조금은 눈이 아프다 느껴졌겠지만, 그건 단지 반쯤 감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던 자신의 문제 아니었으려나?
"치바인가요? 그러고보니 디즈니랜드에 가본지도 좀 된 것 같네요~ 이맘때쯤에 갔었던 것 같은 기억이 있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게 어렸을적인지, 아니면 비교적 최근의 일이었는지는 갑자기 떠오른 연관성인지라 확실치 않았다. 그래도 갔었다는 기억만큼은 거짓이 아니었으니,
"저는... 일단 아버님께서 도쿄쪽 출신이시니 저 역시 그렇다곤 하지만, 정확히 따지면 오를레앙에서 왔다고 해야겠네요. 여기엔 가족 일하곤 상관없이 온거니까요~"
일단 상대방이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려주었으니 그녀 역시 대답하지 못할 것은 없었다. 느릿하면서도 꾸준히 흘러나오는 말은 스스럼없이 대하는 사람에겐 마찬가지로 별다른 거리감 없이, 조심스러운 사람에겐 그에 맞춰 차근차근 나아갈 뿐이었으니까.
오를레앙이 어딘지 잘 모르겠지만 어감상 필시 다른 나라의 어딘가, 정확히는 유럽 계열의 어딘가일 것 같다고 생각을 하며 소년은 나름대로 출진지를 추측했다. 오를래앙이라는 단어를 여러번 소리없이 중얼거리면서 프랑스 근방인걸까? 그렇게 추측만 할 뿐. 결국 소년은 나중에 핸드폰으로 찾아보기로 마음 먹었다.
직후에 나오는 타향살이에 익숙한 외국인이라는 말에 소년은 여성이 외국에서 왔다는 것을 제대로 실감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외국인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괜히 신기하다고 생각하며 소년은 괜히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땅에 의외로 꽤 있구나 생각하며 나중에 SNS에 잡담거리로 올려봐야겠다고 속으로 소년은 생각했다.
"그렇게 따지면 저도 연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니까 쌤쌤이에요. 아와나미 온천이라고 해서 명물이라고 불리는 온천이 있는데 거기 주인이 고모와 고모부거든요. 그래서 방학 동안에 일이나 도와주려고 내려온거고요. 그러니까 피차 마찬가지."
어느 쪽이라도 별 상관은 없다는 듯이 소년은 태연하게 대답하며 빙수를 마저 먹으며 텅 빈 종이컵을 근처에 있는 쓰레기통에 가볍게 던졌다. 이후 무엇을 하면 좋을지를 고민하던 소년은 저 편에 보이는 금붕어 잡기 코너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럼 저거 해볼래요? 금붕어 잡는 거. 물론 전 가지고 가도 키울 수 없으니까 다시 안에다가 놓아줘야겠지만요."
"아... 마냥 지역명만 놓고 말하자니 헷갈리실 수도 있지만, 모국인 프랑스에서 나고 자랐으니 혼혈이란 질문 역시 맞는 셈이죠. 혹시 아나요? 하프가 아니라 쿼터일지도..."
본인이 혼혈이라 한들, 아니면 순전히 외국인 그 자체라 한들 신경쓰일 이유는 없었다. 물론 조금은 의외라는 시선으로 보일 수야 있겠지만... 그리고 그녀가 예외인건 아닌만큼 본래 관광지라 함은 이런저런 사람들이 몰려들게 되어있고, 소문을 듣고 오는게 같은국적의 인물들만은 아닐테니까. 물론 그녀 역시 그런 소문을 듣고 온것이냐면... 그건 좀 거리가 멀었다. 애초에 정말 관광만 하려는 목적이었다면 적어도 그녀는 주변 인물들, 환경에 개의치 않았을테니까. 그렇게 생각해보면 그녀는 스스로가 이곳에 있되 어딘가에 소속되진 않았음을 다시금 짚어낼 수 있었다.
아무렴 어떨까, 모처럼의 좋은 풍경을 그저 멀리서 지켜보며 사진에 담는 것보다야 스스로가 그 사진 속 인물인양 직접 즐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흘러가듯 사는 삶인데 잠깐 물길을 잘못 든다 한들 나쁠건 없었다. 이러나저러나 결국 그 종착지는 바다일테니까,
"그렇군요... 보통은 방학이라 하면 놀기 바쁠테지만 간단한 용돈벌이를 한다던가 부모님, 친척분들의 일을 돕는 학생들도 있는 법이니까요. ...꽤 성실한 분이네요."
빙수를 다 먹고난 뒤의 컵을 쓰레기통에 가볍게 던져넣었던 그의 모습은 그런 일들에 딱히 개의치 않는다는듯, 어찌보면 태연한 모습까지 비춰보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 익숙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크게 신경쓰지 않는 걸지도 모를 일이다.
"아, 그거라면 본적은 자주 있었네요. 직접 해본적은 없지만..."
아무래도 축제라면 빠질수 없는 가장 일상적인 풍경 중 하나일까? 금붕어 잡기쪽을 손으로 가리키는 그의 모습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곤 잘그락거리던 얼음 하나를 입속으로 가져갔다. 입안에서 굴러가며 녹던 것이 얼마 안가 잘게 바스라지는건 여전히 고쳐지지 않는 버릇 중 하나였다.
모국인 프랑스라는 말에 소년은 감탄하며 두 눈을 절로 반짝였다. 프랑스엔 멋진 것이 많다고 하던데 정말일까. 한번 꼭 가보고 싶다는 희망을 품는 소년의 눈동자의 빛은 도저히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가장 유명한 에펠탑부터 시작해서 넓은 들판, 거기다가 성에다가 개선문까지. 정말로 다양한 풍경을 상상 속에서 그려내며 소년은 여성에게 이야기했다.
"먼데서 오셨네요. 오늘은 이곳 학원제를 즐길 시간이니까 다음에 기회가 되어서 또 만나면 그땐 오를레앙이 어떤 곳인지 들려줄 수 있어요? 대신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전 치바 이야기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아무튼 성실한 건 아니에요. 사실 많이 좋아 일을 도우러 온거지. 그냥 여기에 놀러온거나 마찬가지기도 하고 사실은... 지옥훈련을 빼려고 온 거기도 한 거라서. 아. 수영부 출신이거든요."
괜히 두 팔로 수영하는 제스처를 취하며 소년은 괜히 얄밉게 웃어보였다. 지금쯤 지옥훈련이 마무리가 되고 쉬어가는 시간일까? 나중에 돌아가면 정말 같은 동아리 아이들에게 한소리 들을 거라고 생각하며 소년은 우선 금붕어잡기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다양한 색과 크기의 금붕어들은 커다란 통 안에서 유유자적 헤엄치고 있었고 막이 끊어진 작은 수채를 들고 있는 어린아이는 울상을 지으며 통 속 금붕어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갑을 꺼낸 소년은 여성을 바라보며 우선 자기 것을 계산했다.
"한번 해볼래요? 이건 제가 계산해줄 수 있는데."
그리 비싸지 않았기에 직접 해보고 싶으면 얼마든지 이야기를 하라고 하며 소년은 막 제공된 작은 수채를 들고 금붕어르 가만히 바라봤다. 조심스럽게 물 속에 집어넣은 소년은 손을 빠르게 올려서 금붕어를 잡아보려고 했다. 물론 직접 가져가서 키울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만약 잡았으면 다시 물 속에 넣어서 풀어줬을 것이다.
그정도로 눈빛을 밝힐만한 발언이었을까? 아무래도 타국으로 하여금 문화의 도시라던가 로망 가득한 건축물들이 여럿 세워진 나라라고 여겨지는 것도 무리는 아닐 거라 생각하지만, 더욱이 파리를 예로 들며 프랑스에 대한 오묘한 동경심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간혹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적도 있었기에 조금이라도 문화활동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그런 반응을 보일만하다는 생각에 가볍게 흩어지는 웃음을 보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루하다 생각하지만 않으신다면야 얼마든지 이야기 해드릴 수 있죠. 치바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면 그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을 것 같네요..."
다만 스스로 성실한건 아니며 마냥 일을 돕는것보단 일종의 도피 비스무리한 이유로도 오게 되었다는 이야기엔 역시 그럴 나잇대의 당연스러운 행동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그녀도 자신의 상황에 개의치 않고 흘러가듯 이곳으로 온 것 또한 사실이었으니... 어찌보면 그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도 그럴게 자신 역시 그럴 나잇대였으니까,
"그건 좀 부럽네요. 전 다른 건 몰라도 수영은 영 아니어서... 그나저나 다른 친구분들은 잔뜩 약올라있겠네요? 이렇게 유유자적 즐기고 있다는걸 생각하면..."
얄밉게 느껴질만한 웃음과 제스처, 단순히 하기 싫어서 빠져나온 것이든, 그만한 실력이 있기에 좀 빼먹는다 한들 나쁠건 없든 누군가가 본다면 상당히 약오를만도 했다.
느릿한 걸음으로 걸어도 실상 그렇게까지 멀지 않았던 그곳엔 여느때처럼 울상인 아이도, 어떻게 해서든 한마리라도 낚아보겠다는듯 열의를 불태우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 풍경이 미술관 한켠에 놓여진 그림인 것만 같다는 먼 감각이었다가도 현실로서 다시 끄집어내진 건 아마 그가 다시 말을 걸었을 때일까?
"음... 한번쯤이야 부탁받아도 좋지만, 그 뒤엔 제가 제대로 계산할 거니까요?"
수채가 딱히 비싼 것도 아니거니와 즐기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살수 있을만큼 별것 아니었지만 그녀는 그런 사소한 부분에서도 누군가에게 빚을 지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곤 해도 그가 무안해하지 않도록 권유한 정도는 받아들이는 것 또한 중요했기에 그렇게 말하면서 생긋 웃어보였을까?
몇번 해본적 있는듯 능숙한 그의 손짓에 금붕어 한마리가 바로 수면위에 올라와 파닥였고, 키울수 없으니 다시 풀어놓는다는 그의 말답게 잠깐 물밖 구경을 했던 금붕어는 한층 더 깊이 내려앉다 다시 주변을 헤엄치기 시작했다.
"..."
그가 금붕어를 낚아올렸을적엔 조용히 박수까지 쳐보이며 미소짓던 것과는 다르게 막상 그녀의 차례가 되자 고요함만 퍼져나갔다. 어떤 사람에겐 무표정, 어떤 사람에겐 한없이 진지한 표정, 또다른 사람에겐 수채를 잡고 졸고 있는듯한 표정으로 보일만한 상황에서 그 느릿한 움직임에 순순히 잡혀줄 금붕어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
"돌아가면 무슨 소리를 들을지 예상조차 안 가네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잔뜩 즐기다가 돌아가려고요."
방학이 끝나기 전엔 돌아가야 하지만 아직 그 시기가 되려면 조금 더 시간이 남아있었다. 그 전까지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정말로 많은 것을 즐기다가 돌아갈 생각이었고 지금 즐기는 축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기까지 왔는데 이 축제를 즐기지 못하면 그것만큼 손해인 것이 또 뭐가 있을까?
자신이 제대로 계산하겠다는 여성의 말에 소년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가 그렇게 하겠다는데 괜히 스스로 더 말을 붙일 필요는 없었다. 그 이상 뭔가를 더 말하면 그것은 강요였으니까. 그저 권하는 것으로 끝을 내며 소년은 금붕어잡기에 집중했고 한 마리를 낚아올리는데 성공했다. 파닥거리던 금붕어는 물 속에 조심스럽게 집어넣자 다시 빠르게 빠져나가듯이 물 속을 수영하며 거리를 두었다. 이어 소년은 바로 옆 금붕어를 잡으려고 했지만 수채가 끊어졌고 자연스럽게 도전이 끝이 났다.
이제 여성의 차례였기에 소년은 자리를 비키며 여성이 하는 모습을 바라봤다. 고요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그 모습을 소년 역시 조용히 침묵을 지키며 바라봤다. 허나 하나도 잡지 못하고 끊어진 수채를 바라보며 소년은 무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눈길을 살며시 옆으로 굴렸다. 허나 곧 시선을 원래대로 돌리며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익숙하지 않으면 잡기 힘들어요. 저도 방금 전에 한마리밖에 못 잡았잖아요? 한번 더 도전해볼래요?"
쭉 여기에 앉아서 금붕어잡기만 하면 곤란하겠지만 한번 더 도전을 기다리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했다. 어차피 시간은 많았고 즐길거리도 많았다.
"그러고 보니 이름을 못 들었네요. 전 아사기리 유키. 열 일곱살. 이름 어떻게 되세요?"
어차피 잔소리를 들을 거라면 즐길만큼 즐기고 돌아가겠다는 그의 말도 이해가 갔기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왕이면 후회가 없는쪽이 나중에 혼난다 한들 미련이 남지 않아 더 깔끔하니까, 그리고 모처럼 놀수 있는 여건이 주어졌는데 재미를 느끼지 않는다는 것 또한 그 놀잇거리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물론 축제 뿐만이 아닌 평범한 일상에서도 반복되지 않을까? 그에 대해선 길게는 생각하지 않았고, 그리 생각 한들 금방 갈곳을 잃고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떠올리지 못하는건 그녀의 흔한 행동이었다. 그래도 여행자로써 본적없는 길을 잃는건 지극히 평범한 일이니까, 나쁠건 없지 않을까?
"어차피 혼날 거라면 그 이상의 추억을 쌓고 가면 되는 거니까요..."
딱히 상관없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왠지모르게 그런 상황이 이해가 갔으며, 어떤 의미에선 정감이 가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쪽이라 한들 마냥 먼 감각처럼 느껴졌기에 그런 모습을 감상하듯 바라보는 그녀 또한 있었다는건 부정할 수 없었다.
"아마 키울 거라는 생각보단 그냥 해보고 싶어서 도전한거라 그런지 금붕어들도 그런 제 생각에 맞춰서 같이 장난쳐준 모양이네요. 그래도... 하다보니 재밌기도 하고...?"
한번 물기를 머금은 수채는 약하기 짝이없기에 그의 것이나 그녀의 것이나 금방 끊어져버렸다 한들 딱히 침울해질 일도 없었다. 굳이 있다 해도 그곳에서 헤엄치고 있는 금붕어들이 안쓰럽다는 감정 정도였겠지만, 그것 또한 오래가진 못해서 수면이 휘저어질 때마다 도망치듯 달아나버리고 말았다.
"나츠야키 쥬히... 지만 그냥 쥬히라고 불러주셔도 괜찮아요. 생소하다보니 금방 잊어버리실 수도 있지만 그런건 신경쓰지 않으니까요~ 그래도... 같은 나잇대의 사람을 이런 축제분위기에서 만나는건 조금 의외였을지도 모르겠네요? 음... 학원제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가...?"
하나 더 집어낸 수채도 보란듯이 튀어오른 금붕어의 파닥임으로 끊어져버렸지만 그걸로 연신 휘저어지기만 하는 금붕어들의 화가 조금이나마 풀릴수 있다면 그녀는 그걸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했다. 오히려 개운하단 기분까지 들었기에 그를 향해 지어보이는 웃음도 방금 전보다는 한겹정도 더 포근해졌다는 느낌이 전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나츠야키 쥬히. 보통이라면 나츠야키 양 혹은 나츠야키 씨라고 불렀겠지만 그렇게 불러도 된다고 하니 쥬히라고 부를게요. 같은 나잇대라고 했으니 경어는 필요없을까요? 그리고 학원제니까 아무래도 학생들이 많지 않겠어요? 역시?"
물론 같은 나잇대지, 같은 나이라고 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비슷한 나이임에는 분명해보였다. 그렇다면 조금 말을 편하게 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을 하며 소년은 여성에게 그렇게 물었다. 만약 허락했다면 조금 더 말을 편하게 내렸을 것이고 허락하지 않았다면 경어를 그대로 유지했을 것이다.
나츠야키 쥬히. 괜히 한자로 어떻게 될 지 생각을 하며 소년은 여러 한자를 떠올렸다. 나츠야키는 조합이 되지만 쥬히는 조금 애매하게 소년에게 전해졌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십공주라는 의미의 쥬희지만 여성이 프랑스에서 왔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어쩌면 한자가 아닐지도 모를 일이었다. 사실 이름의 한자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기에 소년은 굳이 한자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잡진 못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즐긴 모양이네요. 그러면 된 거 아니겠어요? 지금 표정 완전히 만족한 표정이거든요."
물론 자신도 많이 잡진 못했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즐겼다고 생각하며 소년은 다른 곳으로 가볼까 고민했다. 이대로 조금 주변을 둘러보면서 다른 게임거리가 있으면 게임을 해도 좋을테고 구경거리가 있으면 구경을 해도 좋을 것이다. 주변을 잠시 둘러보니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고 소년은 그 끝으로 시선을 옮겼다.
"저 편에서 뭔가 밴드 공연 같은 거라도 하는 모양이네요. 가볼래요? 아니면 저기에 있는 다트 게임도 좋을 것 같은데."
이러나저러나 학원제라면 그 주체는 학생들일테니, 자주 마주치는 것 역시 학생인건 당연지사. 그녀는 바로 납득했다는듯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잠깐 생각할 틈을 가지고선 입을 열었다.
"이름으로 부르는게 딱히 불편하지 않다면... 경어라던가 존칭이라던가는 그리 큰 의미가 없으니까요."
일단 말은 그렇게 했고 이름으로 불러도 상관은 없다곤 하지만 그렇게 부를지, 쉽게 말을 놓을지에 대해선 그의 선택에 맡길 뿐이었다. 저마다의 취향이 있듯 대화에서도 고유의 어법이 있는 경우도 제법 많으니까, 어느쪽이건 그녀는 그것에 맞추어 말을 바꾸어나가면 되는 것이다.
물론 그의 이름도 유키라는 배열만 놓고 보면 다소 중성적인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했지만, 어찌보면 그렇기에 그에게 더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는 금방 물음표가 띄워졌지만, 그녀가 그걸 고집스럽게 캐물을 일도 없었기에 뜬구름 잡듯 피어오른 궁금증 역시 바로 흩어지는건 당연했다.
"그런가... 요?"
만족한 표정이라는 말엔 천천히 고개가 기울었지만 스스로의 표정을 볼수는 없었기에 그런가? 하고 수긍할 뿐이었다. 오히려 좋은 의미로 보였다면 다행일지도 모르고,
와삭거리며 얼음이 입안에서 조각나던 것도 더이상 들리지 않자 그때서야 그녀는 텅빈 컵 안을 바라보고선 가방 안에 조심스럽게 집어넣었다. 자연스레 흘러가듯 인파를 따라간 곳에는 으레 있을 법한 밴드 공연과 한켠에 자리잡힌 다트게임이 눈에 띄었다.
어느쪽이건 흥미가 생기기도 했고, 보통은 흘러가는대로 구경하는 버릇이 있다보니 아무데나 돌아다닐법하지만, 지금같은 경우엔 역시 약간의 고민과 결정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다만 그렇게까지 우유부단한 성격은 아니었기에 버릇처럼 아랫입술을 매만지던 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 한곳을 가리켰다.
.dice 1 2. = 2 1. 밴드 2. 다트
"일단... 저기부터?"
먼저 한곳을 보다가 시간이나면 다른곳도 구경해보면 되는 거고, 그게 아니더라도 나중에 즐기러 가면 그만이었다. 어쩌면 한곳에서 노느라 다른곳을 잊어버릴지도 모르고,
경어를 살며시 풀며 편하게 말을 하긴 하나 약간의 어색함이 묻어나오는 것은 아직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방금 전까지 경어를 쓰던 이였으니까. 일단 자신이 먼저 조금 편하게 말을 내리고 낮춰보지면 여성이 자신에게 말을 편하게 할지는 알 수 없었다. 익숙해지면 괜찮을거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소년은 여성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다. 다트가 있는 장소였다.
"그러자. 다트라고 하면 역시 내기겠네. 어때? 한번 내기 해볼래?"
얼핏 보니 돈을 내고 계산한 후에 다트를 휙휙 앞으로 던지는 게임임은 분명해보였다. 그렇다면 점수가 있을테고 점수로 가볍게 내기를 하는 것도 재미 중 하나일거라 생각하며 소년은 여성에게 그렇게 제안하며 우선 다트장으로 향했다.
밴드 공연이 있다고는 해도 그 공연을 보지 않고 게임을 즐기는 사람 역시 적은 편은 아니었다. 바람을 휙휙 가르며 날아가는 다트는 정말로 날렵하게 소년의 눈에 비쳤다. 점수에 따라 인형이나 음료수나 기타 등등의 상품이 있는 것으로 보아 잘하면 고모나 고모부에게 줄 선물을 얻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소년은 우선 앞장서서 자신의 몫을 계산했다. 여성은 다음에는 자신의 것은 자신이 계산하겠다고 했으니 굳이 소년은 지갑을 더 열지 않았다.
"그렇다면 가볍게 나부터!"
앞에 달려있는 표적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소년은 나름대로 거리를 잰 후에 있는 힘껏 다트를 휙휙 던졌다. 바람을 가르는 다트들은 빠르게 앞으로 날아갔으나 그것이 맞을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많이 맞았으면 좋겠는데. 상품도 하나 정도는 타고 싶거든."
다 던진 후 소년은 결과를 확인했다. 만약 어느 정도 맞췄으면 바로 상품으로 커다란 곰인형 하나를 타갔을 것이다.
당황했다는 표정이나 아쉬움의 한숨이 보이자 그녀는 고민하듯 아랫입술을 매만지다가 말을 이어나갔다.
"가끔 그런 경우도 있고 그러니깐... 평소에 잘하던 게임에서도 실수하는 일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러고나선 살며시 웃어보였을까? 물론 그녀 역시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은건 마찬가지였다. 생각 외로 들어맞지 않은건 그저 운일지, 그때와는 다른 감이었을진 몰라도 결과에 개의치않는건 방금 전하고 다를게 없었다. 맞추고 맞추지 않는 것보단 게임을 즐기는 것으로 충분하니까,
"괜찮아. 이정도론 실망이라던가 하지 않으니까, 약간은 아쉬울 수도 있지만... 가끔은 이런 때가 있어야 오히려 승부욕이 생긴다고도 하고..."
말은 그렇게 해도 정작 그 말을 하는 당사자의 표정이 여유롭다 못해 느긋했기에 승부욕이라곤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녀 역시 한번 더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확실했다. 무엇보다 기분이 좋지 않은데 웃는 일은 좀처럼 없을테니,
"그정도라면야 얼마든지... 딱히 내기가 아니어도 말야."
그래도 무언가 하나정돈 들고 가고 싶었는지 다시금 도전하는 그를 자세히 지켜보던 그녀는 방금전과는 다른 점수가 나오자 금붕어때도 그랬던 것처럼 조용히 손뼉을 마주치며 웃어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네 개를 맞추고 상품을 탈 순 없었다. 결국 이번에도 아무 것도 탈 수 없었던 것에 아쉬움을 느꼈지만 그래도 옆에서 손뼉을 마주치는 소리에 소년은 그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애초에 꼭 뭔가를 타가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애초에 내기를 그렇게 진지하게 한 것도 아니잖아? 이 정도면 충분해."
음료수 하나, 혹은 먹을 거 하나. 딱 그 정도의 규모면 충분했다. 정말로 큰 것을 바란다면 이런 다트가 아니라 다른 것으로 내기를 했을테니까. 근처를 둘러보다 저 편에 보이는 슬러시를 바라보며 소년은 오렌지 맛 슬러시로 충분하다고 하며 괜히 손을 탁탁 털었다.
"승부욕이라고 한 것도 있고 한 번 더 할 거야?"
물론 자신은 방금 전에 한 번 더 던졌으니 다시 던질 마음은 없었다. 여기서 욕심이 난다고 더 던지고 돈을 내다보면 어느순간 지갑이 텅텅 비어있을테니 아쉬울 때 끝내는 것이 좋겠다고 소년은 생각했다. 물론 상품이 아쉽긴 했는지 소년의 시선은 잠시 저 상품 쪽으로 향했다. 허나 어떻게든 시선을 떼어내며 고개를 빠르게 저은 소년은 두 손으로 제 뺨을 톡톡 친 후에 팔을 내렸다.
"만약 한다면 기다릴게! 끝난 후에 공연이나 보러 가자. 물론 어느 정도 진행되었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실력인진 보고 싶거든."
특별한 것은 없었다. 그저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이것저것 바라보면서 즐기는 것이 학원제가 아닐까. 소년은 그렇게 생각했기에 입가에 지어진 미소가 끊어질 징조는 보이지 않았다.
/놀려고 상황극을 하는 곳에서 문법까지 너무 신경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그냥 읽을 수 있는 정도면 된거지! 아무튼 재밌다고 하니 다행이야! 일단 슬슬 난 자러가야 할 것 같아서 킵을 요청할게! 내일도 나가야 한다고 하니까 이쯤에서 끊는 것이 쥬히주에게도 좋을 것 같으니까. 그럼 먼저 가볼게! 잘 자! 쥬히주! 다른 이들도 좋은 밤 보내!
기준이 생각외로 높았던 걸까? 넷정도 맞춘거로는 어림없었나보다. 그녀 역시 조금 아쉽다는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나름 만족한듯한 모습이 보였기에 그걸로 괜찮으려나 하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어졌다. 어디까지나 가벼운 내기니 적당히 즐기듯 노는게 가장 좋으니까,
"확실히 이런 때엔 슬러시 같은 것도 제격이긴 하지... 언제 먹어도 좋긴 하지만, 한창 열이 오른 축제에서 한입 먹는것만한 쾌감도 없거든."
물론 그런 축제에서 그녀 역시 한바탕 뒹굴었던 것은 아니지만... 따지고 보면 아와나미에서 축제같은걸 즐겼던 것도 얼마 되지 않았던 터라 어떤 부스가 트렌드인지조차 쉽게 파악하지 못했다. 사람의 본능 자체가 제 익숙한 것만 따르게되곤 하니까,
"...응. 한번쯤이야 뭐..."
가방끈을 매만지고 있던 그녀는 방금 전 본인이 꺼냈던 승부욕이라는 말이 돌아오자 살짝 웃어보이고선 다시금 다트쪽에 눈길을 주었다. 물론 자기 입에서 나온 말이지만 승부라던가 끝장을 보겠다던가는 그녀와는 꽤나 멀리 떨어진 단어였다. 당장 다트핀을 잡은 손에도 딱히 힘이 실려있지 않은데 오죽할까, 나름대로는 신중하게 하는 행동이라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엔 그저 솜털 위를 뒹구는 것과 별다를게 없는 느긋함이었다.
"그래. 그러도록 하자. 공연도 재밌어보였던거 같으니까..."
그래도 모처럼 기다리겠다고 했으니 한번쯤 다시 해봐도 손해볼건 없었다. 시간이야 많았고, 잠깐이었지만 시선이 상품쪽으로 향해있던 모습을 본 이상 간단히 접고 들어가면 스스로도 미련이 남을성 싶었으니... 아무래도 좋을 일이고 딱히 연고도 없는 사람의 유감스러운 시선일진 모르겠지만, 가끔은 자기이익과는 별개로 움직이는 때가 있는 법이란걸 그녀 역시 알고 있었다. 한번 더 시도해보고, 기회가 더 있다면 그만큼은 힘내보고, 그래도 아니라면 그건 뭘 해도 아닌 것이다. 그녀의 생각은 그리 깊지 않았기에 무엇 하나 잡아쥐는 일이 없어 금방 흘러가 잊혀져버리곤 했다. 그래도 그나마 여유로운 마음가짐만큼 약한 물살이었기 때문에 쉽게 떠내려가진 않았으려나?
한번 더 하겠다는 여성의 말에 소년은 얌전히 다트를 다 던지는 것을 기다렸다. 한번쯤이야라고 하는 말은 승부욕이라는 단어와는 관계없이 느긋해보였지만 적어도 소년이 본 여성은 조금 느긋한 성격이었다. 마치 세상 그 모든 것이 빠르고 바쁘게 바뀌어도 여성은 그런 흐름과는 상관없이 유유자적하게 앞으로 나아갈 것 같은 이미지였다. 그렇기에 지금 보이는 모습 또한 소년이 파악하는 여성의 모습과 큰 차이가 없었다.
"권해보길 잘했는걸? 나도 혼자서 축제를 못 즐기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이런건 누군가와 같이 뭔가를 하는게 더 즐겁거든. 괜히 피하면 어쩌나하고 걱정을 하다가 나중에 말이라도 걸어볼걸 그랬어 하고 후회하는 것도 싫거든."
말을 걸었기에 지금 이 순간을 맞이할 수 있었고 이것이 좋은 결과가 되면 좋은 거고 유감스러운 결과가 되면 결국 그 또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이었기에 소년은 태연하게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물론 후회를 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적어도 지금 상태에서는 후회를 할 것 같진 않았다.
"아차. 세 발이네. 그래도 아까전보다는 훨씬 낫잖아?"
오늘은 자신도 그렇고 여성도 그렇고 그리 운이 따라주는 날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아니면 여기의 놀거리들의 난이도가 높았던지.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냐고 생각을 하며 소년은 살며시 몸을 옆으로 틀어 방금 사람들이 모여들던 곳으로 천천히 걸어가며 여성과 발걸음을 맞춰보려 했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하자 이 지역의 학생들로 보이는 이들이 밴드 공연을 하고 있는게 소년의 눈에 들어왔다. 무슨 곡인지 모를 경쾌한 곡을 연주하는 모습이 상당히 신나보인다고 소년은 생각했다. 하긴 학원제인만큼 저들은 열심히 준비를 했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소년은 문뜩 수영부 아이들이 떠올랐다. 지금 그 애들은 뭘하고 있을까. 나중에 사진이라도 보여줘겠다고 생각하며 소년은 휴대폰을 들어 밴드 연주를 하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담았다.
-괜히 피하면 어쩌나하고 걱정을 하다가 나중에 말이라도 걸어볼걸 그랬어 하고 후회하는 것도 싫거든.-
"...그래, 그 말도 맞아. 하든 안하든 어차피 후회할 거라면 그래도 해보고 후회하는게 낫다고들 하니까... 혹시 아니? 의외로 후회하지 않을만한 어떤 일이 생길지도, 신중한건 좋지만 조심스럽게 행동한다고 마냥 좋은 일만 일어나는 건 아니거든..."
그에게 하는 말일지, 아니면 스스로에게 하는 말일지 모를 혼잣말들과 함께 차례차례 던져나가던 다트핀도 마지막 하나가 남았고 번번히 빗나갔다는걸 알아주었는지 마지막것만큼은 같이 꽃혀 보드엔 3개의 핀이 서로 이곳저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 조금 아쉽네."
아무래도 운이 따라주지 못했던 건지 그 희멀건한 표정에서도 잠깐의 아쉬움이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그것조차 옅었기에 다시금 미소가 번졌고 남는건 즐거움 뿐일까? 이번이 아니면 다음을 기약하면 되고, 그 기회가 영 아니라면 추억만이라도 남길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손에 쥘수 있는게 전부는 아니니까, 그녀는 늘 그런식으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일이 많았으니.
"응, 아까보단 나은 결과니까. 이걸로도 만족해."
여전히 미소가 걸려있는 그녀도 몸을 돌려 한창 공연중인 곳을 향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하느작거리는 걸음걸이와 경쾌한 밴드의 음악은 이질적으로 느껴질진 모르겠지만, 그와중에도 느린 박자로나마 리듬을 맞추어가는건 나름 신기한 일일지도 몰랐다.
학원제라고 하면 대개 밴드공연이 메인이라는 생각을 했을까? 기념사진을 남기기도 하고, 즐겁게 따라부르기도 하는건 여기서도 크게 다르진 않구나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그래. 그렇게 하는 걸로......아, 혹시 배고프다던가 하진 않니...?"
딱히 별 의미 없는 한마디가 이어져나왔다. 그 말을 하려던 생각도, 그걸 말한 입도 그리 이상할건 없지만 듣는 사람에겐 조금 뜬금없는 이야기로 와닿겠지.
학원제를 즐기면서 정말 이것저것을 먹었기에 딱히 배가 고프거나 하진 않아 소년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물론 그렇다고 배가 꽉 찬 상태는 아니었으나 고프냐, 고프지 않냐고 묻는다면 소년의 답은 고프지 않다였다. 자신을 걱정해주는 것일까 싶어 소년의 시선이 여성에게 향했다.
"학원제를 즐기면서 이것저것 먹었거든. 만났을 때 빙수도 그렇고 그 전에는 야키소바도 먹었고 아메링고도 먹었고. 아. 생각보다 많이 먹었네. 나."
언제 이렇게 먹었나 싶어 소년은 말을 마치면서 괜히 무안하게 웃으면서 다시 시선을 무대로 향했다. 막 곡 하나가 끝나고 인사를 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괜히 주변에 맞춰 박수치는 모습이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모습에 가까웠다. 물론 그게 여성에게 통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시도를 안하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고 소년은 생각했다.
"아. 그렇다고 슬러쉬 안 받는다는 건 아니야. 그건 내기로 확실하게 받은 거니까."
괜히 장난스럽게, 얄밉게 웃어보이면서 소년은 계속해서 시선을 무대로 고정했다. 이번엔 잔잔하고 여유로운 곡, 마치 마지막 곡인것마냥 아쉬움을 남기는 그런 곡이 무대 쪽에서 들려왔다. 보컬부터 시작해서 베이스, 드럼, 기타. 그렇게 차례대로 바라보며 소년은 입을 열었다.
딱히 중요하진 않은 일상적인 안부였을 뿐인지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이것도 버릇중 하나라면 그렇다고 해야 할까?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꺼내는 말이지만 그래도 그 속에는 나름의 걱정이 담겨있을지도 모르고,
"..."
그래도 착실하게 잘 챙겨먹었던 건지 빙수 이전에도 여럿 먹었던걸 늘어놓다가 괜히 무안해진듯 웃으며 시선을 무대쪽으로 돌리는 그의 모습을 보자 살짝 웃음이 새어나왔다. 때마침 타이밍 좋게 끝난 노래 하나에 박수소리가 퍼져나갔고, 그녀 역시 그 모습들 하나하나씩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걱정 마. 정정당당한 내기였는데 빼거나 하진 않을테니깐..."
그래도 내기는 내기였으니 따낸건 확실하게 받겠다는 장난스러우면서도 얄굿은 웃음에 그녀 역시 반쯤 감긴 눈으로 잠깐 시선을 주고선 다시 무대쪽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느낌이야 조금씩은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아마도 크게 다르진 않을 거야. 사람 사는 세상이란거, 결국엔 다 비슷비슷하거든... 그래도 조금 다른점이 한가지 있다면... 카니발이 중점적이었던거 같네. 딱히 화려하진 않지만, 저마다의 개성을 보여주기엔 좋았던거 같아."
소박하다면 소박했고, 때로는 불협화음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즐겁지 않았던적은 없었다. 오히려 완벽을 추구하기보단 그때의 즐거움에 열중하는 그런 풍경이 그녀에겐 더 인상적으로 와닿았을까?
"그래도... 이런 분위기도 나쁘지 않아. 더욱이 혼자가 아니라면, 이것 또한 내가 17년동안 보내온 시간들 중 어딘가에 남아있는 기억이 되겠지. 넖고 넖은 회랑의 어디에 걸어두었는진 기억하지 못해도, 익숙한 발걸음을 따라가면 금방 볼수 있는 어딘가에..."
자신의 물음에 대답하는 여성의 말에 소년은 귀를 기울이며 집중했다. 크게 다르진 않다는 말에 외국으로 가도 별 차이는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하지만 카니발이 중점적이었다는 말에 다른 점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소년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어느 정도 다르다는 생각은 했지만 카니발이 중점적이었다는 것은 분명한 차이였으니까. 조금 더 축제다운 분위기라는 것일까? 그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소년에게는 조금 아쉬울 뿐이었다.
"카니발이 중점적이라고 하니 괜히 보고 싶은데 내가 프랑스에 갈 때면 학교 축제를 볼 수 없을테니 아쉬워. 이것만큼은 내 태생이 이 나라니까 어쩔 수 없지만 말이야."
장난스럽게 아쉬움을 토해내며 곡에 집중을 하면서도 여성의 말에는 계속 귀를 기울이며 소년은 입을 꾹 다물었다. 지금 곡과 어울리는 뭔가 진지할지도 모르면서도 흐릿한 뭔가를 보이는 듯한 말의 이미지는 뭔가를 그리워하는 듯하면서도 뭔가를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뭘 말하는지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소년이 추측하는 방향이 완전히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말이다.
"그렇지? 나중에 떠올리기 딱 좋은 추억거리 아니겠어? 오히려 기억에 오래 남을걸? 살면서 혼자 있다고 같이 구경 안 하겠냐고 묻는 사람 만나기가 어디 쉽겠어? 내 쪽에서도 외국에서 온 처음 보는 그리고 혼자 있는 이에게 같이 보자고 권해서 같이 보는 경험은 아마 앞으로도 없지 않을까? 사실 외국에서 온 이와 이렇게 구경다니는 것은 처음이거든. 다 체험이고 추억으로 남을거야. 틀림없이. 지금 이 순간만 경험할 수 있는 아주 즐겁고 아련한 추억으로 말이야."
이후에 어쩌다가 비슷한 순간이 있을지라도 지금 이 순간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았다. 그것이 소년의 지론이고 가치관이었다. 지금 이 순간은 오로지 지금만 존재하는 것이기에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 살아가고자 하는 자신의 가치관을 떠올리며 소년은 고개를 완전히 돌려 여성을 바라보았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이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고 하니 다행이야. 나중에 헤어지면 또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또 보게 된다면 그때도 이렇게 같이 놀지 않을래?"
물론 자신이 이곳에 있는 동안 또 만날 수 있을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놀러오긴 했으나 마냥 놀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여성이 어디에 사는지도 모를 뿐더러 여름방학이 끝나면 자신은 치바로 돌아가야만 했으니까. 만약 승낙한다면 소년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라인 화면을 띄우고 여성에게 핸드폰을 내밀었을 것이다. 가볍게 친구 등록을 요청하는 행동이었다. 물론 여성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면 소년은 핸드폰을 내미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카니발은 대개 이른 봄즈음에 하니까. 나도 작년것, 올해것은 사진으로만 보기도 했고... 꼭 학교 행사가 아니라 해도 볼건 많아. 식도락 축제라던지 음악 축제나, 빛 축제라던지... 아, 그건 여기서도 마찬가지던가?"
천천히 손을 꼽아가며 무언가를 떠올리던 그녀는 이곳 역시 크게 다르진 않다는걸 깨닿고선 생글거리는 웃음을 다시 돌려주었다. 잔잔한 곡에 맞추어진 나른한 풍경들이 반쯤은 꿈꾸는 것처럼 흐릿하게 보이다가도 다시 정갈한 빛깔로 차곡차곡 쌓여갔고, 그때마다 조금은 쨍한 느낌에 눈이 찌푸려졌지만 동시에 아늑한 기분이 들었을까? 그런 붕 뜬듯한 느낌 때문에도 자신이 몽유병에 걸렸다거나 하진 않았을까 착각하는 그녀였다.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만,
"...그랬으면 좋겠네. 확실히 처음보는 사람하고 축제에서 같이 논다는건 흔한 경험은 아니지? 그것 하나만 둔다 해도 분명 특별한 기억이나 추억으로 남긴 할거 같아~"
공연의 마무리를 알리는 잔잔한 음색에 따라 눈이 거의 감겨갈즈음, 사색에 잠기던 그녀가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방금 전과는 다른, 확실하게 이쪽을 향해 들려오는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얼마든지... 그때가 언제가 될진 몰라도, 네가 다시 만나길 바란다면 난 어느때던지 그곳에 있을 거야."
한겹 더 포근해진 목소리가 그에게 바로 전해졌다. 어디에 있던지, 최소한 이곳에 있는동안은, 즐길수 있을만큼 즐기고 싶다는 건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더 많은 풍경과 사람을 눈에 담아가고 싶다는건 부정할수 없었다. 익숙한 라인 화면이 띄워진 그의 핸드폰에 아이디를 적어 다시 돌려주고선 그녀 역시 가방을 뒤적여 자신의 핸드폰을 찾았을까?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작은 양이 와플처럼 생긴 고깔모자를 쓰고 있는게 영락없는 아이스크림 같았다.
"...다른 사람하고 라인 하는건 오래간만이네. 라기보다, 여기서 연락을 주고 받는 사람은 가족 말곤 거의 없으니깐."
자신의 화면을 바라보며 잠깐 말을 아끼던 그녀는 느릿하게 눈을 몇번 깜박이고선 다시 시선을 맞추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단순한 우연이라던가 평소처럼 지나가는 하루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네가 보냈던 이 시간이 즐거웠다면 난 그걸로도 행복할거고,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면 다음에 만나기로 한 그때엔 지금보다 더 즐거워지길 바랄 뿐이야. 응, 단지 그것뿐..."
물론 여성의 말은 그런 의미가 아니겠지만 소년은 일부러 장난스럽게 그렇게 대답했다. 한여름의 만남이 계속 이어질지, 아니면 이대로 끝이 날진 알 수 없었다. 그저 학원제에서 우연히 만난 만남으로 시작된 거였으니까. 자신이 살던 곳과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의 추억거리로는 충분했지만 그게 쭈욱 이어질진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적어도 자신은 그랬다.
여성이 자신의 아이디를 적어서 돌려주자 소년은 그 아이디를 등록한 후에 가볍게 인삿말을 보냈다. 이렇게 자신의 아이디를 여성에게 보내며 소년은 주머니 속에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시선을 올리니 여성의 핸드폰에 달려있는 액세서리가 소년의 눈에 들어왔다. 귀엽고 작은 양을 잠시 눈에 담다 자신의 핸드폰을 다시 살며시 꺼내서 바라보니 거기엔 아무 것도 없었다. 나중에 자신도 하나 달아볼까 생각을 하며 소년은 다시 핸드폰을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그래? 그렇다면 심심하면 연락해. 나도 심심하면 연락할테니까. 그리고 당연히 나야 즐겁지. 안 즐거우면 이렇게 같이 있겠어? 반대로 너도 나와 이렇게 있는 시간이 즐거웠으면 좋겠는데. 그래야 다음에 놀거나 할 때도 즐겁지 않겠어? 아. 강요하는 건 아니야. 그냥 그랬으면 좋겠다는거지."
잔잔한 곡이 끝을 맺어가는 것을 들으며 소년은 고개를 무대 쪽으로 돌렸다. 아련한 기타 소리가 천천히 꺼져가듯 사라졌고 곧 커다란 박수소리가 조용한 침묵을 채워나갔다. 소년은 미소지어 자신 역시 손뼉을 짝짝 쳤고 다시 여성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이야기했다.
"그럼 다른 곳도 둘러볼까? 지금도 즐겁지만 이후에도 좀 더 들거웠으면 하거든. 기왕 즐기는 학원제니 말이야."
/사실상 분위기상 막레에 가까워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네. 조금 더 잇고 싶다면 이어도 좋고 이후에 나름대로 재밌게 놀았습니다로 막레를 내도 괜찮아!
"그러려나? 음... 확실히 그렇기도 하겠네. 사람 일이란건 모르는 거니까, 그래도 여기 있는동안 설마 한번이라도 안마주치게 된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신기한 일이지 않을까?"
아무리 아와나미시가 넖다 해도 결국엔 지구의 어딘가, 좁은 세상에서 사람이 한번만 만난다는건 그것 또한 기적이라면 기적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좋든 싫든 그저 그렇든, 한번쯤은 마주칠 법 하니까. 물론 그 어디에도 압박이나 강요같은건 없었다. 있는거라곤 그저 다음을 기약하는 것과 그런 때가 올까 기대하는 것뿐,
가벼운 인삿말이 보내지자 그녀 역시 살짝 웃으며 짧은 한마디와 함께 양 캐릭터 같은 이모티콘을 붙였다.
"그래. 그러는 것도 좋을거 같아... 물론 나도 즐거웠어. 마냥 즐거웠다고만 하긴 좀 그런가? 확실히 새로운 경험이기도 했고... 응, 좋은 의미로 미묘하네. 꼭 학원제여서 즐거웠던 것만은 아니니까, 나중에 만나는 때가 평소같은 일상이라고 해도 재밌는 일은 얼마든지 생길거 같아..."
점점 잦아드는 기타소리가 끝까지 도착하고나면 다시금 박수소리가 퍼져나갔다. 이전보다도 더 크게, 마지막을 장식하는 분위기답게, 그녀 역시 천천히 박수행렬을 따라가다 시선이 이쪽으로 돌려진게 느껴지자 여느때와 같이, 어쩌면 조금은 더 포근한 느낌으로 웃어보였다.
"그래. 아직 즐길건 많으니까... 아, 그전에 슬러시 코너에는 들러야 하지 않을까?"
물론 그녀가 마냥 느긋하고 솜털같기만 한건 아니었기에 장난스러운 눈빛이 알게모르게 그에게 전해지고 있다는건 확실할지도,
/음음... 더 잇는 것도 재밌을거 같지만 다른 상황도 재밌을거 같으니까 이정도로~~ 축제면 더 많은 애들을 보는게 인지상정! 텀이야 좀 길긴했지만 적당적당하니 좋다! 나도 학원제 일상으로 하나 더 빠릿하게 굴려보고 싶긴한데... 내일 저녁에도 사람이 있을지!!! 아무튼 재밌었다~~ 유키윳키주~!! 맛난거 먹고 재밌는 구경 하고 잘 놀다가 빠빠시 했답니다. 하는 걸로! ꉂ (๑¯ਊ¯)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