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트를 받지 않습니다 .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 참여하실 때는 구분이 쉽게 나메 칸을 ~ 한 나로 채워주시기 바랍니다
ex ) 경박한 나 , 용감한 나
- 본 스레에 참가하는 참치는 이야기 속 < 당신 > 의 행동을 지정할 수 있습니다
< 당신 > 은 비학에 문외한 사람으로 진행에 따라 여러 사건에 휘말리게 됩니다 . 참가 참치의 행동 지정은 때때로 이야기의 흐름을 바꿔놓기도 합니다
- 이야기에 참여할 때는 행동 지정과 함께 1 d 100 의 주사위를 던져주십시오 . 주사위 눈의 높음으로 행동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기도 합니다
참가자가 여럿일 때 서로 상충하는 행동 지정이 발생한 경우 주사위 눈이 높은 행동 지정을 따릅니다 . 상충하지 않는 경우 내림차순으로 명령 받은 행동을 처리합니다
- < 당신 > 은 마녀의 제자입니다 . 올해로 열 여섯 살이 되는 당신은 어린 시절 괴한의 손에 양친을 여의었습니다 . 이 때의 충격으로 유년 시절의 기억이 나지 않는 상태입니다
어려서 고아가 된 당신은 여러 친척의 집을 전전하다 열 여섯 번째 생일 날에 운명적으로 마녀 - 판델라 파즈즈 에를퀴니흐와 만나게 됐습니다
- < 판델라 > 는 당신의 후견인이자 스승되는 마녀입니다 . 당신의 외가의 먼 친척으로 쉰 살의 중년 여성입니다 . 머리가 하얗게 세어 실제 연령보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데 본인도 이 사실을 모르지 않아 스스로를 할머니라 칭합니다 . 다리가 편치 않은 탓에 언제나 휠체어에 타 있습니다
이성을 우롱하는 가장 새로운 형태의 피에로 . 갖은 이유로 기적을 모방하는 그들에게 초자연적 현상은 입에 담기는 쉬워도 진정으로 믿기는 어려운 것이다 . 그들 가운데 누구도 자신의 재주에 진실로 신비가 깃들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리라
마술이란 눈속임 . 철저히 계획된 연출이자 기법
세 살배기 아이라도 지녔을 법한 이러한 인식이 마술을 마법의 영역으로부터 떼어놓았다 . 나날이 비대해져 가는 기계 문명에 신비의 입지는 하루가 다르게 좁아지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기적은 실재한다 . 현실과의 교묘한 교섭을 통해 일상의 그늘 속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 공기와 같이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세계를 지탱하는 요소로서 분명 우리들의 곁에 존재하고 있다 . 퇴장을 강요하는 무신경한 벌목에도 가까스로 세를 유지하며 세계를 떠받치고 있다
“ 문명의 발전은 젠가와 다를 바 없어 . 높게 쌓으면 쌓을수록 받치는 힘은 약해지지 . 때문에 나는 신비의 비닉과 확보 . 멸종 위기에 처한 기적의 보호를 위해 암약하고 있어 . 세계의 멸망을 막기 위해 . 이 세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 그렇게 말하면 너무 거창할까 "
현실은 무르다 . 모든 것을 한데 묶어놓는 신비가 있기에 비로소 세계는 성립한다 . 표층 아래 있어야 할 뿌리가 밖으로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세계를 묶는 힘은 약해진다
마법 세계의 유수 遊手 이자 시대에 뒤떨어진 마녀의 표본 . 판델라 파즈즈 에를퀴니흐의 말에 틀림은 없다
" 거창하게 말했지만 걱정하지 마 ! 이래 봬도 편하게 쉽게 일하자는 신조니까 ! 위험한 일에는 절대로 손대지 않아 ! 아마도 ! "
그러나 그것을 포장하는 여린 목소리가 입 밖으로 달려 나오는 모든 말을 대수롭잖게 보이게 했다 . 쉰의 나이가 믿기지 않는 선홍색 눈동자에는 장난기가 가득하여 당신으로 하여금 잘못 장소에 불려 나온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게 한다
때이른 눈이 펑펑 내리는 밤의 벌판에 숫사슴 한 마리가 눈 녹는 땅 위를 조신하게 거닐고 있다 . 밤의 신의 손아귀로 보이는 한 쌍의 거대한 뿔 사이로 상현달을 받치는 모양이 한 폭의 그림 같게도 보였다 . 숫사슴에 서린 위엄은 범상한 짐승보다는 신이나 정령에 가까웠다 . 이 땅의 원주민이 숭배했다는 신의 모습이 저럴까 싶은 광경이었다 . 살을 에는 추위에도 입김 한 번 흘리지 않는 것이 도무지 피 흐르는 산 생명 같지 않았다
밤이 시작되고 새벽이 오기까지 숫사슴은 어떤 생리 활동도 하지 않고 거기에 서 있었다 . 밤과 함께 시작된 눈발이 멈추는 것을 비취 닮은 눈에 새기면서 서 있었다 . 감정 지니지 못한 짐승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게 눈동자 속에 분노를 태우면서 말이다
평범한 가게를 사용하기 힘든 판델라를 배려해 주차된 차량을 향해 커피와 도넛을 가져가는 당신이었다 . 자본주의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며 설탕을 싫어하는 판델라를 위해 베이글과 아메리카노를 구매한 당신 . 아직 어린 당신의 입맛에 맞는 선택인지는 모르겠다 . 당신은 쓴맛을 견디는 것을 어른이라 생각하던가
아니었다면 판델라의 고집을 꺾으려는 시도라도 해봤겠지 . 당신은 주차장에서 판델라가 기다리는 당신의 경차를 찾았다 . 당신의 사랑스런 파란 딱정벌레 말이다 . 아직 미성년자인 당신이기에 면허 따위 갖고 있지 않다 . 그런데 어째서 앞좌석의 오른 문을 여느냐 . 모두 다 저 안에 계시는 마녀 님 덕분이다
스승님의 옆자리에 앉아서 사온 음식을 스승님께 건넸다. 나는 단 것이 좋고, 싫어하는 걸 먹을 때 괜찮다고 의연한 척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오늘은 달지 않은 것을 사와봤다. 스승님이랑 같은 걸 먹는 것도 좋지 않을까란 생각이 25%, (아마도)나 정도면 어른이니 먹을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75% 정도.
컵에 담긴 내 몫의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보았다. 김이 휘휘 올라와서 혓바닥을 갖다대면 곧바로 익어 버릴 것 같다. 기울여 가장자리를 후후 불고 있지만 얼마나 식었을지. 혹시나, 정말 혹시나 이 아메리카노가 써서 못 먹... 는 게 아니라 맛없을 경우를 대비해 입을 대지 않고 한 모금만 입에 흘려 넣었다.
"으엟ㅂ... 앗띃어..."
뜨겁고 쓰다. 아니, 쓴 건 말고. 그냥 뜨거워서 인상을 찌푸린 거다. 뜨거워서 싫을 뿐이야.
스승님을 초롱초롱 쳐다본다. 절대 마법으로 식혀 달라는 게 아니라 대신 마셔 달라는... 아, 반대로 생각한 거다! 절대 대신 마셔달란 게 아니라 마법으로 식혀 달라는 거다. 하지만 이건 그냥 생각이고 스승님은 어떻게든 내가 바라는 걸 제대로 알아차려 주시겠지?
허리 숙여 들어오는 당신으로부터 음료와 간식을 건네받아 휑하게 비어 있는 대시보드 위에 내려놓는 판델라였다 . 판델라는 당신의 질문에 짓궂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 피아노 건반처럼 새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어땠을까 ~ 꼬리를 늘리는 판델라 . 무릎 덮은 담요 위에 팜플렛이 엎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다음 행선지라도 정하던 모양이다
" 역시 차가 있으니 편하네 . 이제까지 어떻게 살았나 모르겠어 . 휠체어로 여기까지 오려면 대체 얼마나 오래 시간이 걸렸을까 ? "
판델라가 혼자 떠들며 도넛 상자에 손을 가져갔다 . 아메리카 대륙을 휠체어로 횡단하는데 얼마나 걸릴까 . 몇 주 - 아니 몇 달로도 부족해 보였다 . 한 해로도 부족할지 모른다 . 하지만 판델라라면 막연하게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 당신이었다 . 저 사람에게는 상식이 통하지 않으니까
" 응 ? 마시기 어렵니 ? "
인상 찌푸리는 당신을 판델라는 놓치지 않았다 . 입에 도넛을 문 채 당신에게 손을 내미는 판델라 . 당신이 판델라에게 컵을 건내자 여사는 뚜껑을 열더니 거기에 당신이 마시다 만 생수를 부었다
받은 걸 모른 척 하기도 뭣하니 당신은 다시 더 옅어진 아메리카노에 재도전한다...아니, 발등에 커피를 흘리기 싫다면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컵이 넘치기 직전이니 말이다. 약간 덜 뜨겁다. 그렇지만 여전히 쓰다. 뜨겁고 쓴 맛에 가려져있던 신 맛도 느껴지는 것 같다. 향만 맡으면 커피향 사탕 같은 맛이 날 것 같은데. 그 향과 맛의 위화감에 당신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컵 안의 수위를 두세 모금 더 줄여보고는 뚜껑을 덮는다. 버리자니 아깝고 계속 먹자니 익숙하지가 않으므로, 아메리카노의 처분을 미래의 자신에게 떠넘기며 조심조심 조수석에 올라탄다.
"오늘 시내 용건은 이걸로 끝입니까?"
커피를 든 채로 스승님에게 묻는다. 제아무리 기름값이 썩어난다고 해도, 직접 운전해서 멀리까지 나오는 것도 꽤 귀찮은 일이니까 겸사겸사 다른 용건도 있을 법 하지 않겠는가.
" 그렇게 되려나 ? 다음 정차는 기름이 떨어질 무렵이겠네 . 어때 - 운전은 익숙해졌니 ? "
그럼에도 아메리카노를 마셔 한 가지 다행인 점이 있다면 지긋지긋한 새 차 냄새를 잠시라도 잊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 커피의 잔향이 가능한 오래 비강 속에 남아주기를 바라며 당신은 판델라에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 판델라의 제의로 생후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 때타지 않은 신차를 운전하기 시작한지 열 두 시간 째 . 최고의 훈련은 실전이라는 말이 사실이었는지 아직 면허도 따지 않은 당신이건만 운전이 제법 능숙해졌다 . 처음 차에 탔던 때가 벌써 아득히 먼 과거처럼 느껴지는 당신이었다 . 눈에 띄게 확 늘어난 주행 거리가 당신의 노고를 말해주고 있었다
" 남은 휴게소는 앞으로 두 개 .. 두 개만 더 지나면 목적지야 . 이야 ~ 제자가 우수해서 할머니는 기뻐 ! "
이런 일로 칭찬 받아 기뻐할 만큼 당신은 칭찬에 목말라 있던가 . 아직 더 운전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당신의 어깨를 무겁게 했다 . 뿐이냐 . 이번 여행은 편도가 아니다 . 왕복이다 . 당신은 이제까지 달린 만큼 더 달려야만 했다
아...그래. 깜박했다. 이건 단순히 시내 드라이브 따위가 아니었다. 잠깐 외면하고 있던 현실을 떠올리니 정신이 번쩍 든다.
"도대체 무슨 일로 거기까지 가는 겁니까?"
이렇게까지 먼 거리를 고생해서 가는데 여태까지 이유도 모르고 왔다. 정신이 없어서 물어보지 못했던 것들을 이제 겨우 물어본다.
"이러다가 혹시 검문에 걸리면....대책은 있으신 거겠죠?"
무슨 대책이냐 하면, 운전면허 없는 사람에게 운전을 시킨다는 거, 법률 위반이잖아? 당신은 스승님을 한 번 보고는 주변을 힐끔힐끔 살핀다. 여태까지는 용케 운이 따라줘서 걸리지 않았다쳐도, 걸리면 끝장나는 거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슬금슬금 올라온다. 저 앞에 보이는 저거 경찰차는 아니겠지.
이제 슬슬 당신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거라 예상했던지 미리 준비한 말을 판델라가 입으로 외웠다 . 무슨 일이냐니 아무 일도 아니야 모처럼이니 너랑 드라이브가 하고 싶었어 정말로 그게 다야 경치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이것저것 하면서 운전도 연습하는 거지 뭐든 경험이란다 경험 . 되도 않는 변명으로 여행의 목적을 감추는 판델라 . 아직 당신에게 알릴 때가 아니라는 걸까 . 아니면 마지막까지 알리지 않으려는 걸까 . 이름 뿐인 사제 관계가 길어지는 데서 당신은 초조함을 느꼈다
" 당연히 있지 ! 나를 뭘로 보는 거니 ? 이제까지 걸리지 않은 게 설마 우연이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 "
우연이 아니었습니까 . 뜨거운 커피 하나 마법으로 식히지 못하는 주제에 저런 일이 가능하다니 . 밸런스가 이상하다 . 그러자 당신의 생각을 꿰기라도 한 것처럼 판델라가 안경을 꺼내 썼다
" 궁금해하는 눈치니까 설명해주자면 - 아까 전 커피를 마법으로 식히지 않았던 것은 거기에 사용되어야 할 마법이 더이상 마법이 아니기 때문이야 . 전에도 말했지 ? 많은 마법이 마술의 범주에 떨어졌다는 이야기
마술이 된 마법 - 그러니까 트릭이 들통난 마법은 우리가 다루지 못하거든 . 이게 어째서냐 - 원시적인 논리로 설명하자면 나만 알던 지름길을 모두가 알게 됐기 때문이랄까 ? 이해가 되니 ? "
모처럼이니 드라이브가 하고 싶었지 않았냐는 말에 당신은 불만스레 미간을 찌푸린다. 아무 일도 아닌 걸로 다녀오는 데 최소 일박 이일은 잡야야 할 것 같은 여행을 잡나요, 하고 눈으로 불평해본다.
"그러니까...마법사가 아닌 사람들에 의해 냉각 기술이 발명되고 널리 보급되었기 때문에, 냉각이 더는 마법이 아니게 되었다...라는 건가요? 그래서 마찬가지의 이유로 우리가 목적지까지 직접 드라이브해서 가고 있는 겁니까? 날으는 양탄자라든가 순간이동 마법 같은 거 쓰지 않고 말이지요?"
세상에 마법은 있지만 낭만은 없구만, 당신은 투덜거린다. 여태까지 검문에 걸리지 않을 수 있었다는 건 다행이지만 말이다. 열두 시간은 넘게 차를 몰아야 닿을 목적지에 뭐가 있을 지 모르겠지만(사실 겁도 나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설마하니 정말로 텐트를 치게 되다니 . 휴게소로부터 두 시간이나 더 달려서 도착한 곳이 황무지였다는 것도 믿기지 않는데 운전대를 놓자 말자 힘 써서 텐트를 치게 되리라고는
납득이 가지 않는 처사에 당신이 마녀를 노려보면 마녀는 저 멀리서 화로를 준비하고 있었다 . 어디서 났는지 모를 장작에 휘발유를 식용유처럼 뿌려댔다 . 판델라의 마법이라면 눈 깜짝할 사이에 텐트를 칠 수 있을 텐데 어째서 당신에게 힘 쓰는 일을 맡기는지 . 너저분하게 형태 갖추지 못한 천막이 당신을 비웃는 듯 했다
차에서 내려 십 몇 분 설명을 들은 게 전부였던 당신이 멀쩡히 그럴 싸하게 텐트를 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 쏟은 노력이 있어 사람 하나 잘 자리는 생겼는데 공교롭게도 텐트를 써야 할 사람은 두 명이다 . 참담한 모양의 텐트 앞에 서 밤의 스산함에 몸을 떠는 당신 . 이것도 저것도 적당주의 스승의 잘못이었지만 스승은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고 멀리서 바라보는 당신에게 손을 흔들어댔다
바보 아냐 . 바보 아닙니까 . 화로 위에 불판을 놓는 스승에게 당신은 불평을 연달아 쏟아내었다
" 콜록 콜록 .. 하 .. 후후 .. 그렇겠지 .. 그럴 거야 . 괜찮아 괜찮아 . 앞으로 배워나가면 되는 거니까 . 됐으니까 이 전위적인 현대 예술의 뒷처리는 내게 맡기고 저기 불 옆에 가서 몸이나 좀 녹이고 있으렴 . 여기 이것도 마시구 "
숨 넘어갈 것 같이 웃던 판델라가 간신히 평정을 되찾고 말했다 . 마귀 할멈 . 아니 마녀였나 . 당신은 판델라의 격려 같지 않은 격려에 만들다 만 텐트를 처량하게 바라봤다 . 다음이 있다면 이것보다는 낫겠지 . 되뇌이면서 발치를 살폈다 . 해가 지는 중이라 광원이 부족하지만 주위를 살필 여유 정도는 있었다 . 주변에 뱀이 기어다닌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 나타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 뿐만 아니라 벌레 우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 스산하다 . 황량하다 . 이 드넓은 황야를 당신과 판델라 둘이서 전세내기라도 한 것 같다
스승의 곁을 지키려는 당신을 판델라는 딱히 제지하지 않았다 . 당신이 보는 앞에서 마법을 피로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거나 한 것도 아니니까
" 좋아 ! 할머니에게 맡기렴 ! "
스스로 걷기는 커녕 혼자 힘으로는 휠체어에서 내려오지도 못하는 판델라였으나 마법의 보조가 있다면 사소한 신체적 장애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 그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일대의 그림자가 개미 떼와 같이 판델라의 다리로 모여들었다 . 원피스 아래 가려 보이지 않는 판델라의 두 다리에 엉겨 붙기 시작하는 그림자 . 판델라는 이렇게 달라 붙은 그림자를 보조 기구로 삼아 자리에서 일어나보였다 . 휘청휘청 불안하지만 한 두 번 해본 것이 아닌지 판델라는 금방 균형을 찾았다 . 어떻게 텐트를 세우려나 했더니 직접 뼈대부터 세우려는 모양이다
" 읏차차 - 눈높이가 갑자기 높아져서 어지럽 ... "
얼마 되지도 않는 키에 멀미를 호소하는 스승을 당신은 잠자코 바라만 봤다 . 판델라가 말을 하다 마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 당신은 판델라가 두 손을 펼쳐 주위를 살필 때가 되서야 따라 이변을 눈치챌 수 있었다
" ... 눈 ? "
석양의 주홍빛이 물러난 하늘로부터 눈송이가 내리기 시작했다 . 당신은 때이른 눈에 현실감이 흐려져 손등으로 눈을 비볐다
" ... 차 안으로 들어가 있으렴 "
환각이 아니라며 당신에게 현실을 일깨워주는 판델라 . 차 문을 가르키는 스승의 모습에서 뭔가가 잘못되었음을 당신은 깨달았다
당신은 판델라를 뒤로 한 채 저 편 도롯가에 주차된 차량을 향해 뛰어갔다 . 차오르는 공포에 저항해 전력을 다해 달렸다 . 문 앞까지 다다라서도 사라지지 않는 공포에 당신은 손을 떨었다 . 숨 가쁘게 문 손잡이에 손을 집어넣는 당신 . 하지만 어째선지 문이 열리지 않았다 . 열쇠 - 열쇠가 어딨더라 . 주머니를 뒤지지만 열쇠는 어디에도 들어 있지 않았다 . 뒤늦게 당신은 판델라에게 열쇠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내고 뒤를 바라봤다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 스승을 찾아 눈을 움직였다
판델라가 사라졌다 . 이 사실을 당신의 뇌가 받아 들이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됐다 . 엉성하게 치다 만 텐트도 얄밉게 웃는 스승도 어디론가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 당신의 앞에 있는 것이라고는 눈 덮인 벌판이 전부였다 . 당황한 당신이 다시 한 번 뒤를 돌아보면 손 닿을 거리에 있던 차까지 사라져 있었다
갑작스런 이변에 당신은 추위도 느끼지 못했다 . 입 밖으로 나오는 입김을 보고난 다음에서야 자신의 추위를 인식할 수 있었다 . 자신이 어떤 마법에 휘말렸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눈과 눈 . 눈 덮인 나무와 시들 때를 놓친 잡초 . 우둥퉁한 언덕이 당신의 눈에 보이는 전부였다 . 눈발이 거세지는 않지만 그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하얗게 질린 머리를 쥐어짜는 당신이었으나 당신의 머릿 속 서재에는 그럴 싸하게 겹치는 이야기가 없었다 . 이렇게 극적인 변화를 불러 일으키는 마법이라면 분명 범상한 것이 아닐텐데 . 이렇게나 짚이는 구석이 없을 수가 있나 . 불행 중 다행으로 두께 있는 외투를 입은 덕분에 당장 추위에 어떻게 될 것 같지는 않았다 . 그렇더라도 체력은 유한하니 신중하게 결정하고 행동해야 할 것이다
어떤 확신도 확증도 갖지 못한 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 언제 어디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당신은 당장에라도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 그냥 이대로 주저 앉고 싶었다 . 이런 당신의 다리를 움직이게 한 원동력은 구조가 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보다 강한 두려움이었다 . 당신은 스승의 적당주의를 모르지 않았다 . 당신의 스승은 당신에게 이상하리 만치 큰 신뢰를 갖고 있었다 . 알아서 잘하겠지 당신을 내버려두는 기질이 있었다 . 너무 잘 보이려 애썼던 건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당신은 최악을 상정해야만 했다 . 스스로 살아 남는 길을 모색해야만 했다
스승이 당신을 찾으러 오기 전에 먼저 그녀를 발견해내야만 했다
여기서 당신은 스승보다 먼저 차를 발견해내게 됐다 . 걸어서 얼마 안 되는 거리에 당신의 비틀이 눈을 맞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트렁크는 열려져 있었다 . 심기 편치 않던 당신이 짐을 꺼내고 다시 닫을 때 건성으로 닫아놓았던 모양이다 . 과거의 당신에게 감사하며 짐을 뒤지기 시작하는 현재의 당신 . 하지만 도움이 될 만한 도구는 찾기가 힘들었는데 이는 판델라가 어디에 쓸 건지도 모를 파티 용품을 뒷칸 가득 쟁여놨기 때문이었다 . 폭죽에 풍선에 별 이상한 분장 도구까지 . 스승의 괴벽을 저주하던 당신은 그래도 어떻게 자신의 몸을 보호할 만한 호신용 도구를 찾을 수 있었다 . 바로 알루미늄 배트였다 . 이 외에도 야구공과 글러브가 보였지만 못 본 걸로 하기로 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할까 . 당신의 가설이 맞다면 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스승과 재회할 수 있을 것이었다 . 하지만 그것은 스승이 제자리를 지켰을 때의 이야기 . 당신을 향해 스승이 움직이고 있다면 모를까 같은 방향으로 그녀가 이동하고 있다면 사태가 복잡해진다 . 악어 입으로 들어가는 스승을 따라 가게 될 수도 있었다 . 그 경우 당신은 당신의 미래를 장담할 수 있을까 . 당신은 신중해야만 했다
수동적인 선택이었지만 장려상 정도는 받을 수 있을 듯한 정답이었다 . 스승부터가 당신에게 차로 가 있으라지 않았나 . 당신은 스승의 지시에 충실히 따르기로 했다 . 야구 방망이로 마법에 대적한다는 어리석은 생각은 일찌감치 버렸다 . 하지만 당신에게는 사소한 문제가 하나 남아 있었는데 여전히 차 안으로 들어갈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 트렁크가 열려 있으니 저기를 통해 운전석으로 들어갈 수 있지 않냐는 의문이 생길 텐데 유감스럽게도 이 신형 뉴 비틀의 트렁크는 엔진 룸으로 쓰이고 있었다 . 대신에 보닛이 비어 있다는 상식을 부수는 설계는 그야말로 판델라의 취향이었다
>>55 아 젠장, 생각해보니 그렇다. 신비로 무장한 마법사들이, 마법을 쓰지 못하는 당신에게 작정하고 덤벼든다면, 그들의 타겟이 저 열쇠 없는 자동차이든지 아니면 당신의 목숨이든지 간에 속절없이 빼앗길 것이었다. 머릿 속 시뮬레이션을 통해 그런 답을 도출한 당신은 스승님을 찾아나서기로 마음먹었다... 가만히 기다리기에도 신경쓰이니까 말이지. 그 전에, 혹시라도 엇갈릴 지 모르니 자신이 지나갔다는 흔적을 남기기로 했다. 근처의 나뭇가지를 꺾어 지나가는 길에 흔적을 남기려 시도해본다. 안 되면 발로 눈과 흙을 파헤쳐서라도.
생각을 바로 잡는 것이 신속한 당신이었다 . 하기사 추위에 벌벌 떨어가면서 언제가 될지 모르는 구조를 기다리는 것 만큼 속 태우는 일도 없겠지 . 애초부터 그런 생각이었기에 한 자리에 가만 있지 않았던 당신이다 . 당신은 짐 밖에 되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야구 방망이를 챙겨 왔던 길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갔다 . 당신이 남긴 발자취를 거꾸로 되짚어 갔다
당신의 스승은 대체 어디에 있을까 . 한 시라도 빨리 그녀와 다시 만나기를 소원하는 당신의 귀에 낯선 소음이 잡혔다 . 실낱 같이 가는 소리는 눈이 내리는 탓에 금방에라도 파묻혀 사라질 것만 같았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는 격언이 당신의 머릿 속을 스쳐지났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 저기에 판델라가 있을 지도 . 당신은 시끄럽게 경종을 울려대는 걱정을 두 번 접어 마음 속 서랍 안에 다소곳이 집어넣었다 . 아는 것이 힘이라는데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 . 꼭 판델라가 아니더라도 여기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있는 단서가 있을 지도 몰랐다 . 스스로를 설득시킨 당신은 귀에 모든 신경을 집중시켰다 . 이 신경 쓰이는 잡음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더듬기 시작했다
엄동설한의 추위도 당신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릴 수는 없었다 . 당신은 금세 수풀 사이로 소리의 궤적을 찾아낼 수 있었다 . 소리의 정체를 확인하기로 결심한 당신은 쏟아져 내리는 눈이 소리를 죽여버리기 전에 다리를 움직였다
새하얀 눈에 어울리지 않는 푸른 수풀을 헤집으며 나무 사이로 난 길을 따라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당신 . 성탄절 선물의 포장지를 벗기는 심정으로 차근차근 전진하다보면 어느새 목적지가 코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 당신은 당신의 귀를 간지럽힌 소리의 정체가 피리 소리였음을 깨달았다 . 누군가 저기 수풀 너머에서 피리를 불고 있었다 . 하지만 연주라 할 만큼 거창한 것은 아니었고 피치 파이프나 호루라기처럼 같은 음을 몇 번이고 짜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 소리의 높이가 일정한 것으로 보아 저 편에 있는 누군가는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가지를 건드리면서 소리가 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염치 없는 일이었을까 . 가능한 조심한다고 한 것인데도 나 여기 있소 광고하듯 소리가 나니 부아가 치민다 . 내가 너무 성급했나 . 괜한 일에다 머리를 디민 건 아닐까 .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두 눈을 질끈 감는 당신 . 하지만 결코 작지 않은 소리에도 수풀 너머의 소리가 잦아드는 기색은 없었다 . 너머로부터 나는 피리 소리는 일관되게 같은 음을 유지하고 있었다
팽팽하게 부푼 호기심을 자신의 안에 가두지 못하고 가지를 걷어 만든 틈 사이로 눈을 가져다대고야 마는 당신 . 당신은 거기서 한 마리의 회색 늑대를 발견할 수 있었다 . 엉망진창으로 상처 입고 쓰러져 움직이지 못하는 한 마리의 늑대를 . 저 늑대는 남자였다 . 회색 늑대의 가죽을 머리부터 뒤집어 쓴 장대한 몸집의 남성이었다 . 전사라는 단어가 형체를 이룬다면 저렇지 않을까 싶은 근육질의 강골 . 곰의 앞발처럼 부푼 양팔의 두께는 당신의 수 배 이상 되어보였다 . 누워 있지 않았다면 하늘처럼 올려다봐야 했을 키는 당신으로 하여금 신화 속 거인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당신은 숨 쉬는 것도 잊고 남자를 바라봤다 . 본래의 목적도 잊고 남자의 모습에 시선을 빼앗겼다 . 조각같은 몸에 난 다섯 개의 메울 수 없는 구멍에 시선을 빼앗겼다 . 벌컥벌컥 하염없이 뿜어져 나오는 붉음에 당신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예상 외의 상황에 당신의 사고가 잠시 멈추었다가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부상자라니, 그럼 이건 구조신호란 말인가? 귀까지 다쳤거나 의식이 혼미한 게 아니라면, 방금 전의 소리로 상대는 분명히 당신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을 것이다. 보지 못한 척하고 돌아가도 괜찮은 걸까? 상대는 누가 봐도 인간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상자를 두고 도망치자니 현대인의 도덕관념이 당신의 양심을 찌른다. 하지만 당신은 의사도 아니고 마법사도 더더욱 아닌, 그냥 거의 비무장 상태의 민간인이다. 마냥 남 걱정만 하기 좋은 상황은 아닌 것이다. 상대를 저 꼴로 만든 자들이 아직 근처에 있다면, 잘못하면 당신도 같이 바람구멍이 나버릴 수도 있다. 아씨, 돌겠네.
당신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자세를 낮추어서 주변을 조금 더 둘러본다. 그러고보니 무력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이 상황에 대해 아는 것도 없다. 무언가 조금이라도 단서가 더 없을까?
남자가 쓰러진 눈밭은 탁 트인 공터로 다른 무언가가 숨어 기회를 노릴 만한 공간적 여유는 일절 존재하지 않았다 . 당신처럼 멀찍이 떨어져 수풀 뒤에서 상황을 가늠한다면 모를까 . 그마저도 거리가 있으니 주의를 기울이면 사전에 공격 전조를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 따라서 당신은 불의의 기습에 대한 걱정을 내려놨다 . 여기에 마법이 섞인다면 이야기는 또 달라지겠지만
다음으로 당신은 남자의 상태에 주목했다 . 피리 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으로 봐선 아직까지 명이 다하지 않은 것은 분명했으나 그것도 시간 문제에 지나지 않았다 . 멀리서 - 전문 지식이 없는 당신이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저 상처는 치명적이었다 . 다섯 개의 구멍은 흔히 말하는 급소에 위치해 있었다 . 연탄 굴뚝처럼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구덩이가 상처의 깊음을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 당신이 보는 앞에서만 한 바가지도 넘게 피를 쏟아낸 남성이었다 . 땅에 흐른 피는 눈이 아니었더라면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을 것이다
남자의 생명은 객관적으로 끝나 있었다 . 저것은 단지 살아 있을 뿐인 시체에 지나지 않았다
눈 위를 엎드려 지나간다는 선택은 어쩌면 잘못 됐던 건지도 모르겠다 . 신중함이 지나쳤을 지도 모르겠다 . 갓 내린 눈의 차가운 감촉을 전신에 새기며 해봤자 수 미터의 거리를 엉금엉금 기어가는 당신 .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이 광경을 본다면 당신을 미치광이 취급할 지도 모르겠다 . 하지만 이는 당신의 합리적인 사고를 통해 완성된 행동으로 이성을 잃었다는 말과는 무엇보다도 거리가 멀었다 . 무슨 일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는 현장에서 몸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행동에 과한 게 어딨겠는가 . 지나침이 어딨겠는가 . 생물로서 자기보존의 본능에 충실한 게 뭐가 부끄럽다는 거냐 . 그렇게 당신은 누구와도 싸우지 않고 - 누구에게도 습격받지 않고 남자의 곁에 다다를 수 있었다 . 괜한 고생을 한 것이 아니다 . 하여 마땅한 고생을 한 것이다 . 스스로를 위해 . 자신을 위해 . 나를 위해서
그리고 다시 현실을 맞닥뜨린다 . 멀리서 봤을 때도 컸지만 가까이서 보니 원근감이 정말로 열심히 일을 해줬다 싶어지는 덩치였다 . 스쳐지나면서 가죽 쓴 모습만 봤다면 정말 늑대로 오해했을 것이다 . 죽음에 이르는 부상을 입어 쇠약해진 지금도 조금도 쇠하지 않은 위압감은 심약한 사람이라면 선 자리에서 기절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 대체 키가 몇이나 되는 걸까 . 못 해도 백 인치는 되는 거 같은데
옷이 젖기 전에 눈을 털고 자리서 일어난 당신은 그 때가 되서야 처음으로 남자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 늑대 머리를 깊게 눌러 써 전체적인 인상은 파악하기가 힘들었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선이 얇은 미남상이었다 . 검은 염료로 양 뺨에 세 개의 선을 그린 남자는 혈액의 손실로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 눈의 초점은 어긋나 몽롱하게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 파리한 입술로 피리를 문 채 타성적으로 숨을 뱉어낼 뿐인 남자 . 당신의 말대로 이 남자는 살아 있는 시체에 지나지 않았다
당신은 상처의 위치를 잠시 살펴보다 이내 고개를 돌려버린다. 뭔지 알 것도 같은데 좀처럼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당신의 시선이 남자가 물고 있는 피리에 향한다. 피리 쪽으로 조금 손을 뻗다가 제풀에 화들짝 놀라 손을 도로 빼버린다. 남자를 편히 쉬게 해주고픈 전혀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저게 뭔 줄 알고 함부로 손을 댈까. 마법에 관해서 지식도 미천하고 별 재주도 없는 당신이 함부로 손을 대었다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보니, 손 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당신은 당신이 왔던 방향을 돌아본다. 스승님이라면 뭔가 아시지 않을까 싶은데, 도대체 지금 어디에 계신 건지 모르겠다.
저기에 무슨 술수가 펼쳐져 있을지 알고 감히 손을 대는가 . 하나 뿐인 목숨을 걸고 도박판에 오를 만큼 당신은 미치지 않았다 . 단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것을 잃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당신은 모르지 않는다 . 당신에게는 확신이 필요했다 . 확증과 확언이 필요했다 . 보험도 보증도 없이 무턱대고 지르는 것은 당신의 캐릭터가 아니었다 . 당신은 눈 앞의 남자를 딱하게 여기면서도 쉽사리 피리에 손 뻗지 못하고 뒤를 바라보았다
겹겹이 이어지는 초목의 저편에서 타이밍 좋게 스승이 나타나주기를 당신은 기도했다 . 나타나 당신에게 믿음을 주기를 기원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이는 결국 당신의 이야기였다 . 당신을 주연으로 한 당신의 이야기였다
당신은 피리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 샛길로 샌 것도 모잘라 남의 물건에 손을 대다니 . 해서는 안 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저 남자가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은 분명 당신이 아니었다 . 함부로 역할을 가로챘다 공연히 원한을 사고 싶지는 않았다 . 당신은 미안한 마음을 담아 남자에게 목례를 했다 . 남자를 내버려두고 다시 당신의 길로 돌아갔다
피리 소리를 뒤로 한 채 당신의 길로 돌아왔다
득되지 않는 일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소요했다 . 스승이 당신을 찾아 동분서주 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만에 하나라는 것이 있었다 . 당신을 찾으러 오던 판델라와 길이 엇갈리기라도 했다면 ...
오는 길에 나뭇가지를 꺾어 표식을 만들어 두었으나 무신경한 판델라라면 그것을 못 보고 지나쳤을 가능성이 있었다 .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자 당신은 위가 쓰려오기 시작했다 . 호기심이 왕성한 것도 병이라는 생각이 드는 당신이었다
당신은 쉬지도 않고 먼 거리를 걸었다 . 오늘 하루 쌓인 피로의 양은 명백히 당신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 살인적인 운전량 - 익숙치 않은 육체 노동으로도 모자라 추위에 떨며 설원을 방황하게 되다니 . 진작에 쓰러졌어도 이상하지 않은 당신이었으나 이상하게도 지친 기색이 느껴지지 않았다 . 추위에 피로도 마비되버린 걸까 . 불안한 마음이 드는 와중에 당신은 익숙한 모양의 텐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 어떻게 잊으랴 . 당신의 미숙함이 빚어낸 불우한 피조물을
잠시만 . 반가운 건 알겠는데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달려가는 건 관두자 . 혹시 모르잖아 . 주변에 이상한 장치가 되어 있을 수도 . 스승님이 도난 방지를 위해 주변에 마법을 걸어놨을 수도 있어 . 여기서는 신중하게 행동하기로 하자 . 스승님의 흔적부터 찾는 거야 . 텐트에 다가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말이지
당신은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 한 명 간신히 들어가는 협소한 텐트에 백발의 여성이 쓰러져 있었으니까 . 수화기의 전화선처럼 잔뜩 헝클어진 그 머리카락은 당신의 눈에 익은 것이었다 . 알비노 못지 않게 색소가 옅은 피부는 가죽이 얇아 혈관이 다 비쳐보일 지경이었다 . 당신은 눈 내리는 하늘을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손등으로 눈을 비볐다
차갑게 식은 텐트 바닥에 드러누워 고통스럽게 신음하는 여성 - 그녀는 분명 당신의 스승 판델라 파즈즈 에를퀴니흐였다
마녀로 이름난 판델라가 어째서 혼자 청승맞게 누워 추위에 떨고 있는지 - 당신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 최대의 보험이자 비장의 수였던 스승이 멋대로 혼자 쓰러진 것에 눈이 뒤집혔기 때문이다 . 스승의 머리맡으로 달려간 당신은 섣불리 손대지 않고 마녀의 상태를 위아래로 살폈다 . 당신이 살펴본 바로는 외상은 보이지 않았다 . 그렇다면 원래부터 앓고 있던 병일까 . 정말로 그렇다면 사태가 심각해진다 . 당신은 당신의 손을 벗어난 위기에 또 한 번 머리가 새하얗게 질렸다
" ... 괜찮아 "
조금도 괜찮지 않은 표정으로 괜찮다는 소리를 하는 판델라
당신은 몸을 일으켜 세우려는 판델라를 부축해 그녀를 바르게 앉혔다 .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말을 아꼈다 . 그러자 판델라는 당신에게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이 많았다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당신은 머리를 쓰다듬는 손에 힘이 실리지 않은 것이 신경 쓰였지만 구태여 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 머릿 속으로 오만 걱정이 다 들었지만 그것을 지저분하게 입 밖에 꺼내놓지는 않았다 . 당신의 스승에게 해결책이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났어 . 그러니까 침착하고 들으렴 "
진지하게 당신을 바라보며 말하는 판델라에게 당신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 모든 것이 예상한 대로 착착 맞아 떨어지면 어디가 덧난답니까 . 아니나 다를까 판델라의 이어지는 말은 당신의 믿음을 짓밟는 것이었다
" ... 흔한 일은 아니지 .. 절대로 아니야 . 그래서 곤란하던 참이란다 .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모르겠거든 "
병이었다면 아직 차라리 나았을지도 모른다 . 마법을 못 쓰는 판델라라니 . 아무리 좋게 쳐줘도 짐 밖에 더 되겠는가 . 당신은 절망이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것을 느꼈다 . 대처 곤란이라는 말을 쉽게도 꺼내는 판델라에게 당신은 할 말을 잊었다 . 이건 아니지요 스승님 . 이러는 건 당신의 역할이 아니잖아요 . 당신이 홈즈라면 나는 왓슨 - 아니 레스트레이드 경감인데 . 당신이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면 저더러 뭘 어쩌라는 겁니까 . 당신의 안에 갇힌 온갖 말들이 자신을 내보내달라며 아우성을 쳐댔다 . 하지만 환자를 상대로 - 연장자를 상대로 . 스승을 상대로 차마 그럴 수 없었던 당신은 또 한 번 자신의 안에 빗장을 걸었다
" 엄밀히 말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 그게 쉽지가 않단다 "
속 시원하게 터놓고 말하면 될 텐데 이 마당에 와서도 판델라는 자신의 속을 비추지 않았다 . 그녀는 말 몇 마디조차도 거름망으로 거르고 걸러 내용을 간추렸다 . 당신이 알아서는 안 된다는 듯이 선을 긋는 태도 . 이에 당신은 어떤 생각을 했던가
판델라는 당신의 안색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 사실 심각한 문제는 아니야 .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됐다고 말했지만 ... ... 거기에도 어폐가 있어 . 마법을 사용할 수는 있지만 사용해서는 안 되는 상태 . 그게 지금의 나란다 "
말하는 바가 이해되지 않는 당신이었다 . 사용할 수는 있지만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 대관절 무슨 이유로 그렇게 됐단 말인가
당신의 스승은 오른손의 검지와 중지로 자신의 이마를 짚으며 두통을 호소했다
" ... 알기 쉽게 요점만 찝어 설명해주자면 ... 주위의 마나의 밀도가 평상시보다 높아진 게 원인이야 . 마녀 - 마법사의 신체는 보통 사람보다 마나를 받아들이기 쉽게 되어 있거든 . 주유구가 넓다 해야 하나 ?
크게 숨 쉬는데 익숙해져서 물에 빠진지도 모르고 평소처럼 들이킨 거지 . 그랬더니 어머나 세상에 !
머리는 어질어질 속은 메스꺼워 - 확인해보니 체내의 마나 농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졌네 ? 이대로 마법을 썼다가는 무슨 사고가 날지 모르는 게 현재의 할머니야 . 음주 운전이나 마찬가지지 "
당신의 이야기를 판델라는 귀담아 들었다 . 완성되지 않은 단편적인 정보에 지나지 않았으나 - 판델라라면 무언가 알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당신의 설명은 열기를 띄었다 . 휑하니 삭막한 텅 빈 공터에 사람이 쓰러져 죽어가고 있었다는 섬뜩한 이야기를 판델라는 마침표 하나 빠뜨리지 않고 자신의 두 귀로 삼켰다 . 직접 보지 않으면 믿지 못할 이야기를 판델라는 태연하게 - 타자기가 으레 그러는 것처럼 기계적으로 자신의 안에 새겼다 . 이러한 판델라의 사무적인 태도는 당신을 놀라게 했다
" ... 흐응 "
말장난 섞지 않고 잠자코 당신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판델라의 모습에 당신 안의 위기감이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 언제 어디에서나 위풍당당 - 자신의 페이스를 잃는 법이 없던 판델라가 여유 부리는 것도 잊고 진지하게 당신의 이야기를 듣다니 . 위기와 위험의 반증과도 같은 스승의 반응에 당신은 입 안이 바싹바싹 말라갔다
" 절대로 - 좋은 징후는 아니네 . 사람이 죽다니 "
포커 페이스로 담담하게 말했지만 평소와는 말의 무게부터가 달랐다 . 그래 - 사람이 죽은 거다 . 스승의 말에 정신을 차린 당신은 자신의 침착함이 정상과는 거리가 먼 것을 깨닫고 안색을 파랗게 했다
당신은 살해 현장의 목격자였다 . 그런데도 어째서 - 이렇게나 태평하지
거기 쓰러져 있던 거인은 싸구려 플라스틱 장난감이 아니었다 . 당신과 마찬가지로 심장이 뛰고 피가 흐르는 사람이었다 . 사람이 사람의 죽음에 겁을 먹기는 커녕 그것을 불쌍히 여기다니 . 죽음에 무심한 것도 정도가 있다 . 당신은 자신의 감성의 마비를 의심했다 . 나이 열 여섯의 어리숙한 미성년자가 보일 만한 반응이 아니었다고 자신의 행동을 돌이켜보았다
" ... 니 ? 얘 ! "
지나치게 오래 딴 생각에 빠져 있었던 모양이다 . 판델라가 염려하는 눈으로 당신을 바라보고 있다
당신은 황급히 대답한다....사실 전혀 무섭지 않았냐 하면 그것도 또 아닌데, 어쩌면 스승님과 마주치기 전까지, 당신은 이 모든 게 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당신의 입장에서 비현실적인 상황들이 이어진 탓에 말이다. 혹은 미지의 공포에 지나치게 긴장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승님의 반응이, 그 무게감 있는 목소리가 당신이 본 것이 허깨비가 아님을 일깨워준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 지 물어야 할 것 같은데, 아 씨, 역시 의식하니 무섭다. 다리 떨리는 것 같은데.
당신의 지친 목소리에 판델라가 미안하다는 듯이 표정을 지어보였다 . 육체보다도 정신이 지쳐버린 당신은 그녀의 옆에 다소곳이 앉아 앞으로의 일을 걱정했다 . 한 명 있기도 빠듯한 텐트였지만 판델라의 두 다리가 보통 사람과 다른 덕분에 당신은 텐트 안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마법에 휘말리면서 흐려졌던 현실감이 제 위치를 되찾자 당신은 자신의 상태에 보다 객관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었다 . 자신의 정상이 무엇인지 기억해낼 수 있었다 . 남의 것처럼 말을 듣지 않는 다리를 진정시키기 위해 당신은 이를 세게 다물었다
당신의 지친 목소리에 판델라가 미안하다는 듯이 표정을 지어보였다 . 육체보다도 정신이 지쳐버린 당신은 그녀의 옆에 다소곳이 앉아 앞으로의 일을 걱정했다 . 한 명 있기도 빠듯한 텐트였지만 판델라의 두 다리가 보통 사람과 다른 덕분에 당신은 어렵사리 텐트 안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설원과 살해된 남자 . 남자를 살해한 무언가와 오는 도중 마주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당신에게 있어 더할나위 없는 행운이었다 . 당신은 자신이 얼마나 무방비하게 밖에 버려져 있었는지 새삼스레 깨닫고 몸을 떨었다
마법에 휘말리면서 흐려졌던 현실감이 제 위치를 되찾자 당신은 자신의 상태에 보다 객관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었다 . 자신의 정상이 무엇인지 기억해낼 수 있었다 . 남의 것처럼 말을 듣지 않는 다리를 진정시키기 위해 당신은 이를 세게 다물었다
" 많이 겁나니 ? "
이런 당신에게 판델라가 양면이 있는 말을 건네왔다
1 > 자유롭게 대답한다
// 내용 보충합니다 . 그나저나 하이드 하려다 뒤늦게 눈치챈 건데 ... 비밀번호가 안 맞네요 ( ' Q ' )
마법 못 쓰는 마녀가 무슨 근거로 저런 소리를 하는지 당신은 의구심이 들었다 . 썩어도 마녀라고 믿는 구석이 있는 걸까 . 당신은 당신의 스승의 조잘대는 입을 얄밉게 바라봤다
구태여 말로 내지는 않지만 당신과 스승이 함께 아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 이 모든 일의 시작이 판델라라는 것 - 당신은 판델라와 함께한 여행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을 우연으로 여기지 않았다 . 당신은 판델라가 이번 일의 관계자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의심을 품었다 . 그럼에도 당신이 사실 관계를 따지지 않는 것은 그것이 감정과 시간의 낭비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 판델라는 당신이 뭐라 추궁하던 내막을 감추려 할 것이 분명했다 . 아니라면 지금 당장에라도 스스로 입을 열었을 테지 . 아이 어르는 소리를 하는 대신에 말이야
" 다만 ... 네 조력이 필요한데 괜찮겠니 ? "
판델라가 자유롭게 마법을 쓰지 못하는 시점에서 - 이러한 전개는 예정된 것이었다 . 판델라의 말에 당신은 ─
당신은 싫어도 하는 수 없이 판델라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 판델라가 시키는 대로 설원을 누비기로 했다 . 싫은 기색을 드러내는 당신에게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판델라 . 판델라는 부탁에 응한 당신에게 예스러운 생김새의 나침반 하나를 건네주었다 . 당신의 손에 꽉 차는 크기의 나침반은 원판의 형태로 여느 기성품과는 다르게 반 盤 이 존재하지 않았다 . 유리 속 가느다란 자침이 가르키는 방향도 북쪽 같지는 않았다
당신이 나침반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면 판델라는 나침반이 이 일대의 마나의 근원지를 가르킨다고 했다
" 근원지로 가 마나를 발생시키는 원인을 제거할 것 - 그게 네가 할 일이야 . 위험하지 않냐구 ? 괜찮아 괜찮아 . 할머니를 믿어 . 이 설원에 내 허락을 맡지 않고 너를 해칠 수 있는 존재는 - 존재하지 않으니까 "
말로는 무엇을 못할까요 . 당신은 자신감 넘치는 판델라의 말에 반신반의하면서 자리를 일어났다 . 판델라는 당신에게 믿음을 요구했다 .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자신의 말을 믿고 따르라 했다
정말이지 무리한 요구를 하는 스승이었다 . 따지고 보면 - 여행의 시작부터 그랬다
미성년자에게 다짜고짜 차를 운전하게 하지 않나 . 방법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텐트를 치게 하지 않나 . 이번에는 미지의 위험이 도사리는 설원으로 나침반 하나 달랑 쥐어주고 당신을 쫓아보낸다
당신은 칸델라에게 인사해 보이고, 나침반의 자침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긴다.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에서 당신은 좀 전에 본 것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에는 긴장해서였는지 현실감을 잃어서였는지 별 생각이 없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아니, 떠올리지 말자. 속이 울렁이기 시작하잖아.
...어쩐지 그 장소를 적어도 한 번은 다시 보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당신은 일단 주어진 과업에 집중하기로 했다.
마법을 잃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된 판델라를 대신해 또다시 설원을 누비게 된 당신 . 당신은 끝이 있긴 한 건지 의심스러운 설원을 벌써 수 시간에 걸쳐 걷고 뛰고 있었다 . 운동 부족인 당신은 평생 걸을 걸음을 여기서 모두 다 걸었노라 자신했다 . 자신하는 것과 동시에 - 이를 갈며 당신에게 나침반을 떠맡긴 판델라를 저주했다
당신은 눈치챘어야 했다 . 마법의 영향력에 놓인 이 공간이 어떠한 특성을 갖는지 한 번 추측했던 당신은 보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을 내렸어야만 했다 . 당신은 멋모르고 난제를 받아들인 과거의 자신이 미워 어찌 할 바를 몰랐다 .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수수께끼의 위협 따위 당신은 이제 아무래도 좋아졌다
무자비하게 시간을 도륙하는 지루함이야말로 당신에게 있어 가장 큰 적이었다
이 설원은 분명 미쳐 있었다 . 동서남북 어디를 어떻게 가도 보이는 것은 눈과 나무 - 짜증나게 옷을 찌르는 나뭇가지가 전부였다 . 마법에 의해 조성된 것이 분명한 이 빌어먹을 설원은 당신의 예상이 맞다면 공간의 확장 - 팽창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 그것은 당신이 근원지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 수록 명백히 보이는 사실이었다 . 당신이 이를 확신한 것은 불과 한 시간 전의 일이었다 . 빽빽하게 늘어서서 앞길을 방해하던 초목의 세가 약해지면서부터였다
당신은 걸음 수가 늘어남에 따라 점차적으로 서로 간에 거리를 벌리기 시작한 나무를 보고서 추측에 무게를 실었다 . 어느 지점을 중심으로 공간이 팽창하기 시작하면서 나무 사이의 거리가 이렇게 벌어지게 된 거라고 . 간격이 일정하지 않고 갈 수록 멀어지는 것은 팽창의 정도가 발생지로부터 멀어질 수록 약해지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발생지에 가까워질 수록 공간의 팽창이 심해지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여기에 비례해서 늘어날 운동량을 생각하자 당신은 정신이 까마득해졌다 . 당신은 대체 - 앞으로 얼마나 더 걸어야만 하는 걸까
아, 그래서 자동차도, 텐트도 당신이 원래 알던 것보다 멀어졌던 건가. 당신은 한 발 늦게 찾아온 깨달음에 이마를 친다. 스승님한테 차 키 받아올걸, 하고 당신은 잠깐 후회했지만, 그랬더라도 숲 때문에 의미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곧 뒤따라왔다. 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공간이 지금까지 계속 팽창하고 있을 걸 생각하니 마냥 쉬지도 못하겠다.
당신은 잠깐 숨을 고르며 걸음을 멈추었다가, 가볍게 뛰기 시작한다. 이럴 땐 빨리 끝내고 빨리 쉬는 게 그나마 나으려나. 어쨌든 이걸 끝내지 못하면 집에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신체에 난 데 없이 찾아온 변화를 기뻐해야 할지 걱정해야 할지 고민했다 . 체력에 자신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째서 지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걸까 . 일류 마라토너라도 혀를 내두를 거리를 당신은 달리거나 걸어왔다 . 그럼에도 처음과 같은 페이스를 - 처음 이상의 속력을 낼 수 있는 것은 이상하지 않나 . 지금 당신이 올림픽 마라톤 경주에 나간다면 금메달은 따 놓은 당상이요 세계 신기록을 갱신할 수 있을 것이었다
땅을 접어 달린다는 게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고 있는 당신의 두 다리에 당신은 모든 것이 의심스러워졌다
하지만 지금은 허투루 다리를 쉬게 할 때가 아니었기에 - 당신은 고개 드는 의심을 한옆으로 제쳐놓았다 . 달릴 수 있을 때 달려 이 모든 일을 가능한 빠르게 정리하려 했다 . 이 때 당신은 당신의 올바른 판단이 다른 누군가의 심기를 거스를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당신은 욕지꺼리를 한 마디 뱉고는, 가야 할 방향을 다시 확인하고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신경이 곤두선다. 왜 내가 하는 일은 다 좀처럼 잘 풀리지가 않는건지. 찝찝하니 마음같아선 뛰고 싶은데, 당신이 이런 상태라고 해도 혹시나 뛰다 체력이 고갈되면 추격자의 습격을 피하기 어려워질 것이 아닌가.
목적지까지 가만 걷기만 하는 것도 그렇다 . 당신은 사라지지 않는 추격자의 기척에 유의하면서 주변에 쓸 만한 것이 떨어져 있지는 않은지 눈에 불을 켜고 찾아보았다 . 알루미늄 야구 방망이 하나만으로는 도저히 마음이 놓이질 않는 탓이었다 . 당신의 스승은 누구도 감히 당신에게 위해를 끼치지 못할 거라 말했지만 - 그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만큼 당신은 순진하지 못했다 . 당신은 스승의 말이 밖을 겁내는 당신을 안심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을 거라 지레짐작했다
모든 위기는 자기 책임으로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당신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틈틈이 수고를 들인 보람도 없이 당신은 무엇도 발견해내지 못했다
해도 달도 하늘에 보이지 않는데 이상하게 주변이 밝구나 - 마른 입으로 되뇌이는 것이 수확의 전부였다 . 구름 떠다녀야 할 하늘에 둘러쳐진 암막 덕분에 천장은 시커멓기만 했다 . 당신은 이 세계가 어린 아이의 그림 같다고 스쳐지나며 생각했다
검은 보드지를 배경으로 서서 스스로 색을 내는 숲을 오랜 시간 동안 보다보니 자연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방금 당신이 혼잣말로 말했듯이, 이 주변은 특별히 눈에 띄는 광원이 없는데 이상하게 물체들이 잘 보이니까.
현대 과학에서 색을 무엇이라 정의하는지를 모르더라도, 살다가 한 번이라도 정전이라는 현상을 겪어보았다면 알 것이다. 모든 빛나는 것들이 일시에 꺼졌을 때 남아 있는 색은, 색이랄 것도 없는 어둠 뿐이다. 어두우면 색이 보이지 않아야 한다. 하늘은 어느 새 검다, 한밤중처럼 어두운데, 아니, 노을이 진 후이니 밤이 맞을 터인데. 저 숲의 색상은 선명하게 보인다.
또 다른 이상 현상이다. 또야? 당신은 오싹하고 불안한 느낌에 잠깐 멈춰서서 배트를 양 손으로 꽉 쥔다.
하지만 뭐 새삼스럽게 걱정할 문제는 아니었다 . 돌이켜보면 마법에 휘말렸던 처음 순간부터 이랬으니까
이를 자각했다 해서 특별히 당신에게 악영향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라 당신은 괜한 걱정은 않기로 했다 . 이 이상 신경에 부정적인 부하를 늘리고 싶지도 않았기에
대신에 당신은 모래와 같이 머릿속 틈새를 빠져나가던 뭔가를 거칠게 붙잡아 쥐고 남일처럼 지나칠 뻔한 사실에 다시 한 번 주목해보기로 했다 . 색은 흔히 말하는 주관적 감각 - 사물의 표면이 반사하는 빛을 눈의 신경이 감지해 나타나는 감각적 특성 가운데 하나였다 . 따라서 색은 광원이 존재할 때만 인지할 수 있는 감각으로 이렇다 할 광원이 존재하지 않는 이 설원에서 당신이 색을 인지할 수 있는 것은 의아한 일이었다
혹시, 여기가 근원인가? 당신은 망망대해 너머의 등대라도 본 것 마냥 눈을 빛낸다. 당신이 들고 있던, 스승님에게 받았던 나침반을, 그 침이 가리키는 방향을 확인해본다. 여기저기 들어도 보고 발밑 그림자에도 갖다대본다. 근원? 출구? 적어도 이 마법 공간에서 나가는 열쇠? ...아무것도 아니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스쳐 지나가지만, 확인해보기 전까지는 아직 모를 일이다.
손 안의 나침반은 여전히 당신이 나아갈 길을 빳빳이 가르키고 있었다 . 마침내 - 마나의 근원에 도착했을 지도 모른다는 당신의 기대는 허망하게 무너졌다 . 그림자를 향한 당신의 몇 가지 시도는 모두 무의미했다
이도 저도 아니게 되자 당신은 자신의 그림자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 이것이 어쩌다 생겨난 것인지 기억을 더듬어봤다 . 어째서 이것이 당신의 눈에 낯설게 보이는지 이유를 찾고자 했다 . 언제나 당연하게 있기에 의식하지 않게 되는 그림자를 시간을 들여 관찰했다 . 결과 당신은 한 가지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 자신의 그림자의 생김새가 어떠했는지 기억해낼 수 있었다
입 안이 바싹바싹 마른다 . 당신은 그림자를 모른 척하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어버린 뒤였다 . 당신은 이 날 처음으로 이목구비를 가진 그림자를 보았다 . 두 개의 자동차의 상향등처럼 밝게 빛나는 노란 눈 - 날카롭게 날선 덧니가 부정 교합을 일으키는 누런 입 - 바로 붙을 시기를 놓친 코는 흉측하게 오른쪽으로 찌부러져 있었다 . 당신이 그림자를 볼 때 그림자도 당신을 봤다
" 감이 좋은 녀석이야 "
그림자가 말했다 .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중후한 목소리는 괴물에 비유될 생김새에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 당신은 속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욕을 했다 .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그림자에 기겁해 앞으로 달려나가려 했다 .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껌 밟은 마냥 발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문제의 다리를 당신이 바라보면 늪처럼 변한 그림자에 당신의 발이 발목까지 잠겨 있었다
"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시나 - 하는 짓이 꼭 유령이라도 본 것 같구만 "
유령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못하지 않은 것이 저렇게 말하나 . 당신은 위기를 모면할 방법을 궁리했다
입 안이 바싹바싹 마른다 . 당신은 그림자를 모른 척하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어버린 뒤였다 . 당신은 이 날 처음으로 이목구비를 가진 그림자를 보았다 . 자동차의 상향등처럼 밝게 빛나는 한 쌍의 노란 눈 - 날카롭게 날선 덧니가 부정 교합을 일으키는 누런 잇바디 - 바로 붙을 시기를 놓친 코는 흉측하게 오른쪽으로 찌부러져 있었다
당신이 그림자를 볼 때 그림자도 당신을 봤다
" 감이 좋은 녀석이야 "
그림자가 말했다 .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중후한 목소리는 괴물에 비유될 생김새에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 당신은 속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욕을 다 했다 .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그림자에 기겁해 무턱대고 앞으로 달려나가려 했다 .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껌 밟은 마냥 발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문제의 다리를 당신이 바라보면 늪처럼 빠지는 그림자에 다리가 발목까지 잠겨 있었다
"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시나 - 하는 짓이 꼭 유령이라도 본 것 같구만 "
유령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못하지 않은 것이 저렇게 말하다니 . 당신은 위기를 모면할 방법을 궁리했다
불쑥 땅으로부터 그림자가 일어났다 . 점성 강한 그림자의 막에 구멍을 뚫고 보란 듯이 당신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미모의 여성 . 여성은 몸의 윤곽을 따라 흘러내리는 그림자를 자신의 옷 삼아 당신과 마주섰다
그녀가 고개를 들고 당신을 바라보자 조잡하게 - 산만하게 여러 색으로 물들인 머리카락에서 알싸한 냄새가 났다 . 가늘게 찢어진 눈 살 사이로 보이는 보라빛 눈동자는 짜증에 절어 있었다
여성은 무엇이 못마땅한지 분홍색 오목한 입술로 담배 냄새나는 숨을 당신에게 뱉었다
" 너나 곱게 말할 때 말씨를 바뤄 . 네 주제를 알라고 "
분장에 가까운 화장을 한 여성이었다 . 생긴 대로 노는 신경질적인 언동은 당신에게 적대적이었다 . 당신은 콧대 높은 모든 사람이 저렇지는 않을 거라 자신을 다독였다 . 독하게 당신을 쏘아붙인 여성은 어디선가 짐승의 가죽을 꺼내 자신의 머리에 뒤집어 썼다 . 당신은 저 차림새가 낯설지 않았다
" 역시 요즘 친구라 그런가 이해가 빨라 . 그렇지 않나 바쥬라 . 이렇게 협조적으로 나오는데 괜한 심술 부리지 말자구 . 자네 나이에 연하를 상대로 그러는 건 보기에 흉해 "
색은 다르지만 분명 늑대의 가죽이었다 . 예의 거인이 쓰던 것에 비하면 한참 작게 보였지만 - 그렇더라도 당신과 신장이 엇비슷한 여성의 신체를 모두 덮고도 남을 만큼 컸다 . 호수의 심연 만큼이나 검은 털가죽은 당신이 보기에 이 세상에서 가장 검은 물질로 보였다 . 범상한 짐승의 가죽이 아니라는 것은 한 눈에 봐 알 수 있었다 . 쓰러져 죽어가던 거인도 그렇고 저 여자도 그렇고 - 무얼 위해서 저 냄새나는 것을 머리에 뒤집어 쓰고 다니는 걸까 . 마법에 문외한 당신으로서는 도통 짐작이 가질 않았다
" 빌어먹을 - 이번 일만 마치면 내 손으로 널 장사지내주마 "
" 어련하실까 . 자네 입에서 그 소리를 들은게 이번으로 백 번은 된 거 같은데 . 슬슬 귀에 딱지가 앉겠어 "
" 이 썩을 덩어리 같은 ─ "
그림자 속 목소리에게 이름을 불린 여성은 멋대로 호명하지 말라며 또 한 차례 신경질을 부렸다 . 그림자 속 누군가의 태연자약한 모습이 누군가를 닮았다고 당신은 느꼈다 . 그렇게 얼마나 서로 말다툼을 했을까 . 제 풀에 지쳐 씩씩거리던 여성이 당신의 손에서 나침반을 뺏으려 했다 . 이에 당신이 반사적으로 손길을 피하자 여성의 손이 멍청하게 허공을 가로질렀다
" ... 너어 - "
여성의 얼굴이 당신의 행동에 붉으락 타올랐다 . 이마에 바짝 혈관이 두드러지는 게 건드리면 터질 폭탄 같이 보였다
" 역시 요즘 친구라 그런가 이해가 빨라 . 그렇지 않나 바쥬라 . 이렇게 협조적으로 나오는데 괜한 심술 부리지 말자구 . 자네 나이에 연하를 상대로 그러는 건 보기에 흉해 "
색은 다르지만 분명 늑대의 가죽이었다 . 예의 거인이 쓰던 것에 비하면 한참 작게 보였지만 - 그렇더라도 당신과 신장이 엇비슷한 여성의 신체를 모두 덮고도 남을 만큼 컸다 . 호수의 심연 만큼이나 검은 털가죽은 당신이 보기에 이 세상에서 가장 검은 물질로 보였다 . 범상한 짐승의 가죽이 아니라는 것은 한 눈에 봐 알 수 있었다 . 쓰러져 죽어가던 거인도 그렇고 저 여자도 그렇고 - 무얼 위해서 저 냄새나는 것을 머리에 뒤집어 쓰고 다니는 걸까 . 마법에 문외한 당신으로서는 도통 짐작이 가질 않았다
" 빌어먹을 - 이번 일만 마치면 내 손으로 널 장사지내주마 "
" 어련하실까 . 자네 입에서 그 소리를 들은게 이번으로 백 번은 된 거 같은데 . 슬슬 귀에 딱지가 앉겠어 "
" 이 썩을 덩어리 같은 ─ "
그림자 속 목소리에게 이름을 불린 여성이 멋대로 호명하지 말라며 또 한 차례 신경질을 부렸다 . 그림자 속 누군가의 태연자약한 모습에 여성이 노발대발 날뛰었다 . 둘의 사이는 최악으로 보였다 . 증오와 혐오가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를 함부로 바닥에 토하는 여성의 모습에 당신은 눈살이 찌푸려졌다
저런 것이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니 - 당신은 도마 위 생선이 된 기분으로 두 놈의 대화가 끝이 나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나 서로 말다툼을 했을까
제 풀에 지쳐 씩씩거리던 여성이 돌연 당신의 손에서 나침반을 뺏으려 했다 . 이에 당신이 반사적으로 손길을 피하자 여성의 손이 멍청하게 허공을 가로질렀다
" ... 너어 - "
여성의 얼굴이 당신의 행동에 붉으락 타올랐다 . 이마에 바짝 혈관이 두드러지는 게 건드리면 터질 폭탄 같이 보였다
>>166 "이, 이건 그냥은 못 줘요. 이거 스승님 물건이라 잃어버리면 저 스승님한테 죽습니다요."
당신은 삐질삐질 식은땀을 흘리며 애써 항변한다. 당신이 알기로 스승님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지만, 그렇다고 냉큼 줘버리자니 저 나침반이...오래 된 물건이라 비싼 것일지도 모른다는 점이 걸리는 것이다.
"아니면 저도 같이 데려가 주세요. 이걸 찾으시는 걸 보면 목적지는 비슷하신 것 같은데, 그래도 할 일은 끝내야 제가 스승님 뵐 면목이 있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당신에겐 그걸로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당신은 아예 엎드려서(그럴 수 있다면 말이다) 싹싹 빌기 시작한다. 토사구팽 당해서 이런 설원의 지박령이 되는 것보단 비굴하게라도 사는 게 낫지 않겠는가. ...늑대 가죽을 쓴 남자의 시체를 본 일은...말해도 될 지 아직은 확신이 없다. 괜히 오해를 살 지도 모르잖아.
" 웃기시네 - 네놈 속에 뭐가 들었을지 알고 . 목 떨어지기 싫으면 그걸 당장 이리내 ! "
늑대 가죽의 여자가 당신에게 버럭 화를 냈다 . 당신의 저자세에도 여자는 경계심을 풀 생각이 없어보였다 . 여자의 말은 결코 속 빈 위협이 아니었다 . 누구도 당신을 해치지 못할 거라던 스승의 말이 무색하게 당신의 목젖을 날카롭게 누르는 적의는 당신에게 있어 최악의 미래를 실현시키기 위한 힘을 차고 넘치게 갖고 있었다
당신은 혼란스러은 와중에 늑대 가죽의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처마 밑에 매달린 고드름이라 할지라도 저것보다는 따스하겠지 . 여자의 보라색 눈동자로부터는 일말의 온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 생명을 생명으로 보지 않는 눈 - 한 걸음 앞에 서 있는 당신을 여자는 같은 사람으로 보고 있지 않았다 . 차디찬 시선에 얼어붙은 당신은 저 여자라면 상대가 누구라 할 지라도 눈사람 무너뜨리듯 부숴버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175 "이봐요. 제가 원하는 건 별 것 없어요. 이 이상현상을 끝내고, 곱게 스승님 모시고 이 설원을 떠나는 것 뿐이라고요. 그래서 이 마나의 근원을 가리키는 나침반을 따라 근원지를 찾고 있었던 거란 말입니다."
당신은 답답함을 참다 못해 항변한다. 서로 믿지 못하는 상황인 것 같은데 그래서인지 간만 보자니 진전이 없다. 아, 그러고 있자니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게 있다.
"당신들은 왜 이걸 원하는 거죠? 이게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요? 그것이 아니라면..."
늑대는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이다. 그런 늑대를 그렇게 문자 그대로 바람구멍이 나도록 '사냥'할 만한 것이라면 사냥꾼이지, 같은 늑대가 아닐 것이다. 당신의 감이 그렇게 주장했기에 당신은 왠지 이 사람들이 당신이 보았던 남자와 관련이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논리적인 증거가 없잖아?
당신의 찌르는 말에 여자가 한층 더 인상을 찡그렸다 . 찡그릴 뿐 아니라 검은 점액이 뚝뚝 떨어지는 오른손을 머리 위로 쳐들었다 . 당신은 저것이 좋은 징후가 아니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두 다리가 그림자에 잠겨 자리를 피할 수 없었다 . 두 눈을 질끈 감은 당신은 최후를 예감했다 . 당신은 최후에 무엇을 생각했을까
무책임하게 당신을 사지로 떠민 스승에 대한 원망 - 또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데서 오는 절망 ?
마지막 순간에 찾아온다는 주마등이 새하얀 백지인 것은 당신의 기억이 무언가에 의해 표백되었기 때문인가
당신은 그것이 ── 다
" 이거 .. 못 놔 ? "
" 오늘 하루 피는 볼 만큼 봤을 텐데 - 불필요하게 손을 더럽히지 말게 "
" ... 하 ! 언제부터 다른 사람 생각을 했다고 ? 거기다 - 우리의 역할을 잊은 거야 ? 이런 녀석을 배제하는 게 우리의 일이잖아 ! "
" 그랬지 - 그랬는데 말야 ... "
들려오는 목소리에 당신이 감았던 눈을 뜨자 이게 웬걸 상황이 일변해 있었다 . 바닥으로부터 치솟은 검은 천에 오른팔의 자유를 빼앗겨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늑대 가죽의 여자
여자는 자신의 행위의 정당성을 주장했지만 그림자 속 누군가의 생각은 그녀와 달랐다
" 자네 . 자네의 그 나침반 - 스승으로부터 받은 것이라 했지 . 스승의 존함이 어찌 되시는가 "
당신의 소개와 설명에 여자의 표정이 볼 만해졌다 . 있을 수 없는 말을 들은 것처럼 - 안 그래도 편치 않던 표정을 한층 더 찌부러뜨리는 여자 . 늑대 가죽의 여자는 당신의 말에 머리를 얻어 맞은 마냥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림자 속 누군가의 중재가 아니었다면 불편한 정적은 아마 수 분도 더 이어졌을 것이다
" 그래 그렇구만 . 야영이라 - 함께 캠핑이라도 온 건가 ? 하기사 그럴 때지 . 나도 이맘때면 언제나 별장에 들르는데 .. "
" 닥쳐 봐 ! "
히스테릭한 외침이 다른 목소리를 끊어놓았다 . 늑대 가죽의 여자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천에 묶이지 않은 팔로 자신의 머리를 붙잡았다 . 그녀의 보라색 눈동자가 조짐을 감지한 지진계와 같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 아니 .. 아니 거짓말이야 . 거짓말이어야 해 . 내가 이번 일에 얼마를 들였는지 알아 !? 너희처럼 속 편하게 손 털고 나갈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고 난 ! 야 ! 똑바로 말해 ! 지어내지 말고 사실을 말하란 말야 ! 여기에 왜 그 썩을 것이 있어 ! 말도 안 되잖아 ! "
또 한 번 분노를 주체 못하고 여성이 날뛰기 시작했다 . 분노의 화살표를 당신에게 향한 여성은 팔을 옭아맨 천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피를 토하는 기세로 목청을 터뜨려왔다 . 쩌적 - 불길한 소리를 내며 천이 찢어지기 시작했다
상대는 이성을 상실했다 . 저대로 가만 내버려 두면 당신이 어떻게 될지는 불 보듯 뻔한 일
마침내 인장 강도를 넘어선 부하에 천이 찢어졌다 . 커다랗게 팔을 휘두르는 여자를 피해 뒷걸음질치는 당신 . 종이 한 장 차이로 여자의 공격을 피한 당신은 당치도 않게 - 한 박자 늦게 배를 때리는 충격에 저 멀리까지 바닥을 구르게 됐다
보기 좋게 소복히 쌓인 눈을 흐트러뜨리며 족히 수 미터는 되는 거리를 날았다
" 마녀가 뭐야 .. 내 알 바 아니라구 .. 방해하지 못하게 해치우면 되는 거 아냐 ?! 그렇네 ! 그렇잖아 ! 하는 김에 그 년이 가진 마법도 모조리 빼앗아 주겠어 ! 이건 기회야 ! 기회라구 ! 남은 녀석들을 모아서 마녀를 습격하면 ! 그러면 되는 거잖아 !! 멍청하기는 ! 뭘 겁내는 거야 ! 그래봤자 사람이라고 ! 죽이면 죽는 사람이라고 ! 그렇잖아 !? "
뇌를 흔드는 귀울림 - 산소를 빼앗는 격통 속에서 당신은 자신이 무엇에 배를 얻어 맞았는지도 모르고 구토감에 등을 수그렸다 . 당신의 사지가 온전히 형태를 갖추고 있는지 확인 할 겨를도 없이 - 또 한 번 바닥을 구르게 됐다
당신이 상황을 파악하는 것보다도 먼저 바닥에 구멍이 났다 . 흑색 소음이 주위를 휩쓸었다 . 가까스로 정신을 수습한 당신은 아까까지 당신이 누워 있던 자리에 ─ 그라운드 제로에 늑대 가죽의 여성이 홀로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 왜 아직도 살아 있는 거야 .. 하 .. 썩어도 준치라고 주제에 그 년의 제자라는 건가 ? 아주 웃겨 .. 웃기시네 !! 웃기고 있어 ! "
안타깝게도 상대는 아주 완전히 이성을 잃은 듯 보였다. 이젠 설득이 중요한 게 아니다. 당신은 손에 나침반을 꼭 쥐고 죽어라 뛰려 시도한다. 어떻게든 목숨은 건졌지만 그 다음 공격에도 무사할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니...그래도 왠지, 지금이라면 도망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되지 않고 당신이 무사한 것은 전부 다 - 다리를 부여 잡던 그림자의 늪으로부터 한 발 먼저 빠져나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 그토록 집요하게 당신의 다리를 삼키고 놓아주지 않던 그림자였건만 - 막상 당신이 위험에 처하니 시원스럽게 당신을 놓아주었다 . 정신 못 차리는 당신을 떠밀어 여자의 공격을 피할 수 있게 한 것도 그림자 속 누군가의 솜씨일 테지 . 당신은 두 놈의 사이가 나빴던 것을 기억해냈다 . 그림자 속 누군가는 어쩌면 - 정말로 어쩌면 당신이 여기서 죽지 않기를 바라는 지도 모른다
당신의 편은 아닐지라도 말야
당신은 등을 보인 채 달아나기 시작했다 . 지금은 믿고 뛰는 수 밖에 도리가 없다 . 하지만 대책없이 마냥 달아나기만 해도 될까 .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정하지 않았다 . 어디로 달릴지 - 앞으로 어떻게 할지도
>>192 계속 도망치는 와중에도 당신의 머릿속이 갈팡질팡하기 시작한다. 당신은 숨을 몰아쉬며 잠깐 멈춰서서 나침반을 꺼내 가야 할 방향을 확인하고, 당신이 왔던 방향을 돌아본다. 지금 스승님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 할까, 아니면 계속 마력의 근원으로 향해야 할까. 당황한 와중에도 당신이 얼핏 듣기로는 아까 그 험상궂은 (그리고 지금은 눈이 뒤집힌) 늑대 마법사는 꽤 위험한 말을 했던 것 같다. 일행이 더 있고 그들을 모아서 여차하면 다 죽이면 된다는 식으로 말했었던가. 이거, 스승님에게 가 봐야 하는 거 아니야? 당신은 잠시 망설인다. 하지만 가서 스승님에게 합류해봤자... 스승님은 마법을 쓸 수 없는 상태이고 당신 또한 마법을 쓸 줄 모른다. 어차피 저들이 진짜로 습격해온다면 차로 도망치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고, 그것마저도 시간벌이일 뿐이겠지. 마법에 문외한인 당신이 척 보기에도, 그 차로는 이 팽창하는 설원을 탈출하기에 역부족일 것임이 빤히 보인다. 차가 습격자들의 공격을 받고 망가지거나 기름이 떨어져서 잡히면 그걸로 끝이다.
결국 최선의 방법은 최대한 빨리 마나의 근원을 제거하는 것 뿐인가. 거기까지 뇌내 시뮬레이션을 마친 당신은 소리를 지르며 다시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뛰기 시작한다. 춥고 아프고 힘든데, 달리 뾰족한 수가 없다.
늑대 가죽의 여자는 당신을 따라오지 않았다 . 무엇에 발목을 잡힌 걸까 . 대체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당신의 추격을 단념하게 한 걸까 . 가열하게 자신의 다리를 채찍질하던 당신은 뒤늦게 든 생각에 제자리에 멈춰섰다
당신은 늑대 가죽의 여자가 한 말을 잊지 않았다 . 판델라를 경원시하던 언동을 잊지 않았다 . 당신은 당신의 스승이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 잊지 않았다
늑대 가죽의 여자가 저런 스승을 노린다면 - 스승은 무사할 수 있을까
판델라의 안위를 걱정하던 당신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돌아가봤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정답을 냈다 . 당신은 스승의 일은 스승에게 맡기기로 당신은 결심했다 . 당신은 당신에게 주어진 일에 매진하기로 했다 . 그것이 당신과 당신의 스승 모두를 위한 일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얄팍한 자기합리화였다
머잖아 설원에 당신의 발자국이 길게 이어졌다 . 때때로 무시하기 힘든 통증이 당신의 배를 괴롭혔지만 쉬면 쉬는 만큼 빠르게 따라잡힐 거라는 불안이 당신의 다리를 쉬게 두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당신은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 목적지까지 남은 거리가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은 휑하게 텅 빈 주변 정경이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 당신은 부단히 많이도 달려왔던 것이다 . 이제 그 노력의 결실을 볼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
지나고 보면 오늘 하루도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사소한 해프닝이 되겠지 . 최악의 하루를 보낸 만큼 이 다음에 찾아올 휴식은 달디 단 꿀과 같을 게 분명했다 . 당신은 돌아가면 당신을 이토록 고생하게 만든 스승에게 뭐라 한 마디 말해주기로 마음 먹었다 . 무슨 일이던 당신의 동의 없이 하는 것은 안 된다고 - 수면 밑에서 당신 모르게 하는 것은 안 된다고 말해주기로 결심했다
언제까지 자신을 제삼자 취급할 거냐며 따질 생각이었다 . 당신의 뒤에서 당신의 것 아닌 눈 밟는 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
당신은 내심 상대가 먼저 말을 걸어주기를 바랬으나 - 완고하게 이어지는 침묵에 그럴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 당신의 뒤에서 들려오는 것은 정돈되지 않은 거친 숨소리가 전부였다
숨소리라니 - 대체 누구시길래 애먼 사람의 뒤통수에다 뜨뜻미지근 불쾌한 숨결을 뱉는 걸까
참다못해 당신은 스스로 방아쇠를 당기기로 했다 . 금이 나올지 도깨비가 나올지 박을 갈라보기로 했다 . 거기에 무엇이 있던지 이미 피하기에는 한 발 늦었다 . 그렇다면 매도 먼저 맞는 게 낫지 . 당신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목을 뒤로 꺾었다
여차하면 도망치기로 결심했던 당신이지만 너무도 예상 밖의 상대가 거기에 있었기에 - 그러는 것도 잊어버렸다
당신은 도망치는 대신에 - 빨갛게 달아오른 뺨을 추위에 부르튼 손가락으로 비틀어 뜯었다 . 저것이 늑대 가죽의 여자가 말한 남은 녀석들 가운데 하나일까 . 아니 - 아마도 아니겠지 . 당신의 머릿속 여론은 이러한 추측에 부정적이었다
늑대 가죽의 여자와 한통속이 아닐까 의심하는 것조차 실례라 생각될 만큼 - 눈 앞의 저것이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머리에 자란 한 쌍의 석영의 가지와 검게 식은 녹색 보석안 - 구부정하게 숙인 머리는 바로 세웠더라면 턱 높여 바라봐야 했을 것이 분명했다 . 엄격함과 위대함이 함께 느껴지는 모습에 당신은 자연스레 왕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됐다 . 가슴을 도려내는 부상을 입었어도 - 털가죽을 피로 적셨어도 - 저것은 아름다웠다
숫사슴의 말은 너무 느리지도 너무 빠르지도 않았다 . 강물이 흐르듯 스스럼없이 이어지는 말은 한 편의 시와도 같았다 . 숫사슴은 당신이 이야기에 지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자신을 소개하는 말들을 늘어놓았다 . 땅울림이자 모든 네 발 짐승의 아버지 - 때로는 벼락이며 때로는 폭풍인 자 - 저 숫사슴은 이 땅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의 나이테 만큼이나 많은 모습과 이름을 갖고 있었다 . 이 땅의 시작과 함께 태어나 - 해가 뜨고 지는 것을 스쳐지난 모든 생명의 수만큼 보아왔다고 했다
나름대로 각오를 다졌던 당신조차도 아연실색하게 만드는 자기소개였다 . 숫사슴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이 여기까지 이르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 이제까지 나를 원하는 자는 셀 수도 없이 많았다 . 하지만 - 진정으로 나를 소유했던 자는 단 한 명도 없었지 . 그것은 그들이 나를 소유하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며 - 나를 담기에는 그 그릇이 너무도 왜소했던 탓이다 . 덕분에 나는 황금에서 철로 이어지는 다섯 시대를 모두 거칠 수 있었다 . 하지만 삶의 마지막 장은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법이니 - 주어진 천명 이상의 시간을 살면서도 다가올 그 날을 잊은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었다 . 나는 내게 주어진 가공할 시간으로 나의 후계를 준비했다 . 나의 시대가 지난 뒤에도 이 땅이 이 땅이도록 - 이 땅을 다스릴 다음 왕을 준비했다 . 나는 방만을 모르는 왕이었다 . 나의 법리는 가혹했지만 한없이 완벽에 가까웠다 . 나의 후계 또한 그래야만 했기에 나는 아이를 채찍으로 다스렸다 . 나는 날 때부터 왕이었기에 - 왕으로 준비된 나의 후계 또한 나와 같으리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가졌다 . 갖고야 말았다 ─
숫사슴은 후회하며 말했다 .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후계를 잃어버렸다 . 나는 나의 아이를 찾아 여기까지 왔다고
─ 오늘 날에도 나를 소유하려는 자는 끊이지 않는다 .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며 송곳니를 갈아왔기에 - 그들의 송곳니는 마침내 나의 생명에마저 닿게 됐다 . 보다 강한 것이 보다 약한 것을 죽이는 것 - 그 자체는 두렵지 않은 일이다 . 다만 내가 우려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나의 후계를 진정으로 잃는 것이다 . 이대로 영영 헤어지는 것이다 . 사죄를 구하지 못하고 서로를 미워하는 채 끝나는 것이 나는 세상 무엇보다도 두렵구나
아아 - 나는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 - 처음으로 내 안에 후회를 만들었다
어린 순아 . 내가 너에게 말을 걸은 것은 네가 나의 후계를 - 나의 아이를 어디선가 보지 않았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 때문이었다
나의 아이를 만나고 싶은 마음에 나는 수치도 모르고 너에게 말을 걸고야 말았다 ─
숫사슴의 말은 그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당신은 - 당연하게도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이다 . 어쩌다보니 휘말리게 된 피해자였다
연도는 달라도 대강 주인공이 제자가 된 계기는 비슷할 테니 주인공들도 마법사들도 사실 양반은 못 된다는 걸 이미 알지 싶었고, 그래서 아까 그 늑대 가죽 마녀와 그 일행이 저 사슴왕의 힘을 노리고 덤벼들어서 서로 그 꼴이 났겠구나...하는 내용을 조금 더 길게 쓸까 해서 물어본 거였지만... 핵심만 남기다 보니 결국 의미없어졌어.
나는 그 정도로 내 아이에게 무관심했다 . 숫사슴이 거칠게 기침하며 말했다 . 입으로 피를 쏟는 모양새가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 숫사슴은 결국 서있지도 못하고 무릎을 꿇게 됐다
─ 참으로 얄궂지 . 걸으면 발에 채이는 것이 시간이었는데 - 막상 필요할 때가 되니 이토록 박정하게 나를 모른 체하니 ─
당신은 이런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 함께 - 한 가지 사실에 눈치챘다 . 어째서 깨닫지 못한 걸까 . 당신 자신도 모르게 일개 장식에 지나지 않는다 생각한 걸지도 모르겠다 . 아무렴 당신은 살아 있는 사슴을 오늘로 처음 보니까 . 저것의 용도를 착각해도 이상하지 않다 . 왕의 신분과 위엄을 나타내는 한낱 왕관으로 보아도 이상하지 않다
당신은 피범벅이 된 석영의 가지가 - 뿔의 갈래 수가 모두 다섯이며 사람의 펼친 손을 닮았다는 사실에 눈치챘다
1. 늑대 가죽 남자는 어쩌다 그런 최후를 맞게 되었는가. 정황상 늑대 가죽의 여인과 한 패. 사슴왕에게 덤볐다가 작살난 것으로 보임. (부상은 사슴왕의 뿔에 맞은 것)
2. 늑대 남자의 피리는 무슨 의미였는가. 무언가를 부르기 위해서? 혹은 사슴왕의 후계자를 유인하거나 도망치는 걸 막기 위해서? 개인적으로는 설원 마법의 근원으로 의심 중. 설원 마법은 아마도 일종의 덫이나 그물. 그러나 이 추측은 아직 근거가 부족해서 아닐 수도...
3. 늑대들이 노리는 것은 무엇이었는가. 사슴왕의 언급으로 짐작 가능. 사슴왕은 신령이나 정령과 같은 존재로, 마법사들이 탐낼 만한 강대한 힘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사슴왕만큼은 아니어도 아마 사슴왕의 후계자도 마찬가지일 것. 늑대들은 이 힘을 노리던 집단으로 추정.
늑대 가죽 여자가 눈이 뒤집혀 주인공 조지려 한 것도 이걸로 대충 설명 가능. 판델라가 있다는 걸 알게 된 후부터 그런 반응을 보임. 즉 주인공 일행이 마법에 갇히는 걸 의도한 건 아니고, 판델라는 오히려 늑대녀에게 치명적인 방해요소임. 사슴을 잡으려고 큰돈 주고 친 그물에, 그물을 찢어버릴 수 있는 호랑이가 걸려든 격...으로 볼 수 있을 듯?
처음에는 늑대들이 무언가를 지키고 있는 게 아닌가 추측했었는데... 여자의 언행을 봐도 그렇고, 다른 마법사가 엮였다니까 죽일 생각을 하는 것도 그렇고, (스승님 같은 마법사들 기준으로도) 좋은 목적으로 행하는 것이 아닌 것으로 보임. 더군더나 야생에서 늑대와 사슴은 서로 천적관계임. 즉 사슴왕과 적대관계일 가능성 매우 높음.
4. 늑대 가죽 여자는 어째서 마법을 쓸 수 있었는가. 2번에서 추측한 대로 설원 마법이 늑대들이 준비한 것이라면, 그에 대한 대비도 미리 해두었을 것이라고 설명이 가능하지만... 마찬가지로 근거 부족.
5. 사슴왕의 후계자는 누구인가. 늑대들은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음. >>235에서 지적했듯 제아무리 자식에게 무관심했어도 얼굴 정도는 기억할테니 늑대 남자가 후계자였다면 뿔로 묵사발을 내버리진 않았을 것. 주인공이 다갓의 농간으로 혹은 루트 잘못 타서 만나지 못했을 다른 npc이거나, 아니면 의외의 인물일 가능성 있음...
+ 0. 스승님은 여기에 왜 주인공을 데리고 왔는가 무언가 중요한 목적이 있는 것은 맞는 것 같고, 여기가 목적지인지 경유지인지는 아직 불확실. 만약 여기가 목적지라면 아마도 사슴왕을 보러 온 것이 아닐까 추측 가능.
만약 판델라의 용건이 사슴왕을 만나는 것이 맞다면 스승님 혹은 주인공 둘 중 한 쪽이 사슴왕의 후계자였을 가능성 있음...? 에이 근데 설마 주인공이겠어. 그럼 >>0레스의 내용 일부(주인공은 양친을 여의었다, 판델라가 주인공의 먼 친척이다)와 충돌함.
>>238 에엗 다 맞음...? 아니아니 난 그냥 추리물을 좋아하는 참치일 뿐이야!ㅋㅋㅋㅋㅋ 좋아하는 거랑 잘하는 건 별개야. 보통 내가 궁예하면 반 정도는 틀린다고....
음 그래도 기왕 멍석 깔아준 김에 궁예질 더 해보자면...
6. 당신 주변의 거짓말쟁이...라면 스승님이 거짓말을 했다? 이건 어디가 거짓말인가도 따져봐야 하는 거 아닌가?ㄷㄷ
6-1. 스승님은 높아진 마나 농도로 인해 움직일 수 없다...는 건 이건 주인공이 마법사가 아니니까 잘 몰라서+분위기 탓에 상황을 괜히 실제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였을 가능성도 있음.(나참치가 이입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걸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상황이 급하다지만 설원에 뭐가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호신 수단 없이 무작정 제자를 보내진 않았을테고, 뭔가 믿는 구석이 있었을 것 같긴 함. "이 설원에 자신의 허락 없이 주인공을 해칠 수 있는 존재는 없다"고 호언장담했으니까. 스승님은 상당한 베테랑 마법사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정도 디버프는 시간만 조금 걸릴 뿐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는 정도일 수도...
6-2. 나침반의 용도와 효과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 나침반이 마법 아이템인 건 확실함. 북쪽이 아닌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는 서술이 있었으며,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가자 설원이 더 심하게 팽창하는 것이 보였음.
그렇다면 이 부분 또한 거짓말을 했다기보다는 나침반에 대해 무언가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고 봐야 함. 후술할 늑대들이 나침반을 노리는 이유와 연관지어서 생각해보자면 이 나침반이 생각보다 중요한 물건일 수도 있음. 가령 이 물건이 단순히 마나의 근원지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쥐고 있는 사람이 찾고 있는 걸 찾아주는 것이라든가, 혹은 단순히 길만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 열쇠의 역할을 할 수 있다든가.
7. 늑대들에 대하여 7-1. 늑대들은 어쩌다가 당신의 앞에 나타난 것인가. 일단 우연은 아님. 아마도 마나의 근원지로 향하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나침반의 마력이나, 중심을 향해 움직이는 주인공의 기척을 감지하고 미행하다가 붙잡은 것이 아닐까.
7-2. 바쥬라와 같이 있던 그림자는 왜 당신을 놓아주었는가 잔혹하고 이기적인 '바쥬라'와는 달리(검색해보다가 이름이 나왔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그림자는 바쥬라의 일처리 방식에 반감을 가지고 있음. 주인공의 진술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말려들었다고 판단하고 탈출할 수 있도록 놓아준 것 같긴 한데. 단순한 양심 이외의 무언가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7-3. 바쥬라는 왜 주인공의 나침반을 빼앗으려 하였는가 6-2와 연관지어서 생각해보자면 나침반이 사슴왕에게 접근하는 데 도움이 되거나, 그것 자체가 열쇠라서 탐을 내는 것...이라고 보는 게 가장 말이 될 것 같은데...
이 나침반은 판델라가 가지고 있었음. 만약 판델라가 사슴왕의 후계자이거나, 사슴욍의 후계자와 안면이 있는 사이라서 사슴왕을 찾아온 것이라면...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그림자가 주인공을 놓아준 이유와도 관련이 있을 수 있음. 나침반을 가진 주인공이 사슴왕에게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 놓아준 게 되는 거지...
그러니까 가능한 굿 엔드로 갈 수 있도록 조력하겠습니다 . 다이스 점수도 그러라고 시키고 있는 걸 ! ( 책임 전가 )
나침반의 역할은 판델라가 말한 대로 마나의 근원으로 < 당신 > 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 어떤 트릭도 장난도 섞이지 않았어요 . 한 가지 생각할 점이 있다면 ! 마나의 근원이 대체 무엇이냐는 거지요 !
어째서 늑대들은 마나의 근원지로 가는 길목에 있었는가 ! 늑대 가죽의 여자는 나침반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던 걸까 ? 뺏었다면 늑대 가죽의 여자는 그것으로 무엇을 하려 했을까 . 아니면 뺏는다는 행위 자체에 다른 의미가 있던 건 아닐까 ! 이 뒤로 이어지는 늑대들의 행적은 어떠했는가 . 판델라가 당신에게 괜찮을 거라 호언장담했던 이유는 뭔가 ! 어쩌면 앞서 했던 추측대로 - 늑대들은 뭔가를 지키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 함부로 아무나 다가가서는 안 되는 뭔가를 지키고 있었던 게 아닐까요 !
어쩌면 그들은 < 당신 > 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던 게 아닐까요 !
판델라는 < 당신 > 에게 말했습니다 . 마나의 근원을 부수라고 ! 마나의 근원을 부수는 것으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길래 ?!
당신은 침착하게 생각하려 애쓴다. 당신이 마나의 근원을 부수라는 스승님의 지시를 따른 것은, 그렇게 하면 이 설원 마법을 멈출 수 있을 것이라 직감했기 때문이다.
늑대들은 신뢰하기 어려운 존재 같았지만... 그들이 무언가를 지키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접근하는 자들을 배제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랬나, 그런 말을 했던 것 같은데. 그렇다면...그들이 지키고 있는 것이 역시 마나의 근원인가? 그리고 그것이...아마 숫사슴의 아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숫사슴의 아이 그 자체이든지, 아니면 아이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이든지 간에.
"제 스승님께서 말씀하시길 이 나침반이 마나의 근원을 가리킨다고 하셨습니다."
당신은 나침반을 꺼내 숫사슴에게 보이며, 나침반의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반댓손으로 가리킨다.
"아마도 저 중심에..."
아주 확신할 순 없지만, 남은 희망이라곤 그것뿐이다.
.dice 1 100. = 71
// 앗...그럼 늑대들은 완전한 악역은 아니었던 건가...? (뻘줌)
쓰면서 생각했는데 그럼 마나의 근원지가 사슴왕의 아이(혹은 아이와 사슴왕이 서로 만나는 걸 방해하는 무언가)이고 늑대들이 거길 지키고 있는 건가...! 이게 정답이어야 할 텐데...
숫사슴의 털은 가공되지 않은 생물의 그것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게 비단처럼 부드러웠다 . 함부로 쥐는 것이 망설여지는 여린 감촉은 숫사슴의 겉에 감도는 위엄과는 사뭇 다른 것이라 당신은 들키지 않게 놀랐다 . 누구도 감히 손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을 숫사슴의 옥체에 정결과는 거리가 먼 두 손을 가져가는 것에 당신은 죄악감을 느꼈다
이런 당신의 고민을 숫사슴은 알기나 할까 . 목석처럼 당신이 오르기만을 기다리는 숫사슴의 모습에 당신은 눈을 질끈 감고 털을 움켜쥐었다 . 팔을 당겨 땅에 붙은 몸을 숫사슴의 위로 끌어올렸다 . 승마는 커녕 동물원의 문턱조차 밟아보지 못한 당신이건만 - 의외로 재능이 있었는지 상상했던 것보다 쉽게 숫사슴의 등에 오를 수 있었다
여기서 실수를 했다면 비장한 분위기를 망쳤겠지 . 당신은 작게 안도하며 앞을 바라봤다 . 숫사슴의 위에서 사슴왕의 높이로 바라보는 세상의 정경에 당신은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뱉고야 말았다
─ 그것이 세상을 굽어보는 높이다 ─
숫사슴이 앞발굽을 들었다 . 당신은 그것이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 당신은 지금이라면 어떤 작은 생명이라 할지라도 놓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 머릿속 댐을 무너뜨리고 가슴 속 닫힌 창을 활짝 여는 광경이었다 . 당신은 지금에야말로 비로소 숫사슴이 먼저 한 말들이 참으로 진실이었구나 이해할 수 있었다 . 한층 더 넓게 - 세상을 아우르는 시야는 수평선 저 너머까지도 닿을 듯 했다 . 높은 머리는 구름이 있었다면 거기에 닿아 있었을 것이다
숫사슴의 목을 부드럽게 감싸 안은 당신은 두꺼운 털가죽 아래 뜨겁게 타오르는 생명의 불씨를 느꼈다 . 석탄을 태우는 기관차와 같이 점점 더 뜨겁게 타오르던 불씨는 심장에서 머리로 - 머리에서 다리로 퍼져나가 이윽고 한줌 고작 남은 숫사슴의 심지에 최후의 불을 지폈다
─ 떨어지지 않게 단단히 붙들도록 해라 ─
그리고 - 땅을 찢는 기세로 숫사슴이 뛰쳐나갔다
공기의 막을 부수고 - 무겁게 들러붙는 풍경을 내팽개치고 앞만을 바라보고 달려나갔다 . 스트링 치즈처럼 길게 늘어나는 세계의 모습을 당신은 가까스로 망막에 새겼다
─ 그래 - 이것이 그 자들의 목적이었구나 ─
다음 숫사슴이 걸음을 멈췄을 때 - 세계는 한없이 멈춰 있었다 . 질리지도 않고 당신을 시험하던 설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 끝이 어딘지도 모르고 무작정 두 다리로 달려온 당신을 기다리던 것은 - 이 극백색의 세계를 에워싸고 있던 검은 공간 그 자체였다 . 바닥이 보이지 않는 바닥 위에 숫사슴은 서 있었다
당신은 있는 힘껏 흔든 스노우볼처럼 아래로 - 위로 - 옆으로 날리는 눈발에 인상을 찌푸렸다 . 한계까지 늘어난 공간에 시간마저 늘어지고 있었다 . 숫사슴은 그것을 무심하게 말했다
부순다더라도 어떻게 부술 것인가 . 당신은 숫사슴을 넌지시 살폈다 . 전력 질주를 마친 숫사슴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 다시 한 번 쓰러진다면 - 그 때는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할 지도 모른다 . 숫사슴의 힘에 돌파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성싶다 . 여기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지 .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판델라는 당신이 여기까지 도달할 것이라 예상했을까 . 당신의 스승은 어디까지 내다보고 당신을 여기로 보낸 것일까
숫사슴으로부터 내려오려던 당신은 딛을 데 없이 쑥 빠지는 하반신에 놀라 허공에 허우적거렸다 . 천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져 사라지는 당신의 놀란 외침 . 한참을 고생하다 가까스로 숫사슴 위에 다시 올라탈 수 있었던 당신은 - 어수선한 때를 틈타 손아귀를 빠져나간 나침반의 행방을 다급히 눈으로 쫓았다 . 잠시 빌린 물건을 잃어버렸으면 어쩌나 노심초사하던 당신은 스승의 나침반이 바닥 없는 바닥으로 꺼지지 않고 - 숫사슴과 당신의 앞에 떠다니는 것을 발견했다
중력의 의미를 잊기라도 한 듯 검은 공간 속을 자유롭게 떠다니는 나침반 . 이에 당신은 ─
당신은 도전적으로 텅 빈 공간을 향해 몸을 던졌다 . 뒤이어 저 아래로 몸이 떨어질 때 당신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다 . 해파리처럼 두둥실 떠오를 거란 당신의 기대는 헛됐던 걸까 . 당신답지 않은 낙관적인 선택이기는 했지 . 당신은 추락하면서 시덥잖은 자기 반성을 했다 . 숫사슴이 당신의 목덜미를 물어 낚아채주지 않았다면 당신은 어떻게 됐을까 . 숫사슴이 당신의 성급한 행동을 질책했다
─ 조심하거라 어린 순아 . 지식의 독에 절은 너의 몸으로는 여기를 맘껏 헤엄치기란 불가능하다 . 기껏해야 심연의 아래로 사라지겠지 ─
숫사슴이 당신을 다그치며 힘겹게 걸음을 뗐다
당신은 숫사슴의 입에 매달려 머리가 어지러운 가운데 숫사슴의 상태를 걱정했다 . 이러다 숫사슴의 힘이 먼저 다하게 되면 어쩌지 . 당신은 돌아가는 길을 영영 잃게 될 것이 아닌가 . 당신은 당신에게 일어난 이 모든 일들이 판델라의 통제를 벗어난 결과로 느껴졌다 . 철두철미한 마녀 판델라 파즈즈 에를퀴니흐라면 당신이 여기까지 사건에 깊이 휘말릴 거라 염두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의 스승은 당신 이상으로 당신의 능력의 한계를 이해하고 있었다 . 당신이 당신의 스승이라면 당신에게 남은 모든 칩을 걸었겠는가 . 당신은 또 한 번 뾰루퉁해졌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당신을 내버려두고 숫사슴이 제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 당장에라도 무너질 듯이 불안한 숫사슴의 자세에 당신은 당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 혈관이 다 마르도록 피를 흘리고 더는 무엇도 남지 않은 몸은 가벼이 가벼워 건드리면 터질 비누 거품처럼 보였다
숫사슴은 행동으로 대신 당신에게 말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왔다면 이제 괜찮다고 - 여기가 바로 당신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마나의 근원지인 것이다 . 당신은 혼자 떠나가는 숫사슴에게 무어라 말하려다 혀를 절었다 . 당신은 이대로 숫사슴의 뒤를 따라 걸어도 될지 망설여졌다 . 나아간 앞에 무엇이 기다리는지 모르는 당신은 행여라도 숫사슴의 화가 자신에게 미칠까 우려했다
이 이상 숫사슴과 함께 행동하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닐지도 모른다
1 > 알 바냐 . 뭐가 있을지 모르는데 숫사슴의 곁을 떠나는 것이 더 위험하다 . 숫사슴의 옆에 따라붙는다
2 > 그렇지 - 상황이 잘못됐을 때 나한테 화풀이를 해도 곤란하다 . 아쉽지만 여기서 작별하도록 하자
당신은 바른 선택을 했다 . 인간적이며 도덕적인 선택이었다 . 베품 받은 은혜를 잊지 않는다는 것은 말로 하기는 쉬워도 실천하기는 어려운 것인데 당신은 그것을 해냈다 . 당신 안의 양심은 아직까지 마름모였던 모양이다 . 당신은 이유야 어쨌든 간에 숫사슴의 걱정을 하며 나란히 그의 옆에 따라붙었다
당신의 동행에도 숫사슴은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 숫사슴은 당신의 스승과 마찬가지로 묵묵히 자신의 일에만 집중했다 . 그가 당신을 만류하지 않는 것은 - 어쩌면 그럴 기력이 남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숫사슴은 나침반이 방향을 알려주지 않아도 스스로 나아가야 할 길을 알았다 . 숫사슴의 걸음은 무력했지만 확신에 차 있었다
당신은 숫사슴이 괜한 데 정신을 낭비하지 않도록 아무 말 않고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 때때로 쓰러지려는 그를 어깨로 받쳐 부축하기만 했다 . 당신은 자처하여 숫사슴의 지팡이가 되었다 . 그러한 행위는 궁색하나마 당신의 양심의 목마름을 달래주었다
사람과 사슴이 짝을 이루어 봄 내린 숲길을 걷는다는 동화적인 광경 . 상황이 달랐다면 당신도 흔쾌히 여겼을 것이다
요정과 같이 떼지어 다니는 호랑나비의 모습에 - 당신은 자신이 셰익스피어의 소설 속 한 장면에 빠져버린 것은 아닐까 의심했다 . 모두가 영원히 배부른 낙원이 있다면 바로 이렇겠지 . 목가적인 분위기의 숲은 전쟁도 싸움도 모르는 - 누구나 한 번 즈음 머릿속에 그리는 이상의 자연의 모습이었다
경계 반 경탄 반으로 틈틈이 한눈팔던 당신은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붉은 땅에 깊이 뿌리 박은 한 그루의 거목을 찾을 수 있었다
피부 밖으로 드러난 근육처럼 복잡하게 섞여 오르는 거목의 위용은 당신이 설원에 오고 보았던 무엇보다도 대단했다
이 앞으로 나아가면 이제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나무에 접근하다가는 뼈도 못 추리고 손해만 볼 수도 있으니 여기서는 신중하게 전략적 후퇴다.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한다. 이세계 만화로 예를 들면 평범한 슬라임인 줄 알고 잡았는데 그게 마왕이었다거나 하는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
여기까지 완전한 준비를 하지 않은 채 온 것을 후회했기 때문에 나는 안식처로 돌아가서 단련하기로 다짐했다. 남들이 뭐라고 말하든 철저하게 자신의 준비에만 집중한다. 내게 승산이 있을지도 모르고, 없을지도 모르는 싸움을 할 용기가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
"역시 돌아가는 게 좋겠군. 지금 당장 이 현상의 원인을 찾아내 제거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잘못 건드렸다가 망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게다가 몸이 피로하면 전투 중 쓰러질 가능성 또한 있다."
.dice 1 100. = 37
//처음 참여하는 거라 이전의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난입! 아직 Ready perfectly를 외치지 않았다. 두둥.
심상치 않은 크기의 거목에 질려버린 당신은 왔던 길을 거슬러 가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장소를 찾기로 했다 . 당신만의 프로방스를 찾아 혹사한 몸을 쉬게하기로 했다 . 겉으로 피로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 속까지 괜찮다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 당신의 선택에는 그런대로 일리가 있었다
문제는 당신이 아니라 숫사슴에게 있었다 . 이제와서 저 자를 혼자 내버려둬도 될까 . 당신은 미혹에 시달리다 충동적으로 숫사슴의 털을 잡아당겼다 . 당신은 자신의 손에 숫사슴이 멈추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 우뚝 멈춰선 숫사슴은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거목에 시선이 멈춰 있었다 . 빛 꺼진 두 눈으로 당신이 보지 못한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당신의 손을 떨치고 - 거목을 향해 나아가는 숫사슴 . 당신은 숫사슴을 눈으로 배웅했다 . 당신은 직감했다 . 여기가 종착지구나 . 당신은 하나의 신화가 막을 내리는 순간을 목도하고 있었다
숫사슴의 걸음걸음마다 이름 모를 목초가 자랐다 . 꽃이 피었다 . 숫사슴의 네 발은 각각이 붓처럼 메마른 땅을 알록달록하게 채워나갔다 . 숫사슴이 저 거목에 닿을 무렵에는 살풍경하던 빈 땅은 온데간데 없고 눈부신 화원만이 보였다
숫사슴은 말하지 않아도 말하고 있었다 . 혼자서 그렇게 외롭게 서 있지 않아도 된다고 . 숫사슴의 갸름한 이마가 거목에 맞닿자 겨울에 멈춰 있던 거목의 시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오래된 상처를 찢고 새 살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 푸른 이파리 사이로 탐스러운 흰 꽃이 날개를 펼쳤다 . 산딸나무에 꽃이 폈다
─ 이제야 너를 찾았구나 ─
당신은 그제서야 그것이 보였다 . 나무 뿌리에 휘감겨 보이지 않던 어린 죽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 그것은 시들어 움직이지 않는 한 송이 꽃이었다 . 그토록 바라던 재회가 이렇게 이루어지리라고는 . 숫사슴은 온기가 떠난 자리에 자신의 뺨을 맞댔다
이미 그의 손을 떠난 일이었다 .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도 없었다 . 그럼에도 숫사슴은 성내지 않았다 . 울며 화내지 않았다
그 누구도 탓하지 않고 - 거기에 남은 잔해에 자신의 잘못만을 빌었다
당신은 그가 한 말을 잊지 않았다 . 보다 강한 것이 보다 약한 것을 죽이는 것 - 그 자체는 두렵지 않은 일이다 . 어린 피붙이의 때이른 죽음조차도 그를 울게 만들 수는 없었다 . 당신은 그것이 ─
당신은 참혹한 결말에 무참한 기분이 들었다 . 비참한 광경으로부터 고개를 돌리지 않은 것은 - 방관자 나름의 도덕적 사명감 때문이었다 . 당신은 책의 마지막 장을 쥔 독자였다 . 당신이 아니라면 아무도 모르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이야기 . 당신은 그것이 슬펐다 . 가여웠다 . 납득이 되지 않았다 . 그랬기에 마지막까지 - 외면하지 못했다
당신은 숫사슴에게로 다가가 그를 위로할 생각으로 손을 가져다 대었다 . 조심스러운 손길로 깊이 패인 상처를 위로했다
풍선처럼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몸이었다 . 물보라처럼 금방 꺼져버릴 존재였다 . 숫사슴의 몸을 이루는 억센 결속이 - 소리 죽여 무너지는 것이 당신의 손가락 사이로 느껴졌다
손틈 사이로 빠져나가는 녹색의 기류는 잡고 싶어도 잡을 수 없었다 . 숫사슴의 거체에 올이 나가기 시작하더니 - 이윽고 걷잡지 못할 기세로 왕의 옥체가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 세월을 땋아 만든 실이 하늘과 봄을 메웠다
─ 이런 기분이었구나 ─
왕이 나지막히 되뇌었다
왕의 말을 포장하는 목소리는 - 오랜 생에 종지부를 찍는 순간에 내는 것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게 공허하고 가벼웠다 . 아무런 뜻을 담지 않은 - 감정이 실리지 않은 소리 . 무색무취의 말은 당신마저 허탈하게 했다 . 당신이 보다 빨리 행동했더라면 . 다른 데 발목 잡히지 않았다면 . 그랬다면 보다 나은 결말이 숫사슴을 기다렸을까
이런 당신의 속내를 숫사슴은 또 한 번 통찰했다
─ 네게 감사하마 어린 순아 . 네가 아니었다면 이조차 누리지 못하고 스러져야 했겠지 . 나는 너를 만나 정말로 다행이었다 ─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이어서 다행이었다고 숫사슴은 말했다 . 입 밖에 남지 않은 머리가 그렇게 말했다 . 당신의 뻗은 손에 그의 머리가 닿았다 . 두 눈을 감은 숫사슴은 영롱한 비취빛으로 당신을 휘감았다 . 강물처럼 번지는 녹빛에 당신도 덩달아 눈을 감게 됐다
설원과 봄을 지나 당신은 밤에 깨어났다 . 그저 한결같이 검기만 하던 설원의 하늘과는 다르게 - 깊이가 느껴지는 현실의 암막에는 이름 모를 별들이 수도 없이 붙박여 있었다 . 수척하게 살 빠진 달이 암흑을 밝히는 황야 . 그 속에 당신은 채찍처럼 부는 바람에 어깨를 떨었다
당신은 당신의 감각이 이전과 같이 멀쩡히 기능하는 것을 눈치챘다 . 잊고 있던 추위와 피로가 당신을 제자리에 주저앉게 했다 . 당신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다 . 그리하여 무사히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 당신은 뜻 없이 웃었다
거칠게 당겨졌던 긴장의 끈은 너덜너덜했다 . 더는 한 걸음도 걸을 수가 없어 제자리에 드러누웠다 . 나중 일 따위 모르고 우선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쉬기로 했다 . 너무나 많은 일들로 - 생각으로 - 의심으로 당신의 정신은 한계에 다다랐다
이대로 가만있어서는 안 된다고 - 머리에 적신호가 깜빡였지만 정말로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조차 남지 않은 당신이었다
당신은 누워 가만히 생각해봤다 . 스승이 당신을 찾아 여기까지 행차하시려면 대체 몇 개의 난관을 넘어야만 하는지 . 어쩌면 이미 < 늑대들 > 에게 당해 쓰러졌는지도 모른다 . 그토록 판델라를 벼르던 늑대 가죽의 여자가 아니었나 . 그런 것이 복수로 합을 짜 덤볐다면 제아무리 스승이라 할지라도 무사할 리가 만무했다 . 그렇게 누구도 당신을 도우러 오지 않는다면 - 당신은 어떻게 될까
당신은 숫사슴의 최후를 잊지 않았다 . 당신이 보는 앞에서 누구도 모르게 사라져간 숫사슴은 앞으로도 당신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겠지 . 당신마저 이대로 사라진다면 - 그 때는 정말로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되겠지 .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고 모든 것을 덮어 가리는 세월에 강물에 떨어진 한 방울의 피와 같이 잊혀질 것이다
당신은 스스로에게 반문했다 . 당신도 그렇게 되고 싶은 거냐고 . 지난 고생은 이렇게 들개 밥이 되기 위한 것이었냐고
당신은 일어나려고 시도한다. 아, 역시 차 키 가져올걸. 차가 있었으면 나았을텐데. 속으로 불평하면서도, 어쨌든 돌아가야지, 라고 당신은 스스로를 재촉해본다. 돌아가면...돌아가서 스승님을 다시 만난다면. 당신은 또 다시 당신이 보았던 것들을 스승님에게 이야기할 것이다. 그러면 기억하는 사람이 둘이 되지 않을까?
땅에 누운 몸은 일어나기를 완강히 거부했다 . 여기가 제 집이라는 양 들러붙어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 당신의 몸이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더 나를 부려먹어야 만족하겠냐며 당신에게 항의하지 않았을까 . 머리와 꼬리 이야기를 생각하면 이 흐름은 좋지 않았다 . 몸이 편하면 반드시 일이 벌어진다 . 될 대로 되라 하기에는 당신은 여전히 자신의 삶이 아까웠다 . 당신은 당신이 두 눈에 새긴 것을 전하기 위해서라도 - 자리를 일어났다 . 이 모든 일들을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었다
실에 매달린 인형 마냥 후들거리며 제대로 서지 못하는 다리 . 저릿거리는 양 팔의 모양새는 누군가 전기라도 흘린 듯 했다 . 입술을 모아 숨을 삼키는 단순한 행위에도 덜컥 가슴이 아픈 것이 빈말로도 상태가 좋다고 하기는 어려웠다 . 당신은 고민했다 . 의지와 근성만으로 스승이 기다리는 텐트까지 갈 수 있을까 . 갈 수 있다더라도 어디로 가야만 하는가
이 밤에 하늘을 나는 자가용 비행기가 있을지도 의문이었지만 있다손 치더라도 비행기의 높이에서 명확하게 식별이 가능할 만큼 확실한 구조 신호를 - 지칠 대로 지친 지금의 당신이 만들 수나 있을까 . 아무래도 가능성이 낮은 이야기였다 . 하지만 당신의 머리는 현재 그러한 이치를 따질 만큼 냉정하지 못했고 - 결과 당신은 땅을 맨손으로 휘적거리게 됐다
자포자기로 보이는 행동이 무엇을 낳을까 . 이번에야말로 당신의 운이 다한 걸까 . 체념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 . 그렇게 당신이 고개를 떨구려던 찰나였다 . 당신은 귀를 때리는 소음에 시선을 위로 향했다
고집부리는 당신에게 못 이기고 몸이 일어나 주었다 . 당신의 몸은 정말로 고맙게도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척척 - 폭죽이 피어오른 방향으로 걸어가 주기 시작했다 . 의욕 느껴지지 않는 상체가 제멋대로 팔을 휘두르고 벌어진 턱이 닫히지 않아 추하게 침이 흘렀지만 그 모든 것을 굳건하게 지탱하는 두 다리 덕분에 당신은 똑바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당신은 걸었다 . 빈 하늘을 신나게 때리는 폭죽을 향해 걷고 또 걸었다
입에서 단내가 나고 면도칼이라도 삼킨 듯 가슴이 아팠지만 다리를 멈추고 몸을 쉬게 한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하고 - 걷기 위해 태어난 기계였던 것처럼 행동했다 . 쿵쾅거리며 시끄럽게 머리를 울리던 심장의 고동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 . 당신은 이것이 자신의 최후겠구나 멋대로 지레짐작했다 . 다음 당신이 정신 차렸을 때 당신은 거친 땅의 감촉을 뺨에 새기고 있었다 . 언제 쓰러졌는지도 모를 몸은 더 이상 당신의 말을 듣지 않았다 .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당신의 것이란 것을 당신은 몰랐다 . 지독한 이명의 와중에도 당신이 자신의 정신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기적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신은 바라지 않은 기적은 불행의 동의어라는 것을 배우게 됐다
" ... 뭘 .. 멋대로 자빠져 있냐 "
모르는 손이 당신을 붙잡았다 . 붙잡는 데서 그치지 않고 당신을 들어 보였다 . 귀가 멀쩡했다면 당신은 목소리의 주인이 바로 몇 시간 전에 만났던 늑대 가죽의 여자란 것을 알았을 것이다
똑바로 눈을 뜰 수 있었다면 - 그것이 엉망진창으로 망가져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 더는 눈 한 번 깜빡이기도 힘든 당신조차도 한 수 접게 만드는 - 찢기고 비틀린 몸으로 악에 받친 목소리를 짜내는 늑대 가죽의 여자 . 여자는 피 맺힌 눈동자로 당신을 노려보며 미쳐버린 웃음 소리를 냈다
" 너만 ... 너만 아니었어도 ... 마녀와 만나는 일은 없었을 거야 ! 너만 아니었으면 내가 이렇게 될 일도 없었어 ! 내 시간과 돈 ! 내 노력은 누구에게 보상받아야만 해 ?! 나의 .. 우리의 가문은 이걸로 어떻게 되는 거냐고 .. 어 !? 이제 어떻게 하면 되냐고 ! 대답해 .. 대답하란 말이야 ! 전부 너 때문이잖아 !!! 전부 다 ! 너 때문이라고 !! "
미쳐 떠드는 여자의 모습에 당신은 눈살을 찌푸렸다 . 당신은 당신의 몸에 갇힌 열만으로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 여자가 뭐라든지 당신이 답할 말은 하나 뿐이었다
이명 때문에 잘 들리지 않지만 당신은 이 여자와 그 패거리가 당신을 곤경에 빠트린 원흉이라는 걸 직감했다. 아니었어도 이런 극한 상황에서 감정을 억누르려 해봤자 얼마나 억누를 수 있었겠냐마는.
"너 때문이라니...그건....내가 할 말이다, 새끼들아...너네가 먼저...건드린 거야. 너네 때문에 휘말린 거잖아."
당신은 뒷말이 제대로 나오든 말든, 상대에게 들리든 말든 짜증을 쥐어짜낸다. 붉고 비린 것이 얼핏얼핏 보이는 것도 같은데, 당신이, 혹은 당신의 스승님이 저것들에게 제대로 엿을 먹여준 건 맞나보다. 적어도 스승님 걱정은 이제 안 해도 되려나. 남의 시선을 신경 쓸 정신머리가 남아있지 않은 당신은, 씨익 웃는다.